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집안에서 좀더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무엇보다 공간의 여백과 마음의 여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본문발췌]
뭔가 깨끗하게 다 쓰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꼭 필요한 것을 아주 잘 샀다는 생각도 들고, 중간에 시들해지지 않고 끝까지 쓴 것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시행착오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살림의 햇수가 늘수록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자주 사용하게 되는지 점점 명확히 알아가는 것 같다. 그것을 갖기 위해서 다른 것은 줄이거나 포기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살면서 이렇게 좋아하고 필요한 것만 내 것으로 가질 수 있다면 인생이 얼마나 가볍고 풍요로울까.
물건이란 소유하기보다 간수하기가 더 힘들다.
집에서 마시는 커피는 해야 할 일 사이에서 잠시 멈춤을 부르는 쉼표. 혹은 그사이 하고 싶은 일을 살포시 밀어 넣는 접속의 역할을 한다. 설거지, 청소, 빨래를 하다가 지칠 때, 뭔가로 정신없이 바쁠 때, 그럴 땐 미처 끝내지 못한 설거지가 담긴 싱크대 한 귀통이라도 상관없다. 그라인더에 커피콩 한 줌을 넣어 커피를 갈고 물을 끓인다. 그런 다음 드리퍼에 서걱한 종이 필터 한 장을 올리고 적당히 간 커피를 넣은 다음 뜨거운 물을 포트에 옮기면 나도모르게 찬찬히 숨을 고르게 된다. 어깨와 팔꿈치를 단정히 움츠리고 포트 쥔 손목을 조심스레 돌려가며 커피를 내린다. 내린 커피를 잔에 따르고 나면 방금 전까지 무릎을 마루에 붙이고 힘껏 걸제질하던 손이 저절로 우아하게 커피잔에 닿는다. 마음을 쉬게 하고 기운을 되찾게 해주는 시간. 커피를 즐긴다는 것은 바로 그런 시간을 스스로 허락하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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