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책임지기 위해 버틴다.
[본문발췌]
자신이 받은 알량한 상처의 총량을 빌미로, 타인에게 가하는 상처를 아무것도 아닌 양 무마해버리는 비겁함. 우리는 모두 상처받으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상처는 상처고 인생은 인생이다. 상처를 과시할 필요도, 자기변명을 위한 핑곗거리로 삼을 이유도 없다. 다만 짊어질 뿐이다. 짊어지고 껴안고 공생하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할 뿐이다. 살아가는 내내 말이다.
존경과 권위는 스스로 선배라고 선언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행동과 품위, 아껴 보고 배울 점들로부터 자연스레 얻어지는 것이다.
평범한 어른이란, 과오들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책임이다. 인간은 그러니까 어차피 과거를 생각할 때마다 조금씩 죽는 것이다. 그 과거의 크기에 두려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좌절하지도 말고 바로 지금 이 순간 짊어질 수 있는 그만큼씩을 가지고 살아나가면, 그것이 평험한 어른이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된다는 건 자기 주변을 책임질 일이 늘어간다는 것이다. 당신도 알다시피 책임을 진다는 건 말처럼 그리 고상한 일이 아니다. 더럽고 치사한 일이다. 내 소신이 아니라 남의 소신을 지켜주어야 하는 일이다. 아무튼 산다는 건 액정보호필름을 붙이는 일과 비슷한 것이다. 때어내어 다시 붙이려다가는 못 쓰게 된다. 먼지가 들어갔으면 들어가 대로, 기포가 남았으면 남은 대로 결과물을 인내하고 상기할 수밖에 없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쩌면 주변 세계를 향한 애정을 조금씩 잃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란 계산된 위약을 부리지 않고 돈 위에 더 많은 돈을 쌓으려 하기보다 내게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할 줄 알며 인간관계의 정치를 위해 신뢰를 가장하지 않고 미래의 무더기보다 현실의 한줌을 아끼면서 천박한 것을 천박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되 네 편과 내 편을 종횡으로 나누어 다투고 분쟁하는 진영논리의 달콤함에 함몰되지 않길 하루하루 소망하는 자다.
사람들은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지요. 부조리의 관성을 세계의 질서라고 이야기하지요. 더불어 그걸 인정하고 대안과 차악을 선택하는 게 더 너르고 성숙한 세계관이라고 포장하지요. 세상이 바뀌지 않는 건 세상을 바꿀 마음도 의지도 능력도 없는 자들이 세계의 지도와 구조를 그려왔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얼마나 쉽게 이유를 만들고 합리를 씌워 결과를 만들어내는가. 누군가의 신념을 매도하고 개성을 희롱하고 사실을 왜곡하기에 얼마나 편리한 곳인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아무도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렇게, 누군가는 괴물이 된다.
어떤 행동에 단 한 가지 명백한 원인만이 존재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다못해 날씨부터 사소한 대화, 어느 생각 없는 기자가 써내려간 기사 한 줄이 안겨준 짜증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행동을 가능케 하는 원인에는 수없이 많은 요소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기 마련이다. 그 가운데 하나로 유력한 이유를 만들고 매우 명확한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것처럼 포장하면 정작 문제의 본질은 휘발될 수밖에 없다.
끔찍한 사건의 범인을 격리하고 처벌하는 건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사회정의다. 그러나 명백한 이유를 만든답시고 자극적인 수사와 무리한 추정에 바탕해 엉뚱한 데에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범인을 그냥 '괴물'로 만들어버리면, 우리는 동일한 범죄가 반복되는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된다. 그렇데 되는 순간 사건은 더이상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우리 공동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와 다른 철창 속 괴물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서커스가 철창 안의 괴물을 전시하듯 담론은 사라지고 프릭쇼freak show만 남는다. 이때 진짜 괴물은 살인범인가, 언론인가.
살아 있는 누군가는 깍아내려짐으로써 상품화된다. 이미 죽은 누군가는 신화화됨으로써 상품화된다. 진심과 진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본질에 대한 어떤 규명이나 확인도 없이 괴물은 우상이 되고 우상은 괴물이 된다. 돈이 된다면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세상에서 가장 쉽고 천박하며 공공연한 진실이다.
세간의 소문, 혹은 기소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누군가는 순식간에 악인이 된다. 우리는 공공의 적을 만들어 그것을 가능한 한 가장 폭력적인 방식으로 단죄할 때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착각한다.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주변에 증명하기 위해 더 강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폭력을 행사한다. 더불어 공동체를 위해 마땅한 정의를 실현했다고 시그럽게 과시한다. 그 정의 앞에 다른 모든 가치판단은 유보되거나 선행된 판단에 맞추어 재배열된다.
한번 실추된 누군가의 명예는 결코 와전하게 회복되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일들은 대게, 정의의 이름으로 이루어진다.
지키려는 집단과 바꾸려는 집단. 지배 계급과 피지배계급. 귀족과 부르주아.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정규직과 비정규직. 인류의 역사는 끝없는 투쟁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투쟁과 역전의 대목마다 인류의 세계는 다시 한번 존속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왔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다름 아닌 가능성이다. 우리보다 아주 조금이라도 나을 수 있는 가능성이다. 그것은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선사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우리는 모두 가족이라는 이름의 코끼리를 기르고 있다. 공공연한 폭력의 최전선은 전쟁터가 아니라 가정이다. 남이 하면 뭐 저런 미친놈이 다 있어. 삿대질할 것도 엄마에게 형제에게 자식에게 남김없이 쏟아낸다. 사람이 괴물 되는 건 순식간이다. 자기 자신과 주변의 모습을 정확히 바라보지 못하고선 스스로 괴물이 되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한 사람의 인생을 단 두세 마디로 규정하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삶은 크고 작은 모순들로 가득 차 있다.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평가받는 사람부터, 끝내 실패한 인생으로 낙인찍힌 사람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순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타인의 모순을 잘 참아내지 못한다. 왜 일관되지 않느냐고 타박한다. 상대의 굴곡으로부터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타인의 삶은 자연스레 단 두세 마디 인상비평의 소재가 되기를 거듭한다. 나쁜 놈이거나, 착한 놈이거나.
<레 미제라블>이 제시하는 이슈는 정의의 궁극적 승리 따위가 아니다. 혁명이라는 거대서사의 소용돌이 안에서조차, 서로 다른 가치관과 계급과 세대애 속한 이들을 공히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개인의 평생에 걸친 자기비판과 성찰, 그리고 그로부터 얻어지는 박애뿐이라는 사실이다.
세상에 운명 따윈 없다. 약속된 땅도 계획도 다음 생 같은 것도 기대하지 마라. 덜 낭만적으로 들리겠지만 정신 차리고 제대로 살기 위해, 결코 도래하지 않을 행복을 빌미로 오늘을 희생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들의 정체를 규명해야만 한다. 역할에 휘둘릴 것인가, 아니면 정말 관계를 할 것인가. 그 쉽지 않은 답을 찾는 것으로 우리는 정말 나아질 수 있다. 끝이 어떠하든,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시합에서 져도, 머리가 터져버려도 상관없어. 15회까지 버티기만 하면 돼. 아무도 거기까지 가본 적인 없거든.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두 발로 서 있으면, 그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뭔가를 이뤄낸 순간이 될 거야." ... <록키>는 지난 세월을 꼰대들과 불화하며 답답하게 보낸 서른 살의 한 남자가 세상의 방식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온전하게 증명해내는 이야기다. 그의 해답은 이기든 지든 끝까지 자기 힘으로 버티어내는 데 있었다. 인생의 좌표라는, 그 단어부터 너무나 거대해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는 세상의 말에 더이상 무심할 수 없는 나이에 닿아 가면서, 결국 버티어내는 것만이 유일하게 선택 가능하되 가장 어려운 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기는 것도, 좀더 많이 거머쥐는 것도 아닌 세상사에 맞서 자신을 지키고 버티어 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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