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말할것도 없고 '사실'조차 이야기로 왜곡, 가공해 개인과 집단의 이익을 취하는 상황이 만연하고 있다.
[본문발췌]
방대한 분량의 책들을 쓰는 행위, 그러니까 단 몇 분 만에 완벽하게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생각을 장장 오백여 페이지에 걸쳐 길게 늘리는 짓은 고되면서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정신 나간 짓이다.
현재란 확실하지도 않고 일정하지 않으며, 미래는 현재의 희망과 같은 것을 제외하고는 실체가 없고, 과거는 실체가 없는 현재의 기억과 같은 것 같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인간이 지닌 가능성이란 얼마나 무한한가!
'진리'의 어머니는 역사이자 시간의 적이며, 행위들의 창고이자 과거의 증인이며, 현재에 대한 표본이자 조언자고, 미래에 대한 상담자다.
문학이 줄 수 있는 많은 행복 중 최고의 것은 상상
<픽션들>이 20세기 후반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현실의 지시물을 상상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자의적으로 사용하고, 기존에 진리라는 이름으로 수용되거나 이성적으로 포장된 모든 것이 결국의 인간이 만들어낸 또 다른 허구임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 준 덕분이다.
우리가 궁극적인 진리라고 믿고 섬기고 있는 것도 우리가 만들어낸 '우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데리다가 '진리/허구'의 이분법적 대립을 해체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시작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그리고 진리의 절대성과 우위성에 대해 해체는 바로 곧 모든 것의 허구성-혹은 허구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문학의 경우 그러한 인식은 곧 현실과 허구 사이에 명확한 경계선의 설정이 가능하다는 종래의 관념을 수정시켜, 1960년대 이후의 서구 소설에서는 흔히 현실과 허구가 구별되지 않고 서로 뒤섞이게 되었다.
사실 보르헤스 문학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에, 냉전 시대에 미국학자들이 지니고 있던 정치적 무관심을 합리화시켜 주었고, 또 아직도 비정치성을 합리화시킬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한 위험한 작품이다. 보르헤스의 소설이 다원성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역사의 측면을 여러 상이한 관점 아래서 파헤칠 수 있으며, 이런 역사의 다원성을 통해 획일화를 추구하는 종래의 정치관과 공식 역사관의 허구성을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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