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과 결핍은 그 전에 인식하지 못했던 소중함을 알게해준다.
[본문발췌]
세상에 사랑하는 것들이 많으면 한때 사랑했던 것을 잃어도 다시 빈자리를 메울 수 있다. 그리고 그때마다 상실을 넘어서는 발전들이 이뤄진다.
복잡하고 흔치 않은 병에 시달려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알 것이다. 내게는 절실한 대답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만큼 절실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급하다고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급해지지 않는다. 나의 곤경은 내게는 무엇보다 우선하는 일이지만, 하얀 가운을 입은 나의 구원자들에게는 잠시 미뤄 둘 수 있는 일이다. 그들은 똑같이 다급한 사례들과 똑같이 간절한 탄원자들을 상대로 최대한의 효율을 추구하고 있으니까. 이것은 그들의 냉담함에 대한 완벽한 변명은 못되더라도 최소한의 설명은 된다.
물론 내 이야기는 새벽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황혼에 관한 이야기다. 낮은 영원하지 않으며 빛은 가차없이 사그라든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된 이야기다. 인생의 정점에 이르러 우리는 어디선가 빌려온 유한한 시간을 살아가는 것임을 자각하게 되는 이야기다. 너무도 달라진 온도와 분위기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황혼이 얼마나 역설적이고 풍부하며 아름다울 수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내 세계는 흐릿해졌지만 동시에 예리해졌다. 나는 숨을 멈추었다 내쉬었다. 나는 새로운 걱정들을 인사로 맞이하고 과거의 걱정들에 작별을 고했다. 한 친구는 내 상황을 재치 있게 한 줄로 요약했다. "한쪽 눈이 감기면 다른 쪽 눈이 뜨인다."
나는 한쪽 눈으로 더 열심히 더 오래 바라보았다. 내 주변의 모든 것을 전보다 정성껏 바라보았다. 나는 우리가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관해 아는 것이 너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그들을 그저 피상적으로만 보고, 서로에게 불편하지 않은 의례적인 질문만을 한다. 그들을 여러 조각으로 편집해 그중 가장 덜 복잡하고 가장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부분만을 취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충분히 알아보지 못한 마음의 상처가, 우리가 충분히 추앙하지 않은 승리가 있다.
진정한 불운을 마주하고 나서 과거를 돌이켜보니 그 시간이 몹시 부끄럽게 여겨졌다. 그 시간은 어리석은 분개로 점철되어 있었고 무의미한 앙심으로 가득했다. 나는 내게 열린 도로보다 닫힌 도로를 밟으려고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고, 비뚤어진 시선 속에서 모욕으로 여긴 것들의 총계를 냈다. 시살 아무 걱정할 게 없을 때도 내게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불만이 있었다.
"삶이란 상실에 적응하는 일입니다." 삶의 도전은 상실에 적응하는 것, 더 구체적으로는 판단력과 품위를 키워서 상실은 불가피한 것일 뿐만 아니라 삶의 유일한 궤적임을 아는 것이다. 삶의 도전을 마주하고 가늠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들이 있고 그중에는 위안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잘 살기 위한 비결, 가끔은 살아남기 위한 비결인 셈이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실명을 짐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나는 실명을 개성으로 여겼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외모에 만족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수도 있습니다. 키가 더 컸으면, 좀 더 날씬했으면 하고 바랄 수 있지요. 하지만 지금 이대로의 내가 나입니다. 내게 실명은 정확히 그런 것이었습니다." 후안은 내게 말했다. "정직하게 말해서 나는 보이지 않음의 장점을 온전히 누려왔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 통제력이 별로 없지만, 그 사건들 무엇으로 정의하고 어떻게 반응을 보일지에 대해서는 최종적인 결정권을 갖고 있다. 후안 호세는 시력을 바로잡을 수 없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빚어낼 수는 있다. 후안은 만족감과 충만감, 자긍심을 위해 자신이 강조하고 싶은 주제에 밑줄을 그을 수 있다. 후안은, 아니 우리 모두는 정확히 그래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고난에 처하는 방식에서 무엇을 얻을지 선택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 각각은 예외 없이 무언가를 얻는다.
신체적 쇠퇴는 노화에 따라 가속화 한다. 살아남는 것, 그리고 운이 좋아서 장수한다는 것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
나는 인생의 광고판 이론을 언급했다. 사람들이 어깨에 진 짐을, 그들이 억누르는 두려움을, 그들이 감추는 흉터를 잠깐만이라도 알아봐준다면, 우리는 각자가 경험하는 불운과 모욕감에 덜 사로잡힐 거라고, 그리고 다른 사람의 기분과 잘못을 더 이해해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야망에 쫓기는 일벌레가 되지 말 것이며 긴장을 풀고 한숨 돌릴 시간을 넉넉히 남겨두라는 것이었다.
어떤 경험을 뒤로 미루는 것은 종종 그 경험을 결코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자연만큼 우리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우리가 충분히 만끽하지 못하는 찬란함의 원천은 없다. 우쭐하고 득의만만한 우리 인간들이 이처럼 부끄러운 줄 모르고 당연히 여기는 것은 없다. 그리고 이만큼 훌륭한 위안은 없다.
누군가를 즐겁고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가끔은 얼마나 쉬운 일인지를 알게 되어 행복했다. 누군가에게 평범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새로운 발견일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을 나누는 것이 삶을 끝없는 선물의 교환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되새기게 되어 행복했다.
일과 사랑과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여러 다른 각도가 있다. 수많은 도로와 이동 수단이 있다. 한 가지가 닫히면 다른 것을 이용할 수 있고, 심지어 이견의 여지가 없는 희생조차 우리가 견뎌낼 수 있는 일종의 방향 전환일 수 있다. 이따금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 내가 앞 챕터에서 언급했듯이 한계나 상실은 우리가 모색하지 않았을 실험, 우리가 습득하지 않았을 능력, 우리가 알지 못했을 통찰로 가는 관문이 된다. 우리는 그저 그러한 전망을 허용하고 그러한 관점을 우아하게 내것으로 취해야 한다.
"내 마음을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모양으로 빚으려는 노력을 멈추었습니다."
조너선 라우시는 <인생은 왜 50부터 반등하는가>에서 한 연구 결과를 인용해 50세 이상의 사람들이 강점을 보이는 심리적, 정서적 습관을 열거했다. "현재에 살기. 하루하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긍정성의 진가를 음미하기. 부정적인 것을 덜 생각하기. 받아들이기. 과잉반응하지 않기.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기.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사람들이나 관계를 우선시하기." 이것들은 다양한 연령을 대상으로 자기 자신고 환경에 관한 느낌을 묻는 조사에서 나이 든 사람들이 말한 행복 쌓기 블록에 해당한다. "삶의 만족도에 평점을 매기라고 했을 때 60대와 70대 응답자들이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했고 80대에서 살짝 감소했다." 라우시는 말했다.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심리학과 마케팅을 가르치는 노버트 슈워츠는 사람들의 행복은 신체 조건이나 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무엇에 관심을 두는지, 무엇을 중시하는지, 자신에게 허용된 가능성 내에서 무엇을 성취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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