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기술, 경제규모는 발전한다는데 사회, 인간성은 퇴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본문발췌]
여행의 재미 중 하나는 이 차안(此岸)의 나라의 지금으로부터 피안(彼岸)의 나라의 지금으로 타임 슬립해가는 역동성에 있다. 과거 십 수 년의 여행에서 나는 가장 급진적인 지금을 가진 나라로부터 중세 이전의 시간을 가진 나라까지 다양한 지층 연대의 땅을 몇 번이고 타임 슬립 했다. 그런 여행 속에서 나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하나의 작고 단순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인간이 유지해온 지금은 과거의 지금으로부터 현재 또는 미래의 지금을 향해 역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과학은 진화하고 인간적인 것은 퇴화하는 지구상의 시간 구도가 분명하게 보였다고 해도 좋다.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데 고생해서 가서 보면 하찮은 것이었다는, 그런 경험을 여행 중에 종종 한다. 그 한 가지 원인은 인간의 시력과 사유 능력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오산 때문이다. 특히 나처럼 근시 기가 있고 온갖 풍물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은 더더욱 이런 종류의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 더구나 눈이 나쁘고 망상벽이 있고 여행을 좋아하는, 이 세 가지 병이 겹친 사람은 구제불능이다.
자신의 시력이 미치지 않는 아득한 원경 저편에 신이 보이는 것 같을 때, 그냥 그 자리에 앉아 손을 모으고 있으면 그 무지로 인해 나름대로 구원을 얻을 수도 있을 텐데, 고약하게도 그것을 직접 보고, 만지고, 그곳에서 숨을 쉬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고개를 든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기어코 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원경이 중경이 되고 다시 근경이 되고 결국 그 원경에 도달했을 때, 익히 보아온 일상의 잡동사니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문득 예전에 자신이 있던 기점을 돌아보면 그 먼 땅이 어쩐지 꿈결처럼 아름다워 보이고, 변덕이 심한 그는 당장이라도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기분에 휩싸인다.
오랫동안 이런 구제할 길 없는 여행을 계속하면 실패를 거듭하고 숱하게 기만당하다 보면 자연과 풍경이라는 것이 신이 조종하는 ‘속임수 그림’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접는 방법에 따라 다양한 그림이 나오는, 어릴 때 갖고 놀던 그 종이 접기 장난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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