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생각, 가방을 비울 수록 여행을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본문발췌]
처음이 아닌 여행지에서는 확실히 여유로워진다. 처음 방문했을 땐 가 보고 싶은 곳이 많으니 아무래도 쫓기듯 여러 명소를 찾게 된다. 하지만 두 번째만 해도 이전 여행에서 터득한 취향이 생기기 때문에 좀 더 나에게 맞는 효율적인 여행을 할 수 있다.
특별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 찍기보다 순간을 만끽하며 어떤 순간에서도 나만의 시선을 찾아보자고 다짐했다. 마음에는 듣고자 하는 귀와 듣지 않고자 하는 두 가지 귀가 있다고 한다. 마음의 눈도 그렇지 않을까? 내가 가진 모든 눈을 떠 여행하고 싶어졌다. 행복한 순간을 보는 눈, 순간의 소중함을 찾아내는 눈, 소외된 사람들을 발견하는 눈, 시간을 두고 유심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알아챌 수 있는 눈으로 모두 담아내고 싶었다. 목적이 있는 사진이 아니라 마음으로 눈을 뜨고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여행을 떠난다’는 생각만으로도 우리는 설렘을 느낀다.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풍경들로 가득 찬 낯선 장소가 우리에게 걸어 주는 마법이 이 행위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시작 뒤엔 반드시 끝이 따라오지만, 떠나기 전 설렘부터 여행이 끝난 후 여유까지 모두 즐길 수 있는 게 여행의 묘미 아닐까. 아쉬워 말자. 끝 다음에는 항상 또 다른 시작이 있다는 것을!
‘광활’은 물리적인 뜻 이외에 자유와 평안의 뜻도 내포하고 있다. 광활한 트레치메에서 나는 완전한 구원을 느꼈다. 행복이란 노력해서 성취해야 하는 거창한 감정이 아니다. 우리 마음의 틈새에 상시 스며 있다 이런 순간들에 자연스레 입가로 타고 오른다.
여행은 개인마다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이다. 그때 느꼈던 감정과 경험을 다른 이에게 완벽히 전달하기란 어렵다. 여행에서 보았던 풍경, 만난 사람들, 다양한 사건과 경험을 커다란 포장지로 엮어 감싸면 그것이 추억이 된다. 포장지는 대체로 감정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내가 경험한 포르투갈은 행복함과 온화한 색으로 소중하고 특별했다.
지금에서야 여행이 갖는 의미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 더 명확해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순간을 즐기면서도 시간과 돈에 대한 불안감이 문득 떠오르고, 행복한 날들이 더해질수록 현실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 대한 초조함이 커졌다. 이제는 그런 감정 때문에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더 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추억 자체가 여행의 의미가 될 수 있도록 항상 되뇌인다. “불안하고 덧없는 것 같을지라도 현재에 충실할 것.”
한 장의 사진으로 여행이 시작되기도 한다. 누군가의 시선을 따라 명소나 숨은 장소를 찾아내는 것도 좋지만, 내가 생각하는 여행 사진의 묘미는 역시 ‘이야기’다. 여행하면서 느낀 그 날의 분위기, 온도, 색감 그리고 생생한 이야기를 사진에 담아내는 것이다.
여행 좀 다녀 본 여행자들이 공통으로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여행은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중요하다.” 라고. 여행을 다니면서 어디든 가야 한다거나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마음이 경직되어 여유를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땐 억지로 편안함을 흉내 낼 필요 없다. 대신 아주 적당히 헐렁하고 어설프게 행동해 보자. 스웨터를 짤 때, 한 코 정도 빼먹어도 넘어갈 수 있는 헐렁함 정도면 충분하다. 너무 완벽하게 ‘여행’이라는 과제를 끝마치려고 노력하지 말라는 말이다. 조그맣게 난 구멍을 보고 다른 여행자가 예쁜 와펜을 선물해 줄 수도 있고, 더울 때 바람이 구멍으로 송송 들어와 땀을 식혀줄 수도 있으니까. 아니면 코가 살살 풀려 멋진 크로셰처럼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여유를 즐기는 일’을 억지로 시간을 내서 초조함 속에 이행할 필요는 없다. 조금 내려놓고 여행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에 비우는 여유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종착역을 알지 못해도 무작정 출발한다. 여정이 끝나고 나서야 이유를 찾을 수 있는 셈이다. 길은 언제나 간 뒤에 생겨난다고 했다. 성격상 엄밀히 말하면 좋은 실패 따윈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스스로 결정하고 행한 행동의 가치를 폄하하지 않으면 좋겠다. 내가 나를 인정해 주어야 다음 도전과 시도 역시 주저 없이 행할 수 있게 된다. 쓸모없는 경험은 없기에 그 안에서 새로운 가치를 탄생시킨다고 믿는다. 상처가 나고 아물어야 근육이 커지는 것처럼 쓰라려야 하는 순간도 있다. 그렇게 쌓인 노력과 실패가 얽히고 얽혀 나무뿌리처럼 마음이 굵고 단단한 사람이 되기를 소원한다.
여행을 하다 보면 계획대로 척척 진행되는 것들이 많지 않다. 기대와 실망, 불행과 행운이 반복된다. 경험상, 예상하지 못했던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을 때 몇 배로 기뻤던 일이 아주 많았다. 그러다 보니 불쾌한 열기가 피어나는 투정과 실망보다 우연이 주는 폭죽 같은 행복에 오히려 기대하게 된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다’고 방어적으로 보일 수 있는 표현은 사실 목적 자체에 대한 기대가 아닌 우연으로 인한 행운을 기대하는 방법이자. 직접 내 눈으로 보기 전까지 어떨지 아무도 모르니까, 그때까지 감정을 꾹꾹 아껴 두는 것이다.
행복의 크기를 예상할 수는 없지만 우연에서 찾아오는 기대를 이렇게 다시 키워 간다. 목적에 대한 기대보다 편리한 점이 있다면, 시점은 몰라도 확실히 찾아올 행운이므로 실망할 일이 없다는 것. 다음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언제나 선물 상자는 갑작스레 찾아온다. 어떤 행복이 들어 있을지 아무도 모른 채.
“기분이 태도가 되게 하지 말라.” 한때 유행했던 유명한 말이다. 어떤 감정에 치우치거나 휩쓸려 그 기분이 행동의 주체가 되게 하지 말라는 뜻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성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려고 노력해도 미숙한 사람인지라 쉽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순간에서 이런 이성은 굉장히 중요하다. 상황을 인지하고, 격앙된 감정으로 좁아진 시야를 넓혀 객관적인 판단이 필요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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