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소유에서 벗어날수록 삶은 더 자유로워진다.
[본문발췌]
부자들을 위해
새 눈에 대해 너절한 글을 쓰는 것은
예술이 아니다. - 잇사
우리의 기본 목표는 다름 아닌 질문을 새롭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또는 우리가 믿고 있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단지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만 본다. 이렇게 보는 것은 일종의 선택 행위다. 선택의 결과, 우리는 우리가 보는 것을 시야의 범위 안으로 끌어들인다. 우리는 결코 한 가지 물건만 보지 않는다. 언제나 물건들과 우리들 사이의 관계를 살펴본다. 우리의 시각은 끊임없이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우리를 중심으로 하는 둥그런 시야 안에 들어온 물건들을 훑어보며, 세계 속에 우리가 어떻게 위치하고 있는지 가늠해 보려 한다.
우리가 어떤 것을 볼 수 있게 되자마자, 타인도 우리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된다. 이렇게 타인의 시선이 우리의 시선과 결합함으로써 우리 자신 역시 가시적 세계의 일부라는 사실을 납득할 수 있게 된다.
이미지는 재창조되었거나 재생산된 시각이다. 그것은 특정한 장소, 특정한 순간의 사물적 어떤 모습 또는 모습들을 본래의 장소 및 시간에서 따로 분리해내 일정 기간 또는 몇 세기 후까지 보존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이미지는 하나의 보는 방식을 구현하고 있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흔히 사진을 기계적 기록이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한 장의 사진을 볼 때 우리는 막연하게나마 그 사진이 사진을 찍은 사람의 무한히 많은 시각들 가운데서 특별히 선택된 것이라는 사실을 의식하게 된다. 이것은 심지어 매우 일상적인 가족 스냅 사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사진가의 보는 방식은 주제 선택에 반영되어 있다. 화가의 보는 방식은 캔버스 또는 종이 위에 그가 그려 놓은 것에 의해 재구성된다. 그러나, 비록 모든 이미지가 하나의 보는 방식을 구현하고 있긴 해도, 어떤 이미지를 보고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것은 각자의 보는 방식에 달려 있다.
한 이미지는 X라는 사람이 Y라는 대상을 어떻게 보았는지에 대한 기록이 된다.
이미지는 문학보다 더 정확하고 풍부하다.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미술의 표현적이고 상상적인 성격을 부정하고 단지 자료적으로만 보려는 것은 아니다. 작품의 상상적 차원이 풍부하면 할수록, 그것을 만든 예술가의 가시적 세계에 대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가능성은 더 커진다.
우리가 현재를 아주 분명하게 볼 수 있다면, 우리는 과거에 대해 올바른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한 이미지의 의미는 바로 그 옆에, 또는 바로 그 다음에 무엇이 오느냐에 따라서 변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미지가 간직한 권위는 그것이 등장하는 전체에 배분된다.
이미지의 새로운 언어를 다르게 사용할 수 있다면, 이를 통해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다. 그 새로운 언어를 통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의 경험들을 더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말 이전에 보는 행위가 있다.) 이때 경험이란 개인적 경험뿐 아니라, 과거에 대한 우리의 관계라는 본질적인 역사적 경험을 말한다. 즉, 우리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경험, 우리 자신이 능동적인 주체가 될 수 있는 그런 역사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경험 말이다.
스스로의 과거와 단절된 개인이나 계급은 역사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 있는 개인이나 계급에 비해, 선택이나 행동을 함에 있어 훨씬 더 자유롭다. 바로 그 점이 과거의 예술 전체가 이제 정치적 문제가 된 이유 - 단 하나의 이유 - 이다.
광고란 어떤 대상이나 사물에 대한 것이 아니고, 인간의, 사회적인 관계에 대한 것이다. 광고가 약속하는 것은 쾌락이 아니라 행복이다. 즉 다른 사람들에 의해 외부적으로 판단되는 행복이다. 행복이 곧 매력(glamour)인 것이다.
왜 광고는 이렇게 유화의 시각적인 언어에 깊게 의존하게 되었을까. 광고는 소비사회의 문화다. 광고는 이미지를 통해 바로 이 소비사회가 스스로에 대해 갖는 신념을 선전한다. 이 이미지들이 유화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유화란 무엇보다도 사유 재산에 대한 찬양이었다. 그것은 당신이 소유한 것들이 곧 당신이라는 원리에서 나온 미술형식이다.
그러나 이같은 언어로서의 연관성에도 불구하고 광고의 기능은 유화의 기능과는 꽤 다르다. 광고를 보는 구매자와 세계와의 관계는, 유화를 소유한 사람과 세계와의 관계와는 아주 다르다.
유화는 소유주가 자신의 소유물들과 생활방식을 통해 이미 향유하고 있던 무언가를 보여 준다. 그리고 그 자신이 가치있는 인물이라는 느낌을 더욱 확고하게 갖도록 한다. 유화는 기존의 자기 자신이 좀 더 잘난 존재라고 느끼도록 해 준다. 그것은 사실들, 즉 그의 생활의 실제에서 시작되었다. 그림은 그가 실제로 살고 있던 저택의 내부를 꾸며주는 것이었다.
광고의 목적은 광고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딘가 자기의 현재 생활방식이 만족스럽지 못한 느낌을 갖도록 만드는 데 있다. 사회의 일반적 생활방식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사회 안에서의 자신의 개인적 생활방식에 대해 불만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다. 광고에서는, 만일 그가 광고하는 물품을 구입한다면 그의 생활이 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얘기한다. 광고는 그의 현재 상태가 아닌, 그보다 더 나은 다른 상태를 제시한다.
모든 광고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에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돈이 전부이고, 돈을 벌어야 불안감이 사라진다.
광고는 “만일 당신이 아무것도 갖지 못한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될 수 없다”라는 두려움을 유발시키고 이를 이용한다.
돈은 곧 삶이다. 돈이 없으면 굶어 죽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또한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의 생활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은 바로 자본에서 생겨난다는 의미도 아니다. 단지 돈이 모든 인간 능력의 상징, 열쇠가 되고 있다는 의미다. 돈을 쓰는 능력이란 곧 사는 능력이다. 광고의 선전에 따르면, 돈을 쓰는 능력을 잃으면 문자 그대로 체면이 서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 능력이 있어야 사랑받을 수 있게 된다.
광고에 의하면 현재란 불충분하다고 단정적으로 얘기된다. 유화는 영원히 남는 기록이라고 생각되어 왔다. 그림이 그 소유자에게 주는 기쁨 중 하나는 그것이 자신의 현재 이미지를 미래의 후손에게 전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유화는 자연히 현재 시제로 그려져 있다. 화가는 실제에서건 혹은 상상에서건 그가 현재 눈으로 보는 것을 그렸다. 반면에 순간적인 쓰임새 때문에 만들어진 광고의 이미지는 미래 시제만을 사용할 뿐이다. 이것으로 당신은 장차 이성의 인기를 한 몸에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당신의 관계는 이제 한결 행복하고 빛나는 것이 될 것이다 등등.
광고는 원칙적으로, 그 광고가 팔려고 하는 특별한 상품의 기능을 통해 딴 사람으로 변신하려는 기대를 갖고 있는 노동자 계층에게 호소한다. (신데렐라) 중류층에게 광고는, 그러한 상품들을 구입하면 전체적으로 조화가 잘 된 분위기를 통한 상호관계의 개선을 약속한다. (요술 궁전)
광고는 미래 시제로 얘기하지만, 그 미래의 달성은 끊임없이 연기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광고가 그 영향력을 미칠 수 있으리라고 여겨질 만큼 믿음직하게 보이게 되는 것일까. 광고의 진실성이란 광고가 내건 약속을 충실히 이행했는가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광고가 주는 환상이 그 광고를 보는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품는 환상에 얼마나 적절하게 들어맞느냐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광고는 본질적으로 현실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백일몽에 적용된다.
광고가 실제로 제공하는 것과 광고가 약속하는 미래 사이의 간극은, 광고를 보는 물건을 사는 사람 자신이 느끼는 현재의 처지와 그가 되고 싶어 하는 처지 사이에 벌어진 간극과 일치한다. 그 두 간극은 하나가 된다. 그러나 실제 행동과 생생한 경험에 의해서 다리고 놓여져 하나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간극은 매혹적인 백일몽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흔히 노동조건에 의해 또다시 강화된다. 의미 없는 노동시간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끝없는 현재는 꿈속의 미래에 의해서 ‘상쇄돼 버린다.’ 이 미래의 꿈 속에서 노동하는 순간의 피동성은 상상적인 행동에 의해 대치된다. 백일몽 속에서 피동적인 남녀 노동자는 능동적인 소비자로 바뀐다. 노동하는 자아는 소비하는 자아를 선망하는 것이다.
세상에 똑같은 꿈이란 없다. 어떤 것들은 순간적이고 어떤 것들은 지속적이다. 꿈이란 언제나 꿈꾸는 사람의 개인적인 것이다. 광고는 꿈을 제조해내지 않는다. 광고가 하는 일은 단지 우리 각자에게, 우리는 아직 남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지 않고 있지만 장차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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