훨씬 더 많은 사람이 경제적으로 궁핍한 시절에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있었는데, 평균적인 부가 늘어나고 경제적 양극화 심해지면서 점점 사라져 가는 말이 되었다.
 
환경의 차이가 능력이나 실력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어서일까?
 
과거의 여성들이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갖지 못해서 역사적인 위인, 저술가, 철학자, 과학자들이 남성에 편중된 것과도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본문발췌]
 
그동안에는 신문사에 잡다한 일들을 구걸하고, 여기저기서 당나귀 쑈나 결혼식에 관한 소식을 기고하며 생계를 이었습니다. 편지 봉투에 주소를 쓰고 노부인들에게 읽어주고 조화를 만들고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알파벳을 가르치기도 하며 몇 파운드씩 벌었지요. 1918년 이전에는 여성이 가질 수 있었던 직업이 주로 이런 일이었거든요. 이런 일이 얼마나 고된지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요. 여러분도 아마 이런 일을 하는 다른 여자들을 알고 있을 테니까요. 또 여러분도 경험이 있을 테니 그렇게 번 돈으로 생활을 꾸리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하지만 여전히 그보다 더 큰 고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지난날 내 안에 키워온 두려움과 비통함이라는 독이었습니다. 우선 언제나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 늘 그래야 했던 건 아니지만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고 위험을 감수하기에는 이해관계가 너무 커서 노예처럼 비위를 맞추고 아양을 떨며 그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드러내지 않으면 죽는 것과 다를 바 없던 재능(하잘것없지만 당사자에게는 소중한)이 소멸하고 그와 함께 내 자신, 내 영혼도 파괴당한다는 생각, 이 모든 것이 꽃피는 봄날을 갉아먹고 나무속을 좀먹는 녹처럼 변했지요. 




<제인 에어> 12장을 펼치자 “나를 비난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 비난해도 좋다”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샬럿 브론테를 비난하는 것일까요? 나는 의아했습니다. 그리고 페어펙스 부인이 젤리는 만드는 동안 제인 에어가 지붕으로 올라가 저 멀리 펼쳐진 들판을 바라보곤 했다는 구절을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제인 에어는 갈망합니다(제인 에어가 비난받은 이유는 이 때문이었지요). “나는 경계를 넘어 바라볼 수 있는 시력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듣기는 했지만 본 적 없는 분주한 세상과 활기로 가득 찬 도시와 지역들까지 볼 수 있기를 갈망했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실제적인 경험을 더 많이 쌓고 싶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더 많이 교류하고, 이곳에서 만날 수 없는 여러 성격의 사람들과 친분을 나누고 싶었다. 페어펙스 부인의 장점과 아델라의 좋은 점을 높이 평가하지만, 나는 그와 다른 더 생기 있는 선량함이 있다고 믿었고, 내가 받는 것들을 직접 보고 싶었다.”



그녀에게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를 주고, 마음속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해주자고, 그리고 지금 쓰는 글은 반쯤 덜어내도 내버려두자고요. 그러면 그녀는 머지않아 더 나은 책을 쓸 거라고 말입니다. 나는 메리 카마이클이 쓴 <생의 모험>을 서가 맨 끝에 꽂으며 말했습니다. 100년 뒤에 그녀는 시인이 될 거라고요.

1년에 500파운드라는 돈은 곧 깊이 생각하는 힘이고, 자물쇠가 달린 방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라는 상징적인 해석의 여지를 허용한다 하더라도, 여러분은 여전히 마음으로 그런 것들을 극복해야 하고 위대한 시인들은 흔히 가난했다고 말하겠지요.



우리가 말로는 민주주의를 떠들어대지만, 실제로 영국의 가난한 아이가 속박을 벗어나 지적 자유를 탐험하고 그 자산을 바탕으로 위대한 작품을 낳을 가망이 없다는 건 아테네 노예의 자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가난한 시인들은 근래뿐 아니라 과거 200년 동안 바늘구멍 만큼의 기회도 얻지 못했다. …. 영국의 가난한 아이가 속박을 벗어나 지적 자유를 탐험하고 그 자산을 바탕으로 위대한 작품을 낳을 가망이 없다는 건 아테네 노예의 자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 바로 그것입니다.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에 달려 있지요. 시는 지적 자유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여성은 언제나 가난했습니다. 고작 200년 동안 아니라 태초부터 그랬습니다. 여성은 아테네 노예의 자식들보다도 지적 자유가 없었지요. 그러므로 여성은 시를 쓸 수 있는 바늘구멍만큼의 기회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돈과 자기만의 방을 그토록 강조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과거 여성들,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다면 좋았을 그 여성들의 노고 덕분에 그리고 공교롭게도 두 번의 전쟁 즉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을 거실 밖으로 불러낸 크림 전쟁과 60여 년 뒤 평범한 여성들에게도 참전의 문을 열었던 1차 세계대전 덕분에, 이런 악폐는 계속 나아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사소한 주제든 거창한 주제든 주저하지 말고 모든 종류의 책을 쓰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무슨 수를 쓰든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 여행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갖고, 세계의 미래나 과거를 사색하고, 책을 상상하며 길모퉁이를 배회하고, 생각의 낚싯줄을 강 속에 깊이 드리울 만큼 충분한 돈을 갖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을 소설에만 한정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여러분이 나를 즐겁게 해주고 싶다면 (그리고 나와 비슷한 사람이 수천 명은 있지요), 여행과 모험, 연구와 학술, 역사와 전기, 비평과 철학, 과학에 대한 책들을 쓸 겁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여러분은 틀림없이 소설의 기법에 기여하게 될 겁니다. 책들은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니까요. 소설은 시와 철학과 가까이 붙어 있을수록 더 좋습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우리로서는 그 본질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형체 속에 머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 실재의 손길이 닿기만 하면, 그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하루의 껍질을 울타리 너머로 던져버린 뒤 남는 것이고, 지난 시간과 우리의 사랑과 증오가 남기는 것이기도 합니다. 내 생각에 작가는 살면서 이 실재를 마주해야 할 일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습니다. 실재를 찾고 잘 모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작가가 해야 할 일이지요. … 따라서 내가 여러분에게 돈을 벌고 자기만의 방을 가지라고 당부하는 뜻은 실재를 마주하는 활기찬 삶을, 활기차 보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문하는 것입니다. 그런 삶을 누군가에게 전해줄 수 있든 없든 말이지요.



우리가 앞으로 100년 남짓 더 살면서(개개인으로서 각자의 소소한 삶이 아니라 진정한 삶으로서 공동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1년에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을 가진다면, 자유로운 습성과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정확하게 쓸 수 있는 용기를 지닌다면, 공용 거실을 잠시 벗어나 인간을 늘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실재와 관련해서 본다면, 그리고 하늘도 나무도 그 밖의 무엇이든 그 자체로 볼 수 있다면, 어떤 인간도 시야를 가로막아서는 안 되므로 밀턴의 악령을 넘어서서 볼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메달릴 팔이 없으므로 홀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관계를 맺는 세계는 남자와 여자의 세계일 뿐 아니라 실재의 세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마주한다면, 그때 기회가 찾아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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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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