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불편함도 감수하고,
가까운 길도 멀리 돌아가 보는 여유,
이런 여행을 통해 다른 삶에 대한 다양한 경험, 생각의 깊이를 더한다.
[본문발췌]
<그늘에 대하여>
또 어떤 이는, 어두운 광선으로 치장된 아름다움은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 동양인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 그늘을 만들기 시작하고 미를 창조하는 것이다. “긁어모아 묶으면 잡목의 암자가 되고, 풀어놓으면 원래의 들판이 되었구나”라는 옛 노래가 있는데, 아무튼 우리의 사색법은 그런식이므로, 미는 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체와 물체가 만들어내는 그늘의 무늬, 명암에 있다고 생각한다. 야광구슬도 어둠 속에 두면 광채를 발하지만, 밝은 대낮에 드러내면 보석의 매력을 잃는 것처럼, 그늘의 작용을 벗어나서는 미가 없다는 생각이다.
나는 우리가 이미 잃어 가고 있는 그늘의 세계를 오로지 문학의 영역에서라도 되불러 보고 싶다. 문학이라는 전당의 처마를 깊게 하고, 그 벽을 어둡게 하고, 지나치게 밝아 보이는 것은 어둠 속으로 밀어 넣고, 쓸데없는 실내장식을 떼 내고 싶다. 어느 집이나 모두 그런 것이 아닌, 집 한 채 정도만이라도 그런 집이 있었으면 좋을 것이다. 자, 어떤 상태가 되는지, 시험 삼아 전등을 꺼 보는 것이다.
<여행>
물론 그런 곳에 있는 산은 명산도 아니기에, 봉우리의 높이에서나 골짜기의 깊이에서, 전망의 웅대함 풍광의 수려함에서, 알프스 지방의 산들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지만, 산은 높아서 귀한 것이 아니라 인간내와 도시내가 없는 것을 귀하게 여기면, 그런 일반적인 산과 계곡 쪽이 오히려 산 같은 멋이 있고, 속세의 먼지투어싱인 마음이나 정신을 씻어 줄지 모른다. 어쨌거나 이런 일은 산의 경우에 그치지 않기에, 예를 들면 앞에 말한 반딧불이 명소, 벚꽃이나 매화의 명소, 온천, 해수욕장 등, 모든 천하에 잘 알려져 있는 일류의 지역은 모두 다소나마 망쳐져 있다 체념하고, 이류 삼류의 장소를 찾아다니는 편이 훨씬 여행이나 유람의 목적에 맞는 것이다.
야마토 둘러보기 따위로 조급한 마음에 여기저기를 보고 걷는 것보다도, 결국 이 기차 안에서의 몇 시간, 게다가 무한의 유구를 느끼는 몇 시간의 기분이 제일이고, 실로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맛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리라. 그러나 정말 조금의 시간과 차비를 아까워해서, 사람들이 전차로만 쇄도하는 것이 나로서는 이상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좀더 빠르게’가 시대의 유행이 되어 있으므로, 모르는 사이에 일반 민중이 시간에 대해서 인내력을 잃어, 가만히 한 가지 세상사에 마음을 진정시켜 몰두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 것일까? 그러면 그런 안정을 되찾는 것도 하나의 정신 수양이라고 생각하고, 한번 그 기차에 타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나는 생각하길, 단시간에 가능한 멀리 달리는 스피드 여행에 거슬러서, 좁은 범위를 가능한 길게 걸려서 보고 돌아오는 여행 방식을 좀 장려해 보면 어떨까. 그런 식으로 걷다가, 지금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친 곳에서 의외의 흥미를 찾아낸 적이 있다. 온통 걷기만 하자는 뜻은 아니지만, 가까운 곳을 귀찮다 해서 자동차로 달리는 버릇이 가장 나쁘다. 그러면 여행의 정취라고 하는 것이 모두 없어지고, 어디를 지나도 아무것도 인상에 남지 않는다.
우리로서는, 귀여운 아이는 여행을 시키라고 한 그런 옛 생각을 버릴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여행을 떠난 것을 기회로, 맛있는 음식이라든지 늦잠이라든지 운동 부족이라든지, 그 밖의 나쁜 습관을 교정하는, 적어도 여행하는 기간만이라도 사치를 하지 않도록 해서, 곤란한 경우를 견디는 습관을 키워야 한다. 나는 직업상 기분 전환이나 환경 변화를 찾아서, 때때로 스스로를 일상생활의 연쇄로부터 잘라 버릴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런 목적으로 여행을 떠날 때는 가끔 옷차림이나 이름을 바꾸서, 기차나 증기선을 삼등칸으로 한다든지 싼 여관에 묵는다든지 하는 적이 있다. 실제 나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은 시골에 가면 선전도구로 쓰인다든지 신문기자나 문학청년에게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인다든지 할 두려움이 있어서, 그 정도로 조심하지 않으면 고독한 여행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이름이나 차림새를 바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넓은 세상에 나와 본다고 하는 것은 그것만으로 하나의 흥밋거리이다. 원래 나는 쑥스러움을 잘 타는 탓인지, 소설가라 하는 것이 알려져 선생 취급을 받기라도 하면, 왠지 쑥스러워져서 긴장하고 몸이 굳어 버리는 버릇이 있다. 아울러 이름을 바꿔 떠나면 가는 곳마다 자유롭게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고, 생각지 않던 길동무를 만나기도 한다. …. 때때로 그런 삼등칸 여행을 시험 삼아 다른 세계를 보는 일은 굳이 소설가만 아니라, 정치인에게도 실업가에게도 종교인에게도 크게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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