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짐,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
방랑에 더 필요한 것은 없다.
[본문발췌]
인도 여행 준비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두 가지였습니다. 버리기. 그리고 준비하지 않기. 내 경우엔 말이지요. 학교. 아파트. 가구. 책. 버려도 지장 없는 건 죄다 버리거나 팔아치웠는데, 그랬더니 뜻밖에 내가 가진 것들 중에 절실히 필요한 건 칫솔 정도라는 걸 알겠더군요. 개운했어요.
준비하지 않는다는 건, 정보를 일절 들이지 않는 거였어요. 여행지에 관한 정보말입니다. 정보가 많을수록 안심은 커지지만 실상은 멀어지지요. 열 사람이 똑같은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넣고 ‘자유의 여신상’을 보았을 경우, 다 똑같아 보일 수밖에 없어요. 요즘 같은 정보화 사회의 여행은 이 병이 무섭도록 깊습니다. 오히려 실상을 보는 게 두려운 건지. 실상이 자신을 침범하지 않도록 정보로 보호막을 치는 건지도 모르지요.
더없이 시시한 녀석부터 차원 높은 사람까지, 오히려 여행 중에 얼마나 다양하게 만났느냐가 중요하지요. 그것이 여행의 풍성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돌아가는 것…. 원자핵 주위의 전자…. 태양 주위의 혹성…. 그리고 죽은 자의 주위를 도는 흰 옷의 소년…. 예전에 보았던 열반 탑을 도는 티베트인….
돈다는 것은 중심을 만드는 것이고 또한 중심에서 달아나는 것이다. 이 둘은 모순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지상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 올바른 운동처럼 여겨진다. 나는 이 ‘돈다’는, 인간이 생존 속에서 벗어나기 힘든 운동 형식을 또다시 이 갠지스 강가에서 보고 있다.
탄생-교합-사멸이라는 샐물이 밟아가는 단순한 도식. 인도의 백성은 우리 이상으로 이 세 가지 숙인(지난 세상에서 지은 업인)을 중시한다. 대부분의 힌두교도들은 머릿속에 탄생을 꼭짓점으로 하는 삼각형의 도식을 가지고 있다. 요컨대 탄생-교합-사멸-탄생으로 연화하며 이 세가 숙인은 그들의 머릿속에서 끝없이 돌고 있다. 죽음은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하는 슬퍼해야 할 그리고 벗어나기 힘든 생물의 숙명이다. 그러나 많은 인도인들은 죽음을 애도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화려한 다음 세상, 즉 내세로의 출발이라고 여긴다.
갠지스… 무릇 갠지스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제 아무리 대단하고 제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모두 흘러간다.
나는 ‘여행’을 계속했다. …. 다분히 어리석은 여행이었다. 때로 그것은 우스꽝스런 발걸음이기도 했다.
걸을 때마다 나 자신과 내가 배워온 세계의 허위가 보였다.
그러나 나는 다른 좋은 것도 보았다.
거대한 바냔나무에 깃들인 숱한 삶을 보았다.
그 뒤로 솟아오르는 거대한 비구름을 보았다.
인간들에게 덤벼드는 사나운 코끼리를 보았다.
‘코끼리’를 정복한 기품 있는 소년을 보았다.
코끼리와 소년을 감싸 안은 높다란 ‘숲’을 보았다.
세계는 좋았다. 대지와 바람은 거칠었다.
꽃과 나비는 아름다웠다.
나는 걸었다.
만나는 사람들은 슬프도록 못나고 어리석었다.
만나는 사람들은 비참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우스꽝스러웠다.
만나는 사람들은 경쾌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화려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고귀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거칠었다.
세계는 좋았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여행’은 무언의 바이블이었다.
‘자연’은 도덕이었다.
‘침묵’은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침묵에서 나온 ‘말’이 나를 사로잡았다.
좋게도 나쁘게도, 모든 것은 좋았다.
나는 모든 것을 관찰했다. ‘실實’을 ‘베꼈다’.
그리고 내 몸에 그것을 옮겨 적어보았다.
하루하루는 오늘의 기억을 지워버리는 어둠과 침묵 속으로 가라앉고, 그리고 아침은 언제나 내 앞에 불사신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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