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성장에 따른 물질적 풍요, 기술 발전을 통한 편리함 속에서 잘 살고 있는가?

 

풍요함 대신 우리의 주체성을 내주고 사회의 도구가 되어 가는 건 아닌지, 편리함에 속아 우리 삶이 통채로 누군가에게 감시당하는 건 아닌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본문 발췌]

 

경제 성장은 지구의 생태계를 구하지는 못할 것이다. 오히려 정반대로 경제 성장이야말로 생태학적 위기의 원인이다. 경제 성장은 기술적 파괴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경제 성장 자체가 점점 위력을 더해가는 파괴적 기술의 발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AI가 보유한 비인간 능력 중에 특별히 중요한 두 가지는 연결성과 업데이트 가능성이다.

 

사회 안전망 없이 쥐꼬리만한 경제적 평등만 가지고서는 자유도 의미가 없다. 하지만 빅데이터 알고리즘은 자유를 없앨 수 있는 것과 같이 유례없는 최고의 불평등 사회를 만들 수도 있다. 모든 부와 권력은 극소수 엘리트의 손에 집중되는 반면, 대다수 사람들은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나쁜 처지에 놓일 수 있다. 바로 사회와의 관련성을 잃는 것이다.

 

데이터를 손에 넣기 위한 경주는 이미 시작됐다. 선두 주자는 구글과 페이스북, 바이두, 텐센트 같은 데이터 거인들이다. 지금까지 이 거인들의 다수가 채택해온 사업 모델은 '주의 장사꾼'처럼 보인다. 무료 정보와 서비스, 오락물을 제공해 우리의 주의를 끈 다음 그것을 광고주들에게 되판다. 하지만 데이터 거인들이 추구하는 목표는 이전의 그 어떤 주의 장사꾼들보다 훨씬 높다. 이들의 진짜 사업은 결코 광고를 파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주의를 사로잡아 우리에 관한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모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그 어떤 광고 수익보다 훨씬 가치가 크다. 그러니까 우리는 고객이 아니라 그들의 생산품인 것이다.

 

인간 개인이 세상에 관해 아는 것은 창피할 정도로 적다. 더욱이 역사가 진행돼가면서 개인이 아는 것은 점점 더 줄어들게 되었다. 석기시대의 수렵 채집인은 자기 옷을 만들고 불을 붙이고 토끼를 사냥하고 사자를 피하는 법을 알았다. 오늘날 우리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개인의 차원에서 보면 실제로 우리가 아는 것은 훨씬 적다.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 거의 전부를 다른 사람의 전문성에 의존해서 얻는다.

 

진심으로 진실을 바란다면 권력의 블랙홀을 피하고, 중심에서 떨어진 주변부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며 오랜 시간을 허비할 수 있어야 한다. 혁명적인 지식은 권력의 중심에서 출현하는 경우가 드물다. 왜냐하면 중심은 언제나 존재하는 지식을 토대로 구축되기 때문이다. 구질서의 수호자가 권력의 중심에 다가올 수 있는 자를 결정하는데, 이때 전통에서 벗어난 파괴적인 사상을 가진 자는 걸러내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쓸데없는 지식도 걸러낸다.

 

21세기의 우리 주변은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로 넘쳐난다. 이런 세상에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전수해야 할 교육 내용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은 바로 '더 많은 정보'다. 정보는 이미 학생들에게 차고 넘친다.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이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의 차이를 식별하는 능력이며, 무엇보다 수많은 정보 조각들을 조합해서 세상에 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다.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하며, 지속적인 본질이란 없으며, 완전히 만족스러운 것도 없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91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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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예측’은 신, 자연의 영역이었다. 샤먼에 의해 신탁, 복점, 예언을 받거나 자연과 사회의 이치를 헤아려 해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해 보는 것이다.

 

빅 데이터의 시대, 초고속, 초고용량, 초저지연성과 초연결성을 앞세운 5G 시대에 “예측”은 과학기술의 영역이 되었고, 기술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超’ 시대가 도래했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 그리고 생각 너머 자연과 우주의 한계는 아직 그 끝을 모르고, 모호하고 명확하지 않은 목표에 대해서는 사람의 의사결정을 필요로 하고 때로는 신이나 자연의 섭리에 맡기기도 한다.

 

우리는 괴테가 파우스트의 입을 빌어 했던 말, “사람들이 흔히 똑똑하다고 불리는 것은 옹졸함이나 허영심인 경우가 많답니다. 겸손과 겸양은 자애롭게 베푸는 자연의 최고의 선물...”에 담긴 겸손함으로 세상의 이치를 탐구하고 해석하고 이해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다른 사람이 소유한 것을 가지려고 합니다. 누군가가 자기 앞에 서면 뭐가 되었든 그 사람보다 앞서고 싶어하지요. 그런 식으로 전진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살다가, 어느 날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 사이에도 저 꼭대기에 있는 사람은 늘 군림하며 내가 처한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는 현실을 깨닫고 좌절하게 됩니다.” - 다니엘 코엔, <기술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가>

 

“명확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로봇이나 컴퓨터가 우리 인간보다 훨씬 효과적일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승리할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일하는 이유는 단순히 특정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 자체로 최종 완제품입니다. 그래서 목표가 명확하지 않고 모호할 때는 인간이 필요합니다.” - 다니엘 코엔, <기술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가>

 

“미국의 엘리트들은 사회 불평등에 관심을 갖는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나, 정작 계급에 대한 이해는 낮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출발점이 다르다는 점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자신들이 전문직이나 관리직에 있는 이유는 본인이 똑똑하기 때문이라고 믿거든요. 하지만 사실은 다릅니다. 그들이 진정 계급 문제를 이해하려면, 본인이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3루에 서 있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신이 3루타를 쳐서 3루까지 달린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고, 따라서 날 때부터 타석에 서보지도 못한 사람에 비하면 홈베이스를 밟을 확률이 훨씬 높다는 사실을 말이죠.” - 조앤 윌리엄스, <무엇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가>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518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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