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을 버리고, 여유를 갖고 살아가는 지혜와 함께.... 인생 시간을 저당잡거나 저축하려고 하지 말라는 법륜 스님이 주시는 말씀! 나중이 아니라, 지금 행복하자.
[본문발췌]
우리가 나이 들어가면서 후회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불행한 것은 세상에서 추구하는 가치에 휘둘려 자기 중심을 잡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좋은 대학에 가야 하고,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더 높은 지위에 올라야 하고, 더 널리 이름을 알려야 하고... 숱한 욕망에 사로잡혀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을 허투루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돌아보세요. 죽음의 순간은 언제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오늘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 마음을 잃지 않아야 내일 죽어도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추구하는 성공과 상관없이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갈 때 그것이 바로 좋은 인생입니다. 늘 오늘의 삶이 만족스러우면 그게 곧 행복한 인생이지요.
진정으로 성공적인 인생, 좋은 인생이란 어떤 걸까요. 세상에서 추구하는 성공과 상관없이 자기가 만족하면 좋은 인생입니다. 세상의 성공 기준에 나를 맞추고 욕구가 충족된다고 행복해지는게 아닙니다. 오히려 욕구를 버리거나 기대를 낮추는 만큼 기쁨과 만족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오늘 하루를 허투로 보내지만 죽음의 순간은 언제 올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오늘을 마지막처럼 최선을 다하다 보면 내일 죽어도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가 있습니다.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변하는 것을 봤을 때 괴로움이 생기지 않습니다. 마치 바다에서 파도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 생성되어 존재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소멸한다는 걸 깨쳐서 집착을 놓아버리면, 생겨난다고 기뻐할 일도 없고 사라진다고 괴로워할 일도 없어집니다. 그것을 직시하면 두려움도 아쉬움도 없을 텐데, 부분적으로 인식하니까 없어졌다고 생각해서 아쉬움이 생기고, 없어질까봐 두려움이 생기는 겁니다. 그러나 늙음도 죽음도 단지 변화일뿐임을 알고 나면,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갈등은 자기를 살피는 데서 출발해야 하는데, 상대가 먼저 바뀌기를 기대하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분란만 커지고, 갈등만 깊어지게 됩니다. 너그러워지고 이해심이 깊어지고 성숙해지는 것은 바로 내가, 내 인생이 그렇게 변화하는 겁니다. 그래서 인연의 매듭을 푸는 것은 상대를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고 나를 바꾸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소박하게 살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해서 있던 돈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의 여유가 생깁니다. 반면에 많이 먹고, 많이 입고, 많이 쓰겠다는 마음을 내면 돈이 많은데도 부족함을 느낍니다. 부족함을 느끼면 가난한 자가 되고, 여유가 있으면 부자가 되는 거예요.
세상 사람은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내 관점을, 상대는 상대의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런 가치관을 갖고 있지만 저 사람은 저런 가치관을 갖고 있고, 나는 이렇게 느끼지만 저 사람은 저렇게 느끼고, 나는 이런 스타일로 일하지만 저 사람은 저런 스타일로 일합니다. 이건 다만 다를 뿐이에요. 직장에서 다양한 사람이 모여 일할 때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그냥 '저 사람은 저렇구나.'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겁니다.
사람이 기쁨을 얻는 데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가 원해서 일을 할 때 재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는 있는데 지나놓고 보면 좀 무의미할 때가 있습니다. 젊을 때 술 먹고 매일 놀 때는 참 재밌는데, 한 10년 지나서 돌아보면 아무것도 한 게 없고 낭비한 것같이 느껴집니다. 우리가 술집에 가서 막 떠들고 웃고 재미있게 놀았는데 문을 열고 나오면 뭔가 허전합니다. 남는 게 없고 유익함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인생에서 너무 재미만 좇다보면 나중에 허전함이라는 후회가 뒤따라올 위험이 있다는 겁니다. 사람은 또 남에게 뭔가 쓰임이 있었을 때, 어떤 유익한 일을 했을 때 기쁨을 느낍니다. 그때는 굉장히 힘들었지만 되돌아보면 그때 한 일에 대해서 자부심이 생깁니다. 참 의미가 있었다, 참 유익했다, 참 잘 했다, 힘들었지만 참 잘했다, 싶은 게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주로 재미만 갖고 인생의 즐거움을 삼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뒤에 후회나 허전함, 공허감 같은 것이 생기게 됩니다. 한편 또 너무 삶의 의미 같은 것만 찾으면 현재의 삶이 힘들어지고, 스트레스도 많아져 지치기 쉽습니다. 이 두 가지가 적절하게 어우러지면 가장 좋은데, 바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곧 자기 일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가장 조화로운 상태가 되는데, 우리는 보통 이 둘이 분리된 삶을 삽니다.
우리의 인생도 나고 자라고 나이 들어가는데, 잘 물든 단풍처럼 늙어가면 나이 듦이 결코 서글프지 않습니다. 자연이 변화하듯 편안하게 늙어가면 그 인생에는 이미 평화로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잘 물든 단풍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나침'을 경계해야 합니다. 과욕을 부리지 않아야 하는데, 나이 들어 과한 것은 항상 부작용이 따릅니다. 젊을 때는 무리해도 금방 회복이 되지만 나이 들어서 지나치면 이겨내지를 못합니다. 과식, 과음, 과로를 하면 안 됩니다. 나이 들면 지나치면 안 되고, 젊을 때처럼 욕심을 내면 안 됩니다. 젊을 때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면 "젊은이가 용기가 있고 의욕이 있다"고 말합니다. 또 큰 욕심을 내어서 무엇을 하려 하면 세상사람들이 "포부가 크다"고 말해줍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 생각을 하면 노욕이라고 하는데, 좀 추하게 욕심을 부린다는 뜻이거든요. 그리고 젊을 때는 격렬하게 주장해도 결과가 좋은데, 나이가 들면 어떤 주장도 격렬하게 하기보다 평화적으로 설득하고 점잖음을 유지해야 나도 좋고 세상에도 이익이 됩니다. 나이가 들면 자꾸 일을 벌이고 계획을 세워서 무언가를 하려고 할 게 아니라 정리를 해나가야 합니다. 인생을 포기한다는 게 아니고 열매를 맺는 과정이기 때문에, 잔가지들을 정리하면서 잘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또한 나이 들어감을 한탄하거나, 나이를 인정하지 않고 젊어지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단풍처럼 물들어가는 나'를 차분하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욕심을 하나하나 내려놓을 수 있게 됩니다.
남에게 베풀면서도 베푼다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겁니다. <금강경>에 "보살은 일체 중생을 구제하되, 중생을 구제한다는 생각이 없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보살이 중생을 구한다는 생각을 갖는다면 괴로움이 생기고, 괴로움이 생긴다면 보살이라 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중생은 왜 자기 업에 끌려다닐까요. 중생은 베푼 것도 없이 받기만 바라고, 남을 이해하지 않고 이해 받기만을 바랍니다. 그렇게 늘 대상에 매여있기 때문에 주인으로 살지 못하고 노예로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보살은 바라는 바 없이 남을 돕기 때문에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상관이 없어요. 그렇듯 자유롭기 때문에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대가를 기대하지 않는 보살의 마음을 내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항상 자신의 마음을 살펴서 기대하고 바라는 바가 없는지를 보고, 그때그때 마음을 비워내서, 주는 것 자체로 행복해질 때 진정한 보시가 됩니다. 그럴 때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자유로워지고, 비로소 진정한 복으로 돌아옵니다.
우리의 삶이란 인생에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태도를 지니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흔히 운명론을 말하지만 그 운명도 내 자신이 만듭니다. 어떤 일이 내 생에 주어지는가가 운명이 아니라 그것에 어떻게 대처하고, 해결하느냐가 운명입니다. "하늘에서 보배의 비가 내리는데 중생은 다 제 그릇에 따라 양식을 얻어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법문을 듣고도 크게 얻어가는 사람도 있고 적게 얻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 때 그 덕은 다 자기 덕이라는 겁니다. 마음의 문을 연 사람은 기쁨을 얻고, 조금 열면 조금 얻고, 열지 못하면 얻지 못하는 거예요.
우리는 노후에 대해 막연히 불안해합니다. 글서 "행복한 노후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행복한 노후를 위해서'라는 건 없습니다. 지금 그냥 행복하면 되는 겁니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미끄러져서 한쪽 다리가 부러질 때 부러진 다리를 잡고 '아이고, 재수 없어. 법문까지 들었는데 다리가 부러지네.' 이렇게 생각하면 지금 기분이 나쁜 거고, 반대로 안 부러진 다리를 잡고 '오늘 두 개 다 부러질 수도 있었는데 법문 듣고 나서 다리 하나만 부러졌네.' 이렇게 생각하면 지금 기분이 좋습니다. 긍정적으로 보면 늘 행복한 겁니다. 행복한 노후라는 걸 따로 준비할 게 없어요. 행복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는 것은 한 번도 행복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흔히 행복하기 위해서 준비만 하다가 죽을 때까지 한 번도 행복해보지 못한 채 죽습니다. 그러니 준비할 것도 없어요. 바로 지금부터 행복해야 합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준비하지 말고, 오늘 당장 행복해야 합니다. 오늘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내일 행복할 수가 없고, 이생에서 행복하지 못하면 설령 저 생이 있다 해도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살면서 늘 불평불만인 사람은 천당에 가도 불평불만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극락에만 가면 행복할 것 같아도 막상 가보면 거기에서도 괴로울 수 있어요. 어디를 가도 저절로 행복해지는 데는 없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항상 현재의 자기 삶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일찍 일어나서 좋고, 참선할 수 있으면 참선할 수 있어서 좋고, 잘할 수 있으면 잘할 수 있어서 좋고, 밥 먹으면 밥 먹어서 좋습니다. 세상에는 지금 밥 못 먹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은데, 굶지 않고 밥 먹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잖아요. 이렇게 항상 자기 삶을 긍정적으로 봐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미 행복합니다. 자꾸 행복하겠다고 노력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행복하게 살겠다'는 생각좇 내려놓을 때, 바로 거기에 행복이 있습니다.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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