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통해 배우는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의 자유를 넘어 '가장 많은 다양성과 유연성을 지닌 정신'으로서의 정신적 자유!
[본문발췌]
낡은 것은 아무리 개량해도 혁신적인 것이 탄생할 수 없다. 슘페터 이전의 고전파 경제학에서는 생산 요소의 기본이 되는 '토지'와 '노동'. '자본'이 확대됨으로써 경제가 완만하게 발전한다고 생각했다. 바로 마셜의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대표되는 논리다. 그린데 슘페터의 이론은 이 생각과 정면으로 대립한다. 그는 비연속적으로 일어나는 혁신적 변화야말로 경제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을 "마차를 아무리 길게 연결시킨다고 해도 기차기 될 수는 없다"는 표현에 비유했다. 그는 '기업가'에 의한 '신결합'(이노베이션)이라는 개념을 등장시켰다. 신결합의 핵심은 다음의 다섯 가지다. 1) 새로운 재화의 생산, 2) 새로운 생산 방법의 도입, 3) 새로운 판로의 개척, 4) 원료나 반제품의 새로운 공급원 획득, 5) 새로운 조직의 실현. 창조적 파괴.
일반인들은 기업이 소비자의 욕구에 부응하면서 자신들의 번영을 지향한다는 일종의 '신화'를 믿고 있다. 그러나 실상 기업은 정부와 이익을 나눠 가지면서 가격, 심지어 소비자의 취향까지도 교묘하게 조종하고 있다. 이렇듯 신화와 실체 사이의 괴리야말로 불확실성의 상징이다.
리스먼은 <고독한 군중>에서 사회적 성격을 '전통 지향적', '내부 지향적', '타인 지향적'이라는 세 단계로 분류했다. 현대 사회는 타인 지향적 단계에 속하는데, 이는 출생률도 사망률도 저하된 고령화 사회로서, 사람들은 타인의 취미나 언동에 민감해져 항상 타인을 의식하면서 행동한다. 또 타인 지향적인 사람들은 정치적인 의견에는 흥미를 보이지만 적극적으로 정치에 관여하려 하지 않는다. 즉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경향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고독한 군중이란 바로 이러한 현대 대중사회 구성원의 특이한 성격 유형으로서 항상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그들로부터 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오르테가이가세트는 대중사회를 논한 수많은 연구자들 가운데 가장 통렬하게 대중사회를 비판했다. 그가 말하는 대중이란 '자신이 타인과 똑같다는 데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로, 신분이나 계급과는 상관이 없다. 그들은 자신이 평범한 사람인 줄 알고 있으며,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하고 의견이 다른 사람은 배제하려는 성향을 띤다.
알코올 중독, 정신병 .... 이러한 것 자체는 자살의 원인이 아니다. 커뮤니케이션의 빈도가 낮은 사람일수록 자살률이 높다.... 직업, 혼인 관계 등의 유대(커뮤니케이션)를 강화해 자살을 줄일 수 있다.
자유는 인간을 속박에서 구원하는 한편 고립과 무력감을 초래한다. 자유란 단순히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다. 사실은 '고독'과 표리일체의 개념인 것이다. 고정화된 생각도 정반대 방향에서 바라보면 새로운 생각이 탄생한다. 자유를 추구하면서도 한편으로 지배당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모순. '나는 자유로운 사회에서 살고 있다'라고 믿고 있더라도 실상 직장 또는 정치제도나 사회규범 등 각종 권위 시스템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안정되니 생활과 인생의 의미를 손에 넣기 위한 기반의 상실....
어느 사회나 조직이든 높은 자리에 오르면 오를수록 홀로 짊어져야 할 책임의 무게는 점점 더 무거워지기 마련이다. 책임감만 무거워지는 것은 아니다. 남보다 앞선 비전을 제시하면서 그들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부담감은 물론, 고민이나 괴로움이 있더라도 시시콜콜 이야기하며 공유할 수 없는 고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뛰어난 리더라면 조직과 자신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고 균형을 이루며 궁극의 목표를 향해 한 발자국씩 전진할 수 있어야 한다.
꾸미지 말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라. 그 어떤 것보다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바로 '사실'이다. 용기를 갖고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보여주면 주위 사람들도 그가 지닌 그 이상의 매력과 진실을 인정해준다.
사람을 움직이는 비결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 사람 스스로 움직이고 싶다는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논쟁으로 상대를 굴복시키고 억지로 움직이게 하려 해도 소용없다. 그런 경우 상대가 진심으로 수긍하려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에 기대한 만큼의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오히려 반감만 사게 될 뿐이다.
몽테뉴가 노래한 삶의 태도 = '정신적 자유인', 가장 아름다운 정신은 가장 많은 다양성과 유연성을 지닌 정신이다. 철학이란 어떻게 죽을까를 배우는 것이다. 기적은 우리가 자연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지 자연의 본질에 따라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여기저기에서 그것을 기다려야 하지 않겠는가? 죽음의 준비는 자유의 준비다.
행복하다고 싶다면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다 잘되기를 바라고 힘쓰라. 톨스토이는 '이성'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최고의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이성을 발달시키지 않는 사람은 인생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성에 따라 동물적인 자아를 부정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의미에서 자기 이외의 다른 사람의 행복을 빌 수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진실한 사랑'이다. 그리고 그 진실한 사랑을 얻었을 때 비로소 약육강식의 비참한 사회가 구제되고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도 해방된다고 말한다.
행복은 스스로 구하고 노력하는 자에게 찾아온다. 망설여진다면 일단 시작부터 해보는 것이 중요하므로, 고민만 하지 말고 일단 시작해보라. 너무 일만 하면 오래 계속하지 못하고, 너무 많이 쉬면 바보가 된다. 인생에서 고난이나 역경에 부딪힌다고 해도 피하지 말고 당당학 맞서라. 괴로움은 인간을 무너뜨릴 수도, 반대로 더 강하게 만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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