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북미 선진국들의 번영과 깨끗하고 정돈된 환경은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남아메리카, 태평양 섬들의 정복과 수탈, 희생의 결과물!
[본문발췌]
인간 집단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닮지 않은 자는 늘 증오의 대상이 되는 법.
조개를 줍고 있던 방드르디가 맑고 깨끗한 모래밭에서 하얗고 둥근 얼룩 모양의 조그마한 자갈을 주워 로빈슨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더니 손으로 달을 가리키며 로빈슨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말 좀 들어봐. 달이 하늘의 조약돌이야? 아니면 이 작은 조약돌이 모래의 달이야?"
그러고는 로빈슨이 이 별난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갑자기 방드르디가 뛰쳐나가더니 쏟아지는 비에 몸을 맡겼다. 그는 얼굴을 뒤로 젖히고 빗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로빈슨에게 다가와 말했다.
"자, 보라고. 모든 사물이 슬퍼서 울고 있어. 나무도 울고 바위도 울고 구름도 울고 있다고. 나도 그들과 함께 우는 거야. 우, 우, 우! 비는 섬과 세상의 모든 슬픔을 나타내지."
로빈슨도 방드르디의 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달과 조약돌, 눈물과 비처럼 별로 상관이 없는 사물들이 서로 헷갈릴만큼 닮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모호한 표현이긴 하지만 이 사물에서 저 사물로 옮겨갈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네 이름은 '디망슈'란다. 축제와 웃음과 놀이의 날이지. 그리고 나에게 너는 언제나 일요일의 아이일 거다."
이제 동굴이 폭발하고 로빈슨과 방드르디는 완전한 원시 자연 속에 놓이게 되었다. 이 세계에서 로빈슨은 방드르디보다 더 이상 우월하지 않다. 로빈슨이 섬에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문명 세계의 시간은 자연의 시간으로 돌아갔으며, 계획된 노동과 일은 놀이와 유희로 바뀌었다. 일에는 의무가 뒤따르고 놀이를 하는 데는 자발성만 있으면 된다. 로빈슨은 방드르디가 더 이상 지배와 복종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로빈슨은 방드르디를 지배하고 있다고 믿으면서도 사실은 그것이 불가능하고 자신에게는 큰 부담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인간관계는 지배와 복종의 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동등한 관계일 때 진정한 소통과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로빈슨의 후손들이 오늘날의 유럽인들이라면, 그들은 산업혁명과 전쟁, 과학기술의 발전 등이 자신들의 삶을 어떻게 피폐하게 만들었는지 깨닫고 자연에 동화되어 사는 삶, 친환경적인 삶을 실천하며 살아가려 한다. 반면 방드르디의 후손들일 수 도 있는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 국가의 주민들은 과거에는 자연과 동화되어 사는 삶을 살았다면, 이제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과 환경 파괴에 내몰리고 있다.
태평양의 외딴섬에 표류한 문명인 로빈슨 크루소와 자연과 동화되어 사는 자유분방한 야만인 방드르디.
대니얼 디포 이후의 로빈슨 크루소 이야기들 가운데 주제 면에서 가장 큰 혁신과 변화를 만들어낸 작품은 단연코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야생의 삶>이다. 그는 이 책에서 야만인 방드르디를 더 이상 노예가 아닌, 로빈슨과 평등한 관계로 끌어올리며 문명과 야만, 질서와 혼란, 이성과 본능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뒤흔드는 새로운 관점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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