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단순한 삶, 평상심을 유지하는 생활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한다.

 

 

[본문 발췌]

 

소유욕은 가지면 가질수록 자유를 잃는 정체 모를 욕구입니다. 호흡, 휴식, 수면, 음식, 배설처럼 본능에서 오는 욕구와 달리 이차적 욕구인 소유욕은 생명 유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자꾸만 물건을 갖고 싶어할까요? 타인과 비교해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대산하기 위해서? 집에 있는 물건을 차분히 살펴보는 일부터 시작해봅시다. 그 안에 숨은 당신의 진심을 알게 될 테니까요.

 

공간을 불필요한 물건으로 채우지 않으면, 그곳은 '여유'가 흘러갈 것입니다.

 

우리는 타인을 통해 자신을 알아갑니다. 이 세계에서는 누군가와 그 차이를 비교하면서 '나는 나'라는 인식이 생깁니다. 우리는 수많은 만남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인식하기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지요.

 

충만한 시간일수록 짧고, 지루할수록 길게 느껴집니다. 시간은 단순히 일정하게 지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사는 우리의 모습에 따라 짧아지기도 하고 길어지기도 합니다.

 

뇌는 의식하지 않으면 어제와 똑같은 하루를 살려고 합니다. 반대로 뇌는 혼란스러우면 질서를 추구해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은 회로를 연결하려고 합니다. 바로 그럴 때 영감이나 아이디어, 깨달음이 생깁니다. 뇌를 적당히 혼란스럽게 하는 비결은 늘 스스로 질문이 오늘을 새로운 모험으로 이끄는 문이 됩니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현대병은 '과잉'에서 옵니다.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마시고 너무 많이 숨을 쉬고(들이마시는 숨이 많으면 호흡이 얕아져서 몸이 긴장합니다), 또 너무 많은 정보에서 받는 심리적 스트레스도 있지요. 암(癌) 역시 한자로 '병질엄()에 물품(品)의 산(山)'이라고 쓰듯이 '과잉'이 일으키는 대표적인 병입니다. 다양한 현대병이나 일상적인 컨디션 저하는 생활 환경에서 옵니다. 표면적인 건강만 걱정하지 말고, 생활 전반에 걸친 심플라이프를 만들어봅시다.

 

단사리(斷捨離). 끊고, 버리고, 떠나라. 삶이 가벼워지는 방법

단(斷), 새로운 것들 (사는 것 등)을 끊고

사(捨), 지금 가지고 있는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고

리(離), 물건에 집착하는 마음을 멀리한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768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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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현재에 충실하며 다른 환경과 사람에 대한 수용성을 높이고 과정을 즐기며 더 많은 생각을 하지만 생각이 행동으로 표현되는, 소유와 집착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이다.

 

법정 스님의 글 중에 "시끄럽고 어지러운 세상 살이이기 때문에 때로는 맑고 고요하고 한적한 삶의 여백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여백을 통해서 시들해지기 쉬운 일상을 비춰봄으로써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보고 개선할 수 있다. 개선과 개혁이 없는 삶은 한낱 타성이고 습관에 지나지 않는다. 타성과 습관은 사람을 찌들게 하고 시들게 한다."고 했다. 

 

우리는 가끔 삶의 긍정적 변화의 시간으로서 여행, 그리고 인생의 쉼표를 잘 활용하기 위한 용기를 내야한다.

 

 

 

여행(旅行), 명사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

[비슷한 말] 경섭(涉), 유람(覽), 정행(行)

 

(네이버 영어사전) travel, traveling, trip, tour, journey, travel, (formal) journey, take a trip, go on a trip      

여행을 가다 take a trip, go on a trip

해외여행을 떠나다 leave on a trip overseas

해외여행을 떠나다 travel abroad

배낭여행을 가다 go backpacking, go on a backpacking trip

여행 일정을 짜다 plan one's trip[itinerary], arrange the schedule for the trip

여행 잘 다녀오세요 Have a nice[pleasant] trip. Bon voyage.

나는 지난주에 여행에서 돌아왔다 I came back from the trip last week.

그들은 7개월 동안이나 여행을 했다 They traveled[journeyed] for seven long months.

여행 경비는 어느 정도로 계획하고 계십니까? How much are you planning on spending on your trip?

올 여름에는 식구들과 남해안을 여행하기로 했다 I decided to travel[go on a trip] to the south coast with my family this summer.

여행은 잘 다녀오셨어요? How was the trip? Have you enjoyed your trip? Did you have a good[nice] trip? Were your travels good?

발리는 신혼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Bali is a popular honeymoon destination. Bali is in the spotlight as a honeymoon destination.

 

 

 

[시, 글과 책 속에 쓰인 '여행'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

 

 

'나는 나를 지나쳐 왔다' - 박노해

 

인생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나는 너무 서둘러 여기까지 왔다

여행자가 아닌 심부름꾼처럼

 

계절 속을 여유로이 걷지도 못하고

의미있는 순간을 음미하지도 못하고

만남의 진가를 알아채지도 못한 채

 

나는 왜 이렇게 삶을 서둘러 멀어져 왔던가

달려가다 스스로 멈춰서지도 못하고

대지에 나무 한그루 심지도 못하고

아닌건 아니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주어진 것들을 충분히 누리지도 못했던가

 

나는 너무 빨리 서둘러 왔다

나는 내 삶을 지나쳐 왔다

나는 나를 지나쳐 왔다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나간다.

 

우리가 여행으로부터 얻는 즐거움은 여행의 목적지보다는 여행하는 심리에 더 좌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여행을 하는 심리란 무엇인가? 수용성이 그 제일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용적인 태도를 취하면,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새로운 장소에 다가가게 된다. 어떤 것이 재미있고 어떤 것이 재미없다는 고정관념은 버리게 된다. 

 

 

리칭즈, <여행의 속도>

살아가면서 어떤 속도로 이동하는가에 따라 인생의 풍경이 달라진다.

 

어쩌면 우리의 여행도 더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동경일지 모른다.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곳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나에 대해 부단히 성찰하고 반성한다. 여행은 우리를 바꾸며, 우리를 만든다. 안도 다다오가 말했던 것처럼 "여행은 사람을 만든다."

 

사고, 생명, 관찰, 이동에서 출발하는 여행 개념....

    * 사고에서 출발하다 : 탐색의 여행, 사고의 여행, 창조의 여행, 문학의 여행

    * 생명에서 출발하다 : 기억의 여행, 근원을 찾아 떠나는 여행, 성장의 여행, 선택이 여행, 인생이 여행

    * 관찰에서 출발하다 : 탐색의 여행, 건축의 여행

    * 이동에서 출발하다 : 속도의 여행, 비행기여행, 기차여행, 도로여행, 항해여행, 미로여행

 

우리는 누구나 잠시 이 땅에 의탁해 기거하다 떠나는 여행자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이 모두 끝났을 때 내가 세상에서 사용했던 육신을 비롯한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 홀가분하게 저세상으로 떠나고 싶다. 어쩌면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또 다른 여행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도정일,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보르헤스의 천국과 도서관. 과거, 현재, 미래가 만나고 기억과 상상력이 용접되는 곳, 지적 모험의 땅, 돈도 비자도 필요 없는 여행지, 국경과 인종과 계급이 영원히 퇴각한 코즈모폴리턴의 세계, 거기가 도서관이다.

 

여행자는 흔희 두가지 만남을 경험한다. 그는 여행길에서 많은 것을 보되 그가 본 어느 것도 소유하지 못한다. 새로운 것, 아름다운 것, 탐나는 것들이 제아무리 많아도 그는 그냥 빈손으로 돌아가야 한다. 소유의 왕국에서 해방된 사람처럼 그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소유할 수 없다. 여행이란 그러므로 소유와 집착으로부터의 자유로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그 낯선 자유와의 만남이다. 그리고 그는 남의 나라, 그 타자의 고장에 와서 어렵쇼, 어찌된 건가, 거기서 마치 거울 속의 자신을 만나듯 제 나라 자기고장,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여행은 그러나 이런 두 개의 만남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세번째 만남이 있다. 제 나라에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이 이미 이전의 자기가 아님을 문득 깨닫는다. 남의 고장에서 제 나라를 발견한 사람은 제 나라에서도 남의 고장을 발견한다. 그에게 가장 익숙하고 친숙한 것들에서 그는 그가 몰랐던 타자의 얼굴을 만나는 것이다. 그는 바뀌어 있다.

 

낯선 나라를 통해 되비쳐오는 제 나라의 얼굴 만나기, 그것이 여행의 한 소득이라면 대학 생활의 가장 자랑할 만한 성과도 나 아닌 것, 타자, 다른 세계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를 알고 넓어지는 것이다. 이 자기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자기에게 질문 던질 줄 아는 성찰과 비판의 능력이다. 질문하는 능력의 확장을 보장하기 위해 사회가 대학에 인정하는 높은 특권이 대학의 자유, 학문의 자유다. 그것은 특권이되 모든 기득권을 거부하고 진리의 소유 주장을 심문하는 특권, 정신의 가장 활발하면서도 겸손한, 그리고 겸손해지기 위한 특권이다.

 

 

박웅현, <다시, 책은 도끼다>

어디를 여행하는지는 중요한 것 같지 않습니다. 어떤 눈을 가지고 여행하느냐가 정말 중요한 것이죠.

 

나란히 누워 서로의 살갗을 부비는 집들, 담장들, 빤히 들여다보이는 이웃들의 꿈, 가난, 숨결들. - 포구 기행

 

눈앞에 걸여야 할 길과 만나야 할 시간들이 펼쳐져 있는 사실만으로 여행자는 충분히 행복하다. - 포구 기행

 

짧은 길을 긴 시간을 들여 여행한 사람은 경험상 행복한 사람입니다. - 포구 기행

 

 

최갑수,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오랜 시간 여행을 떠나보면 살면서 필요한 웬만한 것들은 60리터 배낭에 다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며칠 푹 쉬다 보면 세상에 할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에쿠니 가오리의 말처럼 내 인생과 무관하게 세상은 무사히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

 

여행은 언제나 돈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다. - 코엘료

 

어차피 시간은 지나가고, 시간은 우리에게 의미 따위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우리는 경험하고 늙어갈 뿐이다. 코엘료 역시 단호하게 말한다. "시간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건 피로하다는 느낌. 나이를 먹었다는 느낌뿐이지"라고. 맞다. 그리고 이 또한 우리가 여행을 떠나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푹신한 침대에 누워 TV를 보고 있어도, 때볕이 내리쬐는 사막을 걷고 있어도 우리는 어차피 늙어가고 있으니까.

 

'사랑'을 '여행'으로 바꿔보았습니다. "여행이 없으면 사는 게 얼마나 밋밋하겠어요? 여행은 우릴 흥분시키고 즐겁게 해주죠. 여행을 하면 삶은 모험의 연속이 되고, 만남은 순간순간 아찔한 경이가 된답니다. 물론 늘 그런 건 아니지만요. 그래도 전 여행이 현대 생활의 가장 큰 불행, 즉 권태로부터 우릴 지켜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이긴 하지만 우린 지나칠 정도로 보호받으며 살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에게 여행은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모험이지요. 우릴 늘 젊게 만들어주는 여행만세예요." - 프랑수아 를로르, <꾸뻬 씨의 사랑 여행>

 

 

로버트 M. 피어시그,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 가치에 대한 탐구>

우리에게 즐거운 시간을 재는 척도란 '시간' 보다는 '즐거운'에 역점이 맞춰진 것이다. 이처럼 역점을 달리하면 사물에 접근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꾸불꾸불한 언덕길이 시간적으로는 더 걸릴지 모른다. 하지만 길이 꾸부러질 때마다 정해진 공간 안에서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는 자동차 대신, 몸을 옆으로 기울이기만 하면 되는 모터사이클을 타고 여행할 때는 그러한 꾸불꾸불한 길이 한결 더 즐거운 여행길이 된다. 교통량이 적으면 적을수록 여행길은 더욱더 즐거워지게 마련이며, 게다가 안전해지기까지 한다. 근처에 휴게소나 옥외 광고판이 없을수록 좋은 길이며, 작은 숲이나 초원, 과수원이나 잔디가 갓길에 가급적 맞닿아 있을수록 더 좋은 길이다. 그런 길로 여행을 하다 보면, 지나가는 도중 손을 흔들어주는 아이들과 만나거나 누가 지나가는지를 현관에서 바라보는 사람들과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길을 묻기 위해 멈추었을 때 바라던 것보다도 한결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사람들과 만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어디에서 왔는지 얼마 동안 여행을 하고 있는지를 물어보는 사람들과도 만날 수 있다.

 

때때로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목적지를 향해 여행하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내 삶을 풍부하게 해준 것은 여행과 꿈이었다. 내 영혼에 깊은 골을 남긴 사람이 누구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꼽을 것이다. 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 조르바...'

 

 

이권우, <여행자의 서재>

권리로서 여행이란, 달리 말하면 월경하기다. 경계를 넘어선다는 말처럼 매력 넘치면서 위험한 것이 어디 있던가. 한발만 넘어서면 꿈에도 그린 곳이기는 하나 낯설어 두려운 곳이 펼쳐진다. 그 역설에서 호기심과 탐험심이 발동하는 법이고 여행이 시작된다. 새로운 곳으로 발 딛기는 존재의 전환 가능성을 상징한다. - 김연수, <여행할 권리>

 

왜 여행을 하는가? 어디 가서, 무엇을 보고 마실 것인지보다 왜 떠나야 하는지 고민하는 이가 돌아올 때 달라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 알랭드 보통, <여행의 기술>

 

자기 체험을 소재로 삼아 거기서 생각의 자원을 건져내는 장이라는 의미에서 학문과 여행은 공동의 토대를 지닌다. 체험에 육박하지 못하고 감정으로 고양되지 못하는 학문과 여행은 생명력을 갖지 못한다. 대신 날것의 체험과 감정이라면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없다. 그리하여 자칫 지식과 개념에 걸러질 수 있는 개체의 체험과 감정을 소중히 다루되, 사변적 언어로 그 체험과 감정을 정제하지 않고 개체가 지닌 개성을 훼손하지도 않으면서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표현을 일권내야 한다. 바로 이 여행이 내게 안기는 사고의 실험리자 여행이 공부로서의 의미를 갖는 이유다. - 윤여일, <여행자의 사고 셋>

 

사람이 여행을 하는 것은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행하기 위해서이다. - 괴테

 

여행은 녹인다, 우리의 아집과 자존심을. 다른 이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의 아픔을 공감하는 능력이 훨씬 향상된다는 사실도 경험한다. - 쿠르트 파이페, <천천히 걸어, 희망으로>

 

여행의 즐거움의 반은 길 잃음의 미학이다. - 레이 브래드버리

 

여행의 본질은 '발견'이다. 전혀 새로운 것 앞에서 변화하는 나 자신, 그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것! - 다치바나 다카시

 

걷는 다는 것은 존재의 확인 과정이다. 우리는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이 우리를 만들고 해체한다. 여행이 우리를 창조한다. - 다비드 르 브르통

 

행복한 여행의 가장 큰 준비물은 가벼운 마음이다. - 생텍쥐페리

 

누구도 제 눈으로 제 얼굴을 볼 수는 없다. 비춰진 얼굴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어쩌면 여행이란 거울을 만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선입견과 편견, 그리고 아집에 물든 만큼 더 멀리, 더 자주 여행을 떠나야 할지 모른다. - 손호철, <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보다>

 

 

문요한, <여행하는 인간>

긴 여행은 삶 전체를 새롭게 할 수 있는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여행을 계기로 시간에 대한 주도권이 내게 넘어온 것이다. 만성적인 조바심이 약해졌다. 신기한 것은 삶의 속도가 느려지면서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지기는커녕 오히려 시간이 남는 듯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시간부자란 시간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시간부자란 자신에 맞게 삶의 속도를 조절할 줄 알고, 그 순간에 빠져들어 오염되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시간에 대한 주도성을 되찾지 못한다면 아무리 시간이 많다고 해도 우리는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없으며 타임 푸어가 될 수밖에 없다. 여행은 자신의 페이스를 되찾고 주도적으로 시간을 쓰는 방법을 읽힐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나만의 여행 테마가 있을 때 여행이 더욱 깊어진다.

 

여행에서 우리는 시간표에 길들여진 삶에서 벗어난다. 새로운 공기와 낯선 풍경은 감각의 문을 두드린다. 감각의 문이 서서히 열리면 우리의 지각은 보다 분명해진다. 우리는 여행지에서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고, 귀에 와 닿지 않는 소리까지 듣게 된다. 생각은 자꾸 우리를 과거와 미래로 끌고 가지만 감각은 우리를 현재에 머무르게 해준다. 감각이 살아나기에 우리는 점점 '지금-여기'에 존재할 수 있다.

 

'그대의 존재가 적으면 적을수록, 그대가 그대의 삶을 덜 표출할수록, 그만큼 그대는 더 많이 소유하게 되고, 그만큼 그대의 소외된 삶은 더 커진다.', 나는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에서 접한 칼 마르크스의 말에서 현대인들이 어떻게 해야 저장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찾았다. 바로 존재를 키우고 삶을 표현하는 것이다. 현대인에게 있어 존재를 키우고 삶을 표현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 대표적 행위가 여행이라고 본다. 여행의 시간 동안 우리의 존재감은 커지고 우리는 살아 있음을 체감할 수 있다. 그러면 자연히 소유욕과 저장강박이 약해진다. 일본의 한 사진작가에 의하면 몽골인은 평생 가지고 있는 물품이 300여 개인데 비해 일본인은 한평생 6200여개를 갖는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평생을 여행하듯 사는 사람에게는 많은 것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불필요한 욕망을 걷어내고 소유에 덜 연연할 수 있다. 그것은 자유의 지평을 한 차원 넓혀준다. 불필요한 내부의 욕망에서 벗어나는 것은 단순히 외적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과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자유다. 그 자유는 때로는 여행이 끝난 후의 삶으로도 확장된다. 그 자유를 경험함으로써 덜 쓰고 덜 일하되 더 여유로운 삶을 모색할 수 있다. 마음의 에너지가 물질을 소유하는 대신에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쪽으로 흐르게 된다.

 

 

전규태, <단테처럼 여행하기>

인간은 사랑과 죽음, 그리고 여행을 통해서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실감한다.

 

여행이란, 정착사회의 번거로움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켜보려는 욕구의 발로다. 여행이란, 안전한 일상생활과 다른 이질적인 세계로, 긴장을 내내 수반한다. 예컨대 편리한 환경에서 불편한 환경으로, 넉넉한 생활에서 모자라는 삶으로 스스로를 옮겨보는 과정인 것이다. 여행이란, 안전할 수도 있고 호사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여행자는 늘 자유분방해야 하며, 고독한 인간성의 회복을 위해 나서야만 한다. 여행이란, 여행자에게 있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다. 자기 안의 '고독한 인간'을 만나는 즐거움이다. 스스로의 인생뿐 아니라 인류의 오랜 역사를 새삼스럽게 발견하는 놀라운 체험이다.

 

여행은 새로운 생각의 산파다. 새로운 생각은 색다르고, 새로운 장소에서 난다. 여행은 깨우침의 미학이다. 단테의 <신곡>처럼....

 

여행한다는 것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이고, 관습에서 탈피하는 일이며,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는 일이다. 굳이 해방을 꾀하는 여행이 아니더라도 여행을 하다보면 누구나 자유로워진다. ... 여행은 끊임없는 과정이다. ... 여행, 사랑, 죽음은 모두 벗어나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희인, <여행의 문장들>

다른 사람들은 작품을 발표하거나 일을 하고 있는데 나는 오히려 3년 동안이나 여행을 하며 머리로 배운 모든 것을 잊어버리려 했다. 배운 것을 비워버리는 그러한 작업은 느리고도 어려웠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로부터 강요당했던 모든 배움보다 나에게는 더 유익하였으며, 진실로 교육의 시작이었다. -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여행은 배움의 공간이지만 비움의 시간이기도 한 것.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텅 비우는 것 역시 우리가 진정 배워야 할 소양이 아닐까. 나는 그런 '텅 빈 여행'을 사랑한다. 정해놓은 목적지 없이 버스터미널 시간표의 낯선 지명 앞에 서는 그런 시간을 사랑한다. ... 일부러 세상을 떠돌아도 쉽게 찾을 수 없는 쓸쓸함이 거기(꼬창) 가득했다. 바다가 태양을 품으면 찬란함으로 가득하고, 낭만을 품으면 사랑으로 가득하고, 분노를 품으면 파괴로 가득하겠지만, 쓸쓸함을 품으면 얼마나 거대한 슬픔과 고독을 빚어내는지 알 것 같았다. 

 

많은 시인과 여행자들이 모두 저 변함없이 흐르는 구름을 꿈꾸지 않았던가? 만일 구름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세상에 여행자들이 그토록 많이 생겨났을까? 바람 같은 것이 있지만, 역시 여행자의 스승은 저기저 지향도 없이 형체도 없이 떠다니는 구름, 구름이 아니었을까?

 

"어디로라도! 어디로라도! 이 세상 바깥이기만 하다면!"이라 읊었던 보들레르의 시에서 비로소 근대적인 '여행의 정신'을 발견하게 된다. 여행에 관한 철학 서적인 <여행의 기술>에서 저자 알랭 드 보통은 보들레르를 평생에 걸쳐 항구, 부도, 역, 기차, 호텔방과 대양을 가로지르는 배를 사랑한 시인으로 그리고 있다. 목적지보다는 떠남 자체를 동경한 보들레르의 생각을 통해 여행이 '생각의 산파'임을, 내적인 사유를 끄집어내고 자신과 대화를 이끌어내는 공간임을 얘기한다.

 

 

린위탕(임어당), <생활의 발견>

독서술을 체득하고 있는 사람은 가는 곳마다 만물이 변하여 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산수, 바둑, 술도 책이 될 수 있고, 달, 꽃도 또한 책이 될 수 있다. 현명한 여행자는 가는 곳마다 풍경이 있는 것을 안다. 책과 역사는 풍경이다. 술도 시도 풍경이다. 달도 꽃도 또한 풍경이다.

 

옛날 어느 문인은 말하였다. 10년을 독서에 바치고, 10년을 여행에 바치고, 10년을 그 보존과 정리에 바치고 싶다고.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보존에 10년을 바칠 것까지는 없고 2,3년으로 족하다고. 독서와 여행이 내 욕심을 만족시키려면 두 배나 다섯배라도 아직 부족하다. 욕심대로 하자면, 황구언이 말한 것처럼 인간 3백 세의 수명을 보존할수밖에 없다.

 

옛날에는 여행은 놀이였으나 지금은 일이 되어버렸다.

 

그릇된 여행..

  • 정신 향상을 위한 여행... 가이드와 함께하는 여행

  • 이야기거리를 얻기 위한 여행... 사진에 정신이 팔려서 정작 명소를 볼 여가가 없는 여행

  • 빈틈없는 여정표에 따른 여행... 집에 있을 때에는 시계에 결박당하고 캘린더에게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고, 외출을 해도 여전히 시계에 결박당하고 캘린더에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곤 하는 것..

 

여행의 참다운 동기는 속세를 피하고 사람을 피하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 좀더 시적인 표현을 빌어서 말하자면, 망각을 위한 여행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 참다운 여행자에게는 항상 방랑의 기쁨, 유혹, 모험심 등이 있다. 여행이란 '방랑'을 뜻하는 것이다. 방랑이 아닌 것은 여행이 아니다. 여행의 본질은 의무도 없고 일정한 계획도 없고, 편지도 없고 호기심 많은 이웃도 없고, 환영회도 없고 목적지도 없는 나그네 길이다. 훌륭한 나그네는 어디로 갈 것인지도 모르고 또 어디서 왔는지도 모른다. 아니, 자기 성이나 이름조차 모른다.

 

방랑의 정신이 있어야만 비로소 사람들은 휴가를 이용하여 자연에 접근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여행자들은, 인적이 드물고 참다운 고독을 즐길 수 있으며 자연과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을 피서지로 찾아가고 싶어한다.

 

나그네가 몸에 지녀야 할 필수적인 도구는 '가슴속의 재부(才賦)와 눈썹 밑의 신안(神眼)'이다. 사물을 느끼는 마음과 사물을 보는 눈을 구비하고 있는가 없는가가 문제다. 이것이 없이 산에 오르는 것은 시간과 금전의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가슴속의 재부와 눈썹 밑의 신안'만 구비하고 있다면 비록 산에 들어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집에 그대로 머물러 들판을 소요하면서 뜬구름, 개, 생울타리, 외로이 서있는 나무들을 관찰하면서 여행의 커다란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이희인, <여행자의 독서>

진정한 여행은 어느 정도 삶을 변화시킨다고 믿는다. ... 삶에 작은 변화라도 없었다면 당신은 진정한 여행을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이다.

 

가장 멋진 여행은 아직 떠나지 않은 여행이며, 가장 훌륭한 책은 아직 쓰이지 않은 책이다. 아직 읽지 않은 책, 아직 가지 않은 여행을 향한 마음이 간절할 때, 어쩌면 그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인지도 모른다.

 

확인하러 가는 것도, 감탄하고 오는 것도 모두 여행이다. 실망하러 가는 것만큼이나.

 

 

김현성, <따시델레 티벳>

여행을 하려면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 시간과 돈, 그리고 건강이다.

 

여행은 다리 떨릴 때 가는 것이 아니라 가슴 떨릴 때 가는 것이다.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 - 마르셀 프루스트

 

 

롤프 포츠, <Vagabonding, 여행의 기술>

불확실한 것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을 때 여행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훌륭한 여행자는 계획에 연연하지 않는다. 목적지에 닿는 것만이 여행의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 노자, <도덕경>

 

여행의 참뜻이 목적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 있다면, 여행의 참뜻이 새로운 것을 향한 깨달음과 열린 자세를 갖는 데 있다면 매순간이 여행일 수 있다.

 

 

여행자 / 기형도

 

그는 말을 듣지 않는 자신의 육체를 침대 위에 집어 던진다

그의 마음속에 가득 찬, 오래된 잡동사니들이 일제히 절그럭거린다

이 목소리는 누구의 것인가,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인가

나는 이곳까지 열심히 걸어왔었다, 시무룩한 낮짝을 보인 적도 없다

오오, 나는 알 수 없다, 이 곳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내 정체를 눈치챘을까

그는 탄식한다, 그는 완전히 다르게 살고 싶었다, 나에게도 그만한 권리는 있지 않는가

모퉁이에서 마주친 노파, 술집에서 만난 고양이까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중얼거린다, 무엇이 그를 이곳까지 질질 끌고 왔는지, 그는 더 이상 기억도 못한다

그럴 수도 있다, 그는 낡아빠진 구두에 쑤셔박힌, 길쭉하고 가늘은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고 동물처럼 울부짖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

 

 

허소라, <한 번의 퇴사 열 번의 남미>

우리가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하게 되면 오감이 열리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게 된다. - 미쉘 옹프레, <철학자의 여행법>

 

 

유시민, <유럽 도시 기행>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데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나는 도시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로운 것을 배운다. 나 자신과 인간과 우리의 삶에 대해 여러 감정을 맛본다. 그게 좋아서 여행을 한다. 그러려면 도시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건축물과 박물관, 미술관, 길과 공원, 도시의 모든 것은 '텍스트(text)'일 뿐이다. 모든 텍스트가 그러하듯 도시의 텍스트도 해석을 요구하는데, 그 요구에 응답하려면 '콘텍스트(context)'를 파악해야 한다. 콘텍스트는 '텍스트를 해석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말한다. 도시의 건축물과 공간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생각과 감정과 욕망, 그들이 처해 있었던 환경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다. 누가, 언제, 왜, 어떤 제약 조건 아래서, 어떤 방법으로 만들었는지 살피지 않는 사람에게, 도시는 그저 자신을 보여줄 뿐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지는 않는다.

 

 

마르셀 프루스트, <독서에 관하여>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언제나 자신에게서 벗어나 여행하기를 원하는 법이다.

 

 

요한 볼프강 괴테, 데키나 오사무 편저, <괴테 청춘에 답하다>

여행은, 때로는 잠시 고민을 잊게 해주고, 때로는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돌아오게 해준다.

 

 

정철,<한글자>

삶, 삶은 한 장의 풍경화. 산이 있고 나무가 있고 물이 흐르는 풍경화. 해가 뜨고 해가 지고 달이 뜨는 풍경화. 때론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부는 풍경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풍경화. 시시하고 지루하고 하품 나오는 풍경화. 그런데 잘 살펴보면 조금은 특별한 풍경화. 그림 속 어딘가에 내가 등장하는 풍경화. 그러니까 풍경화 속에 자화사이 들어 있는 풍경화. 자화상이니까 내 손으로 그려야 하는 풍경화. 하루에 점 하나라도 찍어야 하는 풍경화. 붓이 없으면 손에라도 물감을 묻혀야 하는 풍경화. 먼지가 쌓이면 안 되는 풍경화. 먼지 대신 세월을 쌓아야 하는 풍경화. 세월이 쌓이면 깊이가 쌓이는 풍경화. 깊이가 쌓이면 쉽게 탈색되지 않는 풍경화. 남의 집에 걸어 놓을 수 없는 풍경화. 남에게 보여 주는 에 정신 팔리면 안 되는 풍경화. 처음부터 끝까지 남에게 다 보여줄 수도 없는 풍경화. 남에게 같이 그리자고 조를 수도 없는 풍경화. 누구나 딱 한장씩만 그려야 하는 풍경화. 처음부터 다시 그리겠다고 떼를 쓰면 안 되는 풍경화. 하지만 실수나 실패가 얼마든지 허용되는 풍경화. 잘못 그은 선, 잘못 칠한 색도 그 위에 덧칠을 하면 다 용서가 되는 풍경화. 등을 돌리지 않는 풍경화. 기다려 주는 풍경화. 그러니 쉽게 찢어서도 안 되고 마지막 순간까지 붓을 놓아서도 안 되는 풍경화. 다 그리고 나면 누구나 '그리 나쁘지 않았던 여행'이라는 똑같은 제목을 붙이는 길고 긴 풍경화.

 

 

정철, <불법사전>

여행: 지금 내 자리에 내가 없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는 공부.

 

여행의 첫번째 가르침. 내가 없어도 별 일 없다는 건 여행을 마음껏 즐겨도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자주 떠날 것. 그곳에서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돌아올 것.

두번째 가르침. 내가 없어도 별 일 없다는 건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자주 떠날 것. 그곳에서 나를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날 것.

가르침의 결론. 어쨌든 자주 떠날 것.

 

 

김영하, <말하다>

과거에는 여행지마다 특색이 있었으나 지금은 여행지들이 평균화돼었요. 미국과 서구의 여행자들이 여행 문화를 평준홯했어요. 어딜가도 하얀 침대보가 깔려 있고, 어딜 가도 아메리칸 스타일이죠. 여행지들은 비슷비슷해졌고, 그래서 여행이 가지고 있는 긴장과 흥분 같은 것들이 빠르게 사라졌어요. 지금은 다른 방식의 여행에 흥미를 갖고 있어요. 관심이 있는 어느 한 도시에 오래 머무는 방식의 여행인데요. 예를 들면 로마와 같은 지역에 숙소를 잡아서 오래 머무는 방식이죠. 전통적인 여행보다는 '산책가로서의 여행'으로 관심이 넘어가고 있어요. 여행을 하는 게 아니라 옮겨다니면서 사는 삶에 가깝죠.

 

 

김영하, <빛의 제국>

인간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게 돼. 나한테도 여러 번 그런 순간들이 있었어. 그 선택들이 쌓여서 지금의 내가 된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 그게 인간이 시간여행을 하지 못하는 이유다. 과거로 돌아가 아주 사소한 거 하나만 바꿔도 이 세상은, 지금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은 존재할 수가 없게 되는 거야. 

 

 

김영하, <여행의 이유>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내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은 우리를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시킨다. 

 

내 발로 다녀온 여행은 생생하고 강렬하지만 미처 정리되지 않은 인상으로만 남곤 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모호한 감정이 소설 속 심리 묘사를 통해 명확해지듯, 우리의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더 명료해진다. 세계는 엄연히 저기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세계와 우리 사이에는 그것을 매개할 언어가 필요하다. 내가 내 발로 한 여행만이 진짜 여행이 아닌 이유다.

 

준 만큼 받는 관계보다 누군가에게 준 것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세상이 더 살 만한 세상이 아닐까. 이런 환대의 순환을 가장 잘 경험할 수 있는 게 여행이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

 

 

E. F. 슈마허 외, <자발적 가난>

발걸음이 가벼울수록 여행도 가볍듯, 삶의 여정에서 가난함으로 필요를 줄인 사람은 더 행복하고, 부의 무게 아래 신음하지 않는다. - 미누시우스 펠릭스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물론 오래 살아서 차비라도 벌어놓은 사람은 언젠가는 기차를 타게 되겠지만 그때는 활동력과 여행 의욕을 잃고 난 다음일 것이다. 이처럼 삶의 가치가 가장 떨어지는 시기에 미심쩍은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인생의 황금 시절을 돈 버는 일로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 고국에 돌아와 시인 생활을 하기 위하여 먼저 인도로 건너가서 돈을 벌려고 했던 어떤 영국 사람이 생각난다. 그는 당장 다락방에 올라가 시를 쓰기 시작했어야 했다.

 

홀로 여행하는 사람은 오늘이라도 떠날 수 있다. 그러나 동행이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므로 출발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혜민 스님,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자신의 것이 세상에서 최고라고 하는 사람은 대개 자기 우물 밖에서의 경험이 많지 않습니다. 세계를 여행하고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은 자신의 것이 세상에서 최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자기 자신에게는 최고인 것 같다고 말합니다.

 

 

니콜라스 카, <유리감옥>

스코틀랜드에 있는 애버딘 대학의 인류학자인 팀 잉골드Tim Ingold는 도보 여행과 차량 여행이란 두 가지 아주 상이한 여행 방식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도보 이동은 이 세상에서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존재 방식이다. 도보 여행자는 주변 환경과 그 느낌과 특징에 심취하고 동화되면서 행동과 지각이 긴밀하게 결합된 움직임을 경험한다. 도보 여행은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 내지는 자기 재생의 과정이 된다. 반면에 차량 여행은 본래부터 목적지 도달이 목적이다. 이는 생활하면서 경험하는 발견 과정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사람들과 상품들을 온전히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건네주는 것에 불과하다. 차량 여행자는 실제로 어떤 의미 있는 방식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그는 몸소 승객이 되어 이동된다."

 

 

김태진, 백승휴, <아트인문학 여행>

아트, 인문학, 여행, 이들 셋을 나란히 놓고 보면 공통점이 있다. 그건 우리를 성장시켜 현실을 '낯설게 보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여행은 떠남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곳을 둘러보고 다르게 살아가는 이들과 만나고 돌아올 때 우리는 보다 객관적인 시야를 갖게 된다. 예술은 예술가의 눈을 빌어 자연이 숨겨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체험이다. 그것에 감동할 때 '그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폭넓고 진지한 통찰을 배우는 것이다. 그 통찰의 맨끝에는 '낯선 나 자신'이 있다. 낯설게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익숙한 것들 속에 숨어 있던 새로움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된다. 당장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것, 말하자면 본질 같은 것.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창조성의 핵심이기도 하다

 

 

최인철, <굿 라이프>

재미와 의미가 모두 높은 활동. 여행, 걷기, 운동, 먹기, 수다 등과 같은 동적이고 감각적인 활동과 명상, 종교활동, 자원봉사와 같은 정신적이고 영적이며 타인을 지향하는 활동도 다수 포함.

 

여행이 큰 행복을 주는 이유.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재미와 의미가 모두 높은 다른 활동을 동반(먹고 수다 떨고 걷고 노는 행위가 한꺼번에 일어나는 활동), 여행은 행복에 가장 중요한 기본 욕구들(유능감, 자율성, 관계)이 극대화되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여행은 스스로 원해서 하는 자발적 행위이고, 업무와 달리 성과가 평가되지 않기 때문에 유능감에 대한 위협이 적으며, 대개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하는 관계재(relational goods)이기 때문에 관계를 강화해준다. 여행을 계획하는 단계에서부터 행복은 극대화된다. 일정, 숙소, 볼거리, 먹거리를 찾고 기획하는 일을 통해 자율성, 유능감, 그리고 관계의 유대감이 충족되기 시작한다.

 

여행과 이주를 보는 우리의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여행은 단순한 레저가 아니며, 이주는 생계를 위한 고육직책만이 아니다. 그것들은 개인에게는 확장된 자아, 개방적 자아를 심어주는 일이고, 사회에게는 미래를 위한 장기 투자다. 무엇보다 삶의 품격을 세우는 일이다.

 

이동하는 자, 여행하는 자에게는 열린 의식이라는 분명한 이점이 있다.

 

 

정재승, <열두 발자국>

평생에 거쳐 반드시 해야 하는 것들이 바로 독서, 여행, 사람들과의 지적 대화입니다. 다시 말해 끊임없이 세상으로부터 자극을 받으시라는 겁니다. 의미 있는 세상과의 충돌, 이것이 우리의 인생을 바꿉니다. 이 세 가지는 자기가 직접 물리적 환경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기주, <한때 소중했던 것들>

"인생은 모두가 함께하는 시간여행이다. 매일매일 사는동안, 우리가 할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 멋진 여행을 만끽하는 것이다. 매일 매일 열심히 사는것, 마치 그날이 내 특별한 삶의 마지막 날인 듯이...인간은 누구나 비슷한 길을 걸어간다. 결국에는 늙어서 지난날을 추억하는 것일 뿐이다. ... 결혼은 상냥하고 따뜻한 사람하고 하거라. ... 이제 난 시간여행을 하지 않는다. 하루를 위해서라도 나의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이 멋진 여행을 즐길 뿐이다." - 영화 / 어바웃 타임

 

 

전주희,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

인간의 시간이란 연속적이지 않다. 시계가 가리키는 초침과 분침은 균질적이지만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이란 기억과 미래일 뿐이다. 현재는 늘 순식간에 과거로 흘러가 기억으로 쌓인다. 기억으로 쌓인 시간이 미래를 정확하게 그릴 수 없다는 것은 언제나 정해진 시간에서 벗어나는 시간, 다른 시간을 꿈꿀 수 있는 이탈의 가능성을 포함한다. 하지만 자본의 시간, 부채가 결정하는 시간은 이러한 인간의 시간을 설계하고 계산하며 통제한다. 부채가 인간의 삶을, 인간의 모든 시간을 강탈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면 기억과 미래라는 연속적이지 않은 인간의 시간은 화폐가치로 환산된 시간표가 될 것이다. 1교시가 끝나면 어김없이 2교시가 기다리는 시간의 연속이 삶의 전부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사건을 찾아 여행을 떠나지 않는 개인에게는 시간이란 지금-지금-지금이 무한히 반복되는 시간만이 남겨지게 될 것이다.

 

 

박완서, <잃어버린 여행가방>

내가 지금까지 해온 여행은 과정을 무시한 목적지 위주의 여행이었다. 그게 얼마나 바보 여행이었던가를 알 것 같았다. 어디를 가기로 정하면 먼저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갈 수 있는 교통편을 강구하고, 가면서 통과하게 되는 고속도로나 국도변의 풍경은 가능한 빨리 스치는 게 수였다. 공업화, 산업화, 관광지화를 꿈꾸거나 이미 이룩한 지방들은 자연도 인심도 도시의 변두리일 뿐 순전한 시골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휴가라는 명목으로 여행을 갔다 오면 더욱이 피곤하고 짜증스러워지는 것은 관광 인파와의 부대낌 때문만은 아니다. 가도 가도, 심지어 산간벽지까지도 골고루 걸레처럼 널려 있는 문명의 쓰레기와 상업주의 때문에 이 땅에서 도시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한 어쩔 수 없는 결과였을 것이다. - 남도기행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잘하는 건 없습니다. 좋아하는 건 있어도. 걸어서 여행하는 것, 수영하는 것, 책 읽는 것.

 

 

신영복, <담론,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우리가 일생 동안 하는 여행 중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낡은 생각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오래된 인식틀을 바꾸는 탈문맥입니다. ... 우리는 생각이 머리에서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전두엽이 변연계에서 형성되는 이미지를 생각이라고 한다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잊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 생각은 가슴이 합니다. 생각은 가슴으로 그것을 포용하는 것이며, 관점을 달리한다면 내가 거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생각은 가슴 두근거리는 용기입니다. 공부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애정과 공감입니다. - '가장 먼 여행'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먼 여행이 남아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발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삶의 현장을 뜻합니다. 애정과 공감을 우리의 삶 속에서 실현하는 것입니다. 공부는 세계 인식과 인간에 대한 성찰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이 공부이고 공부가 삶이라고 하는 까닭은 그것이 실천이고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공부는 세계를 변화시키고 자기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며, '가슴에서 끝나는 여행'이 아니라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 '가장 먼 여행'

 

"여행이란 떠나는 것이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고, 자기의 성城을 벗어나는 것이 여행의 가장 첫 번째 의미입니다. 그다음이 '만나는 것'입니다. 자기를 떠나지 않고는 새로운 것을 만나기도 어려운 법입니다. 자기가 익숙한 공간과 사고를 결별한다는 것. - '우엘바와 바라나시'

 

여행은 떠나고 만나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종착지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 변화된 자기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비단 여행에서만 확인되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하면 여행만 여행이 아니라 우리의 삶 하루 하루가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통과 변화는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의 존재 형식입니다. 부단히 만나고, 부단히 소통하고, 부단히 변화하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여행도 그렇고, 우리의 삶도 그렇고, 우리가 함께 만들고 있는 인문학 교실도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우엘바와 바라나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인생수업>

소유하던 것을 잃은 슬픔이 가시고 나면 자신이 좀더 자유로워지고, 세상을 가볍게 여행할 수 있게 되었음을 깨닫습니다.

 

 

카트린 지타,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

여행은 당신에게 적어도 세 가지의 유익함을 줄 것이다. 첫째는 세상에 대한 지식이고, 둘째는 집에 대한 애정이고, 셋째는 자신에 대한 발견이다. - 브하그완 S. 라즈니쉬

 

당신이 항상 가지고 다닐 수 있을 만큼만 소유해라. 언어를 배우고, 국가를 이해하고, 사람들을 받아들여라. 당신의 기억력이 곧 당신의 여행 가방이 될 수 있도록...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호프 자런, <랩걸>

식물은 우리처럼 공간을 이동하면서 여행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식물은 장소를 이동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사건을 하나하나 경험하고 견뎌내면서 시간을 통한 여행을 한다.

 

 

구본권, <로봇시대, 인간의 일>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여가가 대중사회에서 대중화, 민주화되었다는 것은 여가 활동이 누구나 손쉽게 구매하고 소비할 수 있는 상품이 되었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것이 여행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대니얼 부어스틴은 1962년 <이미지의 환상>에서 지난날 일종의 모험이자 '수고로운 일travail'로서의 고유한 경험이던 여행travel이 대중사회화와 상품화로 인해 누구나 구매할 수 있는 관광tour으로 변한 현실을 지적했다. 미지의 모험이자 예측 불가능한 경험의 연속이라는 여행의 본질은 사라지고 모든 과정이 예측되고 통제되는 준비된 '상품'으로서의 이미지만 남아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수고로움과 위험을 동반한 '트래블'이 '투어'가 되면서 여행의 진짜 경험은 사라져버리고 사진 찍기용 상품이 되어버린 가짜 사건pseudo-event의 연속이 되어버린 것이다.

 

 

로제 폴 드루아,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

여정이 얼마나 지속되는지는 중요치 않다. 일단 이 움직임이 시작되면 3초건 3일이건 우리는 걷거나 생각한다. 철학적 생각 속에서 위대한 여행, 긴 흐름의 항해를 이어갈 수 있고, 한평생 이어질 질문들을 파고들 수 있다. 아니면 그저 매 분, 매 시간, 일상을, 현재의 몸짓들을, 우리가 투사하는 모든 것을, 발생하는 상황에 대한 대답들을 생각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건, 생각하기와 걷기는 서로 닮았다. 생각 또한 불안정한 균형을 통해 나아간다. 무한히 균형을 잃었다가 되찾으면서 멀리 나아간다.

 

걷기가 절뚝이는 것이고, 넘어지다가 다시 만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 여행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똑같이 지속적인 불균형, 똑같은 중심 상실과 되찾기로 이루어진다.

 

 

아베 히로시 / 노부오카 료스케, <우리는 섬에서 미래를 보았다>

나는 인간이 본래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등산과 도보 여행을 통해 배웠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그런 것이 생활 속에서 조용히 틀어지고 만다. 조금 깊이 들여다보니 자본주의 등 문명의 발전만을 중시해 온 사회 시스템의 한계가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로가 마주할 순 없는 걸까? 사회 조직이 따뜻한 인간관계를 방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서은국, <행복의 기원>

행복한 이들은 공연이나 여행 같은 '경험'을 사기 위한 지출이 많고, 불행한 이들은 옷이나 물건 같은 '물질' 구매가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스티븐 핑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여행이 우리의 정신을 넓히는 것처럼, 우리의 문화적 유산을 있는 그대로 둘러보는 것은 옛 사람들이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살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이기주, <언어의 온도>

밀도 있는 여행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사랑은 변하지만 사랑했던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여행旅行. 가슴에 불을 지피는 단어다. 일상의 버거움 때문에 자주 시도하지 못할 뿐이다. 여행의 사전적 의미는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에 가는 행위를 일컫는다. 하지만 이 정도 설명으로는 여행의 본질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럴 때는 단어와 문장의 수집가로 불리기도 하는 소설가와 시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봄 직하다. "참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 "여행은 도시와 시간을 이어주는 일이다. 그러나 내게 가장 아름답고 철학적인 여행은 그렇게 머무는 사이 생겨나는 틈이다." - 폴 발레리. 밑줄 그을 만한 문장이다. 이들의 이야기처럼, 우린 목적지에 닿을 때보다 지나치는 길목에서 더 소중한 것을 얻곤 한다. 어쩌면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은 '도착'이 아니라 '과정'인지 모른다. 그래서 난 장거리 이동을 할 때 비행기보다는 열차에 몸을 싣는 편이다. 기차를 타면 눈앞에 펼쳐지느느 풍경을 찬찬히 응시할 수 있다. 이동의 과정을 음미하면서 멀어지는 것과 가까워지는 것을, 길과 산과 들판이 내게 흘러들어오는 것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어디 여행뿐이랴. 인간의 감정이 그렇고 고나계가 그러한듯하다. 돌이켜보면 날 누군가에게 데려간 것도, 언제나 도착이 아닌 과정이었다. 스침과 흩어짐이 날 그사람에게 안내했던 것 같다. 한 번은 여행과 방황의 유사성에 대해 생각한 적도 있다. 둘 다 '떠나는 일'이란 점에서는 닮았다. 그러나 두 행위의 시작만 비슷할 뿐 마지막은 큰 차이가 있다. 여행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tour'는 '순회하다' '돌다'라느느 뜻의 라틴어 'tomus'에서 유래했다. 흐르는 것은 흘러흘러 제자리로 돌아오는 속성을 지닌다. 여행길에 오른 사람은 언젠가는 여행의 출발지로 되돌아온다. 돌아갈 곳이 없다면 그건 여행이 아니라 방황인지도 모른다. 행여 여행길에서 하염없이 방황하고 있다 해도 낙담할 이유는 없다. 방황이 끝날 무렵 새로운 목적지를 향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훗날 그 방황은 꽤 소중한 여행으로 기억될 테니까.

 

 

시라토리 하루히코, <니체의 말>

그때그때의 체험과 보고 들은 것을 그저 기념물로만 간직한다면 실제 인생은 정해진 일만 반복될 뿐이다. 그렇기에 어떤 일이든 다시 시작되는 내일의 나날에 활용하고, 늘 자신을 개척해 가는 자세를 갖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최고로 여행하는 방법이다. - 방랑자와 그 그림자

 

 

알랭 드 보통, <공항에서의 일주일>

여행은 내가 더 관대해지고, 덜 두려워하고, 늘 호기심을 느끼도록 도와준다

 

지혜로운 여행사라면 우리에게 그냥 어디로 가고 싶으냐고 물어보기보다는 우리 삶에서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 물어볼 수 있다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모든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여행의 내용이다. 어느 지점에 도달 했는가보다 어떻게 그곳까지 갔는가, 얼마나 많이 그 순간에 존재했는가가 여행의 질을 결정한다. 우리는 여행자이면서 동시에 여행 그 자체이다.

 

여행이 내게 준 선물은 삶과 세상에 대한 예찬, 그것이다. 광부는 수많은 돌들에 불평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광부의 눈은 보석을 발견할 뿐이다. 예찬하는 마음 역시 모든 돌들을 보석으로 만든다. 부자는 누구인가? 많이 감동하는 사람이다. 감동할 줄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다.

 

때로는 우회로가 지름길이다. 삶이 우리를 우회로로 데려가고, 그 우회로가 뜻밖의 선물과 예상하지 못한 만남을 안겨 준다. 먼길을 돌아 '곧바로' 목적지로 가는 것, 그것이 여행의 신비이고 삶의 이야기이다. 방황하지 않고 직선으로 가는 길은 과정의 즐거움과 이야기를 놓친다. 많은 길을 돌고 때로는 불필요하게 우회하지만,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 수 있다. 헤매는 것 같아 보여도 목적지에 도달해서 보면 그 길이 지름길이자 유일한 길이다.길들이 자세히 표시된 지도를 가끔은 접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길을 잘못 접어들어 들르게 된 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다.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 줄 수도 있는 것처럼. 신은 우리에게 길을 보여 주기 위해 때로는 길을 잃게 한다.

 

여행은 얼마나 '좋은 곳'을 갔는가가 아니라 그곳에서 누구를 만나고 얼마나 자주 그 장소에 가슴을 갖다 대었는가이다.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봐야 하며, 그것에는 시간이 걸린다. 세상의 모든 장소들은 사리와 숄로 얼굴을 가린 여인과 같다. 낯선 자가 다가오면 더 가릴 것이다. 그리고 그 색색의 천 뒤에서 검은 눈으로 쳐다볼 것이다. 세상에는 시간을 쏟아 사랑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가고, 또 가고, 또다시 가라. 그러면 장소가 비로소 속살을 보여 줄 것이다. 짐음 최소한으로 줄이고, 일정은 계획한 것보다 더 오래 잡으라. 인생은 관광tour이 아니라 여행travel이다. 그리고 여행은 고난travail과 어원이 같다. 장소뿐만 아니라 삶도 쉽게 속살을 보여 주지 않는다. 우리가 삶을 사랑하면 삶 역시 우리에게 사랑을 돌려준다. 사랑하면 비로소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뒤돌아보는 새는 죽은 새다. 모든 과거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날개에 매단 돌과 같아서 지금 이 순간에 여행을 방해한다.

 

 

닉 수재니스,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

늘 같은 경로를 오가는 통근길은 한 사람의 세계를 축소시킨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나의 아내가 매번 다른 길로 출퇴근한다고 해보자. 이는 그녀의 인식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 새로운 길에서 그녀는 시시각각 색다른 풍경을 경험하고,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 갈 것이다. 국제상황주의 예술운동이 제안한 '데리브(derive, 표류)' 개념과 흡사하게 걷기는 목표 지향의 여정이 아니라 자유롭게 즐기듯 표류하는 여행으로 간주된다. 즉 통근길이 오로지 목적지만을 향해가는 여정이 아닌 놀이하듯 이동하는 여행이 된다. 일상적인 것 너머의 낯선 차원으로 몸을 던지려면 우리의 시야는 열려 있어야 할뿐만 아니라 상상력으로 가득한 춤사위는 활발하고 생생하게 유지해야 한다. 우스꽝스러운 걸음을 걸어보는 매우 단순한 시도만으로 우리는 그렇지 않다면 보지 못했을 다른 차원으로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게 된다.

 

 

HK여행작가아카데미, <여행의 이유>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 헤르만 헤세

 

가장 위대한 여행은 지구를 열 바퀴 도는 여행이 아니라 단 한 차례라도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여행이다. - 마하트마 간디

 

 

최갑수, <당신에게 여행>

모든 순간이 여행이며 우리의 모든 추억은 찬란하다.

 

 

김동우, <트레킹으로 지구 한바퀴>

여행의 질은 무게에 반비례할 때가 많다.

 

여행은 경험이고 그 경험이 마음속 깊이 새겨진다. 여행은 일종의 중독입니다. 무엇보다 편하면 재미가 없죠. 힘든 여정이 점점 자신을 단련시킵니다. 여행 뒤 훨씬 강해진 나를 발견하게 되죠. 그래서 여행을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인생이 그렇듯 여행의 본질도 선택의 문제이긴 마찬가지다.

 

여행이 편할 줄만 알았다. 보고 먹고 자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여행은 온전치 않았고 만족스럽지 못했다. 여행도 넥타이를 매고 회사에 다니는 것처럼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여행 안에서 자유로웠지만 여행은 또 다른 숙제를 안겨주었다. 직장을 잡고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칠 때 여행은 점점 의식 속에서 사라져 갔다. 어쭙잖은 지식과 경험을 믿고 허세를 부리며 자만에 빠져 살던 시절이 있었다. 세계 일주의 시작 중국은 교만한 나를 일깨워주었다. 국경을 넘으며 난 여행을 다시 보고 있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여행이 여행이 아니었구나."

 

여행은 자신의 인생에 배워야 할 지식과 희로애락을 아우르는 공부의 시작이다.

 

여행은 가끔 생각지도 않은 장소와 상황에서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며 기쁨과 행복을 안겨준다. 우린 그걸 '인연'이라 부른다.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자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나리라. 그러면 임종의 순간에도 여전히 새로운 공간을 향해 즐겁게 출발하리라. - 헤르만 헤세 <유리알 유희> 중

 

 

장 그르니에, <섬>

사람들은 여행이란 왜 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언제나 충만한 힘을 갖고 싶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아마도 일상적 생활 속에서 졸고 있는 감정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활력소일 것이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한 달 동안에, 일 년 동안에 몇 가지의 희귀한 감각들을 체험해 보기 위하여 여행을 한다. 우리들 마음속의 저 내면적인 노래를 충동질하는 그런 감각들 말이다. 그 감각이 없이는 우리가 느끼는 그 어느 것도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 그것은 불가능한 일 -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하여 여행한다고 할 수 있다. ... 그런데 그 <자기 인식 reconnaissance>이란 반드시 여행의 종착역에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그 자기 인식이 이루어지고 나면 여행은 완성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통과해 가야 하는 저 엄청난 고독들 속에는 어떤 각별히 중요한 장소들과 순간들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 장소, 그 순간에 우리가 바라본 어떤 고장의 풍경은, 마치 위대한 음악가가 평범한 악기를 탄주하여 그 악기의 위력을 자기 자신에게 문자 그대로 <계시하여> 보이듯이, 우리들 영혼을 뒤흔들어놓는다.

 

 

클라우디오 마그리스, <다뉴브>

마그리스에 따르면, 여행은 사라지고 있는 무언가를 기록하는 것, '상실에 대한 저항'이다. "여행은 늘 구출작업, 사라져가고 있거나 조만간 사라질 뭔가를 서류로 남기고 수집하는 작업이며, 물에 잠기고 있는 섬에 마지막으로 상륙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자는 '망각에 대항하여 싸우는 작은 전사'다. 망각에 대항하는 '기억'은 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이데거, 루카치, 카네티 등의 집과 카프카가 죽은 병원, 수많은 박물관, 공동묘지, 무덤 등을 방문하며 그 안에 보존되어 있는 삶의 열정과 상처를 들여다본다. 마그리스의 말대로 "하나의 무덤은 쓰다 만 하나의 서사시로서, 숱한 소설을 만들어내고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또 울르므이 빵박물관에 있는 1914년과 1924년 사이 10년 동안 빵 1파운드의 가격 변화를 기록한 도표를 보면서, 개인의 삶을 단순한 통계자료로 변화시키고, 개인을 집단과정 속에 밀어넣어 순환시키며, 보편적인 것을 위대한 숫자 법칙으로 강등시키면서 개인의 삶을 통합시키는, 세계의 역사와 경제의 자동 메커니즘을 꿰뚫어본다.

여행자는 '향수에 젖어 일상생활을 기록하는 문헌학자'이기도 하다. 여행자는 큰 유적뿐만 아니라 길을 가다가 만나는 풍경의 아주 세세한 부분들, 역사의 유명인들뿐만 아니라 인식할 수 없는 흐린 흔적을 이 땅에 남기고 간 이름 없는 인물에게까지 관심을 쏟는다. 그뿐만 아니라 여행자는, 시간 속에 묻혀 있는 현실의 다양한 층위를 발견하고자 하는 '고고학자'다. 고고학자가 오랜 세월 땅에 묻혀 있다 드러난 작은 물건이나 장소를 통해 그 밑에 숨어 있는 과거의 역사, 생활, 습관, 사상 등을 발견하듯, 여행자도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것 뒤에 있는 이러한 과거의 다양한 층위들을 발견하고 그 현재적 의미를 다시금 되묻는 사람이다. "마치 낙엽이 쌓여 흙에 섞여 썩어가는 땅에 발을 내디뎠는데 무게에 눌려 낙엽들이 흩어지고 그 아래 있는 다른 낙엽 층, 즉 작년에 떨어져 썩어서 축축한 흙으로 변한 낙엽들에 신발이 빠지게 된 것과 같다."

 

 

이주헌, <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

여행은 떠나는 것이다. 떠나는 것은 나를 일상의 속박으로부터 풀어 주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나의 일상을 그만큼 풍요롭게 하기 위한 것이다. 예술도 우리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여행을 떠나 예술과 진솔한 만남을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나의 삶을 한 차원 높이는 행위이다. 그 결과 우리는 새로운 활력으로 일상에 임할 수 있다. 그러다가 우리는 다시 여행을 떠나고 또 예술과의 만남을 가진다. 그런 시간들이 반복되다 보면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의 여행이 되고 예술이 된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나그네요, 예술가다.

 

 

리 호이나키,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오늘날의 아이-어른들은 끊임없이 유동적이며, 언제나 새로운 일자리와 다른 도시를 찾아 헤매면서, 판에 박은 일상을 깨기 위해서 여행상품을 산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갈급증을 치유할 수가 없다. 그들은 휴가에 '이국적'이고 '흥미로운' 곳을 끊임없이 방문하여, 갈수록 심해지는 권태로움을 해소하고,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 필요한 돈을 버느라고 강박적으로 쫓기고 있다.  

 

어두워 지기 전에 돌아오는 것, 그것이 나들이의 기술이다. - 웬델 베리, '집에서의 여행' 중

 

 

베르나르 올리비에, <나는 걷는다>

홀로 외로이 걷는 여행은 자기 자신을 직면하게 만들고, 육체의 제약에서 그리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안락하게 사고하던 스스로를 해방시킨다. 순례자들은 아주 긴 도보여행을 마친 후엔 거의 예외 없이 변모된 자신의 모습을 느낀다. 이는 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스스로를 직면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발견할 수 없었을 자신의 일부를 만났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혼자 걷는 것을 선호해야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데, 여정에서 친구들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비 내리는 그리스에서 불볕천지 터키까지>

여행의 본질이란 공기를 마시는 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기억은 분명 사라진다. 그림엽서는 색이 바랜다. 하지만 공기는 남는다. 적어도 어떤 종류의 공기는 남는다.

 

 

스티브 도나휴,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

인생이라고 하는 이 여행이 종국에는 끝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의 인생은 더욱 활기를 띠게 된다. 여행을 할 때는 도착했음을 느낄 줄도 알아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면서 그것이 다음 도착지를 향해 내딛는 것임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안에는 여행과 목적지가 공존한다.

 

 

강신주, <철학이 필요한 시간>

여행을 통해 아무것도 얻지 못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아마도 그는 자기 자신을 짊어지고 갔다 온 모양일세." - 몽테뉴, 수상록

 

참다운 여행은 배움의 과정이어야 한다.

첫 번째 배움은 여행지와 그곳 사람들의 삶을 배우는 것. 두 번째 배움은 여행지에서 삶이 충분히 편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자신이 떠나온 일상이 낯설게 다가오는 것이다. 

 

진정한 여행을 떠난 사람은 자신이 도착한 낯선 곳에 익숙해질 때까지 그곳에 머물러야 한다.

 

여행은 차이의 경험이다. 낯선 여행지와 익숙한 일상 사이의 차이, 혹은 이제는 익숙해진 여행지와 낯설게 느껴지는 일상 사이의 차이. 이 두가지 차이를 동시에 겪어내야만, 여행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법정 스님,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여행길에 오르면 자기 영혼의 무게를 느낀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하며 살아왔는지, 자신의 속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여행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자기 정리의 엄숙한 도정이요, 생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이다. 그리고 이 세상을 하직하는 연습이기도 하다.

 

 

김한민, <그림 여행을 권함>

이렇게 나를 되돌아 볼 수 있을 때는 바쁨을 자각할 수라도 있지만, 문제는 우리가 바쁜 상태에 너무 익숙해져 오히려 여유 시간이 주어지면 불안해한다는 점이다. 마치 여유를 즐길 능력을 상실해 버린 것처럼. 분주함은 여행 최대의 적이자,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다.

 

 

무라카미 하루키, <위스키 성지>

사람의 마음속에만 남는 것, 그렇기에 더욱 귀중한 것을 여행은 우리에게 안겨 준다. 여행하는 동안에는 느끼지 못해도, 한참이 지나 깨닫게 되는 것을. 만약 그렇지 않다면, 누가 애써 여행 같은 걸 한단 말인가?

 

 

노동효, <길위에서 책을 만나다>

Less is More "발걸음이 가벼울수록 여행도 가볍듯, 삶의 여정에서 가난함으로 필요를 줄인 사람은 더 행복하고, 부의 무게 아래 신음하지 않는다. - 미누시우스 펠릭스"

 

 

류콴홍, <철학우화>

인생이란 여행길에서 자아를 의식하고, 사회를 인식할 때 우리는 더 나은 발전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어요.

 

 

마루야마 겐지,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겉만 보고 시골살이의 결단을 내린다. 그때 당신들의 눈길은 바로, 낯선 땅에서 좋은 부분에만 마음을 빼앗기며 지나가는 여행자의 시선이었습니다. 하지만 여행하는 사람과 정착해서 사는 사람의 입장은 크게 다릅니다. 요컨대 당신들은 인생에서 최대이자 최악의 충동구매를 하고 만 것입니다. 실패했을 때의 후회가 흔한 후회의 범위를 넘어서는 너무나 어리석은 짓을 한 것입니다.

 

 

박원식, <산촌 여행의 황홀>

여행은 유랑이다.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낯선 장소로의 떠돎이다. 날뛰는 마음 망둥이를 가이드 삼은 방랑이자 배회다. 이는 매우 품위 있고 자유로운 행위라서 조급하게 서두르거나 망설일 게 없는 활동이다.

 

 

정유정, <히말라야 환상 방황>

어떤 이는 여행에서 평화를 얻는다고 했다. 어떤 이는 삶의 행복을 느끼고, 어떤 이는 사랑을 깨닫고, 어떤 이는 자신과 화해하기도 한다. 드물게 피안에 이르는 이도 있다. 나로 말하면 확신 하나를 얻었다. 나를 지치게 한 건 삶이 아니었다. 나는 태생적으로 링을 좋아하는 싸움닭이요, 시끄러운 뻐꾸기였다. 안나푸르나의 대답은 결국 내 본성의 대답이었다. 죽을 때까지, 죽도록 덤벼들겠다는 다짐이었다. 결론적으로 떠나온 나와 돌아갈 나는 다르지 않았다.

 

 

박웅현, <여덟단어>

"여행을 생활처럼하고 생활을 여행처럼 해봐", 생활이 여행처럼 되다면 정말 매 순간이 소중하고 안타까울 겁니다. "여행지에서 랜드마크만 찾아가서 보지 말고 내키면 동네 카페에서 동네 사람들과 사는 이야기도 하고 벼룩시장에 가서 구경도 하면서 거기 사는 사람처럼 여행하는 거야. 그게 더 멋져. 그리고 생활은 여행처럼 해. 이 도시를 네가 3일만 있다가 떠날 곳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갔다가 다신 안 돌아온다고 생각해봐.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거기에서 3일밖에 못 머물기 때문이야. 마음의 문제야. 그러니깐 생활할 때 여행처럼 해."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의 여행법>

나의 여행법 : 여행하면서 쓰고, 쓰면서 여행한다

나는 여행지에서는 쓰기를 잊어버리려고 한다. 카메라도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 내 눈으로 여러 가지를 정확히 보고 머릿속에 정경이나 분위기, 소리 같은 것을 생생하게 새겨 넣는 일에 집중한다. 나 자신이 그 자리에서 녹음기가 되고 카메라가 된다.

 

여행을 하는 행위가 그 본질상 여행자의 의식의 변혁을 강요하는 것이라면, 여행을 묘사하는 작업 역시 그 움직임을 반영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 본질은 어느 시대에나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여행기라는 것이 지닌 본래적인 의미이기 때문이다. "어디어디에 갔었습니다.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을 했습니다"하고 재미와 신기함을 나열하듯 죽 늘어놓기만 해서는 사람들이 좀처럼 읽어 주지 않는다. '그것이 어떻게 일상으로부터 떨어지면서도, 동시에 어느 정도 일상에 인접해 있는가' 하는 것을 (차례가 거꾸로 되더라도 좋으니까) 복합적으로 밝혀 나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정말 신선한 감동은 거기서 생겨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처럼 변경이 소멸한 시대라 하더라도 자기 자신 속에는 아직까지도 변경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장소가 있다고 믿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추구하고 확인하는 것이 바로 여행인 것이다. 그런 궁극적인 추구가 없다면, 설사 땅 끝까지 간다고 해도 변경은 아마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시대이다.

 

나로 하여금 그런 체념에 이르게 하는 진전이야말로, 인간을 피곤하게 만드는 온갖 것들을 자연스럽고 묵묵히 받아들여 가는 단계야말로, 여행이 본질일 것이었다. 왜 나는 피곤을 찾아서 일부러 멕시코까지 다녀와야만 했던가? "왜냐하면 그런 피곤은 멕시코에서밖에 얻어낼 수 없는 종류의 피곤이기 때문입니다" "멕시코에 오지 않고서는, 멕시코의 공기를 들여마시고 멕시코 땅을 발로 밟지 않고서는 얻어낼 수가 없는 그런 피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피곤을 거듭 받아들일 때마다 나는 조금씩 멕시코라는 나라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우리는 여행을 통하여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삶을 견디게 해주는 새로운 에너지를 얻게 됩니다. 하여 여행은, 진정한 여행은, 일상 생활 속에서 졸고 있는 감정을 일깨우는 커다란 자극인 동시에, 우리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고 마음속 상처에 새 살이 돋아나게 하는 약이 되어 줍니다.

 

진정한 여행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어느 지역을 '둘러보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그것을 자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어떤 공간을 경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움직임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격렬한 의지를 이끌어 내는 것이라야 여행다운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외부의 풍경에만 눈길을 줄 뿐 자신의 '내면의 풍경'을 조망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서는, 또한 외부의 온갖 소리에만 열중할 뿐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서는, 그 여행은 여행의 참다운 의미를 제대로 살린 것이 되기 어렵습니다. 기껏해야 남에게 나 거기 가 보았노라고 자랑삼아 늘어놓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그것은 껍데기뿐인 여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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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은 세상, 쉴새없이 많은 신호와 소음에 둘러쌓여 살고 있는 우리에게 침묵은 휴식과 여유를 통해 지나왔던 길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무엇인가 받아들이려면 먼저 입을 다물어야 한다.

 

 

[본문 발췌]

 

불교의 삼독 : 탐욕(貪欲, 욕망), 진에(瞋에 분노), 우치(愚癡, 어리석음)

분노, 탐욕,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말들이 난무할 때, 그 속에서 조용히 침묵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이 입에 담는 말에는, 아무리 별 생각 없이 하는 말이라도 자기 나름대로의 의견이 들어간다. 즉, 우리가 입에 담는 말에는 '자기 자신'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의견이라도 무시당하면 기분이 나빠진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거나 불평하는 이유는 자신의 모자람을 직시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 사회, 세계가 잘못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있는 동안은 자신의 모자람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침묵을 위한 실제 수행법

호흡명상과 신체감각 관찰을 통해 집중력과 평상심을 얻고, 즐거움과 과로움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연습과 그런 기분에 대한 반응으로 생겨나는 복잡한 탐욕, 진에, 우치의 마음도, 있는 그대로 느끼면 저절로 흘러가 사라지는 무상(無常)한 것이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793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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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정보와 뉴스의 시대, 정신을 붙잡고 살아가려면 기억과 망각의 균형이 중요하다.

 

 

[본문 발췌]

 

예술의 목적은 정신적 즐거움을 공유하는 것이지만, 두뇌의 발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상징화된 정보를 해독하는 것이 두뇌의 주요기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유전자가 크게 변하지 않는 한, 유흥산업과 연예잡지, 그리고 소셜네트워크는 앞으로도 결코 줄어들지 않고 꾸준히 팽창할 것이다.

 

감정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값지며 무엇이 예쁜지, 그리고 무엇이 나에게 유익한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감정이 없으면 모든 것의 가치가 똑같아지면서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게 된다. 감정은 사치품이 아니라 지능을 갖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다.

 

과학자들은 기억력과 망각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너무 많이 잊으면 과거의 실패나 좌절감과 함께 애써 습득한 기술까지 잊게 된다. 그 반대로 너무 많이 기억하면 중요한 정보와 함께 과거에 겪었던 모든 좌절과 슬픔이 수시로 떠올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억과 망각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야 최상의 이해력이 발휘된다.

 

요즘 인터넷에서는 정신분열에 가까운 사이비 선구자들이 온갖 해괴한 논리로 대중들을 선동하고 있다. 이들의 헛소리에 시달리다 보면 대중들은 결국 한 가지 덕목을 갈구하게 된 텐데, 그것이 바로 '지혜(현명함)'이다. 사실(fact)은 지혜와 아무런 상관이 없으므로, 정신 나간 블로거들의 헛소리에 염증을 느낀 미래의 네티즌들은 지혜가 담긴 글을 갈구하게 될 것이다. 경제학자 해미시 맥레이(Hamish Mcrae)는 이렇게 말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의 대부분은 쓰레기다. 이런 것은 쓰레기 메일과 다를 것이 없다. 그래서 현명한 판단이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다. 미래에는 재정을 분석하거나 경제동향을 파악하는 등 현명한 판단력을 기초로 하는 직종이 가장 높은 연봉을 받게 될 것이다."

 

과학은 조직화된 지식이며, 지혜는 조직화된 삶이다. - 임마누엘 칸트

 

마하트마 간디는 말했다. '근로 없는 부', '도덕심 없는 쾌락', '정직하지 않은 지식', '윤리 없는 상행위', '인간성이 결여된 과학', '희생 없는 명예', '원칙 없는 정치', 이들은 모두 폭력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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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인(人), 혼자가 아니라 둘, 둘 보다는 셋... 아름다운 인연을 맺으며 선뜻 내어주는 멋도 알고, 사랑할 줄도 아는 시간에 맞서는 여유도 부릴 줄 아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본문 발췌]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 - 신춘新春'

 

선물은 뇌물이나 구제품같이 목적이 있어서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고 싶어서 주는 것이다. 구태여 목적을 찾는다면 받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선물은 포샤가 말하는 자애慈愛와 같이 주는 사람도 기쁘게 한다. 무엇을 줄까 미리부터 생각하는 기쁨, 상점에 가서 물건을 고르는 기쁨, 그리고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것을 바라보는 기쁨, 인편이나 우편으로 보내는 경우에는 받는 사람이 기뻐하는것을 상상하여 보는 기쁨, 이런 가지가지의 기쁨을 생각할 때 그 물건이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아깝지 않은 것이다. 선물을 받는 순간의 기쁨도 크지마는 선물을 푸는 순간의 기쁨이 있다. - 선물

 

맛은 감각적이요. 멋은 정서적이다. /  맛은 적극적이요, 멋은 은근하다. / 맛은 생리를 필요로 하고, 멋은 교양을 필요로한다. / 맛은 정확성에 있고, 멋은 파격에 있다. / 맛은 그때뿐이요, 멋은 여운이 있다. / 맛은 얕고, 멋은 깊다. / 맛은 현실적이요, 멋은 이상적이다. / 정욕생활은 맛이요, 플라토닉사랑은 멋이다. / 그러나 맛과 멋은 반대어는 아니다. 사실 그 어원은 같을 지도 모른다. 맛있는 것의 반대는 맛없는 것이고, 멋있는 것의 반대는 멋없는 것이지 멋과 맛이 반대되는 것은 아니다. / 맛과 멋은 리얼과 낭만과 같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 그러나 맛만있으면 그만인 사람도 있고, 맛이 없더라도 멋만 있으면 되는 사람도 있다. / 맛은 몸소 체험을 해야하지만, 멋은 바라보기만 해도 된다. / 맛에 지치기 쉬운 나는 멋을 위하여 살아간다. - 맛과 멋

 

30년 전이 조금 아까울 때가 있다.나의 시선이 일순간에 수천 수만 광년밖에 있는 별에 갈 수 있듯이, 기억은 수십 년전 한 초점에 도달할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나와 그 별 사이에는 희박하여져가는 공기와 멀고 먼 진공이 있을 뿐이요, 30년 전과 지금 사이에는 변화 곡절이 무상하고 농도 진한 생활이라는 것이 있다.이 생활 역사를 한 페이지 읽어보면 일년이라는 세월은 긴긴 세월이요,하룻밤,아니 오분에도 별별 사건이 다 생기는 것이다. 과거를 역력하게 회상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장수를 하는 사람이며, 그 생활이 아름답고 화려하였다면 그는 비록 가난하더라도 유복한 사람이다. 예전을 추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생애가 찬란하였다 하더라도 감추어둔 보물의 세목과 장소를 잊어버린 사람과 같다. 그리고 기계와 같이 하루하루를 살아온 사람은 그가 팔순을 살았다 하더라도 단명한 사람이다. 우리가 제한된 생리적 수명을 가지고 오래 살고 부유하게 사는 방법은 아름다운 인연을 많이 맺으며 나날이 착한 일을 하고, 때로 살아온 자기의 과거를 다시 사는데 있는가 한다. - 장수 중에서

 

과학을 토대로 하지 않는 철학은 기초 작업이 튼튼치 않은 성채와도 같다. 한편, 과학자에게는 철학 공부가 매우 유익하리라고 생각한다. 현대 과학은 광맥을 파 들어가는 것과 같이 좁고 깊은 통찰은 할 수 있으나 산 전체의 모습을 알기 어렵고 산 아래 멀리 전개되는 평야를 내려다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너는 시간을 아껴 철학과 문학을 읽고, 인정이 있는, 언제나 젊고 언제나 청신한 과학자가 되기 바란다. - 딸에게

 

위대한 사람은 시간을 창조해 나가고 범상한 사람은 시간에 실려간다. 그러나 한가한 사람이란 시간과 마주 서 있어 본 사람이다. - 치옹 윤오영, <비원의 가을> 중에서

 

나의 시간과 기운을 다 팔아 버리지 않고, 나의 마지막 십분의 일이라도 남겨서 자유와 한가를 즐길 수 있는 생활을 하고 싶다. - 나의 사랑하는 생활

 

멋은 허심하고 관대하며 여백의 미가 있다. 받는 것이 아니라, 선뜻 내어주는 것이 멋이다. -

 

누구나 큰 것만을 위하여 살 수는 없다. 인생은 오히려 작은 것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 

 

어떠한 운명이 오든지 / 내 가장 슬플 때 나는 느끼나니 / 사랑을 하고 사랑을 잃은 것은 / 사랑을 아니한 것보다는 낫습니다. - 테니슨,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구'. 순례 중에서

 

나는 작은 놀라움, 작은 웃음, 작은 기쁨을 위하여 글을 읽는다. 문학은 낯익은 사물에 새로운 매력을 부여하여 나를 풍유豊裕하게 하여준다. 구름과 별을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하고눈, 비, 바람, 가지가지의 자연 현상을 허술하게 놓쳐 버리지 않고 즐길 수 있게 하여 준다. 도연명을 읽은 뒤에 국화를 더 좋아하게 되고 워즈워스의 시를 왼 뒤에 수선화를 더 아끼게 되었다. 운곡耘谷의 <눈 맞아 휘어진 대>를 알기에 대나무를 다시 보게 되고, 백화白樺나무를 눈여겨 보게 된 것은 시인 프로스트를 안 후부터다. - 순례

 

미美는 그 진가를 감상하는 사람이 소유한다. - 비원

 

하품을 하면 따라 하품을 하듯이 우정은 오는 것이다. 오랫동안 못 만나게 되면 우정은 소원해진다. 희미한 추억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나무는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르는 것이 더욱 어렵고 보람 있다. 친구는 그때그때의 친구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말 좋은 친구는 일생을 두고 사귀는 친구다. 우정의 비극은 이멸이 아니다. 죽음도 아니다. 우정의 비극은 불신不信이다. 서로 믿지 못하는 데서 비극은 온다. - 우정

 

젊어, 정열에다 몸과 마음을 태우는 것과 같이 좋은 게 있으리오마는, 애욕번뇌실망에서 해탈되는 것도 적지 않은 축복이다. 기쁨과 슬픔을 많이 겪은 뒤에 맑고 침착한 눈으로 인생을 관조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여기에 회상이니 추억이니 하는 것을 계산에 넣으면 늙음도 괜찮다. 그리고 오래오래 살면서 신문에서 가지가지의 신기하고 해괴한 일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 송년送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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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것의 개수와 무게만큼이 삶의 무게입니다.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 무소유, 1971

 

사실 책이란 한낱 지식의 매개체에 불과한 것, 거기에서 얻는 것은 복잡한 분별이다. 그 분별이 무분별의 지혜로 심화되려면 자기 응시의 여과 과정이 있어야 한다. ... 나그네길에 오르면 자기 영혼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하며 지내고 있는지, 자신의 속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요행이 단수한 취미일 수만은 없다. 자기 정리의 엄숙한 도정이요,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하는 그러한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을 하직하는 연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나그네 길에서, 1971

 

사람은 오래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로 떠오른다. - 잊을 수 없는 사람,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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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G. 해머튼은 "청춘이 아름다운 것은 그 시기가 길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지만...

 

세상이 뭐가 그리 마음에 안들었는지,

세상은 시인을 왜 그리 빨리 보냈는지,

스물 아홉, 그 짧은 청춘의 끝자락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눈이 쏟아질 듯하다. (1988.11) 詩作 메모

 

 

 

오래 된 書籍(서책) / 기형도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

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속에서, 텅 빈 희망 속에서

어찌 스스로의 일생을 예언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분주히

몇몇 안 되는 내용을 가지고 서로의 기능을

넘겨보며 書標(서표)을 꽂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너무 쉽게 살았다고

말한다, 좀더 두꺼운 추억이 필요하다는

 

사실, 완전을 위해서라면 두께가

문제겠는가? 나는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

죽음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 경력은

출생뿐이었으므로, 왜냐하면

두려움이 나의 속성이며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용기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보라

 

나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하지만 그 경우

그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

거짓과 참됨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

꿈꾸어야 한다, 단

한 줄일 수도 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포도밭 묘지 2 / 기형도

 

아아, 그때의 빛이여. 빛 주위로 뭉치는 어둠이여. 서편 하늘 가득 실신한 청동의 구름떼여. 목책 안으로 툭툭 떨어져내 리던 무엄한 새들이여. 쓴 물 밖으로 소스라치며 튀어 나오던 미친 꽃들이여. 나는 끝을 알 수 없는 질투심에 휩싸여 너희들을 기다리리. 내 속의 모든 움직임이 그치고 탐욕을 향한 덩굴손에서 방황의 물기가 빠질 때까지.

 

밤은 그렇게 왔다. 포도압착실 앞 커다란 등받이의자에 붙어 한 잎 식물의 눈으로 바라보면 어둠은 화염처럼 고요해지고 언제나 내 눈물을 불러내는 저 깊은 공중들. 기억하느냐, 그 해 가을 그 낯선 저녁 옻나무 그림자 속을 홀연히 스쳐가던 천사의 검은 옷자락과 아아, 더욱 높이 흔들리던 그 머나먼 주인의 임종. 종자여, 네가 격정을 사로잡지 못하여 죽음을 환난과 비교한다면 침묵의 구실을 만들기 위해 네가 울리는 낮은 종소리는 어찌 저 놀라운 노을을 설명할 수 있겠느냐. 저 공중의 욕망은 어둠을 지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종교는 아직도 지상에서 헤맨다. 묻지 말라, 이곳에서 너희가 완전히 불행해질 수 없는 이유는 신이 우리에게 괴로워할 권리를 스스로 사들이는 법을 아름다움이라 가르쳤기 때문이다. 밤은 그렇게 왔다. 비로소 너희가 전생애의 쾌락을 슬픔에 걸 듯이 믿음은 부재(不在) 속에서 싹트고 다시 그 믿음은 부재의 씨방 속으로 돌아가 영원히 쉴 것이니, 골짜기는 정적에 싸이고 우리가 그 정적을 사모하듯이 어찌 비밀을 숭배하는 무리 많지 않으랴. 밤은 그렇게 노여움을 가장한 모습으로 찾아와 어두운 실내의 램프불을 돋우고 우리의 후회들로 빚어진 주인의 말씀은 정신의 헛된 식욕처럼 아름답다, 듣느냐, 이 세상 끝간곳엔 한 자락 바람도 일지 않았더라. 어떠한 슬픔도 그 끝에 이르면 짖궂은 변증의 쾌락으로 치우침을 네가 아느냐. 밤들어 새앙쥐를 물어뜯는 더러운 달빛 따라가며 휘파람 부는 작은 풀벌레들의 그 고요한 입술을 보았느냐. 햇빛은 또 다른 고통을 위하여 빛나는 나무의 알을 잉태하느니 종자여, 그 놀라운 보편을 진실로 네가 믿느냐.

 

 

 

 

비가2 - 붉은 달 / 기형도

1

그대, 아직 내게

무슨 헤어질 여력이 남아 있어 붙들겠는가.

그대여, X자로 단단히 구두끈을 조이는 양복

소매끈에서 무수한 달의 지느러미가 떨어진다.

떠날 사람은 떠난 사람. 그대는 천국으로 떠난다고

장기 두는 식으로 용감히 떠난다고

짧게 말하였다. 하늘나라의 달.

 

2

너는 이내 돌아서고 나는 미리 준비해둔 깔깔한 슬픔을 껴입고

돌아왔다. 우리 사이 협곡에 꽂힌 수천의 기억의 돛대, 어느 하나에도

걸리지 못하고 사상은 남루한 옷으로 지천을 떠돌고 있다. 아아 난간마다 안개

휘파람의 섬세한 혀만 가볍게 말리우는 거리는

너무도 쉽게 어두워진다. 나의 추상이나 힘겨운 감상의 망토속에서

폭풍주의보는 삐라처럼 날리고 어디선가 툭툭 매듭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차피 내가 떠나기 전에 이미 나는 혼자였다. 그런데

 

너는 왜 천국이라고 말하였는지. 네가 떠나는 내부의 유배지는

언제나 푸르고 깊었다. 불더미 속에서 무겁게 터지는 공명의 방

그리하여 도시, 불빛의 사이렌에 썰물처럼 골목을 우회하면

고무줄처럼 먼저 튕겨나와 도망치는 그림자를 보면서도 나는

두려움으로 몸을 떨었다.

떨리는 것은 잠과 타종 사이에서 비틀거리는 내 유약한 의식이다.

책갈피 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우리들 창백한 유년, 식물채집의 꿈이다.

여름은 누구에게나 무더웠다.

 

3

잘 가거라, 언제나 마른 손으로 악수를 청하던 그대여

밤 세워 호루라기 부는 세상 어느 위치에선가 용감한 꿈 꾸며

살아있을 그대.

잘가거라 약기운으로 붉게 얇은 등을 축축이 적시던 헝겊같은

달빛이여. 초침 부러진 어느 젊은 여름밤이여.

가끔은 시간을 앞질러 골목을 비어져나오면 아,

온통 체온계를 입에 물고 가는 숱한 사람들 어디로 가죠? (꿈을 생포하러)

예? 누가요 (꿈 따위는 없어) 모두 어디로, 천국으로

 

세상은 온통 크레졸 냄새로 자리잡는다. 누가 떠나든 죽든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 살아있으라, 누구든 살아있으라.

턱턱, 짧은 숨쉬며 내부의 아득한 시간의 숨 신뢰하면서

천국을 믿으면서 혹은 의심하면서 도시, 그 변증의 여름을 벗어나면서.  

 

 

 

 

소리의 뼈 / 기형도

 

김 교수님이 새로운 학설을 발표했다

소리에도 뼈가 있다는 것이다

모두 그 말을 웃어넘겼다, 몇몇 학자들은

잠시 즐거운 시간을 제공한 김 교수의 유머에 감사했다

학장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은 일학기 강의를 개설했다

호기심 많은 학생들이 장난삼아 신청했다

한 학기 내내 그는

모든 수업 시간마다 침묵하는

무서운 고집을 보여주었다

참지 못한 학생들이, 소리의 뼈란 무엇일까

각자 일가견을 피력했다

이군은 그것이 침묵일 거라고 말했다.

박군은 그것을 숨은 의미라 보았다

또 누군가는 그것의 개념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모든 고정관념에 대한 비판에 접근하기 위하여 채택된

방법론적 비유라는 것이었다

그의 견해는 너무 난해하여 곧 묵살되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 다음 학기부터 우리들의 귀는

모든 소리들을 훨씬 더 잘 듣게 되었다.

 

 

 

 

오마르 카이얌, <루바이아트>

 

우리 모두 오고 가는 이 세상은

시작도 끝도 본시 없는 법!

묻는들 어느 누가 대답할 수 있으리오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를! (김병옥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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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정의롭게 사는 일은 스스로가 비난하는 다른 사람의 행위를 하지 않으면 된다. 

사회가 정의롭기 위해서는 정부와 사법, 의회, 언론, 재벌 등 권력집단이 힘의 논리가 아닌 법과 원칙, 상식에 맞게 권력을 사용해야 한다. 정의가 소수의 저항이 될 때, 사회의 정의는 무너진 것이다.

 

 

정의(正義) 1. (명사)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 2. (명사) 바른 의의(意義). 3. (명사) 철학 개인 간의 올바른 도리. 또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 4. 철학 플라톤의 철학에서, 지혜ㆍ용기ㆍ절제의 완전한 조화를 이르는 말.

[유의어] 정당, 도리

[반의어] 불의

 

(네이버 영어사전) (바른 도리) justice, (formal) righteousness      

정의를 위해 싸우다 fight for justice

정의를 위해 싸우다 fight in the cause[for the sake] of justice

정의를 옹호하다 defend what is right

정의 사회를 구현하다 realize a just society[society of justice]

정의는 우리 편이다 Right and justice are on our side.

정의는 결국 승리한다 Right will prevail in the end.

정의는 결국 승리한다 Justice prevails in the end.

 

 

 

[시, 글과 책 속에 쓰인 '정의'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

 

 

김용규, <생각의 시대>

가장 올바르고 정의롭게 사는 일은 "우리가 비난하는 다른 사람의 행위를 우리 스스로 하지 않으면 된다"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이 더 편안하게 잠을 자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남의 일에 아랑곳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정의로운 사람들은 매사에 걱정이 많아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정의로운 사람들이 아닐 것이다.

 

 

이정우, <개념: 뿌리들>

플라톤에게는 영혼의 세 가지 힘이 존재합니다. 하체(욕망, 생산자 계층), 어깨(의지/열정의 삶을 살게 하는 기개, 전사 계층), 머리(이성, 지도자 계층)... 이렇게 세 계층이 가져야 할 덕이 절제, 용기, 지혜입니다만, 마지막에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덕을 모두 전제하면서 동시에 이 세 가지를 통일적으로 조화시켜 주는 것이 마자믹 네번째 덕으로서 바로 정의인 것이죠. 특정한 영혼, 특정한 계층이 아니라 영혼의 모든 측면에, 그리고 사회의 모든 계층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정의입니다. 플라톤은 이렇게 세 개의 특수한 덕(절제, 용기, 지혜)에 하나의 일반적 덕(정의)을 추가해 덕론을 전개했는데, 그래서 이를 플라톤의 '사주덕'이라 부릅니다.

 

오늘날 정의란 바로 소수자들의 저항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헨리 조지, <진보와 빈곤>

정의는 두 사물 사이에 내재하는 조화로운 관계이다. 이 관계는 신이든, 천사든, 인간이든 어떤 존재가 보더라도 동일하다. - 몽테스키외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고대의 정의론은 미덕에서 출발하는 반면 근현대의 정의론은 자유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도 있다.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것들을 올바르게 분배한다.

 

미국 정치철하자 존 롤스는 <정의론>이라는 책에서, 정의를 고민하는 올바른 방법은 원초적으로 평등한 상황에서 어떤 원칙에 동의해야 하는가를 묻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롤스가 생각한 사회계약은 이처럼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서 이루어지는 가언합의다. 롤스는 이 가언계약에서 정의의 원칙 두 가지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언론의 자유와 종교의 장 같은 기본 자유를 모든 시민들에게 평등하게 제공한다는 원칙이다. 이는 사회적 공리나 일반적 행복에 앞선다. 두 번째는 사회적, 경제적 평등과 관련한 원칙이다. 이것은 소득과 부를 똑같이 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인정한다면, 그 이익이 사회 구성원 가운데 가장 어려운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마시모 피글리우치, <그리고 나는 스토아주의자가 되었다>

소크라테스와 스토아주의자들에게 정의란 사회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느냐에 관한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다른 인간들을 존엄하고 공정하게 대우하는 실천을 가리킨다.

 

정의: 건강한 공동체 생활의 기초가 되는 시민적인 힘. 이의 사례들로는 공정성, 지도력, 시민 정신 혹은 협동 정신 등이 포함된다.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이건 상관없이 모든 인간을 공정하고 친절하게 대우하기.

 

 

E. F. 슈마허, <작은 것이 아름답다>

우리는 이토록 폭넓은 지혜에 기초해서만 정의와 용기, 그리고 절제에 도달할 수 있다. 절제란 적절한 선에서 만족할 줄 아는 것이다. "지혜란 진리에 대한 인식을 현실에 부합되는 의사결정으로 변형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정의가 진리와 연결된다면, 용기는 선과 연결되며, 절제는 미와 연결된다. 반면에 지혜는 어떤 의미에서 이 세 가지를 모두 포함한다.

 

 

유시민, <국가란 무엇인가>

진보정치는 국가로 하여금 최고의 도덕적 이상인 정의를 실현하도록 하기 위해 국가를 직접 운영하거나 국가운영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활동이다. 국가의 정의는 시민들로 하여금 각자가 마땅히 가져야 할 것을 받게 만드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똑같이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을 만인으로 하여금 누리게 하고, 각자가 마땅히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을 저마다 받게 만드는 것이 국가가 사람들 사이에 세워야 할 정의이다. 국가가 최고의 도덕적 이상인 정의를 완벽하게 실현한다면, 우리는 자유롭고 풍요로우며, 평등하고 안전하며, 평화롭고 환경이 깨끗한 사회에서 살게 될 것이다.

 

 

리처드 니스벳, <생각의 지도>

평균적으로 동양인과 서양인 사이에는 매우 큰 사회심리적 차이가 존재한다. 동양인들은 상호의존적인 사회에서 살기 때문에 자기(self)를 전체의 일부분으로 생각하지만, 서양인들은 독립적인 사회에서 살기 때문에 자기를 전체로부터 독립된 존재로 여긴다. 동양인들에게 있어서 성공과 성취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영광을 의미하나, 서양인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개인의 업적을 의미한다. 동양인들은 인간 관계 속에 조화롭게 '적응'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기비판을 하지만, 서양인들은 개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동양인들은 타인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인간 관계의 조화를 추구하지만, 서양인들은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고 인간 관계를 희생해서라도 정의를 추구한다. 동양인들은 위계 질서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집단의 통제를 수용하지만, 서양인들은 형평성을 존중하고 개인의 자유를 선호한다. 동양인들은 모순과 논쟁을 회피하지만 서양인들은 법률, 정치, 과학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으로 논쟁을 끌어들인다. 동양과 서양 사이의 차이가 동양 사람과 서양 사람 모두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서양 사회에도 동양인과 비슷한 사람이 있고, 동양 사회에도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서양인에 더 가까운 사람이 있다. 또한 나이가 들면서 한 개인의 특성이 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 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평균적으로 보았을 때 동양인과 서양인 사이에 큰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소노 아야코, <약간의 거리를 두다>

세상은 모순투성이다. 그리고 이 모순은 인간에게 생각하는 힘을 준다. 모순 없이 만사가 계산대로 척척 진행되었다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처치 곤란한 장애물이 되었으리라고 확신한다. 생각이라는 게 필요 없을 만큼 세상이 공리적이고, 그래서 신앙과 철학이 무의미하며 정의가 완수되어 불만이 사라진 세계는 행복할 리 없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이 인간답게 숭고해질 수 있는 까닭은 세상이 매우 불완전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정의는 행해지지 않고 약육강식이 난무하며, 사람들은 권력과 금전에 수시로 유혹을 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에 저항하고자 보다 인간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조지 오웰, <위건 부두로 가는길>

우리가 함께 목표로 삼고 단결할 수 있는 이상은 사회주의의 바탕이 되는 이상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정의와 자유다. 허나 이런 이상은 거의 완전히 잊어버려 '바탕'이란 말을 쓸 수도 없는 지경이다. 이 이상은 이론 일변도의 독선과 파벌 다툼과 설익은 '진보주의'에 층층이 묻혀버렸다. 똥더미 속에 감춰져버린 다이아몬드가 되어버린 셈이다. 사회주의자가 할 일은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정의와 자유 말이다! 이 두 마디야말로 온 세계에 울려퍼져야 하는 나팔소리이다.

 

 

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약자와 강자 사이에서는 자유가 억압이며 법이 해방이다." - 장 자크 루소, <사회계약론>. 

시장의 완전한 자유는 억압과 착취와 죽음을 의미한다. 법칙은 사회정의를 보장한다. 세계시장은 규범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것은 민중의 집단적인 의지를 통해 마련되어야 한다.

 

 

유시민, <청춘의 독서>

사회 정의와 평등을 주시하는 진보주의자들이 다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데는 확실히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 자체가 아니라 보수주의의 기초를 이루는 맬서스와 스펜서의 사회진화론, 경쟁과 적자생존을 예찬하고 정당화하는 그 이론을 싫어하는 것이다.

 

 

린위탕(임어당), <생활의 발견>

이해를 동반치 않는 지식, 감상을 동반치 않는 비판, 사랑을 동반치 않는 미, 정열을 동반치 않는 진리, 자비를 동반치 않는 정의, 온정을 동반치 않는 예의가 판을 치는 이 세상은 얼마나 비참한 세상이냐!

 

 

공자, 임자헌 옮김, <군자를 버린 논어>

세상과 삶의 이치를 깨우친 지성인은 세상의 모든 것, 모든 일에 대해서 꼭 이래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없고, 절대 이래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저 오직 정의를 기준으로 거기에 따라 갈 뿐이죠.

 

됨됨이가 된 사람은 정의에 밝고 됨됨이가 시시한 사람은 잇속에 밝다.

 

경제는 그 첫발을 부의 총량 이라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분배의 관점에서 떼어야 한다. 분배는 사회적인 안정과 직결된다. 분배의 정의가 확립되어야만 국민들은 마음으로부터 자기 나라 지도자를 신뢰하고 좋아하게 된다.

 

 

애덤 스미스 원저, 러셀 로버츠 지음,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인간의 삶이 비참하고 혼란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소유물이 곧 나 자신이라 착각하기 때문이다. ... 무언가를 격렬하게 바라는 상황들 중 비교적 바람직한 상황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신중의 원칙, 정의의 원칙을 위반하면서까지 격정적인 욕망을 가질 만한 상황은 없다.

 

스미스는 정의를 두고 타인에게 피해, 혹은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나쁜 짓을 하지 않는 미덕, 즉 소극적인 미덕을 말한다. 유대 현인 힐렐도 수천 년 전에 '내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타인에게 하지 말라'고 말한 바 있다.

 

스미스는 정의의 원칙을 지킬 때는 아주 엄격하고 정확하게 지키라고 조언했다. 어떠한 예외나 수정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정의의 원칙들을 아주 정확하게 지킬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삶에서도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

 

정의의 원칙은 문법의 규칙에 비교할 수 있다. 반면 그 외의 다른 미덕에 관한 원칙들은 비평가들이 고상하고 격조 높은 문장을 쓰는데 필요하다고 얘기한 규칙과도 같다. 전자는 정밀하고 정확하고 필수불가결하다. 그에 비해 후자는 모호하고 명확하지 못하다. 또한 후자는 우리가 완벽을 추구할 때 필요한 정확한 지침을 주지 못한다. 단지 완벽함에 대한 추상적인 관념을 제시해줄 뿐이다.

 

 

도정일,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

가치의 다양성을 살리는 것이 인간의 삶을 훨씬 더 풍요롭게 하는 문화적 선택이며, 정의로운 사회의 길이라는 사실을 세계는 점점 더 깊게 인식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관용의 문화 없이는 어떤 문명도 공존의 정의를 실현시킬 윤리적 토대를 갖지 못한다. 그러나 패권주의자들에게 차이의 존중, 사랑, 관용이라니, 얼마나 허약해 보이는 제안이가!

 

 

오쿠다 히데오, <남쪽으로 튀어>

어느 누구에게도 지배받으려 하지 않고 혼자 국가에서 튀어나와 살아가겠다니, 그건 너무 자기 멋대로인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국가가 정의라고도 할 수 없었다. 튀어나갈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배자의 생각이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주 작고 작아. 이 사회는 새로운 역사도 만들지 않고 사람을 구원해주지도 않아. 정의도 아니고 기준도 아니야. 사회란 건 싸우지 않는 사람들을 위안해줄 뿐이야.

 

 

도정일,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인간의 유한성의 프레임에 갇혀 있기 때문에 모든 일들에 같은 양의 시간을 투입하거나 동일한 중요성을 둘 수가 없다. 그는 가치 있는 일, 중요한 일들과 그렇지 않은 일들을 분별하면서 자신의 유한한 시간을 배분해야 한다. 중요한 일들 중에서 세상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동의할 만한 세 가지 '큰일'을 고른다면 무엇일까? 첫째는 의미없는 곳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 둘째는 희망 없는 곳에 희망을 주입하는 일, 셋째는 정의가 없는 곳에 정의를 세우는 일이다.

이들 큰일의 첫번째 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무의미성의 도전'에 대한 대응이고, 두번째 것은 '지옥의 조건에 대한 거부'이며 세번째 것은 '야만에 대한 저항'이다. 의미, 희망, 정의는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세 개의 지주와도 같다.

 

 

스티브 디거, <잠들기 전에 읽는 긍정의 한줄>

쓸모없는 것은 없다 (소크라테스, Socrates). 바르게, 아름답게, 정의롭게 사는 것, 이것은 모두 하나다. Living well and beautifully and justly are all one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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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니, 티티카카, 마추픽추, 이과수 폭포, 토레스 델 파이네 그리고 쿠바....

나를 포함한 어떤 사람들의 버킷 리스트에 있을 남미 여행!

 

허소라 작가는 <남미의 101가지 매력>을 쓴 박재영(하늘호수) 작가와 같은 그룹사에 근무했다는 것, 순서는 다르지만 남미 여행과 퇴사, 그리고 여행 작가와 남미 전문 가이드의 삶... 비슷한 이력의 두 사람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하게 되면 오감이 열리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게 된다. - 미쉘 옹프레, <철학자의 여행법>

 

"시간이 죽지 않는 삶은 멋진 것입니다. 항상 문이 있기에, 사랑만이 채울 수 있는 문이 있기에." - 영화, <시간의 춤>

 

"A great way to learn about your country is to leave it." - Henry Rollins

 

나는 침묵이 사랑의 필수 요소라는 점에 동의한다. 언어는 너무나 많은 것을 파괴한다. 그런 점에서 여행도 사랑도, 가끔은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 ... 언어를 뛰어넘는. -- 본문 중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64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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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세 겹의 노예다. 신을 만들어 종교의 노예가 되었고, 국가를 만들어 권력의 노예가 되었고, 돈을 만들어 황금의 노예가 되었다. 거기다가 네 번째로, 핸드폰을 만들어 스마트폰의 노예가 되었다." - 조정래, <천년의 질문1>

 

스마트폰의 편리함, 그리고 부작용도 있다. 스마트폰은 신체의 일부가 될지도 모른다.

 

 

[본문 발췌]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다." - 스티브 잡스

 

역사의 발전에는 예외가 없고 인류의 자발적 선택에 기반한 진화에는 역변이 없습니다. 그것이 글로벌시장 변화가 전하는 혁명의 메시지입니다.

 

차이는 기술이 아니라 경험입니다.

 

문명의 표준이 바뀌면 그에 따라 상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아직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많은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다행이 소비자가 눈치채지 못했다고 해도 그런 기업은 지속 성장할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부지런히 바꾸고 변화해야 합니다.

 

디지털 플랫폼에 기반한 비즈니스는 고객의 자발적 선택과 팬덤에 의해 성장합니다. 그래서 이제 디지털 소비 문명에 익숙한 소비자를 잘 이해하고 그들이 원하는 기능을 잘 구축할 수 있는 기업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대기업은 정교한 시스템을 갖고 장기적인 계획에 의해 움직이는 특성을 갖고 있어, 소비자가 디지털 플랫폼에서 원하는 걸 즉각적으로 대처하는 데는 아무래도 대응력이 떨어집니다. 반면 창업부터 오로지 디지털 플랫폼에 매달려 살아온 벤처기업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소비자의 피드백에 순발력 있게 대응하는 게 필수였습니다. 그래서 성공적으로 고객을 확보한 벤처들은 실시간 고객 대응 능력이 뛰어나고 그 힘으로 더 많은 고객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습니다.

 

사실 플랫폼 광고는 이미 데이터를 기반으로 움직인 지 오래입니다. 많은 대기업들의 광고가 기존 미디어 플랫폼에서 온라인 미디어 플랫폼으로 대거 이동했고, 또 지속적으로 이동 중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TV광고를 유튜브에 올려놨더니 보는 사람도 많지 않고, 광고 효과도 TV에 비해서는 미미했던 것입니다. 원인은 미디어 소비 문명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한 데 있었습니다. 포노 사피엔스들은 TV와 신문에 익숙한 세대와는 미디어 소비의 방식도, 콘텐츠 특성도 아주 다릅니다. 그러니 기존방식으로 제작된 광고를 자꾸 떠먹여봤자 효과가 나지 않는 겁니다. 이들은 무엇을 사야 한다고 강요하는 광고에 대해 그리 익숙하지 않은 세대입니다. 광고가 매출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조직의 DNA가 소비자 중심으로 바뀌어야 하는 이유는 팬덤을 만드는 킬러콘텐츠 때문입니다. 포노 사피엔스 소비자들은 광고에 의한 소비보다 자발적 팬덤에 의한 소비를 더 즐깁니다. 따라서 디지털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성공 여부는 팬덤에 의해 결정됩니다. 소비자 빅 데이터를 끊임없이 학습하는 이유도 소비자의 욕구를 분석해 성공 요인을 찾아 킬러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빅 데이터를 열심히 분석한다고 해서 누구나 킬러콘텐츠를 개발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다만 분명한 건, 소비자와의 공감대가 클수록 킬러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확률은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미 성공한 기업의 전략을 벤치마킹하면 성공 확률은 더욱 높아집니다. 그래서 디지털 문명에서는 카피가 상식이 되어 있습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593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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