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가장 소중하면서도 일상에서는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세 가지. 

물, 공기, 그리고 시간. 흔한 것 같지만 오염되거나 부족함을 느낄 때는 삶에서 없어서는 안될 가장 소중한 것이다.


그 중 시간에 대해 두 번째 이야기를 해보자.


토머스 프레이의 <미래와의 대화> 중에 "종말을 알리는 이정표가 빠른 속도로 우리를 향해 돌진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시간의 존재를 실감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릴 적 시험보기 전이나 중요한 일을 앞두고 하는 "벼락치기", "초치기"가 더 친숙한 표현이지 싶다.


이 시간을 어떻게 배분하고 활용하는지는 인생의 행복과 성공(성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예병일의 <경제노트> 중에 빌 게이츠는 버핏을 보며 '의미 없는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와 본인의 시간 중 '생각하는 시간'이 얼마나 적은지를 깨닫고, 이후에는 중요한 일에만 집중하고, 나머지 불필요한 일들에 대해서는 '노'를 선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정말 의미 있는 것만 선택하고 나머지는 버리는 것이 진정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결실도 가져다 준다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재테크 투자 방법 중에도 시간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장사의 기본인 쌀 때 사서 비 쌀 때 파는것. 투자에서는 본질 가치보다 싸다고 판단되는 시점에서 분할 매수하여, 본인의 수익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파는 것을 이야기 한다.


우리는 이 시간을 얼마나 잘 사용하고 있는가? 그 소중함을 알고 힘을 알아야 잘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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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델 베리의 이야기는 한결 같다.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 조화로운 삶을 살자. 우리는 경제 발전이란 목표가 삶을 윤택하게 해줄거라 믿고 달려가고 있지만 현실은 착취와 파괴로 향하고 있다.

우리 자신의 삶 뿐 아니라 후세를 위해서도 이러한 삶의 방식과 가치관은 바뀌어야 한다.


<이하 본문에서 발췌>


오만한 무지는 세계화 경제를 장려하면서도 그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세균과 질병의 국제적 확산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오만한 무지는 평화에 대해서는 고려하지도 않고 무조건 전쟁을 일으킨다. 오만한 무지의 징표는 큰 규모로 일을 벌이려다 지나친 위험을 초래하는 것이다. 오만한 무지는 나쁜 결과를 예측하지 못한다. 모든 행동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만한 무지는 투자된 자본에 눈이 멀어 나쁜 결과를 예측하려 들지도 않는다. p20


기업은 단순히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덩치를(이윤을) 키우기 위해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피해는 언제나 대중에게, 자연에게, 우리의 미래에 떠넘긴다. p28


양에 대한 무제한의 욕망에 굴복하는 행위는 귀중한 것을 모조리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삶을 전체에 포함시킬 때만 누릴 수 있는 형태적 완전성과 품위와 아름다움에 대한 희망을 모두 포기해야 하며, 영원히 미완성이고 불완전하며 탐욕스러운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우리 삶이 상상에 의해 완전해질 수 있는 하나의 인공물이라는 자각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p50


과학이 인간과 토지 사이의 연결 고리가 될 수 있으니 농촌 공동체의 지식과 문화를 과학으로 대체해도 무방하다는 가정은 이제 공식적인 강령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과학은 자본과 이윤의 연결 고리 기능을 한다. 전문가로서 주도권을 가지려면 지역 지식, 즉 평범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지식과 경험을 포기하거나 믿지 않아야 한다고 여겨진다. 그 결과 지역 지식은 경쟁력을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지역 주민의 지혜를 잃고 있다. 이제는 어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정부, 기업, 대학에서 전문가를 불러오는 것이 가장 올바른 방법으로 간주된다. 그 전문가는 중심에서 고안한 물리학이나 화학의 최신식 해법을 추천할 것이다. 경제의 토대가 토지에서 정보로 바뀌었듯이, 노동의 토대가 지혜에서 자본으로 바뀌는 것이다. 물론 전문가들이 추천한 해결책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만 한다면 이것도 괜찮다. 하지만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사태가 악화되거나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건전 과학'과 기술 발전을 기업의 손에 맡겨두는 동안 우리의 농업은 갈수록 독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유전자 및 종자의 개수와 다양성은 줄어들고 있다. 대수층과 강물이 고갈되고, 농촌 공동체가 죽어가며, 토지와 농산물의 건강 상태도 갈수록 나빠지는 실정이다. 또한 식품 공급은 장거리 운송과 외국인 노동자에게 더 의존하게 되고, 우리가 마시는 물은 질이 점점 더 나빠지며, 멕시코 만에 있는 '죽음의 해역'은 더욱 넓어지고 있다. p140


나는 소통communication보다 대화conversation를 더 좋아한다.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경험하는 바와 같이 소통은 하나의 방향으로, 즉 중심에서 주변으로만 이루어진다. 그러나 대화는 양방향으로 이루어진다. 대화에서는 정보가 오간다. 소통과 달리 대화는 미리 예측해서 준비할 수가 없고, 말이 오가는 도중에 내용이 바뀌기도 한다. 대화를 시작하는 사람도 어떻게 끝날지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대화를 할 때는 참가자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언제나 사람들이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내가 생각하는 '대화'란 둘 이상의 사람들이 서로에게 무언가를 알려주기 위해 말을 주고받는 행동이다. 방송국의 토크쇼나 시청자 전화 참여 프로그램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런 식의 대화는 참여하지 않는 시청자에 의해 소비되는 상품일 따름이다.) p145


농사일이란 생명체와 같아서 다른 것과 달리 정보와 지식과 언어를 통한 소통이 쉽지 않다. 농사는 단순히 과학을 지역에 적용하는 문제가 아니라, 지역에 맞는 기술과 생활을 지역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농부는 똑같은 노동을 물리도록 반복해야 하는 직업이기에 농사일은 책으로 배울 수 없다. 다른 누군가에게 농사짓는 법을 '말'로 가르쳐 줄 수도 없다. ... 세상에는 소통이 불가능한 지식, 오직 경험과 협력을 통해서만 습득할 수 있는 지식이 분명히 존재한다. p149


책표지를 클릭하시면 창을 닫습니다.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35208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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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 제목을 접하고, 이 건 뭐지?

그러나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주제와 이야기 전개 방식은 신선하면서 내용의 무게를 가지고 있다.

선, 질, 가치라는 관념의 세계와 모터사이클 관리라는 실체를 넘나들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통해 삶의 회의나 슬럼프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 아닐까 싶다.


[발췌]


우리에게 즐거운 시간을 재는 척도란 '시간' 보다는 '즐거운'에 역점이 맞춰진 것이다. 이처럼 역점을 달리하면 사물에 접근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꾸불꾸불한 언덕길이 시간적으로는 더 걸릴지 모른다. 하지만 길이 꾸부러질 때마다 정해진 공간 안에서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는 자동차 대신, 몸을 옆으로 기울이기만 하면 되는 모터사이클을 타고 여행할 때는 그러한 꾸불꾸불한 길이 한결 더 즐거운 여행길이 된다. 교통량이 적으면 적을수록 여행길은 더욱더 즐거워지게 마련이며, 게다가 안전해지기까지 한다. 근처에 휴게소나 옥외 광고판이 없을수록 좋은 길이며, 작은 숲이나 초원, 과수원이나 잔디가 갓길에 가급적 맞닿아 있을수록 더 좋은 길이다. 그런 길로 여행을 하다 보면, 지나가는 도중 손을 흔들어주는 아이들과 만나거나 누가 지나가는지를 현관에서 바라보는 사람들과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길을 묻기 위해 멈추었을 때 바라던 것보다도 한결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사람들과 만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어디에서 왔는지 얼마 동안 여행을 하고 있는지를 물어보는 사람들과도 만날 수 있다. p26


때때로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목적지를 향해 여행하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다. p213


매끄럽고 고른 변화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재료와 장인의 생각은 함께 변화하여, 마침내 재료가 적절한 것이 되는 바로 그 찰나에 그의 마음은 평화에 이르게 된다. 진정으로 우리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고 있을 때, 우리 모두는 그와 같은 순간들을 경험하곤 한다. p524


다른 모든 과제를 수행할 때 그러하듯, 모터사이클을 놓고 작업을 할 때 해야 할 일은 마음의 평화를 계발하여 자신의 자아와 자신의 주변 환경이 분리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때 그 이외의 다른 모든 것들은 자연스럽게 뒤따르게 된다. 마음의 평화는 올바른 가치를 낳고, 올바른 가치는 올바른 생각을 낳는다. 올바른 생각은 올바른 행동을 낳고, 올바른 행동은 고요함이 물질적으로 현현(顯現)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그런 작업-즉, 누가 보더라도 확연히 감지할 수 있을 만큼, 모든 것의 중심부에 고요함이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작업-을 낳는다. ... 만일 우리가 세계를 개혁하고자 한다면, 그리하여 이를 좀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이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우선 정치적 성격을 띤 인간관계를 논의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인간 관계는 주체와 객체 및 양자 사이의 관계로 가득 찬 것, 필연적으로 이원론적인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오로지 개개인의 가치가 올바를 때만 사회적 가치는 올바른 것이 된다. 세계를 더 나은 것으로 만드는 일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우선 우리 자신의 마음과 머리와 손이고, 여기에서 시작하여 외부를 향해 작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p526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3202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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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르고 읽는 방식은 사람마다 익숙한 방법, 또는 방식이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예전에는 손에 잡히는데로  눈에 띄는 데로 책을 읽었다.

그 마저도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생활을 시작하고서는 업무와 관련된 책이 아니면 거의 읽지도 않은 것 같다.


2010년 경부터 다시 책 읽는 것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한권을 완독한다는게 정말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나의 책읽기 방법 중 한 가지를 소개한다.


사람과의 관계는 혼자서 넓히는 경우도 있지만 사람이 디딤돌이 되서 관계를 넓히는 경우가 있다. 책도 마찬가지로 어떤 책을 읽고 그 책에 인용되거나 소개된 책이나 저자를 찾아 넓혀나가는 책읽기 방식이 있다.


나의 경우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법정 스님의 <살알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김훈의 <자전거 여행> 등으로 연결되고 그 책이 또 다른 책을 읽고 싶게 만들어 독서량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마찬가지로 이희인 <여행자의 독서>에서도 마찬가지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이제는 어느 책을 통해 소개 받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좋은 책은 다른 좋은 책으로 관계를 넓혀준다.


그렇게 읽었던 책들이,


법정,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김홍신, <인생사용설명서>

헬렌/스콧 니어링 부부, <조화로운 삶>

클레이튼 크리텐슨,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버트런드 러셀,<게으름에 대한 찬양>

박노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E. F. 슈마허, <작은 것이 아름답다>

박웅현, <책은 도끼다>

김훈, <자전거 여행>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리 호이나키,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그리스인 조르바>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베르나르 올리비에, <나는 걷는다>

윤태호, <미생>

헬라레나 노르베리 호지, <오래된 미래>

가와구치 요시카즈, <신비한 밭에 서서>

제인 구달, <희망의 밥상>

빌 브라이슨, <나를 부르는 숲>

와타나베 이타루, <신비한 밭에 서서>

장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

미하엘 엔데, <모모>

제러미 리프킨, <소유의 종말>

니콜라스 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아잔 브라흐마, <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린위탕, <생활의 발견>


....... 여기에 다 적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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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만한 여행자들의 가방에는 책이 들어있고, 여행 중간의 잠깐의 휴식에는 책을 읽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여행과 독서는 이렇게 항상 함께 하면서 새로운 경험과 변화를 이어주는 도구로 작용하는 것 같다.


여기 여행자의 독서에 관한 책 한 편을 읽고 마음에 와 닿는 글들을 발췌해 본다.


[발췌]


* 탐험가와 독서가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지적 호기심에서 우열을 가릴 수 없습니다. 문을 박차고 나가 그곳에 직접 발을 딛느냐, 아니면 책상머리에 앉아서 노골적인 인용과 은밀한 표절로 세계상을 그려보냐 하는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과장이라 생각하시나요? 탐험, 열정, 각성은 여행과 독서가 공유하는 열쇳말입니다. - <들어가는 말 중>


* 사람이란 얼마나 어리석은 동물인지 정주하는 동안에는 깨달음을 얻지 못합니다. 멀리 가서 보아야 비로소 자신의 민낯을 바로 보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큰 변화를 겪습니다. 종교인이나 문인들이 여행을 일삼아 떠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터입니다. - <들어가는 말 중>


<여행할 권리>, 김연수

* 여행은 권리가 되어야 마땅하다.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것, 더 나은 것을 꿈꾸는 것, 고여 썩지 않고 흐르는 것은 우리의 천부적인 권리이므로...

* 권리로서 여행이란, 달리 말하면 월경하기다. 경계를 넘어선다는 말처럼 매력 넘치면서 위험한 것이 어디 있던가. 한발만 넘어서면 꿈에도 그린 곳이기는 하나 낯설어 두려운 곳이 펼쳐진다. 그 역설에서 호기심과 탐험심이 발동하는 법이고 여행이 시작된다. 새로운 곳으로 발 딛기는 존재의 전환 가능성을 상징한다.

*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된 자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 헤르만 헤세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은 목차가 '출발'에서 시작해 '귀환'으로 끝난다. 모든 여행이 그런 듯이. 그 사이에 '동기' '풍경' '예술'이 있다. .... 여행은 유목과 같지만 다르다. 떠나 방황한다는 점에서 유목이지만, 다시 돌아와 현실 문법대로 산다는 점에서 유목과 다르다. 그런데 왜 여행할까. '동기'에 나오는 대로 이국적인 것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다. 그것이 없다면 현실의 삶을 일시 중지하고 전혀 다른 삶의 문맥에 자맥질할 리 없다. 그 이국 풍경에서 여행자를 사로잡는 것은 숭고함이다. 

* 이 책에는 여행에 대한 사유의 결정체들이 가득 담겼다. 남는 거은 결국 사진뿐이라 여기는 이는 읽지 않는 것이 좋다. 여행이 더 깊은 사유를 자극하는 것이라 믿는 이라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 "상상력은 실제 경험이라는 천박한 현실보다 훨씬 나은 대체물을 제공할 수 있다." - J.K. 위스망스

* 바보는 방황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한다. - 토머스 풀러

* 왜 여행을 하는가? 어디 가서, 무엇을 보고 마실 것인지보다 왜 떠나야 하는지 고민하는 이가 돌아올 때 달라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여행 사고 셋>, 윤여일

* 어쩌면 고여 있다. 흘러 다니다, 다시 고여야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게 공부인 모양이다.

* 여행을 하면 우리는 늘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고 겪고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 무엇인가를 언어로 옮기는 일은 상당히 지난하고 위험하다. 자칫 여행기가 감상의 범람으로 넘치고 마는 일이 벌어진다. 진짜 여행기는 '금욕'의 수사학이어야만 한다. 함부로 말하지 않되, 그곳의 활력을 전하는 글은 쓰기 어렵다. 더욱이 해석하는 대목에서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번역만큼 어려운 것이 여행기 쓰기란 말이다.

* 여행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은 한 페이지만 읽은 책과 같다. - 아우구스티누스

* 여행은 번역인 셈이다. ...

첫째는 어떻게 체험을 표현할 것인가를 고민했단다. 여행기가 빠지기 쉬운 감상의 나열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사유의 실마리가 된 경험의 공유에 신경 써야 한다는 말이다. 두 번째는 보편주의와 문화상대주의 사이에서 사고를 버려내야 한단다. 경험의 고유성을 살리면서도 타문화와 맺는 의미 있는 접촉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세 번째는 타자성에 대한 물음이다. "타자는 쉽사리 만날 수 없다는 태도로써만 만날 수 있다"라는 깨달음을 담아야 한다는 뜻이다.

* 자기 체험을 소재로 삼아 거기서 생각의 자원을 건져내는 장이라는 의미에서 학문과 여행은 공동의 토대를 지닌다. 체험에 육박하지 못하고 감정으로 고양되지 못하는 학문과 여행은 생명력을 갖지 못한다. 대신 날것의 체험과 감정이라면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없다. 그리하여 자칫 지식과 개념에 걸러질 수 있는 개체의 체험과 감정을 소중히 다루되, 사변적 언어로 그 체험과 감정을 정제하지 않고 개체가 지닌 개성을 훼손하지도 않으면서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표현을 일권내야 한다. 바로 이 여행이 내게 안기는 사고의 실험리자 여행이 공부로서의 의미를 갖는 이유다.


* 사람이 여행을 하는 것은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행하기 위해서이다. - 괴테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정진국

* 책읽기를 여행으로 여기는 이는 늘 새로운 책을 찾는다. 다른 사람이 세운 전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다. 그러니, 여행하는 이들이 책 읽는 것만큼 아름다운 풍경은 없다. 힘들고 어렵고 지칠 때마다 책 읽어 힘을 내니, 여행과 책은 궁합이 제대로 맞는다. 책 읽는 이들이 잠시 책을 덮고 여행을 떠나는 것도 제격이다. 질서와 현실의 세계에서 신화와 이상의 세계로 건너가는 것에 익숙해 있으니 말이다.


<삼국유사 길 위에서 만나다>, 고운기

* 노련한 여행자에게느 정해진 계획이 없으며, 그 목적도 '도착'이 아니다. - 노자

* 알고 떠나든, 가서 비로소 알든 떠나지 않는 이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고, 오래된 지혜를 만날 수 없다. 그곳에 가면 켜켜이 쌓여 있는 이야기들을 만나 볼 것.


<천천히 걸어, 희망으로>, 쿠르트 파이페

*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여행은 여행 중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 헨리 보예

* 그는 바뀐다. 산전, 수전 두루 겪는 여행을 하며 "낙관, 희망, 미소, 흥미로운 인상, 인간적으로 깊은 만남"의 기회를 잡는다. 다른 사람의 친절을 흔쾌히 받아들이게 된 것도 큰 변화다. 그는 처음에는 물병을 채워주거나 먹을거리를 주거나 잘 곳을 마련해주면 거절하거나 돈으로 갚으려 했다. "누가 나에게 뭔가를 주면 나도 반드시 뭔가를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 해서다. 하지만 친절과 배려는 다른 무엇으로 교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의를 거절하는 것은 상대방의 기쁨을 앗는 일이었다. 여행은 녹인다, 우리의 아집과 자존심을. 다른 이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의 아픔을 공감하는 능력이 훨씬 향상된다는 사실도 경험한다. "다른 사람과 눈높이를 맞추는 것, 편견이나 선입관으로 판단하지 않는 것, 흥미를 보이며 마음을 열고, 긍정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자연스럽게 실천하게 된다.

* '내가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조언이란, 당신에게 기쁨과 충만함을 가져다주는 일에 첫 발걸음을 떼라는 것이다. 비록 당신의 소원이 가까운 사람들의 눈에 턱없이 미친 짓으로 보인다 해도 상관없다. 시작하기만 하면 이미 당신 내면에 있는 예감하지 못했던 능력이 깨어난다. 굉장한 만족감과 행복감이 당신을 사로잡으며, 당신의 삶과 병에 대한 생각을 바꿔놓는다. 당황스러운 모든 일도 자신이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또 받아들임으로써 최선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래야 큰 충족감과 깊은 내적 평온을 찾을 수 있다.'


<제주 올레 여행>, 서명숙

* 본디 혁명이란 이런 것이어야 했다. 일상에서 비롯해야 하고, 스스로 동의해야 하고, 변화의 가치를 몸소 체험해야 하고, 다시 동참하고 싶어 해야 하고, 자발로 다른 이들에게 권해야 하는 법이다. 몸으로 하는 것이로되 정신을 황홀경에 이르게 해야 하며, 당장 성과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아무런 효용이 없어도 하는 것이어야 하며, 누구를 앞질러가는 것이 아니라 같이 가는 것이어야 하며, 목표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겨야 하는 법이다.

* '참 표한 일이었다. 걷다보면 그 모든 증오, 미움, 한탄, 연민이 다 부질없이 느껴졌다. 송곳 하나 꽂을 틈 없던 가난한 마음밭이 어느덧 넉넉해지는 듯했다. 흙탕물로 뿌옇던 마음의 호수는 앙금이 가라앉아 어느새 말갛게 되었다. 적어도 걷는 순간만큼은 '강 같은 평화'가 찾아들었다. 걷기는 마음의 상처를 싸매는 붕대, 가슴에 흐르는 피를 멈추는 지혈대 노릇을 했다. 자연이 주는 위로와 평화는 훨씬 따뜻하고 깊었다. 보이지 않던 꽃들이, 눈에 띄지 않던 풀들이, 들리지 않던 새소리가 천천히 걷는 동안 어느 순간 마음에 와 닿았다. 개화산 산책은 육체를 단련하는 시간일뿐더러, 정신을 샤워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걷기는 온 몸으로 하는 기도요, 두 발로 추구하는 선이었다.'

* 진정한 여행의 발견은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것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

* '밀실에서 광장으로 확장되는 변곡점, 소우주인 자기 집에서 우주로 나아가는 최초의 통로가 올레다. 자기네 집 올레는 나서야만 이웃집으로, 마을로, 옆 마을로 나아갈 수 있다. 올레를 죽 이으면 제주뿐만 아니라 지구를 다 돌 수도 있다. 제주를 걷는 길에 딱 들어맞는 이름이다.'

* 우리의 삶은 늘 혁명을 꿈꾼다. 이미 낡았고 해어졌고 부러져있다. 그저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을 뿐이다. 거죽은 축 늘어지고 눈은 퀭해진 자화상. 어찌 이대로 계속 살아야만 하겠는가. 다시 곧추세워야 한다. 다시 충만하게 해야 한다. 다시 활기 넘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버려야 한다. 속도에 대한 미련을, 성과에 대한 집착을, 물질에 대한 애착을, 길 위에 서야 삶의 혁명이 시작된다. 걸으면 보인다, 자연과 내가. 걸으면 용서된다, 미운 이들과 내가. 걸으면 화해된다, 가족과 나와. 걷는 것은 낡은 허물을 벗고 새살을 입는 것과 같다.


<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 여행의 즐거움의 반은 길 잃음의 미학이다. - 레이 브래드버리

* 모든 여행과 산행이 그러한 법. 내가 가는 듯하지만, 실은 불러서 갔을 뿐. 그래서 자연의 '온화한 힘에 대해 깊은 존경'을 느끼고. '세계의 웅장한 규모를 이해'하며, '전에는 있는 줄 몰랐던 인내심과 용기'를 발견하는 법. 그것이 어느 길이든 우리가 떠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다 담겼다. 숲이 호명하면, 응답하시길. 우리가 거듭날 절호의 기회렸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 오소희

* 여행의 본질은 '발견'이다. 전혀 새로운 것 앞에서 변화하는 나 자신, 그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것! - 다치바나 다카시

* 여행 하며 확실하게 확인한다. 자신과 아이는 서로 다른 것을 보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그림을 보고 있을 때 아이는 개미를 보고 있었다. 해협의 별장을 쳐다볼 때 아이는 그곳을 스쳐가는 기차를 눈여겨보았다. 톱 카프 궁전에서 일찌감치 확인했다. 전시실을 한번 둘러보고는 정원으로 달려나갔다. 꽃을 보고 개미와 지렁이랑 놀고 싶어 한다. 정말, 대단한 방문객이다. 이곳을 찾은 누구도 관심 기울이지 않았을 미물에 마음을 빼앗겼으니. 어른의 눈은 자꾸 죽은 자들의 흔적을 따라간다. 하나, 아이는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는 삶의 에너지에 환호한다. 과연 누가 더 현명할까?

* 일상이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도 여행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한번쯤 그이처럼 생각해보길. 다 버리고 떠나는 것만 여행이 아니라, 함께하는 이가 있을 때 더 가치 있는 여행일 수 있다는 점을.

* '아들아, 세상에는 유희가 생략된 유년을 보내야 하는 아이들도 있단다. 따스함과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단다. 네게는 세 살부터 시작된 이런 여행이, 한평생을 다해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사치가 되는 사람들이 많이 많이 있단다. 나는 네가 그런 사람들을 부단히 많이 보아서, 끝없는 속도전에서 비롯되는 초조와 이기심으로 차감게 마음이 식어버렸을 때마다 스스로 발광하는 태양처럼, 스스로 네 마음을 뜨뜻하게 덥힐 수 있기를 바란다. 가진 것을 느끼고, 가진 것에 감사하고, 감사한 마음으로부터 나누고, 함께함으로써 더 많이 채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웅숭깊은 사람으로 자라주렴. 네가 살아있는 한 온 세상이 너의 것이다. 몸과 마음을 담그고 느끼거라. 그 안에 네가 안아줄, 너를 안아줄 모든 것이 다 한데 어우러져 있단다.'


<비우고 채우는 즐거움, 절집 숲>, 전영우

* 나무의 거대한 뿌리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심연과 연결돼 있다. 우리가 다다를 수 없는 세계, 혹은 두려운 세계와 소통하는 나무는, 거기서 오히려 자양분을 끌어올려 자신을 키워나간다. 올곧게 쭉 뻑든 줄기는 지상과 관련돼 있음을 상징한다. 하늘을 향해 있는 힘껏 기지개를 켜는 형상은 천상과의 연결을 뜻한다. 나무는 그 모습 자체로 삼계와 소통한다. 그러니, 우리 앞에 떡 버티고 있는 나무를 보면 저절로 경배의식이 솟아나는 법. 실로, 나무 앞에 서면 머리 조아리고 치성을 드려야 마땅한다.

그 신성한 나무를 떼로 만날 수 있는 곳이 있으니, 절집에 이르는 길에 펼쳐진 숲이다. 이 나라의 절집에는 길든 짧든 숲길이 있고, 그곳을 찾는 이들에게 신성한 기운을 느끼게 해준다. 물론, 그 길을 문명의 이기를 이용해 쏜살같이 지나가는 이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속세의 속도를 버리고 아주 게으른 걸음으로 그 길을 걷는 이들에게 숲은 신성의 한 가닥을 엿보게 해준다. 걸오본 사람들은 알리. 절집에 이르기 전에 숲에서 이미 우리는 변하고 있음을.

* '절집 숲이 명상과 사색을 통해 잊고 살던 자아를 되찾고, 대면 하기를 꺼리던 자신을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과의 소통과 교감을 통해서 마음의 풍요를 얻을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절집 숲에 대한 이런 새로운 기능 제안은 절집 숲이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는 특성 덕분에 가능하다. 이런 개방성 덕분에 절집 숲은 그 숲을 향유하고자 원하는 사람들 사이에 극심한 경쟁을 유발시키지 않는다. 내가 풍광의 아름다움을 즐긴다고 해서 남에게 돌아갈 즐거움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이런 점이 바로 생태소비, 자연소비의 특성이다. 따라서 덜 소비하고 덜 훼손하며 덜 폐기해야 하는 생태환경의 시대에 절집 숲은 인간과 자연의 상생을 훈련하는 멋진 실습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걷는 다는 것은 존재의 확인 과정이다. 우리는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이 우리를 만들고 해체한다. 여행이 우리를 창조한다. - 다비드 르 브르통

* '자연이 연출하는 장대함은 우리 각자의 행동거지를 조심스럽게 만들고 긴장감을 갖게 한다. 또한 인간이 얼마나 왜소하고 보잘것 없는 존재인지 확인시켜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종교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숲이 내뿜는 세월의 무게와 신성한 기운을 직접 체험하면 흐트러진 몸가짐을 바로하고 어지러운 마음을 가라앉힐 수 밖에 없다. 별로 길지 않은 이 숲길에서 우리는 어느덧 수도자로 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 이처럼 숲은 위대한 종교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 됨됨이를 바꾸는 스승이 될 수도 있다.'

* 나무는 그 자체로 길이다. 수십, 수백 년 동안 한곳에 머물면서도 길을 만드는 게 나무다. 나무는 억지로 길을 만들지 않는다. 미련스럽게 한곳에 머물러 있는 내공이 곧 길이 된다. 이곳저곳에서 찾는다고 길을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무처럼 자신의 자리가 곧 길이라는 것만 깨달으면 길이 보인다. - 강판권, <미술관에 사는 나무들> 중


<왕오천축국전>, 혜초

* 행복한 여행의 가장 큰 준비물은 가벼운 마음이다. - 생텍쥐페리

* 꿈이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간절함이 가치 있는 것은, 그것이 기득을 버리고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해 온 힘을 다하게 하기 때문이다. 말씀에 대한 간절함이 사막과 광야를 건너게 해주었고, 고원과 산맥을 넘게 해주었다.


<서른살의 인생 여행>, 대니 월러스

* 친구들은 내 삶의 거울이다. 그들을 만나면 내가 보이는 법이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 서경식

* 관광객은 그들이 어디 있었는지 모르고, 여행자들은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 폴 데로스

* 청춘이라는 말에는 반드시 예찬이 붙어야 한다. 여러모로 인생의 황금기는 이때가 아닐 수 없다. 밝고 맑고 싱그러워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더 두렵고 힘들고 위축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절망에 빠진 청년들이 기억해주길. 오늘 보이는 성취가 가능하리라 여기지 못했던 지난날의 청춘들이 있음을. 자신에게 던져진 짐짝을 힘겹게 둘러메고 먼 길을 걸어와 비로소 지금의 자리에 있는 이들이 있음을. 얼핏 보기에 너무나 약할 듯싶은 것들, 그러니까 책과 그림과 음악을 그늘막 삼아 험한 곳을 건너온 이들이 있음을.


<파타고니아>, 브루스 채트윈

* 여행한다는 것은 완전히 말 그대로 '사는 것'이다. 현재를 위해 과거와 미래르 잊는 것이다. 그것은 '가슴을 열어 숨을 쉬는 것'이고, '모든 것'을 즐기는 것이다. - 알렉상드르 뒤마


<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보다>, 손호철

* 누구도 제 눈으로 제 얼굴을 볼 수는 없다. 비춰진 얼굴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어쩌면 여행이란 거울을 만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선입견과 편견, 그리고 아집에 물든 만큼 더 멀리, 더 자주 여행을 떠나야 할지 모른다.

* 여행과 병에는 자기 자신을 반성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 다케우치 히토시

* 이 땅에 사는 누가 자시늬 삶을 되돌아보며 유쾌하게 즐기며 살았노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경제적 성공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어야 하거늘, 우리는 전도된 가치에 얽매여 살고 있지 않은가. 손호철은 이런 삶을 일컬어 "라틴적 삶"이라 말한다. 이를 달리 정의하면 "덜 생산하고, 덜 소비하고, 조금 더 가난하더라도 자기 시간을 더 많이 가지면서 삶의 질을 높이는" 삶이라 할 수 있을 터이다.


<싸구려 모텔에서 미국을 만나다>, 마이클 예이츠

* 교수였지만, "주변의 아름다움을 보고, 관조하고, 즐기면서 보낸 적은 거의 없었다." 기득을 버리고 유목민처럼 대륙 곳곳을 떠돌아 다니면서 그는 자연이 주는 놀라운 세계에 접속한다. "자연의 어마어마한 규모와 거침없는 태도"에 경회감을 품고, "놀라움으로 가득한 사막에서 거의 손에 잡힐 듯한 진홍색 태양과 빛나는 달을 보는 일"에 비견할만한 것이 없음을 인정한다. 뭇 순례자들이 그렇듯 그의 인생관도 바뀐다. "아름다움, 관조, 향유 같은 정서는 단순한 인생의 부속물이 아니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이었다."

* 여행할 목적지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행 자체다. - 어슐러 르 귄

* '맨해튼이 굉장한 도시라는 것 외에도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또 있었다. 맨해튼은 진보정치와 진보적 사상의 중심지다. 진보정치의 목표는 온갖 종류의 불평등을 끝장내는 것이다. 또한 노동하는 남녀를 해방시키고 자신이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창조적 소동의 일원이 되고 싶어서 이곳에 왔지만 이곳에서 내가 만났던 지식인들은 내 기대에 부응하지 않았다. 그들은 뉴욕 외의 다른 지역은 무시했다. 또 이곳에 있는 자신의 친구들이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 다른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고 실천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태도는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 모임에 속한 사람들은 아주 부유하고 고립된 이기주의자에 불과했다.


<지중해 문화기행>, 이희수

* 지중해 문명의 현장은 공존과 화해의 정신이고, 문화는 섞일수록 아름답고 발전한다는 문화법칙을 확인시켜준 생생한 현장이다.

* 여행은 무엇보다도 위대하고 엄격한 학문과도 같은 것이다. - 알베르 카뮈

* 지중해야말로 오래된 미래다. 거기서 벌어졌던 충돌과 교류의 역사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내는가에 따라 인류의 미래는 확연히 달라질 터다.


<문명의 배꼽, 그리스>, 박경철

* 여행과 변화를 사랑하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증거이다. - 리하르트 바그너


<히로시마 노트>, 오에 겐자부로

* 여행은 나에게 있어서 정신을 젊어지게 하는 샘이다. - 안데르센

* 원폭 피해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우리 삶의 미래와 깊은 관련성을 맺고 있다 할 수 있다. 우리는 핵발전에 대한 의존을 줄여야 한다는 시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후쿠시마 사태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핵발전소는 결코 안전한 전력 생산 방식이 아니다. 더 큰 시련을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고치려 하면 너무 어리석은 짓이다. 원폭이 미친 엄청난 피해를 찬찬히 살피며, 핵발전소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어야 한다. 당연히 거기에는 절제와 의생이 따를 터이다.


<행복한 라디오>, 리사 나폴리

* '부탄의 국왕은 화폐가치의 복잡한 행렬로 이루어진 국민총생산을 대신하여 한 국가의 척도를 나타낼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냈다. 그는 여기에 국민총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어떤 의미로든 국민의 희생을 대가로 하는 경제발전은 진정한 발전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부탄의 전통과 환경을 위협하는 세력은 신중희 경계해야 할 대상이며 도입할 가치가 없었다. 국왕은 상품과 현금을 생산해내는 것보다, 상승하는 그래프를 만들기 위해 무분별한 성장을 추구하는 것보다, 국민의 행복이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경제적이고 물질적인 성공보다 삶의 질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을 함부로 짓밟고 올라서서 성공을 도모하는 삶보다는 다른 인간을 향한 연민과 협력을 근본적인 미덕으로 삼는 삶이 필요하며, 이것이 국민총행복이 추구하는 가치였다.'

* 여정은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이지만, 그 자체로 보상이다. - 스티브 잡스

* 부탄으로 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미디어에 대한 '멀미'였다. 진정성은 사라지고, 기능성만 강조되는 미디어 현장에서 한발 뗀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과도한 소비 중심의 생활을 일시 중단하게 된다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미디어에 멀미하면서도 다시 일해야 했고, 일상에서 소비 중심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다. 발 딛고 있는 곳이 어디냐가 이토록 중요할지 몰랐다.

* 정말, 지금 - 이곳 아닌 곳에 행복한 나라는 있을까? 지겹게 들어 온대로 유토피아라는 말이 현실에 없는 곳이라는 뜻이라면, 다른 곳에서 그것을 찾으려 하지 말고, 지금 이곳에 행복한 나라를 세워야 하지 않을까.

*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 어떤 일이 닥쳐오더라도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나 자신에 대한 신뢰가 생겼기 때문이다."



여행자의 서재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72976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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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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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시작하면서 읽고 싶었던 분야의 좋은 책을 만났습니다.

녹생당 하승수 님께서 얼마전 소개하신 책들 중 한권...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자연의 일부분이면서 조화를 이루어 공생하기 보다는 욕구의 팽창에 따른 소비와 편의를 위한 기술의 발전으로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고 부유함 보다는 더 큰 상대적 빈곤으로 악순환 되는 현대 사회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고, 스스로의 행동을 통한 경험의 이야기...


그 동안 비슷한 맥락에서 읽어왔던 헬렌/스코트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 호지 여사으 <오래된 미래>, 제인 구달의 <희망의 밥상>등을 통해서 공감하던 부분을 정치/사회 학자의 시각에서 풀어낸 이야기는 공동선을 추구하고 공생의 삶을 위한 방향을 제시해 준다.


좋은 책은 또 다른 좋은 책과 글로 인도하기 마련인데, 웬델 베리, 시몬느 베이유, 레이첼 카슨 등으로 책을 통한 관계의 폭을 넓혀주기도 한다.



[발췌]


무지막지한 소비주의에 맞서서 그들은 가난을 택하고, 기술주의적 추상화에 맞서서 그들은 자신의 이웃과의 친밀한 사귐을 택하고, 풍요한 성공을 구가하는 사회에 맞서서 그들은 남루한, 멸시당하는 자들 곁에 서있기를 택하였다. p55


스코트와 헬렌 니어링의 삶을 특정지었던 행동, 즉 삶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소비를 삼가며, 실제로 무엇인가를 생산하는, 자립의 덕행을 모든 미국인들이 껴안는다는 것은 분명히 의미가 있었다. 니어링 부부는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노동절약적 테크놀로지에 의한 거짓 약속을 거부하고, 굶주린 사람들의 착취 위에 건설된 풍요사회의 거품 바깥으로 나가면서, 이 모든 것을 품위 있게, 빛나는 '삶의 기쁨' 속에서 행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p59


사람은 정신과 육체 모두를 써서 살아야 하되, 자신이 살고 있는 역사적 순간에 적합한 태도로 살아야 하는 것이었다. p66


나는 산업경제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소유를 향해 - 내 집, 내 시간, 내 장래, 내 아이들 - 밀고가고 있는 내 자신의 모습을 보며 살았다. 그리하여, 나는 좌절감 속에서 지냈다. 왜냐하면 확실한 소유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촌공동체 속에서의 관계는 매우 다른 성격을 갖는다. 첫째, 모든 것은 순환적으로 움직인다. 계절과 식물과 동물과 사람들도 순환한다. 모든 것은 죽음에 이르지만, 다시 태어남은 되풀이된다. 이런 현상은 우리가 단작재배에 사로잡혀 있지 않고, 다양한 작물을 경작하면서 여러 다른 짐승들을 돌볼 때 특히 자명하게 드러난다. 자연세계의 경이와 신비로움에 일상적으로 접촉하면서, 우리는 '소유'의 세계가 요구하는 것과 같은 '통제'에 대해서는 상상도 하지 못한다. 땅과 동물과 사람들의 도움으로 생존을 영위하는 데에는 자연의 리듬과 조화를 이룬 노동과 보살핌의 섬세한 균형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동시에 나는 다만 하나의 피조물일 뿐, 결코 내가 세상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종류의 활동 속에서 우리는 큰 친밀감을 누릴 수 있지만,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런 종류의 삶을 통해서 내가 깨닫는 것은 우주의 움직임 앞에서 내가 얼마나 작고,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가 하는 사실이다. p92


통제와 이윤에 대한 현대적 편집증은 1만년 동안이나 지속되어온 생활방식을 수없이 파편화된 상업적, 기술적 행위로 변환시켜버렸고, 그러한 행위는 필연적으로 그나마 아직 시골에 잔존해 있는 토양과 사람을 완전히 고갈시켜버릴 것이라고 분별있는 사람들은 지적하고 있다. p98


점점더 갈수록 현대인은 우리가 사는 사회와 같은 것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의 틀 속에서 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은 제도적인 삶을 떠나서 거의 또는 아무런 독립적인 삶을 누리지 못한다. 만약 어디론가 도피하고 싶다고 할 때, 사람들은 여행사와 관광산업이 만들어낸 지점으로 이동해가기 위해서 수송산업을 이용한다. 이것은 그들이 시스템 속에서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여기서 도피할 수 없다. 그들은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p179


자유로운 삶에는 어느 정도의 자기부정이 필요하다. 덕행의 가능성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회의 부유한 부문에 속해 있는 어떤 사람들에게, 이러한 포기는 너무나 극적이고, 너무나 겁나는 일로 여겨질지 모른다. 그것은 사람의 눈을 가리고, 몸을 결박하고 있는 제도적 지원으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물러난다는 것을 뜻한다. p192


화폐경제 속으로 좀더 깊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고, 그리하여 좀더 의존적으로 되고 허약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서의 근대성에 대한 동경도, 욕구도 갖고 있지 않으셨던 것 같다. 끊임없이 무엇인가 - 물건과 서비스와 문화 - 를 소비하고, 대부분 쓰레기와 신경증적 징후를 생산해내는 그런 종류의 생활에 대해서 말이다. p229


사람은 자기 장소가 주는 작은 즐거움들을 느끼는 그만큼, 그는 강하며, 반면에 꼭 돈이 들어야 누릴 수 있는 즐거움들이 필요한 그만큼, 그는 약하다. - 웬델 베리, p236


오늘날 '아동기'는 소비주의에 대한 중독성 의존증을 일찍부터 기르고, 직업적 전문가들과 정부기관들에 의한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에 기대는 것을 배우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놀이터로서 기능한다. 이런 종류의 아이들 키우기는 거의 틀림없이 나이는 어른이지만 여전히 아이로 남아있는 인간을 산출한다. 그런 인간에게는 계속해서 장난감이 필요하고, 만족감이 없으면,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느낌이 드는 법이 없다. 그들은 최소한의 것을 추구한 소로우의 이상이 내포한 지혜를 알아보지 못하고, 평생 동안 한 장소에 머물면서 그 장소가 제공하는 경이로움을 갈수록 더 깊이 느끼는 삶 속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없다. 오늘날 미국인들이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아동기'는 갈수록 지나치게 버릇없는 인간들로 넘쳐나는 새로운 세대들을 산출하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다. 오늘날의 아이-어른들은 끊임없이 유동적이며, 언제나 새로운 일자리와 다른 도시를 찾아 헤매면서, 판에 박은 일상을 깨기 위해서 여행상품을 산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갈급증을 치유할 수가 없다. 그들은 휴가에 '이국적'이고 '흥미로운' 곳을 끊임없이 방문하여, 갈수록 심해지는 권태로움을 해소하고,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 필요한 돈을 버느라고 강박적으로 쫓기고 있다. p239


식민지적 경제구조는 '개발'이라고 불리는 철저히 외래적이며, 암과 같은 전염병으로 인하여 더욱 심화, 확대되었다. 이와 같은 이데올로기를 새로운 정부가 채택함에 따라 두 가지의 직접적이고, 영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결과가 빚어졌다. 즉, 빈곤의 근대화와 끊임없이 팽창하는 욕구의 창출이 그것이다. 이제 모든 것 - 교통, 교육, 건강, 농업, 주택 - 이 대규모의 산업적 시스템을 통해 운용되게 되었다. 그리하여, 대다수의 민중은 예전보다 더욱 빈곤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p303


그 자신의 인생행로의 어떤 지점에서도 단지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이 아니라 이 지상에서 진정으로 '좋은 삶'을 실행할 수 있는 가능성의 근거를 찾아서 끊임없이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순례자로 남으려고 노력한다. 오늘날 자본과 국가의 압도적인 논리에 갇혀 있는 근대적 세계는 개인으로 하여금 참된 의미에서의 '좋은 삶', 닷 말하여 '덕행의 습관적인 실천'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체제이다. 지금 우리는 개인주의 문화 속에서 누구나 '자기몰두'에 빠져 있을 뿐만 아니라, 거의 예외 없이 '경제인간'으로 전락하여, 기껏해야 소비자 혹은 관광객으로서의 삶이라는 극히 천박한 행복을 추구하는 데 여념이 없다.

호나이키는 우리 시대가 참으로 '기묘한' 시대라고 말한다. 엄청난 생산력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빈곤과 전쟁에서 헤어날 방법을 찾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진보'의 프로젝트들에 의해서 안락과 편의성이 증대하면 할수록 인간은 제도와 기술과 전문가의 노예가 되고 마는 역설적인 상황이 나날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을 진실로 인간답게 하는 근본적인 조건, 다시 말하여 자유로운 의지에서 나온 자기희생의 정신과 타자에의 능동적인 환대와 같은 오랜 세월 인류사회를 지탱해온 전통적인 덕행은 극히 낯선 것이 되어버렸다.

- 역자후기 중


[함께 읽어볼 만한 책들...]


스콧/핼렌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

E.F.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

시몬느 베이유의 <뿌리를 찾아서> 등....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웬델베리....., <삶은 기적이다>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90274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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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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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 책을 읽어야 겠다는 결심을 했는지 지금은 생각 나지 않지만, 긴 시간동안 회사 자료실 관심도서 목록에 저장되어 있던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의 책을 처음 접한 것은 저자 자신이 애팔래치아 트레일에 도전한 과정을 담은 <나를 부르는 숲> 이었다.

나도 등산을 좋아하는 편이고, 기회가 닿는다면 세계의 유명한 트레일 코스를 걷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기 때문에, 주제나 내용면에서 재미있게 읽은 책 중 하나이고 비슷한 시기에 영화 와일드를 봤기에 책을 보며 뭔가 데자뷰가 떠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다시 <거의 모든 것의 역사>로 돌아와 보면,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지질학, 천문학, 생물학, 유전학, 입자 물리학, 양자역학, 고고학 등 우주와 지구, 인간을 포함한 생물체의 역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내용이지만 가볍게 읽고 더 궁금한 것은 연관된 책이나 자료를 찾아볼 수 있도록 가이드를 해주는 내용이다. 아무래도 저자가 학문 탐구 보다는 즐겁게 궁금한 점을 이해할 수 있는 관점에서 글을 썼고 읽는 사람을 배려하는 글을 쓸 줄 아는 저술가이기 때문인 것 같다.


본문 중에서 "우리는 나이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도 없고, 거리를 알 수 없는 곳에 있는 별들에 둘러싸여서, 우리가 확인도 할 수 없는 물질로 가득 채워진 채로, 우리가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는 물리 법칙에 따라서 움직이는 우주에 살고 있다."에서 우주의 크기와 역사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지구에 생명이 살 수 있게 된 네 가지 중요한 이유는 존재에 대한 신비로움을 더해 준다.

* 훌륭한 위치 : 태양과의 적당한 거리

* 적당한 행성 : 뜨겁게 녹아 있는 내부와 적당한 비율로 혼합된 원소들

* 짝을 가진 행성 : 달이 안정화 시켜주는 역할

* 적절한 시기


또한 그 신비로움이 우연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생명의 끈질긴 생존본능도 한 몫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구가 기적같이 우리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지구가 제공하는 환경에 적응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기하게 여기는 것은, 그저 지구의 환경이 생명에게 적당하다는 것이 아니라 특별하게 "우리"의 생명에게 적당하다는 사실이다. 정말 놀랄 일이 아니다. 적당한 크기의 태양, 지나치게 사랑스러운 달, 사교적인 탄소, 엄청난 양이 마그마를 비롯해서 우리에게 훌륭하게 보이는 많은 것들은 단순히 우리가 그런 것들을 의존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멋지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아무도 확실하게 밝힐 수는 없다.'


"생명의 역사는 우월성과 복잡성과 다양성이 점진적으로 증가한 것이 아니라 대량으로 제거해버린 후에 살아남은 몇 종이 다시 분화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왔다." - 스티븐 제이 굴드.


그렇지만 생명의 시작이 있으면 그 마지막도 있듯이 우리의 유한성에 대한 겸손과 발전과 소비라는 무기를 이용해 인간이 저지르고 있는 자연과 환경 파괴의 역사에 대해서는 반성하고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 인간은 하늘의 가장 심오한 비밀을 파헤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종이면서도 동시에 아무런 목적도 없이 우리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던 생물을 멸종시키면서도 우리가 그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

우리는 존재할 수 있는 특권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그 가치를 인식할 수 있고 다양한 방법으로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가 이제 겨우 이해하기 시작한 능력이다."



거의 모든것의 역사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72913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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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위한 욕구와 필요에 의한 소비에서 사회 계급의 과시와 정신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소비가 점점 늘어가면서 세상은 성장과 풍부함이 넘치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 있는 공해, 자연 파괴, 불균형 등이 가속화 되고 있다.


지금의 소비생활은 기본적 생존에 필요한 소비보다 자신의 개성을 돋보이기 위한 소비가 더 크고, 점점 늘어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개성을 돋보이기 보다는 몇 개의 선택된 모델로 수렴하며 개성을 잃어버리는 모순 속에서 자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태어난 그 모습 그대로, 자연스러움 그대로가 가장 개성있는 존재이다.


소비의 본질과 의미, 커뮤니케이션 등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도구들에 대한 통찰력 있는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지만 내용이 쉽게 읽히지는 않는 단점이 있다.


매트릭스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시뮬라르크와 시뮬라시옹을 읽으려다가 우연히 보게된 책이지만 읽은 보람이 있었다.


사회 전체가 도시화되고 커뮤니케이션이 완벽하게 되면, '욕구'는 - 욕망에 의해서가 아니라 경쟁에 의해서 - 수직적인 점근선을 따라 비약적으로 증대한다. - p88


소비과정 전체는 인위적으로 그 수가 감소된 모델의 생산에 의해 지배된다. 그곳에서는 다른 생산부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독점화 경향이 보인다. 차이생산의 독점적 집중이 존재하는 것이다. -p129


모든 사물은 그 각각이 통계적으로 보아 어느정도 입수하기 쉬운가, 절대수가 어느 정도 한정되어 있는가에 따라서 그 가치의 순위가 결정된다. 이러한 사회구조를 고려하면, 어떤 사회계층이 어떤 종류의 사물 및 기호를 통해서 자신을 두드러지게 하고 그 지위를 명확하게 할 수 있는 기능성을 특정한 사회상태에서 끊임없이 규정하는 것이 이 기능이다. 상층계급보다 사람수가 많은 계층이 어떤 범주의 기호를 손에 넣으면 상층계급측에서도는 그 수가 적은 다른 기호를 통해 차이를 만들지 않을 수 없다 -p173


광고는 무엇을 이해하게 하거나 배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대하게 한다는 점에서 예언적인 말이다. - 206


보드리야르는 "사물은 인간의 필요를 만족시키는 장이 아니라 상징적 작업의 장"이라는 입장을 취하였다. 따라서 그는 사물의 사용가치가 아니라 사물의 상징교환 즉, 사물의 상징적으로 기호로서 교환되는 과정에 대해 탐구하였다. ...

그는 소비개녀의 혁신을 통해 현대사회를 분석하는 열쇠를 찾는다. 그러한 입장은 경제학에서 정의하는 소비개념과 다르게 소비개념을 사용하게 한다. 그에 의하면, 상품(사물)의 소비란 사용가치의 소비를 포함하면서도 그것을 훨씬 넘어선다. 즉, 행복, 안락함, 풍부함, 성공, 위세, 권위, 현대성 등의 소비도 포함하는 것인데, 특히 이 후자에 소비 본래의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착상은 그로 하여금 사물을 기호로 파악하게 하고, 또 사회를 의미작용의 체계로 해석하게 한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욕구를 특정한 사물에 대한 욕구로 해석하지 않고, 차이에 대한 욕구(즉, 사회적 의미에 대한 욕망)로 해석한다. 이러한 해석방식을 기초로 해서 그는 '사회적 차이화의 논리'를 만들어낸다. 사회적 차이화의 논리란, 사람들은 상품(사물)의 구입과 사용을 통해 자신을 돋보이게 하며 동시에 사회적 지위와 위세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소비란 생산적인 활동이 되는 것이며, 아울러 교육과 노력을 요구하는 사회적인 활동의 하나의 양식이다.

그렇지만 소비는 자율적인 주체의 자유로운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욕구의 체계를 발생시키고 관리하는 생산질서와 또한 상품의 상대적인 사회적 위세 및 가치를 결정하는 의미작용의 질서에 지배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비는 더 이상 자율적인 주체가 아니다. 그는 이제 사물에 의해 지배받으며, 그 결과 자율성과 창의성을 박탈당한 사물과 가은 존재이다. 보드리야르는 이러한 사태를, 루카치와 프랑크푸르트학파를 따라서 '물상화의 과정'으로 서술한다. <옮긴이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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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꼬옥~

쥐려하지 말자.
넘쳐 흐르는거
다 흘려 버리고
손가락 사이로 새는거
다 새어나가게 하고
조금이라도 남는게 있다면
그만큼으로
행복해하며 사는거야
쥐면 쥘수록 새어나가는게 많지만 
펼치면 담기는게 더 많다는거.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도 있고
누구나 그래~
그래도 모든것은 다
지나가고
과정 뒤엔 결과도
있는거야


영화 <위대한 유산> (2013년)에서도 비슷한 대사를 본 것 같다.

탐욕이든 미련이든 삶 자체이든...

우리는 삶에서 뭔가를 움켜쥐려고 한다. 내려 놓는 것도 힘들지만 움켜쥐고 가기는 힘들다.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현재를 즐겨보자.


재미와 즐거움이 없는 일을 하고, 행복하지 않게 시간을 보내기에는 인생은 너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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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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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지난 주 개봉한 스타워즈 에피소드 7편을 보고서.....


그 전에 6편의 시리즈가 스카이워커 부자를 중심으로 스토리 상에서 새로운 기술과 캐릭터, 에피소드로 기대 만큼의 즐거움을 주었던 것에 반해 이번 7편은 화면의 볼거리는 있지만 알맹이가 빠진 느낌이다.


아마도 루카스필름에서 디즈니로 넘어가고 과거와 새로운 세대로 넘어가는 과정에 가교 역할을 하기 때문일까?


스펙타클한 우주 전쟁,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로봇이지만 인간적 교감을 보여주는 드로이드, 중세 기사의 역할을 하면서도 그들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포스의 힘과 광선검을 가진 제다이 기사, 인간과 다른 모습을 가졌지만 인간과 함께 우주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다양한 외계인 캐릭터 등등....


이번 영화에서는 그 무엇도 새로운 느낌은 없었다. 단지 늙어버린 레아와 한 솔로, 루크의 모습만 나올 뿐....


SF 영화는 볼거리 중심으로 이야기가 많이 될 수 있지만 우리 삶과 사회가 발전해 나가는데 있어 미래를 엿보는 볼거리로서 나름의 역할을 가지고 있다.


스타워즈, 스타트랙, 그리고 매트릭스...


영화 뿐 아니라 내가 고등학교시절(90년대 초반)에 읽었던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와 같은 SF 소설은 미래에 대한 꿈을 갖게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기도 했다.

파운데이션에 등장하는 미래를 예측하는 통계학자(엄밀히 수학자로 등장함)는 내가 통계학이란 전공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되었으니까....


이번 스타워즈의 새로운 에피소드가 기대한 역할은 못해주었지만 상상하지 못했던 미래를 엿볼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 새로운 SF 영화, 이야기가 또 등장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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