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위한 욕구와 필요에 의한 소비에서 사회 계급의 과시와 정신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소비가 점점 늘어가면서 세상은 성장과 풍부함이 넘치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 있는 공해, 자연 파괴, 불균형 등이 가속화 되고 있다.


지금의 소비생활은 기본적 생존에 필요한 소비보다 자신의 개성을 돋보이기 위한 소비가 더 크고, 점점 늘어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개성을 돋보이기 보다는 몇 개의 선택된 모델로 수렴하며 개성을 잃어버리는 모순 속에서 자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태어난 그 모습 그대로, 자연스러움 그대로가 가장 개성있는 존재이다.


소비의 본질과 의미, 커뮤니케이션 등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도구들에 대한 통찰력 있는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지만 내용이 쉽게 읽히지는 않는 단점이 있다.


매트릭스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시뮬라르크와 시뮬라시옹을 읽으려다가 우연히 보게된 책이지만 읽은 보람이 있었다.


사회 전체가 도시화되고 커뮤니케이션이 완벽하게 되면, '욕구'는 - 욕망에 의해서가 아니라 경쟁에 의해서 - 수직적인 점근선을 따라 비약적으로 증대한다. - p88


소비과정 전체는 인위적으로 그 수가 감소된 모델의 생산에 의해 지배된다. 그곳에서는 다른 생산부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독점화 경향이 보인다. 차이생산의 독점적 집중이 존재하는 것이다. -p129


모든 사물은 그 각각이 통계적으로 보아 어느정도 입수하기 쉬운가, 절대수가 어느 정도 한정되어 있는가에 따라서 그 가치의 순위가 결정된다. 이러한 사회구조를 고려하면, 어떤 사회계층이 어떤 종류의 사물 및 기호를 통해서 자신을 두드러지게 하고 그 지위를 명확하게 할 수 있는 기능성을 특정한 사회상태에서 끊임없이 규정하는 것이 이 기능이다. 상층계급보다 사람수가 많은 계층이 어떤 범주의 기호를 손에 넣으면 상층계급측에서도는 그 수가 적은 다른 기호를 통해 차이를 만들지 않을 수 없다 -p173


광고는 무엇을 이해하게 하거나 배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대하게 한다는 점에서 예언적인 말이다. - 206


보드리야르는 "사물은 인간의 필요를 만족시키는 장이 아니라 상징적 작업의 장"이라는 입장을 취하였다. 따라서 그는 사물의 사용가치가 아니라 사물의 상징교환 즉, 사물의 상징적으로 기호로서 교환되는 과정에 대해 탐구하였다. ...

그는 소비개녀의 혁신을 통해 현대사회를 분석하는 열쇠를 찾는다. 그러한 입장은 경제학에서 정의하는 소비개념과 다르게 소비개념을 사용하게 한다. 그에 의하면, 상품(사물)의 소비란 사용가치의 소비를 포함하면서도 그것을 훨씬 넘어선다. 즉, 행복, 안락함, 풍부함, 성공, 위세, 권위, 현대성 등의 소비도 포함하는 것인데, 특히 이 후자에 소비 본래의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착상은 그로 하여금 사물을 기호로 파악하게 하고, 또 사회를 의미작용의 체계로 해석하게 한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욕구를 특정한 사물에 대한 욕구로 해석하지 않고, 차이에 대한 욕구(즉, 사회적 의미에 대한 욕망)로 해석한다. 이러한 해석방식을 기초로 해서 그는 '사회적 차이화의 논리'를 만들어낸다. 사회적 차이화의 논리란, 사람들은 상품(사물)의 구입과 사용을 통해 자신을 돋보이게 하며 동시에 사회적 지위와 위세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소비란 생산적인 활동이 되는 것이며, 아울러 교육과 노력을 요구하는 사회적인 활동의 하나의 양식이다.

그렇지만 소비는 자율적인 주체의 자유로운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욕구의 체계를 발생시키고 관리하는 생산질서와 또한 상품의 상대적인 사회적 위세 및 가치를 결정하는 의미작용의 질서에 지배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비는 더 이상 자율적인 주체가 아니다. 그는 이제 사물에 의해 지배받으며, 그 결과 자율성과 창의성을 박탈당한 사물과 가은 존재이다. 보드리야르는 이러한 사태를, 루카치와 프랑크푸르트학파를 따라서 '물상화의 과정'으로 서술한다. <옮긴이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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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꼬옥~

쥐려하지 말자.
넘쳐 흐르는거
다 흘려 버리고
손가락 사이로 새는거
다 새어나가게 하고
조금이라도 남는게 있다면
그만큼으로
행복해하며 사는거야
쥐면 쥘수록 새어나가는게 많지만 
펼치면 담기는게 더 많다는거.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도 있고
누구나 그래~
그래도 모든것은 다
지나가고
과정 뒤엔 결과도
있는거야


영화 <위대한 유산> (2013년)에서도 비슷한 대사를 본 것 같다.

탐욕이든 미련이든 삶 자체이든...

우리는 삶에서 뭔가를 움켜쥐려고 한다. 내려 놓는 것도 힘들지만 움켜쥐고 가기는 힘들다.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현재를 즐겨보자.


재미와 즐거움이 없는 일을 하고, 행복하지 않게 시간을 보내기에는 인생은 너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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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지난 주 개봉한 스타워즈 에피소드 7편을 보고서.....


그 전에 6편의 시리즈가 스카이워커 부자를 중심으로 스토리 상에서 새로운 기술과 캐릭터, 에피소드로 기대 만큼의 즐거움을 주었던 것에 반해 이번 7편은 화면의 볼거리는 있지만 알맹이가 빠진 느낌이다.


아마도 루카스필름에서 디즈니로 넘어가고 과거와 새로운 세대로 넘어가는 과정에 가교 역할을 하기 때문일까?


스펙타클한 우주 전쟁,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로봇이지만 인간적 교감을 보여주는 드로이드, 중세 기사의 역할을 하면서도 그들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포스의 힘과 광선검을 가진 제다이 기사, 인간과 다른 모습을 가졌지만 인간과 함께 우주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다양한 외계인 캐릭터 등등....


이번 영화에서는 그 무엇도 새로운 느낌은 없었다. 단지 늙어버린 레아와 한 솔로, 루크의 모습만 나올 뿐....


SF 영화는 볼거리 중심으로 이야기가 많이 될 수 있지만 우리 삶과 사회가 발전해 나가는데 있어 미래를 엿보는 볼거리로서 나름의 역할을 가지고 있다.


스타워즈, 스타트랙, 그리고 매트릭스...


영화 뿐 아니라 내가 고등학교시절(90년대 초반)에 읽었던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와 같은 SF 소설은 미래에 대한 꿈을 갖게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기도 했다.

파운데이션에 등장하는 미래를 예측하는 통계학자(엄밀히 수학자로 등장함)는 내가 통계학이란 전공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되었으니까....


이번 스타워즈의 새로운 에피소드가 기대한 역할은 못해주었지만 상상하지 못했던 미래를 엿볼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 새로운 SF 영화, 이야기가 또 등장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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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라는 표현은 그 안에 배려와 따뜻함이 함께할 때는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런 면에서 알랭 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는 누구나 겪어 보았음직한 이성간 연애의 달콤함과 아픔을 철학적, 심리적 통찰로 풀어가는 이야기로 공감을 이끌어 낸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 각자가 살아온 환경과 경험의 차이, 과거에 대한 태도 등을 어떻게 서로 이해하며 발전시켜야 하는지 이야기 한다.

"역사를 대하는 태도에는 심각한 양면성이 있는 것 같다 - 한편에는 모든 것을 보존하려는 욕구(백과사전주의), 다른 한편에는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려는 욕구(혁명)가 있다." 

그리고 둘의 데이트 중 가게된 레스토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나오는 욕망의 두 가지 형식은 요즘 먹방, 맛집을 찾는 우리들의 모습이 자율 판단 보다는 모방 심리에 따르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 아닌지에 대한 재미난 해석과도 연관지어 볼 수 있다.

"여기서 욕망의 두 가지 형식을 끄집어낼 수 있다. 하나는 '음식이 내 입맛에 꼭 맞으니 레스토랑이 마음에 드네.'라는 자율 판단. 다른 하나는 '다들 그렇다니까 여긴 훌륭한 레스토랑일 거야.'라는 모방 심리. 전자인 경우 욕망이 그 대상과 직결된다. 후자인 경우 먼저 중간 경로, 곧 신문의 평이나 유명인의 입을 거쳐 욕망이 걸러진다."

그래도 이야기의 전반에서 사랑의 관계에 중요한 여러가지 의미들은 사랑을 찾고 있는 사람이든, 사랑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는 연인이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부부던지, 연인 뿐 아니라 가족간의 사랑에서도 되새겨 봐야하는 작가의 통찰이다.

"경제의 세계에서는 빚이 나쁜 것이지만, 우정과 사랑의 세계는 괴팍하게도 잘 관리한 빚에 의지한다. 재무 정책으로는 우수한 것이 사랑의 정책으로서는 나쁠 수가 있다. - 사랑이란 일부분은 빚을 지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뭔가를 빚지는 데 따른 불확실성을 견디고, 상대를 믿고 언제 어떻게 빚을 갚도록 명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주는 일이다."

"힘이란 단어는 사전적으로 행위 능력을 의미한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는 권력이란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영향을 미치거나 사람이나 사물에게 작용을 가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권력을 쥔 사람은 신기술 무기, 돈, 석유, 우월한 지성이나 튼튼한 근육을 소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물질적 사회적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 전쟁에서는 도시의 방어벽을 무너뜨리거나 비행장에 폭탄을 투하할 수 있는 쪽이 힘이 있다. 경제계에서는 주식을 사들여서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편이 힘이 있다. 권투에서는 주먹을 날려 상대방을 뻗게 하는 편이 더 힘이 있다. 하지만 사랑에서는 권력이 훨씬 수동적이고 부정적인 정의에 의존하는 것 같다. 사랑에서는 권력이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능력으로 간주된다. ... 사랑의 권력은 아무것도 주지 않을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상대가 당신과 같이 있으면 정말 편안하다고 말해도, 대꾸도 없이 TV프로그램으로 화제를 바꿀 수 있는 쪽에 힘이 있다. 다른 영역에서와는 달리, 사랑에서는 상대에게 아무 의도도 없고, 바라는 것도 구하는 것도 없는 사람이 강자다. 사랑의 목표는 소통와 이해이기 때문에, 화제를 바꿔서 대화를 막거나 두 시간 후에나 전화를 걸어주는 사람이, 힘없고 더 의존적이고 바라는 게 많은 사람에게 힘 들이지 않고 권력을 행사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을 빌리면, 타인들이 우리를 이해하는 폭이 우리 세계의 폭이 된다. 우리는 상대가 인식하는 범위 안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 - 그들이 우리의 농담을 이해하면 우리는 재미난 사람이 되고, 그들의 지성에 의해 우리는 지성 있는 사람이 된다. 그들의 너그러움이 우리를 너그럽게 하고, 그들의 모순이 우리를 모순되게 한다. 개성이란 읽는 이와 쓰는 이 양쪽이 다 필요한 언어와 같다. 일곱 살 아이에게 셰익스피어 작품은 말도 안 되는 허섭스레기이며, 만약 그의 작품이 일곱 살 아이들에게만 읽힌다면 셰익스피어는 그 아이들이 이해하는 수준에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배려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관계"의 속성을 통해 알려준다.

관계란 스스로 균형을 잡고자 하는 원초적이고 잔혹한 욕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방정식으로 나타냈을 때, 두 사람이 함께 하려면 양쪽에서 40단위(이것을 x라고 한다)에 이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자.
여자 20x + 남자 20x = 관계 40x
40x라는 값은 관계가 지속된다는 것을 나타내는데, 잔인한 점은 총량을 양쪽이 똑같이 지불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양쪽이 20단위씩 노력을 내놓는 관계가 가장 합리적이겠지만, 원래 한쪽이 상대방보다 더 많이 노력하는 편은 어떻게 정해질까? 상대가 얼마나 신경 쓰느냐를 측정하는 몹시 냉소적인 감각에 따라서 그렇게 된다.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상대의 감정을 재고 자신에게 묻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은 얼마일까? 상대가 거부하고 사랑이 끝나기 직전까지 얼마만큼 밀어붙일 수 있을까?

또한 그런 사랑이 변할 수도 있고 잘못 들어선 경우도 있겠지만....

고통은 성숙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함께할 수 있는 단계에서 만난 두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로 같은 방향을 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한동안 합치되었던 것은, 넓고 갈림길이 많은 길에서 일어난 우연의 일치였을 뿐이다.

사람은 혼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는 아니기에, 우리 주위에 사랑하는 사람들 (가족, 연인, 부부, 친구....)에 대해 개성(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고 관심과 배려, 이해가 필요하다는 메세지를 준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 대해 한번 질문을 해 보자. "우리는 사랑일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나의 이기심, 무관심, 익숙함이 문제가 아닌지..... 따뜻함과 배려가 줄어든 건 아닌지 반성해 봐야 겠다.


우리는 사랑일까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56601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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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에게 인생에 있어 오롯이 내가 소유하고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 “시간

시간을 쓰는 목적과 방법에 따라 인생의 가치와 방향, 의미가 달라지고 심지어 행복을 느끼는 감정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시간의 주권을 잊어 버리거나, 잃어 버리거나, 포기하며 살고 있는지도….

 

미하엘 엔데의《모모》에서는 시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가슴 속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 ...
사실 시간이란 달력과 시계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시간 동안 어떤 일을 겪었는가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러기에 시간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각각 다른 모습으로,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하지만 우리는 어떤 막연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시간이란 소중한 비밀을 너무 소홀히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목표를 이루고 나면 행복을 거머쥘 것 같지만 정말 그럴까?

 

시간은 절대적인가? 상대적인가?
빠른 세월의 흐름을 나이와 시간의 속도가 비례한다는 표현으로 말하기도 한다.
어렸을 때는 시간이 느린 것만 같고 어른이 되면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여유가 없다고 한다결국 절대적인 시간을 소비하는 사람의 환경과 상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느끼는 것 아닐까
같은 일상의 반복적인 삶과 다양한 경험을 추구하는 삶. 같은 시간을 보내도 더 길게 느껴지는 시간은 무엇일까?

절대적인 시간을 상대적으로 소비하는 것. 여유가 있고 온전히 자기만을 위해 시간을 쓴다면 시간은 느린 것만 같고, 일에 몰입해 자기만의 시간이 부족하면 시간에 쫓기듯 빠르게 흘러가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이 지구의 시간 속에서 인생은 찰나와 같다. 그 순간을 소중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지금 이 순간은 이 순간뿐이니까태어나 죽기까지 유한한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가 그 짧은 인생을 즐겁게 살지 못하는 건 어리석은 삶이다어려운 일, 하기 싫은 일이라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면 그 안에서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자. 제한된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는 삶을 찾자.

 

"... 인생이 뭐고, 사는게 뭡니까? 인생이란 추억 만들기고, 사는 건 때때로 무슨 계기 찾아가며 즐거움을 만들어 가는 것 아니던가요?"

시간의 흐름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행복이다

- 조정래의 <정글만리>

시간에 쫓기는 선택은 결국 후회하게 된다. 그리고 아까운 시간을 돈과 바꾸며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가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시간과 정력을 바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는지시간을 낭비하는 걸 알면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경험하지 못한 세상과 환경에 대한 두려움 뿐일까부질없는 노력을 거듭하고, 자신의 귀중한 생명을 헛되이 연소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흐르는 시간을 멈출 수 없다. 그 시간을 소중히 쓸 수밖에 없다자발적, 능동적이지 못하니 보내는 시간이 괴롭다. 반면 즐거운 시간은 짧게 느껴진다.

먹기, 자기, 놀기가 반복되는 고양이의 하루. 먹기, 자기, 보초서기가 반복되는 개의 하루….

즐거운 삶(시간)과 괴로운 삶(시간)의 대비를 보여준다.

 

박노해 시인은 삶에서는 시간이 많은 사람이 부자다.”라고 했다.

 

근심 걱정은 잊자. 시간은 가고 그 시간이 문제도 해결한다.

고통은 시간이 해결해준다. 아무리 시간이 많이 걸려도 시간은 지나가게 해주기 때문이다.

인생에 가장 후회되는 기억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시간을 허비한 것. 걱정하지 말자

그 시간에 현재를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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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 : 남편, 바지 하나 사야겠다. 가자

남편 : 멍~~
[리빠이쑤 매장]
와이프 : 이거 어때, 색깔 죽이는데, 입어봐라
(남편, 힐끗 태그를 보더니)
남편 : 별론데...
와이프 : 그럼, 이건 어때.... 색깔 튀지 않으면서 새련되 보이는데
(남편, 다시 힐끗 태그를 보더니)
남편 : 그것도 별론데....
(이렇게 남편과 와이프는 30킬로를 달려간 매장에서 소득없이 돌아왔다)
(몇주후)
와이프 : 주말인데, 영화보고 남편 바지 사러가자...
남편 : 멍~~
[영화보고, 아래층 유니껄로 매장]
와이프 : 이거 어때? 청바지인데 스판처럼 늘어나서 편하다던데...
(남편, 힐끗 태그를 보더니)
남편 : 몰라, 그냥 그렇네...
와이프 : 그럼, 이건 어때~~
남편 : 멍~~, 별로네... 그냥 가자....
(남편은 매장 입구앞에서 대기, 와이프는 드넓은 유니껄로 매장을 한바퀴 휑~~)
와이프 : (한손에 좀전에 본 바지를 손에들고 온다)
             이거 아까침에 봤던거랑 똑같은데, 밑단 수선 잘못해서 반품한거라고..
             가격이 1/3이야... 어때? 입어볼래?
남편 : 멍~~, 그래.... (피팅룸에 들어가며 태그를 힐끗)
(피팅룸에서 입고나온 남편을 보며)
와이프 : 어때? 사이즈 맞아....?
남편 : 엉~~ (미소와 함께)
와이프 : 드디어 바지 샀네..~~~. 가자...
남편 : 와이프 뒤를 졸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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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money).


우리 삶에서 돈을 버는것은 잘 쓰기 위함인데돈버는 것이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변해있는 경우가 많다. 의미 있는 삶웃으며 재미있게 건강한 삶을 살고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며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사는데 어느정도의 돈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그 돈을 위해 웃음과 인생의 재미건강까지도 잃어 버리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돈은 두 얼굴

한쪽 면은 자유
한쪽 면은 노예

사람들은 돈을 벌어 자유를 누리겠다지만
돈을 벌기 위해 노예가 되어 일을 하지

돈이 많은 자는 근심걱정으로 자유가 없고
돈이 없는 자는 불평불만으로 자유가 없고

자본주의는 돈 없는 노예와 돈 많은 노예뿐 ... 


<돈은 두 얼굴 중> - 박노해

 

<꾸뻬씨의 행복여행>에서는 "많은 사람들은 돈이나 지위를 갖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하고 밥 말리는 "행복은 숫자에 대입하면 불행해진다"라는 이야기로 "Money is numbers and numbers never end. If it takes money to be happy, your search for happiness will never end."(돈은 숫자이고 수에는 끝이 없다. 행복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면, 끝없이 행복을 찾아야 할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돈이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무리 말로 하더라도 스스로 경험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장에 필요한 것보다 많은 돈은 욕구를 채우는 숫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돈은 사람뿐 아니라 자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돈 많은 부자가 늘어간다는 것은 순환되지 못하는 자원이 늘어 간다는 것자연과 환경이 파괴 된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내 통장의 잔고에 신경쓰고 늘리려 애쓴다이중적인 잣대와 이기심그 근원은 지속 가능한 삶의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된다.
죽은 돈을 쌓는 것 보다 살아있는 삶과 자연환경으로 순환시켜 지속 가능한 삶으로 가는 길은 무엇일까?

 

기업 또는 개인의 부의 축적 - 엄밀히 말해 기호로서 존재하는 돈의 축적 -은 결국 자연과 환경의 파괴로 얻어진다필요에 의한 자연순환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다지금의 소비생활은 기본적 생존에 필요한 소비보다 자신의 개성을 돋보이기 위한 소비가 더 크고점점 늘어난다하지만 개성을 돋보이기 보다는 몇 개의 선택된 모델로 수렴하며 개성을 잃어버리는 모순 속에서 자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인간은 태어난 그 모습 그대로자연스러움 그대로가 가장 개성있는 존재이다.

 

나무바람햇빛자연이 살아 숨쉬게하는 중요한 요소다생명이 건강하게 지속되기 위해 깨끗하게 지켜야하는 것이기도 하다자연은 팔아 돈을 쌓는 것인간의 탐욕으로 환경과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길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이 있을 수 있을까그것은 탐욕의 다른 표현이다.
당장 쓰지 않고 먹지 않는 것을 쌓아 두는 것도 자연을 거스르는 행동이다그러면 저축해 놓은 돈은그 돈을 저축하기 위해 내가 한 행동이 자연을 거스르는 탐욕의 산물인지 생각해 볼일이지만 내가 알지 못하지만 연관된 그 과정의 복잡함으로 끝내 밝혀내지는 못하리라.
내일모레아니면 그 언젠가 미래에 먹을 음식을 냉장고에 저장하기 위해 전기를 쓴다그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화석연료를 태우거나 골짜기를 수몰해 댐을 짓거나 그 위험성을 알면서도 원자력발전소를 짓는다이 모두가 자연스러운가파괴와 죽음을 향해가는 것인가?
내가 세상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나 먼저 자연에 한 부분으로 순환의 한 고리로서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세우고 생활을 바꿀 수는 있을 것이다.


돈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보고 개인의 행복과 자연과 사회에 긍정적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돈을 사용하고, 또한 모아야 한다.


박노해 시인의 또 다른 글에서 "돈으로 살 수 있는 능력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고, "은퇴해서도 고민하는 것은 자신의 쓸모에 대해서이지 돈에 대해서가 아니더라"는 어느 블로그의 글처럼 돈에 집착하기 보다는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삶을 위해 돈을 벌고 소비하는 일상의 삶은 바람직한가? 자급자족하며 자연에 기대어 사는 삶이 세상에 보탬은 안되더라도 피해는 덜 주는 건 아닌지?


우리의 삶에서 돈은 쓰고 받기만 하는 삶에서 돕고 베푸는 삶으로 가야 할 것이다.

우리의 시간을 돈으로 바꾸어 쌓아두는 우를 범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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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 여행에 대한 누군가이 추천글에서 우연히 발견한 "나는 걷는다"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로 유명한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일명 까미노 데 산티아고), 와일드라는 영화로 알게 된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남미여행의 희망을 갖게하는 파타고니아와 로라이마산 트레킹, 유럽에서 오랫동안 사랑 받았다던 뚜르드 몽블랑과 돌로미티, 웨스트하이랜드웨이 트레킹 코스.... 그리고 뉴질랜드의 밀포드 트레킹과 네팔의 히말라야 트레킹까지 세계 곳곳의 트레킹 코스에 관한 책이나 영화, 다큐멘터리를 보면 언제나 가슴이 설레인다.

그러면서 아직 한 군데도 가보지 못했지만 산티아고 길, 돌로미티, 히말라야, 밀포드, 그리고 파타고니아의 다섯 곳을 생애 꼭 가보고 싶은 길로 꼽았었다.

그런데 "개미" 등의 소설로 익숙한 베르나르라는 이름을 쓰는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실크로드 1만2천길로미터 대장정의 이야기는 읽고 싶은 관심을 끌어 당겼다. 이스타불에서 시안까지의 거리와 4년이라는 시간만큼이나 3권에 나눠 담긴 이야기는 길지만 읽는 내내 손을 떼지 못하게하는 힘이 있다.

 

이야기의 시작에서 "그는 스스로에게 떠남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짐작컨대 사는 것 자체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떠나려는 것이다."라는 표현과 3권의 마지막 부분에 "사람들이 내게 무얼 찾으러 여기 왔냐고 바로 지금 묻는 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을 찾기 위해서' 라고. ...종탑은 하나의 단계일 뿐이고, 나는 여기서 지혜를 얻지는 못했지만, 어떤 힘을, 혹은 인간으로서 나의 길을 계속 이어가게 해주는 열정을 얻었다."에서 작가는 은퇴 이후에도 살아가고자하는 인생의 의미를 찾는 과정으로 길을 걷게 되지 않았나 생각하게 된다.

 

또한 걷는 여행의 재미를 그 과정에서 찾았음을 알 수 있다. "홀로 외로이 걷는 여행은 자기 자신을 직면하게 만들고, 육체의 제약에서 그리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안락하게 사고하던 스스로를 해방시킨다. 순례자들은 아주 긴 도보여행을 마친 후엔 거의 예외 없이 변모된 자신의 모습을 느낀다. 이는 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스스로를 직면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발견할 수 없었을 자신의 일부를 만났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혼자 걷는 것을 선호해야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데, 여정에서 친구들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도 제주도 올레길* 이후에 많은 도보길들이 유행처럼 생겨나고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예전부터 삶이 힘들거나 인생의 전환점을 갖는 시간이 필요할 때, 삶의 지혜를 얻고자 할 때 우리는 길을 떠났다.

길을 걸으며 우리는 자신을 되돌아보고 생각하고, 의도하지 않은 우연한 만남을 통해 소통하며 새로운 생각과 의미를 찾게 된다.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어디에도 그 기록이 없는 실크로드 1만2천길로미터를 걸으며 길 위에, 그리고 길 옆에 자연과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삶의 예술품을 감상하며 인생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길을 걸으며 쇠이유(SEUIL)라는 도보여행을 통한 비행 청소녕 갱생 프로그램 협회를 만들고 운영하게 되었듯이, 우리도 인생에 물음표가 생길 때 길을 나서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제주올레의 서명숙 대표가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으며 파울로 코엘료를 만났던 다큐멘터리를 언젠가 본적이 있다. 그녀도 까미노를 걸으며 우리 나라 사람들도 멀리 외국의 유명한 트레킹 코스를 가지 않더라도 제주의 자연과 동네 길을 걸으며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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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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