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9.09.09 유럽도시기행1 - 유시민
  2. 2019.08.23 열하일기 - 박지원

여행은 새로운 경험을 통해 견문을 넓히고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깨닫는 방법 중 한 가지다.

계획하지 않고, 예상하지 못한 만남을 통한 즐거움도 있겠지만 여행도 아는 만큼 더 잘 보고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기를 읽고, 여행 정보를 찾아보는 거겠지...

 

[이하 본문 발췌]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데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나는 도시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로운 것을 배운다. 나 자신과 인간과 우리의 삶에 대해 여러 감정을 맛본다. 그게 좋아서 여행을 한다. 그러려면 도시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건축물과 박물관, 미술관, 길과 공원, 도시의 모든 것은 '텍스트(text)'일 뿐이다. 모든 텍스트가 그러하듯 도시의 텍스트도 해석을 요구하는데, 그 요구에 응답하려면 '콘텍스트(context)'를 파악해야 한다. 콘텍스트는 '텍스트를 해석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말한다. 도시의 건축물과 공간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생각과 감정과 욕망, 그들이 처해 있었던 환경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다. 누가, 언제, 왜, 어떤 제약 조건 아래서, 어떤 방법으로 만들었는지 살피지 않는 사람에게, 도시는 그저 자신을 보여줄 뿐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지는 않는다. - 서문 중에서

 

도시는 대형서점과 비슷하다. 무작정 들어가도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책이 너무 많아서 여기저기 둘러보다 보면 시간이 걸리고 몸도 힘들며, 적당한 책을 찾지 못할 위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구매할 책을 미리 정하고 가서 그것만 달랑 사고 돌아온다면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인터넷서점에 주문하면 되지 무엇하러 굳이 서점까지 간단 말인가. 대형서점의 가장 큰 장점은 '뜻밖의 발견'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즐거움을 맛보려면 서점의 구조를 미리 파악하고, 어떤 분야의 책을 살펴볼지 계획을 세워야 한다. 사려고 마음먹었던 책이 신간 안내나 서평에서 본 것처럼 정말 괜찮은지 확인하는 건 기본이고, 신간 코너와 베스트셀러 진열대, 스테디셀러 판매대, 기획 도서 진열대, 귀퉁이 서가까지 다니면서 이 책 저 책 들춰보는 여유를 누리는 것은 덤이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낯선 도시를 여행했다. 찍어둔 곳을 빠뜨리지 않았고 몰랐던 공간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맛보았다. - 서문 중에서

 

아테네, 멋있게 나이들지 못한 미소년

  • 플라카의 골목을 걸으며 생각해보았다. 아테네 시민들은 왜 소크라테스를 죽였나? 고정관념, 광신, 시기심, 무지, 무관심, 변덕이 그를 죽였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어떤 지식인은 국회의원을 차라리 추첨으로 뽑자고 주장한다. 국회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할지라도, 나는 이 주장에 공감하지 못한다. 플라톤은 민주주의가 반드시 중우정치로 흐른다면서 덕과 진리를 아는 '철학자의 통치'를 옹호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민들이 각자 훌륭해지지 않고, 훌륭한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국가가 훌륭해지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소크라테스를 죽인 아테네 시민들보다 얼마나 더 훌륭하며 국가와 정치에 대해서 얼마나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얼마나 더 능동적으로 참여하는가? 나는 직접민주주의가 다수의 폭정으로 흐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비관론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소크라테스의 삶과 죽음은 아테네 민주주의의 잠재력과 한계를 모두 확인해 주었다. 아태네의 품에서 태어났으나 시대의 경계 너머로 나아갔던 그는 민주주의라는 옷을 입은 다수의 폭정에 목숨을 빼앗겼다. 그런데도 민주주의는 문명의 대세가 되었고 소크라테스도 인류의 스승으로 인정받는다. 역사의 역설이다.
  • 세상에는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되는 일이 많다. 학자들은 '경로 의존성'이라는 개념으로 이런 현상을 설명한다. 우연히 어떤 길을 들어서고 나면 더 좋은 길을 알아도 가던 길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면 되는 것, 무얼 위해서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근심하며 종종걸음을 친단 말인가.' - 그리스인 조르바

 

로마, 뜻밖의 발견을 허락하는 도시

  • 로마는 전성기를 다 보내고 은퇴한 사업가를 닮았다. 대단히 현명하거나 학식 있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뛰어난 수완으로 돈과 명성을 얻었고, 나름 인생의 맛과 멋도 알았던 그는 빛바랜 명품 정장을 입고 다닌다. 누구 앞에서든 비굴하게 행동하지 않으며 돈지갑이 얄팍해도 기죽지 않는다. 인생은 덧없이 짧으며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때 거두었던 세속적 성공에 대한 긍지를 버리지는 않는다. 로마는 그런 도시인 것 같았다.

 

이스탄불, 단색에 가려진 무지개

  • 인간은 지구의 바이러스이고 도시는 그 바이러스가 만든 피부병
  • sokakta hayat var, 길 위에 삶이 있다.
  • 낯선 도시에서 눈썰미와 요령만으로 맛집을 찾는 데 성공하면 세 가지 즐거움을 얻는다. 혀로 맛보는 기쁨, 배로 느끼는 만족감, 그리고 마음이 누리는 뿌듯함이다.

 

파리, 인류 문명의 최전선

  • 루브르를 지배하는 것은 작품의 아름다움과 예술가의 열정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과 권력의 횡포, 집단적 허영심이다. 적어도 내 느낌은 그랬다. 루브르의 건물은 프랑스의 국력과 왕의 권력에 비례해 커지고 화려해졌다. 전시품도 마찬가지였다. 중세와 근대의 예술작품 중에는 왕가의 수집품이 적지 않고 남의 나라 고대 유물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약탈해 온 게 대부분이다.
  • 어쩌다 한 번 해보는 사치여서 좋은 것이지, 날마다 그렇게 먹는다면 그다지 좋은 줄 모를 것도 같았다. 행복을 느끼는 데는 결핍이 필요하다.
  • 에펠탑은 세 가지 측면에서 파리가 지구촌의 문화수도가 될 자격이 있음을 보여준다. 첫째, 에펠탑은 과학혁명의 산물이다. 세계박람회장 관문을 만들기 위한 건축 공모를 할 때 프랑스 정부는 '기술적 진보와 산업 발전을 상징할 기념물'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에펠탑은 금속 7천300톤을 포함해 전체 무게가 1만 톤이 넘으며, 자체 하중과 바람의 압력을 거뜬하게 견뎌낸다. 발명왕 에디슨이 괜히 공학이 발전과 기술자들의 능력을 찬양하는 글을 방명록에 남긴 게 아니다. 프랑스의 과학자, 엔지니어, 수학자 72명의 이름을 탑에 새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둘째, 에펠탑은 공화정이라는 프랑스 정치제도의 특징을 체현하고 있다. 왕이나 교황이 취향 따라 만든 게 아니라 공모 절차와 전문적 평가를 통해 디자인을 결정했으며 전문가와 비평가들이 아니라 대중이 좋아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에펠탑은 민주주의 시대 도시의 주인은 권력자가 아니라 시민이며, 시민이 선출한 정부가 합당한 과정을 거쳐 중대사를 결정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정체제도가 문명의 대세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계기는 1789년 터진 프랑스대혁명이었다. 에펠탑은 이 혁명의 심장이었던 도시의 대표 건축물로 손색이 없다. 셋째, 에펠탑은 자유와 평등, 인권의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고대와 중세의 왕궁이나 교횡와 달리 에펠탑은 개인이 디자인한 예술품이며 노예 노동이나 강제 노동 없이 축조했다. 디자인을 설계한 에펠은 물론이요 과학자, 수학자, 엔지니어들도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위험이 따르는 작업을 수행한 노동자들도 저마다의 권리를 누리면서 일했고, 당국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최대한의 안전 조처를 했다. 자본주의는 격차와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이지만 적어도 공공연한 강제 노동이 없다는 점에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질서임이 분명하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077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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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여년 전 우리 선조들의 해외 여행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만으로 그려지지 않는 이 질문에 생생한 여행길의 풍경, 여행지에서의 낯선 만남과 우정, 느낌을 엿볼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허생전, 호질 이야기가 열하일기 속 액자구조(소설)로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알랑가 모르겠내?\

 

 

중국말도 잘 못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이방인들과 '찐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느냐고, 그러면 연암은 그렇게 답할 것이다. 우정을 나누는 데 필요한 건 외국어 실력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라고, 또 그러기 위해선 언제, 어디서건 웃음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고. --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 머리말 중에서

 

"자네, 길道을 아는가" 수역 홍명복에게 물었다. "네? 무슨 말씀이시온지?" "길이란 알기 어려운 게 아니야. 바로 저편 언덕에 있거든" "'먼저 저 언덕에 오른다'는 말씀을 이르시는 겁니까?" "그런 말이 아니야. 이 강은 바로 저들과 우리 사이에 경계를 만든느 곳일세. 언덕이 아니면 물이란 말이지. 사람의 윤리와 만물의 법칙 또한 저 물가 언덕과 같다네. 길이란 다른 데서 찾을 게 아니라 바로 이 사이에 있는 것이지." "무슨 뜻인지요?"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한 법이지. 서양 사람들은 기하학이 한 획을 변증하면서 선 하나를 가지고 가르쳤다네. 그런데도 그 미세한 부분을 다 변증하지 못해 '빛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경계'라고 말했어. 이건 바로, 부처가 말한 '닿지도 떨어져 있지도 않는다'는 그 경지일세. 그러므로 이것과 저것, 그 '사이'에서 존재하는 것은 오직 길을 아는 이라야만 볼 수 있는 법, 옛날 정자산 같은 사람이라야 될걸." - <도강록> 신미일 6월24일

 

 '사이'란 무엇인가? 흔히 생각하듯, 두 견해 사이의 중간이나 평균을 뜻하는 건 결코 아니다. 양변의 절충이나 타협으론 결코 새로운 길이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이것과 저것, 그 양변을 떠난 제3의 경로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는 어떤 방향도, 목적도 없다! 따라서 그것은 삶의 구체적 장면 속에서 매순간 새롭게 구성되어야 한다. - 머리말 중에서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317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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