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을 줄이고 존재의 주인으로 사는 삶!
마음이 웃는 삶!

 

 

[본문발췌]

 

 

마음으로 웃어야 웃는 거지요. '웃는마음', 철수2009

 

 

잘났다는 사람들도 불쌍해 보이는 사람이 있고, 가난하고 초라한 삶일망정 그 속에서 망가지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크게 긍정하게 되지요. 중요한 건 하루하루가 에누리 없이 존재의 절정이어야 한다는 것. 순간순간이 절정이고 완성이라는 것.

 

 

박인환의 시처럼 '인생은 그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한 것'이기 십상이다. 청춘은 다만 소비되는 인스턴트 노동력에 불과하고, 어중간한 중늙은이들은 직장에서 밀려나 갈피 없는 방황에 휩사일 가망성이 많다. 길은 어디에 있나. 농사보다 나은 게 있으면 어디 나와보라 해! 박달재 자락에 사는 사람은 이렇게 목청을 높이고 있다.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배란 방파제 안에 묶어두고자 만든 게 아니다. 사람이 산다는 일도 마찬가지 아닐까. 타성에 젖은 안주, 늘 걷던 길만을 걷는 일은 안전할 수 있다. 그러나 길을 벗어나 가보지 않은 길을 거거나, 스스로 길이 되는 일에 사람의 본분이 있다. 이것이 지혜로운 자들의 귀띔이지 않던가.

 

 

농촌에 살면서 바라 보이는 모든 소소한 생명들, 땅, 흙, 공기에 기대어 사는 다양한 생명들은 어쩌면 그리도 면밀하게 살아가는가 하는 경탄과 함께, 내 자신을 온통 의미로 가득한 각별한 존재라 스스로 느끼는, 그런 순간들이 참 좋아요. 종래엔 '을'로 살아왔다가 이제 '갑'으로 산다고 할까. 존재의 주인공으로 산다 할까 그런 거.... 깨달음 까지는 아니더라도, 존재에 관한 사려 깊음만 있어도 삶의 문제를 많이 해결할 수 있지 않겠어요?

 

 

하늘이 낳고 땅이 기르니 거기서 우리도 묻어 살지요.

 

 

땀 없이 먹고 사는 삶은 빌어먹는 것만도 못하다. 호미 끝에 화두를 싣고 밭에서 살아라. 일은, 존재의 숙명이지. 거기서 생명의 들고 나는 문을 발견하지 못하면 헛사는 일이다. 호미 놓지 말아라! - '백장법문', 철수2011

 

 

일상의 현실, 특히나 도시에서 새장에 갇힌 새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존재의 문제를 생각할 기회 자체가 들물지도. 일테면, 밤하늘에 별은 보이질 않고, 빌딩 숲에 가려 달도 홀로 흘러갑니다. ... 자연의 투명한 달빛을, 때로는 햇빛까지 가려버리는 도시의 문명은 아마도 거대한 커튼 같은 게 아닐까요. 그 가운데 21세기 사람들의 마음을 가리는 가장 위험한 문명은 모니터가 아닐까 시퍼요.

 

 

짐승이나 수목들은 약육강식 원리에 충실할 뿐 사람처럼 욕망의 노예가 되지는 않아요. 사람들은 끝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문제는 시장과 사람의 욕망이 한통속으로 굴러간다는 점이에요. 욕망을 외화해서 상품을 만들어내고, 그것으로 우리의 노동의 수고를 고스란히 빼앗아 가죠. 수탈과 탕진이 반복되고 있어요. 시장을 중심으로 뺏고 빼앗기는 사냥이 전면적으로 이루어지는 사회예요. 이 와중에서 우리의 영혼은 날로 황폐해질 수밖에. 가야 할 데가 분명해지면 짐을 줄이고 떠나게 되지요. 행장을 가볍게 하고 떠나는 여행처럼.

 

 

우리 사회가 인간의 상품화에 대한 연민이 없습니다. 전인격이나 전 존재를 온전하게 구현하기 어려운 현실이에요. 정육점에 가서 부위별로 팔려나가는 고깃동이를 보면 우리 사회 같지요. 전인적인 일보다는 부분적인 일에 사람들을 몰아넣어요. 한 개인을 제한적으로 협소한 분야에서만 활동하게 하는 이 시스템 속에서 사람 자체가 부품으로 전락하고 말아요. 파편화되는 거지요. 크게 보면 상품이 되는 거지요. 한 존재를 통째로 들어다 쓰는 대신 존재를 기형적으로 발현하게 하는 구조 아니겠어요?

 

 

사람의 욕망은 채울 수도, 끝도 없다는 건 누대로 확인된 얘기 아닌가요? 그리고, 욕망 그 심연엔 아무것도 없다는 게 현자들이 전해주는 지혜지요.

 

 

자연 속에선 내 마음이 묻고 내 마음이 답합니다. 물음도 답도 조용하게 오가죠. 그러나 사람과의 관게에선 내 뜻이 받아 들여지지 않기도 하고, 곡해나 오해도 생기고, 나만의 생각으로 그치게 되고..... 늘, 마음 그릇이 작아서, 다 받아낼 수 없었던 게 제일 문제였어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 관한 열망과 애호를 갖고 산다. 난 이런 사람이야! 하는. 관계의 불화와 갈등은 이 '자기 애호'들의 충돌이기 쉽다. 그리하여 유가에서는 '신독(愼獨)'을 귀띔했다. 신독. 야야, 짜식아, 홀로 있을 때 똑바로 해! 그쯤의 전갈이다. 타자의 시선을 내 안에 들여놓아 내 살림을 감독하라는, 치열한 자기검열에의 주문이다.

 

 

키큰 나무들의 숲에서는 비좁게 서서 키를 다툰다. 숲밖으로 겨우 얼굴만 드러내고 사는 것들! 허명의 삶이 이럴까?, - 키큰 나무들의 숲에서, 철수2011

 

 

작은 농사라도 지어 시장의 권력에 가급적 덜 휘둘리자. 자급자족의 삶....

 

 

참 좋은 평범한 삶.... 세상에 드러나지 않으면서 자기 존재의 깊은 뜻을 온몸으로 이해하고, 안도하고, 그리고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스스로 너무 고달프지 않고, 따뜻하고 조용한 삶.

 

 

자유나 기쁨을 소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그런 병든 사람은 되지 말자.

 

 

먼지 바깥의 빛을 보자면서도 실은 박차를 가해 먼지 속으로 질주하는 아이러니. 하루살이는 살겠다고 어딘가에 온몸을 던진다. 그런데 거기가 겨우 불속이다. 이게 남의 일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삶이라는 바다는 차고 거칠다. 가볍고 황폐한 '관계'들, 넘실거리는 꿍꿍이와 계략, 물신 숭배와 속도 경쟁.... 우리가 코 꿰여 있는 삶의 바다라는 게 대충 그렇다. 그 난잡한 바다를 건너 우리는 어디로 가나. 고독한 인생을 무엇으로 보완하여 세상의 배면을 환히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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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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