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기억은 생물학적 뇌만 활용하던 세상에서 인터넷 접속을 통해 클라우드 저장공간(Cloud Brain)에 기억을 저장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지식까지 활용할 수 있다. 한 발작 더 나아가 인공지능 뇌(Artificial Brain)을 활용해 방대한 기억과 지식을 처리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키울수도 있다.

 

우리 삶 속에는 이분법적인 기계적 판단뿐 아니라 애매모호한 회색지대에 대한 판단 또는 보류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분법적 판단과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도 도덕적, 정치적, 사회적 문제의 경우 시간을 가지고 좀 더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점점 생각을 멀리한다. 쉽게 검색한 지식과 경험에 의존해 빠른 판단을 선호한다. 스스로의 생각과 해석이 가미된 의견이 아니라 복사와 붙여넣기가 난무하고 앵무새처럼 같은 말,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미디어는 말할 것도 없다.

 

생각하고 말하며, 생각하며 행동하자!

 

 

[이하 본문 발췌]

 

기억을 디지털 기술에 아웃소싱하면서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진단과 통찰'

 

책 속의 단어들은 추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만 강화시킨 것이 아니라 책 밖에 있는 물리적 세상에 대한 경험을 풍부하게 했다. 화가나 작곡가와 마찬가지로 작가들은 외부 자극을 차단하기보다는 오히려 풍부하게 해주는 방식으로, 인간의 다양한 경험에 대한 공감을 축소하기보다는 확장시키는 방식으로 의식을 변화시킨다.

 

웹 페이지를 훑어보는 데 시간을 보내느라 책 읽을 시간이 사라졌듯이, 작은 글자로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시간 때문에 문장과 절을 지어내는 데 투자하는 시간이 사라졌듯이, 링크들 사이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느라 보내는 시간이 조용한 명상과 사색의 시간을 몰아냈듯이 오래된 지적 기능과 활동에 사용되던 회로들은 약해지고 해체되기 시작했다. 뇌는 사용하지 않는 뉴런과 시냅스를 더욱 긴급한 업무 수행을 위해 재활용한다. 우리는 새로운 기술과 시각을 얻지만 오래된 것은 잃어버린다.

 

온라인상에서 끊임없이 주의력을 분산시키는 것은 우리 뇌를 멀티태스킹에 맞도록 더욱 민첩하게 만들지만 멀티태스킹을 가능케하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깊이,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사실상 저해하고 있다. 멀티태스킹을 더 많이 할수록 덜 신중해지고, 문제에 대해 덜 생각하고, 덜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독창적인 사고로 도전하기보다는 관습적인 생각과 해결책에 의존할 가능성이 더 크다.

 

"모든 곳에 있는 것은 아무 곳에도 없는 것이다" - 세네카

 

인터넷은 우리를 시공간적 능력(지능)에 대한 광범위하고 섬세한 발달로 이어졌다. 하지만, 의식적 지식습득, 귀납적 분석, 비판적 사고, 상상, 심사숙고를 뒷받침하는 진중한 처리 과정에 대한 능력은 약화시킨다. 훑어보고, 건너뛰고, 멀티태스킹을 하는 데 사용되는 신경 회로는 확장되고 강해지는 반면 깊고 지속적인 집중력을 가지고 읽고 사고하는 데 사용되는 부분은 약화되거나 또는 사라지고 있다.

 

균형잡힌 사고의 발달은 광범위한 정보를 찾고 재빨리 분석하는 능력과 함께 폭넓은 성찰의 능력도 요구한다.

 

기계에 기억을 아웃소싱할 때 우리는 지성이나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 역시 아웃소싱하는 것이다.

 

기억을 아웃소싱하면 문화는 시들어간다.

 

언제 먹고, 일하고, 자고, 일어날지를 정하는데 있어 우리는 우리의 감각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시계에 복종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더 과학적이 되었지만 더 기계적이 되기도 했다.

 

소프트웨어는 결국 가장 사적이고 개인적인 인간의 행동을 각각의 단계가 웹 페이지의 논리에 따라 암호화 되어 있는 생각없는 의식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우리의 지식과 직관에 따라 행동하기보다 기계의 작동 신호를 따라 움직일 뿐이다. - 토머스 로드

 

조용한 시골에서 자연과 가까이 하며 일정 시간을 보낸 후 사람들은 더 높은 집중력과 강력한 기억력, 그리고 보편적으로 향상된 인식을 보인다. 외부적인 자극의 폭격을 받고 있지 않을 때 뇌가 실제로 휴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사색은 그들의 사고를 통제하는 능력을 강화시킨다. 자연과의 단순하고 짧은 교류만으로도 인지 통제에 대한 눈에 띄는 진저을 가져올 수 있다.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효과적인 인지 기능에 있어 필수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뇌가 신체의 직접적인 연관을 뛰어넘어 심리학적 도덕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느끼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 더욱 산만해질수록 인간의 가장 섬세하고 고유한 특성인 공감, 열정 등과 같은 감정의 경험은 더욱 줄어든다. 특정 사고에 있어서, 특히 다른 사람들의 사회적, 심리적 상황에 대한 도덕적인 결정에 있어 우리는 적절한 시간과 심사숙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이 너무 빨리 일어난다면 타인의 심리적인 감정을 완전하게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 인터넷이 우리의 살아 있는 통로의 경로를 바꾸고 사색 능력을 감소시키고, 우리의 생각뿐 아니라 감정의 깊이도 바꿔놓는다.

 

소프트웨어는 규칙을 따를 뿐이다. 소프트웨어는 판단하지 않는다. 주관성 대신 공식을 제공한다. 따라서, 소프트웨어를 통해 관습을 깨는, 창의적 사고를 판단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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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태어난 시점에는 사람 자체만으로 큰 차이는 없지만 살아가는 과정과 마무리는 천차만별이다.

젊은날 우리는 사랑과 무언가에 대한 열정에 목을 맨다. 시간이 지나면서 누군가는 탐욕이 그 자리를 채우고 회한과 함께 마무리한다. 다른 누군가는 순간순간을 만족하고 의도하지 않지만 자신과 다른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며 살아간다. 또 누군가는 아무것도 아닌 그냥 존재했다가 사라진다.

 

당신의 현재는 어떤가요? 그리고 어떤 마무리를 원하나요?

 

 

만일 누군가 나에게 이 소설을 단 한 줄로 요약해달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표적을 빗나간 화살들이 끝내 명중한 자리들" 이라고. 개츠비에게는 데이지라는 목표가 있었고,  데이지에게는 낭만적 사랑이라는 지향이 있었다. 지친 윌슨은 엉뚱한 사람에게 복수를 하고, 몸이 뜨거운 아내는 달려오는 자동차를 잘못 보고 제 몸을 던진다. 작가인 피츠제럴드마저도 당대의 성공과 즉각적인 열광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 표적들을 향해 쏘아올린 화살들은 모두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꽂혔다. 난데없는 곳으로 날아가 비로소 제대로 꽂히는 것, 그것이 바로 문학이다...... (역자 해설 중, 김영하)

 

서른 살, 외로운 십 년을 예고하는 나이. 알고 지내는 독신남이 줄어들고 열정을 담은 서류가방이 얇아지고 머리숱도 줄어드는.....  (닉 캐러웨이가 서른살 생일에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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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쉼표, 그 시간은 하루를 되돌아보고 내일의 희망을 꿈꾸는 시간이다. 

앞선 사람들의 지혜가 담긴 한 문장이 위로가 되기도 하고, 애매모호하고 흐릿한 내일의 등대가 되기도 합니다.

 

 

[본문 발췌]

 

좋아하는 일을 하라 (존 D. 록펠러 3세)

행복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 원칙 위에 놓여 있다. 내가 좋아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은 다음, 거기에 온 힘을 다하는 것이다. 내가 가진 에너지, 야망, 그리고 타고는 재주 등을 하나도 남김없이.

The road to happiness lies in tow simple principles: Find what interest you and that you can do well, and put your whole soul into it-every bit of energy and ambition and natural ability that you have.

 

돈은 만족하지 않는다 (벤자민 플랭클린)

부자란 어떤 사람인가? 만족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누군가? 아무도 없다.

Who is rich? He that is content. Who is that? Nobody.

 

지금 하고 있는 일 (화자 미상)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다.

The most important thing in our lives is what we are doing now.

 

어제의 짐은 내려놓자 (존 뉴턴)

그날 하루 분량의 짐만 져야 한다면 관리하기가 무척 수월하다. 하지만 어제의 짐을 오늘까지 지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일 몫의 짐까지 그 위에 얹는다면 그 짐은 너무나 무거워질 것이다.

 

자신을 믿어라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자기 자신을 믿는 순간, 어떻게 살지 알게 될 것이다.

As soon as you trust yourself, you will know how to live.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456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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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과 마음의 빈곤은 삶의 여유를 가질 수 없게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도 장애물이 된다. 그러한 어려움 속에도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가슴 뛰게 하는 일을 찾아 그 일을 실행하는 그 순간이 즐거움이고 행복이다.

 

 

[본문 발췌]

 

당신이 이 생에 태어난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슴 뛰는 삶을 살기 위한 것입니다. 당신은 그 일을 발견해야만 하고, 또 그것만이 당신에게 참다운 존재 이유를 깨닫게 해줍니다. 그것이 가장 큰 행복이며 진리의 길입니다. 가슴 뛰는 일을 하라는 것이 당신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그때 비로소 당신은 자신이 갖고 있는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먼저 당신이 할 일은 이것입니다. 자신에게 물어 보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면 나는 가슴이 뛰는가. 무엇을 하면 나는 가장 행복한가. 그 일을 당신은 찾아나서야만 합니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할 때 가슴이 뛴다면 이미 그 일을 할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또 어떤 것을 가슴 두근거리며 상상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을 가질 만한 충분한 가치가 당신에게는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일을 할 때 가슴이 뛴다면 그것은 다음의 세 가지를 당신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하나는 그것이 당신을 위한 길이라는 것이고, 두번째는 당신이 그 일을 하면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이고, 세번째는 그 일을 하면 당신의 삶이 매우 풍요로워진다는 것입니다.

 

풍요로움의 정의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필요가 있을 때 하는 것'

 

확실한 기회가 왔는데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니까 자신은 늘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분명하게 보일때는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십시오.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그것이 옳은 길인가 아닌가를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행동으로 빨리 옮길수록 더 빨리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결과를 확실히 알게 될 때까지 기다리려면 아주 오래 기다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삶을 기다림만으로 채우지 마십시오. 선택함으로써 어느 것이 자신의 길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너무 앞만 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너무 앞만 보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코끝에 매달려 있는 것을 전혀 보려고 하지 않는다.' - 헨리 밀러, 북회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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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생존과 번영을 위해 평균을 중심으로 모이고 편향의 극단에서 변혁과 진화가 일어난다. 평균과 편향의 원리가 작동하며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사회도 다양성과 다면성 유지를 위한 편향과 균형의 중도가 공존해야 건강해 진다지만, 작금의 상황은 경제, 정치, 사회 모든 분야에서 극단의 편향성을 넘어 거짓과 왜곡 투성이 미디어가 판을 치고 대중은 거기에 부화뇌동하지 않는지 우려된다.

 

오로지 깨어있는 시민의 판단과 시간에 맡길뿐!

 

 

편향 (偏向), 한쪽으로 치우침.

 

(네이버 영어사전) [명사] bias, [동사] be biased, be prejudiced, be lopsided      

편향된 시각으로 바라보다, look at sth from a biased point of view

그들은 편향된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다, They have biased historical awareness.

그 신문의 보도는 편향된 측면이 있다, The newspaper's report is biased in some aspects.

 

(wikipedia) Bias is disproportionate weight in favor of or against an idea or thing, usually in a way that is closed-minded, prejudicial, or unfair. Biases can be innate or learned. People may develop biases for or against an individual, a group, or a belief.[1] In science and engineering, a bias is a systematic error. Statistical biasresults from an unfair sampling of a population, or from an estimation process that does not give accurate results on average.

위키 문서 링크:  https://en.wikipedia.org/wiki/Biashttps://namu.wiki/w/%ED%8E%B8%ED%96%A5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선택 편향의 한 종류.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 쉬운 한마디로 말하면 답정너. 사람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현상유지 편향(status quo bias), 현상유지를 선호하는 의사결정에서 나타나는 지각적 편향이다. 사람들은 현재의 성립된 행동을 특별한 이득이 주어지지 않는 이상 바꾸지 않으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유사한 다른 개념들로 부작위 편향(omission bias), 손실 회피 편향(loss aversion bias)이 있다. 부작위 편향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 는 태도로 복지부동하며 최소한의 행동만 하려는 편향을 말하며, 손실 회피 편향은 같은 양이라도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쓰디쓰게 느껴지게 되는 편향을 말한다.

 

선택편향(Selection bias), 표본을 사전 또는 사후 선택함에 따라 통계 분석을 왜곡하는 오류다. 일반적으로 이것은 통계적 유의성의 척도를 실제보다 더 크게 나타나도록 만든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허구적인 결과를 낼 수도 있다. 선택 편향은 자료를 직접 조작하는 과학적 사기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무의식적인 조작이나 관찰 도구의 편향에 따른 것이다. 예컨대 천문학적 관찰에서 파란 은하가 빨간 은하보다 더 잘 발견되는데, 대부분의 관찰 도구가 파란색에 더 민감하기 때문이다.

 

후원편향(funding bias), 어떤 연구가 그 연구에 비용을 대 주는 후원자 집단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결과가 나오는 경향. 갈수록 많아진다. 기업 친화적인 언론기사, 일본의 지원을 받은 역사왜곡 학술 논문과 서적 등등

 

 

[글과 책 속에 쓰인 '편향'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

 

알랭 드 보통, <뉴스의 시대>

사실의 정반대에 있는 것은 편향이다. 진지한 저널리즘의 영역에서 편향은 무척 악명이 높다. 그것은 악의적인 의제, 거짓말, 대중의 자유로운 의사 결정권을 부정하는 권위주의적 시도와 동의어다.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편향에 대해 좀더 관대해져야 할지도 모른다. 순수한 의미에서 편향은 사건을 평가하는 방법을 뜻할 뿐이다. 그리고 이는 인간의 기능과 활동에 관한 일관되면서도 근본적인 논지에 의해 인도된다. 편향은 현실 위를 미끄러져들어감으로써 더 명확하게 사건을 들여다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한 쌍의 렌즈다. 편향은 사건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려 분투하고 개념이나 사건을 판단할 수 있는 가치의 척도를 제시한다. 편향을 벗어나려는 행동은 그 자체로 지나친 시도로 보인다. 오히려 우리의 임무는 편향된 시각이 생산한 더 믿을 만하고 유익한 뉴스에 올라타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언론이 칭찬받을 만한 지점은, 사실을 모으는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그 사실들의 타당성을 알아내는 (지적 편향을 통해 갈고닦은) 기술이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안티 프래질>

어떤 사람은 체계가 잡힌 곳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욱 지적일 수 있다. 실제로 학교는 체계가 잡히지 않은 곳에서의 능력을 무시하면서 체계가 잡힌 곳에서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을 선호하는 선택 편향을 갖는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행운에 속지마라)

결과가 비대칭인 경우 평균값과 중앙값은 전혀 관계가 없다. 현실은 비대칭적인 경우가 많다. 이것이 편향이다.  ... 희귀사건이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저평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유는 심리적 편향 때문이다. 

"편향에 대한 베팅", 비대칭적 베팅을 통해 희귀 사건으로 부터 이익을 추구하는 것

 

캐시 오닐, <대량살상 수학무기>

빅데이터 경제의 원동력인 수학 모형 프로그램들은 실수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선택에 기반을 둔다. 분명 이런 선택 중 일부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모형은 인간의 편견, 오해, 편향성을 코드화했다. 그리고 이 코드들은 점점 더 우리 삶을 깊이 지배하는 시스템에 그대로 주입됐다. 수학 모형은 여러 가지 면에서 신을 닮았다. 신처럼 불투명해서 이해하기 힘드다. 각 영역의 최고 사제들, 즉 수학자와 컴퓨터 과학자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내부의 작동 방식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신의 평결처럼, 잘못되거나 유해한 결정을 내릴지라도 반박하거나 수정해달라고 요구할 수 없다.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차별하고 부자는 더욱더 부자로 만들어주는 경향이 있다.

인종차별 모형은 무계획적인 데이터 수집과 허위상관spurious correlation에 의해 작동하고, 제도적 불공평institutional inequity에 의해 강화되며,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에 의해 오염된다.

 

니콜라스 카, <유리감옥>

사람들이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서 문제를 해결할 때면 가끔 안심complacency과 편향bias이라는 두 가지 인지적 질환에 걸리곤 한다. 안심은 잠재적인 위험이나 결함을 모르고 지나치게 자동화된 시스템에 의존하는 경향을 말하고, 편향은 자동화를 맹신하는 경향을 뜻한다. 이 두 질환은 우리가 화이트헤드처럼 고민해보지 않고 중요한 일들을 처리할 때 걸릴 수 있는 덫이다. 컴퓨터가 그릇된 안정감을 줄 때 우리는 안심한다. 우리는 기계가 앞으로 생길지도 모를 어떠한 도전도 해결해주리라고 확신하고 일에 관심을 쏟지 않게 된다. 우리는 맡은 일 전부 아니면 소프트웨어가 처리해주는 일의 일부에 무관심해진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뭔가가 잘못됐다는 신호들을 놓칠 수 있다. 우리는 대부분 컴퓨터 앞에 앉아서 그렇게 안심했다. 이메일이나 문서 편집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때 맞춤법 검사 프로그램이 켜져 있으면 써놓은 글을 꼼꼼하게 교정 보지 않는다. 

자동화에 대한 안심과 편향 모두 우리의 제한적 집중력 때문에 생기는 것 같다. 안심하려는 경향은 우리가 우리 주변과 꾸준히 상호작용하지 않아도 될 때 집중력과 자각력이 얼마나 쉽게 떨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편향적으로 정보를 평가하고 무게를 재려는 성향은, 우리가 선별적으로 집중하고, 잘못된 믿음이나 심지어 유용할 것 같은 프롬프트의 등장만으로도 쉽게 왜곡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안심과 편향은 자동화된 시스템의 질과 신뢰성이 높아질수록 더욱 심각해진다. 여러 실험 결과 들을 보면, 우리는 빈번하게 오류를 일으키는 시스템에 대해 경계심을 갖는다. 우리는 주변 환경을 계속 의식하고, 다양한 출처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를 예의주시한다. 하지만 시스템이 어쩌다가 한번 고장이 나거나 오류를 일으키는 정도로 높은 신뢰성을 보일 때 우리는 게을러진다. 그럴 경우 우리는 시스템이 결코 틀리지 않는다고 가정하기 시작한다.

자동화로 인한 안심과 편향에 쉽게 빠져드는 현상은 자동화만 믿던 우리가 어떻게 해서 과실과 태만이라는 그릇된 행동을 저지를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우리는 부정확하거나 불완전한 정보를 수용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또는 예의주시했어야 하는 것들을 놓쳐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컴퓨터에 대한 의존이 자각력과 주의력을 약화시킨다는 사실은 또 다른 문제로도 이어진다. 자동화는 우리를 행위자에서 관찰자로 전락시키는 경향이 있다. 조종사가 조종간을 조작하지 않고 스크린만을 응시하게 되는 식이다. 그런 변화로 우리는 전보다 더 편하게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전문지식을 배우고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은 손상될 수도 있다. 우리의 일 처리 능력을 높여주는지 낮추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자동화는 장기적으로 우리가 기존에 갖고 있던 기술력을 약화시키거나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지 못하게 방해할지 모른다.

 

네이트 실버, <신호와 소음>

기상 예측 민간 기업들은 대부분 편향을 가지고 있다. 의도적으로 설정된 편향이다. 특히 그들은 실제보다 눈이나 비가 더 많이 내릴 거라 예측하는 경향을 보인다. 기상 전문가들은 이를 '축축한 편향wet bias'이라 부른다. 이 편향은 정부기관이 발표한 원자료에서 더 멀리 벗어날수록, 그리고 소비자에게 더 밀착하는 예측을 할수록, 점점 심해진다. 예측은 이처럼 정확성을 축소함으로써 '가치 창출'을 늘린다.

 

정재승, <열두 발자국>

우리 모두에게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저 사람이 저걸 믿는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지 않을까?'라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나와 다른 의견과 미적 취향에 너그러워야 합니다. 다양성을 존중해야 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한 확신을 재고하고 늘 회의하고 의심해보는 사람, 그래서 결국 자기객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들을 끊임없이 포용하고 들어보려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많아져야 합니다. 여러분의 소셜미디어 친구에는 나와 다른 생각의 사람도 포함돼 있어야 합니다. 나의 트위터 팔로잉을 들여다봤을 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단번에 알 수 있다는 건, 나는 듣고 싶은 얘기만 듣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여러분의 트위터 타임라인은 여러분이 디자인한 세상, 조작한 세상이거든요. 여러분이 조작한 그 세상이 편향된 세상이 되지 않도록, 반대 의견까지도 듣는 태도를 만들어갑시다.

 

유리 브람, <통계적으로 생각하기>

선택 편향은 어디에나 있고, 우리가 비무작위 표본을 무작위 표본처럼 대할 때 발생하게 됩니다. 어떤 데이터의 경우에는 당신의 표본에 들어 있는 특정 데이터가 다른 데이터값에 의존하여 그 스스로를 편향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로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의 재선에 대한 유선 여론조사가 실제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예측하게 되었고, 미국 통계청의 인구조사가 방해받기도 합니다. 선택 편향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역시 상사들이 부하 직원들로부터 올바른 피드백을 받는 것을 방해하기도 하고, 우리가 매우 인상적인 사람들이라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잘 기억한다고 생각하게 만들기도 하죠. 또한 모든 자유 공연 참가자들은 자신이 가장 좋은 연주를 했다고 착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좋은 통계적 추론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했다면, 21세기 현재에는 너무도 많은 정보로 인해 어떻게 정보를 정리해야 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고민으로 바뀌었죠. 특히나 빠른 인터넷의 보급과 발전으로 우리들은 우리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과학, 의학, 경제, 정치 분야에서 많은 통계적 데이터들과 이론들을 접해왔고, 의식하지 못했더라도 일상생활에서 통계학을 사용해왔습니다 이 중 많은 정보들은 그 목적에 알맞게 올바른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많은 정보들이 과장, 왜곡, 편향되어 사용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새뮤얼 아브스만, <지식의 반감기>

우리가 자신의 뇌, 심리 등의 이상한 점을 안다면 인간은 스스로 내린 결정과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세상을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중요한 점은 인간이 새로운 지식과 사실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쓰는 방법이 완전히 합리적인 방법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이러한 편향 속에서 규칙성을 찾을 수 있고 어떤 예측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왜 잘못되고 낡은 사실을 믿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캐서린 슐츠Kathryn Schulz는 <오류의 인문학Being Wrong>에서 우리가 오류를 저지르는 이유를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그에 따르면, 어떤 형태의 진실을 믿고 싶어 하는 인간의 마음이 가끔 이유가 되기도 하고, 반대되는 견해 때문이기도 하다(책에서 슐츠는 어떤 관점에 집착하는 확실한 방법을 제시한다. 가까운 사람에게 반대되는 입장을 주장하라고 해보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저 내가 '지식의 관성'이라고 명명한 현상이 어느 정도 일어나기 때문이다. 지식의 관성이란 어떤 지식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진 다음에도 이 낡은 지식에 매달리는 경향을 말한다. 지식의 관성은 여러 가지 형태로 드러나는데,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진화심리학으로 이들을 설명할 수 있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이런저런 편향을 감추기는커녕 이들을 포용하고, 심지어 과거에는 결함으로 비치던 것들의 진화적 이익을 찾아내려 한다.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정치적 목적.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말은 가장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동기는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한다. 다시 말하지만,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1936년부터 내가 쓴 심각한 작품은 어느 한 줄이든 직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맞서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들이다. 우리 시대 같은 때에 그런 주제를 피해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내가 보기엔 난센스다. 누구든 어떤 식으로든 그런 주제에 대해 쓰고 있는 것이다. 그저 어느 쪽을 편들고 어떤 접근법을 따르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편향을 의식하면 할수록, 자신의 미학적 지적 진정성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정치적으로 행동할 기회가 많아지게 된다.

 

구본권, <로봇의 시대 인간의 일>

의식 현상에 대해 연구해온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최근 다양한 관측 도구와 실험 결과를 통해 의식의 핵심이 감정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인간의 의식은 오랜 진화 기간을 거치면서 많은 비정상적 요인에 영향을 받았고 이는 다양한 형태의 편향성을 형성했다. 인공지능은 사람의 의식처럼 비합리적 편향을 내재할 이유가 없으며, 감정에 휩싸여 비이성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판단을 하지도 않는다. 사람이 감정적 존재라는 것은 인간이 어떠한 상황에서든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것은 분노와 모욕을 참지 못한 충동적 살인일 수도 있고 목숨을 내던지는 살신성인의 결단일 수도 있다. 결함투성이이자 통제가 어려운 인간의 감정은 인간을 예측 불가능한 존재로 만드는 핵심적 특징이다.

 

에드워드 윌슨, <통섭>

자연과학은 지난 몇십 년 동안 자신의 연구 주제를 발빠르게 확장하여 사회과학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그 결과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간격을 잇는 4개의 교량이 생겼다. 첫 번째는 인지심리학적 요소들을 가지고 있는 인지뇌과학 또는 뇌과학으로서 이 분야의 종사자들은 정신 활동의 물리적 기초를 분석하고 의식적 사고의 신비를 해결하고자 한다. 두 번째는 인간행동유전학인데 이 분야는 아직 걸음마 단계이기는 하지만 인간 행동의 유전적 기초 - 예컨대, 유전자가 정신 발달에 어떤 편향적인 영향을 주는지? - 를 밝히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세 번째 교량은 진화생물학이다. 사회생물학은 진화생물학의 잡종 자손으로서 사회 행동의 유전적 기원을 설명하는 일을 목표로 하고 있다. 네 번째는 환경과학이다. 이 분야와 사회 이론과의 관계는 일견 희박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자연환경은 인간이라는 종이 진화해 온 극장이다. 또한 인간의 생리와 행동은 그 환경에 정교하게 적응되어 있다. 인간 생물학이나 사회과학도 이러한 틀을 고려하지 않는 한 완전한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스티븐 핑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하나의 사건을 공격자, 피해자, 중립적 제삼자의 눈으로 보았을 때 각각 서사가 달라지는 현상은 폭력의 삼각형에서 겹쳐진 심리적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도덕화 간극(Mralization Gap)이라고 부르자. 도덕화 간극은 자기 위주 편향(self-serving bias)이라는 더 큰 현상의 일부이다. 우리는 누구나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노력한다. '좋다'는 것은 효율적이고 능력 있고 가치 있고 유능하다는 뜻일 수도 있고, 착하고 정직하고 너그럽고 이타적이라는 뜻일 수 도 있다. 인간에게 자신을 긍정적으로 내보이려는 동기가 있다는 것은 20세기 사회 심리학의 중요한 발견이었다. ... 자기 위주 편향의 대표적인 현상은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이다. 사람들이 자신이 한 일에 대한 평가를 조작함으로써 자신이 스스로의 행동을 잘 통제한다는 인상을 지키려고 애쓰는 성향이다. 레이크 워비건 효과(Lake Wobegon Effect)도 있다. (작가 개리슨 케일러가 창조한 가상의 마을 이름으로, 그곳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평균이상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갖가지 바람직한 재능과 특징에 있어서 자신을 평균 이상으로 평가하는 성향을 말한다. 자기 위주 편향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치르는 진화의 대가이다. 우리가 집단을 형성하는 것은 서로 자석처럼 끌리는 로봇이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에게 사회적, 도덕적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온기와 공감을, 감사와 신뢰를, 외로움과 죄책감을, 질투와 분노를 느낀다. 이런 감정들이 내면의 규제자로 작용하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 생활의 대가로 고통 받지 않으면서도, 즉 사기꾼이나 무임승차자에게 착취당하지 않으면서도 사회 생활의 이득을 - 상호 교환과 협동을 - 누릴 수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협동할 것 같은 사람에게 공감, 신뢰, 감사를 느끼고, 우리도 그에게 협동으로 보답한다. 반면 우리를 속일 것 같은 사람에게는 화내고, 배척하고, 협동을 무르고, 처벌한다. 개인의 선행 수준을 결정하는 저울의 양쪽에는 협동자라는 평판에 따르는 존경, 그리고 은밀한 속임수로 얻은 부정한 이득이 놓여 있다. 사회 집단은 다양한 수준의 너그러움과 신뢰도를 지닌 협력자들의 시장이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들통 나지 않을 정도로만 자신의 너그러움과 신뢰도를 실제보다 높게 선전한다. 이런 도덕화 간극 때문에, 피해자와 가해자는 보상 협상에서 서로 상보적인 전략을 펼친다. 불법 행위를 두고 법적에서 맞붙은 변호사들처럼, 사회적 원고는 피고의 행동이 고의였음을 강조한다. 적어도 불량할 정도로 무심한 태도였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원고의 고통과 괴로움을 강조한다. 대조적으로, 사회적 피고는 자기 행동의 합리성과 불가피성을 강조하고, 원고의 고통과 괴로움을 최소화한다. 이렇게 경쟁하는 관점들이 보상 협상을 결정지으며, 구경꾼들의 공감과 믿음직한 상호 교환자로서의 평판을 더 많이 얻으려는 경쟁을 펼친다. 우리가 자신의 행동과 남들의 행동을 다르게 평가하는 것은 자기 위주 편향의 교과서적 사례이다.

 

권오상, <돈은 어떻게 자라나는가>

선택의 순간, 인간의 비합리성이 고개를 든다. 비합리적인 심리적 편향들...

 

권용진, <인공지능 투자가 퀀트>

심리적 편향과 오류는 지능이나 교육 수준과 관계없이 비슷하게 일어난다. 제임스메디슨대학의 리처드 웨스트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논리적이고 똑똑한 사람일수록 심리적 편향에 빠지기 쉽다고 한다. 아무리 객관적이고 침착한 투자가라 해도 인간인 이상 심리적 편향에 노출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봤을 때 패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투자 편향을 배제하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거래하고 위험 관리하는 알고리즘을 만든 다음 그대로 따른다면 일반인도 충분히 퀀트 투자로 수익을 낼 수 있다.

 

로버트 해그스트롬, <현명한 투자자의 인문학>

우리 문화에는 변이를 등한시하거나 무시하는 강한 편향이 존재한다. 대신 우리는 중심값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여러 현실 문제에서 끔찍한 실수를 저지른다. – 스티븐 제이 굴드

보통 사람들처럼 전문가들도 사고과정의 결함을 고스란히 가진 것처럼 보였다. 특히 전문가들은 과신하고, 사후확신 편향을 갖고, 자기가 가진 신념체계를 방어하고, 베이즈 추론과정이 결여된 상태였다. 이런 심리적 편견들로 인해 시스템1 사고가 문제를 일으킨다. 사람들은 타고난 편견과 휴리스틱 때문에 사고과정에 오류가 생긴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성급하고 직관적으로 의사결정한다. 하지만 시스템2 사고를 통해서만 판단을 잘못 내렸는지 점검할 수 있다.

 

문요한, <여행하는 인간>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자기중심적인 존재다. 자신의 감수성과 안목, 취향을 좋게 평가하고 상대방의 그것은 좋지 않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편향성을 직시하고 서로의 취향을 좀더 존중하는 데 이르면 우리의 취향은 더욱 발달하고 서로의 관계는 보다 깊어질 수 있다. 다음은 이명옥의 <인생, 그림 앞에 서다>에서 읽은 일본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취향에 관한 철학이다. '자신의 취향은 동일한 취향과 접촉하기 때문에 함양하는 것이고, 또한 이질적인 취향과 만나서 계발되는 것이며, 높은 취향에 매료되기 때문에 향상심이 생기는 것이다. 세상 운명의 7할 이상은 이 취향의 발달로 인한 것이므로, 취향이 고립돼 말라죽게 된다면 세계의 진보는 멈추게 될 것이다.'

 

임웅, <새롭지 않은 새로움에게 새로움의 길을 묻다>

다니엘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는 인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판단과 결정은 엄밀한 논리적 규칙에 근거하는 대신에, 상황이나 맥락에 좌우되어 어림잡아 혹은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는 다분히 실용적인 사고에 기반을 둔다는 것이다. 카너먼과 트버스키는 인간의 이러한 사고과정을 휴리스틱스heuristics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 이들이 제시하는 휴리스틱스의 유형들, 즉 대표성 유리스틱스representative heuristics나 가용성 휴리스틱스availibility heuristics 등은 인간의 의사결정이 우리의 기대만큼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 대표성 휴리스틱스는 판단하고자 하는 대상이 특정한 모집단의 원형을 닮아 있으면 모집단의 특성만을 판단의 단서로 사용하는 경향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표성을 갖는 모집단의 특성 이외에 다른 중요한 판단의 근거들은 무시되는 경향이 발생한다. ... 가용성 휴리스틱스란 접근 빈도가 높은 범주에 대한 인지 편향성을 의미한다.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시스템1은 정보 처리에 도움이 되는 인지적 편안함을 만들어주지만 신뢰할 수 없는 정보일 때 경고 신호를 보내주지는 않는다. 직관적 대답은 기술이나 휴리스틱 중 무엇에서 유래했는지 상관없이 머릿속에 빠르고 믿을 만하게 떠오른다. 이럴때 시스템2가 속도를 낮추고 단독으로 대답을 만들려는 시도를 한다. 하지만 시스템2는 게으르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기를 주저한다.

이럴 경우 시스템1이 내놓은 많은 제안은 최소한의 확인만 거친 후 무조건 승인된다. 시스템1이 오류와 편향의 원인이라는 나쁜 평판을 듣는 이유가 바로 이때문이다. 무엇보다 WYSIATI, 강도 짝짓기, 연상적 정합성을 포함한 세스팀1의 기능정 특징은 닻 내리기, 비퇴행적 예상, 과신을 비롯한 수많은 다른 예상 가능한 편향과 인지적 착각을 야기한다.

(WYSIATI : What You See Is All There Is, 당신에게 보이는 것이 세상의 전부이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블랙스완>

확인 편향 오류에 빠지면, 우리는 확률 이론이 성공적으로 적용된 계임을 예로 들어 이것을 일반화시키려 한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삶에서 행운이 차지하는 역할은 일반적으로 과소평가하지만, 확률 게임에서는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도정일,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요즘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원칙과 방향에 대한 질문'은 없다고 한다. 그들의 머리에는 한 달에 얼마 벌고 얼마를 쓰느냐, 어디 부동산을 언제 어떻게 살 것이냐는 생각만 꽉 차 있고 손익의 대차대조표만 중요할 뿐 삶을 이끌 원칙과 가치의 화살표 같은 것은 아예 없다고 한다. 나는 이런 소문들을 믿지 않는다. 나는 우리의 젊은 세대가 자기 혼자만 생각하는 좁잡한 울타리, 개구리 우물, 작은 세계의 수인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과거의 어떤 세대와도 다른, 어쩌면 단군 이래 최고의 개인주의적 편향을 가진 세대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개인주의가 공동체와 정의, 공존과 연민의 윤리를 완벽하게 시궁창으로 내던진 몰가치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려운 선택의 시대 속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우리는 도대체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질문,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인가"라는 질문을 그들의 모든 중요한 선택과 행위의 배경에 깔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크리스토퍼 시, <결정적 순간에 써먹는 선택의 기술>

현상유지 편향(status quo bias), 손실을 피하려고 현재 상황에 만족

사람들은 보통 현재 상황을 변화시킴으로써 발생하는 손실을 회피하기 위해 현재 상황에 만족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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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 이리저리 헤매어 돌아다님. 분명한 방향이나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함.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이라는 표현을 썼다. 인생 자체가 '방황'이고 시간의 '여행'이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심지어 "더 이상 사랑하지도 않고, 방황도 하지 않는 자는 살아있을 가치가 없다."라는 말도 한다.

 

'방황'하는 청춘이여, 불안과 두려워하지 말라. '방황'은 시간 낭비나 불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나날은 방황과 실패의 연속이지만, 시간이 쌓이면 성과와 성공이 찾아온다."라는 괴테 선생님의 말처럼 삶의 과정이다.

 

 

[본문 발췌]

 

"수준 높은 것을 받아들일 만한 소양을 갖춘 사람은 매우 드물다. 수준 높은 것들은 자신을 위해 감춰두고, 타인에게는 이익이 될 수 있을 때만 꺼내 보이는 편이 좋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것만을 듣기 때문이다."

 

"우리는 야만적 시대에 살고 있다. 야만이란, 뛰어난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자신보다 뛰어난 것들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보다 뛰어난 것들에 경의를 표함으로써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여행은, 때로는 잠시 고민을 잊게 해주고, 때로는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돌아오게 해준다."

 

"입법가든 혁명가든, 평등과 자유를 동시에 약속하는 자는 공상가 아니면 사기꾼이다."

 

"우수한 인물 중에는 무슨 일이든 바로 완수하거나 적당히 하는 게 안 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각각의 대상을 깊이 있게 추구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질을 가졌다." 우리는 종종 그들의 이러한 태도를 답답하게 여긴다. "하지만 이런 방법이 최고의 것을 만들어 낸다." 효율을 우선시하는 시대에는 천재가 탄생하지 않는다.

 

"우리들의 나날은 방황과 실패의 연속이지만, 시간이 쌓이면 성과와 성공이 찾아온다." 현자는 눈앞의 혼돈과 실패에 얽매이지 않는다. 시간의 효능을 믿기 때문이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46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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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과 호남의 구분 없이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했던 故노무현 전대통령의 모습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오프닝과 엔딩에 <두 도시 이야기>의 첫 구절이 인용된다. 

 

혼란의 시대, 희생의 피로 새로운 세상의 희망 씨앗을 뿌린 결말이 왠지 닮았다.

 

 

[본문 발췌]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으로 향해 가고자 했지만 우리는 엉뚱한 방향으로 걸어갔다. 말하자면, 지금과 너무나 흡사하게, 그 시절 목청 큰 권위자들 역시 좋든 나쁘든 간에 오직 극단적인 비교로만 그 시대를 규정하려고 했다.'

 

'햇빛이든 인생이라고 부르는 빛이든 올 때가 있으면 갈 때가 있는 법이었다.'

 

"오는 길이 오래 걸리더라도, 그건 오는 중이고 오고 있다는 거야. 그건 결코 물러서거나 멈추지 않는다는 거야 우리가 하는 어떤 일도 헛수고는 아니야 난 우리가 승리를 보게 될 거라고 진심으로 믿어 그렇지만 보지 못하더라도, 내가 확실히 못하더라도 승리에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8826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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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11행, 약 60년에 걸쳐 쓰여지고 죽음 뒤에 세상에 남긴 흔적...

인생의 노력과 방황의 마지막 순간, "순간아 멈추어라, 정말 아름답구나!"를 외치고 파우스트의 삶의 시계는 멈추었다.

 

 

다시 가까이 다가오는구나, 일찍이 내 흐릿한 눈에

나타났었던 아물거리는 형상들아.

이번에는 정녕 너희들을 붙잡아 볼거나?

내 마음 아직도 그 환상에 이끌리는가?

집요하게 몰려오는구나! 좋다, 그러면 너희들 마음대로 

연무를 헤치고 나타나 내 주변을 애워싸라. 

너희들의 행렬을 감싼 마법의 숨결에

내 마음, 젊은이처럼 크게 감동받아 떨리는구나. (1~8행, 헌사)

 

인간들은 그걸 이성이라 부르며, 오로지 짐승들보다 

더 짐승처럼 사는 데 이용하고 있지요. (285~286행, 메피스토펠레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이니라. (317행, 하느님)

 

자네는 오로지 한 가지 충동만을 알 뿐일세.

오, 다른 충동은 절대로 알려 하지 말게!

내 가슴속에는, 아아! 두 개의 영혼이 살면서

서로에게서 멀어지려고 하네. 

하나는 감각으로 현세에 매달려

방탕한 사랑의 환락에 취하려 하고,

다른 하나는 이 티끌 같은 세계에서 과감히 벗어나

숭고한 선인들의 세계로 나아가려 하네. (1110~1117행, 파우스트)

 

돈이나 의사,

요술의 힘을 빌리지 않는 방법은

곧장 들판으로 나가서

호미질하고 곡괭이질하는 것이오. 

몸과 마음을 극히 절제하고,

정결한 음식으로 요기를 하고, 

가축과 한 가족이 되어 살며

논밭에 직접 거름을 주는 것을 분하게 여기지 마시오.

그것이 여든 살까지 젊음을 유지하는 최고의 방법이오. (2352~2360행), 메피스토펠레스

 

겸손과 겸양은 자애롭게 베푸는

자연의 최고의 선물인 것을 (3104~3105행), 파우스트

 

나는 행복을 경직된 것에서 찾지 않네. 

전율은 인류에게 주어진 최고의 것일세.

세상이 전율의 감정을 자주 베풀지 않을지라도, 

인간은 감동해야만 엄청난 것을 깊이 느끼는 법일세.  (6271~6274행, 파우스트)

 

자연적인 것은 우주가 비좁다 하지만, 

인위적인 것은 폐쇄된 공간을 필요로 하지요.  (6883~6884행, 호문쿨루스)

 

날마다 자유와 삶을 쟁취하려고 노력하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네. 

어린아이, 젊은이, 늙은이 할 것 없이 이곳에서 위험에 둘러싸여 

알찬 삶을 보내리라. 

나는 사람들이 그리 모여 사는 것을 보며,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사람들과 더불어 지내고 싶네. 

그러면 순간을 향해 말할 수 있으리라, 

<순간아 멈추어라, 정말 아름답구나!> 

이 지상에서 보낸 내 삶의 흔적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걸세--- 

그런 드높은 행복을 미리 맛보며, 

나는 지금 최고의 순간을 즐기노라. (11575~11586행, 파우스트)

 

모든 무상한 것은

한낱 비유에 지나지 않느니라. 

그 부족함이 

여기에서 완전해지리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이 

여기에서 이루어졌도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올리노라. (12104~12111행), 신비의 합창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20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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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븐에서 탐욕은 변호사에게 스스로 1파운드의 살을 도려내어 저울에 달게 한다. 복부를 도려낸 뒤 과다출혈로 사망하게 하는데,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Seven Deadly Sins : 오만, 질투, 분노, 탐욕, 탐식, 음탕함, 게으름

 

인간의 욕망, 집착과 이기심이 탐욕을 키운다. 탐욕은 더 많이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다. 과학 기술의 발전을 통해 이러한 욕망을 채워 주면서 더욱 부추기는 상승작용을 하며 부의 편중에 따른 사회 갈등과 혼란, 권력투쟁, 자연 파괴 등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간디는 '세상은 우리의 필요를 위해선 풍요로운 곳이지만 탐욕을 위해선 궁핍한 곳'이라 경고하였고 노자는 도덕경(46)에서 "천하의 재앙은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천하의 죄악은 탐욕보다 더 큰 것이 없다. 그래서 만족할 줄 아는 것만이 영원한 만족이다. 모든 사람이 만족할 줄 알면 천하가 태평성대를 누릴 것이다."라고 하며 욕심을 버리라고 한다.

 

안분지족[安分知足]과 비움의 철학을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아 감으로 '탐욕'의 재앙을 벗어나야 한다.

 

 

탐욕, 貪慾

1.지나치게 탐하는 욕심. ≒도모1(叨冒).

2.불교 십악의 하나.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갖고 싶어 하고 또 구하는 마음을 이른다.

 

(네이버 영어사전) greed, (formal) avarice       

탐욕을 부리다, be greedy

탐욕을 부리다 be avaricious

탐욕을 부리다 (남의 물건에) be covetous

탐욕을 부리다가 더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 Greed can cause a bigger loss.

그는 탐욕에 눈이 멀어 판단력을 잃었다. Greed has blinded his (good) judgment.

All crime has its origin in greed. 모든 죄는 탐욕에서 비롯된다.

[속담] The avaricious man is always in want. 탐욕한 자는 언제나 모자란다.

He is greedy for money and power. 그는 돈과 권력에 탐욕을 부린다.

 

 

 

[시, 글과 책 속에 쓰인 '탐욕'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

 

E. F. 슈마허, <자발적 가난>

지구는 존재하는 모든 인간의 필요를 충분히 만족시킬 만큼은 자원을 제공하지만, 탐욕을 만족시킬 만큼 자원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 간디

 

벤저민 그레이엄, 데이비드 도드, <벤저민 그레이엄의 증권분석>

수많은 사람이 <증권분석>을 읽고 존중한다면, 그 원칙을 실천하는 사람은 왜 이렇게 적을까? 나는 인간의 세 가지 본성 때문이라고 믿는다.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감정이 이성을 압도하며, 탐욕을 부리는 세 가지 본성 말이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사람을 천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음식을 먹을 때의 탐욕스러운 식욕이 그를 천하게 하는 것이다.

 

로버트 그린, <권력의 법칙>

상대에게 탐욕스러운 기질이 엿보인다면 절대 자비에 호소하지 말라. 상대가 자비롭고 우아하게 보이고 싶어한다면 절대 탐욕에 호소하지 말라.

 

제레미 리프킨, <육식의 종말>

현대적인 축산단지와 인위적인 단백질 사디리는 사냥, 침략, 강탈, 식민지화, 탐욕의 폭력 아래에서 꾸준히 키워온 과거 의식의 가시적인 잔제이다. 북반구인들의 낭비가 심한 육식 습관은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은 유라시아 스텝 지방에서부터 시작하여 고대 유럽과 신세계 그리고 그 너머 지역까지 전파되었다. 오늘날에는 식민지 정신을 되살리고 세계를 분리시키기로 작정한 다국적 기업에 의해 그 임무가 수행되고 있다. 육식이 지배하는 세상은 앞으로도 선택받은 소수와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한 다수 간의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키면서 어느세 현실이 되어 우리 눈앞에 다가올 것이다.

 

미야자기 마사카츠, <흐름이 보이는 세계사 공부>

화폐가 기호화되어 금융조작에 의한 이익 추구와 탐욕이 더해져 버블이 생긴다.

 

유발 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근대 역사에서 최대 범죄는 증오나 탐욕이 아니라 무지와 무과심에서 더 많이 나왔다. 매력적인 영국 숙녀들은 아프리카나 카리브해 지역에는 발도 디뎌본 적이 없었지만, 런던 증권거래소에서 주식과 채권을 사는 방식으로 대서양 노예무역을 재정적으로 후원했다. 그러고도 오후 네 시가 되면 눈처럼 흰 각설탕을 차에 타서 즐겨 마셨다. 물론 각설탕은 지옥 같은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생산된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그녀들은 몰랐다.

 

네이트 실버, <신호와 소음>

경제학자 래리 서머스는 가장 중요한 피드백이 '공포fear'와 '탐욕greed' 사이의 피드백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투자자는 위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어떤 투자자는 위험을 무척이나 반긴다. 투자자들 사이의 이러한 선호 성향은 균형을 이룬다. 재무상태가 악화되어 회사의 주가가 떨어지면 공포에 질린 투자자들이 자기가 보유한 이 회사의 주식을 파는데, 이걸 사는 사람은 바로 이 주식이 바닥을 쳤다고 기대하는 탐욕스러운 투자자들이다. 그런데 탐욕과 공포는 변덕스럽다. 또 둘 사이의 균형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탐욕의 과잉 상태가 되면 거품이 생기고, 공포의 과잉 상태가 되면 공항이 나타난다.

 

코에케 류노스케, <생각 버리기 연습>

인간의 세 가지 기본 번뇌. 분노, 탐욕, 어리석음

 

라 로슈푸코, <잠언과 성찰>

유능한 사람이라면, 이해의 경중에 따라서 일을 하나하나 차례대로 처리해 나갈 것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의 탐욕은 한 번에 너무 큰 것을 좇는 나머지, 때로 중요성의 순서를 뒤바뀌게 하는 수가 있다. 하찮은 물건에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 진짜 중요한 물건을 놓치고 마는 것이다.

탐욕은 때때로 뜻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수많은 사람들이 시시하고 당치도 않은 기대를 걸고 자기 재산의 전부를 날려 버린다. 또 어떤 자는 눈 앞의 작은 이해 관계에 눈이 어두워져 장래의 막대한 이익을 팽개치고 만다.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정치를 '짐승의 비천함을 감수하면서 야수의 탐욕과 싸워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는 일'이라고 쓴 적이 있다.

 

알랭 드 보통, <뉴스의 시대>

뉴스는 '소비사회'의 작동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날마다 산출되는 뉴스의 결코 적지 않은 부분을 맛집, 여행, 첨단기술, 패션, 자동차, 가구 등의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정보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때 뉴스는, 우리가 실수를 모면하고, 보다 현명하고 알찬 구매를 할 수 있도록 거들면서 자신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일각에서는 소비 욕망에 대해 커다란 반감을 가지고 있다. 생존에 정말 필요한 것과는 거리가 먼 물건을 소유하려는 현대인의 욕구는 흔히 얄팍하고 지구에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며, 헛되고, 탐욕스럽고, 이 모든 비난들을 뭉뚱그려 한마디로 물질주의적이라고 묘사되곤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자원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필수적이지 않은 상품의 생산과 판매에 투입되고 있는지를 고려해본다면, 우리의 소비 행위가 지속되도록, 그리고 가능한 한 확실하게 계속되도록 노력하는 건 결코 하찮은 과업이 아닐 것이다. 뉴스는 우리가 돈을 제대로 쓰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진지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김진선, <적당히 벌고 잘 살기>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탐욕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이다." - 아니타 로딕, 바디샵 창업자

 

앙드레 코스톨라니, <투자는 심리게임이다>

증권시장에는 언제나 경제적 사실들이 황당한 이야기, 무언가를 겨냥하여 퍼뜨려진 풍문들, 절반쯤 믿을 만한 사실들, 그리고 암시들과 함께 뒤섞여 있다. 걱정과 탐욕으로 움직여지는 이러한 것들은 번번히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시세의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로버트 해그스트롬, <현명한 투자자의 인문학>

역발상 투자자들은 탐욕이 주가를 내재가치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으로 밀어올리고, 공포가 주가를 내재가치보다 훨씬 더 낮은 지점으로 밀어붙이지만, 언젠가는 평균으로의 회귀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변동은 시스템 내에서 바로잡힐 것이다. 하지만 골턴의 법칙이 철칙이라면, 왜 예측이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어려움은 세 가지 요인에서 비롯된다. 첫째, 평균으로의 회귀는 항상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고평가와 저평가는 이성적으로 인내할 수 있는 기간보다 더 오랫동안, 훨씬 더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다. 둘째, 변동성이 너무 크고 불규칙해서 주가가 제대로 바로잡히거나 평균에 쉽게 안착되지 않는다.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것으로, 주식시장처럼 유동적인 환경에서는 평균 그 자체가 안정적이지 않을 수 있다. 어제의 평균이 내일은 평균이 아니다. 평균이 새로운 지점으로 이동할 수 있다.

 

시라토리 하루히코, <니체의 말>

아무리 좋아 보이는 행동이라도 '무엇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은 비열하고 탐욕적이다. 누구를 위해서든 어떤 일을 위해서든 그것이 실패했을 때에는 상대 혹은 상황, 그 어떤 것의 탓으로 돌리려는 마음이 생기고, 순조롭게 진행되었을 때에는 자신의 실력 덕분이었다는 자만심이 싹트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으로 자신을 위해서만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순수하게 능동적인 사랑으로 행동할 때에는 '무엇을 위해서'라는 말도 생각도 결코 하지 않는다. - 차라투르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틱낫한, <중도란 무엇인가>

세상의 모든 탐욕과 괴로움은 자아에 집착하고, 자아를 고집하고, 자신의 생각에 집착하고, 생존에 집착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중도는 바로 이런 관념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 나아가는 길이다.

 

문병로, <메트릭 스튜디오>

추세선에서 멀어지는 움직임들은 시작과 끝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 노이즈다. 매일 매일의 등락에 신경을 쓰지 않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좋다. 좀 긴 단위의 움직임을 보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뉴스는 잡음이다. 투자 정보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시장에 잡음을 주는 뉴스, 잡음을 주는 투자자의 비이성적 탐욕, 공포, 이런 것들이 없다면 평균을 넘는 수익을 올리는 투자는 정말로 힘들어진다. 다행히 전 세계 모든 시장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잡음투성이의 잔치판이다

 

프리초프 카프라,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트리슈나', 즉 집착 또는 탐욕이다. ... 실제로는 무상하고 영원히 변전하는 것임에도 우리가 확고하고 영속하는 것으로 보는 사물들에 집착하려 한다면, 우리는 모든 행위가 행위를 낳고 매 질문에 대한 해답이 새로운 질문이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알랭 드 보통, <불안>

시인 제라르 드 네르발은 재능과 기질 때문에 부르주아 세계에는 어울릴 수 없었던 그의 세대의 예민한 동지들의 경험을 이렇게 요약했다. "야망은 우리 시대에 속한 것이 아니다. ... 자리와 명예를 쫓는 탐욕스러운 경주에 질려 우리는 정치 활동의 영역으로부터 멀어져 간다. 우리에게는 시인의 상아탑만 남았는데, 우리는 이곳으로 점점 더 높이 올라가 군중으로부터 고립된다. 그 높은 고도에서 우리는 마침내 고독의 순수한 공기를 숨쉰다. 우리는 전설의 황금 컵으로 망각을 마셨다. 우리는 시와 사랑에 취했다."

 

헨리 조지, <진보와 빈곤>

빈곤의 진정한 원인은 과거나 현재나 인간의 탐욕이지 자연의 인색함이 아니다.

 

장하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애덤 스미스가 정육점, 양조장, 빵집 주인에 관해 한 이야기에서 잘 나타났듯이 자유 시장 경제학은 모든 경제 주체가 이기적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탐욕, 이기심과 같은 인간의 가장 추악한 본성을 사회에 이롭고 생산적으로 바꾸는 것이 시장 시스템의 장점이라고 주장한다.

 

윤재수, <대한민국 주식투자 100년사>

투기란 '주가가 이미 기업의 내재가치를 초과하여 버블이 심한데도 불구하고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매매차익을 얻기 위해 주식을 사는 것'이라 볼 수 있다. ... 투기장에서는 언제나 투자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오를 때 더 많이 오르고 떨어질 때 더 많이 떨어지는 것이 주가의 변함없는 속성이다. 오를 때는 탐욕이, 떨어질 때는 공포라는 인간의 투기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구길본 등 16명, <길에게 길을 묻다>

내마음으로 섭취되는 것은 독초도 있고, 약초도 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탐욕, 시기, 질투, 애증, 분노, 경멸, 무시, 사기, 배반, 억압, 지배, 비난, 비판, 근심, 걱정, 슬픔, 비탄 등 부정적 생각과 행동은 마음을 병들게 하는 독초와 다름없을 것이다. 반면 사랑, 자비, 연민, 희생, 봉사, 인내, 신뢰, 자유, 평등, 조화, 칭찬, 공경, 존중, 희망, 기쁨, 희열 등 긍정적 생각과 행동은 우리 마음을 치유하는 약초에 해당된다. ... 걷는 것은 세심洗心하는 것이다. 걷기는 일상의 탈출을 통해 몸과 마음을 청결하게 하고 재탄생시킨다. 몸과 마음을 자연과 생명 본원의 청명한 기운으로 환원한다. - 구길본, <걷기와 세심>

 

법인 스님,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수행은 곧 내 삶의 참된 변화와 완전한 내적 혁명이다. 수행은 언젠가의 지향점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실현해야 할 삶 그 자체이다. 거짓에서 진실로, 탐욕에서 비움으로, 분노에서 자애로, 차별에서 평등으로, 불안에서 평안으로, 사견에서 정견으로, 늘 지금 이 자리에서 개선되고 탈바꿈하는 우리 삶의 모든 것이다. ... 그러므로 이런 삶을 이루어 내는 모든 실천, 곧 생각과 움직임이 수행이다. ... 세상을 벗어난 한적한 깊은 산중에서 번거로운 일 싫어하고 그저 고요히 내면을 관조하는 그 자체가 수행의 목적이 될수는 없다. '탐욕과 성냄과 자만과 위선이 떨어져 나간 사람, 거칠거나 속되지 않고 분명하게 진실을 말하고, 말로써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는 사람, 바라는 것 없고 기대도 없고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는 사람, 아무런 집착도 없고 의혹이 없어 집착과 근심을 초월해 더러움이 없이 맑은 사람, 자비로운 생활을 하고 부처의 가르침을 행하는 사람이 진정한 수행자'라고 <법구경>은 말하고 있다.

 

김승옥, <무진기행>

남녀 관계란 근본적으로 경제적 관계야. 남자끼리의 관계만 사상적 관계지. .... 아이란 우리들의 신이야. 인간적인 사랑이란 삼각형의 관계 형식 속에서만 가능하다구 생각해. 한 꼭지점에는 남자, 또 한 꼭지점엔 여자 그리고 또 한 꼭지점엔 신이 있어야 하는 거야. 남자와 여자가 함께 바라보는 신이 있을 때 추잡한 거래 관계를 벗어날 수 있는 거야. 신이 없는 두 꼭지점만의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란 이기적으로 무한히 탐욕적인 동물적인 사랑에 지나지 않아. 어느 한 편이 상대를 잡아먹고서야 끝나는 투쟁에 지나지 않아. 끝나고 괴로운 투쟁이지. 왜냐하면 상대를 잡아먹어 버렸으니 남은 건 고독한 자기란 말야. 신이 있으면 달라. 신에게는 남자도 여자도 다 있어 줘야 한다는 걸 알고 남자와 여자는 진실로 평등하게 상대를 존중하게되지. 서양 사람들에게는 그 신이 있지만 신이 없는 우리들에겐 자식이 그 신 노릇을 하는 거야. 물론 그 신이 불변하고 영원한 하나의 신이 아니라 변하고 일시적이고 수많은 신이기 때문에 우리가 만드는 삼각형은 불완전한 삼각형이고 너무나 많아서 충동하기 쉬운 다신교라고 해야 하겠지만 어쨌든 남자와 여자 사이에 추잡한 동물적 사랑이 아닌 숭고한 인간적 사랑을 최소한이나마 가능하게 해 주는 거야. 신이 인간을 구제한다면 아이들이 우리를 구제해 주고 있는 거야. - <서울의 달빛 0장>

 

전영우, <비우고 채우는 즐거움, 절집 숲>

삼보일배는 '불보, 법보, 승보의 삼보에 귀의한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흔히 첫걸음에 이기심과 탐욕을 멸하고 두 번째 걸음에 속세에 더럽혀진 진심을 멸하며, 세 번째 걸음에 어리석은 치심을 멸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웬델 베리, <생활의 조건>

가르침과 배움은 가치를 따질 수 없기 때문에 무료로 제공되어야 한다. 교육을 상품화하는 것은 곧 그것을 망치는 길이다. 우리가 굳이 교육의 가격을 따진다면, 그 가치가 손상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결국 학생들은 그들이 받아 누리는 선물에 늘 따라다니는 책임들, 다시 말해 받은 것을 잘 이용하고 후세에 온전하게 물려줄 책임을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교육을 상품화하는 것은 그것을 하나의 무기로 만드는 것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책임의식에서 멀어질 때 교육은 탐욕에 지배되기 때문이다.

 

리 호이나키,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나는 독서를 통해서, 그리고 좀더 전통적인 내 이웃사람들과 함께 일 함으로써, 그들의 농사일에 두 가지 자질이 지배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즉, 무엇을 기른다는 것의 신비, 경이로움 앞에서의 외경, 그리고 자연과의 협력. 이러한 자질은 그들이 하는 말에서, 또 그들이 동물과 밭을 대하는 태도에 쉽게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다른 경향의 농부들 사이에서 내가 본 것은 전혀 다른 태도였다. 즉, 작물과 가축을 엔지니어의 입장에서 통제하려 하고, 주로 이익에 대한 갈망만이 동기 된 - 예전에는 하나의 도덕적 실패로 낙인찍혔을, 오로지 '탐욕'만으로 - 합리적인 계획을 짜고자 하는 태도였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나는 걷는다>

무언가 나보다는 훨씬 크고 강한 어떤 것이 나를 앞으로 이끌고 간다. 호기심?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나의 첫 번째 동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혼자인 나를 발견하고 싶다는 바람일 것이다. 그런 고독 속에서는 사회생활의 거짓과 탐욕은 줄어들고 내적인 진실함은 더욱 커지니까. 또한 세상의 광대한 신비로움 속에서 더욱 존재감을 느낄 수 있고, 기적적인 만남의 시간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니 여행은 끝이 없어야만 하고, 삶 그 자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여담처럼 잠시 삽입된 것이 아니라, 삶의 도정 속에서 아주 길게 지속되는.....

 

최지원, <유학들의 동물원>

자본주의는 (자유주의자들은 창조적 파괴라고 부르는) 끊임없는 경쟁으로 인간에게 좌절을 허용한다.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좌절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누구의 좌절을 금지할 것인가. 배를 태우던 사람들이 느끼던 좌절? 자본주의는 원래 소박했던 인간에게 탐욕을 불러일으키는 장치가 아니라, 언제나 창궐했던 인간의 탐욕을 좌절시키는 장치일 뿐이다. 그러나 정치가들과 중상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악의 근원이라면서 뒤로는 자신들의 이기주의를 도모하며, 자본주의에 대한 대중의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반발 심리를 이용해서 부족주의적 영달을 추구한다.

 

도정일,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

탐욕은 사회적으로 전염되는 질병이다. "남들은 다 먹는데 나는 왜 못 먹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사람들은 시기, 질투, 선망의 포로가 되고 '못 먹는 자'는 불출, 무능, 도태의 존재로 강등된다. 욕망이라는 것이 빠지면 인간의 삶은 동력을 상실할지 모른다. 그러나 욕망과 탐욕은 그 차원이 다르다. 사회 전체가 탐욕과 선망의 질병에 걸리면 인간은 존재의 품위와 광채를 잃고 거대한 입과 밥통으로만 살아야 한다. 그런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그런데 정말로 심각한 딜레마는 우리가 의존해서 살아야 하는 지금의 세계 경제체제가 정확히 탐욕과 선망의 체제라는 점이다. 탐욕과 선망을 증폭시키지 않고서는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이 현대 경제의 비극적 결함이며 그 결함의 체제 속에 살아야 한다는 것이 현대적 생존의 딜레마다. 우리가 이 딜레마를 헤쳐나갈 수 있을까? 이 시대를 어떻게 살까에 대한 지혜는 인간을 살아남게 한 위대한 어떤 능력이 동시에 현대적 난국의 기원이기도 하다는 아이러니를 인식하는 데서부터 나오지 않을까 싶다.

 

코이케 류노스케, <침묵입문>

불교의 삼독 : 탐욕(貪欲, 욕망), 진에(瞋에 분노), 우치(愚癡, 어리석음)

분노, 탐욕,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말들이 난무할 때, 그 속에서 조용히 침묵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박웅현, <책은 도끼다>

무욕만 한 탐욕이 없습니다.

 

왕가리 마타이, <지구를 가꾼다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지구의 자원이 무한하다고 생각하고 자원이 베푸는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며 자원에 값을 매긴다. 우리가 바로 이런 태도로 지구를 대하기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심각한 생태 위기가 그렇게나 많이 발생한 것이다. 환경 파괴는 더 많은 것을 바라는 탐욕 때문에 일어난다.

자연을 팔아 돈을 쌓는 것, 인간의 탐욕으로 환경과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길이다.

 

박노해, <다른길>

탐욕의 그릇이 작아지면 삶의 누림은 커지고 우리 삶은 '이만하면 넉넉하다'.

 

박노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탐욕은 작고 느린 삽질을 견뎌내지 못한다

 

강신주, <감정수업>

탐욕 (AVARITIA) : 사랑마저 집어삼키는 괴물, <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탐욕이란 부에 대한 무절제한 욕망이자 사랑이다."

 

나탈리 골드버그, <글쓰며 사는 삶>

자본주의의 바탕은 탐욕과 불만이다.

 

도정일,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21세기 초 도시 중산층 이상의 한국인을 지배하는 정신 상태는 두 개의 강력한 '코드'에 관통당해 있다. 더 날씬한 은유가 생각나지 않아 좀 투박하게 대놓고 말하자면, 하나는 '탐욕의 코드'이고 또하나는 '선망의 코드'이다.

탐욕의 코드는 폴 새뮤얼슨이 말한 자본주의적 '행복 방정식'을 따른다. 이 경제학자가 소개한 계산법에 의하면 행복(H)은 욕망(D) 분의 소비(C)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얼마만큼 소비했는가"가 나의 행복을 결정한다. 소비를 소유로 바꿔놓으면 이해하기 쉽다.

선망의 코드는 "저 자는 갖고 있는데 나는 없어, 이건 안되지, 암 안 될 일이고말고"라고 사람들을 들쑤셔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전염성 질투의 부호다. 저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은 나도 가져야 한다. 내가 저 인간만큼 갖지 못한다면 나는 불행하다. 내가 가질 행복을 저 자가 갖고 있네그랴? 저런 도둑놈, 내 행복을 훔쳐가다니, 화가 치미는 바로 그 순간에 질투의 여신이 나타나 행복에 이르는 길을 확인시켜준다. 저 자가 가진 것은 너도 가져라, 뺏고 훔쳐서라도. 그러면 행복은 네것이다. 아니, 너는 저 자가 가진 것 이상으로 가져야 해.

탐욕과 선망의 부호가 행복 방정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려준 것은 석가모니다. 욕망의 크기는 무한해서 그것을 충족시킬 방도가 없다는 것, 그것을 알게 된 것이 붓다의 '깨침' 가운데 하나다. 욕망은 일정량의 크기로 묶이지 않는다. 100을 바라던 욕망은 그 100을 소유하는 순간 200으로 불어나고, 200을 갖는 순간 300으로 커져 달아난다. 욕망의 크기를 정할 수 없기 때문에 소유를 키우는 방법으로 행복에 도달한다는 것은 신기루 잡기다. 그러므로 욕망의 크기를 줄여라. 그것만이 평온에 이르는 길이다. 욕망이 제로일 때는 제로의 소유만으로도 너는 행복하다. 재갈을 물릴 수 없는 무한 욕망이 탐욕이다. 그 탐이 충족되지 않아 너를 화나게 하고 질투하게 하는 것이 '진, 분노'이며 이 간단한 진리를 모르는 것이 '치, 어리석음'다. 그러므로 욕망을 다스려라, 줄여라, 끊어라, 그리고 평화로워라, 친구여.

만약 행복의 추구가 불행의 완벽한 제거와 고통의 완벽한 회피에 목표를 둔다면 그 목표는 달성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고통의 기원이 된다. 완벽한 행복의 추구란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이미 삶의 진실이 아니며, 인간 사회의 도덕적 이상도 아니다.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법을 열심히 찾아 헤매야 하는 사회는 행복한 사회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절망의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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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여년 전 우리 선조들의 해외 여행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만으로 그려지지 않는 이 질문에 생생한 여행길의 풍경, 여행지에서의 낯선 만남과 우정, 느낌을 엿볼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허생전, 호질 이야기가 열하일기 속 액자구조(소설)로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알랑가 모르겠내?\

 

 

중국말도 잘 못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이방인들과 '찐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느냐고, 그러면 연암은 그렇게 답할 것이다. 우정을 나누는 데 필요한 건 외국어 실력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라고, 또 그러기 위해선 언제, 어디서건 웃음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고. --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 머리말 중에서

 

"자네, 길道을 아는가" 수역 홍명복에게 물었다. "네? 무슨 말씀이시온지?" "길이란 알기 어려운 게 아니야. 바로 저편 언덕에 있거든" "'먼저 저 언덕에 오른다'는 말씀을 이르시는 겁니까?" "그런 말이 아니야. 이 강은 바로 저들과 우리 사이에 경계를 만든느 곳일세. 언덕이 아니면 물이란 말이지. 사람의 윤리와 만물의 법칙 또한 저 물가 언덕과 같다네. 길이란 다른 데서 찾을 게 아니라 바로 이 사이에 있는 것이지." "무슨 뜻인지요?"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한 법이지. 서양 사람들은 기하학이 한 획을 변증하면서 선 하나를 가지고 가르쳤다네. 그런데도 그 미세한 부분을 다 변증하지 못해 '빛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경계'라고 말했어. 이건 바로, 부처가 말한 '닿지도 떨어져 있지도 않는다'는 그 경지일세. 그러므로 이것과 저것, 그 '사이'에서 존재하는 것은 오직 길을 아는 이라야만 볼 수 있는 법, 옛날 정자산 같은 사람이라야 될걸." - <도강록> 신미일 6월24일

 

 '사이'란 무엇인가? 흔히 생각하듯, 두 견해 사이의 중간이나 평균을 뜻하는 건 결코 아니다. 양변의 절충이나 타협으론 결코 새로운 길이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이것과 저것, 그 양변을 떠난 제3의 경로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는 어떤 방향도, 목적도 없다! 따라서 그것은 삶의 구체적 장면 속에서 매순간 새롭게 구성되어야 한다. - 머리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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