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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1.28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자유롭지 못한 수인(囚人)의 몸으로 사유(思惟) 속에서 자유로와 지는 옥중 서신들....

 

 

 

[본문 발췌]

 

오늘은 다만 내일을 기다리는 날이다.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며, 내일은 또 내일의 오늘일 뿐이다. 智慧의 女神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夕陽에 날기 시작한다.

 

 

그 요구의 질과 양이 실로 빈약하기 짝이 없다. 일광욕 투쟁, 용변 투쟁, 치료, 식수.... 바깥 세상에서는 관심 밖의 것들이 거의 전부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것들을 사소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것에 대한 궁핍과 제한을 전혀 받지 않기 때문이며 그것이 생존에 불필요하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인간을 어떤 기성(旣成)의 형태로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개인이 이룩해놓은 객관적 '달성' 보다는 주관적으로 노력하고 '지향'을 더 높이 사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너도 알고 있듯이 인간이란 부단히 성장하는 책임귀속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간관계는 상대적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는 일종의 동태관계(動態關係)인 만큼 이제부터는 그것의 순화를 위하여 네 쪽에서 긍정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될 것이다. - '객관적 달성보다 주관적 지향을', 동생에게, 1970. 10.

 

 

하나의 역사적 사실(인물의 경우도 포함하여)은 그것만을 따로 떼어 고립적으로 인식할 때 왜곡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여하한 경우라 할지라도 반드시 ①어떠한 계기에서 발생하였으며 ②어떠한 양상으로 존재하다가 ③어떠한 방향으로 발전해갔는가 하는 역사적 관계 내에서 파악되어야 하는 동시에 또 그것을 당시의 사회구조, 당시의 가치 규준에 조응시켜 당시의 사회구조가 갖는 필연적 한계를 늘 그것의 인식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 '아버님의 건필을 기원하며', 아버님께, 1972. 9. 24.

 

 

저는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결코 많은 책을 읽으려 하지 않습니다. 일체의 실천이 배제된 조건하에서는 책을 읽는 시간보다 차라리 책을 덮고 읽은 바를 되새기듯 생각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필요가 있다 싶습니다. 지식을 넓히기보다 생각을 높이려 함은 사침(思沈)하여야 사무사(思無邪)할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 '생각을 높이고자', 아버님께, 1974. 4. 3.

* 思無邪 : 생각이 바르므로 사악(邪惡)함이 없음

 

 

사랑이란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 - '아름다운 여자', 동생에게, 1975. 1. 13.

 

 

심동(深冬)의 빙한(氷寒), 온기 한 점 없는 냉방에서 우리를 덮어준 것은 동료들의 체온이었습니다. 추운 사람들끼리 서로의 체온을 모으는 동안 우리는 냉방이 가르치는 '벗'의 의미를, 겨울이 가르치는 '이웃의 체온'을 조금씩 이해해가는 것입니다. - '이웃의 체온', 계수님께, 1976. 2. 11.

 

 

버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조금은 서운한 일입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버린다는 것은 상추를 솎아내는, 더 큰 것을 키우는 손길이기도 할 것입니다. - '버림과 키움', 아버님께, 1977. 6. 8.

 

 

생활의 편의와 이기(利器)들이 생산해내는 그 여유가 무엇을 위하여 소용되는지. 그 수많은 층계, 싸늘한 돌 계단 하나하나의 '높이'가 실상 흙으로부터의 '거리'를 의미하는 것이나 아닌지.... 생각은 사변의 날개를 달고 납니다. - '이사간 집을 찾으며', 부모님께, 1977. 12. 8.

 

지식은 책 속이나 서가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리된 경험과 실천 속에, 그것과의 통일 속에 존재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 '피서(避書)의 계절', 아버님께, 1979. 6. 20.

 

 

어머니가 된 여자는 알고 있나니 - 이성부

 

어머니 그리워지는 나이가 되면

저도 이미 어머니가 되어 있다.

 

우리들이 항상 무엇을

없음에 절실할 때에야

그 참모습 알게 되듯이.

 

어머니가 혼자만 아시던 슬픔,

그 무게며 빛깔이며 마음까지

이제 비로소

선연히 가슴에 차오르는 것을

넘쳐서 흐르는 것을.

 

가장 좋은 기쁨도

자기를 위해서는 쓰지 않으려는

따신 봄볕 한오라기,

자기 몸에는 걸치지 않으려는

어머니 그 옛적 마음을

저도 이미

어머니가 된 여자는 알고 있나니.

저도 또한 속 깊이

그 어머니를 갖추고 있나니.

 

 

埏埴以爲器,當其無,有器之用。 연식이위기 당기무 유기지용, - 노자, <도덕경> 11장 '당무유용'(當無有用) 중에서, 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드는 경우, 그릇으로서의 쓰임새는 그릇 가운데를 비움으로써 생긴다. '없음'(無)으로써 '쓰임'(用)으로 삼는 지혜. 그 여백 있는 생각, 그 유원(幽遠)한 경지가 부럽습니다. - '없음(無)이 곧 쓰임(用)', 아버님께, 981. 2. 14.

 

 

각각 다른 골목을 살아서 각각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한 방에서 혼거(混居)하게 되면 대화는 흔히 심한 우김질로 나타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경험적 사실을 곧 보편적 진리로 믿는 완강한 고집에서 나는 오히려 그 정수(精髓)의 형태는 아니라 하더라도 신의와 주체성의 일면을 발견합니다.

섬 사람에게 해는 바다에서 떠서 바다로 지며, 산골 사람에게 해는 산봉우리에서 떠서 산봉우리로 지며, 서울 사람에게 있어서 해는 빌딩에서 떠서 빌딩으로 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섬 사람이 산골 사람을, 서울 사람이 섬 사람을 설득할 수 없는 확고한 '사실'이 됩니다. 경험이 비록 일면적이고 주관적이라는 한계를 갖는 것이긴 하나, 아직도 가치중립이라는 '인텔리의 안경'을 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나는, 경험을 인식의 기초로 삼고 있는 사람들의 공고한 신념이 부러우며, 경험이라는 대지에 튼튼히 발 딛고 있는 그 생각의 '확실함'을 배우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추론적 지식과 직관적 예지가 사물의 진상을 드러내는 데 유용한 것이라면, 경험 고집은 주체적 실천의 가장 믿음직한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몸소 겪었다는 사실이 안겨주는 확실함과 애착은 어떠한 경우에도 쉬이 포기할 수 없는 저마다의 '진실'이 되기 때문입니다. - '저마다의 진실', 계수님께, 1982. 7. 13.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이라 생각됩니다. - '함께 맞는 비, 형수님께', 1983. 3. 29.

 

 

즐거운 마음으로 무엇을 궁리해가며 만들어내는 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그 즐거움은 놀이이며, 궁리는 학습이고, 만들어내는 행위는 곧 노동이 됩니다. 이러한 생활 속의 즐거움이나 일거리와는 하등의 인연도 없이 칠판에 백묵으로 적어놓은 것이나 종이에 인쇄된 것을 '진리'라고 믿으라는 '요구'는 심하게 표현한다면 어른들의 폭력이라 해야 합니다. 이런 무리한 요구에 억눌려 자라지 못하는 무수한 가능성의 싹들을 생각하면 시험과 성적과 모범 등..., 이러한 학교의 도덕적 규준이 만들어내는 품성이 과연 어떠한 것인가에 대하여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창의성 있고 개성 있는 어린이, 굵은 뼈대를 가진 어린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도리어 불량학생이란 흉한 이름을 부텨 일찌감치 엘리트 코스에서 밀어내버리고, 선생님 말 잘 듣고 고분고분 잘 암기하는 수신형(受信型)의 편편약골을 기르고 기리어 사회의 동량(棟樑)의 자리를 맡긴다면 평화로운 시기는 또 그렇다 치더라도 역사의 격동기에 조국을 지켜나가기에는 아무래도 미덥지 못하다 생각됩니다. - '시험의 무게', 형수님께, 1983년 세모에.

 

 

적게 가지고 살기 위해서는 아낌없이 버려야 하는데 작은 것 하나 버리는 데도 매우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기는 선택이며 선택은 골라서 취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쪽을 버리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 '수만 잠 묻히고 묻힌 이 땅에', 계수님께, 1984. 3. 15.

 

 

'1등'이 치러야 하는 긴장감, '모범'이 요구하는 타율성에 비해 '중간은 풍요하고' '꼴치는 편안하며' '쪼다는 즐겁다'는 역설도 그것을 단순한 자기합리화나 패배주의의 변(辯)이라 단정해버릴 수 없는 상당한 양의 진실을 그속에 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쁨보다는 슬픔이, 즐거움보다는 아픔이 우리들로 하여금 형식을 깨뜨리고 본질에 도달하게 하며 환상을 제거하고 진실을 바라보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장기 망태기', 형수님께, 1984. 10. 5.

 

 

저널리즘은 항상 제3의 입장, 중립의 불편부당이라는 허구의 위상을 의제(擬制)하여 거기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대상과 관계를 가진 모든 입장을 불순하고 지급한 것으로 폄하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구경꾼, 진실의 낭비자로 철저히 소외시킵니다. 상품의 소비자, 스탠드 위의 관객, TV 앞의 시청자 등.... 모든 형태의 구경꾼의 특징은 대상과 인식 주체 간의 완벽한 격리에 있습니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 - '관계의 최고형태', 형수님께, 1984. 11. 29.

 

 

세모에 지난 한 해 동안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것은 삶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은 용기입니다. 나는 이 겨울의 한복판에서 무엇을 자르고, 무엇을 잊으며, 무엇을 간직해야 할지 생각해봅니다. - '지혜의 용기', 계수님께, 1984. 12. 28.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 여름 징역은 자기의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어 칼잠을 자야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C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이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인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사실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미워하는 대상이 이성적으로 옳게 파악되지 못하고 말초감각에 의하여 그릇되게 파악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증오의 감정과 대상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혐오에 있습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하여 키우는 ‘부당한 증오’는 비단 여름 잠자리에서만 고유한 것이 아니라 없이 사는 사람들의 생활 도처에서 발견됩니다. 이를 두고 성급한 사람들은 사람들의 도덕성의 문제로 받아들여 그 인성(人性)을 탓하려 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 내일 온다 온다 하던 비 한줄금 내리고 나면 노염(老炎)도 더는 버티지 못할 줄 알고 있으며, 머지않아 조석의 추량(秋涼)은 우리들끼리 서로 키워왔던 불행한 증오를 서서히 거두어가고, 그 상처의 자리에서 이웃들의 ‘따뜻한 가슴’을 깨닫게 해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추수(秋水)처럼 정갈하고 냉철한 인식을 일깨워줄 것임을 또한 알고 있습니다. - '여름 징역살이', 계수님께, 1985. 8. 28.

 

 

작은 실패가 있음으로 해서 전체의 국면은 '완결'이 아니라 '미완'에 머물고 이 미완은 더 높은 단계를 향한 새로운 출발이 되어줍니다. 더구나 작은 실패는 사람을 겸손하게 하고 자신과 사물을 돌이켜보게 해줍니다.  실패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실패의 발견이 필요한 것이며, 실패가 값진 것이 아니라 실패의 교훈이 값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패와 그 실패의 발견, 그것은 산에 나무가 있고 땅 속에 바위가 있듯이 우리의 삶에 튼튼한 뼈대를 주는 것이라 믿습니다. - '작은 실패', 형수님께, 1985.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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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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