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F. 슈마허'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9.08.20 작은 것이 아름답다 - E. F. 슈마허
  2. 2019.08.19 자발적 가난 - E. F. 슈마허 외

더 큰 집, 더 큰 차, 더 많은 음식, 더 많은 소비, 필요를 넘어 무엇이든 더 크고 많은 걸 원한다. 그 넘침이 세상을 병들게 하는지 모르고...

 

자연과 더불어 지속 가능한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더 많이, 더 크게, 더 빠르게가 아니라 느리고, 작은 것, 균형과 조화로운 삶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중에서

 

슈마허에게 경제 성장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아울러 쾌적한 자연 환경은 경제 성장을 위한 수단에 그치지 않고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기존의 성장지상주의는 이런 측면을 무시하고, 자연 환경을 오로지 성장수단으로만, 그것도 '좀더 빠르게, 좀더 높게, 좀더 강하게' 성장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취급한다. 여기서 인간은 기술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가 되고, 경제 성장은 인간의 행복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성장'으로 전환된다. 그가 보기에, 이러한 성장방식은 인간과 자연을 파괴한 대가로 물질적인 풍요를 제공할지 몰라도, 진정으로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그렇다면 경제구조를 진정으로 인간을 위한 모습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가? 슈마허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대답은 '작은 것'이다

 

"경쟁과 속도전에서 벗어나, 인간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 자그마한 규모를 유지할 때 비로소 쾌적한 자연 환경과 인간의 행복이 공존하는 경제구조가 확보될 수 있다"

 

"대지는 모든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지만, 모든 사람의 탐욕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 간디

 

"재생될 수 없는 재화는 오로지 피할 수 없는 경우에만 이용되어야 하며, 그 경우에도 이를 보전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과 관심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러한 재화를 신중하지 않거나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 행위이다."

 

"자연은 항상 언제 어디서 멈춰야 할지 알고 있다. 자연이 성장도 신비롭지만, 이보다 더한 것은 성장을 멈추는 자연의 신비로움이다. 자연 세계의 모든 것에는 규모, 속도, 힘의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그 결과 인간을 포함하는 자연체계는 자기균형 능력을 보이면서 스스로를 조절하고 정화하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기술은 그렇지 않다. 아니 기술과 전문화에 의해 지배당하는 인간은 그렇지 않다고 말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술은 규모, 속도, 힘 측면에서 스스로를 제한하는 원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은 자기균형, 자기조절, 자기정화의 미덕을 갖고 있지 않다. 미묘한 자연체계에서 기술, 특히 근대 세계의 거대 기술(super-technology)은 낯선 물건처럼 작동하는데, 그래서 오늘날에는 이에 대해서 수많은 거부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현명하면서도 객관적인 시선에 도달하여 지혜를 완성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현실에 대해 '말없이 응시' 하면서 자기 중심적인 관심을 적어도 일시적으로나 억제하는 태도가 전제되어야 한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32728

반응형

'4.읽고쓰기(reading & ess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르셀 프루스트 독서에 관하여  (0) 2019.08.22
유대인 이야기 - 홍익희  (0) 2019.08.21
[검색사전] 시간  (0) 2019.08.19
자발적 가난 - E. F. 슈마허 외  (0) 2019.08.19
[검색사전] 청춘  (0) 2019.08.16
Posted by 소요유+
,

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좀 더 많은 것을 소비하는 세상. 물질적 풍요가 삶의 긍정적 요소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소비할수록 환경은 병들고 파괴되며 소유할수록 소유당하는 삶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단순하게 살아라"

 

밥 말리가 어느 인터뷰에서 했던 말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Possession make you rich? I don't have that type of richness. My richness is Life, forever.", https://youtu.be/iZet6HJTFjI - Bob Marley, Interview for the Australian TV show 60 Minutes

 

<자발적 가난> 본문 내용 중 발췌,

 

자발적 가난은 유일하게 창조적인 가난, 그러니까 자유를 얻기 위해 꼭 필요한 성스러운 가난이다. 이는 인위적으로 조작된 미래와 존재에 반하는 투쟁이며, 야망과 권력에 얽매여 사랑을 잃고 자아를 상실한 채 타인에게 운명을 내맡기는 삶의 확실한 해독제이다.

자발적 가난은 욕구의 결핍에서 나온다. 자발적 가난은 이러한 결핍에 만족한다. 자발적 가난은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으로, 존재의 단순한 골격만으로 부유함의 모든 욕구를 대체한다. 자발적 가난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며, 하나의 기원이며, 성취다.

자발적 가난은 자아를 정복한다. 따라서 이는 정신 수행의 도구가 된다.

자발적 가난은 논리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물질세계 내부에서 고통을 덜어주는, 그리하여 건강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행위이다.

자발적 가난은 일관된 철학적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경험에 완벽하게 적용할 수 있다.

자발적 가난은 제도적 가난을 자발적 가난의 권리에 대한 박탈로 인식함으로써 강력한 사회적 책임을 환기시킨다.

유일하게 창조적인 긍지인, 가난에 대한 긍지는 자발적 가난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속성이다. 자발적 가난은 마음의 평화이다.  - 안드레 밴던브뤼크

 

스스로 족함을 아는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은 가난할지라도 구성원 모두가 자유로운 곳이다.

 

발걸음이 가벼울수록 여행도 가볍듯, 삶의 여정에서 가난함으로 필요를 줄인 사람은 더 행복하고, 부의 무게 아래 신음하지 않는다. - 미누시우스 펠릭스

 

옮긴이의말, 

삶의 의지적 선택으로서 가난은 결국은 자족하고자 하는 마음의 태도가 아닌가 싶다. 있는 자리에서 다른 집착에 휘둘리지 않고 가진 것과 있는 것을 아끼고 돌볼 줄 아는 마음, 이는 스스로 물질과 욕망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스스로 갈망과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자신의 틀에서 빠져 나와 다른 사람과 세상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는 존재이다. 따라서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는 것은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삶의 선택일 뿐 아니라 인간 세상과 거짓 없이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이며 자연세계와 더불어 살기 위한 노력이 아닌가 생각된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098729

반응형

'4.읽고쓰기(reading & ess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것이 아름답다 - E. F. 슈마허  (0) 2019.08.20
[검색사전] 시간  (0) 2019.08.19
[검색사전] 청춘  (0) 2019.08.16
불안(Status Anxiety) - 알랭 드 보통  (0) 2019.08.16
[검색사전] 낭만  (0) 2019.08.14
Posted by 소요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