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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9.11 심보선 시집

주말에 TV를 보다가 심보선 시인의 「'나'라는 말 이란 시를 보았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발간된 2권의 시집을 읽으며, 시인이 표현하는 단어가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것과 다르다는 생각, 그리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느낀다.

 

불평등이란 
무수한 질문을 던지지만 제대로 된 답 하나 구하지 못하는 자들과 
제대로 된 질문 하나 던지지 않지만 무수한 답을 소유한 자들의 차이다 - 「집」 중에서...

 

 

 

『슬픔이 없는 십오 초』, 문학과지성사, 2008

 

나는 그저 고독한 아크로바트일 뿐
굳이 유파를 들먹이자면
마음의 거리에 자우룩한 구름과 안개의 모양을 탐구하는 '흐린 날씨'파
고독이란 자고로 오직 자신에게만 아름다워 보이는 기괴함이기에
타인들의 칭송과 멸시와 무관심에 연연치 않는다
즐거움과 슬픔만이 나의 도덕
사랑과 고백은 나의 금물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결단코 침묵이다. 구름과 안개의 곡예사」 중에서...

 

 

여기 모든 것에 대한 거짓말과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진실이 있다, 둘 중 어느 것이 덜 슬프겠는가, 어느 것이 먼 훗날 불멸의 침대 위에 놓이겠는가, 확률은 반반이다, 확률이란 비극의 신분을 감춘 숫자들로 이루어진 어두운 계산법이 아닌가 - 「확률적인, 너무나 확률적인」 중에서...

 

 

나는 발자국을 짓밟으며 미래로 간다

 

가장 먼저 등 돌리네

가장 그리운 것들

기억을 향해 총을 겨눴지

꼼짝마라, 잡것들아

살고 싶으면 차라리 죽어라

역거워, 지겨워, 왜

영원하다는 것들은 다 그모양이야

삽장생 중에 아홉 마릴 잡아 죽였어

남은 한 마리가 뭔지 기억이 안나

그미들 옆에 쪼르르 난 내 발자국이던가

가장 먼저 사라지네

가장 사랑하던 것들

추억을 뒤집으니 그냥 시커멓데

나는 갈수록 추악해진다

나쁜 냄새가 난다

발작국을 짓밟으며 미래로 간다

강변 살자,부르튼 발들아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슬픔 중의 하나는 시간에서 온다.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시간이 흐르고, 영원히 머물고 싶었던 순간은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방향을 향해 광속으로 사라진다. 시간의 흐름은 인간의 유기체적 몸에 큰 변화를 낳게 마련이어서, 아이는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어른의 세계로 튕겨져 나간다. 해설 꿈과 피의 미술관, 허윤진  중에서

 


생산된 슬픔을 소비해야만 감정의 부도를 막을 수 있다.  - 해설 꿈과 피의 미술관, 허윤진  중에서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4529804

 

 

『눈앞에 없는 사람』, 문학과 지성사, 2011년

 

불평등이란
무수한 질문을 던지지만 제대로 된 답 하나 구하지 못하는 자들과
제대로 된 질문 하나 던지지 않지만 무수한 답을 소유한 자들의 차이다 「집」 중에서...

 


태어난 이래 나는 줄곧
어쩌다보니,로 시작해서 어쩌다보니,로 이어지는
보잘것없는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깨달을 수 있을까?
태어날 때 나는 이미 망각에 한 번 굴복한 채 태어났다는
사실을, 영혼 위에 생긴 주름이 
자신의 늙음이 아니라 타인의 슬픔 탓이라는
사실을, 가끔 인중이 간지러운 것은
천사가 차가운 손가락을 입술로부터 거두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든 삶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고
태어난 이상 그 강철 같은 법칙들과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인중을 긁적거리며」 중에서...

 

 

그리하여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인간이기 위하여
사랑하기 위하여
無에서 無로 가는 도중에 있다는
초라한 간이역에 아주 잠깐 머물기 위하여 「지금 여기」 중에서...

 

 

나는 어제 산책을 나갔다가 흙 길 위에
누군가 잔가지로 써놓은 ‘나’라는 말을 발견했습니다.
그 누군가는 그 말을 쓸 때 얼마나 고독했을까요?
그 역시 떠나온 고향을 떠올리거나
홀로 나아갈 지평선을 바라보며
땅 위에 ‘나’라고 썼던 것이겠지요. 「'나'라는 말」 중에서...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림자는 태양이 사물을
영원히 주시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을 「체념 (體念)」 중에서...

 

 

나의 연보는 수십억 광년이야
영원으로부터 질주해오고 있어
아직 지구에 없는 내 초라한 무덤을 향해
아직 내 무덤이 없는 찬란한 지구를 향해 「연보」 중에서...

 

 

그는 내게 말하는 듯했다.
시인이여, 노래해달라.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나의 머지않은 죽음이 아니라
누구도 모르는 나의 일생에 대해.
나의 슬픈 사랑과 아픈 좌절에 대해.
그러나 내가 희망을 버리지 않았음에 대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생존하여 바로 오늘
쪽동백나무 아래에서 당신과 우연히 눈이 마주쳤음에 대해.
나는 너무 많은 기억들을 어깨 위에짊어지고 있는데
어찌하여 그 안에는 단 하나의 선율도 흐르지 않는가.
창가에 서 있는 시인이여,
나에 대해 노래해달라. 나의 지친 그림자가
다른 그림자들에게는 없는 독특한 강점을 지녔노라고 제발 노래해달라.  「사랑은 나의 약점」 중에서...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71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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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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