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사실도 서술하는 사람의 관점과 생각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들로 표현될 수 있다. 대부분의 역사서도 그것을 기록한 승자의 관점에서 씌어진 이야기다.

 

 

[본문발췌]

 

 

모든 역사는 '주관적 기록'이다. 역사는 과거를 '실제 그러했던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방송뉴스와 신문보도가 현재를 '실제 그러한 그대로' 전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실의 선택과 선택한 사실의 해석, 역사 서술의 핵심인 두 가지가 모두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역사를 둘러싼 다툼이 생기는 것이다. 

 

 

"흐름 속에 있는 것은 사건만이 아니다. 역사가 자신도 그 속에 있다. 어떤 역사책을 집어들 때, 책 표지에 있는 저자의 이름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출간 일자나 집필 일자도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 것이 때로 훨씬 많은 것을 누설한다." - 에드워드 H. 카,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적 사실 그 자체가 객관적인 진리를 이야기한다고 믿는 것은 순진한 착각일 뿐이다. 사실은 스스로 말하지 못한다. 역사가가 허락할 때만 말을 한다. 역사가는 제멋대로 사실을 만들거나 바꿀 수 없지만 사실의 노예인 것도 아니다. 사실과 역사가는 평등한 관계에서 서로를 필요로 한다. 자기의 사실을 가지지 않은 역사가는 뿌리 없는 풀과 같고 자기의 역사가가 없는 사실은 죽은 것이다.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들의 지속적 상호작용이다.(E. H. 카)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학위를 받은 전문 역사연구자가 쓴 민족사에서부터 평범한 시민이 쓴 소박한 개인사까지 다 마찬가지다. 역사는 어떤 사실을 선택해서 어떤 관계를 맺어주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사람의 행동이며, 행동을 일으키는 것은 욕망이다. 사람은 충족되지 않은 욕망을 안고 산다. 만약 모든 욕망을 다 채워서 어떤 결핍도 느끼지 않는다면 더는 행동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은 새로운 욕망을 끝없이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칼 포퍼는 어떤 국가가 민주주의 체제인지 전제정치 체제인지 가리는 기준을 하나로 정리했다. 다수 국민이 마음을 먹었을 때 정권을 평화적으로 교체할 수 있으면 그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다. 그게 불가능한 나라는 독재국가다. 평화적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하는 법률과 제도가 아예 없으면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런 제도가 있다고 해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서 평화적 정권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 그 역시 민주주의가 아니다.

 

 

인류 역사는 숱한 반란, 봉기, 내전, 혁명, 전쟁으로 점철되었다. 사태의 원인과 계기, 전개과정과 결과는 저마다 다르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같은 게 있었다. 사건의 한가운데에 있는 사람들을 덮친 것이 혼돈이었다는 사실이다. 무리를 지어 폭력으로 부딪치는 격동의 순간에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동기와 지향에 따라 제각기 활동한다. 모두에게 익숙한 일상의 소통방식이 무너진 상황에서는 냉철한 논리와 이성이 아니라 감정과 충동이 행동을 지배한다. 어디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 누구도 전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다. 모든 것이 끝나고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역사가들이 사태의 전모를 명료하게 정리하고 해석한다. 그때에야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인간이 불완전한 상태에서는 서로 다른 의견이 존재하는 것이 유익하듯이, 삶의 실험도 다양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각자의 개성을 다양하게 꽃피울 수 있어야 한다. 각자의 고유한 개성이 아니라 전통이나 관습에 따라 행동하게 되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자 개인과 사회 발전의 불가결한 요소인 개별성을 잃게 된다.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사람은 그 어떤 위대한 이념이나 가치를 실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인 존재다.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 때 행복을 느낀다. 우리 모두는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는 존엄한 인간이다. 우리는 자신의 존엄성을 확신하는 것과 똑같은 무게로 타인의 존엄성을 존중해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자유주의적 각성'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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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나 공산주의 공통적으로 효율성을 중시하고, 사람을 기계의 톱니처럼 부품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누리고, 평등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가치를 추구한 조지 오웰의 스페인 내전 참전기....

 

 

[본문발췌]

 

무엇보다도 혁명과 미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갑자기 평등과 자유의 시대로 들어섰다는 느낌이 있었다. 인간은 자본주의 기계의 톱니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병영 전체는 더럽고 혼란스러웠다. 의용군은 건물을 점령하기만 하면 모두 그렇게 만들어버렸다. 그것도 혁명의 부산물인가 보다. 구석마다 부서진 가구, 망가진 안장, 놋쇠로 만든 기병대 군모, 기병대가 쓰던 빈 칼집, 썩어가는 음식이 잔뜩 쌓여 있었다. 음식, 특히 빵은 엄청나게 낭비되었다. 내가 있던 내부반에서만도 식사 때마다 빵을 들통으로 하나씩 버렸다. 민간인은 빵이 모자라 난리인 것을 생각하면 면목 없는 일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많은 일에 능숙하다. 그러나 전쟁만큼은 아니다. 외국인들은 하나같이 그들의 비능률에 경악한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시간을 안 지키기 때문에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어떤 외국인이든 반드시 배우게 되는 스페인 단어가 마냐나 - '내일'(문자 그대로는 <아침>) - 이다. 그들은 가능하다고만 생각되면, 오늘 할 일을 마냐나로 미룬다. 이것은 워낙 악명 높은 악습이라서 심지어 스페인 사람들끼리도 그것을 놓고 농담을 한다. 스페인에서는 식사에서 전투에 이르기까지 정해진 시간에 되는 것이 없다. 보통은 늦는 쪽이다. 그러나 가끔씩은 너무 빠르다. 아마 어떤 일이든 정해진 시간보다 늦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고 행동하지 못하게 막으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8시에 떠날 예정인 기차는 보통 9시에서 10시 사이에 떠난다. 그러나 일주일에 한번쯤은 기관사의 개인적인 변덕 때문에 7시 반에 떠난다. 이런 일에 당하면 약간 약이 오륵 된다. 입으로야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우리 북쪽 사람들과 같은 시간 강박증이 없다는 점을 존경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 역시 그런 강박증을 가진 북쪽 사람 아닌가.

 

 

참호전에서는 다섯 가지가 중요하다. 땔감, 식량, 담배, 초, 그리고 적이다. 겨울의 사라고사 전선에서는 이 다섯 가지가 이런 순서별로 중요했다. 적이 가장 나중이었다. 밤에는 늘 기습 공격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불안했다. 그러나 그때를 제외하면 아무도 적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들은 멀리 떨어진 검은 벌레들에 지나지 않았다. 이따금씩 뛰어다니는 것이 눈에 띌 따름이었다. 실제로 양군이 가장 관심을 쏟는 문제는 추위를 쫓는 것이었다.

 

 

사실 이 전쟁에서는 인간의 능력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상대를 제대로 맞추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철학적으로 공산주의와 무정부주의는 양극단이다. 실제적으로, 즉 목표로 하는 사회의 형태라는 점에서 둘 사이의 차이는 주로 강조점의 차이이다. 그러나 그 차이 때문에 절대 화해할 수가 없다. 공산주의자는 늘 중앙 집권과 효율을 강조한다. 무정부주의자는 자유와 평등을 강조한다.

 

 

전쟁의 가장 끔찍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모든 전쟁 선전물, 모든 악다구니와 거짓말과 증오가 언제나 싸우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점이다. 내가 전선에서 알게 된 통일사회당 의용군 병사들이나, 이따금씩 만나는 국제 여단의 공산주의자들은 나를 결코 트로츠키주의자나 배반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런 일은 후방의 기자들이 담당했다. 우리에게 반대하는 팸플릿을 쓰고 신문에서 우리를 헐뜯는 사람들은 모두 안전한 집에, 혹은 기껏해야 발렌시아의 신문사 사무실에 있었다. 총알과 진창으로부터 수백 킬로미터는 떨어진 곳이었다. 당 사이의 불화에서 비롯된 비방은 물론이고 모든 일반적인 전쟁 선전 활동, 즉 탁자를 치며 열변을 토하거나, 과장된 영웅담을 늘어놓거나, 적을 헐뜯는 일들 역시 보통 모두 싸우지 않는 사람들, 많은 경우 싸우느니 차라리 백 킬로미터 가량 먼저 달아나겠다고 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전쟁에서 우울한 결과 가운데 하나는 좌익 언론도 우익 언론만큼이나 똑같이 거짓되고 부정직하다는 것을 내게 가르쳐주었다는 점이다.

 

 

모든 전쟁이 똑같다. 병사들은 전투를 하고, 기자들은 소리를 지르고, 진정한 애국자라는 사람은 잠깐의 선전 여행을 제외하면 전선 참호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싸워서 지는 것이 아예 싸우지 않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때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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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밝혀진 뇌의 구조와 작동원리데로 라면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의 기억과 의식을 인공 신쳉와 뇌에 옮길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사이버 공간에 자아를 업로드/다운로드 하던 것이 현실이 될지도....

 

 

[본문발췌]

 

 

여러 상대와 나누는 대화부터 당신이 속한 문화까지, 삶의 모든 경험들은 당신 뇌의 미시적인 세부구조를 변화시킨다. 신경학적으로 말하면, 당신이 누구인가는 당신이 어떤 곳들을 거쳤는가에 달려 있다. 당신의 뇌는 끊임없이 자신의 회로를 다시 작성함으로써 변신한다. 그리고 당신의 경험들은 유일무이하므로, 당신의 신경 연결망의 광역적, 세부적 패턴들도 유일무이하다. 그 패턴들은 평생 동안 변화를 멈추지 않으므로, 당신의 정체성은 움직이는 표적과도 같다. 당신의 정체성은 절대로 종착점에 이르지 않는다.

 

 

인간은 얼어붙은 툰드라부터 고산지대와 번잡한 도심까지 온갖 다양한 환경에서 번성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의 뇌가 상당히 미완성된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모든 회로가 배선된 상태로 ('고정 배선' 상태로) 태어나는 대신에, 인간의 뇌는 세부적인 삶의 경험에 의해 변화할 수 있다. 그래서 어린 뇌는 서서히 환경에 적합한 모습을 갖추기까지 오랫동안 무력한 상태에 머문다. 인간의 뇌는 '생후 배선'된다.

 

 

당신이 지금의 당신으로 되는 과정은 이미 있었던 가능성들을 쳐내는 과정이다. 당신이 지금의 당신으로 된 것은 당신의 뇌 속에서 무언가가 성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무언가가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10대 시절에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은 예정되로 그 시절에 일어나는 뇌 변화와 관련이 깊다. 그 변화는 우리를 자기의식이 더 강하고 위험 감수 성향이 더 강하며 또래 압력에 휘둘려 행동하는 성향이 더 강한 사람으로 만든다. 전 세계의 고뇌에 찬 부모들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다. 10대 청소년들의 성품은 단순히 선택이나 마음가짐의 결과가 아니다. 그 성품은 강렬하고 불가피한 신경학적 변화의 기간이 만들어내는 산물이다.

 

 

기억은 삶의 한 순간을 비디오카메라로 정확히 촬영하여 보존하는 기능이 아니다. 오히려 당신이 무언가를 기억하려면, 당신은 과거에 발생했던 불안정한 뇌 상태를 되살려야 한다. 그 상태가 바로 기억이다.

한 사건에 대한 당신의 기억은 당신의 세부적인 경험들에 관여한 뇌세포들의 유일무이한 연결망으로 표현된다.

 

 

얼핏 느끼기에 당신은 감각들을 통해 세계에 직접 접속하는 듯하다. 당신은 손을 내밀어 물리적 세계의 물질, 이를테면 이 책이나 당신이 앉은 의자를 만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촉각은 직접 경험이 아니다. 당신은 손가락에서 촉각이 일어난다고 느끼지만, 실제로 모든 일은 뇌의 촉각 담당 중추에서 일어난다. 다른 감각 경험들도 마찬가지다. 시각 경험은 당신의 눈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청각 경험은 귀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후각 경험은 코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당신의 모든 감각 경험은 계산 능력을 갖춘 물질인 당신의 뇌에서 일어나는 온갖 활동의 산물이다.

 

 

의식적인 당신은 당신의 뇌 활동에서 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당신의 행동, 믿음, 편견은 모두 당신의 뇌 연결망들에 의해 조종되며, 당신은 그 연결망들에 의식적으로 접근할 수 없다.

 

 

우리 뇌의 무의식적 장치는 항상 작동하지만, 그 작동이 워낙 원활하기 때문에, 우리는 대개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가 그 작동을 쉽게 알아채는 경우는 오직 그 작동이 멈췄을 때뿐이기 십상이다.

 

 

훈련된 솜씨는 뇌의 미시적 구조 안에 새겨진다.

 

 

평생 내내 우리의 뇌는 우리가 수행하는 과제를 담당할 회로를 형성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변화시킨다. 예컨대 걷기, 파도타기, 저글링, 수영, 운전 등을 담당할 회로를 형성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렇게 뇌 구조에 프로그램을 새겨 넣는 능력은 뇌의 가장 강력한 묘수들 중 하나다. 뇌는 복잡한 운동 과제를 전담하는 회로를 하드웨어에 새겨 넣음으로써 그 과제를 아주 적은 에너지만 써서 수행할 수 있다.

 

 

의식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할 때,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판단할 필요가 있을 때 개입한다. 뇌는 최대한 오랫동안 자동 조종 상태를 유지하려 하지만, 예상 밖의 변화구가 난무하는 세계에서 그것은 때때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의식의 역할은 놀라운 상황에 반응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의식은 뇌 내부의 갈등을 정리하는 작업에서도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 호흡에서부터 침실 구석으로 가서 먹을거리를 입에 넣는 행동과 스포츠 숙달까지 광범위한 과제들에 수십억 개의 뉴런들이 참여한다. 이 과제들 각각을 뇌 속의 방대한 연결망들이 담당한다. 그런데 뇌 속에서 갈등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이를테면 당신은 아이스크림을 향해 손을 뻗지만 그것을 먹으면 후회하리라는 것을 안다고 해보자. 이런 상황에서는, 양단간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 유기체-당신-와 장기적 목표들에 비춰볼 때 무엇이 최선인지 결정해야 한다. 의식은 이 특별한 관점을 가진 시스템이다. 뇌의 어떤 다른 하위시스템도 이 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의식은 상호작용하는 무수한 요소들, 하위 시스템들, 훈련을 통해 새겨진 회로들의 통제권자로 구실할 수 있다. 의식은 전체 시스템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설정할 수 있다.

 

 

우리는 거의 늘 우리 자신의 정신적 세계 안에서 돌아다닌다. 거리에서 낯선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 지나친다. 그러나 무언가가 우리의 무의식적 예상을 벗어나면, 의식적 주의 집중이 작동하여 현재 상황을 신속하게 모형화하려고 애쓴다.

 

 

아이스크림을 먹을까 말까? 이메일 답장을 지금 보낼까? 나중에 보낼까? 어떤 신발을 신을까? 우리의 일상은 수많은 자잘한 결정들로 구성된다. 무엇을 할지, 어디로 갈지, 어떻게 반응할지, 먹을지 말지 등에 관한 결정들 말이다. 결정에 관한 초기 이론들은 인간이 선택지들의 이익과 손해를 따져 최적의 결정에 이르는 합리적 행위자라고 전제했다. 그러나 인간의 결정을 과학적으로 관찰한 결과들은 그 전제를 반박한다. 뇌는 서로 경쟁하는 여러 연결망들로 이루어졌으며, 연결망 각각은 고유한 목표들과 욕망들을 가졌다. 아이스크림을 먹을지 말지 결정할 때, 당신의 뇌 속 일부 연결망들은 당 섭취를 원하는 반면, 다른 연결망들은 장기적인 몸매를 고려하여 반대표를 던진다. 또 다른 연결망들은 당신이 내일 체육관에 가기로 약속한다면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도 있다고 제안한다. 당신의 뇌는 경쟁하는 정당들로 구성된 의회와 유사하다. 정당들은 국가라는 배를 조종하기 위해 끝까지 싸운다. 당신은 때때로 이기적으로 결정하고, 때로는 자비롭게, 때로는 충동적으로, 또 어떤 때는 장기적인 전망을 고려하여 결정한다. 우리는 복잡한 존재다. 왜냐하면 우리는 수많은 욕망들로 이루어졌고, 그 모든 욕망들이 저마다 통제권을 쥐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은 모든 것의 핵심이다.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우리가 주위 세계를 어떻게 지각하는지의 핵심에 의사결정이 놓여 있다. 선택지들을 평가하는 능력이 없으면,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욕망들의 인질로 전락할 것이다. 우리는 지혜롭게 현재를 지휘하거나 미래를 계획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물론 단일한 정체성을 지녔지만, 당신의 정신은 단일하지 않다. 오히려 당신은 경쟁하는 많은 욕망들의 집합이다. 뇌 속에서 선택지들이 어떻게 싸우는지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과 사회를 위해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당신의 뇌가 정상으로 작동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당신이 먹는 식품에서 유래한 영양분 말고도, 당신이 들이쉬는 산소 말고도, 당신이 마시는 물 말고도, 이것들에 못지않게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타인들이다. 정상적인 뇌 기능은 우리 주위의 사회적 연결망에 의존한다. 우리의 뉴런이 생존하고 번성하려면 타인들의 뉴런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함께 산 부부는 얼굴이 서로 닮는다는 사실 말이다. 결혼 기간이 길수록, 이 효과는 더 강하게 나타난다. 여러 연구가 시사하는 바에 따르면, 이것은 단지 부부가 같은 옷을 입거나 같은 머리모양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랫동안 함께 살면서 서로의 표정을 흉내 내다 보니 주름의 패턴이 똑같아지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통증 매트릭스는 우리가 타인들과 연결되는 방식에서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 누군가가 주삿바늘에 찔리는 모습을 당신이 보면, 당신의 통증 매트릭스의 대부분이 활성화된다. 당신이 실제로 찔렸다고 알려주는 구역들은 활성화되지 않지만, 통증에 대한 감정적 경험을 담당하는 구역들은 활성화된다. 다시 말해, 통증을 느끼는 타인을 지켜볼 때 사용되는 뉴런 장치는 스스로 통증을 느낄 대 사용되는 뉴런 장치와 동일하다. 바로 이것이 공감의 토대다. 타인에게 공감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타인의 통증을 느낀다는 것이다. 타인의 상황에 자신이 처했다면 어떠할지를 당신은 불가항력적으로 시뮬레이션한다. 영화와 소설을 비롯한 이야기들이 강력한 흡인력을 바루히하고 인류 문화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이유가 바로 이같은 우리의 시뮬레이션 능력에 있다.

 

 

사회적 아픔(이를테면 배제당할 때 느끼는 아픔)에 의해 활성화되는 뇌 구역들은 신체적 아픔에 의해 활성화되는 구역들과 같다.

 

 

우리가 누가 될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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