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시간과 함께 쌓여가지만 그 길이가 오래될수록 어떤 기억들은 잊혀진다. 기억과 망각의 균형으로 우리 뇌가, 생각이 과부하에 걸리지 않는 것일지도.... 오래 간직하고 싶은 기억도 있지만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들도 있다.

 

간직하고 싶은 좋은 기억들의 시간을 늘리는 방법 : 감동, 반복적 회상, 기록, 다양한 감각을 동원한 기억 등....

 

 

 

기억, 記憶

1.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

2. <심리> 사물이나 사상(事象)에 대한 정보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정신 기능.

3. <컴퓨터> 계산에 필요한 정보를 필요한 시간만큼 수용하여 두는 기능.

[유의어] 메모리, 상기, 암기

 

(네이버 영어사전) [명사] memory, recollection, (formal) remembrance, [동사] remember; (생각해 내다) recall, recollect; (마음에 담아 두다) bear[keep] (sth) in mind

 

(생명과학대사전) 인상, 지각, 관념 등을 불러 일으키는 정신기능의 총칭. 사람이나 동물이 경험한 것을 특정 형태로 저장하였다가 나중에 재생 또는 재구성하는 현상이다. 새로운 경험을 저장하는 작용, 기명된 내용이 망각되지 않도록 유지하는 작용, 유지하고 있는 사항을 회상할 수 있는 활동을 기억의 3요소라 한다. 기억은 여러 가지로 분류되는데, 시간적 측면에서 불필요하면 잊게 되는 단기기억과, 장시간, 때로는 평생 동안 유지되는 장기기억이 있다. 기억은 대뇌피질의 감각연합역에 저장되고, 해마는 기억형성에 관여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시, 글과 책 속에 쓰인 '기억'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콜레라 시대의 사랑>

가슴의 기억은 나쁜 기억은 지우고 좋은 기억만 과장하는 법이며, 이런 책략 덕택에 우리가 과거의 짐을 견디고 살아갈 수 있다.

 

 

유현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공간은 실질적인 물리량이라기보다는 결국 기억이다. 우리가 몇 년을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어떠한 추억을 만들어 냈느냐가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 이 같은 현상은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나빠져서 기억할 일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 만큼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대로 어렸을 때는 기억력이 좋아서 하루만 생각해도 기억할 일이 많고 그만큼 시간이 꽉 찬 느낌으로 느리게 흘러가는 것으로 느껴진다고 한다.

 

 

이정우, <개념 뿌리들>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시간에는 현재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인간이 기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인간은 그저 매 순간을 살아갈 수 있을 뿐이고 '나'라는 정체성을 가지지 못할 것입니다. 기억이 존재하기 때문에 인생이란 것이 존재하는 것이죠.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과거 기억을 상실하면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게 되고 미래 기억을 못하면 나는 영원히 현재에만 머무르게 된다. 과거와 미래가 없다면 현재는 무슨 의미일까. 하지만 어쩌랴. 레일이 끊기면 기차는 멈출수밖에.

 

 

한동일, <라틴어 수업>

인간은 죽어서 그 육신으로 향기를 내지 못하는 대신 타인에 간직된 기억으로 향기를 내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기억이 좋으면 좋은 향기로, 그 기억이 나쁘면 나쁜 향기로 말입니다. 인간은 타인을 통해 기억되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오늘은 내가, 내일은 네가" 죽음으로써 타인에게 기억이라는 것을 물려주는 존재입니다.

 

 

헬렌 니어링,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성공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유명함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 반면, 정의로움은 영원한 진리의 반석이 된다.

 

 

정철, <불법사전>

"이별", 남자와 여자가 만나 서로의 가슴에 느낌표를 찍고, 서로의 품에서 쉼표를 찍다가, 어느날 서로에게 물음표를 던진 후, 한동안 조용히 말없음표를 찍고, 결국 서로의 기억에 마침표를 찍는 것. 그리고 둘 중 한 사람은 자꾸 되돌이표를 만지작거리는 것.

 

 

베르나르 베르베르, <죽음>

죽을 때 삶에서 배운 걸 모두 기억해야 한다.

첫째, 인간의 삶은 짧기 때문에 매 순간을 자신에게 이롭게 쓸 필요가 있다.

둘째,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남들이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결국 선택은 우리 스스로 하는 것이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우리가 지는 것이다.

셋째, 실패해도 괜찮다. 실패는 도리어 우리를 완성시킨다. 실패할 때마다 뭔가를 배우기 때문이다.

넷째, 다른 사람에게 우리를 대신 사랑해 달라고 할 수는 없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은 각자의 몫이다.

다섯째, 만물은 변화하고 움직인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물건이든 억지로 잡아 두거나 움직임을 가로막아선 안 된다.

여섯째, 지금 갖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려 하기보다 지금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삶은 유일무이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완벽하다. 비교하지 말고 오직 이 사람을 최대한 누리기 위해 애써야 한다.

 

 

김영하, <말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간접적인 행위이지만 오감을 동원하면 그것은 마치 놀라운 가상현실처럼 우리에게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주고, 그런 글쓰기가 습관이 되면 일상생활에서도 더 민감하게 오감을 동원하게 됩니다. 감각과 기억, 표현은 이렇게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의 감성 근육을 키우는 것입니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혜민스님,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우리는 늘 행복할 수는 없지만 순간순간 행복했던 기억의 힘으로 살아간다.

 

 

최인철, <굿 라이프>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이 두 가지의 구분을 위해 경험하는 자기(experiencing self)와 기억하는 자기(remembering self)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우리에게는 현재 순간을 경험하는 자기가 있고, 나중에 그 경험을 기억하고 회상하면서 새롭게 재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자기가 있다. 카너먼은 우리에게 두 가지 자기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에도 두 가지가 있다고 주장한다.하나는 경험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이고, 다른 하나는 기억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이다. 경험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지금 현재의 만족과 기분을 추구한다는 것이고, 기억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삶 전체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한다는 뜻이다.

 

 

정재승, <열두 발자국>

아날로그의 반격 현상을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도대체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왜 사람들은 아날로그를 다시 찾는 걸까요? 아마도 그것을 '복고의 귀환'으로 설명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유행은 돌고 돈다고 했던가요? 인간은 행복을 '상태'로 인식하지 않고 '기억'에서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당시엔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면 좋은 기억으로 뇌 속에 저장됩니다. 행복한 순간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과거의 한 순간에서 애써 찾지만, 당시엔 그 시간이 행복인지 인지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행복으로 덧칠된 복고의 기억은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시대가 바뀌어도 종종 소환되는 것일지 모릅니다. "그때가 참 좋았지" 하면서 말입니다. 실제로, 미국 작곡가 오스카 레번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행복은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다!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

캄캄한 어둠이라면, 우리 안에 남는 건 그 캄캄함이 아니라 그 어둠 속에서 미미하게 비치던 빛 같은 것이죠. 그게 기억의 속성인 것 같아요. 글쓰기는 기억을 닮았어요. 사람은 누구나 기억하고 싶은 것을 글로 쓰는 거죠. 의도적으로 부정적인 경험을 망각해요. 이 의도적인 망각이 창작의 원동력이에요. 어쩌면 삶의 원동력일지도 모르겠고요.

 

 

유시민, <역사의 역사>

교류가 전혀 없었던 두 문명에서 비슷한 때 본격적인 역사서가 등장했다는 사실은 과거를 기억함으로써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려는 욕망이 우리 인류의 본성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미치오 카쿠, <미래의 물리학>

과학자들은 기억력과 망각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너무 많이 잊으면 과거의 실패나 좌절감과 함께 애써 습득한 기술까지 잊게 된다. 그 반대로 너무 많이 기억하면 중요한 정보와 함께 과거에 겪었던 모든 좌절과 슬픔이 수시로 떠올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억과 망각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야 최상의 이해력이 발휘된다.

 

 

전주희 외,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

인간의 시간이란 연속적이지 않다. 시계가 가리키는 초침과 분침은 균질적이지만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이란 기억과 미래일 뿐이다. 현재는 늘 순식간에 과거로 흘러가 기억으로 쌓인다. 기억으로 쌓인 시간이 미래를 정확하게 그릴 수 없다는 것은 언제나 정해진 시간에서 벗어나는 시간, 다른 시간을 꿈꿀 수 있는 이탈의 가능성을 포함한다. 하지만 자본의 시간, 부채가 결정하는 시간은 이러한 인간의 시간을 설계하고 계산하며 통제한다. 부채가 인간의 삶을, 인간의 모든 시간을 강탈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면 기억과 미래라는 연속적이지 않은 인간의 시간은 화폐가치로 환산된 시간표가 될 것이다. 1교시가 끝나면 어김없이 2교시가 기다리는 시가느이 연속이 삶의 전부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사건을 찾아 여행을 떠나지 않는 개인에게는 시간이란 지금-지금-지금이 무한히 반복되는 시간만이 남겨지게 될 것이다.

 

 

박완서, <잃어버린 여행가방>

풍성하게 쌓인 낙엽을 밟는 맛은 보는 맛 못지않았으며, 젖은 낙엽이 풍기는 냄새는 특이했다. 꽃내음도 아닌, 코끝과 정감을 동시에 건드리는 은은하고도 격조 높은 향기였다. 나는 그 향기를 기억하기 위해 깊이깊이 들이마셨고, 옷자락에도 스미라고 일부러 오래 이슬비 속에 서 있기도 했다.

 

 

빈센트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지난 삶의 기억들, 이별한 사람들이나 죽어버린 사람들, 영원히 지속될 것 같던 시끌벅적한 사건들.... 모든 것이 마치 망원경을 통해 희미하게 바라보는 것처럼 기억 속으로 되돌아올 때가 있지요. 과거는 그런 식으로만 붙잡을 수 있는가 봅니다.

 

 

P. G. 해머튼, <지적 생활의 즐거움>

동일한 시간 동안 사람의 인생이 다르게 결정되는 이유는 시간의 '질'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질'은 기억과 관련이 깊습니다. 질 좋은 시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질 나쁜 시간은 방금 전에 일어난 일도 기억해내지 못합니다. 기억의 형성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감정적 충격입니다. 선명한 감정적 충격이 뇌리와 마음에 깊게 새겨져 기억할 의사가 없음에도 저절로 기억되는 경우입니다. 두 번째는 반복입니다. 시간을 들여 반복적으로 주입시킨 기억입니다.

 

 

<사랑은 나의 약점> 중에서 / 심보선

 

그는 내게 말하는 듯했다.

시인이여, 노래해달라.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나의 머지않은 죽음이 아니라

누구도 모르는 나의 일생에 대해.

나의 슬픈 사랑과 아픈 좌절에 대해.

그러나 내가 희망을 버리지 않았음에 대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생존하여 바로 오늘

쪽동백나무 아래에서 당신과 우연히 눈이 마주쳤음에 대해.

나는 너무 많은 기억들을 어깨 위에짊어지고 있는데

어찌하여 그 안에는 단 하나의 선율도 흐르지 않는가.

창가에 서 있는 시인이여,

나에 대해 노래해달라. 나의 지친 그림자가

다른 그림자들에게는 없는 독특한 강점을 지녔노라고 제발 노래해달라.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안티프래질>

이론과 실행의 중요한 차이는 사건의 순서를 정확하게 탐지하고 그 순서를 기억하는 데 있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했듯이, 우리가 앞을 향해 살아가지만 뒤를 향해 기억한다면, 책은 우리의 기억, 학습, 본능이 순서를 가지려는 성향을 악화시킨다. 오늘 누군가가 살아보지도 않았던 사건을 바라본다면, 주로 사건의 순서에서 나타나는 혼란때문에 인과관계의 환상을 가질 수 있다. 이런 바이어스에도 불구하고, 실생활에서 우리는 역사학과 학생만큼의 비동시성을 갖지는 않는다. 역사는 거짓말과 바이어스로 가득 찬 고약한 것이다.

 

 

로버트 그린, <권력의 법칙>

자기 창조의 두 번째 단계는 기억에 남는 이미지를 창출하는 것이다.

 

 

코에케 류노스케, <생각 버리기 연습>

무언가를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이 '무명(無明)'을 키운다. 버릴 수 없이 두는 것이 늘어날수록 기억의 데이터베이스도 점점 복잡해지고 기억할 수 없는 것도 늘어난다. 기억할 수 없는 것이 늘어나면, 현재 자기 마음의 상태를 인식하는 능력, 자신의 마음을 구석구석까지 넓게 훑어보는 능력, 자기 통제 능력이 줄어들게 된다. 그것은 자기 마음속에서 의식화할 수 없는 정보가 늘어가기 때문이다. 물건을 버리지 않고 두고 싶다는 번뇌와 버려버리고 싶다는 솔직한 충동, 이 상반된 두 가지가 일으키는 갈등을 생각하면 기분이 나빠진다. 마음이 혼란스러워져 이런 갈등 자체가 싫어지면,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기분이 되어 서랍이나 벽장 한구석에 처박아 놓을지도 모른다. ... 무명이란 진리의 빛이 비추어지지 않는 혼란한 상태이다. 마음속에 있는 진정 어두운 영역이다. 스스로 자신이 보이지 않는 영역을 늘려가는 것이기도 하다. 이 무명이란 영역은, 욕망에 따라 물건을 점점 더 많이 소유하고 집착할수록 점점 더 커진다.

 

 

안드레아 울프, <자연의 발명>

인간은 기억과 정서적 반응을 통해 자연을 경험하고 이해한다.

 

 

라 로슈푸코, <잠언과 성찰>

사람들은 곧잘 기억력이 나쁘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판단력이 둔하다는 것은 아무도 개탄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머릿속에 넣어 두는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왜 상대방에게 했던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카트린 지타,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

당신이 항상 가지고 다닐 수 있을 만큼만 소유해라. 언어를 배우고, 국가를 이해하고, 사람들을 받아들여라. 당신의 기억력이 곧 당신의 여행 가방이 될 수 있도록...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혜민 스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냥 내가 / 약간 손해 보면서 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사십시오. / 우리는 자신이 한 것은 잘 기억하지만 / 남들이 나에게 해준 것은 쉽게 잊기 때문에, / 내가 약간 손해 보며 산다고 느끼는 것이 / 알고 보면 얼추 비슷하게 사는 것입니다.

 

 

구본권, <로봇시대, 인간의 일>

 

우리에게 기억은 의도적 망각과 삭제의 과정을 거친 결과이고 추상화 작용의 핵심이다.  망각은 인간 기억 기능의 결함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추상화와 일반화를 가능하게 해서 창의력과 통찰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전략적 선택이다.

 

기억을 외부에 의존하는 행위가 스스로 무지함을 깨닫지 못한 채 자신에게 지식이 있는 것으로 잘못 판단하게 만든다는 말은 인터넷 환경에서 더욱 돋보이는 통찰이다. 기억은 우리가 주의력을 집중하는 정도에 따라 자세하게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외부 기억장치에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 뇌는 그 대상에 주의력을 덜 할당하게 된다.

 

우리가 경험과 학습을 통해 형성하는 기억의 총체가 곧 의식이자 삶이다. 풍부한 기억이 곧 풍요로운 삶이다. 친구와 가족, 배우자가 각별한 것도 서로 공통된 기억을 통해 삶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 기억은 비록 부실하지만 우리가 부여받은 값진 선물이다. 기억의 아웃소싱은 결국 사람의 본질적 특성인 사고와 판단마저 기계에 위임하는 결과로 연결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고하는 존재인 우리는 편리하다고 주요 기억을 함부로 외부에 맡겨서는 안 된다.

 

 

강상중,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인간의 비극은 '미래를 예측하고 싶어 한다'는 것과 '기억한다'는 것에서 기인합니다. 과거를 아쉬워하고 미래를 불안해하기에 마음의 병을 얻게 된다는 말이지요.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나쁜 소녀의 짓궂음>

대부분의 작가에게 기억은 상상의 출발점이다. 상상은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날아간다. 기억은 그런 상상을 소설을 향해 발사하는 트램펄린이다. 작품 속에서 기억과 창안은 종종 작가조차도 풀 수 없을 정도로 뒤섞인다. 소설에서는 기억이 꿈과 용해되거나, 꿈이 기억과 용해된다.

 

 

데이비드 호크니 / 마틴 게이퍼드, <그림의 역사>

우리는 기억을 통해 세계를 바라본다. 같은 사람을 보더라도, 만약 내가 그를 잘 알고 있다면, 그를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 기억은 당신의 기억과 다르다. 우리가 같은 시간, 같은 곳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동일한 것을 동일하게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김난도 외, <트렌드 코리아 2018>

행복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물질보다 경험에 돈을 지불할 때 사람은 더 큰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다. 물건은 구입한 직후부터 싫증을 느끼게 되는 반면 경험은 시간이 지날수록 긍정적인 기억만 남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소비자의 두 손에 무엇을 들릴 것이냐보다 소비자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 거이냐가 더 중요하다.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기주, <언어의 온도>

음식을 맛보며 과거를 떠올린다는 건, 그 음식 자체가 그리운 게 아니라 함께 먹었던 사람과 분위기를 그리워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운 맛은, 그리운 기억을 호출 한다.

 

여행길에 오른 사람은 언젠가는 여행의 출발지로 되돌아온다. 돌아갈 곳이 없다면 그건 여행이 아니라 방황인지도 모른다. 행여 여행길에서 하염없이 방황하고 있다 해도 낙담할 이유는 없다. 방황이 끝날 무렵 새로운 목적지를 향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훗날 그 방황은 꽤 소중한 여행으로 기억될 테니까.

 

 

니콜라스 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기계에 기억을 아웃소싱할 때 우리는 지성이나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 역시 아웃소싱하는 것이다. 기억을 아웃소싱하면 문화는 시들어간다.

 

 

피코 아이어, <여행하지 않을 자유>

삶의 상당 부분은 우리 머릿속에서 벌어진다. 기억이나 상상, 추측이나 해석 같은 것들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바꾸기만 해도 내 삶을 훌륭하게 바꿀 수 있을 것만 같다.

 

 

시어도어 젤딘, <인생의 발견>

생각은 혼자 두면 외롭고 무력하다. 생각은 소통을 통해 수정되어야만 남들에게도 의미 있는 생각이 된다. ... 모든 개인은 각자의 감성과 기억을 토대로 새로 흡수한 정보를 생각으로 형성한다. 그리고 생각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접하기 전에는 그 나름의 가치를 모른다.

 

최근의 뇌과학 연구에서 기억이 손상된 치매 환자는 미래를 생각하는 것도 어려워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망각의 어둠 속으로 빠져들수록 미래는 텅 비어간다. 사람들이 과거에 환상을 품을수록 미래에 대한 생각도 환상이 된다. 시각 기억이 선명할수록 미래는 더욱 시각적인 형태를 띤다. 따라서 기억은 과거의 것만이 아니고 미래를 구축하기 위한 구성 요소다. 기억의 폭이 좁을수록 미래를 폭넓고 독창적으로 구상할 가능성도 줄어든다. 기억을 먹여살리는 방법은 몸을 먹여살리는 방법만큼 중요하다. 개인의 경험만으로 구성된 식단은 빈약하지만 남들에게서 습득한, 사실상 살아 있거나 죽은 모든 인류에게서 습득한 간접 기억으로 보완할 수 있다. 기억이 빈약하면 이전에 가본 곳 말고는 앞으로 어디로 갈지를 상상할 수 없다.

 

 

김연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우리는 인생을 두 번 산다. 처음에는 실제로, 그 다음에는 회고담으로. 처음에는 어설프게, 그 다음에는 논리적으로. 우리가 아는 누군가의 삶이란 모두 이 두번째 회고담이다.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이다.

 

 

레이 커즈와일, <마음의 탄생>

 

우리 뇌가 작동하는 방식

  • 우리 기억은 순차적이며 그 순서는 정해져있다. 입력된 순서대로만 출력할 수 있다. 우리는 기억의 순서를 거꾸로 뒤집지 못한다.

  • 뇌에는 이미지, 비디오, 소리를 기록하고 저장하는 장치가 없다. 우리 기억은 패턴의 나열로 저장된다. 자주 접근하지 않는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진다.

  • 우리 뇌는 패턴을 인지한다. 정보의 일부분만 인지하더라도 (보더라도, 듣더라도, 느끼더라도) 또는 정보가 일부분 변형되더라도, 우리 인지능력은 패턴의 변하지 않는 특징을 명확하게 감지해낸다.

  • 우리는 끊임없이 미래를 예측하고 앞으로 무엇을 경험할지 가정한다. 이러한 기대는 우리가 실제로 인지하는 내용에 영향을 미친다.

  • 대상이나 상황을 인식할 때 우리는 길게 나열된 리스트가 아니라, 정교하게 포개어진 계층으로 기억한다.

  • 우리의 의식적인 인지경험은 그것을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을 본다.

 

생각의 작동방식 측면에서 두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방향성 없는 생각으로, 논리와 무관한 생각을 촉발하는 것이다. 낙엽을 쓸거나 거리를 걷다가 몇 년 전 기억이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처럼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라고 해도, 그것은 아무 관련성 없이 떠오른 것이 아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모든 패턴은 언제나 순서대로 촉박되며, 기억 역시 그러한 과정을 거쳐 떠오른다. 따라서 과거의 어떤 장면이 눈앞에 갑자기 떠올랐다고 해도, 그 기억을 떠올리기 전부터 그 기억을 암시하는 어떤 '힌트'로부터 출발하여 그 장면이 떠오를 때까지 우리 마음속에는 무수한 패턴의 촉발이 일어난 것이다. 기억을 촉발한 계기가 명확하게 인지될 수도 있지만 어렴풋할 수도 있고, 전혀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인지한다고 해도 연관성이 떨어지는 비선형적인 연상들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장면을 떠올리기 위해서는 연상되는 여러 기억을 종합하여 좀더 생생한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한다. 뇌는 그림이나 소리를 그대로 저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희인, <여행의 문장들>

기억을 조금이라도 잃어버려봐야만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기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억이 없는 인생은 인생이라고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의 통일성과 이성과 감정 지어지는 우리의 행동까지도 기억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을. 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 루이스 부뉴엘의 말,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문요한, <여행하는 인간>

기록의 과잉은 여행에의 몰입을 방해한다. 우리는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로 더 이상 타인의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않는다. 심지어 가족의 전화번호조차 외우지 못하기도 한다. 디지털 시대를 사는 우리의 뇌는 갈수록 할 일이 없다. 기억의 저장고가 점점 내부에서 외부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에서 사진 등 촬영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뇌는 덜 느끼고 덜 기억한다. 가뜩이나 바쁜 일정으로 인해 여행의 감동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데, 과도한 기록 작업은 여행을 더욱 메마르게 만든다. 미국의 비평가 수전 손택은 <사진에 관하여>에서 이러한 세태를 꼬집었다. 그녀는 노동 윤리가 냉혹한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일수록 사진 찍기에 더욱 집착한다고 본다. 하루 종일 일하는 것이 몸에 밴 사람들은 휵를 가거나 일하지 않을 때 불안감을 느끼는데, 사진 촬영을 열심히 함으로써 일 비슷한 것을 하고 있다고 안심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희망을 가지고서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망각 할 수 있어서다. 아이들이 늘 웃을 수 있는 것은 나쁜 일을 오랫동안 곱씹지도, 필요 이상으로 자책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잘 잊을 수 있는 망각 능력 즉, '쾌망'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여행을 할 때 우리의 기억은 어떻게 될까? 놀랍게도 우리의 기억 기능과 망각 기능이 동시에 활성화된다. 즉, 여행 중에는 나쁜 일을 빨리 잊어버릴 수 있다. 반면 잊고 있던 추억이나 잊고 싶은 아픈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그것도 전혀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말이다. 낯선 공간에서의 새로운 자극이 우리 안에 감쳐둔 기억과 감정을 일깨우는 것이다.

 

 

사사키 후미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물건은 기억해주는 주인을 잃을 때 가치도 함께 잃는다.

 

 

로버트 M. 피어시그,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과거는 과거를 기억할 수 없으며, 미래는 미래를 생성할 수 없다. 지금 여기 이 순간이야말로, 촌각에 해당하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항상 존재하는 모든 것의 총체, 바로 그것이다. 가치 - 즉, 현실을 움직이는 동력 장치의 맨 앞 표면 - 는 더 이상 구조의 우발적 부산물이 아니다. 가치는 구조를 선행한다. 가치란 대상에 대한 지적 활동 이전에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전지적인 인식으로, 구조를 낳는 것은 이 전지적인 인식이다. 우리의 구조화된 현실은 가치에 근거하여 미리 선택된 것으로, 구조화된 현실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조화된 현실의 모태가 된 근원적 가치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

 

 

미하엘 엔데, <모모>

차라리 음악을 듣지 않고, 색채들을 보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선택을 하라고 했다면, 이 세상 어떤 것을 준다고 해도 음악과 색채에 대한 기억과 바꾸진 않았으리라. 그 기억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모모는 깨닫게 되었다. 이 세상에는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없으면,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파멸에 이르는 그런 보물이 있다는 사실을....

 

 

도정일, <뱔들 사이에 길을 놓다>

기억과 사유, 상상과 표현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독특한 능력들의 목록을 대표한다. 인간이 천사를 향해 자랑할 것도 그 네 가지 능력으로 집약된다. 인간은 기억하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존재이다. 그 네 가지 능력의 어느 것도 완벽하지 않다. 기억은 수많은 구멍들을 갖고 있고 사유는 불안하다. 상상은 기억과 사유의 한계를 확장하지만 유한한 경험의 울타리를 아주 벗어나지는 못하다. 표현의 형식과 내용도 시간성에 종속된다. 그러나 기억, 사유, 상상, 표현의 인간적 시도들은 그것들이 지닌 한계 때문에 무용해지는 것이 아니라 유한한 것들만이 가지는 순간적 아름다움의 광채를 포착하고 표현하기 때문에 위대하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블랙스완>

심각한 심리적 질병들은 주변 환경에 대한 통제력-주변 환경에 대한 '이해' 능력-을 상실했다는 느낌을 동반한다. 예술과 달리 과학의 목적은 조직된 느낌을 얻거나 기분을 전환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도달하는데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식을 심리 치료 요법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전통적인 지식에는 기억이란 컴퓨터 디스켓처럼 자료를 차례차례 이어서 기록하는 장치로 여겨진다. 그러나 실제 기억은 마치 같은 종이 위에 글을 계속 쓰는 것과 같아서(혹은 처음의 글을 새로 고쳐 쓰는 것과 같아서) - 정적인 것이 아니라 - 역동적이다. 이는 그만큼 과거의 정보가 강력한 힘을 발휘해 주기 때문이다. 기억은 역동적이되 단순히 스스로 새롭게 보충해 나가는 자동기계는 아니다.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는 이 최신 사건을 기억하면서 이전의 기억에 이를 덧붙여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자기도 모르게 발휘하지 않는가? (19세기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인간의 기억을 팰림프세스트'palimpsest', 즉 이전에 쓴 글을 지우고 그 위에 새로운 글을 쓴 양피지에 비유한바 있다)

우리는 인과관계의 사슬 속에서 기억을 끄집어내고, 무의식적으로 이를 수정해 나간다. 우리는 새로 발생한 사건까지 감안하여 논리적으로 들어맞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 짓기를 되풀이한다.

 

 

제러미 리프킨, <소유의 종말>

"새롭게 떠오르는 체험 경제에서는 상품이 아니라 '기억'을 만든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령 제조업체는 상품을 <체험화> 해야 한다. 자동차 회사는 <모는 체험>을, 가구업체는 <앉는 체험>을, 가전 업체는 <닦는 체험과 요리하는 체험>을, 의류 업체는 <입는 체험>을 격상시키는 데 주력해야 한다.

 

 

박웅현, <책은 도끼다>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동받는 것이다. 지식이 많은 친구들보다, 감동을 잘 받는 친구들이 일을 더 잘한다. 감동을 잘 받는다는 건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지식은 기억으로부터 온다. 그러나 지혜는 명상으로부터 온다. 지식은 밖에서 오지만 지혜는 안에서 움튼다. 안으로 마음의 흐름을 살피는 일. 이것을 일과 삼아 해야 한다.

 

 

손철주,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기억은 실물을 덮어버린다. 풀은 초록색이라는 기억, 사람의 팔은 양쪽이 같다는 지식이나, 눈은 둘이요 코는 하나라는 정보 등은 그림의 진실을 수용하지 못하게 한다. 교양에 복종하지 않는 천진함, 대상의 고유한 진실을 파악하는 어린아이의 눈이 그림을 그림으로 보게 한다. 그림을 보되 겉모양만 보는 사람은 달을 가리켰으되 달을 쳐다보지 않고 손가락을 보는 사람과 같다.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귀중한 요소들은 현실보다는 예술과 기대속에서 더 쉽게 경험하게 된다. 기대감에 찬 상상력과 예술의 상상력은 생략과 압축을 감행한다. 이런 상상력은 따분한 시간들을 잘라내고, 우리 관심을 곧바로 핵심적인 순간으로 이끌고 간다. 이렇게 해서 굳이 거짓말을 하거나 꾸미지 않고도 삶에 생동감과 일관성을 부여하는데, 이것은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보푸라기로 가득한 현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기억은 단순화와 선택을 능란하게 구사한다는 점에서 기대와 흡사하다. 현재를 긴 영화에 비유한다면, 기억과 기대는 거기에서 핵심으로 꼽힐 만한 장면들을 선택한다.

 

 

박노해, <다른길>

집이란 이렇게 사고 파는 부동산 가치가 아니라

내 삶의 무늬를 새기며 오래될수록 아름다워지는

지상의 단 하나뿐인 기억과 소생의 장소이니.

 

 

조정래, <정글만리>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한다.' - 조지 산타야나

 

 

이현석, <여행자의 인문학>

에빙하우스의 '보유곡선'은 '망각곡선'....

'보유'와 '망각'의 골은 깊어 보인다. 하지만 그물을 볼 때 씨줄과 날줄을 보는 이도 있고, 그 사이의 공간을 보는 이도 있는 것처럼 그것은 같은 상황을 달리 받아들이고 해석한 것일 뿐이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기억하는 일(보유)은 누군가를 잊어가는 일(망각)인 셈이다. 그리움으로 치환된 기억. 어쩌면 우리는 그것을 '망각'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오르한 파묵, <내이름은 빨강>

안다는 것은 본 것을 기억하는 것이며, 본다는 것은 기억하지 않고도 아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란 무엇인가?> 인터뷰 중에서

기억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재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은 일종의 연료 역할을 하지요. 타오르면서 인간을 따뜻하게 해주거든요. 제 기억은 일종의 궤짝과 같아요. 그 궤짝에는 수없이 많은 서랍이 달려 있답니다. 어떤 서랍을 열면 고베에서 보낸 소년 시절의 광경이 떠올라요. 공기의 냄새도 맡을 수 있고, 땅도 만질 수 있고, 초록색 나무도 볼 수 있답니다. 그게 제가 책을 쓰고 싶어하는 이유지요.

 

 

도정일,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보르헤스의 천국과 도서관. 과거, 현재, 미래가 만나고 기억과 상상력이 용접되는 곳, 지적 모험의 땅, 돈도 비자도 필요 없는 여행지, 국경과 인종과 계급이 영원히 퇴각한 코즈모폴리턴의 세계, 거기가 도서관이다.

 

인간은 기억과 망각의 균형 속에서 그의 현재를 관리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이것이 기억과 망각의 변증법이다. 양자 균형이 깨질 때 인간은 기억의 노예가 되거나 유쾌한 망각의 바보가 된다. "잊지 마라"라는 기억 명령은 과거의 신성화와 신비화를 위한 명령일 때에는 죽음을 동반할 수 있다. 그러나 기억은 과거를 섬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봉사하기 위한 것이다. 망각도 그러하다. 비편력이 마비될 때 망각은 죽음의 책략이 된다. 그러나 기억과 마찬가지로 망각도 건강한 현재를 위해 필요하며, 이 경우에만 망각은 유용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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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보려고 찾다가 우연히 읽게 된 롤프 포츠의 <VAGABONDING, 여행의 기술>...

 

조화와 현재에 의미를 두는 삶의 가치와 단순하고 여유로운 삶을 통한 여행자, 순례자로서의 인생 여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본문 발췌]

 

vagabonding

  • vagabond -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로 라틴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
  • 질서 있는 세상을 떠나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시간을 연장해가며 여행하는 행위
  • 창의성, 모험, 깨달음, 단순함, 발견, 자립, 현실, 독립독행, 영적인 성장 등에 초점을 맞춰 개인적으로 의미있게 여행하는 방법... 독립성, 융통성, 협상력, 계획, 대담성, 자급자족, 즉흥적 대처 능력...
  • 여행의 자유를 만끽하게 해주는 계획적인 삶의 한 방식

 

 

불확실한 것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을 때 여행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돈과 삶을 결부시킬 때 우리는 자유를 사기엔 턱없이 가난하다는 확신이 더해질 뿐이다.

 

 

세상을 느긋하게 걸어보겠다는 마음가짐은 배거본딩에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그러나 배거본딩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삶에 대한 조망이다. 풍요와 가능성이 보장된 정보화 시대에서 배거본딩은 개인의 재산을 추구하기보다 선택 가능성을 폭넓게 찾아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배거본딩은 정상적인 삶에서 모험을 찾는 것이며, 모험 안에서 정상적인 삶을 찾는 것이다.

 

 

"삶의 최고 황금기를 보내버린다. 우리 삶에서 가장 가치 없는 시간에 의심쩍은 자유를 즐길 돈을 벌겠다면서 말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떠난다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계속 움직이는 것이다. 뭔가가 마음에 맞지 않기 때문에 방향을 바꾼 것이 아니다. 당신이 일상적인 틀에 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떠나는 것은 불만의 토로가 아니라 긍정적 선택이다. 인생의 여정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방향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직장이든 습관이든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쪽으로 계속 움직이기 위한 방향 전환이다. - 피코 아이어

 

 

우리 삶을 단순화시킬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은 확대를 중단하고,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어지러운 물건들을 줄이는 것이다.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의견을 좇아 살기란 어렵지 않다. 혼자 살면서 당신만의 결정에 따라 사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은 군중과 더불어 살면서도 고독이란 자존을 아름답게 지켜가는 사람이다. - 랠프 왈도 애머슨, <자존>

 

 

단순하게 살아갈 때 대담해질 수 있고, 낯선 땅과 가슴으로 만날 수 있다. 또한 당신의 열정과 호기심을 좇아 독립심을 가지고 새로운 길을 걷는 것을 허락하는 것도 바로 단순한 삶이다. 집에서나 길에서나 단순하라! 그래야 지금까지는 거의 무시되어 왔지만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 즉 당신의 삶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는 시간의 여유가 허락될 것이다.

 

 

단순한 삶을 통해서 소로는 진정한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는 "남아도는 부는 불필요한 것을 살 수 있을 뿐이다. 영혼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을 사는 데에는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역설했다.

 

 

전통적인 매체가 다양하고 폭넓은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정보들은 건전한 의미에서 의구심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그 이유는 많은 매체, 특히 텔레비전과 잡지는 당신의 관심을 끄는 데 주안점을 두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에 대한 균형 잡힌 분석은 뒷전이다. 뉴스는 전쟁과 재앙, 선거와 유명인사, 스포츠 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과 보통 장소는 화석화되어버린다. 달리 말하면 이 세상에 없는 존재처럼 비쳐진다.

 

 

훌륭한 여행자는 계획에 연연하지 않는다. 목적지에 닿는 것만이 여행의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서두르고 싶지 않다. 서두름! 20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좀먹는 독약이다. 무엇인가를 재촉하고 서두른다는 것은 그것에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다른 것에 눈을 돌리고 싶다는 뜻이다. - 로버트 M, 퍼시그, <선 그리고 오토바이 관리법>

 

 

배거본딩은 특정한 목적지나 목표가 없는 순례와 같다. 달리 말하면 어떤 답을 구하기 위한 탐색이 아니라 의문 자체를 소중히 하는 여행이다. 모호한 것을 포옹하고, 길에서 부딪치는 모든 것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여행이다. 실제로 분명한 일정과 목표를 갖고 길을 떠나면 기껏해야 일정에 맞춰 목표를 성취하는 기쁨밖에 누리지 못한다. 하지만 눈을 크게 뜨고 호기심만으로 길을 떠나면 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장소를 옮길 때마다 사방에서 손짓하는 유혹의 손길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 아니겠는가!

 

 

우리도 새로운 세계를 하찮은 편견의 눈으로 평가하는 경향을 띤다. 달리 말하면, 우리 눈앞에 펼쳐진 새로운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프리드리히 니체도 "어떤 조건에서나 우리 눈은 새롭고 일탈된 것을 포착하는 것보다 이미 익숙해진 것을 재생산하는 데 더 익숙하다. 또한 귀도 새로운 소리를 듣는 것을 힘겨워하고 고통스러워한다. 그래서 낯선 음악은 잘 듣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새로운 것을 발견했을 때 자신의 문화에 길들여진 시각으로 관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무런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여행의 참뜻이 목적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 있다면, 여행의 참뜻이 새로운 것을 향한 깨달음과 열린 자세를 갖는 데 있다면 매순간이 여행일 수 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4506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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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는 낭만적 이상이고, 현실은 서로의 불완전함을 보완하며 살아가는 것이겠지....

 

낭만적 연애중이면서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라 생각하는 연인이나, 결혼의 현실에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어줄 수 있는 알랭 드 보통의 현실 사랑 이야기....

 

 

[본문 발췌]

 

결혼: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

 

의사 전달을 잘하는 기본 요건은 자신의 성격 중 더 문제가 되거나 더 특이한 면이 있더라도 그 때문에 당황하지 않는 능력이다.

 

잘 들어주는 사람은 의사 전달을 잘 하는 사람 못지않게 드물거나 중요하다. 잘 들어주는 사람 역시 특별한 자신감이 그 비결이다. 어떤 확고한 가정에 심각한 도전이 될 수 있는 정보로 인해 경로를 이탈하거나 그 무게에 무너져 내리지 않을 수 있는 수용력 말이다. 잘 들어주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라면 마음속에 얼마간 담아둘 혼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이미 경험을 통해 모든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못 가진 것에 아파하기 보다는 가진 것을 소중히 한다면 좋겠다.

 

굴욕, 분노, 위협의 수준을 높여 개인의 발전을 앞당긴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꺾이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자아가 신랄한 모욕을 감당한 결과로 더 이성적이되거나 자신의 성격을 더 깊이 통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 성격의 고질적인 측면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 따뜻하게 접근한다기보다 우리의 천성을 야멸치고 분별없이 공격하는 것만 같은 제언에 맞닥뜨리면, 우리는 방어적이되고 과민해질 수밖에 없다.

 

성숙함이란 낭만적 사랑이 사랑을 주기보다는 찾기를, 사랑하기보다는 사랑받기를 추구하는 데 주로 초점을 맞춘 편협하고 다소 인색한 감정일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의미한다.

 

아이들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은 봉사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아이는 어른에게 사랑의 다른 측면을 가르쳐준다. 진정한 사랑은 까다롭고 불쾌한 행동 이면에 놓여 있을지 모르는 무언가를 최대한 관대하게 해석하려는 끊임없는 시도를 수반한다는 점이다. 부모는 울음, 발길질, 슬픔, 화가 진정 무엇 때문인지를 짐작해야 한다. 이 해석 활동의 두드러진 특징이자 평범한 성인들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해석 양상과 확연히 차별되는 점은 자애심이다. 부모는 아이가 기본적으로 선하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괴로워하고 아파할  수는 있겠지만, 단지 아이를 찌르고 있는 핀을 확인하고 제거해주면 아이는 즉시 타고난 천진함을 회복할 것이라고, 아이가 울 때 우리는 아이가 심술궂거나 자기 연민에 빠졌다고 비난하지 않고, 무엇이 불편하게 만드는지를 생각한다. 아이가 깨물 때 우리는 아이가 틀림없이 겁을 먹었거나 순간적으로 골이 났을 거라 생각한다. 또한 배고픔, 소화 장애, 수면 부족이 기분에 서서히 미칠 수 있는 영향도 잘 알아본다. 만일 이 본능을 성인들의 관계에 조금이라도 도입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친절한 사람이 되겠는가? 그렇다면 성인들의 관계에서도 심술궂음과 잔임함을 보아 넘기고 거의 항상 그 이면에 깔려 있는 두려움, 혼란, 피로를 감지해낼 수 있다. 인류를 사랑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이런 의미일 것이다.

 

아이는 비정상으로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행히 아직 아이의 상상 속에 그런 범주가 없다. 아이의 감정은 아직 무방비 상태이고, 현재로서는 창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이는 품격, 똑똑함, 남자다움의 개념, 즉 재능과 정신을 파멸로 이끄는 억제 요인들을 아직은 모른다.

 

어떤 관점에서는, 공상을 확실한 현실로 바꿀 수 있는 삶을 추구하는 대신에 판타지를 지어내야 하는 신세가 처량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판타지는 대개 다수의 모순된 소망으로부터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선의 결과물이다. 판타지가 존재하는 덕분에 하나의 현실을 파괴하지 않고 다른 현실에 거주할 수 있다. 판타지는 완전히 무책임하고 무섭도록 기이한 우리의 충동으로부터 우리가 아끼는 사람들을 모면시킨다. 판타지는 나름대로 인류의 성취이자 문명의 결실이며, 친절한 행동이다.

 

그런 변덕스러움을 배경에 놓자 외교적 기술, 즉 항상 생각한 대로 말하지 않고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 절제력이 얼마나 중요한지가 눈에 들어온다.

 

낭만주의 결혼관은 '알맞은' 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우리의 허다한 관심사와 가치관에 공감하는 사람을 찾는 것으로 인식된다. 장기적으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너무 다양하고 특이하다. 영구적인 조화는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파트너는 우연히 기적처럼 모든 취향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롭고 흔쾌하게 취향의 차이를 놓고 협의할 수 있는 사람이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096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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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모든 생물들은 태어난 지역에 따라 환경의 차이가 있고, 그 환경에서 생존하고 번성할 수 있도록 진화한다.

사람은 그러한 차이가 생존의 문제 뿐 아니라 삶의 질과 행복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종교적, 정치적 분쟁과 아픔이 있는 아프카니스탄 사람들의 삶과 방랑을 보여주는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들....

 

 

한동안, 뭘 해야 할지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나는 반세기가 넘게 술레이만을 보살폈습니다. 나의 하루하루는 그와의 교류와 그가 뭘 필요로 하느냐에 따라 정해졌습니다. 그런데 이제 모든 걸 자유롭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자, 그 자유가 환영처럼 느껴졌습니다. 내가 원했던 것이 대부분, 나한테서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인생에서 목적을 찾고 그걸 위해 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삶에 목적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은 삶을 살고 나서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이라는 것도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 나는 그걸 다 이뤘으니, 목적도 없어지고 어찌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 <그리고 산이 울렸다>

 

마르코스, 참 우스운 얘기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거꾸로 간다. 그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에 따라 산다고 생각하지. 그러나 정말로 그들을 끌고 가는 건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들이 원하지 않는 것이란 말이다. - <그리고 산이 울렸다>

 

"시간이란 마법과 같아. 생각하는 것만큼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 - <그리고 산이 울렸다>, 같은 이름 고모/조카 두명의 '파리'의 대화 중

 

 

자신과 당당하게 맞설 수 없는 사람은 어떤 것에도 당당하게  맞설 수 없다. - <연을 쫓는 아이>

 

인생은 계속된다. 시작과 끝, 행과 불행, 위기 혹은 카타르시스에 상관없이 인생은 계속된다. 먼지가 자욱한 유목민의 마차처럼 인생은 앞으로 느릿느릿 나아간다. - <연을 쫓는 아이>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233041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383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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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통신 기술은 정보 접근의 용이성, 미디어 콘텐츠를 통한 즐거움, 탐색과 편리함 등 많은 혜택으로 우리 스스로 많은 시간을 스크린에 몰두하게 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IoT, 5G 세상이 다가오며 우리 시간을 더 많이 내 줄 것으로 보인다. 시간을 내 준다는 것은 생각과 삶의 자유도를 잃는 것이다.

 

 

[본문 발췌]

 

컴퓨터 스크린이라는 유리감옥 안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우리 몸의 상당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자유롭게 되는 것은 아니다. 쇠약해질 뿐이다. 자동화로 인한 편리함의 대가는 '자율성'의 상실이다.

 

우리는 힘들지만 분명한 목표가 있고, 우리의 재능을 발휘하고 확장할 수 있게 해주는 일에 몰두할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낀다.

 

사람들이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서 문제를 해결할 때면 가끔 안심complacency과 편향bias이라는 두 가지 인지적 질환에 걸리곤 한다. 안심은 잠재적인 위험이나 결함을 모르고 지나치게 자동화된 시스템에 의존하는 경향을 말하고, 편향은 자동화를 맹신하는 경향을 뜻한다.

 

자동화는 우리를 행위자에서 관찰자로 전락시키는 경향이 있다.

 

템플릿과 공식들은 필연적으로 모든 것을 단순화하고 생각을 너무 쉽게 구속해버린다.

 

<뉴욕타임스>의 유명한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는 편리함의 대가는 '자율성'의 상실이라고 말했다.

 

컴퓨터의 무시무시한 생산성에는 대가가 따른다. 즉 키보드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늘어나지만, 생각하는 시간은 줄어든다. - 비톨트 립진스키Witold Rybcynski

 

 

프로그램들이 우리가 일하는 방식, 우리가 보는 정보, 우리가 여행하는 길, 우리와 타인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수록 그들은 사실상 우리를 원격으로 조정하게 된다.

 

 

추천 엔진들이 영화나 잠재적 애인 후보 중에 무엇을 제안하건 간에 우리에게 새롭고 예상치 못한 것을 추천하기보다는 우리의 기존 욕구에 맞춰서 추천해줄 뿐이다. 그들은 우리가 모험보다는 통상적으로 해오던 일을, 엉뚱한 행동보다는 예측 가능한 행동을 더 선호하리라고 가정한다.

 

 

자동화를 인간의 실수를 해결해주는 만병통치약으로 간주했을 때, 우리는 우리의 선택 가능성을 배제해버린다.

 

 

노동은 사색의 한 형식이자, 세상을 유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대면해서 바라보는 방법이다. 행동은 관점을 조정하지 않고, 우리를 사물 그 자체에 가깝게 데려다준다.

 

 

컴퓨터는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다. 사용하기도 아주 편리하다. 하지만 컴퓨터의 편의성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부주의하고 무비판적인 사람들에게 컴퓨터는 다른 보다 중요한 고려 사항들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컴퓨터의 조작 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더 깊숙이 파고들어 연구해야 한다. - 건축가 E. J. 미드

 

 

자동화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더 쉽게 얻을 수 있게 해주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아가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스스로 스크린의 피조물로 전락해버릴 때 우리는 슈쉬왑 부족처럼 존재론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우리의 본질이 여전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놓여 있는가, 아니면 우리는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것에 의해 정의되는 데 만족해하는가?"라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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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과 외로움은 가끔 비슷한 의미로 혼동할 때가 있다.

철학자 폴 틸리히는 "'외로움loneliness'은 '홀로 있는 괴로움'을 표현하기 위한 단어인 반면 '고독solitude'은 '홀로 있는 영광'을 표현하기 위한 단어"라고 말했다.

문요한 작가는 <여행하는 인간>에서는 "물론 둘 다 홀로 있는 것이지만 '고독(solitude)'이 스스로 관계에서 물러나 자신을 벗 삼고 있는 시간이라면 '외로움(loneliness)'은 다른 사람과 단절되고 자신도 의지가 되지 않는 공허의 시간이다. 여행은 자신과 함께하는 고독의 시간이다."라고 했다. 고독의 삶의 긍정적 과정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겠지.

 

우리는 홀로 걷는 산책, 혼자 떠다는 여행 등을 통해 긴 고독의 시간을 갖거나 샤워기 아래에서 짧은 고독의 시간을 음미하기도 한다. 생각이 필요할 때, 우리는 고독을 찾는다. 내면의 시간을 보낸다.

 

 

고독, 孤獨

1.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 고독을 느끼다

2.부모 없는 어린아이와 자식 없는 늙은이.

 

(네이버 영어사전) [명사] loneliness, solitude, [형용사] lonely, solitary, lonesome       

고독한 남자 a lonely[solitary] man

고독한 생활을 하다 lead[live] a lonely[solitary] life

고독한 생활을 하다 live in solitude

고독한 생활을 하다 live all alone

고독을 느끼다 feel lonely[alone]

고독에 빠지다 fall into loneliness

그들의 영광 뒤에는 많은 슬픔과 고독이 있다 Behind their glory lies much sorrow and loneliness.

 

 

 

[시, 글과 책 속에 쓰인 '고독'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

 

 

심보선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 「구름과 안개의 곡예사」 중에서

 

나는 그저 고독한 아크로바트일 뿐

굳이 유파를 들먹이자면

마음의 거리에 자우룩한 구름과 안개의 모양을 탐구하는 '흐린 날씨'파

고독이란 자고로 오직 자신에게만 아름다워 보이는 기괴함이기에

타인들의 칭송과 멸시와 무관심에 연연치 않는다

즐거움과 슬픔만이 나의 도덕

사랑과 고백은 나의 금물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결단코 침묵이다.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내가 혼자인 건 오로지 생각들로 조밀하게 채워진 고독 속에 살기 위해서다. 어찌 보면 나는 영원과 무한을 추구하는 돈키호테다.

 

 

문요한, <여행하는 인간>

여행은 본디 처음 출발한 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귀환을 목적으로 한다. 그렇기에 떠나는 길과 돌아오는 길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방랑자는 돌아갈 곳이 없거나 돌아갈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여행이 아니라 정처 없는 방랑을 한다. 여행자들은 홀로 떠난 여행 중에도 별로 외로워하지 않는다. 누군가와 심리적으로 연결돼 있으며 언제라도 여행을 끝내고 자신을 환영해 주는 누군가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고독의 시간을 즐긴다. 반면 방랑자들은 누군가와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 없으며, 여행이 끝나도 자신을 진심으로 환영해 줄 그 누군가 혹은 그 어딘가가 없다. 당연히 방랑자는 여행 중에도 종종 외로움의 고통에 시달린다. 다만 환경이 낯설고 다른 여행자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내면보다 외부로 의식이 옮겨 가기 때문에 외로움과 고통을 덜 느낄 뿐이다.

 

우리의 자아 경계는 여행을 할 때 느슨해진다. 여행은 자아 밖으로 우리를 이끌어 새로운 사람, 자연, 문화 등과의 연결을 만들어낸다. <체 게바라 어록>에는 왜 여행을 할 때 낯선 존재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게 되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낯선 존재에게 말을 거는 용기는 아마도 자연이 가르쳐준 것이리라. 자연의 존재들은 끊임없이 낯선 존재에게 말을 건넨다. 바람은 나뭇잎과 가지에게, 곤충은 꽃에게, 하늘은 땅에게, 모든 존재들은 나에게 말을 건넨다. 그런 자연에는 절대 고독이란 없다."

 

나는 지난 여행을 통해 고독과 외로움의 확연한 차이를 알게 되었다. 물론 둘 다 홀로 있는 것이지만 '고독(solitude)'이 스스로 관계에서 물러나 자신을 벗 삼고 있는 시간이라면 '외로움(loneliness)'은 다른 사람과 단절되고 자신도 의지가 되지 않는 공허의 시간이다. 여행은 자신과 함께하는 고독의 시간이다.

 

 

리칭즈, <여행의 속도>

도로 위의 여정은 인생의 축소판 같다. 길 위에서 사람은 누구나 혼자이고, 고독하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생각해 본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 싶으면 과감하게 돌아 나와 자신이 진정으로 원했던 곳으로 향해 계속 나아가야 한다.

 

항해는 낭만적이지만 고독한 여행 방법이다. 현대인들은 때로 고독을 원한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할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한다. 항해는 혼란스러움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안정시킨다. 그래서 현대인들에게는 한 번쯤 시도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여행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시대고독 - 박노해

 

한 시대의 악이

한 인물에 집중되어 있던 시절의 저항은

얼마나 괴롭고 행복한 시대였던가

 

한 시대의 악이

한 계급에 집약되어 있던 시절의 투쟁은

얼마나 힘겹고 다행인 시대였던가

 

고통의 뿌리가 환히 보여

선과 악이 자명하던 시절의 결단은

얼마나 슬프고 충만한 시대였던가

 

세계의 악이 공기처럼 떠다니는 시대

선악의 경계가 증발되어 버린 시대

더 나쁜 악과 덜 나쁜 악이 경쟁하는 시대

합법화된 민주화 시대의 저항은 얼마나 무기력한가

 

구조화된 삶의 고통이 전 지구에 걸쳐

정교한 시스템으로 일상에 연결되어 작동되는

이 ‘풍요로운 가난’의 시대에는

나 하나 지키는 것조차 얼마나 지난한 싸움인가

 

옳음도 거짓도 다수결로 작동되는 시대

진리는 누구의 말에서나 반짝이지만

그것을 살고 실천할 주체가 증발되어 버린 시대

혁명의 전위마저 씨가 말라가는

이 고독한 저항의 시대는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의 여행법>

인간은 나이가 들면 그만큼 자꾸만 고독해져 간다. 모두가 그렇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잘못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인생은 고독에 익숙해지기 위한 하나의 연속된 과정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희인, <여행의 문장들>

바다가 태양을 품으면 찬란함으로 가득하고, 낭만을 품으면 사랑으로 가득하고, 분노를 품으면 파괴로 가득하겠지만, 쓸쓸함을 품으면 얼마나 거대한 슬픔과 고독을 빚어내는지 알 것 같았다.

 

 

김화영, <행복의 충격>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경이, 공포, 그 철저하고 낭만적이지도 않은 고독감, 그 모두로 인하여 나의 영혼, 나의 몸속에 꺼지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는 청춘을 '이동하는 집'의 주민들은 포기해 버린다. 이동식 행복, 이동식 안락의 공간을 끌고 다니는 월급쟁이들이 나는 무서웠다. 카라반의 집단이 반드시 어느 날 내 청춘의 불덩어리를 서서히 눌러 끄고 그들의 관광, 그들의 바캉스, 그들의 안락을 유형무형으로 나에게, 우리들에게 강요할 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오쿠다 히데오, <남쪽으로 튀어>

지로, 전에도 말했지만 아버지를 따라하지 마라. 아버지는 약간 극단적이거든. 하지만 비겁한 어른은 되지 마. 제 이익으로만 살아가는 그런 사람은 되지 말라고. ...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철저히 싸워. 져도 좋으니까 싸워. 남하고 달라도 괜찮아.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해해주는 사람은 반드시 있어.

 

 

나카무라 요시후미, <다시, 집을 순례하다>

"인간이 자기 자신과의 대면이 가능한 때는 고독과 함께하는 때뿐입니다."

 

 

윌리엄 파워스, <속도에서 깊이로>

20세기의 철학자 폴 틸리히는 '외로움loneliness'은 '홀로 있는 괴로움'을 표현하기 위한 단어인 반면 '고독solitude'은 '홀로 있는 영광'을 표현하기 위한 단어라고 말했다. 나는 대학 시절 두 가지 상태를 모두 경험했지만 기억에 남는 대부분의 기억은 고독에 관한 것이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실감하게 되었다. 사회는 군중이 없는 개인은 무가치하며 모든 것이 군중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세뇌시킨다. 그리고 개인과 군중 사이의 장애물을 끊임없이 제거하고 있다.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나라의 시민들은 그러한 은밀한 메시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유에 따르는 책임은 무거운 법이며 책임이 무거울수록 순응에 대한 매력도 커진다. 이를 알아챈 광고업자들은 군중 속의 개인들이 가진 개인주의적 감정을 일깨워 제품을 파는 방법을 익혀 왔다. 그들은 콜라부터 자동차까지 모든 제품이 자기표현과 자유를 위한 수단이라고 홍보한다. 물론 현실은 그 반대다.

 

내 오두막에는 3개의 의자가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해, 다른 하나는 우정을 위해, 또 다른 하나는 세상을 위해서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당신은 내가 인류에게서 멀어짐으로써 내 자신을 빈곤하게 만든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고독 속에서 나만을 위한 실을 지어 번데기를 만들고, 그 번데기에서 빠져나와 더 나은 사회에 알맞은 더 완벽한 창조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전규태, <단테처럼 여행하기>

고독은 우리 마음의 고향이다. 정신분석학자 칼 융은 "자기 주변에 사람이 없기 때문에 고독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을 남에게 전할 수 없을 때, 또는 남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어떤 관점을 지니고 있을 때 고독해진다."고 했다. "이럴 때면 익숙했던 곳을 떠나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고독감이란 자기 사고방식이 주변 사람들과 다를 때, 남의 사고방식이 납득되지 않을 때 느끼는 감정이며, 그런 때는 그런 주변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여행이란, 정착사회의 번거로움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켜보려는 욕구의 발로다. 여행이란, 안전한 일상생활과 다른 이질적인 세계로, 긴장을 내내 수반한다. 예컨대 편리한 환경에서 불편한 환경으로, 넉넉한 생활에서 모자라는 삶으로 스스로를 옮겨보는 과정인 것이다. 여행이란, 안전할 수도 있고 호사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여행자는 늘 자유분방해야 하며, 고독한 인간성의 회복을 위해 나서야만 한다. 여행이란, 여행자에게 있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다. 자기 안의 '고독한 인간'을 만나는 즐거움이다. 스스로의 인생뿐 아니라 인류의 오랜 역사를 새삼스럽게 발견하는 놀라운 체험이다.

 

 

가오싱젠, <창작에 대하여>

고독은 차가운 정신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자기 자신을 깊이 성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며,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일을 개척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아이는 홀로 있을 때 어른이 되기 시작하고, 개인은 홀로 있을 때 성장한다."

 

아이는 고독감을 느끼며 어른이 되어갑니다. 개인은 고독 속에 있을 때 비로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고독감은 개인의 독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인격의 확립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개인의 고독감이 사회의 조건을 형성하는 데 꽤 많이 기여하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꼭 필요한 거리가 없으면 온종일 충돌이 일어납니다. 가정과 모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함께 있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관용과 양해가 필요한데, 관용과 양해는 각자의 마음속에 충분한 공간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고독은 개인의 자유에 필요한 최우선 조건입니다. 자유는 자유로운 사고에서 비롯되는데, 홀로 있을 때 비로소 자유로운 사고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옳고 그름, 찬성과 반대, 혁명과 반동, 진보와 보수, 정치적 올바름과 그릇됨이라는 이분법적 틀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선택을 할 때는 독립적인 사고의 여지를 남겨두고, 천천히 선택을 해도 됩니다. 특히 어떤 이념이나 사조, 유행, 열광이 밀려들 때는 고독만이 그 사람을 자유로울 수 있게 합니다.  미디어가 모든 시간을 장악해버린 이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누군가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자 한다면, 고독만이 그 사람을 지탱해줄 것입니다. 고독이 병통으로 흐르지만 않는다면 고독은 그 사람을 그 사람답게 하는데 꼭 필요합니다.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소리 지를 때 더 고통받는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불붙은 석탄을 던지는 사람은 자신부터 화상을 입는다. 내가 사람들에게 화를 내면서 깨닫는 것은 그러한 행동이 나를 주위 세상으로부터 더 고립시킨다는 것이다. 혹시 우리는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멀어진 관계 속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는 고독자가 아닐까.

 

 

김영하, <말하다>

잘 느끼자. 감성 근육을 키우자. 그리하여 함부로 침범당하지 않는 견고한 내면을 가진 고독한 개인들로서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가자.

 

 

E. F. 슈마허 외, <자발적 가난>

자신의 삶을 단순화한다면, 우주의 법칙은 덜 복잡하게 보일 것이고, 고독은 고독이 아니요, 가난도 가난이 아니며, 약점도 더 이상 약점이 아니게 될 것이다. 왜 우리는 이토록 서둘러 성공하려고 애쓰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이토록 필사적인가? 사람이 이웃들과 같이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은 그가 다른 북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는 뜻이다. 그만이 듣는 소리를 멈추게 하자. 얼마나 크든,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든간에.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코에케 류노스케, <생각 버리기 연습>

고독을 음미하고, 평온한 마음의 달콤함을 여유롭게 음미한다면, 홀로 자신의 마음과 대면해 보는 평온함을 알게 된다면, 이렇게 '고독'의 힘을 되찾아 상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면, 당신안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말이나 행동, 부정적인 감정은 모두 소멸될 것이다. 진리, 즉 마음의 인과법칙을 알게 되었다는 기분 좋음을 음미하면서. - <법구경> 205

 

고독한 자기 세계의 내면에 감추어진 문제를 직시하는 것은 당신 자신을 위한 것이다. 고독을 받아들이고 삭이지 않으면 세상을 공유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 결과 상대를 원하는 감정이 폭발하고, 더욱 외로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사람마다 각각의 우주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1대 1의 인간으로써 접하면 어떻게될까. 부부일지라도 부모와 자식 간이라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신선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실은 세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라고 깨끗하게 정리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세계는 다른 사람의 세계로 존중할 우 있고, 서로 독립된 현명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야마구치 슈,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자유는 견디기 어려운 고독과 통렬한 책임을 동반한다.  - 에리히 프롬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고독이 그녀에게 추억을 걸러주고, 살아가면서 그녀의 가슴에 쌓였던 추억의 쓰레기들 가운데 둔감해진 부분을 불살라주고, 나머지 추억, 즉 가장 고통스러운 추억을 순화시켜 주고, 확대시켜 주고, 영원하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정철, <한글자>

고孤, 사랑이 곁에 없으면 외로울 고. 고독. 사랑이 곁에 있으면 괴로울 고. 고통. 고독의 소원은 고통이 되는 것.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만유인력이란

서로를 끌어당기는 고독의 힘이다

 

우주는 일그러져 있다

따라서 모두는 서로를 원한다

- 다나카와 슌타로, <이십억 광년의 고독> 부분

 

기쁨은 노력하지 않아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지만, 그래서 아는 순간 바로 질투하고 시기할 수 있지만, 고통은 단 하나의 감각적 정보만 결여되어도 타인들은 그 고통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고독이란, 그것도 이십억 광년의 고독이란 우리가 고통으로는 서로 연대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기인할 것입니다. 재앙은 우리를 가장 외롭고 연약한 사람들로 만듭니다.

 

 

김연수, <소설가의 일>

여기서 몇 번이고 강조하고 싶은 것은, 글을 쓰기 전에 소설가는 생각하지 않고 감각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소설가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고독하다는 내용을 생각하고 소설을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소설가가 쓸 수 있는 건 스물아홉 살의 미혼녀가 그해 크리스마스 저녁에 떨어지는 눈송이를 혼자서 바라보는 이야기 같은 것이다. 물론 그 이야기를 쓴 뒤에 교정할 때는 지금까지 자신의 독서 경험과 인생 체험과 논리적 사고를 이용해서, 단어와 표현을 좀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고독하다는 쪽으로 바꿀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나중의 문제이고, 글을 쓰기 전에는 오로지 감각할 수 있는 것들로만 구성된 이야기뿐이다.

 

 

소노 아야코, <약간의 거리를 두다>

세상은 무책임하게도 겉모습만 그럴듯한 안정된 가정, 남들이 인정하는 영광된 자리를 차지해야 객관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며 개인에게 그와 같은 행복을 강요한다. 내가 알기로는 '객관적 행복' 이란 있을 수 없는 개념이다. 지식과 기준이 넘쳐나는 세월을 살아간다고는 하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은 행복의 개념을 만들어내는 힘은 각자에게 달리 주어졌다는 것이다. 이 고독한 길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마르셀 프루스트, <독서에 관하여>

책과 친구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지혜의 깊이가 아니라 우리가 그들과 소통하는 방법이다. 독서는 대화와는 다르게 혼자인 상태에서, 즉 고독한 상태에서 지적인 자극을 계속해서 즐기고 영혼이 활발히 활동하는 것을 유지시키게 한다면 대화는 그것을 즉각적으로 해산시키는 방법이다.

 

 

P. G. 해머튼, <지적 생활의 즐거움>

인생을 감동시키는 것은 사랑입니다. 내 마음을 사로잡고, 나를 어린아이처럼 들뜨게 만드는 것은 사랑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문명 속에서도 나는 사랑을 기다립니다. 지적 노동을 사랑하고, 그 노동에 뒤따르는 고통을 사랑하고, 고통의 아픔을 사랑하고, 고통의 아픔이 전해주는 진실을 사랑합니다. 사랑의 표현은 기다림이라고 말하겠습니다. 기다림은 고독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사랑은 그 고독을 기다리는 행위입니다. 기다리다 지쳐 거리를 헤매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황무지 같은 들판을 찾아가 자학하듯 울음을 터뜨리고 스스로 양심을 무너뜨리고, 또다시 기다리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아픔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고통과 기다림에 대한 인내인 것입니다. 고통을 치르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기다림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내가 나를 기다리지 못한다는 것은, 내가 나의 고통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고독을 좋아하는 인간이란 없어. 억지로 친구를 만들지 않을 뿐이지. 그런 짓을 해봐야 실망할 뿐이거든.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이 두 사람은  예술 활동으로나 이론 활동으로나 모든 면에서 적대적이다. 다빈치가 회화를 가장 높이 평가했다면, 미켈란젤로에게는 조각이야말로 예술중의 예술이었다. 다빈치가 아리스토텔레스를 읽고 과학적 관찰과 실험에 관심이 있었다면, 미켈란젤로는 신플라톤주의의 신비주의에 기울어져 있었다. 다빈치가 자신을 합리적 규칙에 따라 작업하는 과학자라고 생각했다면, 미켈란젤로는 영감에 따라 작업하는 고독한 천재로 의식하고 있었다.

 

 

롤프 포츠, <여행의 기술>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의견을 좇아 살기란 어렵지 않다. 혼자 살면서 당신만의 결정에 따라 사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은 군중과 더불어 살면서도 고독이란 자존을 아름답게 지켜가는 사람이다. - 랠프 왈도 애머슨, <자존>

 

확 트인 고독한 세계, 아무런 목적도 없는 세계, 도덕의 굴레라곤 없이 순전히 모험만이 숨쉬는 세계로 달아날 필요가 있다. 삶의 칼날을 더욱 바짝 세우고, 역경이 무엇인지 맛보며, 한순간이라도 필사적으로 아무것에 매몰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 조지 산타야나, <여행의 철학>

 

 

카트린 지타,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

대화가 인간의 지적 활동에 묘약인 것처럼 고독은 인간의 정신 활동에 묘약이다. - 에밀 시오랑

 

 

나루케 마코토, <교양고전>

리스먼은 <고독한 군중>에서 사회적 성격을 '전통 지향적', '내부 지향적', '타인 지향적'이라는 세 단계로 분류했다. 현대 사회는 타인 지향적 단계에 속하는데, 이는 출생률도 사망률도 저하된 고령화 사회로서, 사람들은 타인의 취미나 언동에 민감해져 항상 타인을 의식하면서 행동한다. 또 타인 지향적인 사람들은 정치적인 의견에는 흥미를 보이지만 적극적으로 정치에 관여하려 하지 않는다. 즉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경향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고독한 군중이란 바로 이러한 현대 대중사회 구성원의 특이한 성격 유형으로서 항상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그들로부터 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자유는 인간을 속박에서 구원하는 한편 고립과 무력감을 초래한다. 자유란 단순히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다. 사실은 '고독'과 표리일체의 개념인 것이다. 고정화된 생각도 정반대 방향에서 바라보면 새로운 생각이 탄생한다. 자유를 추구하면서도 한편으로 지배당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모순. '나는 자유로운 사회에서 살고 있다'라고 믿고 있더라도 실상 직장 또는 정치제도나 사회규범 등 각종 권위 시스템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시라토리 하루히코, <니체의 말>

진정한 자신을 찾기위해서 누군가를 바란다, 자신을 상대해 줄 친구를 절실히 바란다, 막연한 안도감을 찾아 누군가에게 의지한다. 왜 그런 것일까? 고독하기 때문이다. 왜 고독한 것일까?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순간적인 친구를 아무리 많이, 그리고 폭넓게 가졌다고 해도 고독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고 자신을 사랑할 수도 없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힘만으로 무엇인가에 온 노력을 쏟아야 한다. 자신의 다리로 높은 곳을 향해 걷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에는 분명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의 근육을 단련시키는 고통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정우, <개념: 뿌리들>

개념이라는 존재는 홀로는 존재하지 않고, 어떤 개념이 있으면 반드시 그 개념은 연쇄반응을 일으키면서 다른 개념들을 불러옵니다. 개념들에는 어떤 울림이 있는 것이죠. '소외'의 경우, 이 개념은 '고독'과도 연결되고, '군중'과도 연결되고, '현대'라는 시대와도 연결되지요. 개념들은 이런 식으로 마치 연쇄반응을 일으키듯이 이어집니다. 하나의 개념은 자체와 연관되는 다른 개념들의 갈래(계열)을 응축하고 있습니다.

 

 

알랭 드 보통, <불안>

시인 제라르 드 네르발은 재능과 기질 때문에 부르주아 세계에는 어울릴 수 없었던 그의 세대의 예민한 동지들의 경험을 이렇게 요약했다. "야망은 이 시대에 속한 것이 아니다. ... 자리와 명예를 쫓는 탐욕스러운 경주에 질려 우리는 정치 활동의 영역으로부터 멀어져 간다. 우리에게는 시인의 상아탑만 남았는데, 우리는 이곳으로 점점 더 높이 올라가 군중으로부터 고립된다. 그 높은 고도에서 우리는 마침내 고독의 순수한 공기를 숨쉰다. 우리는 전설의 황금 컵으로 망각을 마셨다. 우리는 시와 사랑에 취했다."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눈앞의 이득만을 내다보는 태도를 초월하여 원대한 그리고 서서히 발전하는 목표를 가질 때, 당신은 한 사람의 고독한 존재가 아니라, 인류를 문명생활로 이끌어 가는 행렬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인생관을 갖고 살아갈 때, 당신은 인생의 어떤 길을 걸어가든 깊은 행복을 느낄 것이다. 인간이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모든 시대의 위대한 것과 정신적인 교섭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한 개인의 죽음은 작은 사건에 불과하다.

 

 

고독하다는 것은 ㆍ 조병화

 

고독하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다

소망이 남아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다

삶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다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보아도

어린 시절의 마당보다 좁은

이 세상 인간의 자리

부질없는 자리

 

가리울 곳 없는

회오리 들판

 

아 고독하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요

소망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요

삶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다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임병희, <목수의 인문학>

함께하지 않고 나누지 않으면 쓸쓸해진다. 고독해진다.

 

 

장 그르니에, <섬>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 그것은 불가능한 일 -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하여 여행한다고 할 수 있다. ... 그런데 그 <자기 인식 reconnaissance>이란 반드시 여행의 종착역에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그 자기 인식이 이루어지고 나면 여행은 완성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통과해 가야 하는 저 엄청난 고독들 속에는 어떤 각별히 중요한 장소들과 순간들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 장소, 그 순간에 우리가 바라본 어떤 고장의 풍경은, 마치 위대한 음악가가 평범한 악기를 탄주하여 그 악기의 위력을 자기 자신에게 문자 그대로 <계시하여> 보이듯이, 우리들 영혼을 뒤흔들어놓는다.

 

 

최갑수,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레몽 드파르동의 사진들은 "무엇을 바라보려면 고독해야 한다"라는 것을 실감하게 해준다. 이 말은 오랫동안 대상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랫동안 생각해야 하며, 오랫동안 사랑해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오랫동안' 해야 비로소 완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완전한 것만이 고독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 마음에 드는 문장을 쓰지 못하고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은 내가 충분히 고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경철, <문명의 배꼽, 그리스>

삶은 좌절이나 권태가 아닌 고독한 투쟁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숙명지워진 존재가 아닌 온전히 실존하는 내가 된다는 뜻이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나는 걷는다>

꿈을 꾸고 고독을 느끼며, 느릿느릿 달팽이처럼 걸은 보람이 조금씩 나타났다. 보람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는 보람이라고 느꼈다. 지나쳐가는 풍경과 생각과 만남으로 이루어진 보람. 우리 사회를 뒤덮은 듯한 광기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긴박하게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나는 생각의 속도로 살기를 바랄 뿐이다. 걷기는 소위 문명화되었다고 하는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고 있는 죽음 - 사람들은 삶과 혼동하고 있다 - 의 달리기에 브레이크를 건다. 내가 느끼기에 우리 사회는 텔레비전이 내미는 일그러진 거울을 통해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떠나든 머물든>

지옥의 모든 것이 이 단어 속에 있다, 고독. - 빅토르 위고

 

 

스티브 도나휴,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

인생의 사막을 건너는 것은 고독과 외로움,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 사이에서 춤을 추는 것과 같다.

 

 

앙드레 말로, <인간의 조건>

남의 소리는 귀로 듣고, 자기 소리는 목구멍으로 듣는다. ... 그렇다. 자기 생명도 목구멍으로 듣는 것이다. 그렇지만 남의 생명은? 우선 무엇보다도 인간에게는 고독이 있다. 고독은 무수한 인간들의 배후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마치 희망과 증오로 충만된 활량한 도시를 뒤덮고 있는 이 깊은 밤의 배후에 커다란 원시의 밤이 존재하듯이...

 

 

류콴홍, <철학우화>

모든 사람에게 죽음은 자기 자신의 일일 뿐이며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고,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수도 없어요. 사람이 죽음을 이해하게 되면 스스로 사람들과 구별되어 자기 존재의 의미, 즉 고독의 존재를 진정으로 깨닫게 됩니다.

 

 

윤태호, <미생>

'꿈이 뭔가?', 뜻이 향하는 것. '지향'. 어떤 것을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게 되는 근거는 '지향'에 있다. 무엇인가가 되고 싶고 갖고 싶어 그것을 향하게 되고, 그러다 당장의 자신을 배반하는 선택을 하게 될 때도 있다. 지향하는 바를 위해 이렇게 저렇게 해도, 지향하는 대로 살기란 매우 어렵고, 지향하는 바를 성취했다 하더라도 회한과 깊은 고독에 빠진다. 지향은 곧 길이고, 그 길을 걸을 뿐인 누군가는 길의 끝에서 거울을 마주하게 된다. 그 거울에서 소박하게 만족한 미소를 띤 누군가가 서 있을 수도, 괴물이 되어 있는 자신을 만날 수도 있다.

 

 

파울로 코엘료, <아크라 문서>

고독 속에 놓일 때 마음이 무거워지는 사람들은 삶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우리는 늘 혼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사랑이 신의 영역이듯, 고독은 인간의 영역이다. 삶의 경이를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고독은 평화롭게 공존하는 개념이다.

 

 

스티브 디거, <잠들기 전에 읽는 긍정의 한줄>

최악의 고독은 스스로에게 편하지 못한 것이다. - 마크 트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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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교수가 들려주는 삶의 '의미', '행복', '가치', 그리고 '지혜'

 

 

[본문 발췌]

 

인생의 나이는 길이보다 의미와 내용에서 평가되는 것이다. 누가 오래 살았는가를 묻기보다는 무엇을 남겨주었는가를 묻는 것이 역사이다.

 

이기주의자는 사랑을 못한다. 사랑할 자격을 스스로 포기한다. 그래서 가정과 사회에서 외면당하거나 버림을 받는다.

 

나는 지금도 성공보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행복하며, 유명해지기보다는 사회에 기여하는 인생이 더 귀하다고 믿는다.

 

이기적인 경쟁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고, 선의의 경쟁은 성장과 발전을 초래하나, 사랑이 있는 경쟁은 행복을 더해준다고 믿는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는 약으로 치료하는 처음 단계가 있고, 주사를 쓰는 다음 단계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수술이다. 그것이 바로 대화, 토론, 투쟁의 순서에 해당한다. 이 수술의 단계는 역사적으로는 혁명의 단계인 것이다.

 

인간은 생명에 대한 지나친 욕심 때문에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느끼며 절망에 빠져 불행과 고통을 스스로 만들어간다. 자연의 섭리는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체적 기능이 끝나는 죽음에 대해 좀 더 이성적이고 운명적인 해석을 내려도 좋을 것 같다. ... 죽음을 예상하기 이전보다 죽음을 맞게 될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더욱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다짐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내 인생이 오래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아직 좀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인생 최고의 희망이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0882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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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교대(交代)

 

달은 여명에 쫓겨 

서산 너머로 갈 길 재촉하고, 

해는 동쪽하늘 붉게 물들이며 

새로운 아침을 점령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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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물체는 빛과 여백이 있기에 존재를 확인할 수 있고, 치우침에는 반대의 성질과 양상이 있기에 균형을 맞춰 세상이 돌아간다. 

 

힘들고 어려울 때, 앞이 깜깜하고 갈 방향이 보이지 않을 때 잠시 고요함 속에서 여유를 갖고 세상과 주변을 돌아보면, 그 사이 보지 못했던 것이 보이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떠오른다. 고요함 속에 주변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사이 반복적이고 비슷비슷했던 하루하루 일상에 새로운 경험과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본문 발췌]

 

마음이 고요해지면 예전에는 잘 몰랐던 것들이 밝아지면서 비로소 드러나게 됩니다. 내 안의 소망이라든지, 진정 꿈꾸는 삶의 방향이라든지, 추구하고 싶은 삶의 가치라든지, 혹은 오랫동안 눌러놓았던 감정이나 기억까지 되살아나 그것들로부터의 치유가 가능하게 됩니다. 또한 마음이 완전히 고요해지면 수행자들이 깨닫고 싶어 하는 자기 본성도 밝아지게 됩니다.

 

정말로 마음에 딱 드는 것이 아니라면 여유를 두고 좀 기다리세요. 기다리면서 열심히 찾다 보면 정말로 나에게 딱 맞는 사람, 딱 맞는 일, 딱 맞는 물건이 어느 순간 나타납니다.

 

자기 삶을 이끄는 가치가 무엇인지, 무엇을 했을 때 자유롭고 행복한지, 어떤 일을 하면 보람을 느끼는지 스스로 인지하고 삶을 선택해 나가야 하는데 인지를 못할뿐더러 그 선택을 자신이 하려 하지 않고 타인에게 묻거나,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며 따라 하려고 한다. 더욱이 '남의 나'의 힘이 강할수록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가 아닌 타인을 통해서 세우려고 한다. 아버지의 아들로, 누군가의 아내나 남편으로, 아이들의 부모로 자신의 정체성을 삼는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타인에게 자신의 행복을 의탁하게 된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가 못하는가에 따라, 혹은 배우자가 승진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내 인생의 행복이 결정된다. 자기를 위한 사람을 제대로 살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희생적이면서도 의존적이 되기 쉽다. 게다가 아이나 배우자, 부모와의 경계선이 모호해져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함부로 넘으며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간섭하고 간섭당하며 다툼을 반복하게 된다.

 

행복을 소유의 개념이 아닌 감상의 개념으로 본다면 소유할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 친구와의 우정, 내 아이의 웃음소리, 음악이 선물하는 평온함, 내가 응원하는 스포츠팀 우승이 다 행복으로 다가옵니다. 아무리 돈 많은 부자라 하더라도 그들의 행복 역시 우리가 말하는 소확행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삶을 감상할 줄 아는 태도를 갖추었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세상을 사랑할 수는 있어도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집이나 차, 옷 같은 것도 아주 잠깐 빌려 쓰는 것이지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세상을 그저 사랑하고 감사해하며 잠시지만 누리세요.

 

내가 지금 가지지 못한 것에 집중하면 인생은 결핍이 되지만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집중하면 인생은 감사함이 됩니다.

 

복잡함 속에서도 단순한 것을 보는 것이 지혜입니다. 단순한 것이지만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 것이 예술입니다.

 

우리의 괴로움은 주어진 현실이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고 그 현실에 대한 내 마음의 해석이 가져옵니다. 똑같은 상황인데도 내 마음의 해석에 따라 괜찮을 수도 있고 엄청난 마음의 상처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되도록이면 긍정적으로 해석해보세요.

 

외로움의 정체는 혼자라는 외적 상황보다 혼자여서 문제라는 내면의 생각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결국 상황이 아닌, 그 상황을 해석하는 우리의 방식이 우리를 괴롭혔던 것이다.

 

마음이 괴로울 때, 그 괴로움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나 관찰해보세요. 그러면 그것이 내 생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은 원래 물 위에 쓴 글씨처럼 잠시 모양을 드러냈다가 자국을 남기지 않고 곧 사라집니다. 이내 사라질 생각을 붙잡고 되새김질하면서 괴로워하지 마세요.

 

텅 빈 큰 공간에 의자가 하나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보통 모양 있는 의자만 의식하고 모양 없는 텅 빈 큰 공간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의자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텅 빈 공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마음이라는 텅 빈 공간 안에 한 생각이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생각만 의식하고 생각의 존재를 가능하게 했던 그 텅 빈 마음 공간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본성을 깨닫는다는 것은 나쁜 생각을 좋은 생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고 생각이 생겼다 사라지는 텅 비고 고요한 마음 공간을 의식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254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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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발'을 포털에 검색해보면, 
중세 유럽교회에서는 삭발이 성직자와 세속인을 구별하는 기준이었으며, 사제가 세속적인 죄를 범하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고 하며 불교의 출가 수행자가 머리를 깎는 것도 비슷한데, 다른 종교의 출가 수행자와 모습을 다르게 하기 위함과 세속적 번뇌를 단절함을 뜻한다고 한다.

 

고등학교시절, 스포츠머리로 짧게 자르는게 학교의 규정이었고 선생님이나 선도부원들이 두발검사를 하곤 했다.
가끔 반항의 의미인지, 뭔가 튀어보겠다는 것인지 아예 삭발을 하고 오는 친구들이 있었고, 경쟁하듯 깨끗하게 면도까지 하는 녀석, 심지어 반에 한명이 삭발을 하니 10여명 넘게 따라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박지원 의원은 “국회의원(이) 하지 말아야 할 3대 쇼. 1.의원직 사퇴 2.삭발 3.단식.”라고 하며 그 이유로 “사퇴한 의원이 없고, 머리는 자라고, 굶어 죽은 사람이 없다”는 점을 꼽았다.

 

지금 머리를 깎으시는 그 분들은 종교에 귀의를 하시려는지? 치기어린 반항인가? 튀는 행동으로 주목을 받겠다는 쇼일까?

 

그 분들께 한 마디 드리고 싶다. "삭발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정말 해야 할 일이 무수히 많은데 자신의 본분과 역할에 맞는 일 좀 하세요. 밥값 좀 하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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