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함 대신 우리의 주체성을 내주고 사회의 도구가 되어 가는 건 아닌지, 편리함에 속아 우리 삶이 통채로 누군가에게 감시당하는 건 아닌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본문 발췌]
경제 성장은 지구의 생태계를 구하지는 못할 것이다. 오히려 정반대로 경제 성장이야말로 생태학적 위기의 원인이다. 경제 성장은 기술적 파괴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경제 성장 자체가 점점 위력을 더해가는 파괴적 기술의 발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AI가 보유한 비인간 능력 중에 특별히 중요한 두 가지는 연결성과 업데이트 가능성이다.
사회 안전망 없이 쥐꼬리만한 경제적 평등만 가지고서는 자유도 의미가 없다. 하지만 빅데이터 알고리즘은 자유를 없앨 수 있는 것과 같이 유례없는 최고의 불평등 사회를 만들 수도 있다. 모든 부와 권력은 극소수 엘리트의 손에 집중되는 반면, 대다수 사람들은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나쁜 처지에 놓일 수 있다. 바로 사회와의 관련성을 잃는 것이다.
데이터를 손에 넣기 위한 경주는 이미 시작됐다. 선두 주자는 구글과 페이스북, 바이두, 텐센트 같은 데이터 거인들이다. 지금까지 이 거인들의 다수가 채택해온 사업 모델은 '주의 장사꾼'처럼 보인다. 무료 정보와 서비스, 오락물을 제공해 우리의 주의를 끈 다음 그것을 광고주들에게 되판다. 하지만 데이터 거인들이 추구하는 목표는 이전의 그 어떤 주의 장사꾼들보다 훨씬 높다. 이들의 진짜 사업은 결코 광고를 파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주의를 사로잡아 우리에 관한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모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그 어떤 광고 수익보다 훨씬 가치가 크다. 그러니까 우리는 고객이 아니라 그들의 생산품인 것이다.
인간 개인이 세상에 관해 아는 것은 창피할 정도로 적다. 더욱이 역사가 진행돼가면서 개인이 아는 것은 점점 더 줄어들게 되었다. 석기시대의 수렵 채집인은 자기 옷을 만들고 불을 붙이고 토끼를 사냥하고 사자를 피하는 법을 알았다. 오늘날 우리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개인의 차원에서 보면 실제로 우리가 아는 것은 훨씬 적다.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 거의 전부를 다른 사람의 전문성에 의존해서 얻는다.
진심으로 진실을 바란다면 권력의 블랙홀을 피하고, 중심에서 떨어진 주변부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며 오랜 시간을 허비할 수 있어야 한다. 혁명적인 지식은 권력의 중심에서 출현하는 경우가 드물다. 왜냐하면 중심은 언제나 존재하는 지식을 토대로 구축되기 때문이다. 구질서의 수호자가 권력의 중심에 다가올 수 있는 자를 결정하는데, 이때 전통에서 벗어난 파괴적인 사상을 가진 자는 걸러내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쓸데없는 지식도 걸러낸다.
21세기의 우리 주변은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로 넘쳐난다. 이런 세상에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전수해야 할 교육 내용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은 바로 '더 많은 정보'다. 정보는 이미 학생들에게 차고 넘친다.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이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의 차이를 식별하는 능력이며, 무엇보다 수많은 정보 조각들을 조합해서 세상에 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the greatest happiness of the greatest number
[시, 글과 책 속에 쓰인 '행복'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
행복 - 나태주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이희인, <여행자의 독서>
아직 읽지 않은 책, 아직 가지 않은 여행을 향한 마음이 간절할 때, 어쩌면 그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인지도 모른다.
최갑수,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아이야, 행복이라는 건 인간의 수만큼 많단다. 다른 이의 행복을 부러워하지 말거라. 너에게는 네게 꼭 맞는 행복이 있을테니까.
김홍신, <인생사용설명서>
소유하려는 욕구보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남보다 많이 갖지 않아도 비교하지 않습니다. 온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신이 더없이 존귀하기에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그래서 소박하게 살면서도 만족하고 행복해합니다.
웃으며 즐겁게 사는 사람은 참으로 멋스럽고, 소박하게 사는 사람은 진정 건강하며, 나누며 사는 사람은 덕을 짓는 자이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겸손하여 복을 받고, 희망을 갖는 사람은 참으로 자유로우며, 재미있게 일하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사람은 아름답게 성공한 자이며, 보람 있게 사는 사람은 진정 행복한 자입니다. 희망은 결국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자 가장 사람다운 징표입니다.
최인철, <굿 라이프, 내 삶을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행복한 삶이란 가슴에 관심 있는 것 하나쯤 담고 사는 삶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많은 사람이 건강하고 가족이 화목한 것, 돈을 많이 버는 것, 좋은 사람과 결혼하는 것 등과 같은 행복의 조건들만을 이야기하고, 정작 행복 경험 자체의 본질은 언급하지 않는 이유도 幸福이라는 단어 자체가 행복의 조건만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한 삶을 위한 첫걸음은 행복의 조건과 행복 자체를 구분하는 것이다. 행복에 관해 대화를 나눌 때, 누군가는 행복의 조건(幸福)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행복 경험 자체(快足)를 이야기하고 있다면 대화의 접점을 찾기 어렵다. 행복의 조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幸福이라는 한자의 의미를, 행복 경험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快足이라는 한자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심리학자 이선 맥머핸(Ethan McMahan)에 따르면 사람들은 행복의 본질을 다음 네 가지 차원에서 파악한다. 1)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 2) 부정적인 경험을 하지 않는 것, 3) 타인의 웰빙에 기여하는 것, 4) 자신이 성장하는 것
행복을 위한 11가지 활동 : 1) 명상하기, 2) 운동하기, 3) 친절 베풀기, 4) 자신에게 중요한 목표 추구하기, 5) 감사 표현하기, 6) 낙관적 마음 갖기, 7) 삶의 즐거움을 만끽하기, 8)행복한 사람처럼 행동하기, 9) 지금 이 순간을 음미하기, 10) 스트레스를 이기는 효과적 전략들을 사용하기, 11) 타인과 비교하지 않기
행복한 사람은 돈으로 경험을 사서 삶의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낸다. 그들은 장식거리보다는 이야깃거리가 우리를 훨씬 더 행복하게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부의 증가는 행복을 살 수 있는 기회와 자원을 대폭 늘려주었지만, 동시에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의 결핍을 가져왔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채움으로 채우려고 하지만, 행복한 사람은 비움으로 채우려고 한다. 시간과 돈의 여유가 없어서 나누어줄 수 없다고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하소연할 때, 행복한 사람은 나누지 않으면 시간과 돈의 여유는 갈수록 없어진다는 믿음으로 나눔을 실천한다.
경험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지금 현재의 만족과 기분을 추구한다는 것이고, 기억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삶 전체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한다는 뜻이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자기가 누구인지를 드러낸다고 느낄때, 인간은 의미를 경험한다. 일이 잘되면 기분이 좋지만, 그 일이 자기다운 일이면 의미가 경험된다. 우리가 성공, 성취, 효용, 효율 등 무엇을 이루는 것에만 집착하게 되면 순간적인 기분의 행복을 누릴지는 모르지만, 의미 있는 삶을 경험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의미 있는 삶이란 자기다움의 삶이다.
아베 히로시, 노부오카 료스케, <우리는 섬에서 미래를 보았다>
인간 전체의 거대한 행복도 결국은 매일 매일의 작은 행복을 느끼는 마음의 집합체다.
알랭 드 보통, <행복의 건축>
아름다움은 행복의 약속이다. 행복을 바라보는 관점만큼이나 아름다움의 양식도 다양하다. - 스탕달.
정재승, <열두 발자국>
행복은 예측할 수 없을 때 더 크게 다가오고, 불행은 예측할 수 없을 때 감당할 만하다.
혜민 스님,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행복의 요소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 바로 '삶의 주도성이 내게 있는가?' 하는 점이다. 즉 지금 하는 일을 남이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해서 할 때 사람은 행복하다고 느낀다.
자기 삶을 이끄는 가치가 무엇인지, 무엇을 했을 때 자유롭고 행복한지, 어떤 일을 하면 보람을 느끼는지 스스로 인지하고 삶을 선택해 나가야 하는데 인지를 못할뿐더러 그 선택을 자신이 하려 하지 않고 타인에게 묻거나,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며 따라 하려고 한다. 더욱이 '남의 나'의 힘이 강할수록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가 아닌 타인을 통해서 세우려고 한다. 아버지의 아들로, 누군가의 아내나 남편으로, 아이들의 부모로 자신의 정체성을 삼는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타인에게 자신의 행복을 의탁하게 된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가 못하는가에 따라, 혹은 배우자가 승진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내 인생의 행복이 결정된다. 자기를 위한 사람을 제대로 살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희생적이면서도 의존적이 되기 쉽다. 게다가 아이나 배우자, 부모와의 경계선이 모호해져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함부로 넘으며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간섭하고 간섭당하며 다툼을 반복하게 된다.
우리는 늘 행복할 수는 없지만 순간순간 행복했던 기억의 힘으로 살아간다.
행복을 소유의 개념이 아닌 감상의 개념으로 본다면 소유할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 친구와의 우정, 내 아이의 웃음소리, 음악이 선물하는 평온함, 내가 응원하는 스포츠팀 우승이 다 행복으로 다가옵니다. 아무리 돈 많은 부자라 하더라도 그들의 행복 역시 우리가 말하는 소확행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삶을 감상할 줄 아는 태도를 갖추었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 마음은 변화에 민감해서 긍정적인 새로움을 경험할 때 행복해합니다.
행복이나 여유, 평화로움은 계속해서 뭔가를 구하는 마음이 쉴 때 비로소 경험하게 된다
E. F. 슈마허 외, <자발적 가난>
왜냐하면 부란 물질과 재산, 그리고 돈의 소유를 말하지만 행복이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불확실한 삶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복 받은 사람이 반드시 부자일 필요가 없으며, 부자들이 불행한 삶을 영위하는 것 또한 드문 일은 아니다.
필요하지 않은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던 그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필요로하는 사람보다 행복하다.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니 최고의 사람인 것이다. - 에크하르트
발걸음이 가벼울수록 여행도 가볍듯, 삶의 여정에서 가난함으로 필요를 줄인 사람은 더 행복하고, 부의 무게 아래 신음하지 않는다. - 미누시우스 펠릭스
E. F. 슈마허, <작은 것이 아름답다>
경쟁과 속도전에서 벗어나, 인간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 자그마한 규모를 유지할 때 비로소 쾌적한 자연 환경과 인간의 행복이 공존하는 경제구조가 확보될 수 있다
정철, <불법사전>
행복
위를 한 번 볼 때 아래를 두 번 보는 것. 즉 욕심을 절반으로 덜어내는 것. 뒤를 한 번 볼 때 앞을 두 번 보는 것. 즉 미련을 절반으로 덜어내는 것.
(동의어) 항복, 남들이 만들어놓은 행복의 까달운 기준을 따라가려고 아등바등 하지 않고 씩 웃으며 두 손을 들어버리는 것.
불행은 인생이 딱 한 번뿐이라는 것. 다행은 한 번 뿐인 인생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
행복을 파는 가게. 행복을 파는 가게에 들어가서 지갑을 열고 돈을 꺼내며 행복 만 원어치만 주세요 라고 말하면 아무 대답이 없을 것이다. 행복을 파는 가게는 돈과 행복을 교환하는 곳이 아니니까. 지갑 대신 가슴을 열고, 돈 대신 사랑을 꺼내줘야 한다. 주는 사랑에 인색한 사람은 행복을 포기한 사람과 다름없다.
오늘의 행복지수. 오늘 손잡은 사람의 수에 오늘 웃은 횟수를 더한 것. 행복지수가 1인 사람부터 행복한 사람에 속한다. 0이 아니면 오늘도 행복한 표정으로 잠자리에 들어도 좋다.
손해, 남보다 조금 덜 갖는 것. 남보다 조금 더 움직이는 것. 덜 가지면 마음이 가벼워져서 행복하고, 더 움직이면 몸이 가벼워져서 행복하고, 결국 남을 행복하게 해주려다 내가 더 행복해지는 것.
큰 기적은 행운이지만 작은 기적은 행복이다.
정철, <한글자>
천천히 가야 가는 길 곳곳에 놓인 행복이 보인다. 행복은 도달이나 도착이 아니라 도약과 도전을 즐기는 것이다.
덤, 행복은 땀이고 행운은 덤이다. 인생은 내가 땀 흘린 만큼 행복을 건네준다. 행복을 건네줄 때 행운도 조금씩 챙겨 준다. 그러니까 내가 땀 흘려야지! 하고 마음만 먹으면 행복은 물론 행운까지 덤으로 받을 수 있다. 단, 땀보다 큰 덤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건 상도에도 맞지 않고, 인생도 그런 밑지는 거래는 안 한다.
알랭 드 보통, <불안>
"시도가 없으면 실패도 없고, 실패가 없으면 수모도 없다. 따라서 이 세계에서 자존심은 전적으로 자신이 무엇이 되도록 또 무슨 일을 하도록 스스로를 밀어붙이느냐에 달려 있다. 이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자기 자신의 잠재력에 대한 실제 성취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 자존심 = 이룬것 / 내세운것", 윌리엄 제임스의 방정식은 우리의 기대 수준이 높아지면 수모를 당할 위험도 높아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무엇을 정상이라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행복이 결정된다. ... 이 방정식은 우리의 자존심을 높일 수 있는 두 가지 방법도 암시한다. 하나는 더 많은 성취를 거두기 위해 노력하는 거이고, 또 하나는 성취하고 싶은 일의 수를 줄이는 것이다. ... "요구를 버리는 것은 그것을 충족시키는 것만큼이나 행복하고 마음 편한 일이다."
우리는 적은 것을 기대하면 적은 것으로 행복할 수도 있다. 반면 모든 것을 기대하도록 학습을 받으면 많은 것을 가지고도 비참할 수 있다. ... 우리는 조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 대가는 우리가 현재의 모습과 달라질 수 있는데도 실제로는 달라지지 못하는 데서 오는 끊임없는 불안이다.
행복한 삶을 영위하려면 고용주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자신을 위해,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일해야 한다. - 볼턴 홀, <3에이커와 자유>
이 세상에서 부유한 사람은 상인이나 지주가 아니라, 밤에 별 밑에서 강렬한 경이감을 맛보거나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해석하고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 러스킨은 말한다. "삶, 즉 사랑의 힘, 기쁨의 힘, 감탄의 힘을 모두 포함하는 삶 외에 다른 부는 없다. 고귀하고 행복한 인간을 가장 많이 길러내는 나라가 가장 부유하다. 자신의 삶의 기능들을 최대한 완벽하게 다듬어 자신의 삶에, 나아가 자신의 소유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도움이 되는 영향력을 가장 광범위하게 발휘하는 그런 사람이 가장 부유하다.
"대부분의 사치품, 그리고 이른바 생활에 편리한 물건들은 필요불가결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인류의 향상에 장애가 된다." 소로는 그렇게 쓰고 난 뒤에, 물질을 소유하는 것과 존경할 만한 사람이 되는 것을 연결시키는 사회적 태도를 뒤집고자 이렇게 덧붙인다. "사람은 없이 살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행복해진다." ... "영혼에 필요한 것을 사는 데 돈은 필요하지 않다." - 헨리 소로
유시민, <유럽 도시 기행>
행복을 느끼는 데는 결핍이 필요하다.
이기주, <한때 소중했던 것들>
세상엔 추한 것과 아름다운 것이 뒤섞여 있다. 그 뒤섞임과 혼란 속에서 나만의 시각으로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고 건져올릴 때 삶은 풍요로워진다고 믿는다. 우린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느낄 수 있을 때 행복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나는 행복을 경직된 것에서 찾지 않네. / 전율은 인류에게 주어진 최고의 것일세. / 세상이 전율의 감정을 자주 베풀지 않을지라도, / 인간은 감동해야만 엄청난 것을 깊이 느끼는 법일세.
롤프 포츠, <Vagabonding, 여행의 기술>
물질적 풍요가 곧 부자는 아니다! 이런 생각은 사회가 형성된 이후로 줄곧 인간의 정신에 깃들어 있었다. 힌두교의 경전 <우피니사드>는 "물질의 소유라는 사슬이 인간을 옭아매고 인간을 짓누른다"고 경고하고, 성경은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넉넉한 돈을 갖지 못하리라"고 가르친다. 예수는 "온 세상을 얻었더라도 네 자신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겠느냐!"라고 말했다. 부처도 "물질적 욕망을 채움으로써 행복을 구하는 것은 바나나 나무에 망고가 열리지 않는다고 슬퍼하는 것만큼이나 덧없는 짓이다"라고 지적했다. 수천년 전부터 이런 경고가 있었지만 여유 있게 사는 것보다는 부자가 되어야 하고, 잘 사는 것보다는 출세하고 성공해야 한다는 사회적 강박관념은 여전히 존재한다. 나쁘게 말하면 모두가 이런 광기에 매몰되어 있다.
알랭 드 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완벽한 행복은 아마 한 번에 5분이 채 넘지 않을, 작고 점진적인 단위들로만 찾아온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이 순간은 두 손으로 붙잡아 소중히 간직해야 할 행복이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콜레라 시대의 사랑>
훌륭한 결혼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 안정이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괴테 청춘에 답하다>
괴테는 "행복을 원한다면 전체의 행복을 위해 일해야만 한다"라는 시각을 비판했다. "행복은 우선 자신의 주변에서부터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전체가 행복해질 것이다."
한동일, <라틴어 수업>
'베아티투도beatitudo'라는 라틴어가 있습니다. '행복'을 뜻하는 단어인데 '베오beo'라는 동사와 '아티투도attitudo'라는 명사의 합성어입니다. 여기에서 '베오'는 '복되게 하다, 행복하게 하다'라는 의미이고 '아티투도'는 '태도나 자세, 마음가짐'을 의미합니다. 즉 '베아티투도'라는 단어는 '태도나 마음가짐에 따라 복을 가져올 수 있다'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불행이 내일의 행복을 보장할지 장담할 순 없지만 오늘을 행복하게 산 사람이 내일이 불행하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카르페 디엠, 오늘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야마구치 슈, <철하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우리의 목적은 즐겁게, 나다운 인생을 살면서 행복해지는 것이다.
헬렌 니어링,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건강을 위한 우리의 간소한 식사법은 이렇습니다. 음식은 신선해야하고, 유기농법으로 거둔 생산물로 가공되지 않은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가공한 음식을 피합니다. 당신의 식사법이 이런 방식에 가까울수록 소화기관과 건강에 좋습니다. 마찬가지로 두 사람의 사려깊은 철학자가, 장수하면서 행복하게 살기 위한 필요 조건으로 이런 조언을 주었습니다. 임어당은 <생활의 발견>에서 '행복은 대체로 장의 운동이 어떠냐에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버틀란트 러셀은 자서전에서 건강과 장수에 대해 말하면서 '하루에 두 번씩 빠짐없이 일정한 시간에 똥을 눈 것이 내 행복에 도움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앨버트 허바드가 한 말을 덧붙입니다. '당신이 건강하다면 아마도 행복할 것이고, 그러면 당신이 원하는 것 모두를 가지지는 못했더라도 당신에게 필요한 모든 부를 가진 것이다.' 우리가 건강과 장수를 위해 실천에 옮긴 몇몇 지침을 소개합니다. 적극성, 밝은 쪽으로 생각하기, 깨끗한 양심, 바깥 일과 깊은 호흡, 금연, 커피와 차를 포함해 술이나 마약을 멀리함, 간소한 식사, 채식주의, 설탕과 소금을 멀리함, 저칼로리와 저지방, 되도록 가공하지 않은 음식물, 이것들은 삶에 활력을 주고 수명을 연장시킬 것입니다. 약, 의사, 병원을 멀리하십시오."
유발 하라리 외, <초예측>
인간은 풍요로워졌으나 행복해졌다고 할 수 없다.
김용규, <생각의 시대>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몸이 건강하고, 정신이 지혜롭고, 성품이 순수한 사람"
김영하, <여행의 이유>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행운에 속지마라>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대개 만족을 추구하는 유형. 인생에서 원하는 바를 미리 정해놓았고, 만족을 얻는 순간 멈출줄 안다. 목표를 달성해도 욕망을 계속 키워나가지 않는다. 최대화를 추구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수준을 높이려고 하기 때문에 불행한것인지, 아니면 불행한 사람이 최대화를 추구하는 것인지 인과관계도 분명치 않다.
야노 가즈오, <데이터의 보이지 않는 손>
행복한 사람은 창의성, 업무 실적, 소득 수준, 결혼 성공률 등이 높고 사교적이며 건강하고 장수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정량적 수치로 나타내면 행복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생산성이 평균 37%, 창의성이 300%나 높다. 중요한 점은 일을 잘하는 사람이 성공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일을 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행복 수준은 성공 여부에 상관없이 오늘의 사소한 행동만으로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행복 수준을 끌어올린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공 확률은 한층 높아진다. 행복한 사람은 창의적인 사고로 생산적인 일을 즐기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누리며, 건강과 장수를 얻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행복이란 사람마다 고유하고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위의 실험에서 드러난 것은 '행복한 사람은 신체를 잘 움직인다'는 단순하고 공통된 사실이다. 물론 하는 일이 다르면 그에 따라 움직이는 양도 달라진다. 그러나 같은 사람인 경우 행복 수준이 높으면 움직이는 빈도가 더욱 늘어난다는 것은 의외의 발견이다. 일의 조건이 다른 사람끼리 비교해서 움직이는 양의 많고 적음에 따라 어느 쪽이 행복한지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렇지만 행복할수록 움직임이 더 많아지나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행복이 적극적인 행동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내용과도 부합한다.
실뱅 다르니, 마튜 르 루, <세상을 바꾸는 대안기업가 80인>
생산자가 행복하면 더 맛있는 농산물이 생산되고, 소비자와 시장은 그런 농산물을 선호하게 되어 있다.
이 '대안 기업가'들은 강한 윤리의식을 갖고 있으며, 인간 저마다의 능력이 긍정적 변화의 원동력이 된다는 데 근본적인 믿음을 갖고 있다. 그들은 특히, 자신들의 가치체계에 맞추어 일상의 활동을 영위할 수 있다는 데 무한한 행복을 느낀다. 그들은 부의 창출과 인본주의를, 그리고 생산 활동과 생태적 책임감을 결합시킬 수 있는 대안적 해결방법을 모색하느느 데 큰 의미를 둔다. 그들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데 만족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그 세계를 건설하는 데 참여한다.
김형석, <백년이 고독>
나는 지금도 성공보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행복하며, 유명해지기보다는 사회에 기여하는 인생이 더 귀하다고 믿는다.
이기적인 경쟁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고, 선의의 경쟁은 성장과 발전을 초래하나, 사랑이 있는 경쟁은 행복을 더해준다고 믿는다.
니콜라스 카, <유리감옥>
우리는 힘들지만 분명한 목표가 있고, 우리의 재능을 발휘하고 확장할 수 있게 해주는 일에 몰두할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낀다.
최인호,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
여행은 추억으로 남는다. 그 추억 속에는 맛도 있고, 사진도 있고, 그리움도 있다. 이 가운데 그리움은 행복을 맛본 자만이 느끼는 고통이 아닐까?
유발 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인간의 행복은 객관적 조건보다는 우리 자신의 기대에 더 크게 좌우된다.
이반 일리치,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불필요한 물품과 재화를 소유할수록 행복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그만큼 줄어든다
마조리 켈리,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
이것이 바로 충족성이다. 충분히 가졌다는, 만족스럽다는 순수한 느낌 말이다. 충족성의 다른 말은 행복일 터다.
행복은 우리가 가장 살아 있다고 느낄 때 찾아온다. 여기서 핵심은 자신에게 진실한 것,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김진선, <적당히 벌고 잘 살기>
하루하루가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 아닌가. 현재는 영어로 'present'이다. present는 현재라는 뜻도 있지만 선물이라는 뜻도 있다. 내가 발 딛고 있는 지금 여기는 곧 나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그렇다면 나는 현재를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
김연수, <소설가의 일>
외부의 사건이 이끄는 삶보다는 자신의 내면이 이끄는 삶이 훨씬 더 행복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심리적 변화의 곡선을 지나온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성장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면, 상처도 없겠지만 성장도 없다. 하지만 뭔가 하게 되면 나는 어떤 식으로든 성장한다. 심지어 시도했으나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조차도 성장한다.
유현준, <어디서 살 것인가>
평등은 다양성을 통해 이루어야 한다. 다양성은 행복의 가능성을 높인다.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밥을 먹고 똑같은 학교 건물에서 공부한다고 평등한 세상은 아니다.
야마시타 히데코, <소중한 것은 모두 일상 속에 있다>
일상의 책형에서 자유의지로 벗어나는 것이 바로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행복이란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일까의 문제이며, 당신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P. G. 해머튼, <지적 생활의 즐거움>
노동은 지상에서 맛볼 수 있는 최상의 행복입니다. 그리고 노동을 통해 인간은 이 세계를 창조한 질서를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노동은 신성한 본분이며, 삶의 기쁨인 것입니다. 일하지 않고 행복을 찾는 것은 세상에서 둘도 없는 어리석음입니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명언을 제시하지 않더라도 노동 없는 수확은 약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신성해야 할 노동이 사회적인 강요에 의해 자행된다면 이 또한 심각한 문제입니다. 행복해지기 위한 노동, 자아를 찾기 위한 노동이 아닌 강제적이고 수탈적인 노동이라면 그것은 인간이 가축화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이 어떤 직업을 통해 행복해지고 싶다면 다음 세 가지를 유념해야 합니다. 첫째, 그 일에 필요한 능력을 갖출 것, 둘째, 지나치게 많이 일하려고 하지 말 것, 셋째, 그 일을 사랑한다고 당신 자신을 속이지 말것.
유시민, <표현의 기술>
행복하게 살려면 나하고 잘 맞는 사람, 통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교감해야 합니다. 맞지 않는 사람과 다투면서 시간을 보내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짧으니까요. 같은 이치로 내게 재미있는 책,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책, 내가 감동받는 책을 읽으면서 사는 게 최선입니다.
마크 맨슨, <신경 끄기의 기술>
"행복이 무엇인지 계속 묻는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인생의 의미를 찾아 헤맨다면 결코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 - 알베르트 카뮈
행복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나온다. 여기서 핵심은 '해결'이다. 문제를 피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는 척하면 불행해진다. 해결 못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도 역시 불행해진다. 중요한 건 처음부터 문제 밖에 자리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거다. 행복하려면 우리는 뭔가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므로 행복은 일종의 행동이며 활동이다. 행복은 가만히 있으면 주어지는 게 아니다.
사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적으면 적을수록 더 행복을 느낀다. 기회와 선택지가 지나치게 많을 때, 우리는 심리학자들이 '선택의 역설'이라고 부르는 것에 시달리게 된다. 우리는 선택지가 많을수록 어떤 선택을 하든 덜 만족하게 되는데, 그 까닭은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포기해야 하는 다른 모든 선택지에 신경을 쓰이기 때문이다.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어느 누구도 나더러 타인의 기준에 맞춰서 행복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저마다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덕무, <문장의 온도>
호기심과 상상력의 힘을 긍정해야 한다. 그 능력에 따라 인간의 미덕과 악덕, 행복과 불행, 환희와 고통, 현재와 미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인간의 자유 의지에는 반드시 호기심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호기심과 상상력이 없다면 어떻게 새로운 세계, 자유로운 세상을 그려 볼 수 있겠는가? 새로운 발견과 발명, 그리고 창조의 진정한 에너지가 바로 어린아이의 호기심과 상상력 속에 존재한다.
법륜, <인생수업>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을 허투루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돌아보세요. 죽음의 순간은 언제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오늘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 마음을 잃지 않아야 내일 죽어도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추구하는 성공과 상관없이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갈 때 그것이 바로 좋은 인생입니다. 늘 오늘의 삶이 만족스러우면 그게 곧 행복한 인생이지요.
진정으로 성공적인 인생, 좋은 인생이란 어떤 걸까요. 세상에서 추구하는 성공과 상관없이 자기가 만족하면 좋은 인생입니다. 세상의 성공 기준에 나를 맞추고 욕구가 충족된다고 행복해지는게 아닙니다. 오히려 욕구를 버리거나 기대를 낮추는 만큼 기쁨과 만족이 일어납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인생수업>
왜 오늘보다 내일 더 행복하고 강해질 거라고 생각합니까? '더 많은' 것을 원하는 게임을 아무리 훌륭히 치러 냈더라도 자신을 잊어버린다면 결국 힘을 잃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게임은 우리를 언제나 부족하다고 느끼는 결핍 상태에 머물게 합니다.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더라도 기분은 나빠집니다. 여전히 불행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조금만 더 갖는다면!' 하고, 이 단순한 문제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은 내일이 없으므로 더 이상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게임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오늘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강한 사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에서 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모든 여유로움은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터 나옵니다. 진정한 힘과 행복은 감사하는 마음이 그리는 미술 작품 속에 있습니다. 자신이 현재 가진 것에 감사하는 일,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감사하고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갖고 나온 것에 감사하는 일. 자신의 독특함에 감사하는 일
에르스무스, <바보예찬>
행복이란, 현재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머물러 있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을 뜻합니다.
유시민, <국가란 무엇인가>
칸트는 <실천이성비판>에서 행복과 도덕, 선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행복만으로는 우리 이성의 관점에서 아직 완전한 선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의 이성은 행복과 행복할 가치가 있는 것, 즉 도덕적 선행이 일치되어 있지 않는 한 행복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도덕성만으로, 또 그와 함께 행복할 가치를 갖춘 것만으로는 도저히 완전한 선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완전한 선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행복할 가치가 있는 행동을 한 사람이 행복을 맞이할 기대를 가져야만 할 것이다. 실천적 이념에서 이 두 요소(행복과 윤리)는 본질적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런 결합방식에서 도덕적 지향은 조건으로서 행복에 참여하는 것을 비로소 가능하게 하는 것이지, 반대로 행복에의 기대가 도덕적 지향을 비로소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왜냐하면 후자의 경우처럼 행복에의 기대를 조건으로 하는 지향은 도덕적인 것이 아니며, 따라서 또한 전적인 행복을 누릴 자격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은 행복과 도덕의 일치이며 결합이다. 단,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 때문에 도덕을 지키면 행복할 자격이 없다. 동기가 도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카트린 지타,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
"인간은 자신을 사랑해야 행복해지고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 - 에리히 프롬
혜민 스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행복은 / 생각이 적을수록, / 함께 같이 나눌수록, / 지금 바로 이 순간에 마음이 와 있을수록 / 더해집니다. / 눈을 감고 숨을 깊게 쉬고 마음속으로 / '내 주변 사람들이 모두 평안하길...' 기도해보세요. / 이 말과 함께 평안이 곧 밀려옵니다.
행복의 지름길. / 첫째, 나와 남을 비교하는 일을 멈추십시오. / 둘째, 밖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내 마음 안에서 찾으십시오. / 셋째, 지금 이 순간 세상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느끼십시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에게는 / 행복을 결정하는 두 가지 질문이 있다고 합니다. / 첫째,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나에게 의미를 가져다주는가? / 둘째, 나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은가? / 이 두 가지 질문이 사람들의 행복의 열쇠라고 합니다.
내가 옳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같이 행복한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구본권, <로봇시대, 인간의 일>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도 <행복의 정복>에서 인간은 권태, 죄의식, 피해망상증 때문에 불행해진다며 열정, 사랑, 노력과 체념 그리고 일이 행복을 정복하는 중요 도구라고 주장했다. 행복하고 보람 있는 삶에 일이 필수적이라는 것은 굳이 부연할 필요가 없는 상식이다.
유시민, <나의 한국현대사>
인간이 불완전한 상태에서는 서로 다른 의견이 존재하는 것이 유익하듯이, 삶의 실험도 다양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각자의 개성을 다양하게 꽃피울 수 있어야 한다. 각자의 고유한 개성이 아니라 전통이나 관습에 따라 행동하게 되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자 개인과 사회 발전의 불가결한 요소인 개별성을 잃게 된다.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사람은 그 어떤 위대한 이념이나 가치를 실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인 존재다.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 때 행복을 느낀다. 우리 모두는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는 존엄한 인간이다. 우리는 자신의 존엄성을 확신하는 것과 똑같은 무게로 타인의 존엄성을 존중해야 한다.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
듣기 좋은 말로 행복을 이야기하는 진부한 감언이설을 뒤쫓는 사람은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진정한 가난은 물질적인 것의 결핍이 아니라 건강이나 아름다움, 부유함, 무엇을 쫓든지 완벽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삶은 기복을 평가할 줄 알고 위기 상황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사람은 경우에 따라서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크게 부유해질 수 있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 번째 가능성은 마음에 품고 있는 모든 소원을 성취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악착같이 일하며 누리고 싶은 일들을 꿈꾼다. 그러다 마침내 실제로 소원을 이루게 되어도 행복해지지 않는다고 확정 짓는다. 두 번째 가능성은 소원을 수정하는 것이다.
내 힘이 닿는 일에 내 자존심을 걸면 부자가 될 것이고,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에 내 행복을 걸면 가난할 확률이 아주 높다.
김난도 외, <트렌드 코리아 2018>
What’s Your ‘Small but Certain Happiness’? '소확행' 즉 작지만 확실한 행복. 행복은 멀리 있지 않으며 거창하지도 않다.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다는 뜻의 ‘소확행’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만든 단어다. 일상에서 소확행을 추구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행복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물질보다 경험에 돈을 지불할 때 사람은 더 큰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다. 물건은 구입한 직후부터 싫증을 느끼게 되는 반면 경험은 시간이 지날수록 긍정적인 기억만 남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간느 소비자의 두 손에 무엇을 들릴 것이냐보다 소비자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 거이냐가 더 중요하다.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행복, '미래'에서 '지금'으로, '특별함'에서 '평범함'으로, '강도'에서 '빈도'로
이언 해킹, <우연을 길들이다>
한 가지 매우 곤혹스러운 것이 있다. 즉 통계학자와 전문가들, 그리고 인간성의 애호자라는 분들이 인생의 밝은 면들을 나열하면서 어떻게 한 가지 특별한 점은 한결같이 빠트릴 수 있는 것인가? 자유롭고 구속 받지 않는 개인 의지, 즉 개인의 변덕(어느정도로 심하든 간에) 내지는 공상(때때로는 정신이상의 수준으로 격앙되기도 하지만)은 가장 큰 행복이자 가장 위대한 행복이며, 이는 어떠한 분류체계에도 들어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으나 이것이 빠진 일체의 시스템이나 이론은 악마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다. - 도스토예프스키, <Notes from Underground>
서은국, <행복의 기원>
먹고 자고 사랑할 때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이유. 결국은 생존을 위해서다.
행복, 즉 쾌감을 느껴야만,
혹은 쾌감을 느끼기 위해 인간은 먹고 자고 사랑하는 데 몰두한다.
이 관점으로 보자면 행복은 삶의 최종 이유도 목적도 아니다.
생존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따라서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Happiness is the frequency. not the intensity, of positive affect)
유현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눈만 뜨면 이 세상의 TV, 라디오, 신문 같은 모든 매체에서 더 많은 물건을 소유해져야 더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물건을 사기 위해서 열심히 일한다. 그리고 또 그 많은 물건을 넣기 위해서 더 큰 집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더 큰 집을 사기 위해서 더 많이 일해야 한다. 그야말로 인간의 삶과 자연을 수탈하는 악순환이다.
양재우, <불황을 이기는 월급의 경제학>
행복을 돈으로 환산하려는 시도를 더 이상 하지 않게 될 때, 현재와 미래의 행복은 우리 인생의 여유 속으로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행복은 일상의 발견에서 시작됩니다. 현재의 행복은 현재에 온전히 집중해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내 일상을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합니다. 관찰을 통해 발견이라는 쾌거를 이룰 수 있는 거죠.
마스다 무네아키, <지적 자본론>
일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행복해지기 위해서일 것이다. 행복해지려면 어느 정도의 경제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을 해서 돈을 벌려고 노력한다. 이 경우, 행복이 목적이고 금전은 수단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적잖은 사람들이 돈을 버는 것을 목적으로 착각해 버린다. 그리고 그 목적에 사로잡혀 피폐해지고 행복에서 점차 멀어져간다.
사람들이 수단과 목적을 착각하는 이유는 그쪽이 편하기 때문이다. 행복이 목적이라고 하지만 그 행복이 무엇인지에 관해 지속적으로 자문하고 고민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래서 무의식중에 간단히 그 크기를 측정할 수 있는 금전 쪽으로 목적을 바꾸어 버리는 것이다.
효율과 행복은 다르다. 효율은 확실히 편리하고, 편리는 대부분의 경우 쾌적함을 이끌어 낸다. 단, 쾌적함과 행복은 등가가 아니다. 자동차가 다닐 수 없는 숲 속의 산책로를 지나가야 한다면 효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곳을 걸을 때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은 결코 효율성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렇다, 어쩌면 효율과 행복은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바버라 브래들리 해커티, <인생의 재발견>
활기찬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들의 에너지와 관심의 방향을 행복의 추구에서 의미의 추구로, 성공하는 것에서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고 매 순간을 즐기는 것으로 전환한 사람들이다.
지난 몇 년간 긍정심리학자들은 행복이 장수와 부를 포함한 온갖 종류의 유익을 갖다준다고 믿어왔다. 그렇지만 행복은 '삶의 목적'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확실히 조금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데이비드 베넷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문득 크게 때달아지는 바가 있었다. 바로 행복은 단기적은 행복과 장기적으로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데서 오는 행복(에우다이모니아), 2가지로 나뉜다는 점이다.
이정우, <개념: 뿌리들>
철학적 언어 사용에 있어, 옳음의 짝은 그름이고 좋음의 짝은 나쁨이다. 선과 악은 이렇게 양의적으로 이해됩니다만, 두 경우는 매우 다른 내용을 뜻합니다. 옳음/그름은 초월적 가치 기준과 의무 개념을 함축하지만, 좋음/나쁨은 내재적 가치 기준과 행복/기쁨의 개념을 함축합니다.
때로 최고선은 행복eudaimonia과 동일시되기도 해요. "인간에게 고유한 선=좋음은 덕에 부합하는 영혼의 활동이다." 인간에게 고유한 선은 무엇이냐? 새에게 고유한 선/행복은 창공을 훨훨 나는 것이겠죠. 두더지에게 최고의 선/행복은 땅을 신나게 파는 것이겠죠. 마찬가지로 인간에 최고의 선은 뭐냐? 인간에게 최고의 선/행복은 덕에 부합하는 영혼의 활동이라는 겁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선/행복이란 "우리 자신에게서 가장 완전한 부분에 따라 사는 것"이며, 그것은 곧 관조적 이성epistemonikon의 신성한 원리입니다. 우리에게 새의 날개, 두더지의 발톱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이성인 것이죠.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자신의 본질인 이성을 최대한으로 발현하면서 사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덕과 정의의 만듦보다 더 위대한 만듦은 없는 것이고, 우리는 덕과 정의가 있는 곳에서만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
틱낫한, <중도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의 행복은 우리 자신의 행복과 연관되어 있다. 만약 우리가 행복하지 않다면, 다른 사람도 행복할 수 없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의 공동체도 행복하지 않게 된다.
유시민, <청춘의 독서>
세상은 죽을 때까지도 전체를 다 볼 수 없을 만큼 크고 넓으며, 삶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축복이다. 인간은 이 세상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살러 온 존재이며, 인생에는 가치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여러 길이 있다. 그리고 어느 길에서라도 스스로 인간다움을 잘 가꾸기만 하면 기쁨과 보람과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
Happiness. 이런저런 것만 있으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 것은 불행의 원인이 불완전하고 오염된 자아에 있다는 인식을 억누르는 것이 된다. 따라서 과도한 욕망은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느낌을 억누르는 수단이 된다.
피코 아이어, <여행하지 않을 자유>
대개의 경우 우리의 문제는 (게다가 그 해결책, 즉 마음의 평화는) 내면에 있다. 자신의 바깥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이슬람의 우화에 나오는 우스꽝스러운 인물과 똑 닮았다. 우화 속 남자는 자신의 집에서 열쇠를 잃어버렸는데 거리가 더 환하다며 거리로 나가 열쇠를 찾으러 다닌다. 2000년도 더 전에 에픽테토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말했다시피, 우리를 만드는 것은 우리의 경험이 아니라 그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다.
시어도어 젤딘, <인생의 발견>
페리클레스는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자유이고, 자유를 결정하는 것은 용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회는 사람들을 용기 있게 만들도록 조직되지 않았다. 사람들의 정신과 에너지를 쥐어짜는 일이 너무나 많다. 사람들을 생기 넘치고 흥미를 느끼게 하고 온전히 깨어 있게 하는 일은 너무 적다. 더 생생히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다면 일을 통해서 사회에 기여하는 노력을 인정받고 재능과 예술적 기교로 돈 많은 사람들의 변덕에 복종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해야 한다. 이런 요구에 대한 자각은 조직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한 진정제로만 조직에 투입되었다. 고대 아테네에서 고용은 노예를 위한 것으로 자유인은 남에게 굽실거리며 일을 해서 임금을 받는 것을 불명예로 여겼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거꾸로다. 고용되지 않으면 부끄러운 일이고 자기를 팔아서 시간제 임금을 받는 것을 성공으로 여긴다.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을 자유롭지 않은 상태로 지내야 하는데도 그것을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여긴다. 그럼에도 국가가 번창할수록 국민은 자유로운 인간으로 일하기를 꿈꾸면서 굽실거리고 아첨하지 않고도 자신의 재능과 시간을 활용할 방법을 찾아나선다. 스스로 일을 통제하고 창조력을 발휘하고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고 인정받는 방법을 찾기 위한 넓은 탐색의 영역이 열려 있다. 그러나 이런 기회를 허락하는 일은 많지 않다. 굳이 이런 기회를 요구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일이란 본래 그런 것이라고 체념하고 일을 하고 얻는 알량한 보상에 만족하거나 일 밖에서 만족을 찾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김승호,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
자존감을 갖지 못하면 자유를 얻을 수 없고, 자유가 없으면 행복할 수 없다. 자존감이 파괴되면 모든 것을 잃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실과 맞서 싸우고 저항하고 의문을 갖고 행동하는 것을 주저하면 안 된다. 세상은 항상 변화하기 때문에 변화에 끌려다닐 것이 아니라 변화를 주도하고 변화를 이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존감이 충분하면 누구와 비교해 자신을 평가하지 않게 된다. 나 스스로 가장 높은 곳에 있기에 비교할 이유도 방법도 없다. 이때야 비로소 막힘이 없어져 시야가 넓어지고 보는 만큼 자유롭게 되고 사랑하게 되며 행복을 얻게 된다.
행복의 비결은 내가 포기해야 할 것을 언제 포기해야 하는지 아는 데서 출발한다. 욕심과 욕망을 줄이는 순간, 행복이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행복을 잡으러 다니는 것을 포기하는 순간, 그 행복이 눈 앞에 보이게 된다. 우리가 태어나서 벌어놓은 모든 것은 소멸된다. 소멸되는 것에는 진정한 행복이 없다. 행복은 영속적인 것을 찾아 인간과 우주에 대한 사랑을 실현함으로써 가능하다. 물질적인 부를 추구하고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은 아무리 부를 가져도 행복할 수 없다.
헨리 조지, <진보와 빈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난다. 인간은 남에게 줄 수 없는 몇 가지 권리를 창조주로부터 받는다. 이 권리에는 생명, 자유, 행복 추구가 포함된다."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요즘의 생존 경쟁이란 실상 성공 경쟁이나 다름이 없다. 누구나 경쟁을 할 경우에 두려워하는 것은 내일 아침의 끼니 걱정이 아니라 상대방보다 우세할 수 있느냐 하는 걱정이다. .... 성공하기를 바라고 또한 성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이며, 따라서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자는 패배자라고 생각하는 한, 그의 사생활은 너무나 분주하고 걱정에 휩싸여 행복한 날을 전혀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행동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중대한 것이 못 된다. 또한 우리의 성공과 실패는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커다른 슬픔 속에서도 헤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의 행복에 종지부를 찍는 것처럼 생각되는 고민도 시간이 흐를수록 사그라져 나중에는 그 심각한 고통을 기억조차 못하게 된다. 그런데 자기중심적인 생각도 그렇거니와, 그보다도 인간의 자아는 이 세상에서 그렇게 대단한 것이 못 되는 것이다. 자기의 사상과 희망을 자기 이상의 존재자에게 집중시킬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어지간한 고민이라면 그 속에서 어떤 평화를 찾아낼 수 있다. 이러한 일은 철저한 이기주의자에게 발견할 수 없는 일이다.
참으로 만족스러운 행복은 자기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데 있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완전히 실현하는 데 있는 것이다.
흥미의 분야가 넓어질수록 행복을 누릴 기회가 많아지며, 운명의 지배를 적게 받게 마련이다. 하나를 잃어버리면 다른 것으로 대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모든 일에 대하여 한결같이 흥미를 느끼기에는 너무나 짧다. 그러나 하루하루를 충당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일에 되도록 흥미를 느끼는 것은 좋은 일이다.
세계는 어떤 손실로 말미암아 치명상을 입을 만큼 비좁은 곳은 아니다. 한두 번의 실패로 패배하고 손을 드는 것은 결코 판단에 민감하다고 해서 치하할 일이 못 되며,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명력의 파괴로서 슬퍼해야 할 일이다. 인간의 모든 사랑은 죽음에 지배된다. 죽음은 어느 때든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닥쳐올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활 터전이 있으면, 인생의 의의와 목적이 우연에 의해 지배를 받기 쉽다. 따라서 지혜롭게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먼저 생각의 중심을 세우고, 그 이외에 여러 가지 2차적인 흥미를 갖도록 힘써야 한다.
사뮈엘 베게트, <고도를 기다리며>
난 사람을 많이 만날수록 기쁘단 말이오. 아무리 하찮은 인간이라도 만나면 다 배울 점이 있고 마음이 넉넉해지고 더 많은 행복을 맛보게 되거든.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자신이 걸어가는 길에 있는 것들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목적지에 도달해서도 행복하지 못하다.' ... 삶의 향기는 언제 목적지에 도착하는가의 여부와 관게없이, 우리가 걸어가는 길 중간중간에 피어 있는 들꽃 같은 얼굴들과 매 순간의 경험에서 우러나온다. 앞만 보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담벼락에 핀 꽃을 보는 마음의 여유와 관심, 그곳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쉬어 감이 그 여정을 풍요롭게 만든다.
김현성, <따시델레 티벳>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 - 퍼블릴리어스 사이러스
행복 ㆍ 김종삼
오늘은 용돈이 든든하다
낡은 신발이나마 닦아 신자
헌옷이나마 다려 입자 털어 입자
산책을 하자
북한산성행 버스를 타 보자
안양행도 타 보자
나는 행복하다
혼자가 더 행복하다
이 세상이 고맙고 예쁘다
긴 능선 너머
중첩된 저 산더미 산더미 너머
끝없이 펼쳐지는
멘델스존의 로렐라이 아베마리아의
아름다운 선율처럼.
오지혜, <지혜로운 생활>
젊고 아름답고 건강한 날은 금방 가니까, 오늘 지금 여기서 행복하기로 한다. 인생은 생각보다 기니까, 여유와 배짱을 좀 가지기로 한다. 사는 건 한번이니까, 내게 솔직해지기로 한다.그렇게 살아보기로 한다.
마이크 비킹, <휘게 라이프>
"행복은 어쩌다 한 번 일어나는 커다른 행운이 아니라 매일 발생하는 작은 친절이나 기쁨 속에 있다." - 벤자민 플랭클린
끝끝내 - 나태주
너의 얼굴 바라봄이 반가움이다
너의 목소리 들음이 고마움이다
너의 눈빛 스침이 끝내 기쁨이다
끝끝내
너의 숨소리 듣고 네 옆에
내가 있음이 그냥 행복이다
이 세상 네가 살아있음이
나의 살아있음이고 존재이유다.
버트러드 러셀, <게으름에 대한 찬양>
행복과 번영에 이르는 길은 조직적으로 일을 줄여가는 일이다.
문요한, <여행하는 인간>
니체의 말처럼 "가장 중요한 것들은 바로 길 위에 있었다." 나는 길 위에 있을 때 가장 순수했고, 가장 자유로웠으며, 가장 행복했고, 가장 많은 것을 배웠다.
강판권, <나무 철학>
행복을 위해서는 목표지향의 삶이 아닌 목적지향의 삶을 추구해야 한다. 스스로 왜 사는지를 매일매일 고민하는 사람은 결코 불행하지 않다.
목적지향적인 사람은 다양한 것에 가치를 두고, 하지 않은 일들을 시도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가치를 지니고 있고, 행복은 그 가치를 인정하는 자의 몫이다. 사람들 무척 부지런히 살면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는 자신이 하는 일에 큰 가치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이진숙, <시대를 훔친 미술>
행복은 인간을 어린아이로 만들고, 고난은 인간을 철학자로 만든다.
사사키 후미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에게 행복하게 보이기 위해 애쓴다. - 라 로슈푸코
'시간의 여유는 행복으로 직결되는 반면 물질의 풍요는 그렇지 않다.' - 팀 캐서
자기가 바라는 것을 갖는 건 커다란 행복이다. 그러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 외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게 더 큰 행복이다. - 메네뎀
김화영, <행복의 충격>
'행복'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
엑상프로방스는 능률을 찾는 자, 시간이 바쁜 사람, 견문을 넓히려는 교양인, 소유의 노예들, 그리고 돈으로 살 수 있는 모든 것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일체의 환상을 거부한다. ... 누구나 영원한 봄, 영원한 여름을 프로방스의 자산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햇빛이 참으로 우리들의 눈이 아니라 프로방스의 속담처럼 '나의 살을 노래하게 하는 것'이 되기 위해서 모든 부질없는 허영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 지중해안의 따뜻한 가슴, 프로방스는 완전히 절망한 사람이 올 곳은 아니다. 오직 행복한 자, 아무것도 소유한 것이 없이도 이 땅 위에 태어난 것이 못 견디게 기뻐지는 자들만이 올 곳이다. 아니 적어도 많은 절망의 한구석에 아직 저 필사의 모든 생명들이 공유하는 생명의 행복감, 우리들의 건강한 육체가, 죄 없는 육체가 아는 행복감의 씨앗을 아직 죽이지 않은 자들만이 올 일이다.
머나먼 미래를 준비하기 위하여 현재의 행복을 끊임없이 희생하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지중해안의 사람들은 철부지같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스티븐 그린블랫, <1417년, 근대의 탄생>
인생의 최고 목표는 쾌락의 증진과 고통의 경감이다. 인생은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자신과 벗의 행복이라는 이 목적을 이루려는 것 이상으로 더 고귀한 윤리적 목적은 없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열광하는 부(富)라는 것이 많은 경우에서 무의미하며 더 행복한 인생을 만드는 것과는 거의, 어쩌면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알고 있다. "멋지게 장식한 불타는 듯한 주홍빛 옷을 입고 뒹군다고 해도 평범한 옷을 입고 몸져누워 있는 것보다 타는 듯한 열병이 더 빨리 가라앉지 않으리니." 그러나 신과 사후세계에 대한 공포에 저항하기 힘든 것처럼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서 열정적으로 물욕과 정복욕을 발휘하여 안전을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기도 힘들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들은 결국 행복의 가능성을 줄이고 모두를 파멸의 위험 속으로 밀어넣을 뿐이다.
쾌락에의 가장 큰 장애물은 고통이 아니라 망상이다. 인간의 행복을 방해하는 주요한 적은 유한한 세계에서 가능한 그 이상을 얻으려는 환상인 과도한 욕망과 삶을 좀먹는 공포이다. ... 실제로는 꿈에 불과한 것을 소유하려는 욕구, 마음을 파고들며 끝내 전소시키고 마는 그 망상적인 소유욕이 문제인 것이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인간은 권력을 확득하는 데는 매우 능하지만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그리 능하지 못하다.
행복이란 불쾌한 순간을 상쇄하고 남는 여분의 즐거움의 총합이 아니라, 그보다는 개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데서 오는 것이다. 행복에는 중요한 인지적, 윤리적 요소가 존재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아기 독재자의 비참한 노예'로 볼 수도 있고, '사랑을 다해 새 생명을 키우고 있는 사람'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그 큰 차이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가치체계다. 니체가 표현한 대로, 만일 당신에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당신은 어떤 일이든 견뎌낼 수 있다. 의미 있는 삶은 한창 고난을 겪는 와중이더라도 지극히 행복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의미 없는 삶은 아무리 안락할지라도 끔찍한 시련이다.
법인 스님, <검새의 시대, 사유의 회복>
진정한 힐링은 나를 내 삶의 주체로 세우고 독창적으로 살아갈 때 가능하다. 이를 통해 자유와 행복은 성취된다.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암 진단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과 당신의 직관이 내는 소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진짜 하고 싶은 것을 이미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행복을 꿈꾸고 있다.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아무것도 없으며,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이라는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행복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접하는 행복의 담론은 거의 모두가 성공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성공의 척도는 '부자가 되는 것'이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대학을 졸업해야 하고 고액 연봉을 주는 직장에 취업해야 한다. 할아버지의 재력과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아이의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명문 대학에 입학할 수 있고 그 바탕으로 '가문의 영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현실이다. 국가는 늘 경제대국을 외치며 경제 발전을 국정의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깃발 아래 무한경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매진하라고 독려하고 있다. 높은 지위, 많은 돈, 좋은 직장, 드높은 명예 등 이른바 성공의 조건이라는 것이 과연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고 있을까. 답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이다. 왜 그런가. 행복하다는 것은, '지금' '여기서'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진실로 행복하다면 이런 것들이 결코 불행의 재료가 될 수 없으며, 거부의 대상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또 이렇게 생각해 보자. 이런 것들이 충족되어 있어도 내가 진실로 행복하지 않다면, 이런 것들은 결코 나를 행복하게 하는 절대적 조건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인도 뱅갈의 성자 라마크리슈나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집과 돈과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당신이 이미 행복하다면 그것들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렇듯 행복은 객관적 환경과 조건에 의해 규정되는 '절대적 실체'가 아니다. 따라서 행복은 지금, 여기서, 내가, 마음으로, 의미로 구성하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다. 달리 말해서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면 나는 행복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상을 꿈꾸어야 하고 그 이상을 실현해야 한다. 그 이상은 개인과 사회가 삶의 방향을 바꾸는 데서 시작된다. 행복의 내용을 바꾸어야 한다. 과욕에서 소욕지족으로, 경쟁과 상극에서 협동과 상생으로, 획일과 차별에서 평등과 개성으로, 목표와 욕망에서 의미와 나눔으로, 그리하여 동상이몽이 아닌 동몽이상의 화엄세계를 꿈꾸고 실현해야 한다. 이처럼 모두가 긴장과 강박에 시달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삶의 방향 전환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현실'이다.
행복하다는 것은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송이 꽃과 바람소리, 물소리에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 이웃의 슬픔과 고통에 절로 가슴 아파하는 사람, 소박한 음식 앞에서 맛을 느끼는 사람이 바로 행복한 사람이다..... 산과 빌딩, 자동차와 새 소리, 사람 소리와 물소리, 산바람과 매연, 한적함과 번잡함에 대해 차별하지 않고 오히려 연민과 사랑을 갖겠노라 다짐한다.... 무엇이 있어도 있는 경우가 있고, 무엇이 있어도 없는 경우가 있다. 마음을 열고 눈을 열고 귀를 열면 바로 그 앞에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눈앞에 있어도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길을 선택하여 살아가는 까닭은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무의미하고 불행하기 위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것들을 온전히 '느끼며' 사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크고 비싼 집과 재물을 갖고 있고, 권력과 명예를 갖고 살아간다 해도 가치 있고 의미 있는 느낌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아니다. 행복하다는 것은 느낄 수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한 송이 꽃과 바람소리, 물소리에 아름다움에 느낄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이웃의 슬픔과 고통에 절로 내 가슴에 아픔이 느껴지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소박한 음식 앞에서 맛을 느끼는 사람이 먹을 줄 아는 사람이다. 서로 만나 웃고 이야기 하며 사랑과 우정의 느낌을 함께하는 사람, 그러한 사람이 바로 행복한 사람이다.
박웅현, <다시, 책은 도끼다>
짧은 길을 긴 시간을 들여 여행한 사람은 경험상 행복한 사람입니다. - 포구 기행
행복을 추구하는 한 너는 / 행복할 만큼 성숙해 있지 않다. / 가장 사랑스러운 것들이 모두 너의 거일지라도 // 잃어버린 것을 애석해하고 목표를 가지고 초조해 하는 한 / 평화가 어떤 것인지 너는 모른다. // 모든 소망을 단념하고 / 목표와 욕망을 잊어버리고 / 행복을 입 밖에 내지 않을 때 // 그때 비로소 세상일의 물결은 / 네 마음을 괴롭히지 않고 / 너희 영혼은 마침내 평화를 찾는다. - 헤르만 헤세, [행복]
레프 톨스토이,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삶이 곧 끝나버린다고 생각하며 살라. 그러면 남은 시간이 선물로 느껴질 것이다. 현재의 삶은 최고의 축복이다. 우리는 다른 때, 다른 곳에서 더 큰 축복을 얻게 되리라 기대하며 현재의 기쁨을 무시하고는 한다. 지금 이 순간보다 더 좋은 때는 없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복을 바란다. 하지만 복은 이미 주어졌다. 타인을 사랑한다면 쉽게 복을 얻을 수 있다. 행복해지려면 한 가지만 하면 된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 그러면 끝없는 축복과 행복을 얻을 것이다.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사랑 속에서 살게 되면 고통과 고난의 삶이 순식간에 행복과 축복의 삶으로 바뀌게 된다. 축복은 사랑으로 가득 찬 심장 안에 있다.
다카무라 토모야, <작은 집을 권하다>
수요와 공급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자신의 목을 스스로 조르는 이러한 경제는 차라리 '쳇바퀴'라고 표현하는 편이 어울린다. 풍요로워졌다, GDP가 늘었다, 돈이 늘었다고 하면 듣기야 좋겠지만 실제로 증폭하는 건 욕망과 시기심 그리고 지루하고 가혹한 장시간의 노동뿐이다. 쳇바퀴 경제는 일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욕망이나 시기심에 떠밀린 노동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도 없다.
경제적 자유(얼마든지 쓸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빚이 없고 매월 나가는 고정비가 적다는 의미에서)와 시간적 자유(오프그리드에서 생활하기 위해 다소의 관리는 필요하지만 내킬 때 하면 된다는 점에서)를 바탕으로 나름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다가 어느 날 문득 돌아봤을 때 자신만이 아니라 지구환경에도 유익한 집과 생활이 완성되어 있는 삶을 추구한다.
테미 스트로벨, <행복의 가격>
물질만능주의는 우리를 실제로 행복하게 만드는 삶의 두 가지 주요 측면을 빼앗아간다. 그것은 바로 자기가 사랑하는 일을 하며, 튼튼한 인간관계를 쌓는 것이다.
자유와 행복과 직접 관계가 있는 건 돈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우리의 선택이다.
애덤 스미스 원저, 러셀 로버츠 지음,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행복이란 감정은 사랑받는다는 느낌으로부터 생겨난다.' ....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 반대로 내가 미움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깊은 불행을 느낀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제 3인류>
스스로 행복을 찾을 수 없는 사람, 자신의 행복이 외부의 어떤 사람에게 달려 있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하다.
김동우, <트레킹으로 지구 한바퀴>
여행은 가끔 생각지도 않은 장소와 상황에서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며 기쁨과 행복을 안겨준다. 우린 그걸 '인연'이라 부른다.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행복이란 것은 그것이 부족할 때 더 간절해지는 법이다. 행복이란 손 닿는 곳에 있을 때 바로 잡아야 한다.
리사 나폴리, <행복한 라디오>
부탄의 국왕은 화폐 가치의 복잡한 행렬로 이루어진 국민 총생산(GNP : Gross National Product)을 대신하여 한 국가의 척도를 나타낼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냈다. 그는 여기에 국민 총행복(GNH : Gross National Hapiness)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어떤 의미로든 국민의 희생을 대가로 하는 경제 발전은 진정한 발전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부탄의 전통과 환경을 위협하는 세력은 신중히 경계해야 할 대상이며 도입할 가치가 없었다. 국왕은 상품과 현금을 생산하는 것보다, 상승하는 그래프를 만들기 위해 무분별한 성장을 추구하는 것보다, 국민의 행복이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경제적이고 물질적인 성공보다 삶의 질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을 함부로 짓밟고 올라서서 성공을 도모하는 삶보다는 다른 인간을 향한 연민과 협력을 근본적인 미덕으로 삼는 삶이 필요하며, 이것이 국민 총행복이 추구하는 가치였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 어떤 일이 닥쳐오더라도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나 자신에 대한 신뢰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나는 인생에서 바라는 것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나는 더 이상 어떤 일이 일어나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변화시켜 주기를 기대하지 않았다. 삶은 이미 내 주변에 충만하게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남들에게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로버트 M. 피어시그,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선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사람들마다 이를 다르게 정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선을 행복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행복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리고 행복에 대한 정의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겠는가? 행복과 선은 객관적 용어가 아니다. 우리는 이들을 과학적으로 다룰 수 없다. 아울러, 그것들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만 우리들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만일 당신이 행복해지고 싶다면 당신의 마음만 바꾸면 될 것이다.
A. L. 바라바시, <버스트>
사람들의 행복과 안녕은 친구의 수와 질에 달려 있다고 한다.
타사 튜터, <타샤의 집>
기쁘게 일하고, 해놓은 일을 기뻐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 괴테
이권우, <여행자의 서재>
행복한 여행의 가장 큰 준비물은 가벼운 마음이다. - 생텍쥐페리
미하엘 엔데, <모모>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 속에 깃들여 있다는 것이다." 사실 시간이란 달력과 시계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시간 동안 어떤 일을 겪었는가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러기에 시간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각각 다른 모습으로,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막연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시간이란 소중한 비밀을 너무 소홀히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목표를 이루고 나면 행복을 거머쥘 것 같지만 정말 그럴까?
도정일,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
인간의 행복을 욕망의 규모와 소유의 크기로 계산해주는 것이 자본주의의 행복 모형이라면 붓다가 제시한 것은 욕망의 축소, 단절, 무소유의 모형이다. 근대 이후 사회에서 소유의 위력이 한층 커진 것은 소유가 인간의 행복만이 아니라 자유까지도 확대해준다는 산술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이 산술로 따지면 자유는 지갑의 두께에 비례한다. 그러나 붓다적 자유의 모형은 돈지갑과 관계없고 두둑한 지갑과는 더더구나 관계없다. 지갑의 노예는 노예이지 자유인이 아니다. 소유의 즐거움을 내세우는 자본주의 행복론 앞에서 소중하게도 정확히 그 반모형을 제시해주는 것이 붓다의 행복론이자 자유론이다. 그러나 세속의 삶은 욕망과 소유의 충동을 벗어날 수 없다.
물질적 삶의 안정과 풍요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할 때, "나는 왜 사는가?"라는 질문과 "내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끊잆없이 제기될 때, 사람은 의미의 위기를 경험한다.
행복은 "내가 행복을 찾아야 하는데" 하고 쫓아다니는 사람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선물처럼 찾아오는 것 같아요.
야오간밍, <노자강의>
베푸는 것이 받는 것보다 훨씬 행복하다.
헬라레나 노르베리 호지, <오래된 미래>
일상에서 삶의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차이는 넓고도 포괄적인 자아의식을 지니고 두려움과 자기보호의 경계선 뒤로 움츠러들지 않아야 한다.
정지훈, <무엇이 세상을 바꿀 것인가>
'행복은 내가 사랑하고, 잘하고, 세상이 원하는 것의 교차점에 있다. Happiness comes from the intersection of what you love, what you're good at, and what the world needs'
박웅현, <책은 도끼다>
행불행은 조건이 아니다, 선택이다. 행복은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발견의 대상이다.
법정 스님,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에 있다. '위에 견주면 모자라고 아래에 견주면 남는다'는 말이 있듯 행복을 찾는 오묘한 방법은 내안에 있다.
마음이 맑고 투명해야 평온과 안정을 갖는다. 마음의 평화와 안정이야말로 행복과 자유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현대인의 불행은 모자람이 아니라 오히려 넘침에 있다. 모자람이 채워지면 고마움과 만족함을 알지만, 넘침에는 고마움과 만족이 따르지 않는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가진 것이 적어서가 아니라 따뜻한 가슴을 잃어 가기 때문이다. 따뜻한 가슴을 잃지 않으려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 등 살아 있는 생물과도 교감할 줄 알아야 한다.
소유와 소비 지향적인 삶의 방식에서 존재 지향적인 생활 태도로 바뀌어야 한다. 소욕지족, 작은 것과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누리는 행복은 크고 많은 것에서보다 작은 것과 적은 것 속에 있다. 크고 많은 것만을 원하면 그 욕망을 채울 길이 없다. 작은 것과 적은 것 속에 삶의 향기인 아름다움과 고마움이 스며 있다.
아잔 브라흐마, <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실제의 불만족과 행복의 부재를 심화시키는 것은 바로 이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 이다
진정한 만족은 원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마음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욕망의 자유가 아니라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세상에는 행복이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고 그 원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일이다. 고타마 붓다가 깨달은 첫 번째 진리가 '행복의 부재'였다면, 그의 두 번째 진리는 '세상에는 행복이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고, 행복을 원하는 그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곧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이므로.
원한다는 것은 곧 고통이다. 당신이 갈망하는 코끼리를 소유하려고 하는 시도, 조종하는 것, 생각하는 것, 계획하는 것 모두가 고통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다. 원하는 것에는 끝이 없지만, 원하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에는 끝이 있다. 만일 당신이 전혀 원하는 것이 없고 계획도 필요없다면, 얼마나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만일 당신이 진정으로 내려놓는다면 거기 모든 문제는 사라진다. 당신은 이미 코끼리 등 위에 올라앉아 있다. 이것은 깨달음의 아름다운 순간이다.
행복과 고통을 거의 같은 비율로 얻는 것이 삶의 본질이다. 만일 우리가 지금 고통에 처해 있다면, 이것은 우리가 전에 받거나 잃은 행복 때문이다. 행복은 고통의 끝이 아니고, 고통은 행복의 끝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 이 순환을 돌고 있을 뿐이다. 조금 놓아 버리면 조금의 평화가 오고, 크게 놓아 버리면 큰 평화를 얻을 것이다. 만일 완전히 놓아 버린다면 완전한 평화와 자유를 얻을 것이다. 그리하여 세상을 상대로 한 그대의 싸움은 끝이 날 것이다.
류콴홍, <철학우화>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가장 기본적인 생존의 필요를 만족시켜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일 것입니다. 일단 재물과 명예, 권력같은 것을 포기하면 인간의 욕망도 단순해지고 인간의 생활 역시 평온해지게 마련이랍니다. 살아가는 데 꼭 필요치 않은 요구를 줄이고 스스로 즐길 수 있는 평범한 생활을 누리는 것이야말로 에피쿠로스가 주장한 행복의 정의지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픽션들>
문학이 줄 수 있는 많은 행복 중 최고의 것은 상상
존 로빈슨, <인생혁명>
소비가 행복한 인생을 위한 수단이라면 '최소한의 소비로 최대한의 행복을 얻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클레이트 M. 크리스텐슨,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집에 있는 가족의 품속에서 보낸 얼마 안 되는 시간이었다. - 토머스 제퍼슨
나는 가족과 친구들과의 관계가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행복의 원천 중에 하나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 이 말이 단순해 보일지는 몰라도, 어떤 중요한 투자와 마찬가지로 인간관계들은 지속적인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그런데 계쏙해서 관계에 관심과 배려를 투자하지 못하게 막는 두 가지 힘이 존재한다.
첫째, 우리는 자원을 더 즉각적인 결과를 안겨다줄 다른 곳에 투자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둘째, 가족과 친구들은 우리에게 관심을 달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법이 좀처럼 없다. 그들은 우리를 사랑하지만 또한 우리의 사회생활을 도와주고 싶어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면 결국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기에 이른다. 좋은 돈과 나쁜 돈 이론은, 행복을 가져다줄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데 시계가 애초부터 작동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관계를 육성하고 개발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인생에서 중요한 도전적 시간을 극복해야 할 때 사람들은 우리를 도와주거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행복의 원천 가운데 하나로서 우리 곁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박노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다 다르다 ... 삶은 숫자가 아니라고 / 행복은 다 다르다고 / 사람은 다 달라서 존엄하다고
조정래, <정글만리>
시간의 흐름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행복이다.
강신주, <감정수업>
사랑의 감정은 바로 우리를 현재에 살도록 하고, 안전한 삶에 대한 생각은 우리를 미래에 살도록 만든다. 안전한 삶을 위해 현재의 열정적인 감정을 교살하는 삶,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삶이 과연 행복할까? 절대 그럴 수 없다. 왜냐고? 지금은 미래로 보이는 때도 언젠가 우리에게 현재로 다가올 테니까. 그렇게 우리는 이미 현재가 된 미래에서도 또 다른 미래를 위해 '지금 이 순간'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미래에 더 큰 가치를 두느라 현재를 부정하는 삶이 이르게 되는 종착역은 바로 죽음이다. 이것은 유한한 삶의 진실이다. 그러니 현재 누려야 할 행복과 기쁨을 미래로 미루지 말라!
박웅현, <여덟단어>
개는 밥을 먹으면서 어제의 공놀이를 후회하지 않고 잠을 자면서 내일의 꼬리치기를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개들은 원형의 시간을 살고 있다. 행복은 원형의 시간 속에 있다'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행복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 이자리를 행복의 공간으로 전환시키는 것.
파울로 코엘료, <아크라 문서>
패배해본 적 없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행복하고 우월하며 진리에 통달한 듯 보이지만, 사실상 그런 진리를 얻기 위해 손가락 하나 까딱한 적도 없다. 그들은 능 강자의 옆에 붙어서, 하이에나처럼 사자가 먹고 남긴 찌꺼기들을 주워먹으며 살아간다.
도정일,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21세기 초 도시 중산층 이상의 한국인을 지배하는 정신 상태는 두 개의 강력한 '코드'에 관통당해 있다. 더 날씬한 은유가 생각나지 않아 좀 투박하게 대놓고 말하자면, 하나는 '탐욕의 코드'이고 또하나는 '선망의 코드'이다.
탐욕의 코드는 폴 새뮤얼슨이 말한 자본주의적 '행복 방정식'을 따른다. 이 경제학자가 소개한 계산법에 의하면 행복(H)은 욕망(D) 분의 소비(C)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얼마만큼 소비했는가"가 나의 행복을 결정한다. 소비를 소유로 바꿔놓으면 이해하기 쉽다.
선망의 코드는 "저 자는 갖고 있는데 나는 없어, 이건 안되지, 암 안 될 일이고말고"라고 사람들을 들쑤셔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전염성 질투의 부호다. 저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은 나도 가져야 한다. 내가 저 인간만큼 갖지 못한다면 나는 불행하다. 내가 가질 행복을 저 자가 갖고 있네그랴? 저런 도둑놈, 내 행복을 훔쳐가다니, 화가 치미는 바로 그 순간에 질투의 여신이 나타나 행복에 이르는 길을 확인시켜준다. 저 자가 가진 것은 너도 가져라, 뺏고 훔쳐서라도. 그러면 행복은 네것이다. 아니, 너는 저 자가 가진 것 이상으로 가져야 해.
탐욕과 선망의 부호가 행복 방정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려준 것은 석가모니다. 욕망의 크기는 무한해서 그것을 충족시킬 방도가 없다는 것, 그것을 알게 된 것이 붓다의 '깨침' 가운데 하나다. 욕망은 일정량의 크기로 묶이지 않는다. 100을 바라던 욕망은 그 100을 소유하는 순간 200으로 불어나고, 200을 갖는 순간 300으로 커져 달아난다. 욕망의 크기를 정할 수 없기 때문에 소유를 키우는 방법으로 행복에 도달한다는 것은 신기루 잡기다. 그러므로 욕망의 크기를 줄여라. 그것만이 평온에 이르는 길이다. 욕망이 제로일 때는 제로의 소유만으로도 너는 행복하다. 재갈을 물릴 수 없는 무한 욕망이 탐욕이다. 그 탐이 충족되지 않아 너를 화나게 하고 질투하게 하는 것이 '진, 분노'이며 이 간단한 진리를 모르는 것이 '치, 어리석음'다. 그러므로 욕망을 다스려라, 줄여라, 끊어라, 그리고 평화로워라, 친구여.
만약 행복의 추구가 불행의 완벽한 제거와 고통의 완벽한 회피에 목표를 둔다면 그 목표는 달성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고통의 기원이 된다. 완벽한 행복의 추구란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이미 삶의 진실이 아니며, 인간 사회의 도덕적 이상도 아니다.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법을 열심히 찾아 헤매야 하는 사회는 행복한 사회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절망의 사회다.
- '행복방정식' 중에서
존러스킨, <나중에 온 이사람에게도>
사람이 자기가 하는 일에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그 일을 좋아하고, 그 일을 지나치게 해서는 안되며, 그 일이 성공하리라는 생각을 품고 있어야 한다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스티브 디거, <잠들기 전에 읽는 긍정의 한줄>
행복은 스스로 찾는 것 (J. E. 부시로즈, J. E. Buchrose)
행복은 사랑받기보다 사랑을 줌으로써 오며, 사랑 때문에 상처 입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자만심 때문인 경우가 흔하다. 사랑하고 그로써 상처 입는 것, 또다시 사랑하는 것, 이것이 용감하고 행복한 삶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 (존 D. 록펠러 3세)
행복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 원칙 위에 놓여 있다. 내가 좋아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은 다음, 거기에 온 힘을 다하는 것이다. 내가 가진 에너지, 야망, 그리고 타고는 재주 등을 하나도 남김없이.
The road to happiness lies in tow simple principles: Find what interest you and that you can do well, and put your whole soul into it-every bit of energy and ambition and natural ability that you have.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벤자민 프랭클린)
미국 헌법은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 추구를 보장한다. 이것을 따라잡는 것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다.
행복은 내안에 있다.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행복은 자급자족할 수 있는 사람의 것이다. 외부에서 찾은 행복과 즐거움의 원천들은 모두 그 본질상 불확실하고 불안정하고 허무하고 무상하게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Happiness belongs to those who are sufficient unto themselves. For all external sources of happiness and pleasure are, by their very nature, highly uncertain, precarious, ephemeral and subject to chance.
우리 사회와 경제는 반복적 패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역사를 되집어 보고 교훈을 얻고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행동을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은 그 기억의 흔적을 지운다.
세계 경제, 정치적으로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몰락은 많이 예상하고 있지만 북한의 정상국가화 과정에서 남북이 협력을 통해 대한민국의 긍정적인 기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주제다.
[본문 발췌]
아무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난 미세한 진동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우리를 내달리게 한다.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는다. 하지만 리듬에 따라 움직인다. History doesn't repeat itself. but it does rythme.
서울에는 고시촌이라는 곳이 있다. 대학입시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려는 학생들이 공부에 매진하기 위해 따로 방을 얻어서 사는 지역이다. 합격률이 1.8퍼센트에 불과한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는 그들의 노력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지만 그래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청년들이 도전보다 안정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혁신은 일어나기 어렵다.
투자에 대한 조언
'기다림'은 때로 행동보다 중요하다. 잘 아는 분야가 없는 경우에는 투자를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지식을 충분히 쌓아서 자신 있는 분야가 나올 때까지 돈을 은행에 넣어두고 기다리는 것이 현명하다. '기다리는' 것도 투자가에게는 필요한 자질이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돈을 번 직후에 실패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특히 성공하고 돈을 벌었을 때가 주의해야 할 시기다. 한 번 더 큰 돈을 벌고 싶어서 마음이 조급해진다. 돈을 벌었을 때는 해변에라도 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제일이다. 크게 성공하면 사람은 우쭐해져서 자신이 똑똑하고 돈도 쉽게 번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떠밀리듯 투자에 나섰다가 실패하기 된다.
그러나 감성적 마음과 공감적 관계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아날로그의 향수는 복고처럼 반복될 것이다.
[본문 발췌]
우리가 직면한 선택은 디지털이냐 아날로그냐가 아니다. 그런 단순한 이분법은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도 모르게 사용하고 있는 언어일 뿐이다. 1이냐 0이냐, 흑이냐 백이냐, 삼성이냐 애플이냐와 같은 이분법적 구분은 허구다. 실제 세상은 흑도 백도 아니고, 심지어 회색도 아니다. 현실은 다양한 색상과 수많은 질감과 켜켜이 쌓인 감정들로 이루어진다.현실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고 희한한 맛이 난다. 인간의 불완전함은 흠도 되지 않는다. 최고의 아이디어는 그런 복잡함에서 나오지만 디지털 기술은 그 복잡함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현실 세계가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데도 말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낸 거래의 속도와 크기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수준으로 시장과 자산 버블의 변동성을 크게 증폭시켰다.
우리의 능력은 사물을 이해하는 것이다. ... 관찰과 경험에서 얻은 지식을 엮어서 세상을 유연하고 풍부하게 이해함으로써 이후 어떤 과제나 도전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의식적, 무의식적 지식, 이성과 영감을 포괄하는 유연한 정신력이야말로 인간을 개념적이고 비판적이고 사색적이고 재치 있게 생각하게 하며, 인간의 논리와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게 한다. - 니콜라스 카, <유리감옥>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자기애와 이기심이 늘어나고, 협력성은 줄어들며, 잠재적 폭력성은 증가한다.
우리는 사람들이 과거에 대한 향수 때문에 새로운 도구를 거부하고 옛날 도구를 선호한다고 단정 짓는다.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으로 선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감성적 오류는 새로운 사물이 오래된 사물보다 우리의 목적과 의도에 더 잘 부합한다는 지레짐작이다. 어린아이 같은 순진한 생각일 뿐이다. 하나의 도구가 다른 도구에 비해 우월한지 우월하지 않은지는 그것이 얼마나 최신인가에 달려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도구가 우리를 얼마나 확장시키거나 축소시키느냐다. 또한 자연과 문화, 그리고 서로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어떻게 만들어가느냐다. - 니콜라스 카, <유리감옥>
권력(權力)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 특히 국가나 정부가 국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강제력을 이른다."
권력을 쫓는 사람들도 있고, 권력이란 말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정치적, 사회적 지위나 영향력 측면에서의 권력이란 의미 외에 우리가 살아가며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영향력과 주도권, 목표를 이루기 위한 토대로서의 힘,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타인을 움직이는 힘, 의도를 관철하는 힘 등을 내포하는 매우 다층적인 의미"의 권력이란 측면에서 권력의 의미, 권력의 원천, 권력 획득의 법칙, 권력유지의 법칙, 권력 행사의 법칙에 관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본문 발췌]
권력의 결정적인 토대가 되는 것은 감정 통제 능력이다. 상황에 대한 감정적 대응은 권력의 가장 큰 장애인 동시에, 감정 표출로 얻는 순간적인 만족보다 훨씬 더 대가를 치르게 하는 크나큰 실수다. 감정은 이성을 흐리게 한다. 상황을 명확하게 보지 못하면 통제력을 가지고 상황에 대처할 수도, 대응할 수도 없게 된다.
감정 통제는 현재와 거리를 두면서 과거와 미래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능력과 관계가 깊다.
권력은 근본적으로 도덕과 관계가 없다. 권력을 얻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술 가운데 하나는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보는 능력이다. 거듭 강조하건데, 권력은 게임이다. 그리고 그 게임에서 당신은 의도가 아니라 행동의 결과로 상대를 판단해야 한다.
결국 인생은 짧고 기회는 많지 않다. 당신이 쓸 수 있는 에너지 역시 한정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시간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다. 타인의 일에 귀중한 시간이나 정신적인 평정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라. 그것은 너무나 커다란 대가다.
자기 창조의 첫 번째 단계는 자기의식이다. 자기 자신을 배우로 생각하고 자신의 외양과 감정을 통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분노와 감정 노출은 전략적으로 비생산적이다. 당신은 항상 침착함과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만약 적을 만나게 하면서 당신 자신은 침착할 수 있다면, 당신은 결정적 이점을 확보하게 된다. 적의 평정을 흐트러뜨려라. 적의 자만 속에서 맹점을 찾아 휘저어놓아라. 그러면 당신이 적을 조종할 수 있게 된다.
성급한 사람을 상대할 때 최선책은 아무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다.
과거에 대해 말하는 것과 미래에 대해 말하는 것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때, 실용적인 사람은 미래를 택하고 과거를 잊는다.
나를 비롯한 사기꾼들에게 사기를 당한 사람들은 공짜를 얻겠다는 욕망 때문에 커다란 대가를 치른 것이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을 모두가 깨닫는다면 범죄가 줄고 우리 모두가 훨씬 더 조화롭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 '옐로 키드' 조지프 베일
만약 당신이 위험에 처하지 않았다면, 결코 싸우지 말라. - 손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격을 멈춰야 할 때를 모른다. 이유는 간단하다. 애초에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번 승리를 맛보고 나면 더 많은 승리를 갈망한다. 도중에서 멈추는 것, 목표를 정해놓고 거기까지만 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 또 다른 승리를 향해 너무 멀리 가는 사람은 결국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그것을 막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은 멀리 내다보고 계획을 짜는 것이다.
어떤 일에서 빠져나오는 것보다 처음부터 들어가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쉽다. 우리는 갈대와 반대로 행동해야 한다. 갈대는 처음 나올 때는 길고 곧은 줄기를 뻗지만, 시간이 지나면 마치 모든 힘을 잃은 것처럼... 여러 의 조밀한 마디가 생겨난다. 처음의 힘찬 기운과 활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초반에 부드럽고 침착하게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다가올 충돌에 대비하여, 일을 완수하기 위해 정력적으로 돌진해야 할 때를 대비하여 힘을 아낄 수 있다. 처음에는 우리가 상황을 주도하고 통제하지만, 일단 궤도에 오르고 나면 상황이 우리를 주도하여 휩쓸어버리기 쉽다. - 몽테뉴
기억하라. 환상을 유지하는 열쇠는 거리다. 멀리 있는 것은 매혹적이고, 기대감을 주며, 단순하고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공간은 다시 회복할수 있지만, 시간은 절대 다시 회복할 수 없다.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시간은 끝없는 영원과 이 우주를 우리 인간이 보다 잘 견디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개념이다. 그러니 시간의 틀을 만들어 요령 있게 다루는 것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아이들의 시간은 길고 느리며 쉽게 늘어난다. 반면 어른의 시간은 쏜살같이 빨리 지나간다. 즉 시간은 지각하기 나름이며, 지각은 뜻대로 조정이 가능하다.
"아프리카 돼지열병"의 국내 확진과 확산으로 양돈 농가와 관련 공무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지 근본을 따라가 보면, 좁은 공간에 닭, 돼지, 소 뿐만 아니라 양식장의 물고기를 몰아넣고 항생제 등 약품을 먹여가며 키우는 인간의 욕심때문일 것이다.
사람도 자유를 갈망하지만, 동물이나 식물도 자연법칙에 따라 자유롭게 생장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라면의 생산, 유통, 소비 양태는 모든 식품들 중에서 가장 공업적이다. 이제, 과수농업이나 축산업, 양식업은 제1차 산업이라기보다는 공업의 생산방식으로 전환되었다. 조류독감이 돌면 철새들은 약하고 부상당한 것들 몇 마리만 죽지만, 양계장 닭들은 모두가 동시에 싹 죽는다. 양계장의 닭들은 공업적 틀 안에서 사육되고 그 형질이 유전되어서 생명체로서의 독자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강하거나 약한 차이가 없이, 모두 다 일제히, 이탈자 없이 '싹' 죽는다는 것이다. ... 이제, 닭은 닭이 아니라 닭고기를 만드는 생산공정의 한 단계일 뿐이다. 과수원의 포도나무나 사과나무는 인간이 작업하기에 알맞게, 키가 크지 않고 가지가 벌어지지 않도록 어릴 때부터 쇠줄에 결박되어 있다. 그 나무들은 나무가 아니라, 사과나 포도를 뽑아내는 기계처럼 보인다. 라면은 닭이나 나무 같은 생명체를 직접 거치지 않고 공장에서 대량생산된다는 점에서, 모든 식품 중에서 가장 공업적이다. 라면 포장지에는 60여 종의 첨가물이 적혀 있어서 제조 과정의 공업적 성격을 알 수 있게 해준다. - 「라면을 끓이며」
도요새의 무리들이 그 뻘에 당도한다. 이 갯벌은 새들의 고향도 아니고 타향도 아니다. .... 대륙 간을 날아다니면서도, 그것들은 짐보따리를 지니고 있지 않다. 그것들의 자랑은 무일푼의 혈혈단신에 있다. 그것들은 먹을 것과 잠자리를 예비하고 있지 않고, 버리고 떠나고 또 찾아서 날아간다. 그것들의 유선형 몸매와 기름진 용골 근육은 홀로 시공을 통과하는 자의 외로움과 강인함으로 빛난다. 원양의 바람 속을 무착륙으로 건너가는 그것들의 눈은 두꺼운 보호막으로 덮여 있고, 보호막 안쪽에서 그것들의 눈동자는 닥쳐올 시공 속의 조짐들을 예민하게 관찰한다. 그것들의 싸움은 바다에 순응하는 싸움이다. - 「갯벌」
철학관련 이야기나 책을 접할 때면 폴 고갱의 그림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Where do we come from? Who are we? Where are we going?"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존재의 본질과 그 의미, 가치, 그리고 삶의 방향에 대한 질문이 담겨 있기에 그런 것, 아닐까...
[본문 발췌]
훌륭하고 고귀한 사람이 반드시 수련을 해야 하는 세 가지 분과가 있습니다. 첫째는 취하고 피하려는 의지와 관련된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취하고자 의지하는 바를 취하는 데 실패하지 않고 자기가 피하고자 의지하는 바에 빠져들지 않도록 훈련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하고자 하거나 하지 않고자 하는 충동과 관련됩니다. 한마디로 무엇이 적절한 것이냐의 영역입니다. 우리는 규칙에 맞게, 신중히 숙고하고, 적절한 주의를 기울여 행동해야 합니다. 세 번째 목표는 우리가 기만당하지 않아야 하며 임의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이것은 승인과 관련된 것입니다. - 에픽테토스
"그대의 능력 안에 있는 것을 최대한 이용하세요. 그리고 나머지는 그 일이 벌어지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어떤 일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고 어떤 일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의견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충동들, 욕망들, 반감들, 간단히 말해 우리 자신의 행함인 것들이며 무엇이건 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소유물도 그렇고 우리의 평판이나 공직도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우리 자신의 행함이 아닌 것이면 무엇이든 다 그렇습니다." - 에픽테토스, <엥케이리디온Enchiridion> 중에서
스토아주의로부터 얻은 최초의 교훈 하나는 우리가 힘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곳에 주의와 노력을 집중하되, 그런 다음에는 우주가 원래 하던 대로 돌아가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이것이 많은 에너지 소모와 많은 걱정을 둘 다 덜어줄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은 명확하게 짜 놓은 정강들은 뒷전이고 대신에 후보자들의 품성을 강조한다. 진보주의자들은 정확히 그 반대다. 그러나 일상의 삶뿐만 아니라 정치에서도 그 둘은 확연하게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누가 됐든 선거에서 이긴다면 직면할 공산이 큰 결정적인 쟁점들에 관해 해당 후보자가 전반적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확실히 알고 싶다. 기후 변화, 외교, 정치/경제적 불평등, 개인적 권리 등에 관해 후보자가 취하는 입장은 무엇인가? 그러나 일단 선출되고 나면 그 사람은 분명 더 복잡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풍경을 상대해야하고 그 풍경을 성공적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방향성에 관한 일반적인 생각이 아무리 이론적으로 건전하다 하더라도 그 이싱의 것을 요구받을 것이다. 실제로 필요한 것은 바로 그 근본적인 덕들, 즉 어려운 상황에서 올바른 일을 할 수 있는 용기, 과도함의 고삐를 죄는 절제, 자신의 결정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고려하는 정의감, 그리고 당연히 시시때때로 변덕을 부리는 불확실한 바다를 항해할 수 있게 해주는 실천적인 지혜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고의로 "악"을 행하지 않으며 다만 "무지"에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 <에우튀데모스>라는 대화편에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지혜만이 홀로 인간에게 선한 것이며, 무지는 유일한 악이다."
나는 반드시 죽습니다, 그래야겠지요? 만약 당장이라면 나는 지금 죽고 있는 것이겠지요. 만약 조만간이라면, 나는 지금 저녁을 먹을 겁니다. 지금은 저녁 식사 시간이니까요. 그리고 나중에 그 시간이 오면 죽을 겁니다. - 에픽테토스, <담화록>, I. 1
만약 철학이 도움을 주어야 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만이 아니라 죽음이 전혀 두려울 것 없다는 사실을 수용하는 방법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인간의 조건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기억은 시간과 함께 쌓여가지만 그 길이가 오래될수록 어떤 기억들은 잊혀진다. 기억과 망각의 균형으로 우리 뇌가, 생각이 과부하에 걸리지 않는 것일지도.... 오래 간직하고 싶은 기억도 있지만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들도 있다.
간직하고 싶은 좋은 기억들의 시간을 늘리는 방법 : 감동, 반복적 회상, 기록, 다양한 감각을 동원한 기억 등....
기억, 記憶
1.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
2. <심리> 사물이나 사상(事象)에 대한 정보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정신 기능.
3. <컴퓨터> 계산에 필요한 정보를 필요한 시간만큼 수용하여 두는 기능.
[유의어] 메모리, 상기, 암기
(네이버 영어사전) [명사] memory, recollection, (formal) remembrance, [동사] remember; (생각해 내다) recall, recollect; (마음에 담아 두다) bear[keep] (sth) in mind
(생명과학대사전) 인상, 지각, 관념 등을 불러 일으키는 정신기능의 총칭. 사람이나 동물이 경험한 것을 특정 형태로 저장하였다가 나중에 재생 또는 재구성하는 현상이다. 새로운 경험을 저장하는 작용, 기명된 내용이 망각되지 않도록 유지하는 작용, 유지하고 있는 사항을 회상할 수 있는 활동을 기억의 3요소라 한다. 기억은 여러 가지로 분류되는데, 시간적 측면에서 불필요하면 잊게 되는 단기기억과, 장시간, 때로는 평생 동안 유지되는 장기기억이 있다. 기억은 대뇌피질의 감각연합역에 저장되고, 해마는 기억형성에 관여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시, 글과 책 속에 쓰인 '기억'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콜레라 시대의 사랑>
가슴의 기억은 나쁜 기억은 지우고 좋은 기억만 과장하는 법이며, 이런 책략 덕택에 우리가 과거의 짐을 견디고 살아갈 수 있다.
유현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공간은 실질적인 물리량이라기보다는 결국 기억이다. 우리가 몇 년을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어떠한 추억을 만들어 냈느냐가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 이 같은 현상은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나빠져서 기억할 일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 만큼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대로 어렸을 때는 기억력이 좋아서 하루만 생각해도 기억할 일이 많고 그만큼 시간이 꽉 찬 느낌으로 느리게 흘러가는 것으로 느껴진다고 한다.
이정우, <개념 뿌리들>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시간에는 현재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인간이 기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인간은 그저 매 순간을 살아갈 수 있을 뿐이고 '나'라는 정체성을 가지지 못할 것입니다. 기억이 존재하기 때문에 인생이란 것이 존재하는 것이죠.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과거 기억을 상실하면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게 되고 미래 기억을 못하면 나는 영원히 현재에만 머무르게 된다. 과거와 미래가 없다면 현재는 무슨 의미일까. 하지만 어쩌랴. 레일이 끊기면 기차는 멈출수밖에.
한동일, <라틴어 수업>
인간은 죽어서 그 육신으로 향기를 내지 못하는 대신 타인에 간직된 기억으로 향기를 내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기억이 좋으면 좋은 향기로, 그 기억이 나쁘면 나쁜 향기로 말입니다. 인간은 타인을 통해 기억되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오늘은 내가, 내일은 네가" 죽음으로써 타인에게 기억이라는 것을 물려주는 존재입니다.
헬렌 니어링,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성공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유명함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 반면, 정의로움은 영원한 진리의 반석이 된다.
정철, <불법사전>
"이별", 남자와 여자가 만나 서로의 가슴에 느낌표를 찍고, 서로의 품에서 쉼표를 찍다가, 어느날 서로에게 물음표를 던진 후, 한동안 조용히 말없음표를 찍고, 결국 서로의 기억에 마침표를 찍는 것. 그리고 둘 중 한 사람은 자꾸 되돌이표를 만지작거리는 것.
베르나르 베르베르, <죽음>
죽을 때 삶에서 배운 걸 모두 기억해야 한다.
첫째, 인간의 삶은 짧기 때문에 매 순간을 자신에게 이롭게 쓸 필요가 있다.
둘째,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남들이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결국 선택은 우리 스스로 하는 것이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우리가 지는 것이다.
셋째, 실패해도 괜찮다. 실패는 도리어 우리를 완성시킨다. 실패할 때마다 뭔가를 배우기 때문이다.
넷째, 다른 사람에게 우리를 대신 사랑해 달라고 할 수는 없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은 각자의 몫이다.
다섯째, 만물은 변화하고 움직인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물건이든 억지로 잡아 두거나 움직임을 가로막아선 안 된다.
여섯째, 지금 갖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려 하기보다 지금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삶은 유일무이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완벽하다. 비교하지 말고 오직 이 사람을 최대한 누리기 위해 애써야 한다.
김영하, <말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간접적인 행위이지만 오감을 동원하면 그것은 마치 놀라운 가상현실처럼 우리에게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주고, 그런 글쓰기가 습관이 되면 일상생활에서도 더 민감하게 오감을 동원하게 됩니다. 감각과 기억, 표현은 이렇게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의 감성 근육을 키우는 것입니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혜민스님,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우리는 늘 행복할 수는 없지만 순간순간 행복했던 기억의 힘으로 살아간다.
최인철, <굿 라이프>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이 두 가지의 구분을 위해 경험하는 자기(experiencing self)와 기억하는 자기(remembering self)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우리에게는 현재 순간을 경험하는 자기가 있고, 나중에 그 경험을 기억하고 회상하면서 새롭게 재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자기가 있다. 카너먼은 우리에게 두 가지 자기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에도 두 가지가 있다고 주장한다.하나는 경험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이고, 다른 하나는 기억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이다. 경험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지금 현재의 만족과 기분을 추구한다는 것이고, 기억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삶 전체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한다는 뜻이다.
정재승, <열두 발자국>
아날로그의 반격 현상을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도대체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왜 사람들은 아날로그를 다시 찾는 걸까요? 아마도 그것을 '복고의 귀환'으로 설명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유행은 돌고 돈다고 했던가요? 인간은 행복을 '상태'로 인식하지 않고 '기억'에서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당시엔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면 좋은 기억으로 뇌 속에 저장됩니다. 행복한 순간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과거의 한 순간에서 애써 찾지만, 당시엔 그 시간이 행복인지 인지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행복으로 덧칠된 복고의 기억은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시대가 바뀌어도 종종 소환되는 것일지 모릅니다. "그때가 참 좋았지" 하면서 말입니다. 실제로, 미국 작곡가 오스카 레번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행복은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다!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
캄캄한 어둠이라면, 우리 안에 남는 건 그 캄캄함이 아니라 그 어둠 속에서 미미하게 비치던 빛 같은 것이죠. 그게 기억의 속성인 것 같아요. 글쓰기는 기억을 닮았어요. 사람은 누구나 기억하고 싶은 것을 글로 쓰는 거죠. 의도적으로 부정적인 경험을 망각해요. 이 의도적인 망각이 창작의 원동력이에요. 어쩌면 삶의 원동력일지도 모르겠고요.
유시민, <역사의 역사>
교류가 전혀 없었던 두 문명에서 비슷한 때 본격적인 역사서가 등장했다는 사실은 과거를 기억함으로써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려는 욕망이 우리 인류의 본성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미치오 카쿠, <미래의 물리학>
과학자들은 기억력과 망각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너무 많이 잊으면 과거의 실패나 좌절감과 함께 애써 습득한 기술까지 잊게 된다. 그 반대로 너무 많이 기억하면 중요한 정보와 함께 과거에 겪었던 모든 좌절과 슬픔이 수시로 떠올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억과 망각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야 최상의 이해력이 발휘된다.
전주희 외,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
인간의 시간이란 연속적이지 않다. 시계가 가리키는 초침과 분침은 균질적이지만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이란 기억과 미래일 뿐이다. 현재는 늘 순식간에 과거로 흘러가 기억으로 쌓인다. 기억으로 쌓인 시간이 미래를 정확하게 그릴 수 없다는 것은 언제나 정해진 시간에서 벗어나는 시간, 다른 시간을 꿈꿀 수 있는 이탈의 가능성을 포함한다. 하지만 자본의 시간, 부채가 결정하는 시간은 이러한 인간의 시간을 설계하고 계산하며 통제한다. 부채가 인간의 삶을, 인간의 모든 시간을 강탈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면 기억과 미래라는 연속적이지 않은 인간의 시간은 화폐가치로 환산된 시간표가 될 것이다. 1교시가 끝나면 어김없이 2교시가 기다리는 시가느이 연속이 삶의 전부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사건을 찾아 여행을 떠나지 않는 개인에게는 시간이란 지금-지금-지금이 무한히 반복되는 시간만이 남겨지게 될 것이다.
박완서, <잃어버린 여행가방>
풍성하게 쌓인 낙엽을 밟는 맛은 보는 맛 못지않았으며, 젖은 낙엽이 풍기는 냄새는 특이했다. 꽃내음도 아닌, 코끝과 정감을 동시에 건드리는 은은하고도 격조 높은 향기였다. 나는 그 향기를 기억하기 위해 깊이깊이 들이마셨고, 옷자락에도 스미라고 일부러 오래 이슬비 속에 서 있기도 했다.
빈센트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지난 삶의 기억들, 이별한 사람들이나 죽어버린 사람들, 영원히 지속될 것 같던 시끌벅적한 사건들.... 모든 것이 마치 망원경을 통해 희미하게 바라보는 것처럼 기억 속으로 되돌아올 때가 있지요. 과거는 그런 식으로만 붙잡을 수 있는가 봅니다.
P. G. 해머튼, <지적 생활의 즐거움>
동일한 시간 동안 사람의 인생이 다르게 결정되는 이유는 시간의 '질'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질'은 기억과 관련이 깊습니다. 질 좋은 시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질 나쁜 시간은 방금 전에 일어난 일도 기억해내지 못합니다. 기억의 형성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감정적 충격입니다. 선명한 감정적 충격이 뇌리와 마음에 깊게 새겨져 기억할 의사가 없음에도 저절로 기억되는 경우입니다. 두 번째는 반복입니다. 시간을 들여 반복적으로 주입시킨 기억입니다.
<사랑은 나의 약점> 중에서 / 심보선
그는 내게 말하는 듯했다.
시인이여, 노래해달라.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나의 머지않은 죽음이 아니라
누구도 모르는 나의 일생에 대해.
나의 슬픈 사랑과 아픈 좌절에 대해.
그러나 내가 희망을 버리지 않았음에 대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생존하여 바로 오늘
쪽동백나무 아래에서 당신과 우연히 눈이 마주쳤음에 대해.
나는 너무 많은 기억들을 어깨 위에짊어지고 있는데
어찌하여 그 안에는 단 하나의 선율도 흐르지 않는가.
창가에 서 있는 시인이여,
나에 대해 노래해달라. 나의 지친 그림자가
다른 그림자들에게는 없는 독특한 강점을 지녔노라고 제발 노래해달라.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안티프래질>
이론과 실행의 중요한 차이는 사건의 순서를 정확하게 탐지하고 그 순서를 기억하는 데 있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했듯이, 우리가 앞을 향해 살아가지만 뒤를 향해 기억한다면, 책은 우리의 기억, 학습, 본능이 순서를 가지려는 성향을 악화시킨다. 오늘 누군가가 살아보지도 않았던 사건을 바라본다면, 주로 사건의 순서에서 나타나는 혼란때문에 인과관계의 환상을 가질 수 있다. 이런 바이어스에도 불구하고, 실생활에서 우리는 역사학과 학생만큼의 비동시성을 갖지는 않는다. 역사는 거짓말과 바이어스로 가득 찬 고약한 것이다.
로버트 그린, <권력의 법칙>
자기 창조의 두 번째 단계는 기억에 남는 이미지를 창출하는 것이다.
코에케 류노스케, <생각 버리기 연습>
무언가를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이 '무명(無明)'을 키운다. 버릴 수 없이 두는 것이 늘어날수록 기억의 데이터베이스도 점점 복잡해지고 기억할 수 없는 것도 늘어난다. 기억할 수 없는 것이 늘어나면, 현재 자기 마음의 상태를 인식하는 능력, 자신의 마음을 구석구석까지 넓게 훑어보는 능력, 자기 통제 능력이 줄어들게 된다. 그것은 자기 마음속에서 의식화할 수 없는 정보가 늘어가기 때문이다. 물건을 버리지 않고 두고 싶다는 번뇌와 버려버리고 싶다는 솔직한 충동, 이 상반된 두 가지가 일으키는 갈등을 생각하면 기분이 나빠진다. 마음이 혼란스러워져 이런 갈등 자체가 싫어지면,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기분이 되어 서랍이나 벽장 한구석에 처박아 놓을지도 모른다. ... 무명이란 진리의 빛이 비추어지지 않는 혼란한 상태이다. 마음속에 있는 진정 어두운 영역이다. 스스로 자신이 보이지 않는 영역을 늘려가는 것이기도 하다. 이 무명이란 영역은, 욕망에 따라 물건을 점점 더 많이 소유하고 집착할수록 점점 더 커진다.
안드레아 울프, <자연의 발명>
인간은 기억과 정서적 반응을 통해 자연을 경험하고 이해한다.
라 로슈푸코, <잠언과 성찰>
사람들은 곧잘 기억력이 나쁘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판단력이 둔하다는 것은 아무도 개탄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머릿속에 넣어 두는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왜 상대방에게 했던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카트린 지타,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
당신이 항상 가지고 다닐 수 있을 만큼만 소유해라. 언어를 배우고, 국가를 이해하고, 사람들을 받아들여라. 당신의 기억력이 곧 당신의 여행 가방이 될 수 있도록...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혜민 스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냥 내가 / 약간 손해 보면서 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사십시오. / 우리는 자신이 한 것은 잘 기억하지만 / 남들이 나에게 해준 것은 쉽게 잊기 때문에, / 내가 약간 손해 보며 산다고 느끼는 것이 / 알고 보면 얼추 비슷하게 사는 것입니다.
구본권, <로봇시대, 인간의 일>
우리에게 기억은 의도적 망각과 삭제의 과정을 거친 결과이고 추상화 작용의 핵심이다. 망각은 인간 기억 기능의 결함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추상화와 일반화를 가능하게 해서 창의력과 통찰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전략적 선택이다.
기억을 외부에 의존하는 행위가 스스로 무지함을 깨닫지 못한 채 자신에게 지식이 있는 것으로 잘못 판단하게 만든다는 말은 인터넷 환경에서 더욱 돋보이는 통찰이다. 기억은 우리가 주의력을 집중하는 정도에 따라 자세하게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외부 기억장치에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 뇌는 그 대상에 주의력을 덜 할당하게 된다.
우리가 경험과 학습을 통해 형성하는 기억의 총체가 곧 의식이자 삶이다. 풍부한 기억이 곧 풍요로운 삶이다. 친구와 가족, 배우자가 각별한 것도 서로 공통된 기억을 통해 삶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 기억은 비록 부실하지만 우리가 부여받은 값진 선물이다.기억의 아웃소싱은 결국 사람의 본질적 특성인 사고와 판단마저 기계에 위임하는 결과로 연결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고하는 존재인 우리는 편리하다고 주요 기억을 함부로 외부에 맡겨서는 안 된다.
강상중,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인간의 비극은 '미래를 예측하고 싶어 한다'는 것과 '기억한다'는 것에서 기인합니다. 과거를 아쉬워하고 미래를 불안해하기에 마음의 병을 얻게 된다는 말이지요.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나쁜 소녀의 짓궂음>
대부분의 작가에게 기억은 상상의 출발점이다. 상상은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날아간다. 기억은 그런 상상을 소설을 향해 발사하는 트램펄린이다. 작품 속에서 기억과 창안은 종종 작가조차도 풀 수 없을 정도로 뒤섞인다. 소설에서는 기억이 꿈과 용해되거나, 꿈이 기억과 용해된다.
데이비드 호크니 / 마틴 게이퍼드, <그림의 역사>
우리는 기억을 통해 세계를 바라본다. 같은 사람을 보더라도, 만약 내가 그를 잘 알고 있다면, 그를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 기억은 당신의 기억과 다르다. 우리가 같은 시간, 같은 곳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동일한 것을 동일하게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김난도 외, <트렌드 코리아 2018>
행복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물질보다 경험에 돈을 지불할 때 사람은 더 큰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다. 물건은 구입한 직후부터 싫증을 느끼게 되는 반면 경험은 시간이 지날수록 긍정적인 기억만 남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소비자의 두 손에 무엇을 들릴 것이냐보다 소비자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 거이냐가 더 중요하다.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기주, <언어의 온도>
음식을 맛보며 과거를 떠올린다는 건, 그 음식 자체가 그리운 게 아니라 함께 먹었던 사람과 분위기를 그리워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운 맛은, 그리운 기억을 호출 한다.
여행길에 오른 사람은 언젠가는 여행의 출발지로 되돌아온다. 돌아갈 곳이 없다면 그건 여행이 아니라 방황인지도 모른다. 행여 여행길에서 하염없이 방황하고 있다 해도 낙담할 이유는 없다. 방황이 끝날 무렵 새로운 목적지를 향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훗날 그 방황은 꽤 소중한 여행으로 기억될 테니까.
니콜라스 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기계에 기억을 아웃소싱할 때 우리는 지성이나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 역시 아웃소싱하는 것이다. 기억을 아웃소싱하면 문화는 시들어간다.
피코 아이어, <여행하지 않을 자유>
삶의 상당 부분은 우리 머릿속에서 벌어진다. 기억이나 상상, 추측이나 해석 같은 것들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바꾸기만 해도 내 삶을 훌륭하게 바꿀 수 있을 것만 같다.
시어도어 젤딘, <인생의 발견>
생각은 혼자 두면 외롭고 무력하다. 생각은 소통을 통해 수정되어야만 남들에게도 의미 있는 생각이 된다. ... 모든 개인은 각자의 감성과 기억을 토대로 새로 흡수한 정보를 생각으로 형성한다. 그리고 생각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접하기 전에는 그 나름의 가치를 모른다.
최근의 뇌과학 연구에서 기억이 손상된 치매 환자는 미래를 생각하는 것도 어려워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망각의 어둠 속으로 빠져들수록 미래는 텅 비어간다. 사람들이 과거에 환상을 품을수록 미래에 대한 생각도 환상이 된다. 시각 기억이 선명할수록 미래는 더욱 시각적인 형태를 띤다. 따라서 기억은 과거의 것만이 아니고 미래를 구축하기 위한 구성 요소다. 기억의 폭이 좁을수록 미래를 폭넓고 독창적으로 구상할 가능성도 줄어든다. 기억을 먹여살리는 방법은 몸을 먹여살리는 방법만큼 중요하다. 개인의 경험만으로 구성된 식단은 빈약하지만 남들에게서 습득한, 사실상 살아 있거나 죽은 모든 인류에게서 습득한 간접 기억으로 보완할 수 있다. 기억이 빈약하면 이전에 가본 곳 말고는 앞으로 어디로 갈지를 상상할 수 없다.
김연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우리는 인생을 두 번 산다. 처음에는 실제로, 그 다음에는 회고담으로. 처음에는 어설프게, 그 다음에는 논리적으로. 우리가 아는 누군가의 삶이란 모두 이 두번째 회고담이다.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이다.
레이 커즈와일, <마음의 탄생>
우리 뇌가 작동하는 방식
우리 기억은 순차적이며 그 순서는 정해져있다. 입력된 순서대로만 출력할 수 있다. 우리는 기억의 순서를 거꾸로 뒤집지 못한다.
뇌에는 이미지, 비디오, 소리를 기록하고 저장하는 장치가 없다. 우리 기억은 패턴의 나열로 저장된다. 자주 접근하지 않는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진다.
우리 뇌는 패턴을 인지한다. 정보의 일부분만 인지하더라도 (보더라도, 듣더라도, 느끼더라도) 또는 정보가 일부분 변형되더라도, 우리 인지능력은 패턴의 변하지 않는 특징을 명확하게 감지해낸다.
우리는 끊임없이 미래를 예측하고 앞으로 무엇을 경험할지 가정한다. 이러한 기대는 우리가 실제로 인지하는 내용에 영향을 미친다.
대상이나 상황을 인식할 때 우리는 길게 나열된 리스트가 아니라, 정교하게 포개어진 계층으로 기억한다.
우리의 의식적인 인지경험은 그것을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을 본다.
생각의 작동방식 측면에서 두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방향성 없는 생각으로, 논리와 무관한 생각을 촉발하는 것이다. 낙엽을 쓸거나 거리를 걷다가 몇 년 전 기억이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처럼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라고 해도, 그것은 아무 관련성 없이 떠오른 것이 아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모든 패턴은 언제나 순서대로 촉박되며, 기억 역시 그러한 과정을 거쳐 떠오른다. 따라서 과거의 어떤 장면이 눈앞에 갑자기 떠올랐다고 해도, 그 기억을 떠올리기 전부터 그 기억을 암시하는 어떤 '힌트'로부터 출발하여 그 장면이 떠오를 때까지 우리 마음속에는 무수한 패턴의 촉발이 일어난 것이다. 기억을 촉발한 계기가 명확하게 인지될 수도 있지만 어렴풋할 수도 있고, 전혀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인지한다고 해도 연관성이 떨어지는 비선형적인 연상들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장면을 떠올리기 위해서는 연상되는 여러 기억을 종합하여 좀더 생생한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한다. 뇌는 그림이나 소리를 그대로 저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희인, <여행의 문장들>
기억을 조금이라도 잃어버려봐야만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기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억이 없는 인생은 인생이라고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의 통일성과 이성과 감정 지어지는 우리의 행동까지도 기억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을. 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 루이스 부뉴엘의 말,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문요한, <여행하는 인간>
기록의 과잉은 여행에의 몰입을 방해한다. 우리는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로 더 이상 타인의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않는다. 심지어 가족의 전화번호조차 외우지 못하기도 한다. 디지털 시대를 사는 우리의 뇌는 갈수록 할 일이 없다. 기억의 저장고가 점점 내부에서 외부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에서 사진 등 촬영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뇌는 덜 느끼고 덜 기억한다. 가뜩이나 바쁜 일정으로 인해 여행의 감동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데, 과도한 기록 작업은 여행을 더욱 메마르게 만든다. 미국의 비평가 수전 손택은 <사진에 관하여>에서 이러한 세태를 꼬집었다. 그녀는 노동 윤리가 냉혹한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일수록 사진 찍기에 더욱 집착한다고 본다. 하루 종일 일하는 것이 몸에 밴 사람들은 휵를 가거나 일하지 않을 때 불안감을 느끼는데, 사진 촬영을 열심히 함으로써 일 비슷한 것을 하고 있다고 안심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희망을 가지고서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망각 할 수 있어서다. 아이들이 늘 웃을 수 있는 것은 나쁜 일을 오랫동안 곱씹지도, 필요 이상으로 자책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잘 잊을 수 있는 망각 능력 즉, '쾌망'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여행을 할 때 우리의 기억은 어떻게 될까? 놀랍게도 우리의 기억 기능과 망각 기능이 동시에 활성화된다. 즉, 여행 중에는 나쁜 일을 빨리 잊어버릴 수 있다. 반면 잊고 있던 추억이나 잊고 싶은 아픈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그것도 전혀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말이다. 낯선 공간에서의 새로운 자극이 우리 안에 감쳐둔 기억과 감정을 일깨우는 것이다.
사사키 후미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물건은 기억해주는 주인을 잃을 때 가치도 함께 잃는다.
로버트 M. 피어시그,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과거는 과거를 기억할 수 없으며, 미래는 미래를 생성할 수 없다. 지금 여기 이 순간이야말로, 촌각에 해당하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항상 존재하는 모든 것의 총체, 바로 그것이다. 가치 - 즉, 현실을 움직이는 동력 장치의 맨 앞 표면 - 는 더 이상 구조의 우발적 부산물이 아니다. 가치는 구조를 선행한다. 가치란 대상에 대한 지적 활동 이전에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전지적인 인식으로, 구조를 낳는 것은 이 전지적인 인식이다. 우리의 구조화된 현실은 가치에 근거하여 미리 선택된 것으로, 구조화된 현실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조화된 현실의 모태가 된 근원적 가치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
미하엘 엔데, <모모>
차라리 음악을 듣지 않고, 색채들을 보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선택을 하라고 했다면, 이 세상 어떤 것을 준다고 해도 음악과 색채에 대한 기억과 바꾸진 않았으리라. 그 기억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모모는 깨닫게 되었다. 이 세상에는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없으면,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파멸에 이르는 그런 보물이 있다는 사실을....
도정일, <뱔들 사이에 길을 놓다>
기억과 사유, 상상과 표현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독특한 능력들의 목록을 대표한다. 인간이 천사를 향해 자랑할 것도 그 네 가지 능력으로 집약된다. 인간은 기억하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존재이다. 그 네 가지 능력의 어느 것도 완벽하지 않다. 기억은 수많은 구멍들을 갖고 있고 사유는 불안하다. 상상은 기억과 사유의 한계를 확장하지만 유한한 경험의 울타리를 아주 벗어나지는 못하다. 표현의 형식과 내용도 시간성에 종속된다. 그러나 기억, 사유, 상상, 표현의 인간적 시도들은 그것들이 지닌 한계 때문에 무용해지는 것이 아니라 유한한 것들만이 가지는 순간적 아름다움의 광채를 포착하고 표현하기 때문에 위대하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블랙스완>
심각한 심리적 질병들은 주변 환경에 대한 통제력-주변 환경에 대한 '이해' 능력-을 상실했다는 느낌을 동반한다. 예술과 달리 과학의 목적은 조직된 느낌을 얻거나 기분을 전환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도달하는데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식을 심리 치료 요법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전통적인 지식에는 기억이란 컴퓨터 디스켓처럼 자료를 차례차례 이어서 기록하는 장치로 여겨진다. 그러나 실제 기억은 마치 같은 종이 위에 글을 계속 쓰는 것과 같아서(혹은 처음의 글을 새로 고쳐 쓰는 것과 같아서) - 정적인 것이 아니라 - 역동적이다. 이는 그만큼 과거의 정보가 강력한 힘을 발휘해 주기 때문이다. 기억은 역동적이되 단순히 스스로 새롭게 보충해 나가는 자동기계는 아니다.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는 이 최신 사건을 기억하면서 이전의 기억에 이를 덧붙여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자기도 모르게 발휘하지 않는가? (19세기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인간의 기억을 팰림프세스트'palimpsest', 즉 이전에 쓴 글을 지우고 그 위에 새로운 글을 쓴 양피지에 비유한바 있다)
우리는 인과관계의 사슬 속에서 기억을 끄집어내고, 무의식적으로 이를 수정해 나간다. 우리는 새로 발생한 사건까지 감안하여 논리적으로 들어맞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 짓기를 되풀이한다.
제러미 리프킨, <소유의 종말>
"새롭게 떠오르는 체험 경제에서는 상품이 아니라 '기억'을 만든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령 제조업체는 상품을 <체험화> 해야 한다. 자동차 회사는 <모는 체험>을, 가구업체는 <앉는 체험>을, 가전 업체는 <닦는 체험과 요리하는 체험>을, 의류 업체는 <입는 체험>을 격상시키는 데 주력해야 한다.
박웅현, <책은 도끼다>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동받는 것이다. 지식이 많은 친구들보다, 감동을 잘 받는 친구들이 일을 더 잘한다. 감동을 잘 받는다는 건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지식은 기억으로부터 온다. 그러나 지혜는 명상으로부터 온다. 지식은 밖에서 오지만 지혜는 안에서 움튼다. 안으로 마음의 흐름을 살피는 일. 이것을 일과 삼아 해야 한다.
손철주,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기억은 실물을 덮어버린다. 풀은 초록색이라는 기억, 사람의 팔은 양쪽이 같다는 지식이나, 눈은 둘이요 코는 하나라는 정보 등은 그림의 진실을 수용하지 못하게 한다. 교양에 복종하지 않는 천진함, 대상의 고유한 진실을 파악하는 어린아이의 눈이 그림을 그림으로 보게 한다. 그림을 보되 겉모양만 보는 사람은 달을 가리켰으되 달을 쳐다보지 않고 손가락을 보는 사람과 같다.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귀중한 요소들은 현실보다는 예술과 기대속에서 더 쉽게 경험하게 된다. 기대감에 찬 상상력과 예술의 상상력은 생략과 압축을 감행한다. 이런 상상력은 따분한 시간들을 잘라내고, 우리 관심을 곧바로 핵심적인 순간으로 이끌고 간다. 이렇게 해서 굳이 거짓말을 하거나 꾸미지 않고도 삶에 생동감과 일관성을 부여하는데, 이것은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보푸라기로 가득한 현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기억은 단순화와 선택을 능란하게 구사한다는 점에서 기대와 흡사하다. 현재를 긴 영화에 비유한다면, 기억과 기대는 거기에서 핵심으로 꼽힐 만한 장면들을 선택한다.
박노해, <다른길>
집이란 이렇게 사고 파는 부동산 가치가 아니라
내 삶의 무늬를 새기며 오래될수록 아름다워지는
지상의 단 하나뿐인 기억과 소생의 장소이니.
조정래, <정글만리>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한다.' - 조지 산타야나
이현석, <여행자의 인문학>
에빙하우스의 '보유곡선'은 '망각곡선'....
'보유'와 '망각'의 골은 깊어 보인다. 하지만 그물을 볼 때 씨줄과 날줄을 보는 이도 있고, 그 사이의 공간을 보는 이도 있는 것처럼 그것은 같은 상황을 달리 받아들이고 해석한 것일 뿐이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기억하는 일(보유)은 누군가를 잊어가는 일(망각)인 셈이다. 그리움으로 치환된 기억. 어쩌면 우리는 그것을 '망각'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오르한 파묵, <내이름은 빨강>
안다는 것은 본 것을 기억하는 것이며, 본다는 것은 기억하지 않고도 아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란 무엇인가?> 인터뷰 중에서
기억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재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은 일종의 연료 역할을 하지요. 타오르면서 인간을 따뜻하게 해주거든요. 제 기억은 일종의 궤짝과 같아요. 그 궤짝에는 수없이 많은 서랍이 달려 있답니다. 어떤 서랍을 열면 고베에서 보낸 소년 시절의 광경이 떠올라요. 공기의 냄새도 맡을 수 있고, 땅도 만질 수 있고, 초록색 나무도 볼 수 있답니다. 그게 제가 책을 쓰고 싶어하는 이유지요.
도정일,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보르헤스의 천국과 도서관. 과거, 현재, 미래가 만나고 기억과 상상력이 용접되는 곳, 지적 모험의 땅, 돈도 비자도 필요 없는 여행지, 국경과 인종과 계급이 영원히 퇴각한 코즈모폴리턴의 세계, 거기가 도서관이다.
인간은 기억과 망각의 균형 속에서 그의 현재를 관리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이것이 기억과 망각의 변증법이다. 양자 균형이 깨질 때 인간은 기억의 노예가 되거나 유쾌한 망각의 바보가 된다. "잊지 마라"라는 기억 명령은 과거의 신성화와 신비화를 위한 명령일 때에는 죽음을 동반할 수 있다. 그러나 기억은 과거를 섬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봉사하기 위한 것이다. 망각도 그러하다. 비편력이 마비될 때 망각은 죽음의 책략이 된다. 그러나 기억과 마찬가지로 망각도 건강한 현재를 위해 필요하며, 이 경우에만 망각은 유용성을 갖는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보려고 찾다가 우연히 읽게 된 롤프 포츠의 <VAGABONDING, 여행의 기술>...
조화와 현재에 의미를 두는 삶의 가치와 단순하고 여유로운 삶을 통한 여행자, 순례자로서의 인생 여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본문 발췌]
vagabonding
vagabond -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로 라틴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
질서 있는 세상을 떠나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시간을 연장해가며 여행하는 행위
창의성, 모험, 깨달음, 단순함, 발견, 자립, 현실, 독립독행, 영적인 성장 등에 초점을 맞춰 개인적으로 의미있게 여행하는 방법... 독립성, 융통성, 협상력, 계획, 대담성, 자급자족, 즉흥적 대처 능력...
여행의 자유를 만끽하게 해주는 계획적인 삶의 한 방식
불확실한 것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을 때 여행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돈과 삶을 결부시킬 때 우리는 자유를 사기엔 턱없이 가난하다는 확신이 더해질 뿐이다.
세상을 느긋하게 걸어보겠다는 마음가짐은 배거본딩에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그러나 배거본딩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삶에 대한 조망이다. 풍요와 가능성이 보장된 정보화 시대에서 배거본딩은 개인의 재산을 추구하기보다 선택 가능성을 폭넓게 찾아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배거본딩은 정상적인 삶에서 모험을 찾는 것이며, 모험 안에서 정상적인 삶을 찾는 것이다.
"삶의 최고 황금기를 보내버린다. 우리 삶에서 가장 가치 없는 시간에 의심쩍은 자유를 즐길 돈을 벌겠다면서 말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떠난다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계속 움직이는 것이다. 뭔가가 마음에 맞지 않기 때문에 방향을 바꾼 것이 아니다. 당신이 일상적인 틀에 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떠나는 것은 불만의 토로가 아니라 긍정적 선택이다. 인생의 여정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방향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직장이든 습관이든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쪽으로 계속 움직이기 위한 방향 전환이다. - 피코 아이어
우리 삶을 단순화시킬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은 확대를 중단하고,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어지러운 물건들을 줄이는 것이다.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의견을 좇아 살기란 어렵지 않다. 혼자 살면서 당신만의 결정에 따라 사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은 군중과 더불어 살면서도 고독이란 자존을 아름답게 지켜가는 사람이다. - 랠프 왈도 애머슨, <자존>
단순하게 살아갈 때 대담해질 수 있고, 낯선 땅과 가슴으로 만날 수 있다. 또한 당신의 열정과 호기심을 좇아 독립심을 가지고 새로운 길을 걷는 것을 허락하는 것도 바로 단순한 삶이다. 집에서나 길에서나 단순하라! 그래야 지금까지는 거의 무시되어 왔지만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 즉 당신의 삶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는 시간의 여유가 허락될 것이다.
단순한 삶을 통해서 소로는 진정한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는 "남아도는 부는 불필요한 것을 살 수 있을 뿐이다. 영혼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을 사는 데에는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역설했다.
전통적인 매체가 다양하고 폭넓은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정보들은 건전한 의미에서 의구심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그 이유는 많은 매체, 특히 텔레비전과 잡지는 당신의 관심을 끄는 데 주안점을 두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에 대한 균형 잡힌 분석은 뒷전이다. 뉴스는 전쟁과 재앙, 선거와 유명인사, 스포츠 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과 보통 장소는 화석화되어버린다. 달리 말하면 이 세상에 없는 존재처럼 비쳐진다.
훌륭한 여행자는 계획에 연연하지 않는다. 목적지에 닿는 것만이 여행의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서두르고 싶지 않다. 서두름! 20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좀먹는 독약이다. 무엇인가를 재촉하고 서두른다는 것은 그것에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다른 것에 눈을 돌리고 싶다는 뜻이다. - 로버트 M, 퍼시그, <선 그리고 오토바이 관리법>
배거본딩은 특정한 목적지나 목표가 없는 순례와 같다. 달리 말하면 어떤 답을 구하기 위한 탐색이 아니라 의문 자체를 소중히 하는 여행이다. 모호한 것을 포옹하고, 길에서 부딪치는 모든 것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여행이다. 실제로 분명한 일정과 목표를 갖고 길을 떠나면 기껏해야 일정에 맞춰 목표를 성취하는 기쁨밖에 누리지 못한다. 하지만 눈을 크게 뜨고 호기심만으로 길을 떠나면 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장소를 옮길 때마다 사방에서 손짓하는 유혹의 손길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 아니겠는가!
우리도 새로운 세계를 하찮은 편견의 눈으로 평가하는 경향을 띤다. 달리 말하면, 우리 눈앞에 펼쳐진 새로운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프리드리히 니체도 "어떤 조건에서나 우리 눈은 새롭고 일탈된 것을 포착하는 것보다 이미 익숙해진 것을 재생산하는 데 더 익숙하다. 또한 귀도 새로운 소리를 듣는 것을 힘겨워하고 고통스러워한다. 그래서 낯선 음악은 잘 듣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새로운 것을 발견했을 때 자신의 문화에 길들여진 시각으로 관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무런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여행의 참뜻이 목적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 있다면, 여행의 참뜻이 새로운 것을 향한 깨달음과 열린 자세를 갖는 데 있다면 매순간이 여행일 수 있다.
낭만적 연애중이면서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라 생각하는 연인이나, 결혼의 현실에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어줄 수 있는 알랭 드 보통의 현실 사랑 이야기....
[본문 발췌]
결혼: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
의사 전달을 잘하는 기본 요건은 자신의 성격 중 더 문제가 되거나 더 특이한 면이 있더라도 그 때문에 당황하지 않는 능력이다.
잘 들어주는 사람은 의사 전달을 잘 하는 사람 못지않게 드물거나 중요하다. 잘 들어주는 사람 역시 특별한 자신감이 그 비결이다. 어떤 확고한 가정에 심각한 도전이 될 수 있는 정보로 인해 경로를 이탈하거나 그 무게에 무너져 내리지 않을 수 있는 수용력 말이다. 잘 들어주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라면 마음속에 얼마간 담아둘 혼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이미 경험을 통해 모든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못 가진 것에 아파하기 보다는 가진 것을 소중히 한다면 좋겠다.
굴욕, 분노, 위협의 수준을 높여 개인의 발전을 앞당긴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꺾이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자아가 신랄한 모욕을 감당한 결과로 더 이성적이되거나 자신의 성격을 더 깊이 통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 성격의 고질적인 측면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 따뜻하게 접근한다기보다 우리의 천성을 야멸치고 분별없이 공격하는 것만 같은 제언에 맞닥뜨리면, 우리는 방어적이되고 과민해질 수밖에 없다.
성숙함이란 낭만적 사랑이 사랑을 주기보다는 찾기를, 사랑하기보다는 사랑받기를 추구하는 데 주로 초점을 맞춘 편협하고 다소 인색한 감정일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의미한다.
아이들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은 봉사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아이는 어른에게 사랑의 다른 측면을 가르쳐준다. 진정한 사랑은 까다롭고 불쾌한 행동 이면에 놓여 있을지 모르는 무언가를 최대한 관대하게 해석하려는 끊임없는 시도를 수반한다는 점이다. 부모는 울음, 발길질, 슬픔, 화가 진정 무엇 때문인지를 짐작해야 한다. 이 해석 활동의 두드러진 특징이자 평범한 성인들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해석 양상과 확연히 차별되는 점은 자애심이다. 부모는 아이가 기본적으로 선하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괴로워하고 아파할 수는 있겠지만, 단지 아이를 찌르고 있는 핀을 확인하고 제거해주면 아이는 즉시 타고난 천진함을 회복할 것이라고, 아이가 울 때 우리는 아이가 심술궂거나 자기 연민에 빠졌다고 비난하지 않고, 무엇이 불편하게 만드는지를 생각한다. 아이가 깨물 때 우리는 아이가 틀림없이 겁을 먹었거나 순간적으로 골이 났을 거라 생각한다. 또한 배고픔, 소화 장애, 수면 부족이 기분에 서서히 미칠 수 있는 영향도 잘 알아본다. 만일 이 본능을 성인들의 관계에 조금이라도 도입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친절한 사람이 되겠는가? 그렇다면 성인들의 관계에서도 심술궂음과 잔임함을 보아 넘기고 거의 항상 그 이면에 깔려 있는 두려움, 혼란, 피로를 감지해낼 수 있다. 인류를 사랑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이런 의미일 것이다.
아이는 비정상으로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행히 아직 아이의 상상 속에 그런 범주가 없다. 아이의 감정은 아직 무방비 상태이고, 현재로서는 창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이는 품격, 똑똑함, 남자다움의 개념, 즉 재능과 정신을 파멸로 이끄는 억제 요인들을 아직은 모른다.
어떤 관점에서는, 공상을 확실한 현실로 바꿀 수 있는 삶을 추구하는 대신에 판타지를 지어내야 하는 신세가 처량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판타지는 대개 다수의 모순된 소망으로부터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선의 결과물이다. 판타지가 존재하는 덕분에 하나의 현실을 파괴하지 않고 다른 현실에 거주할 수 있다. 판타지는 완전히 무책임하고 무섭도록 기이한 우리의 충동으로부터 우리가 아끼는 사람들을 모면시킨다. 판타지는 나름대로 인류의 성취이자 문명의 결실이며, 친절한 행동이다.
그런 변덕스러움을 배경에 놓자 외교적 기술, 즉 항상 생각한 대로 말하지 않고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 절제력이 얼마나 중요한지가 눈에 들어온다.
낭만주의 결혼관은 '알맞은' 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우리의 허다한 관심사와 가치관에 공감하는 사람을 찾는 것으로 인식된다. 장기적으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너무 다양하고 특이하다. 영구적인 조화는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파트너는 우연히 기적처럼 모든 취향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롭고 흔쾌하게 취향의 차이를 놓고 협의할 수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