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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1.13 [검색사전] 여행(旅行)
  2. 2019.09.18 [검색사전] 고독(孤獨)

여행은 현재에 충실하며 다른 환경과 사람에 대한 수용성을 높이고 과정을 즐기며 더 많은 생각을 하지만 생각이 행동으로 표현되는, 소유와 집착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이다.

 

법정 스님의 글 중에 "시끄럽고 어지러운 세상 살이이기 때문에 때로는 맑고 고요하고 한적한 삶의 여백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여백을 통해서 시들해지기 쉬운 일상을 비춰봄으로써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보고 개선할 수 있다. 개선과 개혁이 없는 삶은 한낱 타성이고 습관에 지나지 않는다. 타성과 습관은 사람을 찌들게 하고 시들게 한다."고 했다. 

 

우리는 가끔 삶의 긍정적 변화의 시간으로서 여행, 그리고 인생의 쉼표를 잘 활용하기 위한 용기를 내야한다.

 

 

 

여행(旅行), 명사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

[비슷한 말] 경섭(涉), 유람(覽), 정행(行)

 

(네이버 영어사전) travel, traveling, trip, tour, journey, travel, (formal) journey, take a trip, go on a trip      

여행을 가다 take a trip, go on a trip

해외여행을 떠나다 leave on a trip overseas

해외여행을 떠나다 travel abroad

배낭여행을 가다 go backpacking, go on a backpacking trip

여행 일정을 짜다 plan one's trip[itinerary], arrange the schedule for the trip

여행 잘 다녀오세요 Have a nice[pleasant] trip. Bon voyage.

나는 지난주에 여행에서 돌아왔다 I came back from the trip last week.

그들은 7개월 동안이나 여행을 했다 They traveled[journeyed] for seven long months.

여행 경비는 어느 정도로 계획하고 계십니까? How much are you planning on spending on your trip?

올 여름에는 식구들과 남해안을 여행하기로 했다 I decided to travel[go on a trip] to the south coast with my family this summer.

여행은 잘 다녀오셨어요? How was the trip? Have you enjoyed your trip? Did you have a good[nice] trip? Were your travels good?

발리는 신혼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Bali is a popular honeymoon destination. Bali is in the spotlight as a honeymoon destination.

 

 

 

[시, 글과 책 속에 쓰인 '여행'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

 

 

'나는 나를 지나쳐 왔다' - 박노해

 

인생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나는 너무 서둘러 여기까지 왔다

여행자가 아닌 심부름꾼처럼

 

계절 속을 여유로이 걷지도 못하고

의미있는 순간을 음미하지도 못하고

만남의 진가를 알아채지도 못한 채

 

나는 왜 이렇게 삶을 서둘러 멀어져 왔던가

달려가다 스스로 멈춰서지도 못하고

대지에 나무 한그루 심지도 못하고

아닌건 아니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주어진 것들을 충분히 누리지도 못했던가

 

나는 너무 빨리 서둘러 왔다

나는 내 삶을 지나쳐 왔다

나는 나를 지나쳐 왔다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나간다.

 

우리가 여행으로부터 얻는 즐거움은 여행의 목적지보다는 여행하는 심리에 더 좌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여행을 하는 심리란 무엇인가? 수용성이 그 제일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용적인 태도를 취하면,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새로운 장소에 다가가게 된다. 어떤 것이 재미있고 어떤 것이 재미없다는 고정관념은 버리게 된다. 

 

 

리칭즈, <여행의 속도>

살아가면서 어떤 속도로 이동하는가에 따라 인생의 풍경이 달라진다.

 

어쩌면 우리의 여행도 더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동경일지 모른다.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곳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나에 대해 부단히 성찰하고 반성한다. 여행은 우리를 바꾸며, 우리를 만든다. 안도 다다오가 말했던 것처럼 "여행은 사람을 만든다."

 

사고, 생명, 관찰, 이동에서 출발하는 여행 개념....

    * 사고에서 출발하다 : 탐색의 여행, 사고의 여행, 창조의 여행, 문학의 여행

    * 생명에서 출발하다 : 기억의 여행, 근원을 찾아 떠나는 여행, 성장의 여행, 선택이 여행, 인생이 여행

    * 관찰에서 출발하다 : 탐색의 여행, 건축의 여행

    * 이동에서 출발하다 : 속도의 여행, 비행기여행, 기차여행, 도로여행, 항해여행, 미로여행

 

우리는 누구나 잠시 이 땅에 의탁해 기거하다 떠나는 여행자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이 모두 끝났을 때 내가 세상에서 사용했던 육신을 비롯한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 홀가분하게 저세상으로 떠나고 싶다. 어쩌면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또 다른 여행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도정일,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보르헤스의 천국과 도서관. 과거, 현재, 미래가 만나고 기억과 상상력이 용접되는 곳, 지적 모험의 땅, 돈도 비자도 필요 없는 여행지, 국경과 인종과 계급이 영원히 퇴각한 코즈모폴리턴의 세계, 거기가 도서관이다.

 

여행자는 흔희 두가지 만남을 경험한다. 그는 여행길에서 많은 것을 보되 그가 본 어느 것도 소유하지 못한다. 새로운 것, 아름다운 것, 탐나는 것들이 제아무리 많아도 그는 그냥 빈손으로 돌아가야 한다. 소유의 왕국에서 해방된 사람처럼 그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소유할 수 없다. 여행이란 그러므로 소유와 집착으로부터의 자유로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그 낯선 자유와의 만남이다. 그리고 그는 남의 나라, 그 타자의 고장에 와서 어렵쇼, 어찌된 건가, 거기서 마치 거울 속의 자신을 만나듯 제 나라 자기고장,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여행은 그러나 이런 두 개의 만남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세번째 만남이 있다. 제 나라에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이 이미 이전의 자기가 아님을 문득 깨닫는다. 남의 고장에서 제 나라를 발견한 사람은 제 나라에서도 남의 고장을 발견한다. 그에게 가장 익숙하고 친숙한 것들에서 그는 그가 몰랐던 타자의 얼굴을 만나는 것이다. 그는 바뀌어 있다.

 

낯선 나라를 통해 되비쳐오는 제 나라의 얼굴 만나기, 그것이 여행의 한 소득이라면 대학 생활의 가장 자랑할 만한 성과도 나 아닌 것, 타자, 다른 세계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를 알고 넓어지는 것이다. 이 자기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자기에게 질문 던질 줄 아는 성찰과 비판의 능력이다. 질문하는 능력의 확장을 보장하기 위해 사회가 대학에 인정하는 높은 특권이 대학의 자유, 학문의 자유다. 그것은 특권이되 모든 기득권을 거부하고 진리의 소유 주장을 심문하는 특권, 정신의 가장 활발하면서도 겸손한, 그리고 겸손해지기 위한 특권이다.

 

 

박웅현, <다시, 책은 도끼다>

어디를 여행하는지는 중요한 것 같지 않습니다. 어떤 눈을 가지고 여행하느냐가 정말 중요한 것이죠.

 

나란히 누워 서로의 살갗을 부비는 집들, 담장들, 빤히 들여다보이는 이웃들의 꿈, 가난, 숨결들. - 포구 기행

 

눈앞에 걸여야 할 길과 만나야 할 시간들이 펼쳐져 있는 사실만으로 여행자는 충분히 행복하다. - 포구 기행

 

짧은 길을 긴 시간을 들여 여행한 사람은 경험상 행복한 사람입니다. - 포구 기행

 

 

최갑수,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오랜 시간 여행을 떠나보면 살면서 필요한 웬만한 것들은 60리터 배낭에 다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며칠 푹 쉬다 보면 세상에 할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에쿠니 가오리의 말처럼 내 인생과 무관하게 세상은 무사히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

 

여행은 언제나 돈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다. - 코엘료

 

어차피 시간은 지나가고, 시간은 우리에게 의미 따위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우리는 경험하고 늙어갈 뿐이다. 코엘료 역시 단호하게 말한다. "시간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건 피로하다는 느낌. 나이를 먹었다는 느낌뿐이지"라고. 맞다. 그리고 이 또한 우리가 여행을 떠나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푹신한 침대에 누워 TV를 보고 있어도, 때볕이 내리쬐는 사막을 걷고 있어도 우리는 어차피 늙어가고 있으니까.

 

'사랑'을 '여행'으로 바꿔보았습니다. "여행이 없으면 사는 게 얼마나 밋밋하겠어요? 여행은 우릴 흥분시키고 즐겁게 해주죠. 여행을 하면 삶은 모험의 연속이 되고, 만남은 순간순간 아찔한 경이가 된답니다. 물론 늘 그런 건 아니지만요. 그래도 전 여행이 현대 생활의 가장 큰 불행, 즉 권태로부터 우릴 지켜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이긴 하지만 우린 지나칠 정도로 보호받으며 살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에게 여행은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모험이지요. 우릴 늘 젊게 만들어주는 여행만세예요." - 프랑수아 를로르, <꾸뻬 씨의 사랑 여행>

 

 

로버트 M. 피어시그,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 가치에 대한 탐구>

우리에게 즐거운 시간을 재는 척도란 '시간' 보다는 '즐거운'에 역점이 맞춰진 것이다. 이처럼 역점을 달리하면 사물에 접근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꾸불꾸불한 언덕길이 시간적으로는 더 걸릴지 모른다. 하지만 길이 꾸부러질 때마다 정해진 공간 안에서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는 자동차 대신, 몸을 옆으로 기울이기만 하면 되는 모터사이클을 타고 여행할 때는 그러한 꾸불꾸불한 길이 한결 더 즐거운 여행길이 된다. 교통량이 적으면 적을수록 여행길은 더욱더 즐거워지게 마련이며, 게다가 안전해지기까지 한다. 근처에 휴게소나 옥외 광고판이 없을수록 좋은 길이며, 작은 숲이나 초원, 과수원이나 잔디가 갓길에 가급적 맞닿아 있을수록 더 좋은 길이다. 그런 길로 여행을 하다 보면, 지나가는 도중 손을 흔들어주는 아이들과 만나거나 누가 지나가는지를 현관에서 바라보는 사람들과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길을 묻기 위해 멈추었을 때 바라던 것보다도 한결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사람들과 만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어디에서 왔는지 얼마 동안 여행을 하고 있는지를 물어보는 사람들과도 만날 수 있다.

 

때때로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목적지를 향해 여행하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내 삶을 풍부하게 해준 것은 여행과 꿈이었다. 내 영혼에 깊은 골을 남긴 사람이 누구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꼽을 것이다. 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 조르바...'

 

 

이권우, <여행자의 서재>

권리로서 여행이란, 달리 말하면 월경하기다. 경계를 넘어선다는 말처럼 매력 넘치면서 위험한 것이 어디 있던가. 한발만 넘어서면 꿈에도 그린 곳이기는 하나 낯설어 두려운 곳이 펼쳐진다. 그 역설에서 호기심과 탐험심이 발동하는 법이고 여행이 시작된다. 새로운 곳으로 발 딛기는 존재의 전환 가능성을 상징한다. - 김연수, <여행할 권리>

 

왜 여행을 하는가? 어디 가서, 무엇을 보고 마실 것인지보다 왜 떠나야 하는지 고민하는 이가 돌아올 때 달라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 알랭드 보통, <여행의 기술>

 

자기 체험을 소재로 삼아 거기서 생각의 자원을 건져내는 장이라는 의미에서 학문과 여행은 공동의 토대를 지닌다. 체험에 육박하지 못하고 감정으로 고양되지 못하는 학문과 여행은 생명력을 갖지 못한다. 대신 날것의 체험과 감정이라면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없다. 그리하여 자칫 지식과 개념에 걸러질 수 있는 개체의 체험과 감정을 소중히 다루되, 사변적 언어로 그 체험과 감정을 정제하지 않고 개체가 지닌 개성을 훼손하지도 않으면서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표현을 일권내야 한다. 바로 이 여행이 내게 안기는 사고의 실험리자 여행이 공부로서의 의미를 갖는 이유다. - 윤여일, <여행자의 사고 셋>

 

사람이 여행을 하는 것은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행하기 위해서이다. - 괴테

 

여행은 녹인다, 우리의 아집과 자존심을. 다른 이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의 아픔을 공감하는 능력이 훨씬 향상된다는 사실도 경험한다. - 쿠르트 파이페, <천천히 걸어, 희망으로>

 

여행의 즐거움의 반은 길 잃음의 미학이다. - 레이 브래드버리

 

여행의 본질은 '발견'이다. 전혀 새로운 것 앞에서 변화하는 나 자신, 그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것! - 다치바나 다카시

 

걷는 다는 것은 존재의 확인 과정이다. 우리는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이 우리를 만들고 해체한다. 여행이 우리를 창조한다. - 다비드 르 브르통

 

행복한 여행의 가장 큰 준비물은 가벼운 마음이다. - 생텍쥐페리

 

누구도 제 눈으로 제 얼굴을 볼 수는 없다. 비춰진 얼굴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어쩌면 여행이란 거울을 만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선입견과 편견, 그리고 아집에 물든 만큼 더 멀리, 더 자주 여행을 떠나야 할지 모른다. - 손호철, <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보다>

 

 

문요한, <여행하는 인간>

긴 여행은 삶 전체를 새롭게 할 수 있는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여행을 계기로 시간에 대한 주도권이 내게 넘어온 것이다. 만성적인 조바심이 약해졌다. 신기한 것은 삶의 속도가 느려지면서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지기는커녕 오히려 시간이 남는 듯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시간부자란 시간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시간부자란 자신에 맞게 삶의 속도를 조절할 줄 알고, 그 순간에 빠져들어 오염되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시간에 대한 주도성을 되찾지 못한다면 아무리 시간이 많다고 해도 우리는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없으며 타임 푸어가 될 수밖에 없다. 여행은 자신의 페이스를 되찾고 주도적으로 시간을 쓰는 방법을 읽힐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나만의 여행 테마가 있을 때 여행이 더욱 깊어진다.

 

여행에서 우리는 시간표에 길들여진 삶에서 벗어난다. 새로운 공기와 낯선 풍경은 감각의 문을 두드린다. 감각의 문이 서서히 열리면 우리의 지각은 보다 분명해진다. 우리는 여행지에서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고, 귀에 와 닿지 않는 소리까지 듣게 된다. 생각은 자꾸 우리를 과거와 미래로 끌고 가지만 감각은 우리를 현재에 머무르게 해준다. 감각이 살아나기에 우리는 점점 '지금-여기'에 존재할 수 있다.

 

'그대의 존재가 적으면 적을수록, 그대가 그대의 삶을 덜 표출할수록, 그만큼 그대는 더 많이 소유하게 되고, 그만큼 그대의 소외된 삶은 더 커진다.', 나는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에서 접한 칼 마르크스의 말에서 현대인들이 어떻게 해야 저장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찾았다. 바로 존재를 키우고 삶을 표현하는 것이다. 현대인에게 있어 존재를 키우고 삶을 표현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 대표적 행위가 여행이라고 본다. 여행의 시간 동안 우리의 존재감은 커지고 우리는 살아 있음을 체감할 수 있다. 그러면 자연히 소유욕과 저장강박이 약해진다. 일본의 한 사진작가에 의하면 몽골인은 평생 가지고 있는 물품이 300여 개인데 비해 일본인은 한평생 6200여개를 갖는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평생을 여행하듯 사는 사람에게는 많은 것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불필요한 욕망을 걷어내고 소유에 덜 연연할 수 있다. 그것은 자유의 지평을 한 차원 넓혀준다. 불필요한 내부의 욕망에서 벗어나는 것은 단순히 외적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과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자유다. 그 자유는 때로는 여행이 끝난 후의 삶으로도 확장된다. 그 자유를 경험함으로써 덜 쓰고 덜 일하되 더 여유로운 삶을 모색할 수 있다. 마음의 에너지가 물질을 소유하는 대신에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쪽으로 흐르게 된다.

 

 

전규태, <단테처럼 여행하기>

인간은 사랑과 죽음, 그리고 여행을 통해서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실감한다.

 

여행이란, 정착사회의 번거로움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켜보려는 욕구의 발로다. 여행이란, 안전한 일상생활과 다른 이질적인 세계로, 긴장을 내내 수반한다. 예컨대 편리한 환경에서 불편한 환경으로, 넉넉한 생활에서 모자라는 삶으로 스스로를 옮겨보는 과정인 것이다. 여행이란, 안전할 수도 있고 호사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여행자는 늘 자유분방해야 하며, 고독한 인간성의 회복을 위해 나서야만 한다. 여행이란, 여행자에게 있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다. 자기 안의 '고독한 인간'을 만나는 즐거움이다. 스스로의 인생뿐 아니라 인류의 오랜 역사를 새삼스럽게 발견하는 놀라운 체험이다.

 

여행은 새로운 생각의 산파다. 새로운 생각은 색다르고, 새로운 장소에서 난다. 여행은 깨우침의 미학이다. 단테의 <신곡>처럼....

 

여행한다는 것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이고, 관습에서 탈피하는 일이며,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는 일이다. 굳이 해방을 꾀하는 여행이 아니더라도 여행을 하다보면 누구나 자유로워진다. ... 여행은 끊임없는 과정이다. ... 여행, 사랑, 죽음은 모두 벗어나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희인, <여행의 문장들>

다른 사람들은 작품을 발표하거나 일을 하고 있는데 나는 오히려 3년 동안이나 여행을 하며 머리로 배운 모든 것을 잊어버리려 했다. 배운 것을 비워버리는 그러한 작업은 느리고도 어려웠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로부터 강요당했던 모든 배움보다 나에게는 더 유익하였으며, 진실로 교육의 시작이었다. -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여행은 배움의 공간이지만 비움의 시간이기도 한 것.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텅 비우는 것 역시 우리가 진정 배워야 할 소양이 아닐까. 나는 그런 '텅 빈 여행'을 사랑한다. 정해놓은 목적지 없이 버스터미널 시간표의 낯선 지명 앞에 서는 그런 시간을 사랑한다. ... 일부러 세상을 떠돌아도 쉽게 찾을 수 없는 쓸쓸함이 거기(꼬창) 가득했다. 바다가 태양을 품으면 찬란함으로 가득하고, 낭만을 품으면 사랑으로 가득하고, 분노를 품으면 파괴로 가득하겠지만, 쓸쓸함을 품으면 얼마나 거대한 슬픔과 고독을 빚어내는지 알 것 같았다. 

 

많은 시인과 여행자들이 모두 저 변함없이 흐르는 구름을 꿈꾸지 않았던가? 만일 구름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세상에 여행자들이 그토록 많이 생겨났을까? 바람 같은 것이 있지만, 역시 여행자의 스승은 저기저 지향도 없이 형체도 없이 떠다니는 구름, 구름이 아니었을까?

 

"어디로라도! 어디로라도! 이 세상 바깥이기만 하다면!"이라 읊었던 보들레르의 시에서 비로소 근대적인 '여행의 정신'을 발견하게 된다. 여행에 관한 철학 서적인 <여행의 기술>에서 저자 알랭 드 보통은 보들레르를 평생에 걸쳐 항구, 부도, 역, 기차, 호텔방과 대양을 가로지르는 배를 사랑한 시인으로 그리고 있다. 목적지보다는 떠남 자체를 동경한 보들레르의 생각을 통해 여행이 '생각의 산파'임을, 내적인 사유를 끄집어내고 자신과 대화를 이끌어내는 공간임을 얘기한다.

 

 

린위탕(임어당), <생활의 발견>

독서술을 체득하고 있는 사람은 가는 곳마다 만물이 변하여 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산수, 바둑, 술도 책이 될 수 있고, 달, 꽃도 또한 책이 될 수 있다. 현명한 여행자는 가는 곳마다 풍경이 있는 것을 안다. 책과 역사는 풍경이다. 술도 시도 풍경이다. 달도 꽃도 또한 풍경이다.

 

옛날 어느 문인은 말하였다. 10년을 독서에 바치고, 10년을 여행에 바치고, 10년을 그 보존과 정리에 바치고 싶다고.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보존에 10년을 바칠 것까지는 없고 2,3년으로 족하다고. 독서와 여행이 내 욕심을 만족시키려면 두 배나 다섯배라도 아직 부족하다. 욕심대로 하자면, 황구언이 말한 것처럼 인간 3백 세의 수명을 보존할수밖에 없다.

 

옛날에는 여행은 놀이였으나 지금은 일이 되어버렸다.

 

그릇된 여행..

  • 정신 향상을 위한 여행... 가이드와 함께하는 여행

  • 이야기거리를 얻기 위한 여행... 사진에 정신이 팔려서 정작 명소를 볼 여가가 없는 여행

  • 빈틈없는 여정표에 따른 여행... 집에 있을 때에는 시계에 결박당하고 캘린더에게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고, 외출을 해도 여전히 시계에 결박당하고 캘린더에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곤 하는 것..

 

여행의 참다운 동기는 속세를 피하고 사람을 피하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 좀더 시적인 표현을 빌어서 말하자면, 망각을 위한 여행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 참다운 여행자에게는 항상 방랑의 기쁨, 유혹, 모험심 등이 있다. 여행이란 '방랑'을 뜻하는 것이다. 방랑이 아닌 것은 여행이 아니다. 여행의 본질은 의무도 없고 일정한 계획도 없고, 편지도 없고 호기심 많은 이웃도 없고, 환영회도 없고 목적지도 없는 나그네 길이다. 훌륭한 나그네는 어디로 갈 것인지도 모르고 또 어디서 왔는지도 모른다. 아니, 자기 성이나 이름조차 모른다.

 

방랑의 정신이 있어야만 비로소 사람들은 휴가를 이용하여 자연에 접근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여행자들은, 인적이 드물고 참다운 고독을 즐길 수 있으며 자연과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을 피서지로 찾아가고 싶어한다.

 

나그네가 몸에 지녀야 할 필수적인 도구는 '가슴속의 재부(才賦)와 눈썹 밑의 신안(神眼)'이다. 사물을 느끼는 마음과 사물을 보는 눈을 구비하고 있는가 없는가가 문제다. 이것이 없이 산에 오르는 것은 시간과 금전의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가슴속의 재부와 눈썹 밑의 신안'만 구비하고 있다면 비록 산에 들어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집에 그대로 머물러 들판을 소요하면서 뜬구름, 개, 생울타리, 외로이 서있는 나무들을 관찰하면서 여행의 커다란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이희인, <여행자의 독서>

진정한 여행은 어느 정도 삶을 변화시킨다고 믿는다. ... 삶에 작은 변화라도 없었다면 당신은 진정한 여행을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이다.

 

가장 멋진 여행은 아직 떠나지 않은 여행이며, 가장 훌륭한 책은 아직 쓰이지 않은 책이다. 아직 읽지 않은 책, 아직 가지 않은 여행을 향한 마음이 간절할 때, 어쩌면 그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인지도 모른다.

 

확인하러 가는 것도, 감탄하고 오는 것도 모두 여행이다. 실망하러 가는 것만큼이나.

 

 

김현성, <따시델레 티벳>

여행을 하려면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 시간과 돈, 그리고 건강이다.

 

여행은 다리 떨릴 때 가는 것이 아니라 가슴 떨릴 때 가는 것이다.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 - 마르셀 프루스트

 

 

롤프 포츠, <Vagabonding, 여행의 기술>

불확실한 것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을 때 여행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훌륭한 여행자는 계획에 연연하지 않는다. 목적지에 닿는 것만이 여행의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 노자, <도덕경>

 

여행의 참뜻이 목적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 있다면, 여행의 참뜻이 새로운 것을 향한 깨달음과 열린 자세를 갖는 데 있다면 매순간이 여행일 수 있다.

 

 

여행자 / 기형도

 

그는 말을 듣지 않는 자신의 육체를 침대 위에 집어 던진다

그의 마음속에 가득 찬, 오래된 잡동사니들이 일제히 절그럭거린다

이 목소리는 누구의 것인가,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인가

나는 이곳까지 열심히 걸어왔었다, 시무룩한 낮짝을 보인 적도 없다

오오, 나는 알 수 없다, 이 곳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내 정체를 눈치챘을까

그는 탄식한다, 그는 완전히 다르게 살고 싶었다, 나에게도 그만한 권리는 있지 않는가

모퉁이에서 마주친 노파, 술집에서 만난 고양이까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중얼거린다, 무엇이 그를 이곳까지 질질 끌고 왔는지, 그는 더 이상 기억도 못한다

그럴 수도 있다, 그는 낡아빠진 구두에 쑤셔박힌, 길쭉하고 가늘은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고 동물처럼 울부짖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

 

 

허소라, <한 번의 퇴사 열 번의 남미>

우리가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하게 되면 오감이 열리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게 된다. - 미쉘 옹프레, <철학자의 여행법>

 

 

유시민, <유럽 도시 기행>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데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나는 도시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로운 것을 배운다. 나 자신과 인간과 우리의 삶에 대해 여러 감정을 맛본다. 그게 좋아서 여행을 한다. 그러려면 도시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건축물과 박물관, 미술관, 길과 공원, 도시의 모든 것은 '텍스트(text)'일 뿐이다. 모든 텍스트가 그러하듯 도시의 텍스트도 해석을 요구하는데, 그 요구에 응답하려면 '콘텍스트(context)'를 파악해야 한다. 콘텍스트는 '텍스트를 해석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말한다. 도시의 건축물과 공간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생각과 감정과 욕망, 그들이 처해 있었던 환경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다. 누가, 언제, 왜, 어떤 제약 조건 아래서, 어떤 방법으로 만들었는지 살피지 않는 사람에게, 도시는 그저 자신을 보여줄 뿐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지는 않는다.

 

 

마르셀 프루스트, <독서에 관하여>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언제나 자신에게서 벗어나 여행하기를 원하는 법이다.

 

 

요한 볼프강 괴테, 데키나 오사무 편저, <괴테 청춘에 답하다>

여행은, 때로는 잠시 고민을 잊게 해주고, 때로는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돌아오게 해준다.

 

 

정철,<한글자>

삶, 삶은 한 장의 풍경화. 산이 있고 나무가 있고 물이 흐르는 풍경화. 해가 뜨고 해가 지고 달이 뜨는 풍경화. 때론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부는 풍경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풍경화. 시시하고 지루하고 하품 나오는 풍경화. 그런데 잘 살펴보면 조금은 특별한 풍경화. 그림 속 어딘가에 내가 등장하는 풍경화. 그러니까 풍경화 속에 자화사이 들어 있는 풍경화. 자화상이니까 내 손으로 그려야 하는 풍경화. 하루에 점 하나라도 찍어야 하는 풍경화. 붓이 없으면 손에라도 물감을 묻혀야 하는 풍경화. 먼지가 쌓이면 안 되는 풍경화. 먼지 대신 세월을 쌓아야 하는 풍경화. 세월이 쌓이면 깊이가 쌓이는 풍경화. 깊이가 쌓이면 쉽게 탈색되지 않는 풍경화. 남의 집에 걸어 놓을 수 없는 풍경화. 남에게 보여 주는 에 정신 팔리면 안 되는 풍경화. 처음부터 끝까지 남에게 다 보여줄 수도 없는 풍경화. 남에게 같이 그리자고 조를 수도 없는 풍경화. 누구나 딱 한장씩만 그려야 하는 풍경화. 처음부터 다시 그리겠다고 떼를 쓰면 안 되는 풍경화. 하지만 실수나 실패가 얼마든지 허용되는 풍경화. 잘못 그은 선, 잘못 칠한 색도 그 위에 덧칠을 하면 다 용서가 되는 풍경화. 등을 돌리지 않는 풍경화. 기다려 주는 풍경화. 그러니 쉽게 찢어서도 안 되고 마지막 순간까지 붓을 놓아서도 안 되는 풍경화. 다 그리고 나면 누구나 '그리 나쁘지 않았던 여행'이라는 똑같은 제목을 붙이는 길고 긴 풍경화.

 

 

정철, <불법사전>

여행: 지금 내 자리에 내가 없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는 공부.

 

여행의 첫번째 가르침. 내가 없어도 별 일 없다는 건 여행을 마음껏 즐겨도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자주 떠날 것. 그곳에서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돌아올 것.

두번째 가르침. 내가 없어도 별 일 없다는 건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자주 떠날 것. 그곳에서 나를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날 것.

가르침의 결론. 어쨌든 자주 떠날 것.

 

 

김영하, <말하다>

과거에는 여행지마다 특색이 있었으나 지금은 여행지들이 평균화돼었요. 미국과 서구의 여행자들이 여행 문화를 평준홯했어요. 어딜가도 하얀 침대보가 깔려 있고, 어딜 가도 아메리칸 스타일이죠. 여행지들은 비슷비슷해졌고, 그래서 여행이 가지고 있는 긴장과 흥분 같은 것들이 빠르게 사라졌어요. 지금은 다른 방식의 여행에 흥미를 갖고 있어요. 관심이 있는 어느 한 도시에 오래 머무는 방식의 여행인데요. 예를 들면 로마와 같은 지역에 숙소를 잡아서 오래 머무는 방식이죠. 전통적인 여행보다는 '산책가로서의 여행'으로 관심이 넘어가고 있어요. 여행을 하는 게 아니라 옮겨다니면서 사는 삶에 가깝죠.

 

 

김영하, <빛의 제국>

인간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게 돼. 나한테도 여러 번 그런 순간들이 있었어. 그 선택들이 쌓여서 지금의 내가 된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 그게 인간이 시간여행을 하지 못하는 이유다. 과거로 돌아가 아주 사소한 거 하나만 바꿔도 이 세상은, 지금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은 존재할 수가 없게 되는 거야. 

 

 

김영하, <여행의 이유>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내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은 우리를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시킨다. 

 

내 발로 다녀온 여행은 생생하고 강렬하지만 미처 정리되지 않은 인상으로만 남곤 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모호한 감정이 소설 속 심리 묘사를 통해 명확해지듯, 우리의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더 명료해진다. 세계는 엄연히 저기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세계와 우리 사이에는 그것을 매개할 언어가 필요하다. 내가 내 발로 한 여행만이 진짜 여행이 아닌 이유다.

 

준 만큼 받는 관계보다 누군가에게 준 것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세상이 더 살 만한 세상이 아닐까. 이런 환대의 순환을 가장 잘 경험할 수 있는 게 여행이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

 

 

E. F. 슈마허 외, <자발적 가난>

발걸음이 가벼울수록 여행도 가볍듯, 삶의 여정에서 가난함으로 필요를 줄인 사람은 더 행복하고, 부의 무게 아래 신음하지 않는다. - 미누시우스 펠릭스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물론 오래 살아서 차비라도 벌어놓은 사람은 언젠가는 기차를 타게 되겠지만 그때는 활동력과 여행 의욕을 잃고 난 다음일 것이다. 이처럼 삶의 가치가 가장 떨어지는 시기에 미심쩍은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인생의 황금 시절을 돈 버는 일로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 고국에 돌아와 시인 생활을 하기 위하여 먼저 인도로 건너가서 돈을 벌려고 했던 어떤 영국 사람이 생각난다. 그는 당장 다락방에 올라가 시를 쓰기 시작했어야 했다.

 

홀로 여행하는 사람은 오늘이라도 떠날 수 있다. 그러나 동행이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므로 출발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혜민 스님,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자신의 것이 세상에서 최고라고 하는 사람은 대개 자기 우물 밖에서의 경험이 많지 않습니다. 세계를 여행하고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은 자신의 것이 세상에서 최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자기 자신에게는 최고인 것 같다고 말합니다.

 

 

니콜라스 카, <유리감옥>

스코틀랜드에 있는 애버딘 대학의 인류학자인 팀 잉골드Tim Ingold는 도보 여행과 차량 여행이란 두 가지 아주 상이한 여행 방식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도보 이동은 이 세상에서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존재 방식이다. 도보 여행자는 주변 환경과 그 느낌과 특징에 심취하고 동화되면서 행동과 지각이 긴밀하게 결합된 움직임을 경험한다. 도보 여행은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 내지는 자기 재생의 과정이 된다. 반면에 차량 여행은 본래부터 목적지 도달이 목적이다. 이는 생활하면서 경험하는 발견 과정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사람들과 상품들을 온전히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건네주는 것에 불과하다. 차량 여행자는 실제로 어떤 의미 있는 방식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그는 몸소 승객이 되어 이동된다."

 

 

김태진, 백승휴, <아트인문학 여행>

아트, 인문학, 여행, 이들 셋을 나란히 놓고 보면 공통점이 있다. 그건 우리를 성장시켜 현실을 '낯설게 보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여행은 떠남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곳을 둘러보고 다르게 살아가는 이들과 만나고 돌아올 때 우리는 보다 객관적인 시야를 갖게 된다. 예술은 예술가의 눈을 빌어 자연이 숨겨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체험이다. 그것에 감동할 때 '그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폭넓고 진지한 통찰을 배우는 것이다. 그 통찰의 맨끝에는 '낯선 나 자신'이 있다. 낯설게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익숙한 것들 속에 숨어 있던 새로움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된다. 당장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것, 말하자면 본질 같은 것.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창조성의 핵심이기도 하다

 

 

최인철, <굿 라이프>

재미와 의미가 모두 높은 활동. 여행, 걷기, 운동, 먹기, 수다 등과 같은 동적이고 감각적인 활동과 명상, 종교활동, 자원봉사와 같은 정신적이고 영적이며 타인을 지향하는 활동도 다수 포함.

 

여행이 큰 행복을 주는 이유.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재미와 의미가 모두 높은 다른 활동을 동반(먹고 수다 떨고 걷고 노는 행위가 한꺼번에 일어나는 활동), 여행은 행복에 가장 중요한 기본 욕구들(유능감, 자율성, 관계)이 극대화되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여행은 스스로 원해서 하는 자발적 행위이고, 업무와 달리 성과가 평가되지 않기 때문에 유능감에 대한 위협이 적으며, 대개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하는 관계재(relational goods)이기 때문에 관계를 강화해준다. 여행을 계획하는 단계에서부터 행복은 극대화된다. 일정, 숙소, 볼거리, 먹거리를 찾고 기획하는 일을 통해 자율성, 유능감, 그리고 관계의 유대감이 충족되기 시작한다.

 

여행과 이주를 보는 우리의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여행은 단순한 레저가 아니며, 이주는 생계를 위한 고육직책만이 아니다. 그것들은 개인에게는 확장된 자아, 개방적 자아를 심어주는 일이고, 사회에게는 미래를 위한 장기 투자다. 무엇보다 삶의 품격을 세우는 일이다.

 

이동하는 자, 여행하는 자에게는 열린 의식이라는 분명한 이점이 있다.

 

 

정재승, <열두 발자국>

평생에 거쳐 반드시 해야 하는 것들이 바로 독서, 여행, 사람들과의 지적 대화입니다. 다시 말해 끊임없이 세상으로부터 자극을 받으시라는 겁니다. 의미 있는 세상과의 충돌, 이것이 우리의 인생을 바꿉니다. 이 세 가지는 자기가 직접 물리적 환경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기주, <한때 소중했던 것들>

"인생은 모두가 함께하는 시간여행이다. 매일매일 사는동안, 우리가 할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 멋진 여행을 만끽하는 것이다. 매일 매일 열심히 사는것, 마치 그날이 내 특별한 삶의 마지막 날인 듯이...인간은 누구나 비슷한 길을 걸어간다. 결국에는 늙어서 지난날을 추억하는 것일 뿐이다. ... 결혼은 상냥하고 따뜻한 사람하고 하거라. ... 이제 난 시간여행을 하지 않는다. 하루를 위해서라도 나의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이 멋진 여행을 즐길 뿐이다." - 영화 / 어바웃 타임

 

 

전주희,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

인간의 시간이란 연속적이지 않다. 시계가 가리키는 초침과 분침은 균질적이지만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이란 기억과 미래일 뿐이다. 현재는 늘 순식간에 과거로 흘러가 기억으로 쌓인다. 기억으로 쌓인 시간이 미래를 정확하게 그릴 수 없다는 것은 언제나 정해진 시간에서 벗어나는 시간, 다른 시간을 꿈꿀 수 있는 이탈의 가능성을 포함한다. 하지만 자본의 시간, 부채가 결정하는 시간은 이러한 인간의 시간을 설계하고 계산하며 통제한다. 부채가 인간의 삶을, 인간의 모든 시간을 강탈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면 기억과 미래라는 연속적이지 않은 인간의 시간은 화폐가치로 환산된 시간표가 될 것이다. 1교시가 끝나면 어김없이 2교시가 기다리는 시간의 연속이 삶의 전부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사건을 찾아 여행을 떠나지 않는 개인에게는 시간이란 지금-지금-지금이 무한히 반복되는 시간만이 남겨지게 될 것이다.

 

 

박완서, <잃어버린 여행가방>

내가 지금까지 해온 여행은 과정을 무시한 목적지 위주의 여행이었다. 그게 얼마나 바보 여행이었던가를 알 것 같았다. 어디를 가기로 정하면 먼저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갈 수 있는 교통편을 강구하고, 가면서 통과하게 되는 고속도로나 국도변의 풍경은 가능한 빨리 스치는 게 수였다. 공업화, 산업화, 관광지화를 꿈꾸거나 이미 이룩한 지방들은 자연도 인심도 도시의 변두리일 뿐 순전한 시골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휴가라는 명목으로 여행을 갔다 오면 더욱이 피곤하고 짜증스러워지는 것은 관광 인파와의 부대낌 때문만은 아니다. 가도 가도, 심지어 산간벽지까지도 골고루 걸레처럼 널려 있는 문명의 쓰레기와 상업주의 때문에 이 땅에서 도시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한 어쩔 수 없는 결과였을 것이다. - 남도기행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잘하는 건 없습니다. 좋아하는 건 있어도. 걸어서 여행하는 것, 수영하는 것, 책 읽는 것.

 

 

신영복, <담론,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우리가 일생 동안 하는 여행 중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낡은 생각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오래된 인식틀을 바꾸는 탈문맥입니다. ... 우리는 생각이 머리에서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전두엽이 변연계에서 형성되는 이미지를 생각이라고 한다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잊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 생각은 가슴이 합니다. 생각은 가슴으로 그것을 포용하는 것이며, 관점을 달리한다면 내가 거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생각은 가슴 두근거리는 용기입니다. 공부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애정과 공감입니다. - '가장 먼 여행'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먼 여행이 남아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발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삶의 현장을 뜻합니다. 애정과 공감을 우리의 삶 속에서 실현하는 것입니다. 공부는 세계 인식과 인간에 대한 성찰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이 공부이고 공부가 삶이라고 하는 까닭은 그것이 실천이고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공부는 세계를 변화시키고 자기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며, '가슴에서 끝나는 여행'이 아니라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 '가장 먼 여행'

 

"여행이란 떠나는 것이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고, 자기의 성城을 벗어나는 것이 여행의 가장 첫 번째 의미입니다. 그다음이 '만나는 것'입니다. 자기를 떠나지 않고는 새로운 것을 만나기도 어려운 법입니다. 자기가 익숙한 공간과 사고를 결별한다는 것. - '우엘바와 바라나시'

 

여행은 떠나고 만나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종착지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 변화된 자기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비단 여행에서만 확인되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하면 여행만 여행이 아니라 우리의 삶 하루 하루가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통과 변화는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의 존재 형식입니다. 부단히 만나고, 부단히 소통하고, 부단히 변화하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여행도 그렇고, 우리의 삶도 그렇고, 우리가 함께 만들고 있는 인문학 교실도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우엘바와 바라나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인생수업>

소유하던 것을 잃은 슬픔이 가시고 나면 자신이 좀더 자유로워지고, 세상을 가볍게 여행할 수 있게 되었음을 깨닫습니다.

 

 

카트린 지타,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

여행은 당신에게 적어도 세 가지의 유익함을 줄 것이다. 첫째는 세상에 대한 지식이고, 둘째는 집에 대한 애정이고, 셋째는 자신에 대한 발견이다. - 브하그완 S. 라즈니쉬

 

당신이 항상 가지고 다닐 수 있을 만큼만 소유해라. 언어를 배우고, 국가를 이해하고, 사람들을 받아들여라. 당신의 기억력이 곧 당신의 여행 가방이 될 수 있도록...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호프 자런, <랩걸>

식물은 우리처럼 공간을 이동하면서 여행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식물은 장소를 이동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사건을 하나하나 경험하고 견뎌내면서 시간을 통한 여행을 한다.

 

 

구본권, <로봇시대, 인간의 일>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여가가 대중사회에서 대중화, 민주화되었다는 것은 여가 활동이 누구나 손쉽게 구매하고 소비할 수 있는 상품이 되었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것이 여행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대니얼 부어스틴은 1962년 <이미지의 환상>에서 지난날 일종의 모험이자 '수고로운 일travail'로서의 고유한 경험이던 여행travel이 대중사회화와 상품화로 인해 누구나 구매할 수 있는 관광tour으로 변한 현실을 지적했다. 미지의 모험이자 예측 불가능한 경험의 연속이라는 여행의 본질은 사라지고 모든 과정이 예측되고 통제되는 준비된 '상품'으로서의 이미지만 남아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수고로움과 위험을 동반한 '트래블'이 '투어'가 되면서 여행의 진짜 경험은 사라져버리고 사진 찍기용 상품이 되어버린 가짜 사건pseudo-event의 연속이 되어버린 것이다.

 

 

로제 폴 드루아,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

여정이 얼마나 지속되는지는 중요치 않다. 일단 이 움직임이 시작되면 3초건 3일이건 우리는 걷거나 생각한다. 철학적 생각 속에서 위대한 여행, 긴 흐름의 항해를 이어갈 수 있고, 한평생 이어질 질문들을 파고들 수 있다. 아니면 그저 매 분, 매 시간, 일상을, 현재의 몸짓들을, 우리가 투사하는 모든 것을, 발생하는 상황에 대한 대답들을 생각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건, 생각하기와 걷기는 서로 닮았다. 생각 또한 불안정한 균형을 통해 나아간다. 무한히 균형을 잃었다가 되찾으면서 멀리 나아간다.

 

걷기가 절뚝이는 것이고, 넘어지다가 다시 만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 여행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똑같이 지속적인 불균형, 똑같은 중심 상실과 되찾기로 이루어진다.

 

 

아베 히로시 / 노부오카 료스케, <우리는 섬에서 미래를 보았다>

나는 인간이 본래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등산과 도보 여행을 통해 배웠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그런 것이 생활 속에서 조용히 틀어지고 만다. 조금 깊이 들여다보니 자본주의 등 문명의 발전만을 중시해 온 사회 시스템의 한계가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로가 마주할 순 없는 걸까? 사회 조직이 따뜻한 인간관계를 방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서은국, <행복의 기원>

행복한 이들은 공연이나 여행 같은 '경험'을 사기 위한 지출이 많고, 불행한 이들은 옷이나 물건 같은 '물질' 구매가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스티븐 핑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여행이 우리의 정신을 넓히는 것처럼, 우리의 문화적 유산을 있는 그대로 둘러보는 것은 옛 사람들이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살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이기주, <언어의 온도>

밀도 있는 여행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사랑은 변하지만 사랑했던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여행旅行. 가슴에 불을 지피는 단어다. 일상의 버거움 때문에 자주 시도하지 못할 뿐이다. 여행의 사전적 의미는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에 가는 행위를 일컫는다. 하지만 이 정도 설명으로는 여행의 본질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럴 때는 단어와 문장의 수집가로 불리기도 하는 소설가와 시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봄 직하다. "참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 "여행은 도시와 시간을 이어주는 일이다. 그러나 내게 가장 아름답고 철학적인 여행은 그렇게 머무는 사이 생겨나는 틈이다." - 폴 발레리. 밑줄 그을 만한 문장이다. 이들의 이야기처럼, 우린 목적지에 닿을 때보다 지나치는 길목에서 더 소중한 것을 얻곤 한다. 어쩌면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은 '도착'이 아니라 '과정'인지 모른다. 그래서 난 장거리 이동을 할 때 비행기보다는 열차에 몸을 싣는 편이다. 기차를 타면 눈앞에 펼쳐지느느 풍경을 찬찬히 응시할 수 있다. 이동의 과정을 음미하면서 멀어지는 것과 가까워지는 것을, 길과 산과 들판이 내게 흘러들어오는 것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어디 여행뿐이랴. 인간의 감정이 그렇고 고나계가 그러한듯하다. 돌이켜보면 날 누군가에게 데려간 것도, 언제나 도착이 아닌 과정이었다. 스침과 흩어짐이 날 그사람에게 안내했던 것 같다. 한 번은 여행과 방황의 유사성에 대해 생각한 적도 있다. 둘 다 '떠나는 일'이란 점에서는 닮았다. 그러나 두 행위의 시작만 비슷할 뿐 마지막은 큰 차이가 있다. 여행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tour'는 '순회하다' '돌다'라느느 뜻의 라틴어 'tomus'에서 유래했다. 흐르는 것은 흘러흘러 제자리로 돌아오는 속성을 지닌다. 여행길에 오른 사람은 언젠가는 여행의 출발지로 되돌아온다. 돌아갈 곳이 없다면 그건 여행이 아니라 방황인지도 모른다. 행여 여행길에서 하염없이 방황하고 있다 해도 낙담할 이유는 없다. 방황이 끝날 무렵 새로운 목적지를 향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훗날 그 방황은 꽤 소중한 여행으로 기억될 테니까.

 

 

시라토리 하루히코, <니체의 말>

그때그때의 체험과 보고 들은 것을 그저 기념물로만 간직한다면 실제 인생은 정해진 일만 반복될 뿐이다. 그렇기에 어떤 일이든 다시 시작되는 내일의 나날에 활용하고, 늘 자신을 개척해 가는 자세를 갖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최고로 여행하는 방법이다. - 방랑자와 그 그림자

 

 

알랭 드 보통, <공항에서의 일주일>

여행은 내가 더 관대해지고, 덜 두려워하고, 늘 호기심을 느끼도록 도와준다

 

지혜로운 여행사라면 우리에게 그냥 어디로 가고 싶으냐고 물어보기보다는 우리 삶에서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 물어볼 수 있다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모든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여행의 내용이다. 어느 지점에 도달 했는가보다 어떻게 그곳까지 갔는가, 얼마나 많이 그 순간에 존재했는가가 여행의 질을 결정한다. 우리는 여행자이면서 동시에 여행 그 자체이다.

 

여행이 내게 준 선물은 삶과 세상에 대한 예찬, 그것이다. 광부는 수많은 돌들에 불평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광부의 눈은 보석을 발견할 뿐이다. 예찬하는 마음 역시 모든 돌들을 보석으로 만든다. 부자는 누구인가? 많이 감동하는 사람이다. 감동할 줄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다.

 

때로는 우회로가 지름길이다. 삶이 우리를 우회로로 데려가고, 그 우회로가 뜻밖의 선물과 예상하지 못한 만남을 안겨 준다. 먼길을 돌아 '곧바로' 목적지로 가는 것, 그것이 여행의 신비이고 삶의 이야기이다. 방황하지 않고 직선으로 가는 길은 과정의 즐거움과 이야기를 놓친다. 많은 길을 돌고 때로는 불필요하게 우회하지만,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 수 있다. 헤매는 것 같아 보여도 목적지에 도달해서 보면 그 길이 지름길이자 유일한 길이다.길들이 자세히 표시된 지도를 가끔은 접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길을 잘못 접어들어 들르게 된 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다.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 줄 수도 있는 것처럼. 신은 우리에게 길을 보여 주기 위해 때로는 길을 잃게 한다.

 

여행은 얼마나 '좋은 곳'을 갔는가가 아니라 그곳에서 누구를 만나고 얼마나 자주 그 장소에 가슴을 갖다 대었는가이다.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봐야 하며, 그것에는 시간이 걸린다. 세상의 모든 장소들은 사리와 숄로 얼굴을 가린 여인과 같다. 낯선 자가 다가오면 더 가릴 것이다. 그리고 그 색색의 천 뒤에서 검은 눈으로 쳐다볼 것이다. 세상에는 시간을 쏟아 사랑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가고, 또 가고, 또다시 가라. 그러면 장소가 비로소 속살을 보여 줄 것이다. 짐음 최소한으로 줄이고, 일정은 계획한 것보다 더 오래 잡으라. 인생은 관광tour이 아니라 여행travel이다. 그리고 여행은 고난travail과 어원이 같다. 장소뿐만 아니라 삶도 쉽게 속살을 보여 주지 않는다. 우리가 삶을 사랑하면 삶 역시 우리에게 사랑을 돌려준다. 사랑하면 비로소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뒤돌아보는 새는 죽은 새다. 모든 과거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날개에 매단 돌과 같아서 지금 이 순간에 여행을 방해한다.

 

 

닉 수재니스,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

늘 같은 경로를 오가는 통근길은 한 사람의 세계를 축소시킨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나의 아내가 매번 다른 길로 출퇴근한다고 해보자. 이는 그녀의 인식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 새로운 길에서 그녀는 시시각각 색다른 풍경을 경험하고,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 갈 것이다. 국제상황주의 예술운동이 제안한 '데리브(derive, 표류)' 개념과 흡사하게 걷기는 목표 지향의 여정이 아니라 자유롭게 즐기듯 표류하는 여행으로 간주된다. 즉 통근길이 오로지 목적지만을 향해가는 여정이 아닌 놀이하듯 이동하는 여행이 된다. 일상적인 것 너머의 낯선 차원으로 몸을 던지려면 우리의 시야는 열려 있어야 할뿐만 아니라 상상력으로 가득한 춤사위는 활발하고 생생하게 유지해야 한다. 우스꽝스러운 걸음을 걸어보는 매우 단순한 시도만으로 우리는 그렇지 않다면 보지 못했을 다른 차원으로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게 된다.

 

 

HK여행작가아카데미, <여행의 이유>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 헤르만 헤세

 

가장 위대한 여행은 지구를 열 바퀴 도는 여행이 아니라 단 한 차례라도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여행이다. - 마하트마 간디

 

 

최갑수, <당신에게 여행>

모든 순간이 여행이며 우리의 모든 추억은 찬란하다.

 

 

김동우, <트레킹으로 지구 한바퀴>

여행의 질은 무게에 반비례할 때가 많다.

 

여행은 경험이고 그 경험이 마음속 깊이 새겨진다. 여행은 일종의 중독입니다. 무엇보다 편하면 재미가 없죠. 힘든 여정이 점점 자신을 단련시킵니다. 여행 뒤 훨씬 강해진 나를 발견하게 되죠. 그래서 여행을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인생이 그렇듯 여행의 본질도 선택의 문제이긴 마찬가지다.

 

여행이 편할 줄만 알았다. 보고 먹고 자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여행은 온전치 않았고 만족스럽지 못했다. 여행도 넥타이를 매고 회사에 다니는 것처럼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여행 안에서 자유로웠지만 여행은 또 다른 숙제를 안겨주었다. 직장을 잡고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칠 때 여행은 점점 의식 속에서 사라져 갔다. 어쭙잖은 지식과 경험을 믿고 허세를 부리며 자만에 빠져 살던 시절이 있었다. 세계 일주의 시작 중국은 교만한 나를 일깨워주었다. 국경을 넘으며 난 여행을 다시 보고 있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여행이 여행이 아니었구나."

 

여행은 자신의 인생에 배워야 할 지식과 희로애락을 아우르는 공부의 시작이다.

 

여행은 가끔 생각지도 않은 장소와 상황에서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며 기쁨과 행복을 안겨준다. 우린 그걸 '인연'이라 부른다.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자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나리라. 그러면 임종의 순간에도 여전히 새로운 공간을 향해 즐겁게 출발하리라. - 헤르만 헤세 <유리알 유희> 중

 

 

장 그르니에, <섬>

사람들은 여행이란 왜 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언제나 충만한 힘을 갖고 싶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아마도 일상적 생활 속에서 졸고 있는 감정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활력소일 것이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한 달 동안에, 일 년 동안에 몇 가지의 희귀한 감각들을 체험해 보기 위하여 여행을 한다. 우리들 마음속의 저 내면적인 노래를 충동질하는 그런 감각들 말이다. 그 감각이 없이는 우리가 느끼는 그 어느 것도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 그것은 불가능한 일 -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하여 여행한다고 할 수 있다. ... 그런데 그 <자기 인식 reconnaissance>이란 반드시 여행의 종착역에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그 자기 인식이 이루어지고 나면 여행은 완성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통과해 가야 하는 저 엄청난 고독들 속에는 어떤 각별히 중요한 장소들과 순간들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 장소, 그 순간에 우리가 바라본 어떤 고장의 풍경은, 마치 위대한 음악가가 평범한 악기를 탄주하여 그 악기의 위력을 자기 자신에게 문자 그대로 <계시하여> 보이듯이, 우리들 영혼을 뒤흔들어놓는다.

 

 

클라우디오 마그리스, <다뉴브>

마그리스에 따르면, 여행은 사라지고 있는 무언가를 기록하는 것, '상실에 대한 저항'이다. "여행은 늘 구출작업, 사라져가고 있거나 조만간 사라질 뭔가를 서류로 남기고 수집하는 작업이며, 물에 잠기고 있는 섬에 마지막으로 상륙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자는 '망각에 대항하여 싸우는 작은 전사'다. 망각에 대항하는 '기억'은 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이데거, 루카치, 카네티 등의 집과 카프카가 죽은 병원, 수많은 박물관, 공동묘지, 무덤 등을 방문하며 그 안에 보존되어 있는 삶의 열정과 상처를 들여다본다. 마그리스의 말대로 "하나의 무덤은 쓰다 만 하나의 서사시로서, 숱한 소설을 만들어내고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또 울르므이 빵박물관에 있는 1914년과 1924년 사이 10년 동안 빵 1파운드의 가격 변화를 기록한 도표를 보면서, 개인의 삶을 단순한 통계자료로 변화시키고, 개인을 집단과정 속에 밀어넣어 순환시키며, 보편적인 것을 위대한 숫자 법칙으로 강등시키면서 개인의 삶을 통합시키는, 세계의 역사와 경제의 자동 메커니즘을 꿰뚫어본다.

여행자는 '향수에 젖어 일상생활을 기록하는 문헌학자'이기도 하다. 여행자는 큰 유적뿐만 아니라 길을 가다가 만나는 풍경의 아주 세세한 부분들, 역사의 유명인들뿐만 아니라 인식할 수 없는 흐린 흔적을 이 땅에 남기고 간 이름 없는 인물에게까지 관심을 쏟는다. 그뿐만 아니라 여행자는, 시간 속에 묻혀 있는 현실의 다양한 층위를 발견하고자 하는 '고고학자'다. 고고학자가 오랜 세월 땅에 묻혀 있다 드러난 작은 물건이나 장소를 통해 그 밑에 숨어 있는 과거의 역사, 생활, 습관, 사상 등을 발견하듯, 여행자도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것 뒤에 있는 이러한 과거의 다양한 층위들을 발견하고 그 현재적 의미를 다시금 되묻는 사람이다. "마치 낙엽이 쌓여 흙에 섞여 썩어가는 땅에 발을 내디뎠는데 무게에 눌려 낙엽들이 흩어지고 그 아래 있는 다른 낙엽 층, 즉 작년에 떨어져 썩어서 축축한 흙으로 변한 낙엽들에 신발이 빠지게 된 것과 같다."

 

 

이주헌, <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

여행은 떠나는 것이다. 떠나는 것은 나를 일상의 속박으로부터 풀어 주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나의 일상을 그만큼 풍요롭게 하기 위한 것이다. 예술도 우리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여행을 떠나 예술과 진솔한 만남을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나의 삶을 한 차원 높이는 행위이다. 그 결과 우리는 새로운 활력으로 일상에 임할 수 있다. 그러다가 우리는 다시 여행을 떠나고 또 예술과의 만남을 가진다. 그런 시간들이 반복되다 보면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의 여행이 되고 예술이 된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나그네요, 예술가다.

 

 

리 호이나키,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오늘날의 아이-어른들은 끊임없이 유동적이며, 언제나 새로운 일자리와 다른 도시를 찾아 헤매면서, 판에 박은 일상을 깨기 위해서 여행상품을 산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갈급증을 치유할 수가 없다. 그들은 휴가에 '이국적'이고 '흥미로운' 곳을 끊임없이 방문하여, 갈수록 심해지는 권태로움을 해소하고,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 필요한 돈을 버느라고 강박적으로 쫓기고 있다.  

 

어두워 지기 전에 돌아오는 것, 그것이 나들이의 기술이다. - 웬델 베리, '집에서의 여행' 중

 

 

베르나르 올리비에, <나는 걷는다>

홀로 외로이 걷는 여행은 자기 자신을 직면하게 만들고, 육체의 제약에서 그리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안락하게 사고하던 스스로를 해방시킨다. 순례자들은 아주 긴 도보여행을 마친 후엔 거의 예외 없이 변모된 자신의 모습을 느낀다. 이는 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스스로를 직면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발견할 수 없었을 자신의 일부를 만났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혼자 걷는 것을 선호해야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데, 여정에서 친구들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비 내리는 그리스에서 불볕천지 터키까지>

여행의 본질이란 공기를 마시는 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기억은 분명 사라진다. 그림엽서는 색이 바랜다. 하지만 공기는 남는다. 적어도 어떤 종류의 공기는 남는다.

 

 

스티브 도나휴,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

인생이라고 하는 이 여행이 종국에는 끝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의 인생은 더욱 활기를 띠게 된다. 여행을 할 때는 도착했음을 느낄 줄도 알아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면서 그것이 다음 도착지를 향해 내딛는 것임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안에는 여행과 목적지가 공존한다.

 

 

강신주, <철학이 필요한 시간>

여행을 통해 아무것도 얻지 못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아마도 그는 자기 자신을 짊어지고 갔다 온 모양일세." - 몽테뉴, 수상록

 

참다운 여행은 배움의 과정이어야 한다.

첫 번째 배움은 여행지와 그곳 사람들의 삶을 배우는 것. 두 번째 배움은 여행지에서 삶이 충분히 편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자신이 떠나온 일상이 낯설게 다가오는 것이다. 

 

진정한 여행을 떠난 사람은 자신이 도착한 낯선 곳에 익숙해질 때까지 그곳에 머물러야 한다.

 

여행은 차이의 경험이다. 낯선 여행지와 익숙한 일상 사이의 차이, 혹은 이제는 익숙해진 여행지와 낯설게 느껴지는 일상 사이의 차이. 이 두가지 차이를 동시에 겪어내야만, 여행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법정 스님,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여행길에 오르면 자기 영혼의 무게를 느낀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하며 살아왔는지, 자신의 속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여행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자기 정리의 엄숙한 도정이요, 생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이다. 그리고 이 세상을 하직하는 연습이기도 하다.

 

 

김한민, <그림 여행을 권함>

이렇게 나를 되돌아 볼 수 있을 때는 바쁨을 자각할 수라도 있지만, 문제는 우리가 바쁜 상태에 너무 익숙해져 오히려 여유 시간이 주어지면 불안해한다는 점이다. 마치 여유를 즐길 능력을 상실해 버린 것처럼. 분주함은 여행 최대의 적이자,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다.

 

 

무라카미 하루키, <위스키 성지>

사람의 마음속에만 남는 것, 그렇기에 더욱 귀중한 것을 여행은 우리에게 안겨 준다. 여행하는 동안에는 느끼지 못해도, 한참이 지나 깨닫게 되는 것을. 만약 그렇지 않다면, 누가 애써 여행 같은 걸 한단 말인가?

 

 

노동효, <길위에서 책을 만나다>

Less is More "발걸음이 가벼울수록 여행도 가볍듯, 삶의 여정에서 가난함으로 필요를 줄인 사람은 더 행복하고, 부의 무게 아래 신음하지 않는다. - 미누시우스 펠릭스"

 

 

류콴홍, <철학우화>

인생이란 여행길에서 자아를 의식하고, 사회를 인식할 때 우리는 더 나은 발전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어요.

 

 

마루야마 겐지,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겉만 보고 시골살이의 결단을 내린다. 그때 당신들의 눈길은 바로, 낯선 땅에서 좋은 부분에만 마음을 빼앗기며 지나가는 여행자의 시선이었습니다. 하지만 여행하는 사람과 정착해서 사는 사람의 입장은 크게 다릅니다. 요컨대 당신들은 인생에서 최대이자 최악의 충동구매를 하고 만 것입니다. 실패했을 때의 후회가 흔한 후회의 범위를 넘어서는 너무나 어리석은 짓을 한 것입니다.

 

 

박원식, <산촌 여행의 황홀>

여행은 유랑이다.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낯선 장소로의 떠돎이다. 날뛰는 마음 망둥이를 가이드 삼은 방랑이자 배회다. 이는 매우 품위 있고 자유로운 행위라서 조급하게 서두르거나 망설일 게 없는 활동이다.

 

 

정유정, <히말라야 환상 방황>

어떤 이는 여행에서 평화를 얻는다고 했다. 어떤 이는 삶의 행복을 느끼고, 어떤 이는 사랑을 깨닫고, 어떤 이는 자신과 화해하기도 한다. 드물게 피안에 이르는 이도 있다. 나로 말하면 확신 하나를 얻었다. 나를 지치게 한 건 삶이 아니었다. 나는 태생적으로 링을 좋아하는 싸움닭이요, 시끄러운 뻐꾸기였다. 안나푸르나의 대답은 결국 내 본성의 대답이었다. 죽을 때까지, 죽도록 덤벼들겠다는 다짐이었다. 결론적으로 떠나온 나와 돌아갈 나는 다르지 않았다.

 

 

박웅현, <여덟단어>

"여행을 생활처럼하고 생활을 여행처럼 해봐", 생활이 여행처럼 되다면 정말 매 순간이 소중하고 안타까울 겁니다. "여행지에서 랜드마크만 찾아가서 보지 말고 내키면 동네 카페에서 동네 사람들과 사는 이야기도 하고 벼룩시장에 가서 구경도 하면서 거기 사는 사람처럼 여행하는 거야. 그게 더 멋져. 그리고 생활은 여행처럼 해. 이 도시를 네가 3일만 있다가 떠날 곳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갔다가 다신 안 돌아온다고 생각해봐.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거기에서 3일밖에 못 머물기 때문이야. 마음의 문제야. 그러니깐 생활할 때 여행처럼 해."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의 여행법>

나의 여행법 : 여행하면서 쓰고, 쓰면서 여행한다

나는 여행지에서는 쓰기를 잊어버리려고 한다. 카메라도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 내 눈으로 여러 가지를 정확히 보고 머릿속에 정경이나 분위기, 소리 같은 것을 생생하게 새겨 넣는 일에 집중한다. 나 자신이 그 자리에서 녹음기가 되고 카메라가 된다.

 

여행을 하는 행위가 그 본질상 여행자의 의식의 변혁을 강요하는 것이라면, 여행을 묘사하는 작업 역시 그 움직임을 반영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 본질은 어느 시대에나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여행기라는 것이 지닌 본래적인 의미이기 때문이다. "어디어디에 갔었습니다.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을 했습니다"하고 재미와 신기함을 나열하듯 죽 늘어놓기만 해서는 사람들이 좀처럼 읽어 주지 않는다. '그것이 어떻게 일상으로부터 떨어지면서도, 동시에 어느 정도 일상에 인접해 있는가' 하는 것을 (차례가 거꾸로 되더라도 좋으니까) 복합적으로 밝혀 나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정말 신선한 감동은 거기서 생겨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처럼 변경이 소멸한 시대라 하더라도 자기 자신 속에는 아직까지도 변경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장소가 있다고 믿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추구하고 확인하는 것이 바로 여행인 것이다. 그런 궁극적인 추구가 없다면, 설사 땅 끝까지 간다고 해도 변경은 아마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시대이다.

 

나로 하여금 그런 체념에 이르게 하는 진전이야말로, 인간을 피곤하게 만드는 온갖 것들을 자연스럽고 묵묵히 받아들여 가는 단계야말로, 여행이 본질일 것이었다. 왜 나는 피곤을 찾아서 일부러 멕시코까지 다녀와야만 했던가? "왜냐하면 그런 피곤은 멕시코에서밖에 얻어낼 수 없는 종류의 피곤이기 때문입니다" "멕시코에 오지 않고서는, 멕시코의 공기를 들여마시고 멕시코 땅을 발로 밟지 않고서는 얻어낼 수가 없는 그런 피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피곤을 거듭 받아들일 때마다 나는 조금씩 멕시코라는 나라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우리는 여행을 통하여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삶을 견디게 해주는 새로운 에너지를 얻게 됩니다. 하여 여행은, 진정한 여행은, 일상 생활 속에서 졸고 있는 감정을 일깨우는 커다란 자극인 동시에, 우리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고 마음속 상처에 새 살이 돋아나게 하는 약이 되어 줍니다.

 

진정한 여행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어느 지역을 '둘러보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그것을 자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어떤 공간을 경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움직임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격렬한 의지를 이끌어 내는 것이라야 여행다운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외부의 풍경에만 눈길을 줄 뿐 자신의 '내면의 풍경'을 조망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서는, 또한 외부의 온갖 소리에만 열중할 뿐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서는, 그 여행은 여행의 참다운 의미를 제대로 살린 것이 되기 어렵습니다. 기껏해야 남에게 나 거기 가 보았노라고 자랑삼아 늘어놓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그것은 껍데기뿐인 여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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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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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과 외로움은 가끔 비슷한 의미로 혼동할 때가 있다.

철학자 폴 틸리히는 "'외로움loneliness'은 '홀로 있는 괴로움'을 표현하기 위한 단어인 반면 '고독solitude'은 '홀로 있는 영광'을 표현하기 위한 단어"라고 말했다.

문요한 작가는 <여행하는 인간>에서는 "물론 둘 다 홀로 있는 것이지만 '고독(solitude)'이 스스로 관계에서 물러나 자신을 벗 삼고 있는 시간이라면 '외로움(loneliness)'은 다른 사람과 단절되고 자신도 의지가 되지 않는 공허의 시간이다. 여행은 자신과 함께하는 고독의 시간이다."라고 했다. 고독의 삶의 긍정적 과정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겠지.

 

우리는 홀로 걷는 산책, 혼자 떠다는 여행 등을 통해 긴 고독의 시간을 갖거나 샤워기 아래에서 짧은 고독의 시간을 음미하기도 한다. 생각이 필요할 때, 우리는 고독을 찾는다. 내면의 시간을 보낸다.

 

 

고독, 孤獨

1.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 고독을 느끼다

2.부모 없는 어린아이와 자식 없는 늙은이.

 

(네이버 영어사전) [명사] loneliness, solitude, [형용사] lonely, solitary, lonesome       

고독한 남자 a lonely[solitary] man

고독한 생활을 하다 lead[live] a lonely[solitary] life

고독한 생활을 하다 live in solitude

고독한 생활을 하다 live all alone

고독을 느끼다 feel lonely[alone]

고독에 빠지다 fall into loneliness

그들의 영광 뒤에는 많은 슬픔과 고독이 있다 Behind their glory lies much sorrow and loneliness.

 

 

 

[시, 글과 책 속에 쓰인 '고독'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

 

 

심보선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 「구름과 안개의 곡예사」 중에서

 

나는 그저 고독한 아크로바트일 뿐

굳이 유파를 들먹이자면

마음의 거리에 자우룩한 구름과 안개의 모양을 탐구하는 '흐린 날씨'파

고독이란 자고로 오직 자신에게만 아름다워 보이는 기괴함이기에

타인들의 칭송과 멸시와 무관심에 연연치 않는다

즐거움과 슬픔만이 나의 도덕

사랑과 고백은 나의 금물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결단코 침묵이다.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내가 혼자인 건 오로지 생각들로 조밀하게 채워진 고독 속에 살기 위해서다. 어찌 보면 나는 영원과 무한을 추구하는 돈키호테다.

 

 

문요한, <여행하는 인간>

여행은 본디 처음 출발한 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귀환을 목적으로 한다. 그렇기에 떠나는 길과 돌아오는 길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방랑자는 돌아갈 곳이 없거나 돌아갈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여행이 아니라 정처 없는 방랑을 한다. 여행자들은 홀로 떠난 여행 중에도 별로 외로워하지 않는다. 누군가와 심리적으로 연결돼 있으며 언제라도 여행을 끝내고 자신을 환영해 주는 누군가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고독의 시간을 즐긴다. 반면 방랑자들은 누군가와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 없으며, 여행이 끝나도 자신을 진심으로 환영해 줄 그 누군가 혹은 그 어딘가가 없다. 당연히 방랑자는 여행 중에도 종종 외로움의 고통에 시달린다. 다만 환경이 낯설고 다른 여행자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내면보다 외부로 의식이 옮겨 가기 때문에 외로움과 고통을 덜 느낄 뿐이다.

 

우리의 자아 경계는 여행을 할 때 느슨해진다. 여행은 자아 밖으로 우리를 이끌어 새로운 사람, 자연, 문화 등과의 연결을 만들어낸다. <체 게바라 어록>에는 왜 여행을 할 때 낯선 존재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게 되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낯선 존재에게 말을 거는 용기는 아마도 자연이 가르쳐준 것이리라. 자연의 존재들은 끊임없이 낯선 존재에게 말을 건넨다. 바람은 나뭇잎과 가지에게, 곤충은 꽃에게, 하늘은 땅에게, 모든 존재들은 나에게 말을 건넨다. 그런 자연에는 절대 고독이란 없다."

 

나는 지난 여행을 통해 고독과 외로움의 확연한 차이를 알게 되었다. 물론 둘 다 홀로 있는 것이지만 '고독(solitude)'이 스스로 관계에서 물러나 자신을 벗 삼고 있는 시간이라면 '외로움(loneliness)'은 다른 사람과 단절되고 자신도 의지가 되지 않는 공허의 시간이다. 여행은 자신과 함께하는 고독의 시간이다.

 

 

리칭즈, <여행의 속도>

도로 위의 여정은 인생의 축소판 같다. 길 위에서 사람은 누구나 혼자이고, 고독하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생각해 본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 싶으면 과감하게 돌아 나와 자신이 진정으로 원했던 곳으로 향해 계속 나아가야 한다.

 

항해는 낭만적이지만 고독한 여행 방법이다. 현대인들은 때로 고독을 원한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할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한다. 항해는 혼란스러움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안정시킨다. 그래서 현대인들에게는 한 번쯤 시도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여행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시대고독 - 박노해

 

한 시대의 악이

한 인물에 집중되어 있던 시절의 저항은

얼마나 괴롭고 행복한 시대였던가

 

한 시대의 악이

한 계급에 집약되어 있던 시절의 투쟁은

얼마나 힘겹고 다행인 시대였던가

 

고통의 뿌리가 환히 보여

선과 악이 자명하던 시절의 결단은

얼마나 슬프고 충만한 시대였던가

 

세계의 악이 공기처럼 떠다니는 시대

선악의 경계가 증발되어 버린 시대

더 나쁜 악과 덜 나쁜 악이 경쟁하는 시대

합법화된 민주화 시대의 저항은 얼마나 무기력한가

 

구조화된 삶의 고통이 전 지구에 걸쳐

정교한 시스템으로 일상에 연결되어 작동되는

이 ‘풍요로운 가난’의 시대에는

나 하나 지키는 것조차 얼마나 지난한 싸움인가

 

옳음도 거짓도 다수결로 작동되는 시대

진리는 누구의 말에서나 반짝이지만

그것을 살고 실천할 주체가 증발되어 버린 시대

혁명의 전위마저 씨가 말라가는

이 고독한 저항의 시대는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의 여행법>

인간은 나이가 들면 그만큼 자꾸만 고독해져 간다. 모두가 그렇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잘못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인생은 고독에 익숙해지기 위한 하나의 연속된 과정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희인, <여행의 문장들>

바다가 태양을 품으면 찬란함으로 가득하고, 낭만을 품으면 사랑으로 가득하고, 분노를 품으면 파괴로 가득하겠지만, 쓸쓸함을 품으면 얼마나 거대한 슬픔과 고독을 빚어내는지 알 것 같았다.

 

 

김화영, <행복의 충격>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경이, 공포, 그 철저하고 낭만적이지도 않은 고독감, 그 모두로 인하여 나의 영혼, 나의 몸속에 꺼지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는 청춘을 '이동하는 집'의 주민들은 포기해 버린다. 이동식 행복, 이동식 안락의 공간을 끌고 다니는 월급쟁이들이 나는 무서웠다. 카라반의 집단이 반드시 어느 날 내 청춘의 불덩어리를 서서히 눌러 끄고 그들의 관광, 그들의 바캉스, 그들의 안락을 유형무형으로 나에게, 우리들에게 강요할 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오쿠다 히데오, <남쪽으로 튀어>

지로, 전에도 말했지만 아버지를 따라하지 마라. 아버지는 약간 극단적이거든. 하지만 비겁한 어른은 되지 마. 제 이익으로만 살아가는 그런 사람은 되지 말라고. ...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철저히 싸워. 져도 좋으니까 싸워. 남하고 달라도 괜찮아.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해해주는 사람은 반드시 있어.

 

 

나카무라 요시후미, <다시, 집을 순례하다>

"인간이 자기 자신과의 대면이 가능한 때는 고독과 함께하는 때뿐입니다."

 

 

윌리엄 파워스, <속도에서 깊이로>

20세기의 철학자 폴 틸리히는 '외로움loneliness'은 '홀로 있는 괴로움'을 표현하기 위한 단어인 반면 '고독solitude'은 '홀로 있는 영광'을 표현하기 위한 단어라고 말했다. 나는 대학 시절 두 가지 상태를 모두 경험했지만 기억에 남는 대부분의 기억은 고독에 관한 것이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실감하게 되었다. 사회는 군중이 없는 개인은 무가치하며 모든 것이 군중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세뇌시킨다. 그리고 개인과 군중 사이의 장애물을 끊임없이 제거하고 있다.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나라의 시민들은 그러한 은밀한 메시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유에 따르는 책임은 무거운 법이며 책임이 무거울수록 순응에 대한 매력도 커진다. 이를 알아챈 광고업자들은 군중 속의 개인들이 가진 개인주의적 감정을 일깨워 제품을 파는 방법을 익혀 왔다. 그들은 콜라부터 자동차까지 모든 제품이 자기표현과 자유를 위한 수단이라고 홍보한다. 물론 현실은 그 반대다.

 

내 오두막에는 3개의 의자가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해, 다른 하나는 우정을 위해, 또 다른 하나는 세상을 위해서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당신은 내가 인류에게서 멀어짐으로써 내 자신을 빈곤하게 만든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고독 속에서 나만을 위한 실을 지어 번데기를 만들고, 그 번데기에서 빠져나와 더 나은 사회에 알맞은 더 완벽한 창조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전규태, <단테처럼 여행하기>

고독은 우리 마음의 고향이다. 정신분석학자 칼 융은 "자기 주변에 사람이 없기 때문에 고독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을 남에게 전할 수 없을 때, 또는 남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어떤 관점을 지니고 있을 때 고독해진다."고 했다. "이럴 때면 익숙했던 곳을 떠나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고독감이란 자기 사고방식이 주변 사람들과 다를 때, 남의 사고방식이 납득되지 않을 때 느끼는 감정이며, 그런 때는 그런 주변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여행이란, 정착사회의 번거로움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켜보려는 욕구의 발로다. 여행이란, 안전한 일상생활과 다른 이질적인 세계로, 긴장을 내내 수반한다. 예컨대 편리한 환경에서 불편한 환경으로, 넉넉한 생활에서 모자라는 삶으로 스스로를 옮겨보는 과정인 것이다. 여행이란, 안전할 수도 있고 호사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여행자는 늘 자유분방해야 하며, 고독한 인간성의 회복을 위해 나서야만 한다. 여행이란, 여행자에게 있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다. 자기 안의 '고독한 인간'을 만나는 즐거움이다. 스스로의 인생뿐 아니라 인류의 오랜 역사를 새삼스럽게 발견하는 놀라운 체험이다.

 

 

가오싱젠, <창작에 대하여>

고독은 차가운 정신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자기 자신을 깊이 성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며,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일을 개척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아이는 홀로 있을 때 어른이 되기 시작하고, 개인은 홀로 있을 때 성장한다."

 

아이는 고독감을 느끼며 어른이 되어갑니다. 개인은 고독 속에 있을 때 비로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고독감은 개인의 독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인격의 확립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개인의 고독감이 사회의 조건을 형성하는 데 꽤 많이 기여하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꼭 필요한 거리가 없으면 온종일 충돌이 일어납니다. 가정과 모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함께 있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관용과 양해가 필요한데, 관용과 양해는 각자의 마음속에 충분한 공간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고독은 개인의 자유에 필요한 최우선 조건입니다. 자유는 자유로운 사고에서 비롯되는데, 홀로 있을 때 비로소 자유로운 사고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옳고 그름, 찬성과 반대, 혁명과 반동, 진보와 보수, 정치적 올바름과 그릇됨이라는 이분법적 틀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선택을 할 때는 독립적인 사고의 여지를 남겨두고, 천천히 선택을 해도 됩니다. 특히 어떤 이념이나 사조, 유행, 열광이 밀려들 때는 고독만이 그 사람을 자유로울 수 있게 합니다.  미디어가 모든 시간을 장악해버린 이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누군가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자 한다면, 고독만이 그 사람을 지탱해줄 것입니다. 고독이 병통으로 흐르지만 않는다면 고독은 그 사람을 그 사람답게 하는데 꼭 필요합니다.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소리 지를 때 더 고통받는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불붙은 석탄을 던지는 사람은 자신부터 화상을 입는다. 내가 사람들에게 화를 내면서 깨닫는 것은 그러한 행동이 나를 주위 세상으로부터 더 고립시킨다는 것이다. 혹시 우리는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멀어진 관계 속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는 고독자가 아닐까.

 

 

김영하, <말하다>

잘 느끼자. 감성 근육을 키우자. 그리하여 함부로 침범당하지 않는 견고한 내면을 가진 고독한 개인들로서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가자.

 

 

E. F. 슈마허 외, <자발적 가난>

자신의 삶을 단순화한다면, 우주의 법칙은 덜 복잡하게 보일 것이고, 고독은 고독이 아니요, 가난도 가난이 아니며, 약점도 더 이상 약점이 아니게 될 것이다. 왜 우리는 이토록 서둘러 성공하려고 애쓰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이토록 필사적인가? 사람이 이웃들과 같이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은 그가 다른 북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는 뜻이다. 그만이 듣는 소리를 멈추게 하자. 얼마나 크든,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든간에.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코에케 류노스케, <생각 버리기 연습>

고독을 음미하고, 평온한 마음의 달콤함을 여유롭게 음미한다면, 홀로 자신의 마음과 대면해 보는 평온함을 알게 된다면, 이렇게 '고독'의 힘을 되찾아 상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면, 당신안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말이나 행동, 부정적인 감정은 모두 소멸될 것이다. 진리, 즉 마음의 인과법칙을 알게 되었다는 기분 좋음을 음미하면서. - <법구경> 205

 

고독한 자기 세계의 내면에 감추어진 문제를 직시하는 것은 당신 자신을 위한 것이다. 고독을 받아들이고 삭이지 않으면 세상을 공유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 결과 상대를 원하는 감정이 폭발하고, 더욱 외로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사람마다 각각의 우주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1대 1의 인간으로써 접하면 어떻게될까. 부부일지라도 부모와 자식 간이라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신선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실은 세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라고 깨끗하게 정리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세계는 다른 사람의 세계로 존중할 우 있고, 서로 독립된 현명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야마구치 슈,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자유는 견디기 어려운 고독과 통렬한 책임을 동반한다.  - 에리히 프롬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고독이 그녀에게 추억을 걸러주고, 살아가면서 그녀의 가슴에 쌓였던 추억의 쓰레기들 가운데 둔감해진 부분을 불살라주고, 나머지 추억, 즉 가장 고통스러운 추억을 순화시켜 주고, 확대시켜 주고, 영원하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정철, <한글자>

고孤, 사랑이 곁에 없으면 외로울 고. 고독. 사랑이 곁에 있으면 괴로울 고. 고통. 고독의 소원은 고통이 되는 것.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만유인력이란

서로를 끌어당기는 고독의 힘이다

 

우주는 일그러져 있다

따라서 모두는 서로를 원한다

- 다나카와 슌타로, <이십억 광년의 고독> 부분

 

기쁨은 노력하지 않아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지만, 그래서 아는 순간 바로 질투하고 시기할 수 있지만, 고통은 단 하나의 감각적 정보만 결여되어도 타인들은 그 고통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고독이란, 그것도 이십억 광년의 고독이란 우리가 고통으로는 서로 연대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기인할 것입니다. 재앙은 우리를 가장 외롭고 연약한 사람들로 만듭니다.

 

 

김연수, <소설가의 일>

여기서 몇 번이고 강조하고 싶은 것은, 글을 쓰기 전에 소설가는 생각하지 않고 감각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소설가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고독하다는 내용을 생각하고 소설을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소설가가 쓸 수 있는 건 스물아홉 살의 미혼녀가 그해 크리스마스 저녁에 떨어지는 눈송이를 혼자서 바라보는 이야기 같은 것이다. 물론 그 이야기를 쓴 뒤에 교정할 때는 지금까지 자신의 독서 경험과 인생 체험과 논리적 사고를 이용해서, 단어와 표현을 좀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고독하다는 쪽으로 바꿀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나중의 문제이고, 글을 쓰기 전에는 오로지 감각할 수 있는 것들로만 구성된 이야기뿐이다.

 

 

소노 아야코, <약간의 거리를 두다>

세상은 무책임하게도 겉모습만 그럴듯한 안정된 가정, 남들이 인정하는 영광된 자리를 차지해야 객관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며 개인에게 그와 같은 행복을 강요한다. 내가 알기로는 '객관적 행복' 이란 있을 수 없는 개념이다. 지식과 기준이 넘쳐나는 세월을 살아간다고는 하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은 행복의 개념을 만들어내는 힘은 각자에게 달리 주어졌다는 것이다. 이 고독한 길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마르셀 프루스트, <독서에 관하여>

책과 친구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지혜의 깊이가 아니라 우리가 그들과 소통하는 방법이다. 독서는 대화와는 다르게 혼자인 상태에서, 즉 고독한 상태에서 지적인 자극을 계속해서 즐기고 영혼이 활발히 활동하는 것을 유지시키게 한다면 대화는 그것을 즉각적으로 해산시키는 방법이다.

 

 

P. G. 해머튼, <지적 생활의 즐거움>

인생을 감동시키는 것은 사랑입니다. 내 마음을 사로잡고, 나를 어린아이처럼 들뜨게 만드는 것은 사랑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문명 속에서도 나는 사랑을 기다립니다. 지적 노동을 사랑하고, 그 노동에 뒤따르는 고통을 사랑하고, 고통의 아픔을 사랑하고, 고통의 아픔이 전해주는 진실을 사랑합니다. 사랑의 표현은 기다림이라고 말하겠습니다. 기다림은 고독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사랑은 그 고독을 기다리는 행위입니다. 기다리다 지쳐 거리를 헤매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황무지 같은 들판을 찾아가 자학하듯 울음을 터뜨리고 스스로 양심을 무너뜨리고, 또다시 기다리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아픔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고통과 기다림에 대한 인내인 것입니다. 고통을 치르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기다림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내가 나를 기다리지 못한다는 것은, 내가 나의 고통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고독을 좋아하는 인간이란 없어. 억지로 친구를 만들지 않을 뿐이지. 그런 짓을 해봐야 실망할 뿐이거든.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이 두 사람은  예술 활동으로나 이론 활동으로나 모든 면에서 적대적이다. 다빈치가 회화를 가장 높이 평가했다면, 미켈란젤로에게는 조각이야말로 예술중의 예술이었다. 다빈치가 아리스토텔레스를 읽고 과학적 관찰과 실험에 관심이 있었다면, 미켈란젤로는 신플라톤주의의 신비주의에 기울어져 있었다. 다빈치가 자신을 합리적 규칙에 따라 작업하는 과학자라고 생각했다면, 미켈란젤로는 영감에 따라 작업하는 고독한 천재로 의식하고 있었다.

 

 

롤프 포츠, <여행의 기술>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의견을 좇아 살기란 어렵지 않다. 혼자 살면서 당신만의 결정에 따라 사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은 군중과 더불어 살면서도 고독이란 자존을 아름답게 지켜가는 사람이다. - 랠프 왈도 애머슨, <자존>

 

확 트인 고독한 세계, 아무런 목적도 없는 세계, 도덕의 굴레라곤 없이 순전히 모험만이 숨쉬는 세계로 달아날 필요가 있다. 삶의 칼날을 더욱 바짝 세우고, 역경이 무엇인지 맛보며, 한순간이라도 필사적으로 아무것에 매몰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 조지 산타야나, <여행의 철학>

 

 

카트린 지타,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

대화가 인간의 지적 활동에 묘약인 것처럼 고독은 인간의 정신 활동에 묘약이다. - 에밀 시오랑

 

 

나루케 마코토, <교양고전>

리스먼은 <고독한 군중>에서 사회적 성격을 '전통 지향적', '내부 지향적', '타인 지향적'이라는 세 단계로 분류했다. 현대 사회는 타인 지향적 단계에 속하는데, 이는 출생률도 사망률도 저하된 고령화 사회로서, 사람들은 타인의 취미나 언동에 민감해져 항상 타인을 의식하면서 행동한다. 또 타인 지향적인 사람들은 정치적인 의견에는 흥미를 보이지만 적극적으로 정치에 관여하려 하지 않는다. 즉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경향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고독한 군중이란 바로 이러한 현대 대중사회 구성원의 특이한 성격 유형으로서 항상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그들로부터 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자유는 인간을 속박에서 구원하는 한편 고립과 무력감을 초래한다. 자유란 단순히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다. 사실은 '고독'과 표리일체의 개념인 것이다. 고정화된 생각도 정반대 방향에서 바라보면 새로운 생각이 탄생한다. 자유를 추구하면서도 한편으로 지배당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모순. '나는 자유로운 사회에서 살고 있다'라고 믿고 있더라도 실상 직장 또는 정치제도나 사회규범 등 각종 권위 시스템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시라토리 하루히코, <니체의 말>

진정한 자신을 찾기위해서 누군가를 바란다, 자신을 상대해 줄 친구를 절실히 바란다, 막연한 안도감을 찾아 누군가에게 의지한다. 왜 그런 것일까? 고독하기 때문이다. 왜 고독한 것일까?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순간적인 친구를 아무리 많이, 그리고 폭넓게 가졌다고 해도 고독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고 자신을 사랑할 수도 없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힘만으로 무엇인가에 온 노력을 쏟아야 한다. 자신의 다리로 높은 곳을 향해 걷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에는 분명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의 근육을 단련시키는 고통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정우, <개념: 뿌리들>

개념이라는 존재는 홀로는 존재하지 않고, 어떤 개념이 있으면 반드시 그 개념은 연쇄반응을 일으키면서 다른 개념들을 불러옵니다. 개념들에는 어떤 울림이 있는 것이죠. '소외'의 경우, 이 개념은 '고독'과도 연결되고, '군중'과도 연결되고, '현대'라는 시대와도 연결되지요. 개념들은 이런 식으로 마치 연쇄반응을 일으키듯이 이어집니다. 하나의 개념은 자체와 연관되는 다른 개념들의 갈래(계열)을 응축하고 있습니다.

 

 

알랭 드 보통, <불안>

시인 제라르 드 네르발은 재능과 기질 때문에 부르주아 세계에는 어울릴 수 없었던 그의 세대의 예민한 동지들의 경험을 이렇게 요약했다. "야망은 이 시대에 속한 것이 아니다. ... 자리와 명예를 쫓는 탐욕스러운 경주에 질려 우리는 정치 활동의 영역으로부터 멀어져 간다. 우리에게는 시인의 상아탑만 남았는데, 우리는 이곳으로 점점 더 높이 올라가 군중으로부터 고립된다. 그 높은 고도에서 우리는 마침내 고독의 순수한 공기를 숨쉰다. 우리는 전설의 황금 컵으로 망각을 마셨다. 우리는 시와 사랑에 취했다."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눈앞의 이득만을 내다보는 태도를 초월하여 원대한 그리고 서서히 발전하는 목표를 가질 때, 당신은 한 사람의 고독한 존재가 아니라, 인류를 문명생활로 이끌어 가는 행렬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인생관을 갖고 살아갈 때, 당신은 인생의 어떤 길을 걸어가든 깊은 행복을 느낄 것이다. 인간이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모든 시대의 위대한 것과 정신적인 교섭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한 개인의 죽음은 작은 사건에 불과하다.

 

 

고독하다는 것은 ㆍ 조병화

 

고독하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다

소망이 남아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다

삶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다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보아도

어린 시절의 마당보다 좁은

이 세상 인간의 자리

부질없는 자리

 

가리울 곳 없는

회오리 들판

 

아 고독하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요

소망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요

삶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다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임병희, <목수의 인문학>

함께하지 않고 나누지 않으면 쓸쓸해진다. 고독해진다.

 

 

장 그르니에, <섬>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 그것은 불가능한 일 -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하여 여행한다고 할 수 있다. ... 그런데 그 <자기 인식 reconnaissance>이란 반드시 여행의 종착역에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그 자기 인식이 이루어지고 나면 여행은 완성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통과해 가야 하는 저 엄청난 고독들 속에는 어떤 각별히 중요한 장소들과 순간들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 장소, 그 순간에 우리가 바라본 어떤 고장의 풍경은, 마치 위대한 음악가가 평범한 악기를 탄주하여 그 악기의 위력을 자기 자신에게 문자 그대로 <계시하여> 보이듯이, 우리들 영혼을 뒤흔들어놓는다.

 

 

최갑수,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레몽 드파르동의 사진들은 "무엇을 바라보려면 고독해야 한다"라는 것을 실감하게 해준다. 이 말은 오랫동안 대상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랫동안 생각해야 하며, 오랫동안 사랑해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오랫동안' 해야 비로소 완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완전한 것만이 고독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 마음에 드는 문장을 쓰지 못하고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은 내가 충분히 고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경철, <문명의 배꼽, 그리스>

삶은 좌절이나 권태가 아닌 고독한 투쟁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숙명지워진 존재가 아닌 온전히 실존하는 내가 된다는 뜻이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나는 걷는다>

꿈을 꾸고 고독을 느끼며, 느릿느릿 달팽이처럼 걸은 보람이 조금씩 나타났다. 보람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는 보람이라고 느꼈다. 지나쳐가는 풍경과 생각과 만남으로 이루어진 보람. 우리 사회를 뒤덮은 듯한 광기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긴박하게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나는 생각의 속도로 살기를 바랄 뿐이다. 걷기는 소위 문명화되었다고 하는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고 있는 죽음 - 사람들은 삶과 혼동하고 있다 - 의 달리기에 브레이크를 건다. 내가 느끼기에 우리 사회는 텔레비전이 내미는 일그러진 거울을 통해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떠나든 머물든>

지옥의 모든 것이 이 단어 속에 있다, 고독. - 빅토르 위고

 

 

스티브 도나휴,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

인생의 사막을 건너는 것은 고독과 외로움,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 사이에서 춤을 추는 것과 같다.

 

 

앙드레 말로, <인간의 조건>

남의 소리는 귀로 듣고, 자기 소리는 목구멍으로 듣는다. ... 그렇다. 자기 생명도 목구멍으로 듣는 것이다. 그렇지만 남의 생명은? 우선 무엇보다도 인간에게는 고독이 있다. 고독은 무수한 인간들의 배후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마치 희망과 증오로 충만된 활량한 도시를 뒤덮고 있는 이 깊은 밤의 배후에 커다란 원시의 밤이 존재하듯이...

 

 

류콴홍, <철학우화>

모든 사람에게 죽음은 자기 자신의 일일 뿐이며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고,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수도 없어요. 사람이 죽음을 이해하게 되면 스스로 사람들과 구별되어 자기 존재의 의미, 즉 고독의 존재를 진정으로 깨닫게 됩니다.

 

 

윤태호, <미생>

'꿈이 뭔가?', 뜻이 향하는 것. '지향'. 어떤 것을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게 되는 근거는 '지향'에 있다. 무엇인가가 되고 싶고 갖고 싶어 그것을 향하게 되고, 그러다 당장의 자신을 배반하는 선택을 하게 될 때도 있다. 지향하는 바를 위해 이렇게 저렇게 해도, 지향하는 대로 살기란 매우 어렵고, 지향하는 바를 성취했다 하더라도 회한과 깊은 고독에 빠진다. 지향은 곧 길이고, 그 길을 걸을 뿐인 누군가는 길의 끝에서 거울을 마주하게 된다. 그 거울에서 소박하게 만족한 미소를 띤 누군가가 서 있을 수도, 괴물이 되어 있는 자신을 만날 수도 있다.

 

 

파울로 코엘료, <아크라 문서>

고독 속에 놓일 때 마음이 무거워지는 사람들은 삶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우리는 늘 혼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사랑이 신의 영역이듯, 고독은 인간의 영역이다. 삶의 경이를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고독은 평화롭게 공존하는 개념이다.

 

 

스티브 디거, <잠들기 전에 읽는 긍정의 한줄>

최악의 고독은 스스로에게 편하지 못한 것이다. - 마크 트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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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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