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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0.18 [검색사전] 즐거움(樂)

즐거움을 이야기할 때 뺄 수 없는 것이 <논어: 옹야편>에 나오는 ‘子曰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며 좋아하는 자는 즐거워하는 자만 못하다)’이다.

 

이에 대해 어떤 사람은 "아는 것은 행동이 없이 머리에만 있고, 좋아하는 것을 행함으로써 스스로 충만해지고, 스스로의 충만함을 남과 더불어 함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즐거움이 아닐까 합니다. 즐기는 사람은 왠지 여유가 있어 남을 배려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는 해석을 했다.

 

그래서 여유, 즐거움과 행복은 가까이 있는지도 모른다.

 

 

 

즐거움(樂), 즐거운 느낌이나 마음.

[비슷한말] 유쾌, 쾌락, 화락, 열락, 재미, 기쁨, 낙

[반대말] 슬픔, 괴로움

 

(네이버 영어사전)  joy, pleasure, enjoyment, happiness, delight, gladness       

인생의 즐거움 the joy[pleasure; enjoyment] of life

독서는 나의 유일한 즐거움이다 Reading is my only[sole] pleasure.

그는 일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느끼지 못했다 He took no pleasure in his job.

봉사 활동은 나에게 큰 즐거움을 준다 Volunteer work gives me great pleasure.

먹는 것은 인생의 큰 즐거움 중 하나다 Eating is one of the great pleasures in life.

그녀는 자신의 일에 자부심과 즐거움을 느꼈다 She took pride and joy in her work.

그는 여행에서 커다란 즐거움을 얻었다 He got enormous pleasure from traveling.

그는 나를 놀리는 데서 큰 즐거움을 얻는 것 같다 He seems to take great delight in teasing[making a fool of] me.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는 것이 나의 큰 즐거움이다 My greatest happiness[joy] in life is seeing my children grow.

 

 

[시, 글과 책 속에 쓰인 '즐거움'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

 

 

알랭 드 보통, <우리는 사랑일까>

시간, 즐거움에 따라 흐르는 속도가 다르다.

 

 

도정일,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

인간의 행복을 욕망의 규모와 소유의 크기로 계산해주는 것이 자본주의의 행복 모형이라면 붓다가 제시한 것은 욕망의 축소, 단절, 무소유의 모형이다. 근대 이후 사회에서 소유의 위력이 한층 커진 것은 소유가 인간의 행복만이 아니라 자유까지도 확대해준다는 산술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이 산술로 따지면 자유는 지갑의 두께에 비례한다. 그러나 붓다적 자유의 모형은 돈지갑과 관계없고 두둑한 지갑과는 더더구나 관계없다. 지갑의 노예는 노예이지 자유인이 아니다. 소유의 즐거움을 내세우는 자본주의 행복론 앞에서 소중하게도 정확히 그 반모형을 제시해주는 것이 붓다의 행복론이자 자유론이다. 그러나 세속의 삶은 욕망과 소유의 충동을 벗어날 수 없다.

 

 

제러미 리프킨, <소유의 종말>

놀이에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즐거움과 삶의 본능을 긍정하는 것이다.

 

 

스티브 디거, <잠들기 전에 읽는 긍정의 한줄>

행복은 내안에 있다.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행복은 자급자족할 수 있는 사람의 것이다. 외부에서 찾은 행복과 즐거움의 원천들은 모두 그 본질상 불확실하고 불안정하고 허무하고 무상하게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Happiness belongs to those who are sufficient unto themselves. For all external sources of happiness and pleasure are, by their very nature, highly uncertain, precarious, ephemeral and subject to chance.

 

 

롤프 포츠, <VAGABONDING, 여행의 기술>

불확실한 것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을 때 여행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여행의 즐거움은 장애물과 피로감에 있다. 심지어 여행 중에 겪는 위험도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것이다. 언제나 확실하게 목적지에 도착하고 말이 항상 대기해 있으며 포근한 침대와 멋진 식사가 준비되고 집처럼 편안하고 안락하다면 그런 여행에서 어떤 매력을 찾을 수 있겠는가! 현대인의 삶에서 가장 큰 불행 중 하나는 뜻밖의 사건이나 모험거리가 없다는 점이다. 모든 것이 너무도 잘 정돈되어 있으니까. - 테오필 고티에르, <에스파냐에서의 산책>

 

 

서은국, <행복의 기원>

스칸디나비아 행복의 원동력은 넘치는 자유, 타인에 대한 신뢰, 그리고 다양한 재능과 관심에 대한 존중이다. 그들 사회는 돈이나 지위 같은 삶의 외형보다 자신에게 중요한 일상의 즐거움과 의미에 더 관심을 두고 사는 곳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시시한' 즐거움을 여러 모양으로 자주 느끼는 사람들이다.

 

행복은 거창한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쾌락에 뿌리를 둔, 기쁨과 즐거움 같은 긍정적 정서들이다. 이런 경험은 본질적으로 뇌에서 발생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철학이 아닌 생물학적 논리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강판권, <나무 철학>

즐거움은 바로 좋아하는 데서 출발한다. 즐겁게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점이다.

 

 

공자, 임자헌 옮김, <군자를 버린 논어>

내가 즐거움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이 나를 통제하고 있다면 그것은 '즐긴다'라고 말할 수 없다. '즐긴다'는 표현은 내가 시작하고 내가 맺을 수 있을 때에만 사용할 수 있는 것.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우리가 여행으로부터 얻는 즐거움은 여행의 목적지보다는 여행하는 심리에 더 좌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행을 하는 심리란 무엇인가? 수용성이 그 제일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용적인 태도를 취하면,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새로운 장소에 다가가게 된다. 어떤 것이 재미있고 어떤 것이 재미없다는 고정관념은 버리게 된다.

 

 

구름과 안개의 곡예사 - 심보선

 

구름과 안개에 대해서가 아니라면 나는 별 할말이 없다

그 둘을 설파할 때 내 몸은 기분좋은 기괴함에 젖어든다

나는 그것을 하나의 눈부신 곡예로 승화시키고자 했다

어쩌다 등을 뒤로 굽혀 완벽한 원을 만들게 됐냐고 사회자가 물은 적이 있다

싸는 똥을 바로 받아먹고 싶었죠

즉석에서 시범을 보이자 관객들은 박수 치다 말고 토했다

 

구름과 안개에 골몰하느라 학업과 노동을 작파한 지 오래

내가 펄쩍 뛰었다 착지한 자리엔 음모가 수북이 쌓이곤 한다

내 몸이 점점 구름과 안개로 화하기 때문일까?

어쨌든 내 행방을 찾으려거든 땅 위에 떨어진 털들을 따라오면 되는 것이다

나는 그저 고독한 아크로바트일 뿐

즐거움과 슬픔만이 나의 도덕

사랑과 고백은 절대 금물

이름이 무엇이고 거처가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결단코 침묵이다

 

간혹 나는 밤거리로 뚜벅뚜벅 걸어나가 진열장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본다

나 자신이 아득한 심연으로 되비치고

등뒤의 어둠과 눈앞의 환함이 서로를 환대할 때까지

나는 일생에 걸쳐 가장 가난한 표정으로 거기 오래 서 있는다

그러고는 오묘한 정취에 젖어 달이 뜬 쪽을 향해 물구나무로 걸어가는 것이다

자정의 밤거리는 언제나 취객과 창녀로 북적거린다

내 둥근 몸을 통과한 달빛에 젖은 자들이여

나를 비웃든 경외하든, 그대들의 삶에 다산과 다복이 넘치기를

 

또 간혹 나는 구름과 안개를 뚫고 달리고 또 달린다

구름과 안개가 걷히면 심심해져서 곧장 집으로 돌아온다

구름과 안개가 걷힌 거리는

지식 없는 선생이요

표정 없는 얼굴이기에

구름으로 다듬고 안개로 닦아야만 고독은 아름다운 자태를 얻는다고 믿는다

 

나는 그저 고독한 아크로바트일 뿐

굳이 유파를 들먹이자면

마음의 거리에 자우룩한 구름과 안개의 모양을 탐구하는 '흐린 날씨'파

고독이란 자고로 오직 자신에게만 아름다워 보이는 기괴함이기에

타인들의 칭송과 멸시와 무관심에 연연치 않는다

즐거움과 슬픔만이 나의 도덕

사랑과 고백은 나의 금물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결단코 침묵이다.

 

 

유시민, <유럽 도시 기행>

낯선 도시에서 눈썰미와 요령만으로 맛집을 찾는 데 성공하면 세 가지 즐거움을 얻는다. 혀로 맛보는 기쁨, 배로 느끼는 만족감, 그리고 마음이 누리는 뿌듯함이다.

 

 

한동일, <라틴어 수업>

호라티우스가 속했던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주의를 지향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들이 추구한 쾌락은 세속적이고 육체적이며 일시적인 쾌락이 아니라 정신적인 쾌락, 다시 말해서 충만한 삶과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 영혼의 평화로운 상태, 동양식으로 표현하자면 안분지족安分知足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호라티우스의 '오늘을 즐겨라'라는 의미도 당장 눈앞의 것만 챙기고 감격적인 즐거움에 의존하여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매 순간 충만한 생의 의미를 느끼면서 살아가라는 경구입니다.

 

 

김영하, <말하다>

저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비관적 현실주의에 두되, 삶의 윤리는 개인주의에 기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 남이 침범할 수 없는 내면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타인에게 동조될 때, 경계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개인주의를 저는 건강한 개인주의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건강한 개인주의란 타인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독립적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그 안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라 정의하고 싶습니다. 이때의 즐거움은 소비에 의존하지 않는 즐거움이어야 합니다. 물건을 사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니라 뭔가를 행함으로써 얻어지는 즐거움입니다. 즉, 구매가 아니라 경험에서 얻는 즐거움입니다. 새로 나온 사진기를 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카메라로 더 멋진 사진을 찍는 삶입니다. 새로운 스마트폰을 사는 삶이 아니라 휴대폰을 잠시 끄고 글을 쓰는 데서 얻는 즐거움을 말합니다. 소비에 의존하지 않는 즐거움의 대부분은 인류가 오랫동안 쌓아온 유산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오래 살아남은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예술과 관련되었다는 겁니다. 글을 쓰고 노래하고 춤을 추고 연극에 참여하고 그림을 그리는 일, 여기엔 대부분 큰 돈이 들지 않습니다. 성장률이 제로로 수렴하는 저성장 시대가 이미 도래했습니다. 유럽 국가들은 툭하면 0펴센트의 성장 혹은 마이너스 성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미국도 이민자들이 아니었다면 벌써 그런 일을 겪었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많이 벌고 많이 쓰고 많이 저장하는 삶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이런 비관적 인식하에 지금 여기에서 어떤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까를 개인적으로, 독자적으로, 개별적으로,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임영익, <메타생각>

'창의성은 낯선 것에 대한 즐거움' - 어니 젤린스키

 

 

E. F. 슈마허, <자발적 가난>

항상 미래에 닥쳐올 불행을 염려하는 것이 정말로 현명한 것일까? 미래에 닥쳐올지도 모르는 재앙을 고민하느라고 현재의 즐거움을 모조리 잃어버리는 것이 과연 신중한 것일까? - 버트런드 러셀

 

 

야노 가즈오, <데이터의 보이지 않는 손>

'최적 경혐=몰입'에 빠지면 사람은 즐거움과 충족감을 느낀다. 반대로 관심의 대상이 자꾸 변해 하나에 집중할 수 없을 때에는 정신적인 에너지를 낭비한 듯 느끼고 즐거움과 충족감을 얻기 힘들다. 

 

 

혜민 스님,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지성이 깨어날 때의 기쁨은 세상을 얻은 것같이 마음 부자가 된 느낌이고, 영성이 깨어날 때 즐거움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내 고향으로 돌아온 느낌입니다. 지성이 깨어나면 내 안에 가치 기준이 생겨 더 이상 남들 기준에 휘둘리지 않게 되며, 영성이 깨어나면 내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아 두 번 다시 현혹하지 않습니다.

 

 

김형석, <백년을 살아보니>

가장 불행한 사람은 아무 일도 없이 세월을 보낸 사람이었다.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가족들과 더불어 세월을 보내고 옛날 친구들과 때때로 만나는 사람들이었다. 반면, 새로운 행복을 찾아 누린 사람은 세 가지로 나타났다. 공부를 시작한 사람, 취미활동을 계속한 사람, 봉사활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이었다. 노후에는 일이 없는 사람이 가장 불행하다. 그 일을 미리부터 준비해두자는 생각이다. 노후를 위해 경제적 준비를 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일을 준비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래서 세 가지 즐거움 중의 하나는 선택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데이비드 색스, <아날로그의 반격>

페이스북 사무실에 걸린 "빠르게 움직이고 틀을 파괴하라"는 말처럼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그런데 잠시 속도를 늦추고 파괴된 것을 고쳐볼 수는 없을까? 디지털 라이프가 영구적인 현실이 되어버린 전 세계의 모든 지역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아날로그를 선택하고 있다. 기본 설정이 되어버린 디지털 기술에 비해 아날로그는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비용이 훨씬 큰데도 불구하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아날로그를 찾고 있다. 왜일까? 즐거움이 한 가지 이유다. 아날로그는 물리적인 사물과 경험이 사라져가는 영역에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재적 물건을 창조하고 소유하는 기쁨을 준다. 그것은 사진관에서 필름을 찾아오는 즐거움일 수도 있고, 옛 친구들과 새로운 보드게임을 하는 즐거움일 수도 있고, 일요판 종이 신문이 내는 듣기 좋은 소리일 수도 있고, 내 생각이 펜으로 종이 위에 구현되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즉각적인 보상일 수도 있다. 그런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두가 값을 매기기 힘든 경험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이윤이다. <아날로그의 반격>이 설명하는 포스트디지털 경제에는 모든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투자자와 소매상, 그리고 기업가가 필요하다. 작은 레코드점을 개장하든 거대한 시계 공장을 시작하든 아날로그에서는 수익이 생긴다. 언론은 실리콘밸리의 성공에 흥분하지만 사실 우리 경제의 절대적인 부분은 아날로그다. 아날로그 경제는 작은 지역에 집중된 디지털 자본에 비해 사회에 광범위하게 이득이 된다. 비즈니스 세계가 점점 더 디지털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아날로그 기술을 새롭고 참신하게 활용하는 기업이나 개인이 더욱더 돋보이고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인간의 역할은 더욱 값어치가 올라갈 것이고 아날로그 도구나 활동(가령 화이트보드나 오프라인 매장처럼 디지털 경험을 현실 세계에 옮겨놓는 것)은 선두 기업과 나머지 기업들을 갈라놓을 것이다. 아날로그는 생산성의 도구일 뿐만 아니라 때로는 최고의 생산성을 가진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반 일리치,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자급자족이 이루어지는 사회에서만 사람이 품위를 지닐 수 있다는 사실, 또 산업화로 나아갈수록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은 아주 명백한 것입니다. 이 오두막은 사회와 조화를 이룰 때 얻는 즐거움을 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자급자족이 으뜸입니다. 불필요한 물품과 재화를 소유할수록 행복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최인철, <굿라이프>

심리학자 이선 맥머핸(Ethan McMahan)에 따르면 사람들은 행복의 본질을 다음 네 가지 차원에서 파악한다. 1)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 2) 부정적인 경험을 하지 않는 것, 3) 타인의 웰빙에 기여하는 것, 4) 자신이 성장하는 것

 

 

정재승, <열두 발자국>

과거의 방식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면 빠르고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예측 가능한 수준의 결과는 얻겠지만, 새로운 시도가 주는 큰 즐거움과 뜻밖의 수확은 얻을 수 없습니다. 삶에서 80~90퍼센트 정도는 기존 방법을 적용하더라도, 10~20퍼센트 정도는 방법 탐색의 전략으로 살아보시길 바랍니다.

 

목적지를 향해 정해진 삶의 코스를 완주하는 게 목표인 마라토너라면 페이스 조절만 잘하면 안전한 삶의 궤적을 그릴 수 있겠지요. 그러나 새로운 경험이 주는 아슬아슬한 즐거움과 열매의 풍성함을 만끽하고 싶다면, 위험을 감수하는 탐험가의 기질이 필요합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내 삶의 철학이 무엇인가에 따라 그 질주의 방향이 달라질 것입니다.

 

 

미치오 카쿠, <미래의 물리학>

예술의 목적은 정신적 즐거움을 공유하는 것이지만, 두뇌의 발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상징화된 정보를 해독하는 것이 두뇌의 주요기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유전자가 크게 변하지 않는 한, 유흥산업과 연예잡지, 그리고 소셜네트워크는 앞으로도 결코 줄어들지 않고 꾸준히 팽창할 것이다.

 

 

소노 아야코, <약간의 거리를 두다>

역경 속에도 즐거움이 숨어 있고, 이를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경마저 평범한 일상 중 하나로 여겨야 한다. 조심스럽다기보다는 소심한 성격에 가까운 사람들은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는 데 재능을 보인다. 하지만 그 이상의 세계는 얻지 못한다. 그래서 이들은 재미가 없다. 남들에게 들려줄 만한 실패나, 쉽게 경험하기 힘든 체험이 없어서다. 유난히 재미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또한 시간적으로 고생과 위험 부담을 즐겁게 감당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인생처럼 정직한 것은 없다. 인생의 재미는 이를 위해 지불한 희생과 위험에 정확히 비례한다. 모험을 택하지 않고서는 사는 재미도 보장받을 수 없다.

 

 

코에코 류노스케, <생각 버리기 연습>

쾌락이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다. 뇌가 고통이 줄어드는 것을 그만큼 즐거움이 늘어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일절개고(一切皆苦)'라는 진리이다. 이 진리에 따르면, 한 번 쾌락을 맛본 뒤에는 '좀 더 좀 더' 하고 보다 큰 즐거움을 찾으며, 그 재료가 되는 괴로움을 더욱 구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분노에 대해 누군가 동의해 주면, 이때에도 만의 욕망이 생겨 자아가 자극되고 중독된다. 혹은 누군가 반론을 제기해도 괴로워하고 또 다른 분노를 느끼면서, 그것에 자극을 받아 중독된다.

 

 

이덕무, <문장의 온도>

중국 위나라 사람 동우는 <삼여지설>에서 '밤'과 '비 오는 날'과 '겨울철', 이 세 가지 여분의 시간이야말로 마음을 하나로 집중해 독서할 수 있는 좋은 때라고 말했다. 맑은 날 밤 고요하게 앉아 등불을 켜고 차를 달이면은 세상이 쥐 죽은 듯 조용하고 간혹 종소리만 들려온다. 이 때 이 아름답고 고요한 정경에 빠져 책을 읽으며 피로를 잊는다. 이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다. 비바람이 몰아쳐 길을 막으면 문을 잠그고 방을 깨끗하게 청소한다. 사람의 발길이 끊어지고 책만 앞에 가득히 쌓여 있다. 이처럼 그윽한 고요함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 낙엽이 떨어진 나무숲에 한 해가 저물고 싸락눈이 내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깊게 눈이 쌓여 있다. 바람이 마른 나뭇가지를 흔들며 지나가고, 겨울새가 들녘에서 울음 운다. 방 안에 난로를 끼고 앉아 있노라면 차 향기에 달콤한 술이 익어 간다. 이러한 때 시와 글을 모아서 엮고 있으면 좋은 친구를 대하는 것처럼 마냥 즐겁다. 이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허균이 옛사람들의 글을 모아 엮은 <한정록> <정업>편에 나오는 말이다.

 

 

법륜 스님, <인생수업>

보통 사람들은 주로 재미만 갖고 인생의 즐거움을 삼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뒤에 후회나 허전함, 공허감 같은 것이 생기게 됩니다. 한편 또 너무 삶의 의미 같은 것만 찾으면 현재의 삶이 힘들어지고, 스트레스도 많아져 지치기 쉽습니다. 이 두 가지가 적절하게 어우러지면 가장 좋은데, 바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곧 자기 일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가장 조화로운 상태가 되는데, 우리는 보통 이 둘이 분리된 삶을 삽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인생수업>

우리는 삶을 누리고 놀이를 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그것도 일평생 동안. 흔히들 잘못 생각하고 있지만, 놀이는 아이들만의 소일거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생명 가진 존재의 생명력입니다. 놀이는 마음을 젊게 하고, 일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며, 인간관계를 잘 맺게 해줍니다. 또한 젊음을 되돌려 줍니다. 놀이는 삶을 가장 충만하게 사는 방법입니다. 놀이는 순수한 즐거움을 얻기 위해 하는 행위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놀이는 모든 한계를 초월해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놀이는 내면의 기쁨이 바깥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웃음, 노래, 춤, 수영, 등산, 요리, 달리기, 게임 등 즐거움을 주는 것이면 무엇이든 놀이가 될 수 있습니다.

 

일과 놀이가 완전히 별개의 활동일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이 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은 하루를 살아가고 평생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목표지향적이 되기 쉽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할 때 불행해집니다.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 동시에, 즐거움으로부터 일을 떼어 놓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카트린 지타,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

세계적인 동화 작가 안데르센은 “나에게 여행은 정신의 젊음을 되돌려 주는 샘물이다”라고 말했다. 여행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는 즐거움과 도전 정신을 회복하게 되면 자연스레 우리의 생각도 ‘젊음’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혜민 스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스펙을 쌓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스펙을 쌓는 것이 아니라 / 하나하나 배우는 과정이 즐거워서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다 보니 / 스펙이 하나둘씩 쌓이도록 하세요. / 과정의 즐거움이 빠지고 결과만 얻으려 하면 / 그게 바로 고통입니다. / 과정을 즐기십시오.

 

 

E. F. 슈마허, <굿워크>

인간을 기계나 시스템의 노예로 전락시키는 지겹고, 무의미하며, 신경만 괴롭히는 멍청한 일을 젊은이들이 거부하도록 독려해야 합니다. 노동이란 삶의 즐거움이자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것뿐만 아니라 무의미한 노동은 혐오스러운 것이라는 점도 젊은이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로제 폴 드루아,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

이런 방법론의 요구에 또 다른 철학자들은 생각의 나라에서 목표 없이, 때로는 나침반도 없이 걷는 방식들을 맞세웠다. 오직 산책의 즐거움만을 안내자로 삼고 아무것도 예측하지 않고 나아가는 방식이다. 이런 산책은 규칙도 정해진 목적지도 없이 거니는 것이다. 이 산책은 논증처럼 진행되지 않는다. 그것은 지식을 증대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강화한다. 

 

 

김위찬, <블루오션 시프트>

구매자들은 간편하고, 사용하기 쉽고, 즐거움과 원하는 바를 주기 때문에 이를 좋아한다. 즉 구매자들은 기술이 고객가치의 획기적 향상에 본질적으로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제품과 서비스에 열광한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문학은 엄숙하고 진지하기만 하기보다는 '가벼움'과 '무거움'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희로애락이 교차하는 것이니, 삶의 활력과 즐거움도 문학의 중요한 주제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알랭 드 보통, <행복의 건축>

우리는 질서와 복잡성의 병치에서 생기는 즐거움 밑에서 이와 관련된 건축학적 미덕인 균형을 확인할 수 있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자연스러운 것과 인공적인 것, 사치스러운 것과 수수한 것,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을 포함한 여러 대립들을 건축가들이 능숙하게 중재할 때마다 아름다움은 피어나는 것 같다.

 

 

양재우, <불황을 이기는 월급의 경제학>

일상을 소중히 여겨 기쁨과 즐거움의 감정을 마음껏 표출하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도전하여 새로운 경험을 많이 쌓아야 할 것이며, 소중한 시간을 아껴 알차고 의미 있게 활용하여 나란 존재 혹은 내가 만들어 놓은 무언가를 이 세상에 남길 수 있어야 한다.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하루의 삶은 하루만큼의 죽음이다. 어떻게 생각하든 이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새날이 밝으면 한 걸음 더 죽음에 다가선다. 그런데도 우리는 때로 그 무엇엔가 가슴 설레어 잠들지 못한 채 새벽이 쉬이 밝지 않음을 한탄한다. 결코 영원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누군가에게 영원한 사랑과 충성을 서약한다. 죽음을 원해서가 아니다. 의미 있는 삶을 원해서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하루가 모여 인생이 된다. 인생 전체가 의미 있으려면 살아 있는 모든 순간들이 기쁨과 즐거움, 보람과 황홀감으로 충만해야 한다. 그런데도 때로 그것을 잊는다. 오늘의 삶을 누군가를 향한 미움과 원한으로 채운다. 가진 돈이 많은데도 더 많은 돈을 얻으려고 발버둥치면서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시간을 탕진한다. 이미 높은 곳에 있으면서도 더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해 오늘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내일로 미루어둔다. 그 모든 것이 나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묻지 않는다. 그리하여 운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쯤에야 비로소, 자신이 의미없는 인생을 살았음을 허무하게 깨닫는다. 그러나 한 번 할아버린 인생은 되돌릴 수 없으며, 놓쳐버린 사람이 환희는 되찾을 수 없다. 

 

 

이기주, <언어의 온도>

'프로'는 프로페셔녈professional(전문가)의 준말로, 그 어원적 뿌리는 '선언하는 고백'이란 뜻의 라틴어 프로페시오professio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남들 앞에서 "난 전문가입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할 수 있어야, 그리고 그에 따른 실력과 책임감을 겸비해야 비로소 프로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프로"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하기 싫은 일도 끝까지 해내는 경향이 있다. 그냥 끝까지 하는 게 아니다. 하기 싫은 업무를 맡아도 겉으로는 하기 싫은 티를 잘 내지 않으면서 유연하게 마무리한다. 왜? 프로니까. 이와 달리 '아마추어'는 라틴어 아마토르amator에서 유래했다. '애호가' '좋아서 하는 사람'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말 그대로 취미 삼아 소일거리고 임하는 사람을 뜻한다. 아마추어는 어떤 일이나 과정에서 재미와 즐거움 같은 요소가 사라지면 더는 하지 않는다. 아마추어의 입장에선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새삼 이런 생각도 든다. 어쩌면 프로와 아마추어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인지 모른다고. ... 살다보면 프로처럼 임해야 하는 순간이 있고 아마추어처럼 즐기면 그만인 때도 있다. 프로가 되는 것보다, 프로처럼 달려들지 아마추어처럼 즐길지를 구분하는 게 먼저가 아닐까 싶다. 프로가 되는 노력은 그 다음 단계에서 해도 된다. 이건 꽤 중요한 이야기다. 프로처럼 처리해야 하는 일을 아마추어처럼 하면 욕을 먹기 쉽고, 아마추어처럼 즐겨야 하는 일에 프로처럼 목숨을 걸다가는 정말 목숨을 잃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유시민, <청춘의 독서>

다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으면서, 그런 엄청난 세상의 변화를 다 견디고 내 마음에 남는 것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결국 남은 것은 사람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혹독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존엄을 지켜내는 사람, 땀 흘려 일하는 사람. 때로 보상받지 못하는 노동이라 할지라도 인간에게 유용한 것을 만드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 그런 사람의 모습에서 얻는 감명이 긴 세월을 견디고 내 마음에 그대로 남아있음을 나는 이번에 알게 되었다.

 

 

시어도어 젤딘, <인생의 발견>

인류는 점차 특권에 의해서만 분류되는 것이 아니라, 기질적으로도 규칙적이고 질서정연한 삶을 인정하고 사회가 정해준 생활에 기꺼이 적응해서 스스로 결정하지 않아도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과, 자기가 하는 일과 그 일을 언제 할지를 통제해서 모든 활동을 자기 나름의 속도로 수행하고 예상 밖의 사건과 다양성, 놀라움과 즉흥성에서 큰 즐거움을 얻는 사람들로 나뉜다. 이로써 사람들이 원하는 미래상도 크게 달라진다.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일은 권태를 몰아낸다. 요긴하고 재미있는 일을 할 때 느끼는 권태는 할 일이 전혀 없을 때 느끼는 권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일에는 하나의 공덕이 따른다. 일이 있음으로 해서 후일이 즐거운 것이다. 건강을 해칠 정도의 어려운 일을 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자유로운 시간에 게으른 사람보다 훨씬 많은 즐거움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이토 다카시,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왜 사람들은 부나비처럼 도시로 모여들까요? 거기에는 화폐 문제가 큰 역할을 합니다. 또한 그 밖에는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 만들어지는 화려함과 즐거움, 다양성,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생겨나는 유행에 대한 강한 욕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이 분비는 테마파크에 가면 '줄 서지 않고 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실제로 텅 빈 테마파크에 가면 반갑기는커녕 오히려 외롭다는 느낌을 갖기 쉽습니다.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때로는 우회로가 지름길이다. 삶이 우리를 우회로로 데려가고, 그 우회로가 뜻밖의 선물과 예상하지 못한 만남을 안겨 준다. 먼길을 돌아 '곧바로' 목적지로 가는 것, 그것이 여행의 신비이고 삶의 이야기이다. 방황하지 않고 직선으로 가는 길은 과정의 즐거움과 이야기를 놓친다.

 

 

가오싱젠, <창작에 관하여>

관찰의 태도를 유지하면서 심미를 획득할 때 새로운 발견과 깨달음, 즐거움이 가능해집니다. 이러한 열매는 작가가 현실적 공리를 뛰어넘을 때 얻을 수 있는 보상입니다. 그렇지 않고 현실적 이익이나 효과에 얽매이게 되면 작가는 창작에 필요한 열정과 관찰자적 냉정함을 유지하기 어려워집니다.

 

 

마이크 비킹, <휘게 라이프>

휘게는 삶의 단순한 즐거움을 누리는 것.

 

 

버트런드 러셀, <게으름에 대한 찬양>

아이들에게만 놀이가 필요한 게 아니다. 어른에게도 현재의 즐거움 이외엔 아무 목적도 없는 행위에 빠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놀이가 제 구실을 다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일과 관계 없는 부분에서도 기쁨과 흥미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린위탕(임어당), <생활의 즐거움>

결국 인생의 지혜란, 불필요한 것의 제거와 여러가지 철학문제를 몇 개의 것 - 가정의 즐거움(남편과 아내와 자식과의 관계), 살아가는 즐거움, 자연의 즐거움, 인류문화에 접촉하는 즐거움 - 으로 감소시키는 것과 다른 모든 적절치 않은 과학적 훈련이나 무익한 지식 추구 따위를 몰아내 버리는 것이다.

 

한적한 생활을 즐기는 데에 돈은 필요없다. 전혀 필요없다. 한적한 생활의 참된 즐거움은 부유 계급의 독점물이 아니다. 그것은 부귀를 가장 냉소하는 사람들에게만 찾아볼 수 있는 즐거움이다. 이것은 소박한 생활을 사랑하고, 돈 버는 일에 얼마나 싫증난 사람들의 마음의 함축에서 오는 것이어야만 한다. 생활을 즐기려고 결심한 사람에게는 즐길 수 있는 생활이 언제 어디서든지 발견된다. 만일 이 지상의 생활을 즐길 수 없다면 그것은 인생을 충분히 사랑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며, 평범한 그날그날의 생계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윌리엄 파워스, <속도에서 깊이로>

스크린은 개인과 기업을 비롯한 다양한 조직에 필요한 업무를 손쉽게 해결해주었다. 편리함과 즐거움을 제공할 뿐 아니라 세상을 한 걸음 더 가깝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스크린을 통한 네트워크가 촘촘해질수록 우리의 일상은 정신없이 바빠졌다. 그로 인해 우리는 매우 중요한 것을 잃고 말았다. 바로 시간을 두고 천천히 느끼고 생각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이를 두고 '깊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사고와 감정의 깊이, 인간관계의 깊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깊이가 사라지고 있다. 충만하고 의미 있는 삶의 핵심인 깊이가 사라져간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전규태, <단테처럼 여행하기>

여행이란, 여행자에게 있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다. 자기 안의 '고독한 인간'을 만나는 즐거움이다. 스스로의 인생뿐 아니라 인류의 오랜 역사를 새삼스럽게 발견하는 놀라운 체험이다.

 

 

문요한, <여행하는 인간>

여행에서 느끼는 자유로움과 즐거움은 불확실성과 즉흥성에 기초한다. ... 여행은 불확싱설으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치려는 우리에게 불확실성과 친구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진짜 여행이 시작되는 것처럼 잘 닦여진 길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때로는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람들이 별로 가지 않는 길이라 불편하고 두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불편과 두려움은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감내해야 할 조건이다.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은 명확한 방향을 정하고 확신에 차 걷는 사람이 아니다.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견뎌낼 줄 알는 사람들이다. 다만 자신이 걷는 길 자체를 사랑하고 자신이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 자신의 시도 하나하나가 모여 곧 길이 된다는 믿음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여행은 결국 삶으로의 여행이다.

 

 

사사키 후미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자기 혼자만의 즐거움을 위해 물건을 갖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애쓰는 편이 훨씬 더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 간디

 

 

스티븐 그린블랫, <1417년, 근대의 탄생>

루크레티우스는 인류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죽음을 극복하고 우리 자신도 살면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도 덧없는 것임을 인정하면서 세상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라고 썼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행복이란 불쾌한 순간을 상쇄하고 남는 여분의 즐거움의 총합이 아니라, 그보다는 개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데서 오는 것이다. 행복에는 중요한 인지적, 윤리적 요소가 존재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아기 독재자의 비참한 노예'로 볼 수도 있고, '사랑을 다해 새 생명을 키우고 있는 사람'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그 큰 차이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가치체계다. 니체가 표현한 대로, 만일 당신에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당신은 어떤 일이든 견뎌낼 수 있다. 의미 있는 삶은 한창 고난을 겪는 와중이더라도 지극히 행복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의미 없는 삶은 아무리 안락할지라도 끔찍한 시련이다.

 

 

래리 킬리 외 3명,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

고객참여 혁신은 종종 다른 종류의 혁신(특히 브랜드 혁신이나 서비스 혁신)과 함께 수행되어서 발견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고객과 상호작용하는 부분에 집중하라. 고객과 어떻게 관게를 맺고 고객에게 어떻게 즐거움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 집중한다면 고객참여 혁신을 이룰 수 있다.

 

해적처럼 생각하라. 해적처럼 생각하는 것이 모든 혁신 계획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흔들림 없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헌신적으로, 그리고 인습에 얽매이지 않게 혁신하라. 아마 우리보다 더 강한 경쟁자를 물리치기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만약 정해진 규칙이 있다면 그 규칙에 얽매이지 마라. 오히려 틀에 박힌 규칙에서 벗어남으로써 즐거움을 얻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혁신가가 지녀야 할 자질이다. 해적선을 만드는 것처럼 혁신 계획을 세워라. 남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고, 조종하기 쉽고, 번개처럼 빠른 무서운 해적선을 만들어라. 배를 출항할 때는 늦은 밤, 경쟁자가 지키고 있는 항구로 곧장 가라. 동이 트기 전까지 가장 효과적으로 적의 진영을 파괴할 수 있는 순간을 계획하고 맹렬한 전쟁을 벌여라. 필요한 전술이나 스킬은 무엇이든 사용하고, 타협하지 마라.

 

 

박웅현, <다시, 책은 도끼다>

늘 거기 있는 것을 주목해 보아 또하나 삶의 즐거움을 만드는 것. 그것이 나이 들어가는 것이더라. 잘 익어가자.

 

 

레프 톨스토이,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부와 사치에만 익숙해지면 소박한 삶을 잊게 되고 내면적인 즐거움과 평화, 자유를 잃어버리고 만다.

 

시간이 흘러간다고들 말하지만 움직이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우리다. 인생은 너무 짧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충분한 즐거움을 안겨주지도 못할 만큼 짧다. 그러니 어서 서둘러 친절한 행동을 하라. ... 인생은 공간이나 시간으로 측정할 수 없다. 그것은 공간과 시간 바깥에, 영혼 속에 존재한다.

 

친절은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모든 비난을 해결한다. 얽힌 것을 풀어헤치고, 곤란한 일을 수월하게 하고, 암담한 것을 즐거움으로 바꾼다.

 

즐거움을 추구하지 말라. 대신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서 즐거움을 찾으라.

 

 

테미 스트로벨, <행복의 가격>

소박한 삶을 살면 자신만의 생활방식을 창조할 수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며 살아갈 돈과 시간과 자유가 있는 생활을. 일의 즐거움을 되찾는다는 것은 곧 현명하게 일하고, 자기에게 맞는 일정을 세울 자유를 누리고, 일을 놀이처럼 대하는 법을 배우고, 변화 속에서 기회를 찾는다는 뜻이다.

 

기존의 작은 즐거움들을 목록으로 만들어라.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사소한 일들에는 무엇이 있는가? 얼마나 자주 그 일을 하는가? 그것을 생활 속에 더 깊이 스며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작은 즐거움에 초점을 맞추고 그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작은 즐거움을 찾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다. 날마다 예기치 못했던 뜻밖의 즐거움들을 목록에 정리하는 건 더 좋다.

 

 

전영우, <비우고 채우는 즐거움, 절집 숲>

인적 드문 깊은 산속에서 찬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세상을 관조하는 탁족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도락이 아니다. 자연을 즐기고, 자연의 가치를 아는 이들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다. 흐르는 물속에 발을 담근 시간에 비례해 몸이 상쾌해지고, 기분이 깨끗해지는 쇄락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순간 도시의 온갖 욕망과 스트레스는 사라지고, 마음의 평화와 고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프레데릭엠 허드슨 박사는 "노화는 육체는 쇠락해도 정신은 성장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던가. 나이듦을 두려워하고 거부하기보다 자연에서 찾는 작은 즐거움에도 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긍정의 힘이 정신을 성장시킨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던 걸음이었다.

 

 

이권우, <여행자의 서재>

여행의 즐거움의 반은 길 잃음의 미학이다. - 레이 브래드버리

 

 

리 호이나키, <정의의 길로비틀거리며 가다>

사람은 자기 장소가 주는 작은 즐거움들을 느끼는 그만큼, 그는 강하며, 반면에 꼭 돈이 들어야 누릴 수 있는 즐거움들이 필요한 그만큼, 그는 약하다. - 웬델 베리

 

 

베르나르 올리비에, <나는 걷는다>

실크로드에 대한 역사적 관심과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걷는 즐거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신비로움.

 

 

최지원, <유학자의 동물원>

생에 알맞은 것은 좋아하고 생에 알맞지 않은 것은 미워하니, 감정으로 드러나는 것에 이름을 준 것이 비록 일곱 가지가 있으나, 기실은 호오뿐이다. 칠정이란 희(喜), 노(怒), 애(哀), 락(樂), 애(愛), 오(惡), 욕(欲)이다. 감정의 발현에 어찌 이같이 실마리가 많겠는가. 진실로 그 실(實)을 추구해 보면 대개 호오가 있을 뿐이지만, 그 호오의 깊고 얕은 정도가 모두 같지 않으므로 여러 가지 이름이 있게 된 것이다. 절박하게 싫어하는 것이 슬픔이 되고 성하고 격렬하게 싫어하는 것이 노여움이 되며, 좋아하는 것이 나타나면 기쁨이 생기고 좋아하는 것이 두드러지면 즐거움이며, 좋아하는 마음이 대상에 결부되면 사랑이고, 싫어하는 것을 회피하고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욕(欲)이 되는 것이다. - 최한기, <추측록> 제3권, <추정측성>, 칠정(七情)은 호오(好惡)에서 나온다.

 

 

무라카미 하루키,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

생활 속에서 개인적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크든 작든 철저한 자기 규제 같은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꾹 참고 격렬하게 운동을 한 뒤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같은 것이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아!" 하고 혼자 눈을 감고 자기도 모르는 새 중얼거리는 것 같은 즐거움, 그건 누가 뭐래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참된 맛이다. 그리고 그러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없는 인생은 메마른 사막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스티브 도나휴,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

지나친 자의식 때문에 춤추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누구도 어리숙해 보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림 수업, 시 쓰기, 외국어 배우기, 노래 배우기... 자아에서 공기를 조금만 빼면 수많은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강신주, <철학의 즐거움>

우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놀이가 자발적인 행위라는 점이다. 명령에 의한 놀이는 이미 놀이가 아니다. 기껏해야 놀이의 억지 흉내일 뿐이다. 자유라는 본질에 의해서만 놀이는 자연의 진행과정과 구분된다. ....  어른이나 책임이 있는 인간들에게 놀이는 도외시해도 무관한 기능이다. 놀이는 여분의 것이기 때문이다. 놀이에 대한 욕구는 즐거움이 놀이하기를 원하는 한에서만 절실해진다. 놀이는 언제고 연기될 수도 있고 중지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놀이는 물리적 필요가 도덕적 의무로 부과되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놀이는 임무가 전혀 아니다. - 호모 루덴스, 하위징아

 

자신의 일에서 놀이가 가진 즐거움과 창조성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아이 때 경험했던 놀이의 즐거움을 되찾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행복한 삶은 그만큼 멀어질 수밖에 없다.

 

 

정지훈, <무엇이 세상을 바꿀 것인가?>

우리는 이제 생산에 투입되는 부분에 대해서만 가치의 방점을 찍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자연스럽게 나눔의 문화가 확산되고 즐거움과 행복, 그리고 사람들의 만남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분배방식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

 

 

이외수, <글쓰기의 공중부양>

아이들은 가식도 없고 욕심도 없다. 잘 그린다는 기준도 없고 못 그린다는 기준도 없다. 단지 자기의 생각이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는 즐거움에 심취한다. 아이들의 그림을 보면 어떤 대가도 따라갈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해 있다. 아이들의 그림에는 기술 이상의 진실이 담겨 있다. 그래서 보는 사람에게 특별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대가들도 나이가 들면 아이들의 그림을 닮아간다.

 

 

아잔 브라흐마, <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세상의 종교들이 가장 큰 어리석음으로 꼽는 망상은 '삶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착각'이다. 모두는 이 즐거운 망상 속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고 있다. 세속적인 삶의 목적은 기쁨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 그리고 부의 축적뿐이다. 죽음의 관점에서 보면 삶에서 우리가 행하는 이 모든 행위들은 두말할 나위 없이 바보 같은 짓이다. 감각기관을 즐겁게 하는 것, 관계를 갖는 것, 결혼하는 것, 집을 소유하는 것, 부를 축적하고 자동차를 사는 것, 다양한 즐거운 경험을 쌓는 일들이 죽음에 직면해서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

 

 

류콴홍, <철학우화>

생활 속에서 고통을 즐거움으로 바꿀 줄 아는 생활의 강자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습니다. "고통을 즐거움으로 바꾸라." - 베토벤

 

 

리칭즈, <여행의 속도>

그 지역을 이해하는 가장 확실한 도구는 자신의 두 다리뿐이다. 발자국을 남겨야 비로소 그곳을 제대로 알 수 있다.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여행의 시작이기도 하다. '길을 잃는' 즐거움을 알아야만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

 

 

조정래, <정글만리>

인생이 뭐고, 사는 게 뭡니까. 인생이란 추억 만들기고, 사는 건 때때로 무슨 계기 찾아가며 즐거움을 만들어가는 것 아니던가요?

 

 

박웅현, <여덟단어>

萬物 皆備於我矣 反身而誠 樂莫大焉(만물 개비어아의 반신이성 낙막대언) - 맹자

만물의 이치가 모두 나에게 갖추어져 있으니, 나를 돌아보고 지금 하는 일에 성의를 다하면 그 즐거움이 더없이 클 것이다.

 

 

도정일,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돈은 인간 생활에 중요하다. 그러나 돈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인 것은 아니다. 쾌락 역시 인간의 삶에서 제외도리 수 없으나 쾌락 추구만을 목적으로 하는 삶은 위험하고 허망하다. 삶의 목적은 '아름다운 삶'의 영위에 있다. 이해관계와 수지 타산을 떠날 줄 아는 삶, 용도와 유용성을 초월할 줄 아는 삶, 어떤 것을 '소유하기'나 '소유하는 자'를 벗어나 존재 그 자체를 중히 여기는 삶이 아름다운 삶이다. 아름다운 삶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쾌락pleasure이 아니라 즐거운joy이다. 쾌락이 자주 존재의 타락을 강요한다면 즐거움은 존재의 확장을 경험하게 한다. 존재 확장의 경험이 기쁨이라는 것이다.

즐거움과 기쁨을 위한 투자, 그것이 곧 아름다움에 대한 투자이다. 이 투자가 있을 때에만 인간은 즐거움과 기쁨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다. 그 삶을 지향하는 것이 바로 '삶의 질' 높이기이다. 삶의 질은 향랑의 수준에 있지 않고 아름다움의 수준에 있다. "정의가 없다면 인간은 수치다"라고 프란츠 카프카는 말했지만, 마찬가지로 아름다우이 없다면 인간존재는 수치일 것이다.

 

 

크리스토퍼 시, <결정적 순간에 써먹는 선택의 기술>

물질적인 만족은 짧고 정신적인 즐거움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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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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