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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9.17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 혜민 스님

공간의 물체는 빛과 여백이 있기에 존재를 확인할 수 있고, 치우침에는 반대의 성질과 양상이 있기에 균형을 맞춰 세상이 돌아간다. 

 

힘들고 어려울 때, 앞이 깜깜하고 갈 방향이 보이지 않을 때 잠시 고요함 속에서 여유를 갖고 세상과 주변을 돌아보면, 그 사이 보지 못했던 것이 보이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떠오른다. 고요함 속에 주변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사이 반복적이고 비슷비슷했던 하루하루 일상에 새로운 경험과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본문 발췌]

 

마음이 고요해지면 예전에는 잘 몰랐던 것들이 밝아지면서 비로소 드러나게 됩니다. 내 안의 소망이라든지, 진정 꿈꾸는 삶의 방향이라든지, 추구하고 싶은 삶의 가치라든지, 혹은 오랫동안 눌러놓았던 감정이나 기억까지 되살아나 그것들로부터의 치유가 가능하게 됩니다. 또한 마음이 완전히 고요해지면 수행자들이 깨닫고 싶어 하는 자기 본성도 밝아지게 됩니다.

 

정말로 마음에 딱 드는 것이 아니라면 여유를 두고 좀 기다리세요. 기다리면서 열심히 찾다 보면 정말로 나에게 딱 맞는 사람, 딱 맞는 일, 딱 맞는 물건이 어느 순간 나타납니다.

 

자기 삶을 이끄는 가치가 무엇인지, 무엇을 했을 때 자유롭고 행복한지, 어떤 일을 하면 보람을 느끼는지 스스로 인지하고 삶을 선택해 나가야 하는데 인지를 못할뿐더러 그 선택을 자신이 하려 하지 않고 타인에게 묻거나,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며 따라 하려고 한다. 더욱이 '남의 나'의 힘이 강할수록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가 아닌 타인을 통해서 세우려고 한다. 아버지의 아들로, 누군가의 아내나 남편으로, 아이들의 부모로 자신의 정체성을 삼는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타인에게 자신의 행복을 의탁하게 된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가 못하는가에 따라, 혹은 배우자가 승진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내 인생의 행복이 결정된다. 자기를 위한 사람을 제대로 살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희생적이면서도 의존적이 되기 쉽다. 게다가 아이나 배우자, 부모와의 경계선이 모호해져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함부로 넘으며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간섭하고 간섭당하며 다툼을 반복하게 된다.

 

행복을 소유의 개념이 아닌 감상의 개념으로 본다면 소유할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 친구와의 우정, 내 아이의 웃음소리, 음악이 선물하는 평온함, 내가 응원하는 스포츠팀 우승이 다 행복으로 다가옵니다. 아무리 돈 많은 부자라 하더라도 그들의 행복 역시 우리가 말하는 소확행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삶을 감상할 줄 아는 태도를 갖추었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세상을 사랑할 수는 있어도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집이나 차, 옷 같은 것도 아주 잠깐 빌려 쓰는 것이지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세상을 그저 사랑하고 감사해하며 잠시지만 누리세요.

 

내가 지금 가지지 못한 것에 집중하면 인생은 결핍이 되지만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집중하면 인생은 감사함이 됩니다.

 

복잡함 속에서도 단순한 것을 보는 것이 지혜입니다. 단순한 것이지만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 것이 예술입니다.

 

우리의 괴로움은 주어진 현실이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고 그 현실에 대한 내 마음의 해석이 가져옵니다. 똑같은 상황인데도 내 마음의 해석에 따라 괜찮을 수도 있고 엄청난 마음의 상처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되도록이면 긍정적으로 해석해보세요.

 

외로움의 정체는 혼자라는 외적 상황보다 혼자여서 문제라는 내면의 생각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결국 상황이 아닌, 그 상황을 해석하는 우리의 방식이 우리를 괴롭혔던 것이다.

 

마음이 괴로울 때, 그 괴로움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나 관찰해보세요. 그러면 그것이 내 생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은 원래 물 위에 쓴 글씨처럼 잠시 모양을 드러냈다가 자국을 남기지 않고 곧 사라집니다. 이내 사라질 생각을 붙잡고 되새김질하면서 괴로워하지 마세요.

 

텅 빈 큰 공간에 의자가 하나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보통 모양 있는 의자만 의식하고 모양 없는 텅 빈 큰 공간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의자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텅 빈 공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마음이라는 텅 빈 공간 안에 한 생각이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생각만 의식하고 생각의 존재를 가능하게 했던 그 텅 빈 마음 공간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본성을 깨닫는다는 것은 나쁜 생각을 좋은 생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고 생각이 생겼다 사라지는 텅 비고 고요한 마음 공간을 의식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254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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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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