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고창 내려가는길, 익산 황등시장에 들러 점심을 먹기로 하고 식당 문 여는 11시 전에 도착했는데 길가까지 늘어선 차들을 보고 뭔가 불길한 느낌.
식당 오픈전 길게 늘어선 줄, 이럴 줄은 몰랐다.
그래도 육회비빔밥과 선지순대국의 식사 시간이 짧아서 그런지 1시간 여만에 식당에 입성, 맛은 기다린 보람은 있었지만 멀리서 찾아올 정도인지는 모르겠다. 근처에 볼일이 있고 기다릴 마음자세가 되어있다면 토렴한 촉촉 육회비빔밥과 선지와 피순대가 들어간 깔끔한 순대국밥을 맛볼 수 있다.
고창집은 요즘 자주 찾지 못하고 늦봄 부모님이 심어놓은 이런저런 작물들이 장마에 무사한가 걱정했는데 땅이 주는 여름 선물이 쏠쏠했다.
마트에서 사먹는 토마토와 참외, 수박, 옥수수에서 느낄 수 없는 단단함과 향, 맛의 깊이가 다르다.
주변에서 많이 들었던 이야기이고, 나도 그런 생각을 하며 나중에 내가 가서 살겠다는 생각으로 지금 부모님이 살고계신 곳에 터를 마련했다.
부모님이 운전을 못하시게 되며 기동성이 떨어지니 여러가지 불편함이 생기고, 텃밭치고는 큰 면적의 밭일이 버거워하시니 고민이 많다.
마루야마 겐지의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책과 같이 시골살이에 대한 준비와 체험, 결정에 따른 포기해야 할 것과 마음가짐이 중요한지에 대한 것들도 읽었지만 절실히 와 닿지 않았는데 이런저런 사정에 시골집을 정리하려다보니 앞으로 다시 시골살이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가족들이 모여 살며 바로 옆에서 서로 보살피지 않는다면 나이들어서 시골생활은 고립과 방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이 들면 편의 시설이 가까운 도시 근처에 사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일지 모른다는 것을....
시골살이는 나이들어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기동력이 있고, 육체 노동을 견딜 수 있는 한 살이라도 젊어서 하는 게 좋다는 것을....
마루야마 겐지의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를 다시 펼쳐본다.
"겉만 보고 시골살이의 결단을 내린다. 그때 당신들의 눈길은 바로, 낯선 땅에서 좋은 부분에만 마음을 빼앗기며 지나가는 여행자의 시선이었습니다. 하지만 여행하는 사람과 정착해서 사는 사람의 입장은 크게 다릅니다. 요컨대 당신들은 인생에서 최대이자 최악의 충동구매를 하고 만 것입니다. 실패했을 때의 후회가 흔한 후회의 범위를 넘어서는 너무나 어리석은 짓을 한 것입니다.
당신의 시골 생활의 정점은 땅을 사고, 집을 짓고, 그 지역으로 이주했을 때입니다. 신축 기념, 이사 기념, 새 출발 기념을 하려고 도시에서 사귄 친구들을 초대해 마당에서 바비큐 파티를 연 날이 행복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들이 친구나 지인들의 시선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나 가까운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을 보면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빠르면 수개월, 늦어도 몇 년 후에는 권태감과 고독감과 좌절감에 휩싸이는 처지가 될 것입니다. 낮에는 그다지도 눈부시던 광경이 해가 지기 무섭게 깊이를 알 수 없는 암흑에 휩싸이고 맙니다. 어둠의 깊이에는 시간이 흘러도 익숙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짐승에게 잡아먹히는 약한 동물로서의 방어 본능이 밤마다 살아나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립니다.
어느 사이에 도시 친구들도 들르지 않게 되고, 지역 주민들과 삶의 방식이 달라 지칠 대로 지쳐 갑니다. 자연에서 받는 감동은 점점 줄어들고, 자연이 주는 위협에 겁을 먹게 됩니다. 자연은 결코 이미지가 아니라, 삶과 죽음이라는 절실한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는 현실 그 자체라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시골에서는 내 일은 내 힘으로 한다는 강한 마음가짐과 체력이 필요합니다. 이주하고 나서 도시의 편리함과 비교하며 불평을 해 본들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것이든 스스로 해내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으면 굳이 불편한 곳에서 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불편함이, 너무 편리한 도시 생활로 흐늘흐늘해진 당신 심신을 단련시켜 줍니다. 불편함이, 당신 뇌를 계속 지배해 온 싸구려 이미지를 말끔히 제거하고 가혹한 현실과 대치하는 묘미를 알게 해 줍니다. 불편함이, 당신 정신을 본래로 돌려줍니다. 불편함이, 당신 모습을 본래로 돌려줍니다. 이렇게 발상을 전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시골 생활을 단념하는 편이 좋습니다. 아무리 오기로 버텨 보려 한들 소용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