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집, 더 큰 차, 더 많은 음식, 더 많은 소비, 필요를 넘어 무엇이든 더 크고 많은 걸 원한다. 그 넘침이 세상을 병들게 하는지 모르고...

 

자연과 더불어 지속 가능한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더 많이, 더 크게, 더 빠르게가 아니라 느리고, 작은 것, 균형과 조화로운 삶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중에서

 

슈마허에게 경제 성장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아울러 쾌적한 자연 환경은 경제 성장을 위한 수단에 그치지 않고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기존의 성장지상주의는 이런 측면을 무시하고, 자연 환경을 오로지 성장수단으로만, 그것도 '좀더 빠르게, 좀더 높게, 좀더 강하게' 성장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취급한다. 여기서 인간은 기술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가 되고, 경제 성장은 인간의 행복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성장'으로 전환된다. 그가 보기에, 이러한 성장방식은 인간과 자연을 파괴한 대가로 물질적인 풍요를 제공할지 몰라도, 진정으로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그렇다면 경제구조를 진정으로 인간을 위한 모습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가? 슈마허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대답은 '작은 것'이다

 

"경쟁과 속도전에서 벗어나, 인간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 자그마한 규모를 유지할 때 비로소 쾌적한 자연 환경과 인간의 행복이 공존하는 경제구조가 확보될 수 있다"

 

"대지는 모든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지만, 모든 사람의 탐욕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 간디

 

"재생될 수 없는 재화는 오로지 피할 수 없는 경우에만 이용되어야 하며, 그 경우에도 이를 보전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과 관심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러한 재화를 신중하지 않거나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 행위이다."

 

"자연은 항상 언제 어디서 멈춰야 할지 알고 있다. 자연이 성장도 신비롭지만, 이보다 더한 것은 성장을 멈추는 자연의 신비로움이다. 자연 세계의 모든 것에는 규모, 속도, 힘의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그 결과 인간을 포함하는 자연체계는 자기균형 능력을 보이면서 스스로를 조절하고 정화하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기술은 그렇지 않다. 아니 기술과 전문화에 의해 지배당하는 인간은 그렇지 않다고 말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술은 규모, 속도, 힘 측면에서 스스로를 제한하는 원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은 자기균형, 자기조절, 자기정화의 미덕을 갖고 있지 않다. 미묘한 자연체계에서 기술, 특히 근대 세계의 거대 기술(super-technology)은 낯선 물건처럼 작동하는데, 그래서 오늘날에는 이에 대해서 수많은 거부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현명하면서도 객관적인 시선에 도달하여 지혜를 완성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현실에 대해 '말없이 응시' 하면서 자기 중심적인 관심을 적어도 일시적으로나 억제하는 태도가 전제되어야 한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3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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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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