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시간과 함께 쌓여가지만 그 길이가 오래될수록 어떤 기억들은 잊혀진다. 기억과 망각의 균형으로 우리 뇌가, 생각이 과부하에 걸리지 않는 것일지도.... 오래 간직하고 싶은 기억도 있지만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들도 있다.

 

간직하고 싶은 좋은 기억들의 시간을 늘리는 방법 : 감동, 반복적 회상, 기록, 다양한 감각을 동원한 기억 등....

 

 

 

기억, 記憶

1.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

2. <심리> 사물이나 사상(事象)에 대한 정보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정신 기능.

3. <컴퓨터> 계산에 필요한 정보를 필요한 시간만큼 수용하여 두는 기능.

[유의어] 메모리, 상기, 암기

 

(네이버 영어사전) [명사] memory, recollection, (formal) remembrance, [동사] remember; (생각해 내다) recall, recollect; (마음에 담아 두다) bear[keep] (sth) in mind

 

(생명과학대사전) 인상, 지각, 관념 등을 불러 일으키는 정신기능의 총칭. 사람이나 동물이 경험한 것을 특정 형태로 저장하였다가 나중에 재생 또는 재구성하는 현상이다. 새로운 경험을 저장하는 작용, 기명된 내용이 망각되지 않도록 유지하는 작용, 유지하고 있는 사항을 회상할 수 있는 활동을 기억의 3요소라 한다. 기억은 여러 가지로 분류되는데, 시간적 측면에서 불필요하면 잊게 되는 단기기억과, 장시간, 때로는 평생 동안 유지되는 장기기억이 있다. 기억은 대뇌피질의 감각연합역에 저장되고, 해마는 기억형성에 관여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시, 글과 책 속에 쓰인 '기억'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콜레라 시대의 사랑>

가슴의 기억은 나쁜 기억은 지우고 좋은 기억만 과장하는 법이며, 이런 책략 덕택에 우리가 과거의 짐을 견디고 살아갈 수 있다.

 

 

유현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공간은 실질적인 물리량이라기보다는 결국 기억이다. 우리가 몇 년을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어떠한 추억을 만들어 냈느냐가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 이 같은 현상은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나빠져서 기억할 일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 만큼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대로 어렸을 때는 기억력이 좋아서 하루만 생각해도 기억할 일이 많고 그만큼 시간이 꽉 찬 느낌으로 느리게 흘러가는 것으로 느껴진다고 한다.

 

 

이정우, <개념 뿌리들>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시간에는 현재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인간이 기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인간은 그저 매 순간을 살아갈 수 있을 뿐이고 '나'라는 정체성을 가지지 못할 것입니다. 기억이 존재하기 때문에 인생이란 것이 존재하는 것이죠.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과거 기억을 상실하면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게 되고 미래 기억을 못하면 나는 영원히 현재에만 머무르게 된다. 과거와 미래가 없다면 현재는 무슨 의미일까. 하지만 어쩌랴. 레일이 끊기면 기차는 멈출수밖에.

 

 

한동일, <라틴어 수업>

인간은 죽어서 그 육신으로 향기를 내지 못하는 대신 타인에 간직된 기억으로 향기를 내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기억이 좋으면 좋은 향기로, 그 기억이 나쁘면 나쁜 향기로 말입니다. 인간은 타인을 통해 기억되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오늘은 내가, 내일은 네가" 죽음으로써 타인에게 기억이라는 것을 물려주는 존재입니다.

 

 

헬렌 니어링,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성공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유명함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 반면, 정의로움은 영원한 진리의 반석이 된다.

 

 

정철, <불법사전>

"이별", 남자와 여자가 만나 서로의 가슴에 느낌표를 찍고, 서로의 품에서 쉼표를 찍다가, 어느날 서로에게 물음표를 던진 후, 한동안 조용히 말없음표를 찍고, 결국 서로의 기억에 마침표를 찍는 것. 그리고 둘 중 한 사람은 자꾸 되돌이표를 만지작거리는 것.

 

 

베르나르 베르베르, <죽음>

죽을 때 삶에서 배운 걸 모두 기억해야 한다.

첫째, 인간의 삶은 짧기 때문에 매 순간을 자신에게 이롭게 쓸 필요가 있다.

둘째,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남들이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결국 선택은 우리 스스로 하는 것이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우리가 지는 것이다.

셋째, 실패해도 괜찮다. 실패는 도리어 우리를 완성시킨다. 실패할 때마다 뭔가를 배우기 때문이다.

넷째, 다른 사람에게 우리를 대신 사랑해 달라고 할 수는 없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은 각자의 몫이다.

다섯째, 만물은 변화하고 움직인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물건이든 억지로 잡아 두거나 움직임을 가로막아선 안 된다.

여섯째, 지금 갖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려 하기보다 지금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삶은 유일무이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완벽하다. 비교하지 말고 오직 이 사람을 최대한 누리기 위해 애써야 한다.

 

 

김영하, <말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간접적인 행위이지만 오감을 동원하면 그것은 마치 놀라운 가상현실처럼 우리에게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주고, 그런 글쓰기가 습관이 되면 일상생활에서도 더 민감하게 오감을 동원하게 됩니다. 감각과 기억, 표현은 이렇게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의 감성 근육을 키우는 것입니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혜민스님,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우리는 늘 행복할 수는 없지만 순간순간 행복했던 기억의 힘으로 살아간다.

 

 

최인철, <굿 라이프>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이 두 가지의 구분을 위해 경험하는 자기(experiencing self)와 기억하는 자기(remembering self)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우리에게는 현재 순간을 경험하는 자기가 있고, 나중에 그 경험을 기억하고 회상하면서 새롭게 재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자기가 있다. 카너먼은 우리에게 두 가지 자기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에도 두 가지가 있다고 주장한다.하나는 경험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이고, 다른 하나는 기억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이다. 경험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지금 현재의 만족과 기분을 추구한다는 것이고, 기억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삶 전체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한다는 뜻이다.

 

 

정재승, <열두 발자국>

아날로그의 반격 현상을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도대체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왜 사람들은 아날로그를 다시 찾는 걸까요? 아마도 그것을 '복고의 귀환'으로 설명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유행은 돌고 돈다고 했던가요? 인간은 행복을 '상태'로 인식하지 않고 '기억'에서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당시엔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면 좋은 기억으로 뇌 속에 저장됩니다. 행복한 순간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과거의 한 순간에서 애써 찾지만, 당시엔 그 시간이 행복인지 인지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행복으로 덧칠된 복고의 기억은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시대가 바뀌어도 종종 소환되는 것일지 모릅니다. "그때가 참 좋았지" 하면서 말입니다. 실제로, 미국 작곡가 오스카 레번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행복은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다!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

캄캄한 어둠이라면, 우리 안에 남는 건 그 캄캄함이 아니라 그 어둠 속에서 미미하게 비치던 빛 같은 것이죠. 그게 기억의 속성인 것 같아요. 글쓰기는 기억을 닮았어요. 사람은 누구나 기억하고 싶은 것을 글로 쓰는 거죠. 의도적으로 부정적인 경험을 망각해요. 이 의도적인 망각이 창작의 원동력이에요. 어쩌면 삶의 원동력일지도 모르겠고요.

 

 

유시민, <역사의 역사>

교류가 전혀 없었던 두 문명에서 비슷한 때 본격적인 역사서가 등장했다는 사실은 과거를 기억함으로써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려는 욕망이 우리 인류의 본성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미치오 카쿠, <미래의 물리학>

과학자들은 기억력과 망각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너무 많이 잊으면 과거의 실패나 좌절감과 함께 애써 습득한 기술까지 잊게 된다. 그 반대로 너무 많이 기억하면 중요한 정보와 함께 과거에 겪었던 모든 좌절과 슬픔이 수시로 떠올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억과 망각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야 최상의 이해력이 발휘된다.

 

 

전주희 외,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

인간의 시간이란 연속적이지 않다. 시계가 가리키는 초침과 분침은 균질적이지만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이란 기억과 미래일 뿐이다. 현재는 늘 순식간에 과거로 흘러가 기억으로 쌓인다. 기억으로 쌓인 시간이 미래를 정확하게 그릴 수 없다는 것은 언제나 정해진 시간에서 벗어나는 시간, 다른 시간을 꿈꿀 수 있는 이탈의 가능성을 포함한다. 하지만 자본의 시간, 부채가 결정하는 시간은 이러한 인간의 시간을 설계하고 계산하며 통제한다. 부채가 인간의 삶을, 인간의 모든 시간을 강탈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면 기억과 미래라는 연속적이지 않은 인간의 시간은 화폐가치로 환산된 시간표가 될 것이다. 1교시가 끝나면 어김없이 2교시가 기다리는 시가느이 연속이 삶의 전부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사건을 찾아 여행을 떠나지 않는 개인에게는 시간이란 지금-지금-지금이 무한히 반복되는 시간만이 남겨지게 될 것이다.

 

 

박완서, <잃어버린 여행가방>

풍성하게 쌓인 낙엽을 밟는 맛은 보는 맛 못지않았으며, 젖은 낙엽이 풍기는 냄새는 특이했다. 꽃내음도 아닌, 코끝과 정감을 동시에 건드리는 은은하고도 격조 높은 향기였다. 나는 그 향기를 기억하기 위해 깊이깊이 들이마셨고, 옷자락에도 스미라고 일부러 오래 이슬비 속에 서 있기도 했다.

 

 

빈센트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지난 삶의 기억들, 이별한 사람들이나 죽어버린 사람들, 영원히 지속될 것 같던 시끌벅적한 사건들.... 모든 것이 마치 망원경을 통해 희미하게 바라보는 것처럼 기억 속으로 되돌아올 때가 있지요. 과거는 그런 식으로만 붙잡을 수 있는가 봅니다.

 

 

P. G. 해머튼, <지적 생활의 즐거움>

동일한 시간 동안 사람의 인생이 다르게 결정되는 이유는 시간의 '질'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질'은 기억과 관련이 깊습니다. 질 좋은 시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질 나쁜 시간은 방금 전에 일어난 일도 기억해내지 못합니다. 기억의 형성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감정적 충격입니다. 선명한 감정적 충격이 뇌리와 마음에 깊게 새겨져 기억할 의사가 없음에도 저절로 기억되는 경우입니다. 두 번째는 반복입니다. 시간을 들여 반복적으로 주입시킨 기억입니다.

 

 

<사랑은 나의 약점> 중에서 / 심보선

 

그는 내게 말하는 듯했다.

시인이여, 노래해달라.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나의 머지않은 죽음이 아니라

누구도 모르는 나의 일생에 대해.

나의 슬픈 사랑과 아픈 좌절에 대해.

그러나 내가 희망을 버리지 않았음에 대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생존하여 바로 오늘

쪽동백나무 아래에서 당신과 우연히 눈이 마주쳤음에 대해.

나는 너무 많은 기억들을 어깨 위에짊어지고 있는데

어찌하여 그 안에는 단 하나의 선율도 흐르지 않는가.

창가에 서 있는 시인이여,

나에 대해 노래해달라. 나의 지친 그림자가

다른 그림자들에게는 없는 독특한 강점을 지녔노라고 제발 노래해달라.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안티프래질>

이론과 실행의 중요한 차이는 사건의 순서를 정확하게 탐지하고 그 순서를 기억하는 데 있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했듯이, 우리가 앞을 향해 살아가지만 뒤를 향해 기억한다면, 책은 우리의 기억, 학습, 본능이 순서를 가지려는 성향을 악화시킨다. 오늘 누군가가 살아보지도 않았던 사건을 바라본다면, 주로 사건의 순서에서 나타나는 혼란때문에 인과관계의 환상을 가질 수 있다. 이런 바이어스에도 불구하고, 실생활에서 우리는 역사학과 학생만큼의 비동시성을 갖지는 않는다. 역사는 거짓말과 바이어스로 가득 찬 고약한 것이다.

 

 

로버트 그린, <권력의 법칙>

자기 창조의 두 번째 단계는 기억에 남는 이미지를 창출하는 것이다.

 

 

코에케 류노스케, <생각 버리기 연습>

무언가를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이 '무명(無明)'을 키운다. 버릴 수 없이 두는 것이 늘어날수록 기억의 데이터베이스도 점점 복잡해지고 기억할 수 없는 것도 늘어난다. 기억할 수 없는 것이 늘어나면, 현재 자기 마음의 상태를 인식하는 능력, 자신의 마음을 구석구석까지 넓게 훑어보는 능력, 자기 통제 능력이 줄어들게 된다. 그것은 자기 마음속에서 의식화할 수 없는 정보가 늘어가기 때문이다. 물건을 버리지 않고 두고 싶다는 번뇌와 버려버리고 싶다는 솔직한 충동, 이 상반된 두 가지가 일으키는 갈등을 생각하면 기분이 나빠진다. 마음이 혼란스러워져 이런 갈등 자체가 싫어지면,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기분이 되어 서랍이나 벽장 한구석에 처박아 놓을지도 모른다. ... 무명이란 진리의 빛이 비추어지지 않는 혼란한 상태이다. 마음속에 있는 진정 어두운 영역이다. 스스로 자신이 보이지 않는 영역을 늘려가는 것이기도 하다. 이 무명이란 영역은, 욕망에 따라 물건을 점점 더 많이 소유하고 집착할수록 점점 더 커진다.

 

 

안드레아 울프, <자연의 발명>

인간은 기억과 정서적 반응을 통해 자연을 경험하고 이해한다.

 

 

라 로슈푸코, <잠언과 성찰>

사람들은 곧잘 기억력이 나쁘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판단력이 둔하다는 것은 아무도 개탄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머릿속에 넣어 두는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왜 상대방에게 했던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카트린 지타,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

당신이 항상 가지고 다닐 수 있을 만큼만 소유해라. 언어를 배우고, 국가를 이해하고, 사람들을 받아들여라. 당신의 기억력이 곧 당신의 여행 가방이 될 수 있도록...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혜민 스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냥 내가 / 약간 손해 보면서 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사십시오. / 우리는 자신이 한 것은 잘 기억하지만 / 남들이 나에게 해준 것은 쉽게 잊기 때문에, / 내가 약간 손해 보며 산다고 느끼는 것이 / 알고 보면 얼추 비슷하게 사는 것입니다.

 

 

구본권, <로봇시대, 인간의 일>

 

우리에게 기억은 의도적 망각과 삭제의 과정을 거친 결과이고 추상화 작용의 핵심이다.  망각은 인간 기억 기능의 결함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추상화와 일반화를 가능하게 해서 창의력과 통찰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전략적 선택이다.

 

기억을 외부에 의존하는 행위가 스스로 무지함을 깨닫지 못한 채 자신에게 지식이 있는 것으로 잘못 판단하게 만든다는 말은 인터넷 환경에서 더욱 돋보이는 통찰이다. 기억은 우리가 주의력을 집중하는 정도에 따라 자세하게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외부 기억장치에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 뇌는 그 대상에 주의력을 덜 할당하게 된다.

 

우리가 경험과 학습을 통해 형성하는 기억의 총체가 곧 의식이자 삶이다. 풍부한 기억이 곧 풍요로운 삶이다. 친구와 가족, 배우자가 각별한 것도 서로 공통된 기억을 통해 삶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 기억은 비록 부실하지만 우리가 부여받은 값진 선물이다. 기억의 아웃소싱은 결국 사람의 본질적 특성인 사고와 판단마저 기계에 위임하는 결과로 연결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고하는 존재인 우리는 편리하다고 주요 기억을 함부로 외부에 맡겨서는 안 된다.

 

 

강상중,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인간의 비극은 '미래를 예측하고 싶어 한다'는 것과 '기억한다'는 것에서 기인합니다. 과거를 아쉬워하고 미래를 불안해하기에 마음의 병을 얻게 된다는 말이지요.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나쁜 소녀의 짓궂음>

대부분의 작가에게 기억은 상상의 출발점이다. 상상은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날아간다. 기억은 그런 상상을 소설을 향해 발사하는 트램펄린이다. 작품 속에서 기억과 창안은 종종 작가조차도 풀 수 없을 정도로 뒤섞인다. 소설에서는 기억이 꿈과 용해되거나, 꿈이 기억과 용해된다.

 

 

데이비드 호크니 / 마틴 게이퍼드, <그림의 역사>

우리는 기억을 통해 세계를 바라본다. 같은 사람을 보더라도, 만약 내가 그를 잘 알고 있다면, 그를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 기억은 당신의 기억과 다르다. 우리가 같은 시간, 같은 곳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동일한 것을 동일하게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김난도 외, <트렌드 코리아 2018>

행복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물질보다 경험에 돈을 지불할 때 사람은 더 큰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다. 물건은 구입한 직후부터 싫증을 느끼게 되는 반면 경험은 시간이 지날수록 긍정적인 기억만 남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소비자의 두 손에 무엇을 들릴 것이냐보다 소비자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 거이냐가 더 중요하다.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기주, <언어의 온도>

음식을 맛보며 과거를 떠올린다는 건, 그 음식 자체가 그리운 게 아니라 함께 먹었던 사람과 분위기를 그리워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운 맛은, 그리운 기억을 호출 한다.

 

여행길에 오른 사람은 언젠가는 여행의 출발지로 되돌아온다. 돌아갈 곳이 없다면 그건 여행이 아니라 방황인지도 모른다. 행여 여행길에서 하염없이 방황하고 있다 해도 낙담할 이유는 없다. 방황이 끝날 무렵 새로운 목적지를 향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훗날 그 방황은 꽤 소중한 여행으로 기억될 테니까.

 

 

니콜라스 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기계에 기억을 아웃소싱할 때 우리는 지성이나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 역시 아웃소싱하는 것이다. 기억을 아웃소싱하면 문화는 시들어간다.

 

 

피코 아이어, <여행하지 않을 자유>

삶의 상당 부분은 우리 머릿속에서 벌어진다. 기억이나 상상, 추측이나 해석 같은 것들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바꾸기만 해도 내 삶을 훌륭하게 바꿀 수 있을 것만 같다.

 

 

시어도어 젤딘, <인생의 발견>

생각은 혼자 두면 외롭고 무력하다. 생각은 소통을 통해 수정되어야만 남들에게도 의미 있는 생각이 된다. ... 모든 개인은 각자의 감성과 기억을 토대로 새로 흡수한 정보를 생각으로 형성한다. 그리고 생각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접하기 전에는 그 나름의 가치를 모른다.

 

최근의 뇌과학 연구에서 기억이 손상된 치매 환자는 미래를 생각하는 것도 어려워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망각의 어둠 속으로 빠져들수록 미래는 텅 비어간다. 사람들이 과거에 환상을 품을수록 미래에 대한 생각도 환상이 된다. 시각 기억이 선명할수록 미래는 더욱 시각적인 형태를 띤다. 따라서 기억은 과거의 것만이 아니고 미래를 구축하기 위한 구성 요소다. 기억의 폭이 좁을수록 미래를 폭넓고 독창적으로 구상할 가능성도 줄어든다. 기억을 먹여살리는 방법은 몸을 먹여살리는 방법만큼 중요하다. 개인의 경험만으로 구성된 식단은 빈약하지만 남들에게서 습득한, 사실상 살아 있거나 죽은 모든 인류에게서 습득한 간접 기억으로 보완할 수 있다. 기억이 빈약하면 이전에 가본 곳 말고는 앞으로 어디로 갈지를 상상할 수 없다.

 

 

김연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우리는 인생을 두 번 산다. 처음에는 실제로, 그 다음에는 회고담으로. 처음에는 어설프게, 그 다음에는 논리적으로. 우리가 아는 누군가의 삶이란 모두 이 두번째 회고담이다.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이다.

 

 

레이 커즈와일, <마음의 탄생>

 

우리 뇌가 작동하는 방식

  • 우리 기억은 순차적이며 그 순서는 정해져있다. 입력된 순서대로만 출력할 수 있다. 우리는 기억의 순서를 거꾸로 뒤집지 못한다.

  • 뇌에는 이미지, 비디오, 소리를 기록하고 저장하는 장치가 없다. 우리 기억은 패턴의 나열로 저장된다. 자주 접근하지 않는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진다.

  • 우리 뇌는 패턴을 인지한다. 정보의 일부분만 인지하더라도 (보더라도, 듣더라도, 느끼더라도) 또는 정보가 일부분 변형되더라도, 우리 인지능력은 패턴의 변하지 않는 특징을 명확하게 감지해낸다.

  • 우리는 끊임없이 미래를 예측하고 앞으로 무엇을 경험할지 가정한다. 이러한 기대는 우리가 실제로 인지하는 내용에 영향을 미친다.

  • 대상이나 상황을 인식할 때 우리는 길게 나열된 리스트가 아니라, 정교하게 포개어진 계층으로 기억한다.

  • 우리의 의식적인 인지경험은 그것을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을 본다.

 

생각의 작동방식 측면에서 두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방향성 없는 생각으로, 논리와 무관한 생각을 촉발하는 것이다. 낙엽을 쓸거나 거리를 걷다가 몇 년 전 기억이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처럼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라고 해도, 그것은 아무 관련성 없이 떠오른 것이 아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모든 패턴은 언제나 순서대로 촉박되며, 기억 역시 그러한 과정을 거쳐 떠오른다. 따라서 과거의 어떤 장면이 눈앞에 갑자기 떠올랐다고 해도, 그 기억을 떠올리기 전부터 그 기억을 암시하는 어떤 '힌트'로부터 출발하여 그 장면이 떠오를 때까지 우리 마음속에는 무수한 패턴의 촉발이 일어난 것이다. 기억을 촉발한 계기가 명확하게 인지될 수도 있지만 어렴풋할 수도 있고, 전혀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인지한다고 해도 연관성이 떨어지는 비선형적인 연상들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장면을 떠올리기 위해서는 연상되는 여러 기억을 종합하여 좀더 생생한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한다. 뇌는 그림이나 소리를 그대로 저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희인, <여행의 문장들>

기억을 조금이라도 잃어버려봐야만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기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억이 없는 인생은 인생이라고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의 통일성과 이성과 감정 지어지는 우리의 행동까지도 기억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을. 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 루이스 부뉴엘의 말,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문요한, <여행하는 인간>

기록의 과잉은 여행에의 몰입을 방해한다. 우리는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로 더 이상 타인의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않는다. 심지어 가족의 전화번호조차 외우지 못하기도 한다. 디지털 시대를 사는 우리의 뇌는 갈수록 할 일이 없다. 기억의 저장고가 점점 내부에서 외부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에서 사진 등 촬영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뇌는 덜 느끼고 덜 기억한다. 가뜩이나 바쁜 일정으로 인해 여행의 감동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데, 과도한 기록 작업은 여행을 더욱 메마르게 만든다. 미국의 비평가 수전 손택은 <사진에 관하여>에서 이러한 세태를 꼬집었다. 그녀는 노동 윤리가 냉혹한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일수록 사진 찍기에 더욱 집착한다고 본다. 하루 종일 일하는 것이 몸에 밴 사람들은 휵를 가거나 일하지 않을 때 불안감을 느끼는데, 사진 촬영을 열심히 함으로써 일 비슷한 것을 하고 있다고 안심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희망을 가지고서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망각 할 수 있어서다. 아이들이 늘 웃을 수 있는 것은 나쁜 일을 오랫동안 곱씹지도, 필요 이상으로 자책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잘 잊을 수 있는 망각 능력 즉, '쾌망'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여행을 할 때 우리의 기억은 어떻게 될까? 놀랍게도 우리의 기억 기능과 망각 기능이 동시에 활성화된다. 즉, 여행 중에는 나쁜 일을 빨리 잊어버릴 수 있다. 반면 잊고 있던 추억이나 잊고 싶은 아픈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그것도 전혀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말이다. 낯선 공간에서의 새로운 자극이 우리 안에 감쳐둔 기억과 감정을 일깨우는 것이다.

 

 

사사키 후미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물건은 기억해주는 주인을 잃을 때 가치도 함께 잃는다.

 

 

로버트 M. 피어시그,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과거는 과거를 기억할 수 없으며, 미래는 미래를 생성할 수 없다. 지금 여기 이 순간이야말로, 촌각에 해당하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항상 존재하는 모든 것의 총체, 바로 그것이다. 가치 - 즉, 현실을 움직이는 동력 장치의 맨 앞 표면 - 는 더 이상 구조의 우발적 부산물이 아니다. 가치는 구조를 선행한다. 가치란 대상에 대한 지적 활동 이전에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전지적인 인식으로, 구조를 낳는 것은 이 전지적인 인식이다. 우리의 구조화된 현실은 가치에 근거하여 미리 선택된 것으로, 구조화된 현실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조화된 현실의 모태가 된 근원적 가치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

 

 

미하엘 엔데, <모모>

차라리 음악을 듣지 않고, 색채들을 보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선택을 하라고 했다면, 이 세상 어떤 것을 준다고 해도 음악과 색채에 대한 기억과 바꾸진 않았으리라. 그 기억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모모는 깨닫게 되었다. 이 세상에는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없으면,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파멸에 이르는 그런 보물이 있다는 사실을....

 

 

도정일, <뱔들 사이에 길을 놓다>

기억과 사유, 상상과 표현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독특한 능력들의 목록을 대표한다. 인간이 천사를 향해 자랑할 것도 그 네 가지 능력으로 집약된다. 인간은 기억하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존재이다. 그 네 가지 능력의 어느 것도 완벽하지 않다. 기억은 수많은 구멍들을 갖고 있고 사유는 불안하다. 상상은 기억과 사유의 한계를 확장하지만 유한한 경험의 울타리를 아주 벗어나지는 못하다. 표현의 형식과 내용도 시간성에 종속된다. 그러나 기억, 사유, 상상, 표현의 인간적 시도들은 그것들이 지닌 한계 때문에 무용해지는 것이 아니라 유한한 것들만이 가지는 순간적 아름다움의 광채를 포착하고 표현하기 때문에 위대하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블랙스완>

심각한 심리적 질병들은 주변 환경에 대한 통제력-주변 환경에 대한 '이해' 능력-을 상실했다는 느낌을 동반한다. 예술과 달리 과학의 목적은 조직된 느낌을 얻거나 기분을 전환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도달하는데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식을 심리 치료 요법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전통적인 지식에는 기억이란 컴퓨터 디스켓처럼 자료를 차례차례 이어서 기록하는 장치로 여겨진다. 그러나 실제 기억은 마치 같은 종이 위에 글을 계속 쓰는 것과 같아서(혹은 처음의 글을 새로 고쳐 쓰는 것과 같아서) - 정적인 것이 아니라 - 역동적이다. 이는 그만큼 과거의 정보가 강력한 힘을 발휘해 주기 때문이다. 기억은 역동적이되 단순히 스스로 새롭게 보충해 나가는 자동기계는 아니다.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는 이 최신 사건을 기억하면서 이전의 기억에 이를 덧붙여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자기도 모르게 발휘하지 않는가? (19세기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인간의 기억을 팰림프세스트'palimpsest', 즉 이전에 쓴 글을 지우고 그 위에 새로운 글을 쓴 양피지에 비유한바 있다)

우리는 인과관계의 사슬 속에서 기억을 끄집어내고, 무의식적으로 이를 수정해 나간다. 우리는 새로 발생한 사건까지 감안하여 논리적으로 들어맞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 짓기를 되풀이한다.

 

 

제러미 리프킨, <소유의 종말>

"새롭게 떠오르는 체험 경제에서는 상품이 아니라 '기억'을 만든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령 제조업체는 상품을 <체험화> 해야 한다. 자동차 회사는 <모는 체험>을, 가구업체는 <앉는 체험>을, 가전 업체는 <닦는 체험과 요리하는 체험>을, 의류 업체는 <입는 체험>을 격상시키는 데 주력해야 한다.

 

 

박웅현, <책은 도끼다>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동받는 것이다. 지식이 많은 친구들보다, 감동을 잘 받는 친구들이 일을 더 잘한다. 감동을 잘 받는다는 건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지식은 기억으로부터 온다. 그러나 지혜는 명상으로부터 온다. 지식은 밖에서 오지만 지혜는 안에서 움튼다. 안으로 마음의 흐름을 살피는 일. 이것을 일과 삼아 해야 한다.

 

 

손철주,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기억은 실물을 덮어버린다. 풀은 초록색이라는 기억, 사람의 팔은 양쪽이 같다는 지식이나, 눈은 둘이요 코는 하나라는 정보 등은 그림의 진실을 수용하지 못하게 한다. 교양에 복종하지 않는 천진함, 대상의 고유한 진실을 파악하는 어린아이의 눈이 그림을 그림으로 보게 한다. 그림을 보되 겉모양만 보는 사람은 달을 가리켰으되 달을 쳐다보지 않고 손가락을 보는 사람과 같다.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귀중한 요소들은 현실보다는 예술과 기대속에서 더 쉽게 경험하게 된다. 기대감에 찬 상상력과 예술의 상상력은 생략과 압축을 감행한다. 이런 상상력은 따분한 시간들을 잘라내고, 우리 관심을 곧바로 핵심적인 순간으로 이끌고 간다. 이렇게 해서 굳이 거짓말을 하거나 꾸미지 않고도 삶에 생동감과 일관성을 부여하는데, 이것은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보푸라기로 가득한 현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기억은 단순화와 선택을 능란하게 구사한다는 점에서 기대와 흡사하다. 현재를 긴 영화에 비유한다면, 기억과 기대는 거기에서 핵심으로 꼽힐 만한 장면들을 선택한다.

 

 

박노해, <다른길>

집이란 이렇게 사고 파는 부동산 가치가 아니라

내 삶의 무늬를 새기며 오래될수록 아름다워지는

지상의 단 하나뿐인 기억과 소생의 장소이니.

 

 

조정래, <정글만리>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한다.' - 조지 산타야나

 

 

이현석, <여행자의 인문학>

에빙하우스의 '보유곡선'은 '망각곡선'....

'보유'와 '망각'의 골은 깊어 보인다. 하지만 그물을 볼 때 씨줄과 날줄을 보는 이도 있고, 그 사이의 공간을 보는 이도 있는 것처럼 그것은 같은 상황을 달리 받아들이고 해석한 것일 뿐이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기억하는 일(보유)은 누군가를 잊어가는 일(망각)인 셈이다. 그리움으로 치환된 기억. 어쩌면 우리는 그것을 '망각'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오르한 파묵, <내이름은 빨강>

안다는 것은 본 것을 기억하는 것이며, 본다는 것은 기억하지 않고도 아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란 무엇인가?> 인터뷰 중에서

기억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재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은 일종의 연료 역할을 하지요. 타오르면서 인간을 따뜻하게 해주거든요. 제 기억은 일종의 궤짝과 같아요. 그 궤짝에는 수없이 많은 서랍이 달려 있답니다. 어떤 서랍을 열면 고베에서 보낸 소년 시절의 광경이 떠올라요. 공기의 냄새도 맡을 수 있고, 땅도 만질 수 있고, 초록색 나무도 볼 수 있답니다. 그게 제가 책을 쓰고 싶어하는 이유지요.

 

 

도정일,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보르헤스의 천국과 도서관. 과거, 현재, 미래가 만나고 기억과 상상력이 용접되는 곳, 지적 모험의 땅, 돈도 비자도 필요 없는 여행지, 국경과 인종과 계급이 영원히 퇴각한 코즈모폴리턴의 세계, 거기가 도서관이다.

 

인간은 기억과 망각의 균형 속에서 그의 현재를 관리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이것이 기억과 망각의 변증법이다. 양자 균형이 깨질 때 인간은 기억의 노예가 되거나 유쾌한 망각의 바보가 된다. "잊지 마라"라는 기억 명령은 과거의 신성화와 신비화를 위한 명령일 때에는 죽음을 동반할 수 있다. 그러나 기억은 과거를 섬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봉사하기 위한 것이다. 망각도 그러하다. 비편력이 마비될 때 망각은 죽음의 책략이 된다. 그러나 기억과 마찬가지로 망각도 건강한 현재를 위해 필요하며, 이 경우에만 망각은 유용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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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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