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속도와 생각의 속도가 같아야 제대로 즐기고 감상할 수 있다.


[본문발췌]

살아가면서 어떤 속도로 이동하는가에 따라 인생의 풍경이 달라진다.


"걸으면 자연스럽게 사고가 시작된다." - 안도 다다오 <걸으면서 생각한다>


"여행은 사고를 촉진한다. 이동 중인 비행기, 배, 기차는 우리 내면의 대화를 가장 잘 이끌어내는 수단이다." - 알랭 드 보통


어쩌면 우리의 여행도 더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동경일지 모른다.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곳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나에 대해 부단히 성찰하고 반성한다. 여행은 우리를 바꾸며, 우리를 만든다. 안도 다다오가 말했던 것처럼 "여행은 사람을 만든다."


사고, 생명, 관찰, 이동에서 출발하는 여행 개념
사고에서 출발하다 : 탐색의 여행, 사고의 여행, 창조의 여행, 문학의 여행
생명에서 출발하다 : 기억의 여행, 근원을 찾아 떠나는 여행, 성장의 여행, 선택의 여행, 인생 여행
관찰에서 출발하다 : 탐색의 여행, 건축의 여행
이동에서 출발하다 : 속도의 여행, 비행기여행, 기차여행, 도로여행, 항해여행, 미로여행


어릴 때 태엽이 달린 철제 장난감을 가지고 논 기억이 있다. 태엽을 당겼다가 풀면 장난감이 움직이거나 소리를 냈는데, 우리의 몸도 이 장난감 같다. 두 다리의 신경은 대뇌와 이어져 있어 다리가 움직이면 뇌의 기능도 활성화된다. 그래서 여행을 하면서 이동하는 과정을 통해 사고의 실타래가 하나둘 풀리게 된다.


스무 살이 되기 전 세계로 나가 다른 지역 사람들의 삶을 체험해 보아야만 세상이 나에게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있다. 여행을 해본 청년은 더 넓은 큰 포부를 가질 수 있다. 여행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나를 변화시키는 시작점이 된다.


여행 도중 마주치는 갈림길은 인생의 선택과 닮았다. 여러 갈래의 길 중 하나를 택하고,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마을이 나오고, 만약 그곳이 마음에 든다면 계획보다 오래 머무를 수도 있다. 심지어 그곳에 정착해 일을 찾고,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릴 수도 있다. 만약 그곳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시 차에 올라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면 된다. 또 다른 갈림길이 나오면 다시 선택을 하고 새로운 마을로 들어서게 된다. 운전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원하던 곳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도로 위의 여정은 인생의 축소판 같다. 길 위에서 사람은 누구나 혼자이고, 고독하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생각해 본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 싶으면 과감하게 돌아 나와 자신이 진정으로 원했던 곳으로 향해 계속 나아가야 한다.


그 지역을 이해하는 가장 확실한 도구는 자신의 두 다리뿐이다. 발자국을 남겨야 비로소 그곳을 제대로 알 수 있다.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여행의 시작이기도 하다. '길을 잃는' 즐거움을 알아야만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


고속열차는 청춘의 뜨거운 피다. 짧은 시간 안에 꿈에 닿기 위해 전력으로 내달리는 질주본능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청춘을 붙잡고 싶은 중년의 집착일지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얼마나 많은 꿈들이 실현되지 못하고 사라져 갔는지 깨닫는다. 돌이켜 보면 가보고 싶었던 곳들 중 반도 가보지 못하고 세월은 덧없이 흘러갔다. 하늘이 내게 얼마만큼의 시간을 더 허락할지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중년의 여행은 청춘의 그것처럼 느긋할 수 없다. 일반열차에 앉아 지루한 시간을 참아낼 마음의 여유가 없다. 유한한 시간 안에 목적지에 도달해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일생의 꿈을 실현해야 한다.


도로 위의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과 같다. 고독한 길 위에서 앞으로 어디를 가야 할까 고민한다. 갈림길에서 몇 번의 잘못된 선택을 한 후, 다시 돌아와 도로 위를 전진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이 원하던 도시를 만나게 된다.


항해는 낭만적이지만 고독한 여행 방법이다. 현대인들은 때로 고독을 원한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할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한다. 항해는 혼란스러움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안정시킨다. 그래서 현대인들에게는 한 번쯤 시도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여행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 나는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최대한 두 발로 걸어 도시 구석구석을 누볐다. 왜냐하면 두 다리야말로 그 도시를 이해하는 최고의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내 발자국을 찍어야만 진정으로 그 도시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다.


유럽이나 미국의 젊은이들에게는 이른바 그랜드 투어Grand Tour가 보편화되어 있다. 그들에게 이 여행은 일종의 성인식과 같은 의미인데,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다른 나라를 여행하며 그곳 사람들의 생활을 체험하는 것을 말한다. 여행의 목적은 젊은이들이 여행과 사고를 통해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세상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잠시 이 땅에 의탁해 기거하다 떠나는 여행자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이 모두 끝났을 때 내가 세상에서 사용했던 육신을 비롯한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 홀가분하게 저세상으로 떠나고 싶다. 어쩌면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또 다른 여행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죽음은 인간 최후의 존엄
인류는 영원히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설령 저승사자를 용케 피한다고 해도 영원히 육신에 머무르는 것이 과연 행복한 것일까? 예전에 읽었던 우화 한 편이 생각난다. 옛날 어느 국왕이 저승사자에게 연회를 베푼다고 속인 후 그를 감옥에 가둬 버렸다. 저승사자가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되자 나라에는 더 이상 죽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노쇠한 노인들은 병마에 시달리며 힘든 시간을 연명해야 했고, 마차에 치이는 등 불의의 사고를 당한 사람이나 동물들은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에 신음하면서 숨이 끊어지기만을 간절히 애원했다. 그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가족들도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죽음은 인간 최후의 존엄이라는 사실을, 국왕은 어쩔 수 없이 저승사자를 풀어 주었고, 고통받던 사람들은 그제야 안식을 찾을 수 있었다.


인생이라는 여행의 종착점
묘지에 누워 있는 사람들에게 이곳은 생명의 종착점이다. 그들의 여행은 이미 끝났으며, 그렇기에 그들의 여행 속도는 '0'이다. 묘지를 찾은 추모객들에게도 이곳은 내면의 불타오르던 욕망을 잠시 식힐 수 있는 곳이다. 여행의 속도는 점점 낮아질 것이고, 결국은 조용히 멈추어 세상과 마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적극적 사고의 힘>을 집필한 노먼 빈센트 필 박사는 "사람이 있는 곳에는 분쟁이 있게 마련이다. 이 세상에서 분쟁이 없는 곳은 오직 묘지뿐이다. 그곳에 누워 있는 사람들은 이미 죽어서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 이 세상에서 묘지는 오히려 찾기 힘들고, 소중한 안식의 공간이 되어 준다.


야나카 영원의 벚꽃은 매우 유명하다. 이곳의 벚꽃나무들은 대부분이 심은 지 오래되어 매년 봄이면 화사한 벚꽃이 만개해 상공을 뒤덮는다. 묘와 벚꽃은 보통 잘 어울리지 않지만 이곳에서는 묘한 조화를 이룬다. 마치 제아무리 화려했던 벚꽃도 봄이 가면 처량하게 땅에 떨어져 버리는 것처럼, 화려한 삶과 죽음도 종이 한 장의 차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야나카 영원의 흩날리는 벚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짧은 우리의 삶과 부귀영화의 부질없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더 가치 있는 일에 힘을 쏟아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건축학자인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는 "도시 안에 작은 묘지를 디자인하는 일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이다. 시민들이 바쁜 일상 중에도 묘지를 찾아 명상의 시간을 보낸다면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본인이 왜 그토록 바쁜지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도시의 공동묘지는 종교와 철학적 의미가 함축된 영혼의 공간이다.


나는 도시의 공동묘지를 산책하면서 선인들을 떠올릴 수 있었고, 역사여행도 할 수 있었다. 벚꽃이 만개한 계절이면 도쿄의 묘지는 시민들에게 가장 좋은 꽃놀이 장소가 된다. 함박눈처럼 하얗게 흩날리는 벚꽃을 보면서 시민들은 생명의 짧음을 깨닫고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본다. 그리고 더 적극적인 마음가짐으로 보다 가치 있는 인생을 살겠노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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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며 적절한 질문, 연관된 조각들을 엮어 내는 것!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지혜를 얻어가는 과정이다.


[본문발췌]


"현재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소비자들을 이해하려면 데이터에 의존해야 한다는 통념이 있지만, 거의 모든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는 소비자와의 가까운 스킨십을 통해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서비스와 제품은 빅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실험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보의 대칭화 시대에서는 많은 사람은 같은 데이터에 접속되고, 같은 분석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 그 결과 전문가들조차 보통 사람들과 똑같은 결론을 내놓는다. 남들과 다른 결론을 통해 나만의 비즈니스 기회를 찾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이 사는 동네를 방문해 그들과 대화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경영 문화는 변화해야 한다. 글로벌 기업에서 임원들이 고용된 이유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능력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지닌 직감(Instinct)의 가치 때문이다." - 마틴 린드스트롬


직감은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생기는 결과물이다.


우리는 모두 소비자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우리 생각과 소비자의 생각의 갭이 존재한다. 더구나 이 '불편한 진실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갈 공산도 크다. 이는 바로 우리 모두를 쥐도 새도 모르게 조용히 실패의 길로 인도하는 인간의 본능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본능적으로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고자 한다. 이른바 인간은 태생적으로 인지적 구두쇠(Congnitive Miser)인 것이다. 구두쇠는 자기만 알고, 무엇이든지 아끼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정보를 처리할 때 자기 중심성(Egocentrism)의 원칙을 자신도 모르게 사용하고 만다. 외부의 정보를 접할 때, 자신이 좋아하는 정보는 중요하게 처리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무시하는 것이다. 그냥 내 마음대로! 그래서 자기 마음에 드는 것만 선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를 해석하고 편한 것만 쏙쏙 골라서 기억하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냥 이게 편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것이다. 이에 빠지면 자신이 세운 가설이나 사전 지식과 다른 결과에 대해 다소 편파적인 성향을 보이게 된다.

경험이 많은 전문가들이 흔하게 범하는 어리석음, 편하고 빠르지만 가끔은 위험한 생각 습관으로 불리는 휴리스틱(Heuristic). 유리스틱은 우리가 일상적인 의사 결정과 판단을 내릴 때 사용하는 인지적 경험 법칙이자, 우리 마음속에 내재한 정신적 지름길이라고 불린다. 물론 이 지름길이 틀렸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가령 여러 가지 업무를 한 번에 다뤄야 할 때,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 우리의 뇌는 그냥 편한 대로 습관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통찰에 대한 갈구보다는. 그래서 신속한 의사 결정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효율적일 수 있다. 다소간의 위험 요소를 지니고 있어도, 빠른 의사 결정이 더욱 중요한 상황은 분명히 존재하니까.

가끔은 우리가 하는 소비자에 대한 고민이 진정으로 소비자를 배려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가 지닌 숙명적인 본능 때문에 우리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것이다.


다행히 최상의 고등동물인 인간은 잘못된 사고를 알아차리면 더 나은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설득하는 기재를 지니고 있다. 바로 '메타인지'이다. 메타인지를 지닌 사람은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바로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와 공자의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라는 선현의 명언을 가슴에 새기는 것이다.


"복잡하든 단순하든 신선하든 진부하든 어떤 의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 그 상황에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느냐를 잘 알고 알아채야 한다." - 나영석PD


"오류가 가장 자주 생겨나는 대목은 바로 이미 잘 안다고 생각해서 면밀히 검토하지 않거나 의문을 던지지 않는 영역이다." - Stephen Jay Gould


"어제로부터 배우고, 오늘에 충실하고, 내일에 희망을 가져라. 중요한 것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 Albert Eisntein


본질을 꿰차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Why를 질문해야 한다. 그래야만 통찰력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과거의 리더는 말하는 리더였지만, 미래의 리더는 질문하는 리더이다" - 피터 드러커


"진리를 보기 원하는 자, 조각조각 떨어뜨려 보지 말고 전체를 보라." - Jiddu Krishnamurti


"우리 아이디어의 출발은 일반적인 인간의 관찰에서 시작한다. 다른 말로는 공감대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게 무슨 일이건 상관없다. 제품의 디자인이건, 운영에 있어서 다른 컨설팅이건, 경영 전략을 위한 혁신이건 상관없이 인간을 관찰하면서 어디에 문제가 있는가를 찾기 시작하는 것이다." - IDEO의 Tome Kelly 공동대표, '매일경제 Luxmen 제20호(2012년 5월)' 인터뷰 중에서


"소비자의 95%의 인지 과정은 우리가 지각하지 못하는 저 밑에 깔린 심층 의식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우리는 고작 5%의 인지 과정만을 붙들고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더 깊은 고차원적인 의식을 이해해야 한다." - Zaltman


"전략을 사전에 모두 계획해 놓을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앞을 내다보면서 상황에 따라서 적절히 대처해 나가야 한다. 명확하게 의도하기보다는 행동 하나하나가 모이고 이때마다 학습하는 과정을 통해서 전략의 일관성이나 패턴이 형성되는 것이다." - Henry Mintzberg


"나쁜 피드백에 신경을 쓰고, 그와 같은 피드백을 친구들로부터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라. 정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lon Musk

나와 다른 관점을 지닌 악마의 변호인은 내가 보지 못한 것을 깨닫게 해줄 수 있다. 유사한 배경과 경험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는 집단 사고로 매몰될 수 있음을 방지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다양한 의견이 주는 시너지를 도모할 수 있다.

더 튼튼한 생각의 완성을 위해서 결국 남의 관점(혹은 나의 관점)에 나의 관점(혹은 남의 관점)이라는 벽돌을 블록처럼 쌓아가는 것이다.


그간 우리에게 가장 큰 손해를 끼친 말은 바로 '지금껏 항상 그렇게 해 왔어'라는 말이다. - Grace Hopper


"발견은 모든 사람이 보는 것을 '보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 Albert Szent-Gyorgyi


"나는 관찰한다. 나는 느낀다. 나는 상상한다. 나는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인상과 경험, 개념을 결합한다. 이 가공의 재료를 가지고 내 머릿속에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세계의 안과 밖 사이에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닮은 것들로 가득 찬 바다가 있지 않은가. 내가 손에 들고 있는 꽃의 신선함과 내각 맛 본 갓 딴 사과의 신선함은 달랐다. 나는 이러한 유사성을 이용해서 색에 대한 개념을 확장한다. 내가 표면의 떨림과 맛과 냄새의 특질에서 끌어낸 유사성은 일반인들이 보고 듣고 만져서 찾아낸 유사성과 같은 것이다. 이 사실이 나를 견디게 했고, 눈과 손 사이에 놓인 간극에 다리를 놓아주었다." - 헬렌 켈러

혁신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서로 관련되지 않은 광범위한 산업 분야 혹은 기능들 간의 유사성을 끌어내는 유추 능력이 필요하다. 혁신은 새로운 것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 아니다. 이는 어떤 것 하나가 어떤 목적으로 발명되었든 간에, 이를 내가 처한 상황에 이를 유용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백지에서 훌륭한 아이디어를 찾기는 힘들다. 당신의 상상력을 다른 어딘가에서 전달받는 것이 필요하다.


"창조라는 것은 여러 가지 요소를 하나로 연결하는 것이다. 창조적인 사람에게 어떻게 그렇게 창의적이냐고 물어보면,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면 그들은 실제로 무엇을 한 것이 아니라 단지 무언가를 본 것이기 때문이다." - Steve Jobs


'젊은이는 규칙을 알지만 노인은 예외를 안다' - Oliver Wendell Holmes


"모든 것이 여러분에게 불리하게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질 때, 비행기는 바람에 편승하는 게 아니라 바람을 거슬러 이륙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 헨리 포드


"배운 것을 복습하는 것은 외우기 위함이 아니다. 몇 번이고 복습하면 새로운 발견이 있기 때문이다." - 탈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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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은 삶의 연료이자 위험 요소다. 
 
[본문발췌]
 
"몬테로씨, 사람들은 자신이 외롭길 원하지요. 신성함에 다다르기 위해 고독이 필요하다면서 말이지요. 고독 속에 있을 때 유혹이 가장 강력하다는 것을 모르면서 하는 말이에요." 
 
 
[나 자신을 읽고 쓰기에 관하여] - 나는 <아우라>를 어떻게 썼는가
'독창성'은 지속적으로 자신의 탄생을 새로운, 언제나 새로운, 그 무엇으로 보고자 하는 근대의 병이다. 또한 근대성이란 오직 죽음에게만 말을 건네는, 유행하는 허상이다.
 
이 세상에 아비 없는 책, 고아인 책이 있는가? 어떤 책의 후손이 아닌 책이? 인류의 문학적 상상력이 이룬 거대한 가계도에서 벗어난 단 한 페이지라도 있는가? 전통이 없는 창조가 가당키나 한 일인가? 하지만 거꾸로 말해 재생, 새로운 창조, 즉 끝없는 이야기 속에서도 새로 돋는 푸른 잎사귀 없이 전통이 생존할 수 있겠는가?
 
위안과 욕망을 다룰줄 아는 이들 다섯 명은, 오늘날 내가 보기에 헨리 제임스의 <애스펀의 서류>에 나오는 탐욕스러운 미스 볼드로인 셈인데, 미스 볼드론느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에서 잔인하게 미친 미스 하비샴의 환생이고, 미스 하비샴은 푸시킨의 <스페이드 여왕>에서 질투의 힘으로 카드에서 이기는 비법을 간직하는 옛 백작 부인의 영국인 딸이다.
  • 세 이야기를 관통하는 유사한 구조는 그들이 모두 하나의 신화적 가족이라는 것을 입증할 뿐이다. 이 구조들에는 일률적으로 노파, 젊은 여성, 그리고 젊은 남자라는 세 인물이 등장한다. 푸시킨 작품에서 노파는 안나 페도로브나 백작 부인이고 젊은 여성은 그녀의 피보호자인 리사베타 이바노브나, 젊은 남자는 설비 회사 사원인 헤르만이다. 디킨스 작품에서 노파는 미스 하비샴, 소녀는 스텔라, 남자 주인공은 핍이다. 헨리 제임스 작품에서 노파는 미스 줄리아나 볼드로, 젊은 여성은 조카인 미스 티나, 끼어드는 젊은 남자는 이름 없는 해설자 H. J., 즉 "헨리 제임스"로 마이클 레드그레이브가 이 이야기를 무대에 올릴 때 등장했다.
  • 각각의 작품에서 끼어든 젊은이는 노파의 비밀을 알고 싶어하는데, 푸시킨에서는 행운의 비밀, 디킨스에서는 사랑의 비밀, 제임스에서는 시의 비밀이 바로 그것이다. 어린 소녀는 순수하든 그렇지 않든 노파가 무덤까지 비밀을 가져가기 전에 그것을 알아내야 하는 속이는 자이다.
  • 콘수엘로 부인, 아우라, 펠리페 몬테로는 이 저명한 모임에 가담했지만 '비틀어짐'이 있다. 아우라와 콘수엘로가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펠리페의 가슴에서 욕망의 비밀을 찢어 내는 것이 바로 그들이다. 남자는 이제 속아 넘어간다. 이것 자체가 남성 우월주의에 대한 비틀기이다.
  • 비록 그 대가로 화형에 쳐해진다 할지라도, 세 여성들 모두 근대 이성이 금지한 지식의 비밀, 저주받은 문서들,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양초 기름으로 얼룩진 편지들, 탐욕과 공포의 손길에 버림받은 카드뿐만이 아니라, 미래보다 더 위대한 힘으로, 역사학자 미슐레가 말하듯 자신을 투사하는 유물의 비밀을 지켰던 중세 마녀의 후예가 아닐까?
 
우리는 원래 획득하고자 하는 욕망 자체를 바꾸려는 욕구가 있고, 그 어떤 욕망도 순수하지 않다.
 
 
 
[작품해설]
푸엔테스는 현실 세계를 낱낱이 분석하고 세밀하게 관찰하는 발자크의 태도와, 문학이 우리를 상상의 세계로 이끌 수 있다는 세르반테스의 테제를 아우른다.
 
정체성이라는 것은 과거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전망과 해석을 요구하는 것이다. 
 
푸엔테스는 역사를 보는 시각에 있어서도 유토피아적 역사관을 견지하는데, 역사란 일어난 일을 재구성한 사실의 역사뿐만 아니라 과거에 일어났으면 좋았을 상상의 역사도 조합해야 한다고 보았다.
 
결합의 매개자인 아우라는 누구인가?
  • 아우라는 실체적 존재가 아니라 '가벼운 바람', 즉 콘수엘로가 만든 환영이자 제식을 행하는 대리인이다. ... 아우라는 콘수엘로의 젊음과 재생의 욕망이 빚어낸 인물이다. 아우라와 콘수엘로는 부분과 전체라는 환유적 관계이다. 아우라(aura)라는 이름은 성인의 머리 위에서 빛나는 원환이자, 비교적 전통에서 마녀들이 요술을 부리는 유혹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소설 속 아우라는 콘수엘로가 만든 강력한 흑마술의 결과이자 욕망의 투영체이다.
  • 또한 아우라는 독일의 평론가인 발터 벤야민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 작품>이라는 에세이에서 예술 작품이 지니는 범접할 수 없고 일회적인 신비한 분위기라는 의미로 정의한 용어이기도 하다. 그에 의하면 예술 작품은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멀리 떨어진 것의 일회성을 드러낸다. 예술의 대상이 되는 자연은 예술가에게 생명이 깃든 신비로운 본질을 전한다. 자연은 스스로 생동하는 범신론적인 신비로움이다. 그런데, '아주 가까이 있다 하더라도 어떤 먼 곳'으로 느끼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종교적 기능이다. 숭배의 대상인 신에 가까이 접근해서는 안 되듯 예술 작품도 역시 그렇다. 마치 종교적 숭배의 대상처럼 예술 작품은 '아우라'를 갖는다. 즉 아우라는 "멀리 떨어진 것이 일회적으로 드러남."이라는 의미이다. 발터 벤야민은 산업사회가 되어 예술이 기계를 통해 복제되기 시작하면서 아우라를 상실했다고 본다. 푸엔테스는 이러한 아우라의 의미를 육화시킨다. 파도가 출렁이는 에메랄드 빛 바다로 묘사되는 그녀의 녹색 눈동자에 펠리페는 일회적이면서도 영원한 사랑을 느낀다. 그녀는 단 한 번 눈을 마주친 것으로 펠리페에게 치명적인 매혹을 선사한다. 그녀는 그 이후 팜 파탈처럼 펠리페의 방문을 열고 나신으로 살며시 그를 유혹한다. 그리고 펠리페는 그녀는 영원히 염원하게 된다.
  • 불가능한 젊음의 재현과 사랑의 재현, 이것은 예술가에게 창작이 그렇듯 콘수엘로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그것이 피어오르는 비눗방울과도 같은 단 한 번의 에피파니에 그친다 하더라도 그 여운, 그 아우라는 영원히 남기에 그녀는 자신을 기꺼이 소진하고 만다. '위안'이라는 뜻의 '콘수엘로'에게 있어 가장 큰 위로와 즐거움은, 바로 일회적이지만 너무도 눈부신 아우라의 재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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