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속도와 생각의 속도가 같아야 제대로 즐기고 감상할 수 있다.
[본문발췌]
살아가면서 어떤 속도로 이동하는가에 따라 인생의 풍경이 달라진다.
"걸으면 자연스럽게 사고가 시작된다." - 안도 다다오 <걸으면서 생각한다>
"여행은 사고를 촉진한다. 이동 중인 비행기, 배, 기차는 우리 내면의 대화를 가장 잘 이끌어내는 수단이다." - 알랭 드 보통
어쩌면 우리의 여행도 더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동경일지 모른다.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곳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나에 대해 부단히 성찰하고 반성한다. 여행은 우리를 바꾸며, 우리를 만든다. 안도 다다오가 말했던 것처럼 "여행은 사람을 만든다."
사고, 생명, 관찰, 이동에서 출발하는 여행 개념
사고에서 출발하다 : 탐색의 여행, 사고의 여행, 창조의 여행, 문학의 여행
생명에서 출발하다 : 기억의 여행, 근원을 찾아 떠나는 여행, 성장의 여행, 선택의 여행, 인생 여행
관찰에서 출발하다 : 탐색의 여행, 건축의 여행
이동에서 출발하다 : 속도의 여행, 비행기여행, 기차여행, 도로여행, 항해여행, 미로여행
어릴 때 태엽이 달린 철제 장난감을 가지고 논 기억이 있다. 태엽을 당겼다가 풀면 장난감이 움직이거나 소리를 냈는데, 우리의 몸도 이 장난감 같다. 두 다리의 신경은 대뇌와 이어져 있어 다리가 움직이면 뇌의 기능도 활성화된다. 그래서 여행을 하면서 이동하는 과정을 통해 사고의 실타래가 하나둘 풀리게 된다.
스무 살이 되기 전 세계로 나가 다른 지역 사람들의 삶을 체험해 보아야만 세상이 나에게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있다. 여행을 해본 청년은 더 넓은 큰 포부를 가질 수 있다. 여행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나를 변화시키는 시작점이 된다.
여행 도중 마주치는 갈림길은 인생의 선택과 닮았다. 여러 갈래의 길 중 하나를 택하고,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마을이 나오고, 만약 그곳이 마음에 든다면 계획보다 오래 머무를 수도 있다. 심지어 그곳에 정착해 일을 찾고,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릴 수도 있다. 만약 그곳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시 차에 올라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면 된다. 또 다른 갈림길이 나오면 다시 선택을 하고 새로운 마을로 들어서게 된다. 운전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원하던 곳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도로 위의 여정은 인생의 축소판 같다. 길 위에서 사람은 누구나 혼자이고, 고독하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생각해 본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 싶으면 과감하게 돌아 나와 자신이 진정으로 원했던 곳으로 향해 계속 나아가야 한다.
그 지역을 이해하는 가장 확실한 도구는 자신의 두 다리뿐이다. 발자국을 남겨야 비로소 그곳을 제대로 알 수 있다.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여행의 시작이기도 하다. '길을 잃는' 즐거움을 알아야만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
고속열차는 청춘의 뜨거운 피다. 짧은 시간 안에 꿈에 닿기 위해 전력으로 내달리는 질주본능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청춘을 붙잡고 싶은 중년의 집착일지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얼마나 많은 꿈들이 실현되지 못하고 사라져 갔는지 깨닫는다. 돌이켜 보면 가보고 싶었던 곳들 중 반도 가보지 못하고 세월은 덧없이 흘러갔다. 하늘이 내게 얼마만큼의 시간을 더 허락할지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중년의 여행은 청춘의 그것처럼 느긋할 수 없다. 일반열차에 앉아 지루한 시간을 참아낼 마음의 여유가 없다. 유한한 시간 안에 목적지에 도달해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일생의 꿈을 실현해야 한다.
도로 위의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과 같다. 고독한 길 위에서 앞으로 어디를 가야 할까 고민한다. 갈림길에서 몇 번의 잘못된 선택을 한 후, 다시 돌아와 도로 위를 전진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이 원하던 도시를 만나게 된다.
항해는 낭만적이지만 고독한 여행 방법이다. 현대인들은 때로 고독을 원한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할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한다. 항해는 혼란스러움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안정시킨다. 그래서 현대인들에게는 한 번쯤 시도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여행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 나는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최대한 두 발로 걸어 도시 구석구석을 누볐다. 왜냐하면 두 다리야말로 그 도시를 이해하는 최고의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내 발자국을 찍어야만 진정으로 그 도시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다.
유럽이나 미국의 젊은이들에게는 이른바 그랜드 투어Grand Tour가 보편화되어 있다. 그들에게 이 여행은 일종의 성인식과 같은 의미인데,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다른 나라를 여행하며 그곳 사람들의 생활을 체험하는 것을 말한다. 여행의 목적은 젊은이들이 여행과 사고를 통해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세상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잠시 이 땅에 의탁해 기거하다 떠나는 여행자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이 모두 끝났을 때 내가 세상에서 사용했던 육신을 비롯한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 홀가분하게 저세상으로 떠나고 싶다. 어쩌면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또 다른 여행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죽음은 인간 최후의 존엄
인류는 영원히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설령 저승사자를 용케 피한다고 해도 영원히 육신에 머무르는 것이 과연 행복한 것일까? 예전에 읽었던 우화 한 편이 생각난다. 옛날 어느 국왕이 저승사자에게 연회를 베푼다고 속인 후 그를 감옥에 가둬 버렸다. 저승사자가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되자 나라에는 더 이상 죽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노쇠한 노인들은 병마에 시달리며 힘든 시간을 연명해야 했고, 마차에 치이는 등 불의의 사고를 당한 사람이나 동물들은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에 신음하면서 숨이 끊어지기만을 간절히 애원했다. 그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가족들도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죽음은 인간 최후의 존엄이라는 사실을, 국왕은 어쩔 수 없이 저승사자를 풀어 주었고, 고통받던 사람들은 그제야 안식을 찾을 수 있었다.
인생이라는 여행의 종착점
묘지에 누워 있는 사람들에게 이곳은 생명의 종착점이다. 그들의 여행은 이미 끝났으며, 그렇기에 그들의 여행 속도는 '0'이다. 묘지를 찾은 추모객들에게도 이곳은 내면의 불타오르던 욕망을 잠시 식힐 수 있는 곳이다. 여행의 속도는 점점 낮아질 것이고, 결국은 조용히 멈추어 세상과 마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적극적 사고의 힘>을 집필한 노먼 빈센트 필 박사는 "사람이 있는 곳에는 분쟁이 있게 마련이다. 이 세상에서 분쟁이 없는 곳은 오직 묘지뿐이다. 그곳에 누워 있는 사람들은 이미 죽어서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 이 세상에서 묘지는 오히려 찾기 힘들고, 소중한 안식의 공간이 되어 준다.
야나카 영원의 벚꽃은 매우 유명하다. 이곳의 벚꽃나무들은 대부분이 심은 지 오래되어 매년 봄이면 화사한 벚꽃이 만개해 상공을 뒤덮는다. 묘와 벚꽃은 보통 잘 어울리지 않지만 이곳에서는 묘한 조화를 이룬다. 마치 제아무리 화려했던 벚꽃도 봄이 가면 처량하게 땅에 떨어져 버리는 것처럼, 화려한 삶과 죽음도 종이 한 장의 차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야나카 영원의 흩날리는 벚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짧은 우리의 삶과 부귀영화의 부질없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더 가치 있는 일에 힘을 쏟아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건축학자인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는 "도시 안에 작은 묘지를 디자인하는 일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이다. 시민들이 바쁜 일상 중에도 묘지를 찾아 명상의 시간을 보낸다면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본인이 왜 그토록 바쁜지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도시의 공동묘지는 종교와 철학적 의미가 함축된 영혼의 공간이다.
나는 도시의 공동묘지를 산책하면서 선인들을 떠올릴 수 있었고, 역사여행도 할 수 있었다. 벚꽃이 만개한 계절이면 도쿄의 묘지는 시민들에게 가장 좋은 꽃놀이 장소가 된다. 함박눈처럼 하얗게 흩날리는 벚꽃을 보면서 시민들은 생명의 짧음을 깨닫고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본다. 그리고 더 적극적인 마음가짐으로 보다 가치 있는 인생을 살겠노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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