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과 상황에 따라 생각이나 느낌은 바뀐다. 그리고 완벽한 것은 없다.

모든 일에 너무 애쓰기보다 내 뜻데로 안될 때는 잠시 비켜가거나 기다려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본문발췌]

 

 

죽는다는 것은 죽음과 맞서는 것이 아니다. 죽음에 이르기 전에 이미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기 때문에 죽음은 잠든 것처럼 어디론가 떠내려가는 것이다. 죽음은 대비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그것은 목표 없는 몽상이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 모르더라도 걱정하지 마라. 그때가 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자연이 소상하게 그리고 완별하게 일러줄 것이다. 자연이 그 일을 완벽하게 처리할 테니 그 문제로 고민하지 마라. 죽음에 대해서 걱정하지 마라.

 

 

단 한 가지 확실한 진실이 있다. 그것은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인간보다 비열하고 오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 대(大) 플리니우스

 

 

당신은 단 한 번의 사고로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이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 에우리피데스

 

 

근심 없는 사람의 인생만큼 아름다운 인생은 없다. 근심 없는 삶은 참으로 고통 없는 악이다. - 소포플레스

 

 

인생을 꽉 움켜질 수 있는 비결은 매 순간 겪는 경험에 꾸밈없이 순수하게 경탄하는 것이고, 가장 좋은 방법은 몽테뉴처럼 모든 경험을 글로 옮기는 것이다. 인생은 순식간에 흘러가버린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려고 소란을 피우지 않고 조용히 미끄러지듯 흘러간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인생이 시간을 재촉하며 흘러가고 있어도 다른 일에 몰두하고 있으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죽음이 다가왔을 때 나 자신을 죽음에게 내어주는 수 밖에 도리가 없다.

 

 

느림의 발견, 자유로워져 겉으로만 그럴싸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생각하게 되었고, 남들이 꼼짝없이 빠져드는 광적인 생각과 어리석음은 속임수를 피할 수 있었고, 자신의 생각이 이끄는 대로 그 생각을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그가 참으로 원하던 생활 방식이다.

 

 

"내가 왜 그를 사랑하는지 말하라고 내게 강요하더라도, 나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도리가 없다. 그가 있기 때문이고, 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로마 헬레니즘 철학 :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학파, 회의주의

  • 세 학파의 목표는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라고 하는 생활 방식을 성취하는 것. 에우다이모니아는 '행복', '기쁨', '인간적인 번영'
  • 에어다이모니아에 이르는 지름길은 아타락시아(ataraxia)라는 점에 의견을 같이 하였다. 아타락시아는 '침착'이나 '근심으로부터 자유로움'으로 옮길 수 있고 '평정'을 뜻하며,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려나갈 때에도 기뻐 날뛰지 않고 모든 일이 꼬일 때에도 실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냉정함을 유지하는 기술이다.
  • 세 학파의 견해가 갈라지기 시작하는 지점은 어떻게 해야 그와 같이 평정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 에피쿠로스: 가족을 떠나 공동체 전용 '정원'에서 광신도처럼 살라
    • 회의주의: 여느 사람들처럼 대중 속에서 어울리기를 좋아했으나 정신적 자세를 철저하게 바꾸라
    • 스토아: 양극의 중간
  •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르스 학파의 공통점.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이 두 가지 큰 단점에 의하여 저해된다. -->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의 부재와 주의력을 현재에 집중하는 못하는 성향

 

"모든 일이 자기 뜻대로 이우러지기를 바라지 말고, 모든 일을 현실 그대로 받아들여라. 그러면 인생이 평온할 것이다." - 에픽테토스

 

 

몽테뉴의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 주의를 다른 일로 돌리는 것이 도움이 된다.

"고통스러운 생각에 사로잡히면 그것을 억제하는 것보다 생각을 바꾸는 편이 훨씬 빠르다. 생각을 전혀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없다면 반대로 생각한다. 생각을 바꾸면 위안을 얻고, 문제가 풀리고, 번민이 없어진다. 싸워서 이길 수 없으면 피한다. 필할 때는 잽싸게 요리조리 비켜선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밖에 없다. 그런데 모른다는 사실조차 확신할 수 없다"

회의주의자는 늘 증거를 찾으려고 하고, 남들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의심하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나는 대자연이 내게 베풀어준 것을 진심으로 고맙게 받아들이고, 나 자신과 내가 하는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우리는 위대하고 전능한 수여자가 준 선물을 거절하고, 그 선물을 쓸모없게 만들고 망가뜨리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 볼테르

 

 

"우리의 삶을 옳게 즐기는 법을 아는 것이 절대적인 완벽함이자 실질적으로 신성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 삶의 용도를 모르기 때문에 다른 조건을 찾고, 우리의 내면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에게서 벗어난다. 죽마를 타고 높이 올라서도 소용없다. 죽마를 타더라도 여전히 우리의 다리로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옥좌에 올라도 우리는 여전히 자신의 엉덩이로 앉아 있을 뿐이다." - 몽테뉴

 

 

몽테뉴는 인간은 모든 존재의 요소를 공유하고 있으며 살아 있는 것은 모두 그렇다고 생각했다. '존재의 과정은 동일한 본성에 따라 진행된다.'

 

"우리는 생명과 감각을 지니고 있는 동물뿐만 아니라 나무와 식물도 존중하고 인도주의적으로 대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사람들을 정의롭게 대하고, 자비와 인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다른 피조물에도 자비와 인정을 베풀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피조물들과 우리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으며 서로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니체는 이런 인정과 공감을 '호의'라고 했다.

 

 

"풍경화에서 대자연의 장엄한 모습을 볼 때, 대자연의 얼굴에서 언제 어디서나 끊임없이 다양하게 변하는 표정을 읽고, 대자연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한 나라 전체가 아주 가는 붓으로 점 하나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깨달은 사람만이 진정으로 균형 감각을 갖추고 사물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에세'에서 발견하는 '여덟 가지 자유' 목록

   1) 자만심과 우월감에서 벗어나라.

   2) 신념, 불신, 확신, 파벌 의식에서 벗어나라.

   3) 습관에서 벗어나라.

   4) 야망과 탐욕에서 벗어나라.

   5) 가족과 주위 환경에서 벗어나라.

   6) 광산에서 벗어나라.

   7) 운명에서 벗어나라.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라.

   8) 죽음에서 벗어나라. 인생은 다른 사람의 의지에 좌우되지만, 죽음은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다.

 

 

적대적인 당파 사이에 끼어 있을 때 원만하게 대처하는 몽테뉴의 방법:

양측에 도를 넘지 않게 호의를 보여서 어느 쪽도 나를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게만 처신하면 된다. 그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마라. 그리고 그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제공하지 마라. 몽테뉴의 방침은 맡은 일을 잘하되 너무 잘하지는 말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원칙을 고수함으로써 그는 곤경에 빠지지 않고 인간다운 자세를 완벽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직무만 이행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여느 사람들과는 달리 자기 직무를 완수하였다.

 

 

몽테뉴가 늙어 간다는 사실에서 얻은 교훈:

연륜이 쌓인다고 지혜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늙은이에게는 젊은이보다 더 많은 허영심과 결점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늙으면 "어리석고 낡은 자존심에 빠지고, 따분한 수다나 떨고, 쉽게 발끈하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으로 변하고, 미신에 사로잡히고, 터무니없이 재산에 대해서 걱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방향이 틀렸다. 나이 먹음의 가치는 그러한 결점을 수정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노인이 되면 젊은이들은 찾기 어려운 방법으로 자신의 결점을 찾을 기회가 생긴다. 자신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쇠퇴의 흔적을 보면서 자신도 한계가 있는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나이를 먹는다고 슬기로워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결국 일종의 지혜를 얻는다. 결국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은 이렇게 결점을 지닌 채 살아가고 결점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 샤르트르의 명제

'철학자의 일생은 죽음을 명상하는 것' - 키케로

'죽음은 인생의 끝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인생은 그 자체의 목표이자 목적이 되어야 한다' - 몽테뉴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으니' 이미 흘러가 버린 의식의 흐름 한 줄기에 매달리자 말자. 관점과 상황에 따라 생각이나 느낌은 늘 바뀌게 마련이다. 만물이 '끊임없는 흔들림' 속에 존재하는데 인간의 생각이 한결같이 한 곳에 머무를 수 있겠는가. 

 

 

아프리카의 우화 (세계화의 혜택을 가장 누리지 못한 아프리카의 우화가 세계화를 부채질하는 구호로 사용)

   매일 아침 가젤은 깨어난다.

   가젤은 가장 빠른 사자보다 더 빨리 달리지 않으면 잡아먹힌다는 것을 안다.

   매일 아침 사자도 깨어난다.

   사자는 가장 느린 가젤보다 더 빨리 달리지 못하면 굶어 죽는다는 것을 안다.

   당신이 사자냐 가젤이냐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해가 뜨면 당신은 뛰어야 한다.

 

 

"에세" 말미에 인용한 호라티우스의 시

   레토의 아들 아폴론 신이여,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건강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해주소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하게 해주시고,

   노년에는 추한 꼴을 보이지 않고

   음악을 벗 삼아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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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 황량한 땅이지만 마음의 안정과 정신적 휴식을 줄 것 같은 곳!

영화 <세 얼간이>의 마지막 장면에 판공초 호수의 아름다움이 그려지는 곳!

 

라다크를 처음 알게 된 책.

 

풍요의 역습! 대량생산, 산업형 농업과 축산업이 지속가능한 사회의 해결책은 아니다.

 

 

[본문발췌]

 

 

진보에 대한 두 가지 방식

1) 발전, 혁신을 외치며 기술과 자본, 에너지 집약적 경제 개발을 추구한다. (세계화, 전문화, 중앙집중식 경제)

   --> 화폐경제, 도시, 재활용이 가능하지 않은 자원에 기반을 둔 인플레이션 경제

2) 하지만 더욱 인간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문화와 생태계 다양성이 필요하다. (탈중심화의 지역경제체제)

   --> 생태 친화적이고 공동체에 기반을 둔 생활 방식

 

 

라다크생태개발그룹LEDeG, www.ledeg.org/

에너지, 농업, 건강 분야에서 지속가능한 기술적 대안을 찾아 경제적인 측면은 물론 환경과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합리성 추구, 재생 가능하고 자립할 수 있는 시스템

 

 

다양성이라는 것이 생태계에 있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주는 강점이 되는 것처럼, 인류의 문화에 있어서도 다채로움과 서로의 다른 점을 수용하려는 태도는평화롭고 풍요롭고 조화로운 발전에 진정한 기초가 되는 것이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시작하고 있는 이때 우리를 위협하는 환경재난과 사회붕괴 현상을 막으려면 우리는 하나의 모습으로 통일된 지구촌을 포기하고 세계화 경제의 대안인 지역중심경제를 가슴으로 안아야 할 것이다.

 

 

서구의 문화는 장기적이고 폭넓은 시야 대신에 보다 전문적이고 즉각적인 데에만 초점을 맞추는 전문가에게 높은 의존도를 보인다. 경제개발과 자본의 힘은 사상 유례 없는 전문화와 집중화와 자본과 에너지 집약적인 생활방식쪽으로 이 세계를 몰고 간다.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세계가 너무 한쪽으로 치닫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도록 그 방향을 전환해야 하는 것이다.

 

 

ISEC (www.isec.org.uk), '대규모 위의 소규모', 글로벌 경제의 소비지향적 획일 문화에 맞선 전 세계의 지역 공동체를 지원하며 지역의 고유 문화에 기반을 둔 대안 모색.

 

ISEC 중점 사안

1) 인습적 개발 계획과 글로벌 경제의 심리적 정신적 환경적 측면의 비용

2) 소규모 농경인과 소비자 사이의 연계를 강화하는 식량 수급 및 농경 시스템

3) 문화와 생물학적 다양성, 자연치화적 사회의 수익성

4) 자급자족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경제체제 확립과 공동체 활성화

 

 

한 마리의 새가 날기 위해선 두 날개가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것처럼 지혜와 자비심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깨달음에 이르는 못한다. 여성은 지혜의 상징이고 남성은 자비심의 상징이다. 그 둘이 함께함으로써 불교의 근본이 형성된다.

- 어느 라다크 승려의 말

 

 

불교에서 깨달음의 방법에 있어 그 근간이 되는 것은 자비심이다. 티베트의 성자이자 시인인 밀라레파는 자비는 '공'의 개념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존재들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너'와 '나'는 완전하게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일체가 된다.

우주는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과 같다는 말이 있다. 그것의 전체성과 단일성은 변하지 않지만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모든 존재는 움직임 속에 존재하는 동시에 분리할 수 없이 얽혀 있다.

자아는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착각은 아마도 깨달음에 이르는 데 있어 가장 커다란 장애가 된다. 절대적이고 영원한 실체에 대한 믿음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욕망을 낳고 또 그 욕망은 고통을 가져온다. 분리된 자아와 분리된 사물에 대한 관념에 집착함으로써 우리는 끊임없이 뭔가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찾던 것을 얻는 순간 그 빛은 사라져버리고 우리는 또 다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린다. 만족스러운 순간은 거의 없고 있다 하더라도 아주 짧은 순간일 뿐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영원히 좌절하고 있는 것이다.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라다크 사람들의 시각은 비영원성에 대한 직관적 이해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로 인해 집착을 버리는 태도를 갖게 되었던 것 같다. 일이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는 대신 기쁜 마음으로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들의 모습은 정말 축복받은 듯한 느낌을 준다.

 

 

생활의 많은 부분을 불안함과 두려움으로 색칠을 하고 사는 우리들에게는 집착을 버린다는 것 그리고 우리 자신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해 일체감을 느낀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일상에서 삶의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차이는 넓고도 포괄적인 자아의식을 지니고 두려움과 자기보호의 경계선 뒤로 움츠러들지 않아야 한다.

 

 

라다크 사람들은 사회 구성원 사이의 유대관계 그리고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통해 내면의 평화로움과 기쁨이 넘치는 삶의 태도를 부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종교는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건강하고 따뜻하고 편안하고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그러나 '무지함' 속에 머물고 있는 한 그들이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 역시 종교의 가르침이었다.

 

만족이라는 것은 자신이 삶의 흐름에 있어 한 부분이 된다는 것을 느끼고 이해하면서 그것과 함께 여유롭게 흘러가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긴 여행을 떠나려는 순간 비가 쏟아진다 해도 굳이 참담한 느낌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당신이 그런 것을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라다크 사람들은 그런 경우 '굳이 불행하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지요'라는 반응을 보이리라는 것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전통경제체제에서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서로를 보살펴주고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경제체제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간격이 더욱 더 벌어지게 되어 더 이상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일 정도다. 지역 내의 상호관계는 붕괴되고 있으며 전통사회에서와 같은 절제심이나 협동심 역시 마찬가지다.

 

 

개발, 세계화라는 이름하에 강요된 서구의 표준 이미지를 추구한다는 것은 자신의 고유문화와 뿌리를 부정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에 따른 소외 현상은 적개심과 분노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 세계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폭력 사태와 근본주의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불교의 전통적 세계관은 변화의 의미를 강조한다. 그러나 그 변화라는 것은 자비심 혹은 관용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지며 세상의 모든 현상 사이의 유대관계를 전제로 한다.

예전의 문화는 자연환경의 한계에 대해 인정하는 태도를 갖는 동시에 인간의 기본적 욕구들을 반영하고 있었다. 전통적 체계 속의 관계들은 서로서로를 보강해주었고 조화와 안정감을 더 향상시켰다.

사회의 가치를 판단하는 여러 기준들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해본다면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구성원들의 행복이 그 척도가 되어야 하고 환경적인 측면에서는 유지가능성이 그 척도가 되어야 한다. 

 

 

자기 집 정원에서 기른 감자보다는 다른 지역에서 재배한 다음 가루로 만들고 얼리고 말린 밝은 색깔의 감자과자를 사먹는 게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더 좋다고 한다. 이런 식의 소비과정은 더 많은 운송량과 더 많은 화석연료와 더 많은 공해물질과 더 많은 화학첨가물과 방부제가 소요된다. 또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간격은 더욱 벌어지게 된다. 그러나 그것 역시 GNP 상승을 일으키는 것이어서 경제성장의 차원에서 권장되고 있다.

 

 

산업형 농경은 지역마다의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던 농작물의 다양한 종자들을 없애버리고 표준화된 종자를 사용한다. 다국적 기업과 대규모 석유화학 기업들은 제3세계로부터 곡물의 종자들을 탈취하고 수천 년간 지역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 그것들의 유전정보를 이용하여 합성종자를 만들어낸다. 그리고는 그 합성종자를 화학 성분의 비료나 농약과 함께 제3세계 농부들에게 되판다. 그런 합성 종자들은 자체적인 재생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그 때문에 농부들은 대기업들로부터 종자와 화학 물질들을 계속해서 구입해야 하는 순환적 종속구조에 갇혀버리게 된다.

 

 

자연이 산업화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변형될 수 있게 됨으로써 표준화와 획일화라는 결과가 나타났고 취약성은 더 증대되었다. 그 과정에서 중요시되는 것은 인류의 복지문제가 아니라 상업적 이익있었다.

이런 활동은 생명의 다양성을 침식하는 한편 생물학적 상호보완성의 연결고리를 끊고 있다. 

 

 

통합이라는 개념은 대단히 상징적인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 총체적인 조화 그리고 함께 하자라는 그것의 이상은 모든 종교계와 사상계로부터 환영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주의의 가장 높은 목표를 반영한다. '하나의 시장'은 공동체와 협력을 의미하고 '지구촌' 이라는 말에서는 관용 그리고 상호교류라는 의미를 느낄 수 있다. 그 어디에도 경제의 통합과 기술의 획일화로 인해 환경파괴와 공동체의 해체가 나타난다는 인식을 찾아볼 수 없다. 오늘날의 경제상황은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 대신 사람들을 점점 더 분열시키는 한편 빈부의 격차 역시 더욱 벌어지게 한다. 사람들은 그 막강한 정치경제권력의 중앙집중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오늘날의 자본 및 에너지 집약형의 경제개발은 자급형 사회구조를 저해할 뿐이다.

사람들의 자긍심과 자급구조를 더욱 장려함으로써 생명체 유지의 다양성을 지키는 한편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진정한 의미의 지속적 개발을 창출해야 한다.

 

 

소비지향적이고 획일적인 문화의 확산이 중단되지 않는 한 빈곤과 사회분열과 생태계 붕괴를 막을 수 있다는 희망은 없다. 기술의 획일성에 반대하는 것과 함께 지역 자원과 지식, 기술의 최대한 활용을 장려함으로써 생태와 문화적 다양성 유지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출발점이 사람과 자연에 대한 존경심이라면 그 필연적 결과물은 다양성의 복원이라 할 수 있다.

 

 

지역경제체제의 부활을 지원함으로써 우리는 문화와 생태의 다양성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부탄의 국왕은 한 사회의 복지를 가늠하는 지표는 'GNP'가 아니라 'GNH'라고 강조한 바 있다.

 

우리는 끊임없는 경제성장과 물질적인 번영에 대해 정신적, 사회적 빈곤과 심리적 불안감 그리고 문화적 활성화의 상실이라는 대가가 지불되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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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못한 외부의 충격에 대응하고 극복할 수 있는 지혜!

 

 

[본문발췌]

 

 

검은 백조 현상에 노출될 기회를 최대한 늘리면 기대 밖의 (유리한) 결과를 뜻밖에 얻는 행운도 늘어난다. '사회과학'의 상식과는 정반대로 대부분의 발견이나 발명은 의식적으로 계획하거나 설계하지 않은 상태에서 얻어진다. 따라서 탐사나 경영은 하향식 계획에 의존하는 대신 기회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최대한 이것 저것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

인간에게는 아는 것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는 장애가 있다. 나무는 보지만 숲은 보지 못하는 격이랄까?

우리는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마음의 구조에서 기인한다. 인간은 원리를 깨닫지 못하고 사실, 오직 사실만을 머리에 우겨 넣는다. 이 '메타원리'(인간은 원리를 습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원리)를 쉽게 습득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우리는 추상적인 것을 얕잡아 본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왜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것일까? 이 의문을 풀려면 상투적인 지식을 전복시켜서, 이런 지식이 복잡다기하며 회귀적인 속성이 갈수록 강해지는 현대사회의 상황에 들어맞지 않음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역사와 삼중의 불투명성

1) 이해의 망상.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꿰고 있다고 저마다 생각하지만, 세상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복잡하다(아니 무작위적이다).

2) 사후왜곡. 마치 자동차의 후면경을 들여다보듯이, 우리는 사태가 발생한 이후에야 관련 사건들을 돌아보게 된다(역사책에 기술된 역사는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보다 명료하고 체계적으로 보인다).

3) 사실 및 정보에 대한 과대평가와 권위 있고 학식 있는 사람들이 겪는 장래오 인한 것들. 특히 그들이 '범주'를 만들어 낼 때, 즉 '플라톤적 사고를 펴칠 때' 일어난다.

 

 

희귀하지만 예상할 수 있는 사건들, 만델브로 무작위.

이것은 흔히 규모가변성, 지수 법칙, 척도 불변, 레비 안정성, 파레토-지프 법칙, 율의 법칙, 파레토 안정과정, 프랙털 법칙 등으로 불리는 현상을 생성시키는 무작위성을 포괄하는 범주다.

 

 

우리가 과거로 부터 배운 것은 최선의 경우에 쓸모없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치명적인 파국을 낳는다.

1000일 동안 산 칠면조의 결말(추수감사절), 과거 때문에 아무런 준비 없이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만다.

그런데 사건이 발생하고 나면 사람들은 자신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돌발 사건이 발생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또 다른 돌발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을 예견하려고 한다. 다른 방식으로 일어날 가능성은 보지 못한다.

 

 

검은 백조를 도외시함으로써 발생하는 부수적인 문제점들

1) 보이는 것들 중에서 보고 싶은 부분에만 집중하며, 그것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일반화시킨다. --> 확인 편향의 오류

2) 인간은 명확한 패턴을 좇는 플라톤주의적 갈증에 부합되는 이야기로 스스로를 속인다. --> 이야기 짓기의 오류

3) 검은 백조가 존재하는 않는 듯이 행동한다. --> 인간은 검은 백조에 대비해 프로그램되지 않았다.

4) 우리가 보는 것이 거기에 있는 전부는 아니다. 역사는 검은 백조들을 우리 눈에서 가려 버리며, 그리하여 이러한 사건들의 확률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게 만든다. --> 이것은 말 없는 증거에 의한 왜곡이다.

5) '땅굴 파기'에 몰입한다. --> (얼른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 검은 백조들은 포기한 채) 잘 정의된 몇몇 불확실성의 원천들, 즉 지나치게 명확한 검은 백조 리스트에만 집중한다.

 

 

지식의 문제의 핵심은 '확증 증거'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칼 포퍼', '찰스 샌더스 피어스' : 피어스-포퍼 접근법, 준회의주의

체스 고수들은 자신의 수의 약점에 집중한다. 하수는 자신의 수를 부정하는 사례들보다 긍정하는 사례들을 찾는다. 조지 소로스는 투자를 할 때 끊임없이 자신이 세운 최초의 가설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사례들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이야말고 진정한 자기 확신이며, 구태여 자신의 에고를 북돋는 신호를 찾으려는 욕구에서 벗어나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능력이다.

 

 

심각한 심리적 질병들은 주변 환경에 대한 통제력-주변 환경에 대한 '이해' 능력-을 상실했다는 느낌을 동반한다. 예술과 달리 과학의 목적은 조직된 느낌을 얻거나 기분을 전환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도달하는데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식을 심리 치료 요법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전통적인 지식에는 기억이란 컴퓨터 디스켓처럼 자료를 차례차례 이어서 기록하는 장치로 여겨진다. 그러나 실제 기억은 마치 같은 종이 위에 글을 계속 쓰는 것과 같아서(혹은 처음의 글을 새로 고쳐 쓰는 것과 같아서) - 정적인 것이 아니라 - 역동적이다. 이는 그만큼 과거의 정보가 강력한 힘을 발휘해 주기 때문이다. 기억은 역동적이되 단순히 스스로 새롭게 보충해 나가는 자동기계는 아니다.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는 이 최신 사건을 기억하면서 이전의 기억에 이를 덧붙여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자기도 모르게 발휘하지 않는가? (19세기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인간의 기억을 팰림프세스트'palimpsest', 즉 이전에 쓴 글을 지우고 그 위에 새로운 글을 쓴 양피지에 비유한바 있다)

우리는 인과관계의 사슬 속에서 기억을 끄집어내고, 무의식적으로 이를 수정해 나간다. 우리는 새로 발생한 사건까지 감안하여 논리적으로 들어맞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 짓기를 되풀이한다.

 

 

검은 백조를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 하는 일은 흔히 일어난다.

'손실이 적을 사고에 대비하는 보험 선호 경향' 가능성이 적되 충격은 더 큰 사고에 대비하는 일을 포기하는 경향 - "비행기 사고로 사망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라는 질문에 사람들은 실제보다 확률을 높여 대답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비행기 사고의 확률이 매우 낮다고 생각하고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남.

추상적인 것을 꺼리는 경향 --> 사전 정보가 없을 경우(스스로 확률을 조정해 보도록 함) 확률이 희박한 사건의 발생 가능성을 실제보다 낮게 평가한다. 하지만 사전 정보가 주어지면 확률을 실제보다 높게 예측한다.

우리는 반복을 통하여 학습하기 때문에 과거에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대비하지 못하는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는 두 번 일어나지 않는 사건은 무시하다가, 일단 그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 (한동안) 이번에는 이를 과대평가한다.

 

 

시스템1(경험적 사고)

우리가 알아치리지 못하는 사이에 의식적 노력 없이 자동적으로, 빠르게, 병렬처리로 작동되며, 그 자체에는 오류가 없다. (직관이라 일컫는) - 휴리스틱이라는 지름길로 빠르고 효율적인 작동 (but 경험에 의존하는 편향)

 

시스템2(인지적 사고)

생각하기(thinking)라고 부르는 것. 느리고, 논리적이며, 생각에 생각을 잇고, 계속 발전시켜야 하며, 자기의식적이다. 경험적 사고 시스템에서 보다는 훨씬 오류가 적게 발생하며, 생각의 결과로 얻어진 것들이 어떤 과정을 밟았는지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다시 거슬러 올라가는 사고도 가능하고, 다른 방식으로 응용할 수도 있다.

 

 

세계는 비선형적이다. 비선형적 관계는 우리 삶의 모든 면에서 작용한다. 선형적 관계가 오히려 예외적이다. 선형적 관계를 주목하는 것은 학교와 교과서에서뿐이다. 그 이유는 선형적 관계가 이해하기에 쉽기 때문이다.

 

 

과학을 산출하려면 의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너무 일찍 의심에서 벗어나는 것도 피해야 한다는 점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적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심의 중요성을 알지도 못한 채로 거기서 벗어나 버리는 것이 사실이다. - 시몽 푸셰 '진리탐구비판Dissertation on the Search for Truth'

 

확인 편향 오류에 빠지면 우리는 확률 이론이 성공적으로 적용된 계임을 예로 들어 이것을 일반화시키려 한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삶에서 행운이 차지하는 역할은 일반적으로 과소평가하지만, 확률 게임에서는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한 가지 문제를 오랫동안 생각하다 보면 거기에 빠져 버린다. 여러 가지 방면으로 사고를 전개하다 보면 이것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다. 이것들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원리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아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에서 생기는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에코의 서재에서 우리 눈에 띄지 않는 부분은 무시되는 속성이 있다. 말 없는 증거 역시 같은 문제를 일으킨다. 이미 출현한 검은 백조에 대해서는 계속 근심하면서도, 과거에 일어난 일은 없지만 미래에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검은 백조 사태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미 익숙해진 잘 짜여진 도식과 지식을 선호하는 플라톤적 태도에 물든 나머지 실제 세계에 대해서는 장님이 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귀납법의 함정에 빠지는 것도, 확인 편향의 오류에 빠지는 것도 이 때문이며, 우등생이 학교 밖에서 루딕 오류를 범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는 잘 짜여진 이야기를 선호한다. 우린 인류는 아직까지 추상적인 문제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진화하지 못했으니, 우리는 언제나 전후 맥락을 들어야 이해를 할 수 있다. 무작위와 불확실성은 추상적인 영역에 속한다. 우리는 이미 발생한 것은 중요하게 여기지만, 일어날 수 있었을지 모르는 일은 무시한다. 요컨대 우리의 천성은 피상적이고 표피적일 뿐 아니라, 그러한 천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다. 이것은 심리학적 문제가 아니라 정보의 기본적 속성에서 오는 문제다.

 

동물보다 좀 더 고상한 삶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이야기 짓기의 세계를 벗어나야 한다. 텔레비젼을 끄고, 신문 읽는 시간을 줄이고, 인터넷을 무시하라. 결정을 내리는 이성적 능력을 훈련하라. 감각적인 것과 경험적인 것을 구분하도록 스스로를 훈련하라. 이렇게 함으로써 세계의 해악에서 벗어나면 보답을 얻게 될 것이니, 삶이 그만큼 풍요로워질 것이다.

 

 

우리는 지난 일을 이야기로 꾸미는 데 능숙하다. 과거의 일이 쉽게 이해되도록 새로운 이야기까지 만들어 낸다. 많은 사람들에게 지식이란 판단의 척도가 아니라 확신을 만들어 내는 능력의 원천이다. 여기서도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상자 속의 것'을 열어 보지 않고도 예견하는 플라톤적 사고, 즉(사리에 맞지 않는) 법칙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미래는 과거와 다르다" - 요기 베라

 

 

인식론적 오만의 두가지 효과

1) 알고 있는 것을 과대평가하게 한다.

2) 실현될 수 있는 불확실한 상황이 분포할 범위를 줄임으로써(즉 알지 못하는 것의 범위를 축소시킴으로써) 불확실성을 과소평가하게 만든다. 

 

실제로 아는 바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차이

 

 

방법을 아는 것(knw-how) vs 어떤 것을 아는 것(know what)

변화하지 않는 분야(전문가로 입증되는 전문가들이 있다)와 변화하는 분야(전문가로 입증되지 않는 전문가들이 있다)

변화하는 분야는 지식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면서 방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은 시야가 협소하기 때문에 예기치 못한 돌발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을 고려하지 못한다. 또한 계획 속에 있는 문제에만 골몰하기 때문에 계획 바깥의 불확실성, 즉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것,' 다시 말해 '아직 읽지 않은 책 속의 내용'은 염두에 두지 못하다.

 

헛똑똑이 효과 : 분석틀 바깥의 위험을 머릿속에서 제거해 버리거나 자신이 아는 것에만 초점을 맞출 때 일어난다. 자기틀 안에서만 세계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빗나갈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예측의 오류 (불확실성의 본성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

1) 중요한 것은 가변성이다. 정확성은 도외시한 채 예측치를 내놓은 것 자체를 중요시하는 데서 비롯된다.

    정책을 결정할 때에는 그 정책의 최종 예상 목표가 아니라 추정 가능한 결과의 폭을 더 고려해야 한다.

2) 프로젝트가 연장되면 당초 예측이 설명력을 잃어 간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는데서 생겨나는 오류

    예측의 설명력이 시간이 지나면서 떨어지는 것

3) 예측 대상이 되는 변수가 무작위적 특성을 갖는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오류

 

 

검은 백조 현상의 세가지 속성 : 예견 불가능성, 파급의 막대함, 사후 합리화

 

 

인간의 두 가지 성향

1) '땅굴 파기'와 '협소하게' 생각하기(지적 오만)

2) 예측 성적을 엄청나게 과대평가한다는 점, 즉 우리의 예견 능력을 실제보다 크게 평가

 

인간의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사회과학이나 경제 예측 따위를 진심으로 믿기 어렵다. 하지만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인간을 합리적 존재일 것이라고 가정하고 이들의 행동이 예상대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행동에 그런 일관성은 없다. 일관성이 없으면 일반화 하기 어렵고, 그러면 예측하기도 어려워 진다.

 

 

녹은 물에서 얼음의 형상을 추측하기

1) 전진 과정 : 얼음 덩어리에서 물로 변하는 과정에 대한 사고 방향 (물리학, 공학적 사고 방향)

2) 후진 과정 : 고여 있는 물을 보면서 그 이전의 얼음 덩어리를 마음의 눈으로 떠올려 보는 것(물은 어디서 왔는가), 반복과 실험이 불가능한 분야, 즉 역사적 접근에서 채택되는 사고 방향

 

 

예견에 대한 교훈

1) 적재적소에서 바보가 되다.  작은 일에 바보가 되어도 좋지만 큰 일에는 금물이다.

2) 언제나 준비되어 있을 것 (예측 보다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에 대비)

사소한 것에 대한 예측은 진통과 치료 효과 정도로 그칠 수 있다. 하지만 거창한 예측치는 판단을 마비시키니 주의해야 한다.

 

 

거듭되는 작은 실패는 오히려 삶에 도움이 된다. 실패를 장려하는 문화에서 혁신이 탄생한다.

 

 

바벨 전략 : 85~90%는 극히 안정적 대상에 투자, 10~15%는 가장 투기적인 곳에 투입(벤처케피털)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것에서 쓸모있는(획기적인) 부산물을 찾는 요령

1) 긍정적 우연과 부정적 우연의 차이를 구분

    긍정적 검은 백조의 예) 영화, 출판, 과학연구, 벤처 자본... 손실은 적되 성공의 보상은 크다

2) 지엽적 정확성을 추구하지 마라. 시야를 넓혀라

3) 기회를 놓지지 말라. 혹은 기회로 보이는 것을 놓치지 말라.

4) 정부가 내놓는 계획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라. (정부가 하는 일의 부작용에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한다)

5) 일기예보관들, 애널니스트들, 경제학자들, 사회과학자들과는 농담을 주고받을 지언정 그들의 주장과 싸우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

 

 

거대한 비대칭성  : 현재와 미래의 비대칭성

어떤 사건의 (알 수 없는) 확률을 계산하는 것보다는 (알아낼 수 있는) 그 결과에 집중함으로써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것이 불확실성에 대한 중심적인 개념이다.

인간은 역사를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다고 믿지만, 궁극적으로 역사에 의하여 규정되고 있다.

 

우리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이유

1) 인식론적 오만과 그에 따르는 미래에 대한 맹목

2) 플라톤식의 범주 관련.

3) 추론에 사용하는 허점 투성이의 도구들

 

 

만델브로 <자연의 프랙털 기하학 The Fractal Geometry of Nature>

프랙털 기하학의 핵심은 규모의 변화와 무관하게 (어느정도) 보존되는 대수적 혹은 통계적 측정값을 갖는 것이 프랙털의 속성이다. (가우스 수학과 다른 것은 비율이 동일하다는 점)

 

 

자료를 다루면서도 그 자료로 의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똑같은 죄, 즉 이야기 짓기의 오류를 다양한 형태로 범하고 있다. 정보의 불투명성과 불완전성, 세계 작동 원리의 파악 불가능성. 역사는 그 속내를 우리 앞에 내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추측만을 할 뿐이다.

 

 

로크의 미치광이 : 잘못된 전제를 바탕으로 정확하게 추론을 하겠다는 사람

철학 바깥에 있는 문제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철학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철학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 때문에 철학 유파들이 후퇴하고 있다. 진정한 철학은 언제나 철학 외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뿌리가 부패하면 철학도 죽는다. 비철학적 문제의 압력에 의하여 철학에 이끌리는 대신 철학을 '연구'하는 철학자들은 이 뿌리를 쉽게 망각한다.

 

 

놓친 기차가 아쉽게 느껴지지 않을 때

운명을 무시하라. 시간표에 맞춰 살겠다고 달음박질하지 않으려 하는 삶.

떠나는 기차를 쫓아가지 않게 되면 우아하고 미학적인 행동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고, 자기의 시간표와 시간, 자기 인생의 주인됨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 놓친 기차가 아쉬운 것은 애써 좇아가려 했기 때문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들이 생각하는 방식의 성공을 이루지 못한다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남들의 생각을 추종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택할 수만 있다면, 경쟁의 질서 바깥이 아니라 그 위에 서도록 하라.

자신이 설계한 게임에서는 쉽게 패배자가 되지 않는 법이다. 내가 하는 일을 장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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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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