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마다 주류 세대, 그들이 선도하는 문화의 차이, 변화가 일어난다.
여러 세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사는 세상에서 나와 다른 부류의 생각과 변화를 외면하면 고립될 수 밖에 없다.
[본문발췌]
나와 같은 세대 또한 꼭 죽음이라는 단어를 빌리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낡아 사라지고, 다음 세대로 채워지게 될 것이다. 그 시점이 언제인지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내가 이제는 새로운 것이 아닐지라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세대를 맞이하며 공존의 길을 찾는 일일 것이다.
세대라는 영어 단어의 어원에는 새로이 출현한다는 의미가 있다. 변화가 그 전제가 되는 것이다. 이 변화는 구세대가 만들어놓은 틀과 마주칠 수밖에 없는데, 그 변화의 끝에서 틀은 깨지기 마련이다. 구세대로서는 그 틀이 깨지면 의식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어른들의 말을 왜 안 듣냐?"라고 비난하는 것이다.
미국의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과거의 경험에 집착하는 기성세대보다 그로부터 자유로운 청년이 더 빠른 적응력을 보이고, 따라서 젊은 세대에게 삶의 방식을 배워야 할 때가 올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살아본 적 없는 미래의 세계에서 우리는 모두 '시간 속의 이주민'인 셈이다. 이제 청년이 스승이 될 수 있다.
90년대생의 특징
- 모든 '길고 복잡한'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피해야 할 일종의 악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 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첫번 째 키워드는 '간단함'이다. 이와 같은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언어 습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떤 문화에서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열쇠는 언어에 있게 마련이다. 생각과 느낌을 남과 주고받기 위해 동원하는 수단이 바로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간담함을 추구하는 90년대생들의 언어 습관에서는 축약형 은어인 '줄임말'이 자주 나타난다.
- 웹 네티이브인 80년대생들과 앱 네이티브인 90년대생들은 사고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어렸을 때부터 인터넷이 주는 풍요를 누리고, 이후 24시간 온라인에 연결되어 있는 앱 네이티브들에게는 어느 때보다 유연한 사고방식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들에게 조용하고 집중적인 기존의 선형적 사고는 구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온라인상으로 제공되는 축약된 정보를 빠르게 흡수하고, 필요할 때 바로 찾는 비선형적인 사고방식이 중요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전의 시기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제 우리는 디지털 네이티브의 시작점을 알렸던 웹 네이티브를 넘어서, 그 정점을 찍고 있는 앱 네이티브 세대로 주도권을 넘기고 있다. 새로운 지적, 문화적 역사를 여는 중요한 단계를 지나고 있는 것이다.
- 90년대생의 두 번째 특징은 바로 '재미'다. 80년대생 이전의 세대들이 소위 '삶의 목적'을 추구했다면, 90년대생들은 '삶의 유희'를 추구한다. 이들은 내용 여하를 막론하고 질서라는 것을 답답하고 숨 막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질서를 요구하거나 진중해지는 모습을 보면 바로 "어디서 진지국 끓이는 소리가 들리는데?"라며 응수한다. 진지한 척하지 말라는 의미다. 문화 현상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들이 재미를 중시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그리고 그 사례들은 90년대생들이 이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살고 있는지 보여준다.
- 대표적인 사례가 '기승전병'이다. 기승전병이란 기승전결(起承轉落)에 '병맛'이라는 신조가 결합된 또 다른 신조어다. 병맛이란 대체로 어떤 대상이 '맥락 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음'을 뜻하는 신조어다. 주로 대상에 대한 조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인터넷상에서 병맛의 개념을 가장 널리 표방하는 방식은 웹툰으로, '병맛 만화'로도 불린다. 병맛 만화의 특징은 대충 그린 듯한 그림체, 비정상적인 이야기 구성 및 내용이다. 그러니 기승전병을 말 그래도 해석하면 이야기가 시작되고 전개되다가 절정 및 새로운 전환을 보여주고, 병맛스러운 결말을 짓는다는 뜻이다.
- 90년대생을 대표하는 마지막 특징은 '정직함'이다. 사실 정직함은 예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보편적인 가치 중 하나로 특히 신세대를 지칭하는 표현 중 하나였다. 하지만 90년대생들에게 정직함이란 기존 세대의 정직함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정직함이란 성품이 정직하다거나, 어떤 사실에 대해 솔직하거나 순수하다는 'Honest'와 다르다. 나누지 않고 완전한 상태, 온전함이라는 뜻의 'Integrity'에 가깝다. 그들은 이제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분야에서 완전무결한 정직을 요구한다. 당연히 혈연, 지연, 학연은 일종의 적폐다.
- 90년대생들에게 이제 정직함과 신뢰는 말로써 약속되어야 할 것이 아니다. 명문화되거나 강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신뢰의 시스템화'를 원하는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신뢰의 시스템화 요구는 점차 커질 것이다. 그 범위도 진학과 취업을 넘어서 사회 전방위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실제로 최근에는 올림픽과 월드컵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에서 선수 선발 시 '인맥 논란'이 일곤 한다. 선수 선발에 공정성을 기하기 위한 신뢰의 시스템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는 철저한 선수 기록 통계와 데이터 등을 통해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선발 방식으로 이어질 것이다.
- 90년대생을 대표하는 마지막 특징은 '솔직함'이다. 사실 솔직함은 예로부터 신세대를 지칭하는 가장 보편적인 표현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90년대생들에게 솔직함이란 기존 세대의 솔직함과는 그 범위가 다르다. 그들에게 솔직함이란 자신의 솔직함뿐 아니라 남들의 솔직함도 포함한다는 것이 그 특징이다. 예를 들어 본인들을 고용한 기업이라든가 소비재를 파는 기업들에게서 솔직함이 보이지 않는다면 인정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몇 년 전, 인터넷에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글이 화재가 된 적이 있다. 이 법칙은 쉽게 말해서 어느 조직이든 일정량의 얌체, 진상, 무능력자, 아첨꾼 등의 일명 '또라이'가 존재한다는 법칙이다. 질량 보존의 법칙을 패러디한 이 법칙은 아래와 같은 형식을 따르게 된다.
1. 또라이를 피해 조직(팀 또는 회사)을 옮기면 그곳에도 다른 또라이가있음.
2. 상또라이가 없으면 덜또라이 여럿이 있음.
3. 팀내 또라이가 다른 데로 가면 새로운 또라이가 들어옴.
4. 또라이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다른 또라이가 될 필요도 있음.
5. 팀내에 또라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 자시니 또라이임.
조직학의 대가 아미타이 에치오니가 지적했듯 사람들은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의사결정을 방어적으로 회피하거나 필요 이상의 정보를 수집하며 시간을 끄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의도적인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 책임 회피를 위해 꼭 필요한 의사결정을 미루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20세기 초 프랑스의 농업공학자 막스 링겔만의 실험 이후 널리 알려진 '사회적 태만'은 협업에 참여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개인별 노력의 최대량이 줄어드는 경향을 말한다. 책임을 분산하고픈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조직은 구성원의 임무를 명확히 분배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권한과 책임의 선이 희미해지면 책임을 분산하려는 욕구가 조직에 비효율을 일으킬 수 있다. 불필요한 이메일의 남발이나 안건과 관련이 없는 사람까지 참석시키는 회의가 대표적이다. 책임의 회피와 분산을위해 일단 이메일을 통해 내용을 공유하거나 꼭 필요치 않은 사람도 회의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마이클 맨킨를 비롯한 베인앤컴퍼니사의 컨설턴트 역시 2014년 5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쓴 글에서 조직 내 이메일이 폭증하고 회의도 증가하고 있지만 그것이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조직에서는 메일 체크와 회의 홍수에 귀중한 시간이 낭비되고 고객에게 쓸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참견'이 아닌 '참여'를 원하는 세대. 새로운 세대는 참여라는 말에는 긍정적이지만 참견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그 차이는 무엇일가? 참견參見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와 별로 관계없는 일이나 말 따위에 끼어들어 쓸데없이 아는 체하거나 이래라저래라 함'이고, 참여參與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에 끼어들어 관계함'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그들은 자기와 어느 정도 관계있는 일이나 말 들에 직접 나서고자 한다.
업무 몰입이나 흥미 증진에 있어서 제도의 변화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90년대생들에게 '일을 통해서 배울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을 통해 성장할 수 없다면 지금의 일은 의미가 없고 죽은 시간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지금의 이 업무가 나를 성장시키는 시간이 된다면 일은 단순한 돈벌이 이상의 의미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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