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마다 주류 세대, 그들이 선도하는 문화의 차이, 변화가 일어난다. 

여러 세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사는 세상에서 나와 다른 부류의 생각과 변화를 외면하면 고립될 수 밖에 없다.

 

 

[본문발췌]

 

 

나와 같은 세대 또한 꼭 죽음이라는 단어를 빌리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낡아 사라지고, 다음 세대로 채워지게 될 것이다. 그 시점이 언제인지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내가 이제는 새로운 것이 아닐지라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세대를 맞이하며 공존의 길을 찾는 일일 것이다.

 

 

세대라는 영어 단어의 어원에는 새로이 출현한다는 의미가 있다. 변화가 그 전제가 되는 것이다. 이 변화는 구세대가 만들어놓은 틀과 마주칠 수밖에 없는데, 그 변화의 끝에서 틀은 깨지기 마련이다. 구세대로서는 그 틀이 깨지면 의식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어른들의 말을 왜 안 듣냐?"라고 비난하는 것이다.

 

 

미국의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과거의 경험에 집착하는 기성세대보다 그로부터 자유로운 청년이 더 빠른 적응력을 보이고, 따라서 젊은 세대에게 삶의 방식을 배워야 할 때가 올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살아본 적 없는 미래의 세계에서 우리는 모두 '시간 속의 이주민'인 셈이다. 이제 청년이 스승이 될 수 있다.

 

 

90년대생의 특징

 

  • 모든 '길고 복잡한'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피해야 할 일종의 악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 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첫번 째 키워드는 '간단함'이다. 이와 같은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언어 습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떤 문화에서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열쇠는 언어에 있게 마련이다. 생각과 느낌을 남과 주고받기 위해 동원하는 수단이 바로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간담함을 추구하는 90년대생들의 언어 습관에서는 축약형 은어인 '줄임말'이 자주 나타난다.
  • 웹 네티이브인 80년대생들과 앱 네이티브인 90년대생들은 사고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어렸을 때부터 인터넷이 주는 풍요를 누리고, 이후 24시간 온라인에 연결되어 있는 앱 네이티브들에게는 어느 때보다 유연한 사고방식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들에게 조용하고 집중적인 기존의 선형적 사고는 구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온라인상으로 제공되는 축약된 정보를 빠르게 흡수하고, 필요할 때 바로 찾는 비선형적인 사고방식이 중요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전의 시기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제 우리는 디지털 네이티브의 시작점을 알렸던 웹 네이티브를 넘어서, 그 정점을 찍고 있는 앱 네이티브 세대로 주도권을 넘기고 있다. 새로운 지적, 문화적 역사를 여는 중요한 단계를 지나고 있는 것이다.
  • 90년대생의 두 번째 특징은 바로 '재미'. 80년대생 이전의 세대들이 소위 '삶의 목적'을 추구했다면, 90년대생들은 '삶의 유희'를 추구한다. 이들은 내용 여하를 막론하고 질서라는 것을 답답하고 숨 막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질서를 요구하거나 진중해지는 모습을 보면 바로 "어디서 진지국 끓이는 소리가 들리는데?"라며 응수한다. 진지한 척하지 말라는 의미다. 문화 현상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들이 재미를 중시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그리고 그 사례들은 90년대생들이 이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살고 있는지 보여준다.
  • 대표적인 사례가 '기승전병'이다. 기승전병이란 기승전결(起承轉落)에 '병맛'이라는 신조가 결합된 또 다른 신조어다. 병맛이란 대체로 어떤 대상이 '맥락 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음'을 뜻하는 신조어다. 주로 대상에 대한 조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인터넷상에서 병맛의 개념을 가장 널리 표방하는 방식은 웹툰으로, '병맛 만화'로도 불린다. 병맛 만화의 특징은 대충 그린 듯한 그림체, 비정상적인 이야기 구성 및 내용이다. 그러니 기승전병을 말 그래도 해석하면 이야기가 시작되고 전개되다가 절정 및 새로운 전환을 보여주고, 병맛스러운 결말을 짓는다는 뜻이다.
  • 90년대생을 대표하는 마지막 특징은 '정직함'이다. 사실 정직함은 예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보편적인 가치 중 하나로 특히 신세대를 지칭하는 표현 중 하나였다. 하지만 90년대생들에게 정직함이란 기존 세대의 정직함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정직함이란 성품이 정직하다거나, 어떤 사실에 대해 솔직하거나 순수하다는 'Honest'와 다르다. 나누지 않고 완전한 상태, 온전함이라는 뜻의 'Integrity'에 가깝다. 그들은 이제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분야에서 완전무결한 정직을 요구한다. 당연히 혈연, 지연, 학연은 일종의 적폐다.
  • 90년대생들에게 이제 정직함과 신뢰는 말로써 약속되어야 할 것이 아니다. 명문화되거나 강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신뢰의 시스템화'를 원하는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신뢰의 시스템화 요구는 점차 커질 것이다. 그 범위도 진학과 취업을 넘어서 사회 전방위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실제로 최근에는 올림픽과 월드컵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에서 선수 선발 시 '인맥 논란'이 일곤 한다. 선수 선발에 공정성을 기하기 위한 신뢰의 시스템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는 철저한 선수 기록 통계와 데이터 등을 통해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선발 방식으로 이어질 것이다.
  • 90년대생을 대표하는 마지막 특징은 '솔직함'이다. 사실 솔직함은 예로부터 신세대를 지칭하는 가장 보편적인 표현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90년대생들에게 솔직함이란 기존 세대의 솔직함과는 그 범위가 다르다. 그들에게 솔직함이란 자신의 솔직함뿐 아니라 남들의 솔직함도 포함한다는 것이 그 특징이다. 예를 들어 본인들을 고용한 기업이라든가 소비재를 파는 기업들에게서 솔직함이 보이지 않는다면 인정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몇 년 전, 인터넷에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글이 화재가 된 적이 있다. 이 법칙은 쉽게 말해서 어느 조직이든 일정량의 얌체, 진상, 무능력자, 아첨꾼 등의 일명 '또라이'가 존재한다는 법칙이다. 질량 보존의 법칙을 패러디한 이 법칙은 아래와 같은 형식을 따르게 된다.

  1. 또라이를 피해 조직(팀 또는 회사)을 옮기면 그곳에도 다른 또라이가있음.  

  2. 상또라이가 없으면 덜또라이 여럿이 있음.  

  3. 팀내 또라이가 다른 데로 가면 새로운 또라이가 들어옴.

  4. 또라이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다른 또라이가 될 필요도 있음.

  5. 팀내에 또라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 자시니 또라이임.

 

 

조직학의 대가 아미타이 에치오니가 지적했듯 사람들은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의사결정을 방어적으로 회피하거나 필요 이상의 정보를 수집하며 시간을 끄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의도적인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 책임 회피를 위해 꼭 필요한 의사결정을 미루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20세기 초 프랑스의 농업공학자 막스 링겔만의 실험 이후 널리 알려진 '사회적 태만'은 협업에 참여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개인별 노력의 최대량이 줄어드는 경향을 말한다. 책임을 분산하고픈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조직은 구성원의 임무를 명확히 분배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권한과 책임의 선이 희미해지면 책임을 분산하려는 욕구가 조직에 비효율을 일으킬 수 있다. 불필요한 이메일의 남발이나 안건과 관련이 없는 사람까지 참석시키는 회의가 대표적이다. 책임의 회피와 분산을위해 일단 이메일을 통해 내용을 공유하거나 꼭 필요치 않은 사람도 회의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마이클 맨킨를 비롯한 베인앤컴퍼니사의 컨설턴트 역시 2014년 5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쓴 글에서 조직 내 이메일이 폭증하고 회의도 증가하고 있지만 그것이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조직에서는 메일 체크와 회의 홍수에 귀중한 시간이 낭비되고 고객에게 쓸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참견'이 아닌 '참여'를 원하는 세대. 새로운 세대는 참여라는 말에는 긍정적이지만 참견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그 차이는 무엇일가? 참견參見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와 별로 관계없는 일이나 말 따위에 끼어들어 쓸데없이 아는 체하거나 이래라저래라 함'이고, 참여參與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에 끼어들어 관계함'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그들은 자기와 어느 정도 관계있는 일이나 말 들에 직접 나서고자 한다.

 

 

업무 몰입이나 흥미 증진에 있어서 제도의 변화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90년대생들에게 '일을 통해서 배울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을 통해 성장할 수 없다면 지금의 일은 의미가 없고 죽은 시간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지금의 이 업무가 나를 성장시키는 시간이 된다면 일은 단순한 돈벌이 이상의 의미가 될 수 있다.

 

 

 

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143041

반응형
Posted by 소요유+
,

하루키가 들려주는 소확행(小確幸)!

 

 

[본문발췌]

 

 

글쓰는 틈새에 고양이와 마라톤 그리고 여행을 즐긴다.

 

 

Always remember, others may hate you, but those who hate you don't win unless you hate them.

이것을 잘 기억해두게. 만일 상대가 자네를 미워했다고 하더라도 자네가 상대를 같이 미워하지 않는 한, 그들은 자네를 이길 수 없다네. - 닉슨

 

 

나는 학교를 졸업한 이래 어떤 조직에도 속하는 일 없이 혼자서 꾸준히 살아왔지만, 그 20여 년 동안에 몸으로 터득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개인과 조직이 싸움을 하면 틀림없이 조직이 이긴다'는 사실이다. 물론 마음에 위안을 주는 결론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쩔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개인이 조직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세상은 어수룩하지 않다. 분명히 일시적으로는 개인이 조직에 대해서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마지막에는 반드시 조직이 승리를 거두고야 만다.

때때로 문득 '혼자서 살아가는 것은 어차피 지기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이 '정말 피곤하네'라고 인정하면서도, 나름대로 힘껏 살아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개인이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것, 그 존재 기반을 세계에 제시하는 것, 그것이 소설을 쓰는 의미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세를 관철하기 위해 인간은 가능한 한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해두는 것이 좋다고(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낫다)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여름에 책이 잘 팔리고 당연히 피서지나 관광지의 서점이 번창하게 된다. 그 서점들은 대부분 신간 전문점이 아니고 헌책방이다. 사람들은 읽고 난 책을 그 서점에 팔고 새로운 책과 교환해간다. 이렇게 해서 이른바 '익스체인지exchange'라고 불리는 서점이 생겨나고 많아진 것이다.

 

 

'먹기, 자기, 놀기' 고양이 손목시계....

시계를 보고 있기만 해도 왠지 마음이 느긋해진다. 안달해봤자. 기껏해야 이건이 인생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아마도 안자이 화백의 경우에는 '그리기, 술 마시기, 자기' 시계가 될 것이다.

 

 

생활 속에서 개인적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크든 작든 철저한 자기 규제 같은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꾹 참고 격렬하게 운동을 한 뒤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같은 것이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아!" 하고 혼자 눈을 감고 자기도 모르는 새 중얼거리는 것 같은 즐거움, 그건 누가 뭐래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참된 맛이다. 그리고 그러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없는 인생은 메마른 사막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글을 쓸 때도 그렇지만, 사람이 언제나 컨디션이 좋을 순 없다. 오랫동안 뭔가를 계속하자면 산도 만나고 골짜기도 만나는 법이다. 컨디션이 나쁠 때는 나쁜 대로 자신의 페이스를 냉정하고 정확하게 파악하여, 그 범위 안에서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나가는 것도 중요한 능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무리하지 않고, 고개를 치켜들고 꾸준히 참고 해나간다면, 다시 조금씩 컨디션이 되돌아오는 법이니까.

 

 

42킬로미터를 달리는 일은 결코 따분한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매우 스릴 넘치는 비일상적이고도 창조적인 행위다. 달리다 보면 평소에는 따분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라도 '뭔가 특별'해질 수 있다. 설령 짧게밖에 살 수 없다 하더라도 그 짧은 인생을 어떻게든 완전히 집중해서 살기 위해 달리는 거라고 생각한다.

 

 

고양이는 세계와 단절된 듯한 자세로 세계에 대한 냉담함을 드러내 보여주는 전혀 길들여지지 않는 동물이다. 개가 주인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자신의 온몸과 정신을 쏟아부을 때, 고양이는 능청스럽게 자기만의 세계와 사고를 고집한다. 길고양이는 말할 것도 없고 온전히 집에서만 자라는 고양이도 그러하다. 마치 고양이가 그 집주인인 것처럼 행세한다.

 

 

'레종 데트르', 즉 인간의 존재 이유를 탐구하는 작가 하루키의 '모든 사물과 나 자신 사이에 적당한 거리 두기'의 미학 정신이 고양이의 사는 모습과 거이 닮았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9235815

반응형
Posted by 소요유+
,

살아가는 데 정말 소중한 것들은 좀처럼 그 존재와 가치를 인식하기 어렵다.

공기, 물, 그리고 시간!

 

 

[본문발췌]

 

 

꼬마 모모는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주는 재주였다.

진정으로 귀를 기울여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줄 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모모는 어리석은 사람이 갑자기 아주 사려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끔 귀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상대방이 그런 생각을 하게끔 무슨 말이나 질문을 해서가 아니었다. 모모는 가만히 앉아서 따뜻한 관심을 갖고 온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커다랗고 까만 눈으로 말끄러미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지혜로운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모모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거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문득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게끔, 그렇게 귀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모모에게 말을 하다 보면 수줍음이 많은 사람도 어느덧 거침이 없는 대담한 사람이 되었다. 불행한 사람, 억눌린 사람은 마음이 밝아지고 희망을 갖게 되었다. 내 인생은 실패했고 아무 의미도 없다, 나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다, 마치 망가진 냄비처럼 언제라도 다른 사람으로 대치될 수 있는 그저 그런 수백만의 평범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모모를 찾아와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그러면 그 사람은 말을 하는 중에 벌써 어느새 자기가 근본적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와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이 세상에서 소중한 존재.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모모는 그렇게 귀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많은 일들을 해결하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모모가 얼마든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재산, 그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모모는 베포가 대답할 때까지 오랫동안 기다릴 수 있었고, 또 그의 말을 이해할 수도 있었다. 모모는 베포가 진실이 아닌 이야기를 하지 않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베포는, 모든 불행은 의도적인, 혹은 의도하지 않은 수많은 거짓말, 그러니까 단지 급하게 서두르거나 철저하지 못해서 저지르게 되는 수많은 거짓말에서 생겨난다고 믿고 있었다.

 

 

때론 우리 앞에 아주 긴 도로가 있어. 너무 길어. 도저히 해 낼 수 없을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들지.

그러면 서두르게 되지. 그리고 점점 더 빨리 서두르는 거야. 허리를 펴고 앞을 보면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것 같지. 그러면 더욱 긴장되고 불안한 거야. 나중에는 숨이 탁탁 막혀서 더 이상 비질을 할 수가 없어. 앞에는 여전히 길이 아득하고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야.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는 안 돼, 알겠니? 다음에 딛게 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 다음에 하게 될 비질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계속해서 바로 다음 일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 그러면 일을 하는 게 즐겁지. 그게 중요한 거야. 그러면 일을 잘 해 낼 수 있어. 그래야 하는 거야. ... 한 걸음 한 걸 음 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 긴 길을 다 쓸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겠고, 숨이 차지도 않아. ... 그게 중요한 거야.

 

 

시간을 재기 위해서 달력과 시계가 있지만, 그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사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한 시간은 한없이 계속되는 영겁과 같을 수도 있고, 한 순간의 찰나와 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한 시간 동안 우리가 무슨 일을 겪는가에 달려 있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니까. 

 

 

시간을 아끼는 사이에 실제로는 전혀 다른 것을 아끼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아무도 자신의 삶이 점점 빈곤해지고, 획일화되고, 차가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점을 절실하게 느끼는 것, 그것은 아이들 몫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아이들을 위해서도 시간을 낼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삶이며, 삶은 가슴 속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시간을 아끼면 아낄수록 가진 것이 점점 줄어들었다.

 

 

난 돈만 벌면 그많이잖아. 그래, 시대가 변하고 있어. 전에는 나도 달랐지. 남들에게 떳떳이 내놓을 수 있는 걸 지으면서 내 일에 대해 긍지를 느꼈어. 하지만 지금은..... 돈을 많이 벌면 미장일을 때려치우고 딴 일을 할 거야. - 미장이 니콜라

 

 

인생에서 중요한 건 딱 한 가지야. 뭔가를 이루고, 뭔가 중요한 인물이 되고, 뭔가를 손에 쥐는 거지. 남보다 더 많은 걸 이룬 사람, 더 중요한 인물이 된 사람, 더 많은 걸 가진 사람한테 다른 모든 것은 저절로 주어지는 거야. 이를테면 우정, 사랑, 명예 따위가 다 그렇지. - 회색 신사의 말

 

 

왜 얼굴이 잿빛이에요?

죽은 것으로 목숨을 이어 가기 때문이지. 너도 알다시피 그들은 인간의 일생을 먹고 살아 간단다. 허나 진짜 주인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시간은 말 그대로 죽은 시간이 되는 게야.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시간을 갖고 있거든. 시간은 진짜 주인의 시간일때만 살아 있지. - 호라 박사

 

 

세 형제가 한 집에 살고 있어.

그들은 정말 다르게 생겼어.

그런데도 구별해서 보려고 하면,

하나는 다른 둘과 똑같아 보이는 거야.

첫째는 없어. 이제 집으로 돌아오는 참이야.

둘째도 없어. 벌써 집을 나갔지.

셋 가운데 막내, 셋째만 있어.

셋째가 없으면, 다른 두 형도 있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문제가 되는 셋째는 정작

첫째가 둘째로 변해야만 있을 수 있어.

셋째를 보려고 하면,

다른 두 형 중의 하나를 보게 되기 때문이지!

말해 보렴. 세 형제는 하나일까?

아니면 둘일까? 아니면 아무도 없는 것일까?

꼬마야, 그들의 이름을 알아맞힐 수 있으면,

넌 세 명의 막강한 지배자 이름을 알아맞히는 셈이야.

그들은 함께 커다른 왕국을 다스린단다.

또 왕국 자체이기도 하지! 그 점에서 그들은 똑같아.

첫째는 미래, 둘째는 과거, 셋째는 현재... 셋이 함께 다스리는 커다란 왕국은 시간...

세 형제가 함께 사는 집은 세상....

 

 

자신의 시간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는 문제는 전적으로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니까. 또 자기 시간을 지키는 것도 사람들 몫이지. 나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나누어 줄 뿐이다. 

 

 

죽음이 뭐라는 걸 알게 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게다.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아무도 사람들의 인생을 훔칠 수 없지.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건 꿈이 이루어지는 거야. 적어도 나처럼 되면그렇지. 나는 더 이상 꿈꿀 게 없거든. 아마 너희들한테서도 다시는 꿈꾸는 걸 배울 수 없을 거야. 난 이 세상 모든 것에 신물이 났어. ... 지금 내가 아직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건 입을 다물고, 더 이상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고, 묵묵히 사는 것뿐일 거야. 아마 남은 여생 동안 그래야겠지. 아니면 적어도 사람들이다시 나를 잊어 버리고, 그래서 내가 다시 이름 없는 가난한 놈이 될 때까지는 그래야 할 거야. 하지만 꿈도 없이 가난하다는 것..... 아니, 모모, 그건 지옥이야. 그래서 나는 차라리 지금 그대로 머물고 있는 거야. 이것 역시 지옥이지만, 적어도 편안한 지옥이거든. - 기기의 말

 

 

차라리 음악을 듣지 않고, 색채들을 보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선택을 하라고 했다면, 이 세상 어떤 것을 준다고 해도 음악과 색채에 대한 기억과 바꾸진 않았으리라. 그 기억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모모는 깨닫게 되었다. 이 세상에는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없으면,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파멸에 이르는 그런 보물이 있다는 사실을.

 

 

꼬마 모모와 베포 할아버지, ... 관광 안내원 기기(기롤라모), 파올로, 마시모, 프랑코, 꼬마 동생 데데를 데리고 다니는 소녀 마리아, 클라우디오를 비롯하여 옛날에 모모를 늘 찾아왔떤 아이들.... 음식점 주인 니노, 니노의 뚱뚱한 아내 릴리아나와 갓난아기, 미장이 니콜라.... 모모의 친구들.....

 

 

집을 나서면 좁고 지저분한 골목길이 보일 뿐이고, 조금만 더 나가면 차들이 쌩쌩 달리는 커다란 도로가 나오는 곳. 그리고 고층 건물들. 나는 그 앞에만 서면 개미보다 더 작은 하찮은 미물이 된 듯 주눅이 든다. 그 후 나의 삶은 전혀 딴판이 되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 생활, 대학원, 결혼, 두 아이. 뭔가를 이루고, 뭔가 중요한 인물이 되고, 뭔가를 손에 쥐기 위해 이를 앙다물고 시간을 쪼개며 살다 보면 문득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흐르고, 왜 이렇게 항상 시간이 모자랄까? 왜 아직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느낌이 드는 걸까?

<모모>를 번역하며 나는 언제나 가슴 한구석에 아리게 자리잡고 있던 이 문제와 마주하는 행복을 맛보았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 속에 깃들여 있다는 것이다." 사실 시간이란 달력과 시계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시간 동안 어떤 일을 겪었는가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러기에 시간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각각 다른 모습으로,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막연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시간이란 소중한 비밀을 너무 소홀히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목표를 이루고 나면 행복을 거머쥘 것 같지만 정말 그럴까? 모모와 친구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 비밀을 알려 준다. 모모의 친구들은 회색 신사의 방문을 받은 후 돈을 벌기 위해, 혹은 뭔가 중요한 인물이 되기 위해 시간을 아끼면서 예전의 따스한 정을 잊고 점차 차갑고 삭막한 사람들이 되어 간다. 모모는 호라 박사와 꼭 반 시간 후의 일을 미리 알고 있는 신기한 거북 카시오페이아의 도움을 받아 시간을 훔치는 회색 신사들을 물리치고, 사람들은 예전처럼 한 순간 한 순간을 즐기는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이 이야기는 이처럼 동화의 형식을 빌어 재미있게 전개되지만,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시간을 아끼며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네 이야기이기도 하다. 회색 신사들, 그들은 바로 우리가 뭔가를 이루고, 뭔가 중요한 인물이 되고, 뭔가를 손에 쥐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그 순간 우리 마음 속에 생겨나는 존재이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 우리 마음 속에서 자라날 수도 있다. 그러니가 작가가 "짧은 뒷이야기"에서 말하고 있듯이 모모와 친구들의 이야기는 이미 일어난 일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어른은 물론 중-고등학생, 초등학생, 심지어는 유치원생까지 다른 사람보다 앞서 가는 뛰어난 사람이 되기 위해 꽉 짜인 시간표에 따라 바쁘게 일하고 공부하고 있다. 물론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야겠지만, 그러는 동안 우리네 삶은 꿈과 따뜻함을 잃고 점점 삭막해져 가는 것은 아닐까?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일까? 그리고 한 순간 한 순간의 과정을 즐기며 목표에 이르는 길은 어떤 것일까? <모모>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 옮긴이 말 중.... (한미희)

 

 

 

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83540

반응형
Posted by 소요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