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가치와 의미는 외부에서 찾을 수 없다. 나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을 얼마나 자유롭고 자주적으로 사용했느냐가 말해준다.

 

 

[본문발췌]

 

 

모든 풍경은 일생에 단 한 번이다.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속에 아이였던 노인과 노인이 될 아이가 걸어간다.

 

 

공명(共鳴), 너와 내가 울리는 찰나의 순간...

 

 

존중할 줄 알아야 존중받을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여행법이다.

여행은 만남, 그리고 그 뒤에 울리는 너와 나의 공명의 시간.

존중받기 위한 영혼을 가졌다면 먼저 상대방을 존중하는 삶이길...

 

 

A+삶이란 무엇일까?

내가 만들어놓은 또는 사회가 강요하는 편안함 속에서 더 이상 꿈꿀 필요 없는 안락한 삶인가? 가진 것 없이도 자유롭게 가고 싶은 길을 가고 올곧게 내 의지로 바람처럼 살아가는 것인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만든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허나 그것은 자신이 필요해서 걸어갔던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해서 있지 않은 것을 쫓다가 스스로 그 올가미에 몸을 들이미는 것이다.

 

 

이따금 네가 정말 가고 싶은 산이 있으면 그 산 아래서 산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바라보라고. 그렇게 시간을 할애한 후에 산에 들어갔을 때, 만약 네가 길을 잃어도 그 산의 생김생김을 알기에 네가 어디쯤에 있는지 알 수 있다고. 그렇다면 오래 헤매지 않고 다시 길 위에 설 수 있노라고. 물론 길은 또 다른 길로 통하게 되어있지만, 원래 가고자 했던 그 길을 찾기 위해서는 한 번 그 산을 멀찌감치서 쳐다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라고....이게 바로 인생이라고. 시간에 쫓겨, 남들의 길에 쫓겨 인생이라는 산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지 못하고 쫓아가다 보면 언젠가 인생의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나 자신이 어드메에 있는지 알 수 없게 된다고. 가끔은 내가 가고자 하는 인생이 어떻게 생겼고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알 수 있다면 그렇게도 헤매고 고생할 일은 없을 거라고.

 

 

내가 모르는 것들. 내가 아직 경험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판단을 사린다.

가보긴 전엔 죽지 마라. 가보지 않았다면 판단하지 말라. 모든 여행기와 수필에는 한 개인의 지극히 주관적인 하루가 담겨 있을 뿐이다. 가보지 않았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가진 게 많지 않아도 자유로울 수 있다.

 

 

착각. 아는 만큼, 보이는 만큼 그리고 보고 싶은 만큼만 보려하는 것.

 

 

내가 찍고 싶은 단 한장.

바람이 불고, 아이들은 깔깔거리고 냇가의 물이 바위를 타는 소리.

길섶의 잠자리 날갯짓 소리, 저 건너 작은 집의 아기 우는 소리.

그 모든 풍경이 들려주는 소리.

스치는 일상의 언덕 속에서 그 한 장의 사진을 보는 사람이 나와 같이 공명하고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 수만 있다면 헤매지 않을 것을. 정답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은 남의 길을 쫓아서 가다 보면 내 원래 가고자 했던 그 길 위에 서 있지 못한 날이 많았다. 더 이상 부끄러울 수 없어 달리지 못했던 남은 길들을, 이 아이들과 길 위에 서 있는 이 수많은 맑은 영혼들을 만나면서 다시금 힘을 내어 걸어갈 수 있었다.

 

 

뒷모습은 정직하다. 눈과 입이 달려 있는 얼굴처럼 표정을 억지로 만들어 보이지도 않는다. 마음과 의지에 따라 꾸미거나 속이거나 감추지 않는다. 뒷모습은 나타내 보이려는 의도의 세계가 아니라 그저 그렇게 존재하는 존재다.

'뒷모습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 미셸 트루니에

 

 

영원히 잊히는 시간은 없다.

길에서 배우게 된 것 하나, 담배연기를 내뿜으면 모든 게 잊히는 줄 알았던 시간이 있었다.

허나 그건 잊히는 게 아니고 잠시 가려줄 뿐....

 

 

많이 필요치는 않다. 튼튼하게 쉬지 않고 내 의지로 걸어갈 열정과, 아이들과 쏟아지는 햇살 속에서 엉거주춤 배구를 할 수 있는 웃음과, 도란도란 같이 앉아 콜라를 마실 수 있는 경제력.... 우리는 언제나 너무 많이 고민하며 다가갈 시간을 놓쳐버리며 살고 있다.

시간은 기다려주는 법이 없다. 어떤 하루도 되풀이되지 않는다. 지나간 후에야 그리워지는 것.

 

 

자유로운 삶과 바람 같은 죽음을 원하노니. 어느 곳에도 머무르지 말고 길을 잃지 않기를.... 그리고 날이 밝으면 행복한 미소 지으며 길을 떠날. 이 길의 끝이 어드메일지 아직 알 수는 없지만 올곧게 내 의지로 자유롭기를 바라며. 그 끝에는 모든 것을 버리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게 되기를....

일평생 자유롭게 내 의지대로 바람같이 살아가길 바라며....

 

 

여행을 꿈꾸는 이들이 가장 먼저 고민하고 물어보는 이야기, 소통하는 법. 나 역시도 '영어'라는 언어로 소통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만나는 이들이 모른다면 그건 언어도, 소통의 수단도 아니다. '소통은 몇 가지 단어와 너와 내가 나누는 눈빛으로 가능한 것.' 마음으로부터 전해지는 이야기. 우리는 모두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나누는 말을 알고 있다.

 

 

자신의 꿈을 잃고 남들이 기대한는 삶을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삶을 자랑스러워하고 당당할수 있기를 바라며... 인생이든 아니면 여행이든 그 안에서 가장 빛나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의 방식을 존중해야 한다.

 

 

눈 덮인 들길 걸어 갈재

행여 발걸음 어지러이 하지 말세라

오늘 남긴 내 발자국이

마침내 뒷사람의 길이 되리니

- 서산대사

 

 

여행은 저에게 그 무엇보다 소중한 꿈입니다. 그리고 그 꿈은 유명한 고적과, 경치 좋은 마을이 아니라, 저의 발 닿은 곳곳마다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으로 채워질 수 있었습니다.

 

 

가장 불행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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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를 이해하고 보호하기 위해 양심과 용기가 필요하다.

 

 

[본문발췌]

 

 

두려움 그 자체 말고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 프랭클린 루즈벨트

 

 

죽은 뒤의 세계를 지나치게 걱정하느라고 지금 이 세상에서 사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

 

 

수백 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하기도 전에 이기려는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할 까닭은 없으니까.

 

 

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 줄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뭘 따 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 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어.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

 

 

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다.

 

 

손에 총을 쥐고 있는 사람이 용기 있다는 생각 말고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말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모습이란다. 승리하기란 아주 힘든 일이지만 때론 승리할 때도 있는 법이거든.

 

 

아직 저 애의 양심은 세상 물정에 물들지 않았어. 하지만 조금만 나이를 먹어 봐. 그러면 저 앤 구역질을 느끼지도 않고 울지도 않을 거야. 어쩌면 세상에서 옳지 않은 일을 봐도 울먹이지 않을 거야. 앞으로 몇 년만 나이를 더 먹어봐, 그렇게 될 테니

 

 

"그래, 맞아. 광대가 되는 거야. 웃는 것 말고는 사람들에 대해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을 거야. 그래서 서커스단에 들어가 허파가 터지도록 실컷 웃을 거야." 딜이 말했습니다. "딜, 넌 지금 반대로 알고 있는 거야. 광대들은 언제나 슬퍼. 그들을 보고 웃는 건 관객이란 말이야."

"그럼 난 새로운 종류의 광대가 될래. 무대 한가운데 서서 관객들을 쳐다보고 웃을 거야."

 

 

아냐. 누구나 다 배워서 아는 거야. 날 때부터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월터도 자기 나름대로 똑똑한 거야. 집에 남아서 아빠 일을 도와줘야 하기 때문에 종종 뒤처질 뿐이지. 그 애한테 잘못된 것은 없어. 내 생각으로는 오직 한 종류의 인간만이 있을 뿐이야. 그냥 사람들 말이지. ...

오직 한 종류의 인간만 있다면, 왜 서로 사이좋게 지내지 못할까? 그들이 서로 비슷하다면, 왜 그렇게 서로를 경멸하는 거지? 스카웃, 이제 뭔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왜 부 래들리가 지금까지 내내 집 안에만 틀어박혀 지내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말이야, 아저씨가 집 안에 있고 싶어 하기 때문이야.

 

 

스카웃이 고통과 좌절을 겪으며 얻는 삶의 교훈이란 과연 무엇인가? 한마디로 그것은 남에 대한 배려와 관용 그리고 사랑이다. 스카웃은 말하자면 <타자>, 즉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된다. 자신의 입장에서 남을 생각하고 판단하기보다는 이와 반대로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운다.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스카웃은 그토록 무서워하던 래들리 집 현관에 서서 자신의 집과 이웃을 바라다본다. 늘 자신의 집에서 래들리 집을 바라보던 태도에서, 이제는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래들리 집에서 자신의 집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달라진 입장에서 스카웃은 비로소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라는 아버지의 말의 참다운 의미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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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광장에는 전지 전능한 것처럼 자기 목소리만 높이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철학공부가 필요하겠지?

"하느님의 문서를 보고 온 사람들처럼. 철학이란 물건에서 배운 것이 있었다면, 정말 알고 있는 것보다 목소리를 더 높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본문발췌]

 

 

살아가는 누구나, 이 세상을 살면서 무언가 저마다 짐작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런데 이 짐작이 얼마쯤 뚜렷한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때도 있다. 사람은 초목이나 짐승과는 달라서, 이 짐작이라는 것을 나면서 몸에 지니고 나오는 것은 아니다. 살아가는 동안에 저편에서 가르쳐주고, 제가 깨달아간다는 것이 사람의 삶의 어려움이다. - <일역판 서문>

 

 

인간은 광장에 나서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표범의 가죽으로 만든 징이 울리는 원시인의 광장으로부터 한 사회에 살면서 끝내 동료인 줄도 모르고 생활하는 현대적 산업 구조의 미궁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수많은 광장이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인간은 밀실로 물러서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동물이다. 혈거인의 동굴로부터 정신병원의 격리실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수많은 밀실이 있다.

사람들이 자기의 밀실로부터 광장으로 나오는 골목은 저마다 다르다. 광장에 이르는 골목은 무수히 많다. 그곳에 이르는 길에서 거상의 자결을 목도한 사람도 있고 민들레 씨앗의 행방을 쫓으면서 온 사람도 있다.

그가 밟아온 길은 그처럼 갖가지다. 어느 사람의 노정이 더 훌륭한가라느니 하는 소리는 아주 당치 않다. 거상의 자결을 다만 덩치 큰 구경거리로밖에는 느끼지 못한 바보도 있을 것이며 봄 들판에 부유하는 민들레 씨앗 속에 영원을 본 사람도 있다.

어떤 경로로 광장에 이르렀건 그 경로는 문제될 것이 없다. 다만 그 길을 얼마나 열심히 보고 얼마나 열심히 사랑했느냐에 있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 <1961년판 서문>

 

 

우리는 참 많은 풍문 속에 삽니다. 풍문의 지층은 두껍고 무겁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부르고 문화라고 부릅니다. 인생을 풍문 듣듯 산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풍문에 만족지 않고 현장을 찾아갈 때 우리는 운명을 만납니다. 운명을 만나는 자리를 광장이라고 합시다. - <초판 서문>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인간은 그 자신의 밀실에서만은 살 수 없어요. 그는 광장과 이어져 있어요. 정치는 인간의 광장 가운데서두 제일 거친 곳이 아닌가요? ... 한국 정치의 광장에는 똥오줌에 쓰레기만 더미로 쌓였어요. 모두의 것이어야 할 꽃을 꺽어다 저희 집 꽃병에 꽂구, 분수 꼭지를 뽑아다 저희 집 변소에 차려놓구, 페이브먼트를 파 날라다가는 저희 집 부엌 바닥을 깔구. 한국의 정치가들이 정치의 광장에 나올 땐 자루와 도끼와 삽을 들고, 눈에는 마스크를 가리고 도둑질하러 나오는 것이지요.

 

 

요즈음 그 숱한 정치 모임의 어느 하나도 모르고 지내온 생활이었다. 까닭은 두 가지다. 벌어지고 있는 일의 뜻을 잘 알 수 없었다. 너무 큰일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내친 말을 하고 있다. 하느님의 문서를 보고 온 사람들처럼. 철학이란 물건에서 배운 것이 있었다면, 정말 알고 있는 것보다 목소리를 더 높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높은 가락만 들리는 판에서는 싸울 뜻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광장에는 꼭두각시뿐 사람은 없다. 사람인 줄 알고 말을 건네려고 가까이 가면, 깍아놓은 장승이었다. 그는 사람을 만나야 했다. 

 

 

모든 우상은 보이지 않는 걸 믿지 못하는 사람의 약함 때문에 태어난 것. 보이지 않는 것은 나도 믿지 못해.

 

 

대중은 오래 흥분하지 못한다. 그의 감격은 그때뿐이다. 평생 가는 감정의 지속은 한 사람 몫의 심장에서만 이루어진다. 광장에는 플래카드와 구호가 있을 뿐, 피 묻은 셔츠와 울부짖는 외침은 없다. 그 건 혁명의 광장이 아니었다. 따분한 매스 게임에 파묻힌 운동장. 이런 조건에서 만들어내야 할 행동의 방식이란 어떤 것인가. 괴로운 일은 아무한테도 이런 말을 할 수 없다는 사정이었다. 혼자 앓아야 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사회에 들어 있다는 것은 풀어서 말하면, 그 사회 속의 어떤 사람과 맺어져 있다는 말이라면, 맺어질 아무도 없는 사회의, 어디다 뿌리를 박을 것인가. 더구나 그 사회 자체에 대한 믿음조차 잃어버린 지금에. 믿음 없이 절하는 것이 괴롭듯이, 믿음 없이 정치의 광장에 서는 것도 두렵다.

 

 

철학을 배운 그는, 이 곡절을 흘려 보지는 못했다. 곡절은, 마르크스가 헤겔의 제자였다는 데 있었다. 헤겔은, 바이블에서, 먼저, 역사적 옷을 벗기고, 다음에 고장 색깔을 지워버린 후, 그 순수 도식만을 뽑아낸 것이다. 말하자면, 헤겔의 철학은, 바이블의 에스페란토 옮김이었다. 도식이란, 그것이 뛰어날수록 본뜨기 쉽다. 마르크스는 선생이 애써 이루어놓은 알몸에다, 다시 한 번 옷을 입혔다. 경제학과 이상주의의 옷을.

 

 

명준의 눈에는, 남한이란, 키르케고르 선생식으로 말하면, 실존하지 않는 사람들의 광장 아닌 광장이었다. 미친 믿음이 무섭다면, 숫제 믿음조차 없는 것은 허망하다. 다만 좋은 데가 있다면, 그곳에는, 타락할 수 있는 자유와, 게으를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정말 그곳은 자유 마을이었다.

 

 

준다고 바다를 마실 수는 없는 일. 사람이 마시기는 한 사발의 물. 준다는 것도 허황하고 가지거니 함도 철없는 일. 바다와 한 잔의 물. 그 사이에 놓인 골짜기와 눈물과 땀과 피. 그것을 셈할 줄 모르는 데 잘못이 있었다. 세상에서 뒤진 가난한 땅에 자란 지식 노동자의 슬픈 환장. 과학을 믿은 게 아니라 마술을 믿었던 게지. 바다를 한 잔의 영생수로 바꿔준다는 마술사의 말을. 그들은 뻔히 알면서 권력이라는 약을 팔려고 말로 속인 꾀임을. 어리석게 신비한 술잔을 찾아나섰다가, 낌새를 차리고 항구를 돌아보자, 그들은 항구를 차지하고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참을 알고 돌아온 바다의 난파자들을 그들은 감옥에 가둘 것이다. 못된 균을 옮기지 않기 위해서, 역사는 소걸음으로 움직인다.

 

 

남하고 돌아선, 아무리 초라해도 좋으니까 저 혼자만이 쓰는, 그런 광장 없이는 숨을 돌리지 못하는 버릇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무래도 약한 자가 숨는 데였다.

 

 

우리 목숨을 주무르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모든 사람이 장삼이사, 그놈이 그놈이다. 자기만 별난 줄 알면 못난이 사촌이다. 광장에서 졌을 때 사람은 동굴로 물러가는 것. 그러나 과연 지지 않는 사람이라는 게 이 세상에 있을까. 사람은 한 번은 진다. 다만 얼마나 천하게 지느냐, 얼마나 갸륵하게 지느냐가 갈림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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