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것은 이기적 유전자의 생존 본능의 결과다.
[본문발췌]
40억 년 전 스스로 복제 사본을 만드는 힘을 가진 분자가 처음으로 원시 대양에 나타났다. 이 곧 자기 복제자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그것들은 절멸하지 않고 생존 기술의 명수가 됐다. 그러나 그것들은 아주 오래 전에 자유로이 뽐내고 다니는 것을 포기했다. 이제 그것들은 거대한 군체 속에 떼 지어 마치 뒤뚱거리며 걷는 로봇 안에 안전하게 들어있다. 그것들은 원격 조종으로 외계를 교묘하게 다루고 있으며 또한 우리 모두에게도 있다. 그것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다. 그것들을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존재를 알게 해주는 유일한 이유이다. 그것들은 유전자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들의 생존 기계이다.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을 짜 넣은 로봇 기계이다. 이 유전자의 세계는 비정한 경쟁, 끊임없는 이기적 이용 그리고 속임수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은 경쟁자 사이의 공격에서 뿐만 아니라 세대 간 그리고 암수 간의 미묘한 싸움에서도 볼 수 있다. 유전자는 유전자 자체를 유지하려는 목적 때문에 원래 이기적이며, 생물의 몸을 빌려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동물의 이기적 행동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타적 행동을 보이는 것도 자신과 공통된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행동일 뿐이다.
집단 내 이타주의는 집단 간의 이기주의를 동반할 때가 많다. 이것이 노동조합의 기본 원리다.
선택의 기본 단위, 즉 이기성의 기본 단위가 종도 집단도 개체도 아닌, 유전의 단위인 유전자다.
말이라는 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으며, 가령 '살아 있다'라는 말이 사전에 있다고 해도 그 말이 반드시 현실 세계에서 무엇인가 명확한 것을 지칭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고충이 발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초기의 자기 복제자를 '살아 있다'고 하든 하지 않든 그들은 생명의 조상이며, 우리의 선조였다.
유성 생식을 하는 종에서 개체는 자연 선택의 중요한 단위가 되기에는 너무 크고 수명이 짧은 유전 단위다.
성과 교차로 인해 유전자 풀은 유동적이며 유전자는 부분적으로 뒤섞인다. 진화는 유전자 풀 속에서 어떤 유전자는 그 수가 늘어나고 또 어떤 유전자는 수가 줄어드는 과정이다.
음의 피드백(negative feedback)
'목적 기계', 즉 의식적인 목적을 갖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기계 내지 물건은 사물의 현재 상태와 자신이 '바라는' 상태의 차이를 측정하는 일종의 장치를 가지고 있다. 이 차이가 클수록 기계는 더 열심히 돌아가도록 만들어진다. 이렇게 해서 기계는 자동적으로 그 둘의 차이를 좁혀 가며(이 때문에 '음의 피드백'이라고 불린다.), 자신이 '바라는' 상태에 도달하면 작동을 멈춘다. 와트 증기 기관의 조속기에는 증기 기관의 힘으로 도는 한 쌍의 공이 있는데, 그 공은 각각 경첩이 있는 팔의 끝에 붙어 있다. 공이 빨리 돌수록 원심력이 세져 팔이 수평 위치로 밀려 올라가게 되는데, 중력이 그 움직임을 제한한다. 팔은 엔진에 증기를 보내는 밸브에 연결되어 있으며, 팔이 수평에 가까워지면 증기의 공급이 감소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엔진이 지나치게 빨라지면 공급되는 증기의 양이 줄고 엔진은 느려진다. 반대로 엔진이 너무 느려지면 밸브를 통해 자동적으로 더 많은 양의 증기가 엔진에 보내져 엔진은 제 속도를 되찾는다. 이와 같은 목적 기계는 종종 과다 반응과 시차 때문에 그 성능이 들쭉날쭉하기도 하는데, 이 성능의 변동 폭을 줄이는 부속 장치를 잘 만드는 것이 기술자의 몫이다.
체스 게임이 그렇듯이 생명체가 맞닥뜨릴 수 있는 우발적 사건이란 수없이 많기 때문에 도저히 그 모든 것을 예상할 수는 없다. 체스 프로그래머와 마찬가지로, 유전자는 생존 기계에게 생존 기술의 각론이 아니라 일반 전략이나 비결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자연 선택은 환경을 가장 잘 이용하도록 자기의 생존 기계를 제어하는 유전자를 선호한다. 이것은 같은 종이거나 다른 종이거나 상관없이 다른 생존 기계를 가장 잘 이용하는 것도 포함한다. ... 여러 종의 생존 기계는 다양한 방법으로 다른 생존 기계에 영향을 준다. 그들은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일 수도 있고, 기생자와 숙주의 관계일 수도 있으며, 희소 자원을 놓고 싸우는 겨쟁 관계일 수도 있다. 또 벌이 꽃가루 운반자로서 꽃에게 이용당하는 경우와 같이 특수한 방법으로 이용당할수도 있다.
'전략'이라는 것은 미리 프로그램된 행동 방침이다. 전략의 일례를 들어 보면, "상대를 공격하라. 그가 도망치면 쫓아가고, 그가 보복해 오면 도망쳐라" 같은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체가 전략을 의식적으로 고안해 냈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현재 동물을, 근육을 제어하는 미리 프로그램된 컴퓨터가 조종하는 로봇 생존 기계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기 바란다. 편의상 이 전략을 일종의 지시처럼 말로 쉽게 표현하는 것뿐이다. 어떤 불분명한 메커니즘에 의해 동물은 마치 이러한 지시를 따르는 것처럼 행동한다.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 즉 ESS(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는 개체군에 있는 대부분의 구성원이 일단 그 전략을 채택하면 다른 대체 전략이 그 전략을 능가할 수 없는 전략이라고 정의한다. 이것은 미묘하고도 중요한 개념이다. 바꿔 말하면, 어떤 개체에게 가장 좋은 전략은 개체군 대부분이 무엇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이다. 그 개체를 제외한 나머지 개체들도 각각 자기의 성공을 최대화하려는 개체들이므로, 장기간 지속될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은 일단 그 전략이 진화하면 다른 어떤 전략도 그 전략보다 더 많은 이득을 볼 수 없는 그런 전략이다. 환경에 어떤 큰 변화가 일어나면 잠시 동안 진화적으로 불안정한 기간이 올 수 있으며, 개체군 내에서 변동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떤 전략이 일단 ESS가 되면 그것은 계속 ESS로 남는다. 자연 선택은 이 전략에서 벗어나는 전략을 벌할 것이다.
ESS 개념은 우리가 제3장에서 뒤로 미뤘던, 좋은 팀워크를 필요로 하는 한 보트 안의 조정 선수들(한 몸 안의 유전자들에 해당)의 예에서 생긴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다. 유전자는 혼자 있을 때 '좋은 것'이 아니라, 유전자 풀내 다른 유전자들을 배경으로 할 때 좋은 것이어야 선택한다. 좋은 유전자는 수 세대에 걸쳐 몸을 공유해야 할 다른 유전자들과 잘 어울리고 또 상호 보완적이어야 한다. 식물을 잘게 씹는 이빨의 유전자는 초식 동물의 유전자 풀내에서는 좋은 유전자지만 육식 동물의 유전자 풀내에서는 나쁜 유전자이다.
유전자 풀은 진화적으로 안정한 유전자들의 세트가 될 것이며, 이는 어떠한 새로운 유전자도 침입할 수 없는 유전자 풀로 정의된다. 돌연변이나 재조합, 또는 이입으로 생기는 새로운 유전자는 대부분이 자연 선택의 벌을 받아 즉시 제거되고 진화적으로 안정한 유전자 세트는 복원된다. 어떤 새로운 유전자가 그 세트에 침입하는 데 성공해 유전자 풀내에 퍼져 나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불안정한 과도기를 거쳐 진화적으로 안정한 새로운 조합이 만들어진다. 작은 진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공격 전략에 대한 예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개체군에는 또 다른 안정점이 하나 이상 존재할 수 있고 때때로 이쪽 안정점에서 저쪽 안정점으로 갑자기 펄쩍 뛰어넘기도 한다. 진보를 향한 진화는 꾸준히 올라가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한 안정기에서 다음 안정기로 불연속적인 계단을 올라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개체군 전체가 마치 하나의 자기 조절단위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착각은 유전자의 수준에서 진행되는 선택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유전자는 그 '우수성' 때문에 선택된다. 그러나 그 우수성은 진화적으로 안정한 세트, 즉 현재의 유전자 풀을 배경으로 했을 때 그 성과가 얼마나 뛰어난지에 기초하여 결정된다.
이기적 유전자란 무엇일까? 그것은 단지 DNA의 작은 조각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원시 수프에서처럼, 그것은 온 세상에 퍼져 있는 특정 DNA 조각의 모든 복사본들이다. 우리가 원한다면 언제라도 적절한 용어로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유전자가 마치 의식적으로 목적을 갖고 있는 듯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이기적 유전자의 목적이 무엇인가 질문할 수 있다. 이기적 유전자의 목적은 유전자 풀 속에 그 수를 늘리는 것이다. 유전자는 기본적으로 그것이 생존하고 번식하는 장소인 몸에 프로그램 짜 넣는 것을 도와줌으로써 이 목적을 달성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유전자가 다수의 다른 개체 내에 동시에 존재하는 분산된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 장의 핵심은 유전자가 남의 몸속에 들어앉아 있는 자신의 복사본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개체의 이타주의로 나타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전자의 이기주의에서 생겨난 것이다.
개개의 부모 동물은 가족계획을 실행하는데, 이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자손의 출생률을 최적화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최종적으로 살아남는 자기 새끼의 수를 최대화하려고 힘쓴다. 개체에서 너무 많은 수의 새끼를 가지도록 하는 유전자는 유전자 풀 속에 계속 살아남지 못한다. 그런 종류의 유전자를 체내에 가진 새끼들은 성체가 될 때까지 살아남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문화 전달의 단위 또는 모방의 단위로서 자기 복제자. 밈(meme)
자기 복제자의 일반적 성질 - 장수, 다산성, 복제의 정확도
뇌에서는 아마도 저장 용량보다 시간이 중요한 제한 요인이며, 심한 경쟁의 대상일 것이다. 인간의 뇌와 그 제어를 받는 몸이 동시에 하나 또는 몇 종류 이상의 일을 해치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 밈이 어떤 사람의 뇌의 집중력을 독점하고 있다면 '경쟁자'의 밈이 희생되는 것은 틀림없다. 밈은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방송 시간, 광고 게시판의 공간, 신문 기사의 길이, 그리고 도서관의 서가 공간 등과 같은 상품에서도 경쟁하고 있다.
우리는 유전자의 기계로 만들어졌고 밈의 기계로서 자라났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
동물의 행동은, 그 행동을 담당하는 유전자가 그 행동을 하는 동물의 몸 내부에 있거나 없거나에 상관없이 그 행동을 담당하는 유전자의 생존을 극대화하는 경향을 가진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동물의 행동'에 대해 썼지만 이 정리는 색깔, 크기, 형상 등 어떤 것에나 적용될 수 있다.
자연 선택의 근본적인 단위로 생존에 성공 또는 실패하는 기본적인 것, 그리고 때때로 무작위적인 돌연변이를 수반하면서 동일한 사본의 계보를 형성하는 기본 단위를 자기 복제자라고 한다. DNA 분자는 자기 복제자다. 자기 복제자는 앞으로 우리가 살펴보겠지만 어떠한 이유로 거대한 공동체적 생존 기계, 즉 운반자 속에 모인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운반자는 우리 자신과 같은 개체의 몸이다. 따라서 몸은 자기 복제자가 아니다. 그것은 운반자이다. 지금까지 잘못 이해되어 왔기 때문에 나는 이 점을 특히 강조하는 것이다. 운반자 자신은 스스로를 복제하지 못한다. 운반자는 자기를 구성하는 자기 복제자들을 퍼뜨리기 위해 일한다. 자기 복제자는 행동하지 않는다. 또한 세상을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며 먹이를 잡거나 포식자로부터 도망치지도 못한다. 자기 복제자는 이와 같은 모든 것을 하는 운반자를 만든다.
진화는 유전적인 변화, 즉 돌연변이를 필요로 한다.
병목형 생활사가 왜 분명히 구분된 단위 운반자로서 생물 개체의 진화를 촉진하는가에 대해 세 가지 이유를 살펴 보았다. 이 세 가지에는 각각 '제도판으로의 회귀back to the drawing board', '주기의 규칙성orderly timing-cycle', '세포의 동일성cellular uniformity'이라는 이름표를 붙일 수 있다.
불멸의 자기 복제자.... 이기적 유전자/확장된 표현형이라는 생명관의 전체에 대한 요약이다. 나는 이것이 우주의 어떤 장소에 있는 생물에게도 적용되는 생명관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생명의 원동력이자 가장 근본적인 단위는 자기 복제자다. 우주에서 자신의 사본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든 자기 복제자다. 최초의 자기 복제자는 작은 입자들이 우연히 마구 부딪쳐서 출현한다. 자기 복제자가 일단 존재하면 그것은 자신의 복사본을 한없이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복제 과정도 완벽하지 않으며 자기 복제자들의 집단 내에는 몇 개의 다른 변이체가 생긴다. 이 변이체 중 어떤 것은 자기 복제 능력을 잃어서 자신이 소멸할 때 그 변종도 아울러 소멸하고 만다. 다른 변이체는 아직 복제를 할 수는 있으나 효율이 나쁘다. 또 다른 변이체는 새로운 묘법을 획득하여 자기의 조상이나 다른 변이체들보다 자기 복제의 효율이 훨씬 좋다. 그리하여 개체군 내에서 많아지는 것은 그들의 자손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세상은 가장 강력하고 재주 있는 자기 복제자로 채워진다. 또한 좋은 자기 복자제가 되기 위한 더욱 정교한 방법들이 서서히 발견된다. 자기 복제자는 자기 고유의 성질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들이 세상에 초래하는 결과 덕분에 살아남는다. 그 결과는 매우 간접적일 수도 있다. 필요한 단 한 가지 조건은 그 결과가 얼마나 우회적이고 간접적인 것이든 간에 피드백을 통해 최종적으로 자기 복제자의 복제 성공률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어떤 자기 복제자가 이 세상에서 성공할 것인지는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즉 선제 조건에 달려 있다. 이런 조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종류의 자기 복제자와 이것이 초래하는 결과일 것이다. 영국인과 독일인 조정 선수의 예에서와 마찬가지로, 서로에게 이익을 주고받는 자기 복제자들은 양자가 존재할 때 그 수가 많아질 것이다. 지구 상의 생물이 진화하는 과정 중 어느 시점에선가 서로 공존할 수 있는 자기 복제자가 모여 개체적 운반자 - 세포, 그리고 이후에는 다세포 생물체 - 의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다. 병목형 생활사를 가진 운반자가 번성하게 되었고 이들은 보다 더 개별적으로 구분이 가능하게 되었고 운반자다워졌다. 생물 물질이 이처럼 개별 운반자 속에 포장되는 것은 뚜렷이 도처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었기 때문에, 생물학자가 이 세상에 등장하여 생명체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을 때 그 질문 대부분은 운반자, 즉 생물 개체에 관한 것이었다.
생물학자가 처음 인식한 것은 생물 개체였던 반면, 자기 복제자, 즉 유전자는 생물 개체가 사용하는 장치의 일부로 받아들여졌다. 생물학을 다시 올바른 길로 돌려, 역사상에서뿐만 아니라 그 중요성의 측면에서도 자기 복제자가 우선이라는 것을 우리 스스로 명심하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노력을 들여야 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 이 점을 명심하는 하나의 방법은, 오늘날에도 한 유전자가 표현형에 미치는 효과가 모두 그것이 위치하는 개체의 몸속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그리고 사실상 유전자는 개체의 체벽을 통과하여 바깥세상에 있는 대상을 조종한다. 그 대상 중 어떤 것은 무생물체고, 어떤 것은 다른 생물이며, 또 어떤 것은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확장된 표현형의 힘이 방사상으로 뻗은 그물눈 중심에 유전자가 들어앉아 있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있는 대상물은 여러 생물 개체 속에 들어앉은 여러 유전자가 미치는 영향력의 그물이 합쳐지는 지점이다. 유전자의 긴 팔에는 뚜렷한 경계가 없다. 세상 전체가, 멀거나 가까운 표현형에 미치는 유전자의 영향을 잇는 인과의 화살로 가득 차 있는 셈이다. 우연이라기에는 실제적으로 너무 중요하지만, 필연이라 하기에는 이론적으로 불충분한 사실을 하나 추가해 두자. 그것은 이들 인과의 화살이 뭉쳐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자기 복제자는 더 이상 바닷속에 제멋대로 흩어져 있지 않다. 이들은 거대한 군체, 즉 개체의 몸속에 포장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뭉쳐진 자기 복제자가 표현형에 초래하는 결과는 세상 전체에 균일하게 분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개의 경우 그 개체에 응집되어 있다. 그러나 이 지구에서 우리에게 이다지도 낯익은 개체라는 존재가 반드시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 우주의 어떤 장소든 생명이 나타나기 위해 존재해야만 하는 유일한 실체는 불멸의 자기 복제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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