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성은 빈 서판, 자연 앞에 만인이 평등하게 시작한다는 것!

 

 

[본문발췌]

 

 

버트런트 러셀은 이렇게 썼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편안하게 해 주는 확신의 구름에 둘러싸인 채 살아간다. 그 구름은 여름날의 파리 떼처럼 그를 따라 이동한다." 오늘날 지식인들의 경우 그 확신의 많은 부분이 심리학 그리고 사회적 관계와 관련되어 있다. 나는 그 확신들을 '빈 서판'이라 지칭하고자 한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은 어떤 고유한 구조와도 무관하며, 사회나 그 자신이 그 위에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새겨 넣을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이 이론, 즉 인간 본성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론이 바로 이 책의 주제이다.

 

 

이제 마음이 가령 아무 글자도 적혀 있지 않고 아무 개념도 담겨 있지 않은 흰 종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것은 어떻게 채워지는가? 그 종이는 어떻게 인간의 분주하고 무한한 공상에 의해 거의 무한할 정도로 다양하게 그려지는 광대한 내용을 획득하게 되는가? 그것은 어떻게 이성과 지식의 모든 재료를 갖게 되는가? 이에 대한 내 대답은 한마디로, '경험으로부터'라는 것이다. - 존 로크, <인간 오성론>

 

 

빈 서판은 또한 정치적, 윤리적 신념을 위한 신성한 경전으로서의 기능을 한다. 그 학설에 따르면 인종, 인종 집단, 성, 개인들 간의 어떤 차이도 선천적 체질 차이가 아니라 경험상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육아, 교육, 대중 매체, 사회적 보상을 개혁함으로써 개인의 경험을 바꾸면, 그 개인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학업 부진, 가난, 반사회적 행동은 개선될 수 있으며, 사실 개선되지 않는 것에는 책임이 없다. 그리고 성이나 인종 집단 등 이른바 선천적 특성들을 근거로 삼아 차별하는 것은 전적으로 불합리한 일이다.

 

 

나는 자연이 빚어 낸 최초의 인간처럼 자유롭다. / 예속을 강요하는 비천한 법이 생겨나기 전처럼, / 고상한 야만인이 거칠게 숲 속을 뛰어다니던 때처럼. - 존 드라이든, <그라나다 정복>

 

 

수많은 저자들이 인간은 선천적으로 잔인하며 따라서 이를 교정하려면 상시적 경찰 제도가 필요하다고 성급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인간이 짐승의 우둔함과 문명인의 유해한 양식으로부터 똑같이 먼 곳에 놓인다면, 원시 상태의 그보다 더 온화한 존재는 없을 것이다. ... 우리는 그 상태에 대해 깊이 숙고할수록 더욱 확신하게 되는 것은, 그 원시 상태야말로 어떤 혁명도 필요치 않았던 상태, 즉 인간에게 가장 좋은 상태였다는 사실과, 만인의 이익을 위해서는 결코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던 어떤 치명적 사건이 아니었다면 어떤 것도 인간을 그 상태에서 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이런 상태로 발견된 야만인들의 예는 인간이 영원히 그런 상태로 남도록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그 상태가 세계의 진정한 유년이라는 사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모든 진보가 겉으로는 개인의 완성을 향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류의 노쇠를 향한 걸음이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 루소

 

 

인간이 그 자신을 두려운 존재로 만들 공동의 힘을 갖지 못하고 사는 동안에는 이른바 전쟁이라는 상황이 인간을 지배하게 된다. 그것은 만인이 만인에 대해 벌이는 싸움이다. .... 그런 조건 아래에서는 노동을 위한 여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성과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문화도 없고, 항해나, 해상을 통해 수입될 수 있는 상품의 사용도 없고, 널찍한 건물도 없고, 큰 힘을 필요로 하는 물건의, 이동과 운송 수단도 없고, 지형에 대한 지식도 없고, 시간 계산도 없고, 예술도 없고, 문학도 없고, 사회도 없다. 가장 끔찍한 것은 끝없는 두려움과 폭력적인 죽음의 위험이다. 인간의 삶은 외롭고, 가난하고, 더럽고, 짧다. - 토머스 홉스

 

 

지식의 풍경에는 하나의 벽, 20세기 사회과학자들이 대단한 경계심을 가지고 방어했던 그 성벽이 남게 된다. 그것은 물질과 마음, 물질과 영혼, 육체와 정신, 생물학과 문화, 자연과 사회, 과학과 사회과학, 인문학, 예술을 구분한다. 이 구분은 공식적 이론의 모든 학설에 스며들었다. 생물학적으로 부여된 빈 서판 대 경험과 문화가 새겨넣은 내용물, 자연 상태의 고상한 야만인 대 사회 제도의 타락, 피할 수 없는 법칙을 따르는 기계 대 자유롭게 선택하고 인간의 조건을 개선하는 유령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벽도 무너지고 있다. 지식의 네 경계 - 마음, 뇌, 유전자, 진화를 연구하는 과학들 - 로부터 밀려드는 새로운 지식들이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앞세워 그 성벽을 돌파하고 있다. 이 장에서는 그 지식들이 어떻게 빈 서판을 채우고 있으며 고상한 야만인의 지위를 낮추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기계 속의 유령을 몰아내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생물학과 문화를 연결하는 최초의 다리는 마음의 과학인 인지과학이다. 마음과 물질을 잇는 두 번째 다리는 신경학, 특히 인지와 감정이 뇌에서 어떻게 실행되는가를 연구하는 인지 신경학이다. 생물학과 정신을 잇는 세 번째 다리는 유전자가 행동에 어따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연구하는 행동 유전학이다. 생물학과 문화를 잇는 네 번째 다리는 마음의 계통 발생적 역사와 적응 기능을 연구하는 진화 심리확이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성격이 다섯 가지 주요 측면으로 나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인간의 성격은 내성적인가 외향적인가, 신경이 과민한가 안정적인가, 경험에 무관심한가 적극적인가, 우호적인가 적대적인가, 양심적인가 아니면 도덕적으로 쉽게 흔들리는가 하는 기준 사이에 다양하게 분포된다. 

 

 

빈 서판은 마지막 항전을 벌였지만, 지금까지 본 것처럼 최근의 과학적 성벽들은 환상에 불과하다. 인간 게놈의 유전자 수는 생물학자들이 추정했던 것보다 더 적을 수 있지만, 그것은 게놈 속의 유전자 수가 유기체의 복잡성과 거의 무관하다는 것을 보여 줄 뿐이다.

연결주의 신경망은 인지의 블록이 완성되는 과정의 일부를 설명할 수는 있지만, 사고와 언어를 독자적으로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신경망은 선천적으로 설계되어야 하고 주어진 과제에 맞게 조립되어야 한다.

신경 가소성은 마법의 만능 열쇠가 아니라 수 메가바이트의 게놈을 수 테라바이트의 뇌로 전환하는 데 사용되는 도구 상자이다. 신경 가소성은 감각 피질을 입력물에 맞추고, 학습이라 불리는 과정을 실행하는 데 필요하다. 따라서 게놈의 특성, 신경망, 신경 가소성은 모두 복잡한 인간 본성에 관한 최근 몇 십년의 연구에서 제시하는 설명과 잘 들어맞는다.

물론 그것은 엄격하게 미리 설정되어 있거나, 입력물에 무감각하거나, 모든 개념과 감성이 상세하게 부여된 본성은 아니다. 그러나 시각, 이동, 계획, 대화, 생명 유지, 환경 이해, 타인과의 협상에 필요한 요구 사항들을 무리없이 소화할 만큼 풍부한 본성이다.

빈 서판의 마지막 항전이 끝났으므로 그 대안이 될 만한 사례를 조사해 볼 때가 되었다. 다음은 복잡한 인간 본성에 대한 증거를 요약한 것으로, 그 일부는 이전 장들의 논의와 중복되고 또 일부는 이후의 장에서 논의할 내용과 중복된다. 단순한 논리로 말하자면, 학습을 위한 선천적 메커니즘 없이 학습은 존재할 수 없다. 그 메커니즘은 인간이 성취하는 모든 종류의 학습을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강력하다. 학습력 이론 - 학습의 수행 원리에 대한 수학적 분석 - 에 따르면, 학습자가 유한한 입력물로부터 이끌어 낼 수 있는 일반화의 수는 무한하다고 한다. 가령 어린이가 들은 문장들은 그것을 그대로 반복하는 토대이기도 하지만, 명사와 동사의 비율이 무한한 단어 조합을 생산하거나, 그 기초에 놓인 문법을 분석하고 문법에 맞는 문장들을 생산할 수 있는 토대이기도 하다. 이와 똑같은 논리적 정당화로서, 누군가가 설거지를 하는 광경은 학습자로 하여금 똑같이 설거지를 하게 학서나 따뜻한 물을 손가락 사이로 흘려 보내도록 자극한다. 그러면 성공적인 학습자는 입력 정보로부터 반드시 몇 가지 결론을 이끌어 내게 되어 있다. 인공 지능 분야가 이 점을 강하게 입증한다. 인간과 똑같은 작업을 하도록 설정된 컴퓨터와 로봇에게는 항상 다수의 복잡한 모듈이 부여된다.

진화 생물학은, 생물의 세계에는 복잡한 적응 능력들이 편재하고 자연 선택이 그것들을 진화시키는데 여기에는 복잡한 인지, 행동 적응 능력이 포함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자연 서식지에 사는 동물의 행동 연구에서 입증한 바에 따르면, 생물 종들은 충동과 능력이 선천적으로 서로 다르고 어떤 능력들(가령 비행술과 먹이 은닉)은 복잡하고 고도로 분화된 신경계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진화적 관점에서 인간을 연구해온 과학자들은 많은 심리 능력들(가령 기름진 음식, 사회적 지위, 모험적인 성관계 등)이 현재 환경의 실질적 요구보다는 조상들이 살던 환경의 진화적 요구에 더 적합한 것임을 입증했다.

인류학 연구에서는 경험의 모든 측면과 관련된 수많은 보편적 능력이 전 세계 문화의, 경계를 초월해 존재함을 보여 주고 있다. 인지과학들은 개별적인 표현과 과정들이 지식의 서로 다른 영역 - 가령 언어를 위한 말과 규칙, 물리적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영구적 사물의 개념, 타인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마음 이론 - 에 사용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발달 심리학에서는 경험을 해석하는 이 개별 형식들이 생애 초기에 정렬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유아기에 이미 사물, 수, 얼굴, 도구, 언어, 그리고 그 밖의 인지 영역들을 기본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인간 게놈의 유전자와 비암호화 부위 모두에는 엄청난 양이 정보가 담겨 있고, 그 정보가 복잡한 유기체의 완성을 이끈다. 특정 유전자가 인지, 언어, 개성의 여러 측면에 구체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가 갈수록 늘고 있다. 심리적 특성이 다양할 때 그 다양성의 많은 부분은 유전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함께 성장했든 떨어져 성장했든 일란성 쌍둥이는 이란성 쌍둥이보다 더 비슷하고, 생물학적 형제는 입양된 형제들보다 더 비슷하다. 개인의 기질과 성격은 생애 초기에 출현해서 일생 동안 상당히 일관되게 유지된다. 그리고 성격과 지능 모두 어린이의 가정 환경으로부터 거의 또는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다. 한 가정에서 양육된 아이들이 비슷한 것은 대개 그들의 공통된 유전자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신경학에서는 뇌의 기본 구조가 유전적 통제 하에 발달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학습과 가소성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뇌의 체계들은 선천적으로 분화한다는 증거뿐 아니라 임의적으로 서로의 기능을 대체하지 못한다는 증거까지 보여 준다.

 

 

인간의 조건에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사회 구성원들이 무의미한 세계에서 무의미한 삶을 영위한다고 믿으면 어떤 사회도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지구가 이토록 고귀하고 훌륭한 것은 바로 그 안에서 다양한 변경, 변화, 생성 등이 끊임없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변화도 없어서 지구가 광대한 모래 사막이나 벽옥의 산으로 남았거나, 대홍수가 일어났을 때 지구를 덮었던 물이 얼어붙어 거대한 얼음 덩어리로 남았다면, 내 눈에는 그저 이 우주 속에서 아무 운동도 하지 않는, 한마디로 불필요하고 존재 가치가 없는 무의미한 덩어리로만 보일 것이다. 이것은 살아 있는 동물과 죽은 동물의 차이인데, 나는 달과 목성과 그 밖의 모든 천체들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 사람들이 완벽함, 영원성 등을 높여 찬양한다면 내 생각에 그것은 계속 살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걱정은 네 가지 두려움으로 요약된다.

  • 사람들이 선천적으로 다르다면 억압과 차별이 정당화될 것이다.

  • 사람들이 선천적으로 부도덕하다면 인간 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은 무익할 것이다.

  • 사람이 생물학적 법칙의 산물이라면 자유 의지는 신화가 될 것이고 더 이상 사람들에게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묻지 못할 것이다.

  • 사람이 생물학적 법칙의 산물이라면 삶의 의미와 목적이 사라질 것이다.

 

 

백지에는 어떤 얼룩도 없기 때문에, 그 위에는 가장 새롭고 가장 아름다운 말들이 써질 수 있고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질 수 있다. - 마오쩌둥

 

 

우리의 저녁상에 음식이 차려지는 것은 정육 업자, 양조 업자, 제빵 업자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류가 아니라 자기 이익을 위해 일한다. - 애덤 스미스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이 주는 정서적 위안도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뇌가 죽을 때 우리의 존재가 끝난다면 삶은 목적을 상실하는가? 오히려 매 순간을 감각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소중한 선물이라는 깨달음보다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순간순간 "인생은 짧다" 라는 사실을 떠올림으로써 얼마나 많은 싸움을 피했고, 얼마나 많은 친구를 사귀었으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아꼈고, 얼마나 많은 애정을 표현했는가?

 

 

이타주의는 또한 생물들이 호의를 교환할 때 진화할 수 있다. 한 생물이 다른 생물을 돌보고, 보호하고, 지원하는 식으로 도움을 주고, 또 필요할 때에는 상대방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이것을 호혜적 이타주의라 부른다. 당사자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반복적으로 상호 작용하고, 적은 비용으로 상대에게 큰 이익을 줄 수 있고, 제공되거나 거부된 호의를 기억하고, 그에 따라 보답을 주게끔 되어 있을 때 호혜적 이타주의가 진화할 수 있다. 호혜적 이타주의가 진화하는 이유는 협력자들이 은둔자나 염세가들보다 더 잘 살아남기 때문이다. 그들은 잉여물을 교환하고, 서로의 털에서 진드기를 잡아 주고, 서로 익사하거나 굶어 죽지 않게 해 주고, 서로의 아기를 돌봐 줌으로써 발생하는 이익을 누린다. 보답자들은 또한 호의를 받기만 하고 돌려주지 않는 사기꾼들보다 최종적으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사기꾼들을 알아보고 피하거나 응징하게 되기 때문이다. 호혜적 이타주의의 필요성은 왜 사회적, 도덕적 감정이 진화했는가를 설명한다. 동정과 신뢰는 사람들에게 최초의 호의를 베풀게 만든다. 감사와 충성은 호의에 보답하게 만든다. 죄 의식과 수치는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호의를 배신하지 않게 만든다. 분노와 경멸은 사기꾼을 피하거나 응징하게 만든다. 그리고 인간 사회에서는 어느 개인이 호혜를 베풀거나 사기를 치려는 성향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사람들은 그것을 직접 목격하지 않고도 언어로 자세히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뒷말과 대중적 인정 또는 비난에 담겨 전달되는 사람들의 평판에 관심을 쏟게 되고 자기 자신의 평판에도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이다. 협력, 우정, 동맹, 공동체는 이러한 감정과 관심에 의해 형성되고 굳어진다.

 

 

가족과 친구에 대한 우리의 감정도 이와 똑같다. 우리 마음 속에 풍부하고 강렬한 감정이 존재하는 것은 삶 속에서 그들과의 결속이 얼마나 귀중하고 깨지기 쉬운가를 보여 주는 증거이다. 간단히 말해, 고통의 가능성이 없어진다면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조화롭고 완벽한 행복이 아니라 의식의 결핍인 것이다.

 

 

하이트는 최근에 인간의 도덕 관념을 구성하는 감정들을 하나의 계보로 짰다. 그가 분류한 네 가지 주요 집합은 트리버스의 호혜적 이타주의 이론과 그것을 기초로 해 협동의 진화를 실험한 컴퓨터 모델들의 실험 결과와 정확히 일치한다. 타인 비난 감정-경멸, 분로, 혐오-은 사기꾼을 처벌하게 하는 작용을 하고, 타인 칭찬 감정-감사, 고양시키는 감정, 도덕적 경외, 감동-은 이타주의자에게 보상하는 기능을 한다. 타인 고통 감정-동정, 공감, 연민-은 어려운 수혜자를 도와 주는 기능을 하고, 자의식적 감정-죄 의식, 수치, 당혹-은 남을 속이지 않거나 속인 결과를 바로잡는 기능을 한다. 이 감정의 집합들 뒤에는 세 개의 도덕성 영역이 있는데, 각 영역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도덕적 판단의 틀을 형성한다. 자율성 윤리는 개인의 이해와 권리에 관계한다. 그것은 공평함을 기본 미덕으로 강조하며, 서양 문화권에서 비종교적 교육을 받은 사람들 사이에서 도덕성의 핵심으로 이해된다. 공동체 윤리는 집단의 사회적 관습에 관계한다. 여기에 의무, 존경, 인습에 대한 고수, 계급 조직에 대한 복종 같은 가치가 포함된다. 신성 윤리는 숭고한 청렴과 신성의 감정에 관여하며, 오염과 신성 모독의 감정과 대립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진실한 신자가 냉소적인 운영자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본다. 냉소적인 운영자는 패를 버릴 줄 안다. 반면에 진실한 신자는 끝까지 가서 기어코 세상을 무너뜨린다.' - 이안 부루마.

 

 

빈서판(영구적인 인간 본성은 없다.), 고상한 야만인(이기적 본능이나 악한 본능은 없다.), 기계 속의 유령(보다 나은 사회 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우리')

 

 

인간 본성에서 우리는 싸움의 세 가지 주된 요인을 발견한다. 첫째는 경쟁이고, 둘째는 자신감 결여이고, 셋째는 영광이다. 첫 번째는 인간이 이익을 위해 서로를 공격하게 만들고, 두 번째는 안전을 위해 서로를 공격하게 만들고, 세 번째는 가령 말 한마디, 미소, 견해 차이를 비롯하여, 본인이 겪는 것이든 혈연, 친구, 국가, 직업, 이름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겪는 것이든 자신을 무시하는 갖가지 사소한 이유들 때문에 서로를 공격하게 만든다. 홉스, "인간의 삶"

 

 

합리성의 개방적 측면에 대한 강조는, 마음이 조합적, 회귀적 체계라는 인지과학의 발견과 일맥 상통한다. 우리는 생각을 할 뿐 아니라, 생각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에 대한 생각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가 이 장에서 살펴보았던 갈등 해결의 진보적 방법들 - 법치에 복종하는 것, 양편이 체면을 잃지 않고 양보하는 방법을 찾는 것, 자기 기만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 자신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을 평등한 눈으로 보는 것-은 조합적, 회귀적 사고 능력에 달려 있다. 많은 지식인들이 폭력의 진화론적 논리를 외면한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그것을 수용하거나 승인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고상한 야만인이 던져 주는 안락한 망상을 추구하면서, 폭력이 학습의 임의적 산물이거나 외부에서 침투한 병원균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폭력의 논리를 거부하면 폭력이 얼마나 쉽게 고개를 드는지를 잊기 쉽고, 폭력에 불을 붙이는 마음의 기능들을 무시하면 그 불을 끌 수 있는 마음의 기능들을 간과하기 쉽다. 우리의 많은 관심사들처럼 폭력의 경우에도 문제는 인간 본성에 있고, 해결책도 인간 본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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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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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만한 시간을 사는 인간의 눈과 상상력으로 태초의 역사 가운데 생명체의 발생과 변화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눈에 보이는 변화, 빠른 변화에 익숙한 인간에게 '우연을 길들이는 진화 -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일을 그보다는 가능성이 덜 희박한 작은 구성 요소로 잘게 나누어 잘 배열하는 것', 긴 시간의 호흡으로 느린 변화는 믿을 수 없을지도....

 

 

[본문발췌]

 

 

풀밭을 걸어가다가 '돌' 하나가 발에 채였다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그 돌이 어떻게 거기에 있게 되었는지 의문을 품었다고 가정해 보자.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그것은 항상 거기에 놓여 있었다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답의 어리석음을 입증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돌이 아니라 '시계'를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어떻게 그것이 그 장소에 있게 되었는지 답해야 한다면, 앞에서 했던 것 같은 대답, 즉 잘은 모르지만 그 시계는 항상 거기에 있었다는 대답은 거의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 시계는 제작자가 있어야 한다. 즉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선가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의 제작자들이 존재해야 한다. 그는 의도적으로 그것을 만들었다. 그는 시계의 제작법을 알고 있으며 그것의 용도에 맞게 설계했다. .... 시계 속에 존재하는 설계의 증거, 그것이 설계되었다는 모든 증거는 자연의 작품에도 존재한다. 그런데 차이점은 자연의 작품 쪽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또는 그 이상으로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이다. - 윌리엄 페일리, <자연 신학>. 

 

 

자연 선택은 마음도, 마음의 눈도 갖고 있지 않으며 미래를 내다보며 계획하지 않는다. 전망을 갖고 있지 않으며 통찰력도 없고 전혀 앞을 보지 못한다. 만약 자연선택이 자연의 시계공 노릇을 한다면, 그것은 '눈먼' 시계공이다.

 

 

복잡한 물건은 사전에 규정된 어떤 성질, 즉 단순한 우연만으로는 매우 얻기 힘든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생물의 경우 사전에 규정된 그 성질이란 일종의 '능숙함'이다. 그것은 항공 기술자가 가진 감탄할 만한 비행 기술과 같은 고도의 능력뿐 아니라, 더 일반적인 능력, 즉 죽음을 모면하는 능력이나 생식을 통해 유전자를 보전하는 능력 따위를 말하는 것이다.

 

 

자연선택은 눈먼 시계공이다. 눈이 멀었다고 말하는 것은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절차를 계획하지 않고 목적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선택의 결과인 생물은 마치 숙련된 시계공이 있어서 그가 설계하고 고안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 살아 있는 생물이나 그것의 기관을 보면 마치 풍부한 지식과 지능을 갖춘 기술자가 어떤 뚜렷한 목적, 이를테면 날고, 수영하고, 보고, 먹고, 번식하는 것, 더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면 유전자의 보존과 증식을 위해 정교하게 설계해 놓은 것 같다.

 

 

페일리의 가설은 살아 있는 시계들은 글자 그대로 숙련된 시계 제작자가 설계하고 만들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채택한 가설은 그 작업은 자연선택을 통해 점진적인 진화 단계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다윈이 극도의 완벽함과 복잡성을 갖춘 기관이라고 부른 것들을 우리 모두가 불신하는 밑바탕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자리 잡고 있다. 첫 번째는 우리는 진화가 일어날 수 있는 거대한 시간을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 눈은 화석으로 남지 않는다. 그래서 무에서 시작하여 지금과 같은 복잡성과 완벽함을 갖춘 눈으로 진화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알아낼 방도가 없다. ... 우리가 눈이나 박쥐의 귀 같은 매우 복잡한 기관의 진화에 대해 쉽게 의심하는 두 번째 이유는 확률 이론을 직관적으로 적용하는 데 있다. ... '개개의 과정이 전체의 성공에 필수적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은 그 자체만으로 쓸모가 없다. '완벽한 작품'은 전체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무작위적인 조합에 따라 그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동시 발생할 경우의 수는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 천문학적이다.' - 레이븐, 이런 식의 주장은 원칙적으로 단순한 불신에 기초한 주장보다는 존중해 줄 만하다. 어떠한 주장이 들어맞을 통계적인 확률을 계산하는 것은 그 주장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기 위해 취해야 할 정당한 방법이다. ... 문제는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다! 레이븐의 주장에는 두 가지 잘못이 있다. 첫째, 그 주장에는 나를 다소 짜증나게 하는 자연선택과 무작위성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돌연변이는 무작위적이다. 그러나 자연선택은 무작위성의 정반대편에 있다. 둘째, '각 부분은 그것만으로는 쓸모가 없다.'라는 말도 '진실'이 아니다. 전체로서의 완벽함이 동시에 달성되어야 한다는 말은 거짓이다. 모든 부분이 전체의 성공에 필수적이라는 말도 사실이 아니다. 단순하고 덜 발달되었으며 반만 완성된 눈이나 귀, 음향 탐지 체계, 뻐꾸기의 기생 생활 방식 등은 전혀 없는 것보다는 낫다. 눈이 없다면 전혀 볼 수 없다. 눈이 절반만이라도 있으면 비록 초점이 맞는 정확한 영상을 얻지는 못하더라도 천적이 움직이는 대강의 방향이나마 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삶과 죽음의 차이를 만들어 낼 것이다.

 

 

이렇듯 (비록 작기는 하지만 매번의 개선이 미래를 건설하는 기초가 되는) 누적적인 선택과 (매번 전혀 새로운 시도를 하는) 1단계 선택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만약 1단계 선택에 의존해야 했다면 진화는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의 눈먼 힘이 누적적인 선택의 필요조건을 충족시켜 주었다면 진화 과정은 실현 가능한 것이다. 그것이 실제로 바로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우리 자신은 그러한 과정이 가장 최근에 낳은 가장 기이하고 놀라운 결과물이다.

 

 

진화에는 장기적인 목표 따위는 없다. 먼 미래의 목표, 선택의 기준이 될 궁극적인 완벽함 따위는 없다. 진화의 궁극적인 목표가 우리 인간이라는 믿음은 터무니없는 인간 허영심의 산물에 불과하다. 실제 상황에서 선택의 기준은 항상 단기적인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개체의 생존이거나 아니면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성공적인 번식이다. 수백만 년이 흐른 뒤에 뒤돌아보았을 때 그 과정이 어떤 머나먼 목표를 향해 조금씩 앞으로 나간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은 언제나 단기간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여러 세대에 걸친 우연적인 결과이다. '시계공', 즉 누적적인 자연선택은 미래를 알지 못하며 장기적인 목표 따위는 갖고 있지 않다.

 

진화는 기본적으로 번식의 끝없는 반복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세대에서 번식은 앞 세대로부터 유전자들을 받아 무작위적이며 조그만 실수인 돌연변이와 함께 다음 세대로 물려준다. 돌연변이는 무작위적으로 선택된 하나의 유전자가 원래 가지고 있던 값에 단순히 +1 또는 -1을 더하는 것이다. 이 말은 세대가 거듭됨에 따라 한 번에 하나씩 작은 변화들이 쌓이게 되고 결국 유전적 변이의 총량이 원래 조상과 비교하여 엄청나게 커질 수 있다는 말이다. 비록 돌연변이가 무작위적이기는 하지만, 세대가 거듭됨에 따라 축적되는 변화는 무작위적이지 않다. 한 세대의 자손은 무작위적인 방향으로 부모와 달라진다. 그러나 그 자손들 중 어느 것이 선택되어 다음 세대로 이어질 것인지는 무작위적이지 않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는 9개의 유전자를 가진 바이오모프가 아닌, 각각 수만 개의 유전자를 가진 세포 수십억 개로 이루어진,  살과 피를 가진 동물들로 가득 찬 수학적인 공간이 있다. 이것은 바이오모프의 공간이 아니라 실제의 유전자 공간이다. 지구에서 과거에 살았거나 현재 살고 있는 동물들은 이론적으로 존재가 가능한 수많은 동물들 중 작은 소집단에 불과하다. 이 실제 동물들은 유전자 공간을 통과하는 아주 적은 수의 진화 경로에서 비롯된 산물이다. ... 이 거대한 수학적인 공간의 어느 곳에 인간과 하이에나, 아메바와 개미핥기, 편형동물과 오징어, 도도새와 공룡이 자리 잡고 있다. 만약 유전공학이 고도로 발달하여 우리가 생물의 유전자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면, 이론적으로는 동물 공간의 한 점에서 다른 어떤 점으로든 자유롭게 옮겨 갈 수 있다. 시작하는 점이 어디든 우리는 미로를 찾아 헤매어 도도새, 티라노사우루스, 삼엽충 등을 다시 만들 수 있다. 단지 어떤 유전자를 수선해야 하는지, 그리고 염색체의 어떤 부분을 복제하고 뒤집고 삭제해야 하는지 알기만 한다면 말이다. 인류가 그 정도로 충분히 유전공학에 능통하게 될지는 의심스럽다. 그러나 이 친애하는 멸종된 동물들은 그 거대한 유전자 초공간 속에 있는 그들만의 고유한 장소에 언제까지나 잠복해 있으면서 (우리가 미로 속에 있는 정확한 경로를 찾아 항해할 수 있는 지식을 갖게 되었을 때)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조그만 변화가 여러 번에 걸쳐 단계적으로 축적된다는 개념은 강력한 힘을 가진 생각이다. 그것은 다른 방법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큰 규모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다. 

 

 

작은 개조가 수없이 거듭되는 것으로도 결코 만들어질 수 없는 어떤 복잡한 기관이 있다는 것이 증명이 된다면 나의 이론은 붕괴될 것이다. - 다윈, <종의 기원> 

 

 

유전자에서 일어난 어떤 변화가 그 자신의 복제 가능성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자연선택의 게임에서 공정한 규칙이다. 그것은 매우 단순하고 자동적이며 미리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거의 불가피한, 누적적인 자연선택에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복제, 실수 그리고 위력)가 태초에 저절로 생겨나게 되었다.

 

 

유전자가 선택되는 것은 유전자의 내적 성질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의 상호 작용에 따른 것이다. 어느 유전자의 환경으로 특히 중요한 구성 요소는 다른 유전자이다. 다른 유전자가 그토록 중요한 구성 요소를 이루는 일반적인 이유는 다른 유전자 또한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진화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두 가지 귀결이 이루어진다. 하나는 어느 유전자가 유리해지면 그것은 그 유전자가 협동을 선호하는 상황하에서 만날 가능성이 높은 다른 유전자와 '협동'하는 성질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특히, 전적인 것은 아니지만, 동종 내의 유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그 이유는 동일한 종 내의 유전자는 세포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것은 협동 관계에 있는 많은 수의 유전자 집단의 진화를 일으키고 나아가서는 협동 사업의 산물로서 몸 자체의 진화로 이어지게 된다. 개체의 몸은 유전자들의 협동조합이 구축한, 각 조합원의 복제를 보존하기 위한 거대한 탈것, 혹은 '생존 기계'인 셈이다. 유전자들이 협동하는 이유는 모든 유전자가 같은 결과, 즉 함께 공유하고 있는 몸의 생존과 번식을 통해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또한 그 유전자들이 서로에 대해 자연선택이 작용하는 환경의 중요한 일부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항상 협동이 선호되는 것은 아니다. 지질학적 규모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 대립을 선호하는 상황에서 유전자들이 조우할 때도 있다. 이것은 특히, 물론 거기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다른 종 사이의 유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다른 종의 개체들 사이에서는 교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종과는 유전자가 섞일 수 없다는 것이 요점이다. 어느 종 내에서 선택되어 남은 유전자가 다른 종의 유전자가 선택되는 환경을 제공할 때, 흔히 그 결과는 진화적 군비 확장 경쟁이 된다. 군비 확장 경쟁의 한쪽, 예를 들면 포식자에서 선택된 결과 발생한 하나하나의 새로운 유전적 개선은 군비 확장 경쟁의 다른 한쪽, 즉 먹이가 되는 생물의 유전자가 선택되는 환경을 변화시킨다. 진화에서 나타나는 명확한 '진보적인 성질', 예를 들면 달리기 속도, 비행술, 예리한 시각, 발달된 청각 등의 정교한 개선을 낳을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그러한 군비 확장 경쟁이다. 이 군비 확장 경쟁은 영구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며, 가령 그 이상 개선된다면 해당 동물 개체에 있어서 경제적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질 경우에 안정화된다.

 

 

느리고 점진적인 '누적적인 자연선택'이야말로 생명이 가지는 복잡한 설계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으며, 더욱이 지금까지 제안된 이론들 중에서 유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설명이다. 

 

 

우연을 '길들인다'는 말은 바꾸어 말하자면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일을 그보다는 가능성이 덜 희박한 작은 구성 요소로 잘게 나누어 잘 배열하는 것을 뜻한다. 가령 X가 단 하나의 단계를 거쳐 Y에서 발생하기는 불가능하더라도 둘 사이를 무한소로 분할할 수 있는 연속된 중간물을 통해 X와 Y를 연결하는 것은 언제나 가능하다. 대규모적인 변화는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작은 변화는 그것보다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충분히 세분된 연속적인 중간형으로 이루어진 충분히 큰 계열을 전제한다면 천문학적인 불가능성을 피해 어떤 것에서 다른 무엇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중간형을 끼워 넣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만 있다면, 우리는 분명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특정한 방향에 따라 매 단계를 인도하는 메커니즘이 있는 경우에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그렇지 않으면 각 단계의 계열은 폭주를 시작하고 끝없는 무작위적인 방황을 계속할 것이다. 

 

 

자연선택은 돌연변이로 만들어진 변이에만 작용할 수 있다. 돌연변이는 '무작위적'인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 말은 단지 돌연변이가 진보를 향해 체계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변이들 가운데 고도로 작위적인 것의 부분 집합이다. 돌연변이는 기존의 배 발생 과정을 변화시킴으로써 영향력을 발휘한다. 따라서 문어의 배 발생 과정에 돌연변이가 일어난다고 해도 코끼리가 만들어질 수는 없다. 이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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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 올 미래를 준비하는 것, 살아 있는 존재가 현재를 살아가는 이유다.

 

 

[본문발췌]

 

 

내가 오래전부터 주목한 바로는 성취하는 사람들은 물러앉아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기만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들은 밖으로 나가 일을 일으켰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

 

 

우리는 지극히 과거 지향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 저마다 개인적으로 과거를 경험했다는 점에서 만나면 주로 과거 이야기를 하게 된다. 또 그간 겪어왔던 경험들이 주로 회자된다는 점에서도 우리는 지극히 과거 지향적인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과거의 증거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과거가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사실이지만, 냉정하고 엄밀한 시각에서 우리가 남은 생을 보내야 하는 시간은 '미래'에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토대로 현재의 결정을 내린다. 즉 미래가 현재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러니 미래에 대한 사람들의 비전을 바꾼다면 그들의 결정 방식도 달라질 것이다.

 

 

나는 아이디어의 위력을 묘사할 때 "모든 눈사태는 눈발 하나의 움직임에서 시작한다"는 문구를 자주 이용한다. 아이디어가 창조되어 깊이와 현실 감각이 더해지면 다른 사람들이 비전을 인식하고 더욱 발전시키면서 아이디어가 '끌개Attractor', 즉 '저절로 지속되는 비전'으로 변한다. 

 

 

끌개의 8가지 종류.... 발명, 치료, 발견, 시초, 도전, 시스템, 해결책, 기준. 이것들은 우리가 성취해야 하는 최종 목표이며, 우리가 지향하는 좌표가 된다. 끌개는 미래로 이어지는 길이다. 

 

 

인터넷이 우리의 정신을 해방시켰듯이 항공 자동차가 우리의 몸을 해방시킬 것이다.

 

 

영향력은 권력이다. ... Super Influencers, ... 우리는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와 사람들 토대로 자신의 생활방식과 소비 습관, 신념을 형성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뉴머라티Numerati, 숫자를 뜻하는 number와 지식 계급을 뜻하는 literati가 협쳐진 신조어로,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는 사람'을 지칭....

 

 

시간 압축을 이해하는 것이 미래의 소비자 행동을 파악하는 주요한 한 가지 열쇠가 되었다. 

 

 

기업과 사회 구조는 언덕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가장 저항이 적은 길을 이용해 덜 매력적인 분야에서 더 매력적인 분야로 움직이는 일련의 유동적인 결정 지점을 창조했다. 미래는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충족시키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다. 한 가지 희소식은 우리가 지금 과거 어느 때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아이디어들을 결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와 나쁜 아이디어를 구분하기가 녹록하지만은 않다.

 

 

종말을 알리는 이정표가 빠른 속도로 우리를 향해 돌진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시간의 존재를 실감한다.

 

 

미래를 향한 비전이 완전히 실현되려면 집단의 노력이 필요하다. 고상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개개인이 협력할 때 더 좋은 결과를 얻는다. 따라서 이런 목적을 보장할 수 없다면 적어도 중요성을 약속하라.

 

 

사람들은 도전을 받을 때 최고의 모습을 발휘한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도전하지 않으면 자연이 어떻게든 우리에게 도전을 해올 것이다. 우리의 노력은 대단히 가치가 있으며, 자신이 노력해서 얻어야만 소중히 여기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미래에 대한 우리의 비전은 오늘 우리의 행동을 결정한다. 

 

 

결국 모든 미래주의 이론의 가장 효과적인 테스트는 이론의 실행 가능성에 있다. 시간이 흐르고 트렌드가 지나간 후에 이것들은 과연 얼마나 잘 견뎌낼 것인가? 미래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주변의 영향에 대단히 민감하므로 도전할 가치가 있는 모든 비전은 고속도로 진입로로 들어서는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속도를 높일 능력을 내포하고 있다. 비전의 속도를 높여 아이디어와 트렌드의 흐름을 창조할 능력은 비전의 성공 여부와 정비례한다. 쉬지 않고 진화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위해 열린 창문은 지극히 작다.

 

 

앞으로 일어날 업무 혁명의 핵심은 업무 프로젝트와 조직이 그 업무를 완수하기 위해 필요한 자유 계약 인재들을 끌어당기는 새로운 종류의 사업 구조일 것이다. 나는 이 새로운 구조를 '비즈니스 콜로니Business Colony'라고 개념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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