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 비움, 만족, 작고 적고 단순한 조화와 균형 잡힌 삶. 오십에 다시 마음을 다잡아본다.


[본문발췌]


<도덕경>에서 가장 먼저 발견한 삶의 지혜는 '멈춤'이다. 걸음을 멈출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바삐 걸을 때는 길가에 핀 민들레와 제비꽃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다. 너무 작아서 걸음을 멈추지 않고선 결코 볼 수 없다. "지지불태(知止不殆) 가이장구(可以長久), 멈출 줄 알아야 위태롭지 않고 오래 간다." 이 구절을 금언으로 삼아 인생 후반전을 느리게 천천히 살아가리라 마음먹고 있다.

일손을 놓고 잠시 쉬는 건 게으름이나 시간의 낭비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를 위해 꼭 필요한 멈춤이고 가장 우아하게 시간을 버리는 것이다.


<도덕경>에서 배운 또 다른 삶의 지혜는 '용서'할 줄 아는 용기다. 인생의 반환점을 돌 무렵의 나는 "그때 내가 왜 그랬지" "그랬어야 했는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심할 경우 머리를 쥐어 뜯어가며 자책했다. 인생 전반전의 내 삶에 후한 점수를 주지 못한 건 결국 '욕심' 때문이다. '나 정도면 그보다 훨씬 더 잘 할 수 있었는데."라는 나에 대한 과신, 오만한 마음이 나를 힘들게 하는 주된 요인이었다. 과한 욕심이 집착을 낳았고 집착은 괴로움이 되었다. 노자를 만난 후 나는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대신 "그만하면 충분해."라는 말로 나를 격려하고 응원한다. 낙오자라는 열등감과 패배감을 갖고 살았는데 이제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담담하게 인생 후반전을 살아가고 있다.


인생 전반기 내 삶은 '채움'을 지향했다. 실적, 성과, 재물, 명예를 채우려고 아등바등 살았다. 그러나 채우려 할수록 영혼은 더 큰 허기를 느꼈다. 빼곡하게 채운다고 채웠는데 '공허'에 시달렸다. 그러면 더 많은 걸 채우고자 나를 몰아세웠고 나는 더 힘들어졌다. 그러다 노자를 만난 후 존재의 본질은 채움이 아니라 '비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유와 욕망, 생각을 비우면 비울수록 삶이 더 충만해진다는 역설을 노자에게서 배웠다 


공자는 <논어>에서 오십을 '지천명(知天命)'이라 하고 육십을 '이순(耳順)'이라 했다. 나이 오십에는 천명을 깨닫고, 육십에는 자연의 섭리에 맞게 살아간다는 의미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천명과 섭리의 현실적 규범으로서 '지지(知止)'와 '신퇴(身退)'를 제시했다. 나이가 들수록 욕심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몸을 뒤로 물리는 게 지혜로운 처신이라는 가르침이다. 천명과 자연의 섭리에 맞게 사는 삶의 모습이다.


'한 걸음만 더'하는 순간 멈추는 지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치욕을 당하지 않고 적당할 때 그칠 줄 아는 사람은 위태로움을 당하지 않는다. '知足不辱(지족불욕) 知止不殆(지지불태)' - 도덕경 44장 중


바람 부는 대로 물 흐르는 대로 사는 삶. 하늘은 도를 법으로 삼고 도는 자연을 법으로 삼는다. '天法道(천법도) 道法自然(도법자연)' - 도덕경 25장 중.  

순리대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자연을 통해 깨닫는다. 욕심을 내려놓고, 서두르지 않고, 분수와 자리에 맞게 하루하루를 여유롭고 너그럽게 살아가는 게 자연을 닮은 삶이다.


사람은 대체로 나이가 들면 부드러워진다. 세월이 그렇게 만든다. 바닷가 조약돌을 부드럽게 만드는 건 영겁의 세월 동안 밀려왔다 빠져나가는 파도다. 파도에 실려 오는 세월의 힘이 조약돌을 부드럽게 만들 듯 사람도 세월의 힘으로 유연해진다. 인생은 억지로 붙잡으려 한다고 붙잡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순리에 맡기는 게 가장 좋다.


누가 능히 탁한 걸 고요하게 해 서서히 맑아지게 하고 누가 능히 가만히 있던 걸 움직여 서서히 생동하게 할 수 있을까. 도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채우려 하지 않는다. "孰能濁以靜之徐淸(숙능탁이정지서청) 孰能安以久動之徐生(숙능안이구동지서생) 保此道者(보차도자) 不欲盈(불욕영)" - 도덕경 15장 중. 
let it be. 무위와 서청의 지혜, 삶의 물이 탁한 순간도 있겠지만 그런 순간에도 조급한 마음에 휘젓지 않고 서서히 맑아지길 기다리는 지혜.


나는 예수의 산상수훈 중 '마음이 가난한 자가 천국에 간다.'라는 말씀을 특히 좋아한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말하는 '비움'의 가르침과 의미가 같기도 하거니와, 인생을 살 만큼 살아 보니 마음속에서 타욕을 비우는 일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사실을 절절히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곧은 길을 걸어야 한다. 그 길이 걷기도 편하고 탈도 없다. 샛길을 탐하다가 인생 후반기를 부끄럽게 만드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다. 전설적인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른 <마이 웨이>의 노랫말처럼 각자가 자신의 방식대로 원칙대로 정도를 지키면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 
"이제 마지막 순간이 다가와 인생의 마지막 장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내 삶을 내 방식대로 살아왔습니다. 내가 해온 그 모든 일을 생각해보면 부끄럽지 않은 인생이었다고 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요. 난 부끄럽게 살지 않았어요."


시간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크로노스이고 또 하나는 카이로스다. 크로노스는 해와 달이 뜨고 지면서 생기는 물리적 시간을 뜻하고 카이로스는 내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시간, 즉 내 마음속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을 뜻한다. 크로노스는 달력에 기록된 날짜처럼 고정된 것이라 사람이 통제하거나 관리할 수 없다. 하지만 카이로스는 내가 느끼는 마음의 시간이므로 사람이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마음이 초조하면 짧은 시간도 길게 느껴지고, 마음이 즐거우면 긴 시간도 짧게 느껴진다.


"아름드리나무도 털끝 같은 작은 싹에서 나오고 구층 누대도 한 줌 흙이 쌓여 올라가고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 억지로 하면 실패하고 집착하면 잃는다." - 도덕경 64장


도리스 컨스 굿윈이 쓴 링컨 전기 <권력의 조건>을 읽으며 삶의 토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링컨은 절친 죠슈아 스퍼드에게 자신이 가장 큰 장점이 단단함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정신이 단단한 강철과도 같아 그 위에 뭔가를 새겨 넣기도 힘들지만 일단 새긴 다음에는 문질러 지워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당나라 시절 처세의 달인이라 불리던 풍도는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고, 혀는 몸을 베는 칼'이라고 했다.


세상 지식이라는 건 결국 내가 아니라 남을 알기 위한 수단이었다. 나를 제대로 알기 위해선 '마음의 눈[心眼]'을 갖고 있어야 했는데 내겐 그런 눈이 없었다. 그랬기에 나는 밝지 못했고 강하지도 못했다. 내가 정한 삶의 좌표라는 건 남들이 설정해놓은 기준을 모방하고 쫓아가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결핍은 정신의 덫이다. 물질보다 정신이 사람을 결핍된 존재로 만든다. 결핍에서 벗어나기 위한 테라피는 간단하다. 이걸로 충분하다는 말 한마디면 된다. 간단하지만 힘은 무척 세다.


“성인은 쌓아 놓지 않고 사람들을 위해 베풀지만 더욱더 많이 가지게 되고 사람들과 더불어 쓰지만 더욱더 많아진다. 하늘의 도는 이롭게 할 뿐 해롭게 하지 않는다. 성인의 도는 일을 도모하지만 다투지 않는다.” – 도덕경 81장


사람도 자연처럼 무위한 채로 살아가면 세상은 저절로 평화로워질 것이다. 무위하다는 건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다. 욕심을 비우면 남의 것을 탐하지 않게 되고 다툴 일이 없어진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각자의 형편과 처지에 따라 안분지족한 삶을 살면 분쟁이 사라지고 싸울 일이 없어진다. 개인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국가 간의 관계도 그렇다.


"훌륭한 무사는 무용을 드러내지 않고 잘 싸우는 사람은 성내지 않는다. 훌륭한 승자는 맞서지 않는다. 훌륭한 고용인은 스스로를 낮춘다. 이를 일러 다투지 않는 덕이라고 하고 용인의 힘이라고 하고 하늘을 짝으로 삼는 지극한 일이라고 한다." - 도덕경 68장


"가지 굵은 나무 같아라. 의연한 산 같아라. 또 고독한 야수 같아라. 가끔은 높은 곳에서 반짝이는 별 같아라.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항상 나 자신으로 있으라." - 헤르만 헤세, <청춘은 아름다원> 중 '클라인과 바그너'


爲者敗之(위자패지) 執者失之(집자실지), 하고자 하면 실패하고 잡고자 하면 잃는다. - 도덕경 29장 중


"산책은 나에게 무조건 필요한 것이다. 특별한 목적지 없이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는 산책을 하다 보면 산책자의 온몸에서는 눈부신 감각이 열리며 찬란하고 고귀한 생각이 떠오른다. 산책을 통한 자연의 명상이 없다면 나긋하면서도 엄중하게 경고하는 자연의 탐구가 없다면 나는 삶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느낄 것이고 또 실제로도 그럴 것이다. 산책자는 오직 바라보고 응시하는 행위 속에서 자신을 잊을 줄 알아야 한다." - 로베르트 발저, <산책>


"만물을 만들고도 공치사하지 않으며 모든 걸 낳고도 소유하지 않는다(生而不有 爲而不恃). 일을 하고 자랑하지 않으며 공을 이룬 후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머물지 않기에 자리를 잃는 일도 없다." - 도덕경, 2장


남은 인생을 마음 편히 자유롭게 살기 위해선 소유에의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고 무위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소유를 줄이고, 일을 줄이고, 생각을 줄이고, 그로써 번뇌를 줄여 간소하게 사는 게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역설한다.


"적으면 얻게 되고 많으면 미혹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인은 하나를 품어 천하의 표준으로 삼는다." - 도덕경 22장


일상을 소박하고 간소하게 만든 후 꾸준하게 실천하는 게 삶의 도를 실천하는 지름길이다. 만물의 시작은 하나다. 이 간단한 원칙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의상대사는 <법성계>에서 말한다. "하나 속에 모든 게 있고 많은 것 속에 하나가 있으니 하나가 곧 모든 것이고 많은 그것이 곧 하나를 이룬다."


행복의 비결은 단순하다. 복잡하게 생각하면 한없이 복잡해진다.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면 고민도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하면 세상은 한없이 단순해지고 고민거리도 줄어든다. 무엇을 할까 결정하는 기술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까 결정하는 기술이 행복에 더 필요하다. 이것저것 많은 걸 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중요한 것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게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비결이다.


"현명해지는 기술은 무엇을 무시해도 되는지를 아는 기술이다." - 윌리엄 제임스


단순하게 사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집중에 있다. 먹을 것, 입을 것, 신을 것, 사는 곳을 최대한 단순하게 줄이면 진짜 좋아하는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다. 불필요한 것에 신경을 덜 쓰고 에너지를 덜 쓰면 중요한 일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과 여력이 그만큼 더 많아진다. 대다수의 사람은 세상이 너무 복잡하기에, 당연히 해결책도 복잡할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거라는 무력감에 빠지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의외로 단순하고 간단하다.


하나가 필요할 때 두를 가지려고 하지 마세요. 둘을 갖게 되면 그 하나마저 잃어버립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게 아닙니다.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만족할 줄 알면 비록 가진 것이 없더라도 부자나 다름없습니다. 행복의 척도는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아닙니다.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느냐에 달렸습니다.” – ‘맑고 향기롭게 운동본부’ 발족식에서 법정 스님


“나는 가난하지 않다. 단순하게 살 뿐이다. 사람이 사는 데는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 나에게 가난한 자란 너무 많은 것을 원하는 사람이다. 너무 많은 것을 원하는 사람은 도무지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많은 것을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노예처럼 일하지 않아도 되며, 따라서 당신 자신을 위한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다. 나는 뒤를 돌아보며 사는 데는 익숙하지 않다. 삶은 앞에 있는 그 무엇이다. 태양은 매일 새로 떠오르니까.” -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전 대통령


"족함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화는 없고 갖고자 하는 욕심보다 더 큰 허물이 없다. 그러므로 족함을 아는 것이 가장 큰 족함이다." - 도덕경 46장


"말이 많으면 처지가 궁색해진다. 마음속에 담고 있는 것만 못하다. 多言數窮(다언삭궁) 不如守中(불여수중)" - 도덕경 5장. 

말을 잘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을 아끼는 법, 침묵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 어떤 말을 어떻게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말을 참는 게 더 중요할 때도 있다. 말을 잘하려면 먼저 침묵하는 법부터 제대로 배워야 한다.


"비움이 지극하면 고요하고 돈독함을 지킬 수 있다. 영원한 걸 알면 너그러워지고 너그러워지면 공평해진다. 하늘은 곧 도가 되고 도는 영원하니 죽는 날까지 위태롭지 않게 된다." - 도덕경 16장


자신의 일을 타인에게 믿고 맡길 수 있다는 건 스스로 너그럽고 공평하다는 증거다. 마음의 품이 넓지 못하면 타인을 믿지 못하고, 일을 맡기지 못한다. '이 일은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다.'라는 생각은 오만함의 발로다. 타인을 나와 대등한 인격을 가진 성숙한 존재로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강과 바다가 골짜기의 왕이 될 수 있는 건 스스로를 잘 낮추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되는 것이다. 백성들 위에 있고자 하면 반드시 겸양함으로 스스로를 낮춰야 하고 백성들을 앞서고자 하면 반드시 몸을 그 뒤에 둬야 한다." - 도덕경 66장


우주는 조화와 균형이 기본이다. 극단은 예외이고 조화가 깨지면 스스로 알아서 균형점을 찾아간다.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세상의 균형이 무너졌지만 곧 다시 질서를 회복할 것이다. 평화로운 일상이 파괴되고 자유를 빼앗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원 상태로 돌아가는 것도 그런 조화와 균형의 원리가 있기 때문이다.


노년의 삶을 견디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비우는 것이다. 그래야 연꽃처럼 꺾이지 않는다. 하루에 하나씩 비우자는 비움의 결심이 없다면 노년은 외로워 죽고 고독해 죽는다. 넘치는 욕망을 비우지 못하면 절대 고독과 소외를 느끼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 된다.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으면 단단하고 강해진다. 풀과 나무는 살아 있으면 부드럽고 연하지만 죽으면 말라비틀어진다. 그러므로 단단하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무리다. 그래서 군대가 강하면 이기지 못하고 나무가 강하면 꺾이고 만다.” – 도덕경 76장


“산을 넘으면 또 산이요, 들을 지나면 또 들이요, 사막을 건너면 또 사막이다. 그것들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끝내 나의 둘시네아(세르바나테스의 <돈키호테>에 나오는 이상향)를 찾지 못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그 누군가 말했듯이 이 짤막한 공간 속에 긴 희망을 가두어 두자.” – 장 그르니에, <섬>


“절대적으로 올바른 건 없다. 올바름이 변해 그른 것이 되고 선한 것이 변해 요망한 것이 된다. 사람의 미혹됨이 참으로 오래되었다. 도를 깨우친 사람은 곧지만 방자하지 않고 빛나지만 눈부시게 하진 않는다.” – 도덕경 58장


"스스로를 드러내려는 사람은 밝지 않고 스스로를 내세우는 사람은 도드라지지 않는다.自見者不明(자견자불명) 自是者不彰(자시자불창)." - 도덕경 24장


만물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순환하기 때문에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온다. 겨울이 가면 또 다른 봄이 온다. 그렇다고 봄을 시작이라 말하고 겨울을 끝이라고 말할 순 없다. 순환 고리에서 보면 봄이 끝일 수도 있고 겨울이 시작일 수도 있다. 삶에서의 시작과 끝이라는 것도 그렇다. 우주 만물의 이치에 기대 생각해보면 반환점을 돈 지금의 내 인생은 새로운 시작이다.


"되돌아감이 도의 움직임이다. 약함이 도의 쓰임이다. 천하 만물은 유에서 생겨나고 유는 무에서 생겨난다." - 도덕경 40장


"50년을 살아보니 49년이 후회더라. 行年五十(행년오십) 而知四十九年非(이지사십구년비)" - 회남자


"내 나이 예순, 한 갑자를 다시 만난 시간을 견뎠다. 나의 삶은 모두 그르침에 대한 뉘우침으로 지낸 세월이었다. 이제 지난날을 거둬 정리하고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이제부터 빈틈없이 나를 닦고 실천하고 내 본분을 돌아보며 내게 주어진 삶을 다시 나아가고자 한다." - 정약용, <자찬묘지명>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 소유에 집착하지 마라. 생이불유(生而不有) 위이불시(爲而不恃)

너무 꽉 채우려 하지 마라. 조금은 빈틈이 있어야 아름답다. 허이불굴(虛而不屈) 동이유출(動而愈出) 

가졌으면 더 채우려 하지 마라. 필요한 것은 하나로도 족하다. 지이영지(持而盈之) 불여기이(不如其已)

흘러간 시간에 집착하지 마라. 오늘이 최고의 선물이다. 집고지도(執古之道) 이어금지유(以御今之有)

흙탕물 휘젓지 마라. 가만두면 절로 맑아진다. 숙능탁이(孰能濁以) 정지서청(靜之徐淸)

만족할 줄 알아야 욕을 당하지 아니하고 오래간다. 지족불욕(知足不辱) 가이장구(可以長久)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지자불언(知者不言) 언자부지(言者不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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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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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높은 벽에 둘러 그림자 없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 영화 <매트릭스>와 소설 <페스트>를 떠오르게 하는 구조와 스토리.
 
 
[본문발췌]

"이렇게 기다리는 동안은 이제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무슨 일을 할지, 가능성이 무한히 열려 있잖아."
 
 
"우리는 태반이 눈을 감은 채로 인생을 보내는 셈이고."
 
 
"가끔 내가 무언가의, 누군가의 그림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여기 있는 나한테는 실체 같은 게 없고, 내 실체는 다른 어딘가에 있어. 지금 여기 있는 나는 언뜻 나처럼 보여도 실은 바닥이나 벽에 비친 그림자일 뿐....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어."
 
 
"'사람은 한낱 숨결에 지나지 않는 것, 한평생이래야 지나가는 그림자입니다.' 네, 이해하시겠습니까? 인간이란 숨결처럼 덧없는 존재고, 살면서 영위하는 나날도 지나가는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티없이 순수한 사랑을 한번 맛본 사람은, 말하자면 마음의 일부가 뜨거운 빛에 노출된 셈입니다. 타버렸다고 봐도 되겠지요. 더욱이 그 사랑이 어떤 이유로 도중에 뚝 끊겨버린 경우라면요. 그런 사랑은 본인에게 둘도 없는 행복인 동시에, 어찌 보면 성가신 저주이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나이 차이도, 시간의 시련도, 성적 경험의 유무도 대단한 요건이 되지 않습니다. 나 자신에게 백 퍼센트인가 아닌가, 중요한 건 그뿐입니다."
 
 
"가끔 저 자신을 알 수 없어집니다. 혹은 잃는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이 인생을 저 자신으로, 저의 본체로 살고 있다는 실감이 들지 않습니다. 나 자신이 그저 그림자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그런 때면 제가 그저 나 자신의 겉모습만 흉내내서, 교묘하게 나인 척하며 살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해집니다." 
 
 
"본체와 그림자란 원래 표리일체입니다." 고야스 씨가 나지막히 말했다. "본체와 그림자는 상황에 따라 역할을 바꾸기도 합니다. 그럼으로써 사람은 역경을 뛰어넘어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랍니다. 무언가를 흉내내는 일도, 무언가인 척하는 일도 때로는 중요할지 모릅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누가 뭐래도 지금 이곳에 있는 당신이, 당신 자신이니까요."
 
 
"지금 여기서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 믿는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강하고 깊게 믿을 수 있으면 나아갈 길은 절로 뚜렷해집니다. 그럼으로써 이 다음에 올 격렬한 낙하를 막을 수 있을 겁니다. 혹은 그 충격을 크게 누그러뜨리거나요."
 
 
소년은 이 현실세계와 마음이 이어져 있지 않다. 이 세계에 진정한 의미로는 뿌리내리지 않은 것이다. 임시로 매어둔 기구氣球 같은 존재. 지상에서 살짝 떠오른 상태로 살고 있다. 그러니 매어둔 고리를 풀고 이 세계를 영원히 떠나버리는 일에 고통도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다.
 
 
"제가 생각하기에 도시를 둘러싼 벽이란 아마 선생님이라는 한 인간을 이루고 있는 의식일 겁니다. 그렇기에 선생님의 의지와 관계없이 자유롭게 모습을 바꿀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의식은 빙산과 같아, 수면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건 극히 일부입니다. 대부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곳에 가라앉아 감춰져 있습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말한 것처럼 한 작가가 일생 동안 진지하게 쓸 수 있는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그 수가 제한되어 있다. 우리는 그 제한된 수의 모티프를 갖은 수단을 사용해 여러 가지 형태로 바꿔나갈 뿐이다 - 라고 단언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요컨대 진실이란 것은 일정한 어떤 정지 속이 아니라, 부단히 이행=이동하는 형체 안에 있다. 그게 이야기라는 것의 진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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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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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하는 어떤 행동도 잘못되거나 의심스럽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나와 내가 속한 특정 집단은 완전하다는 사람들,
나를 다 안다는 착각에 빠진 사람들,
사회를 병들고 망가뜨리는 毒이다.
 

[본문발췌]

우리의 목표는 사람을 내면적 구속에서 벗어나게 하여 자유로운 상태에서 잠재력을 최고로 개발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억제는 감정과 생각과 행동의 자발성을 저지한다. 곡예사가 줄에서 춤을 추고자 한다면 계획적인 자발성만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신경증적 경향이 있는 사람이 정해진 경계를 침범당하면, 줄타기 곡예사가 발을 잘못 디딘 경험 만큼이나 극심한 공황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러므로 각 신경증적 경향은 특정한 불안을 낳을 뿐만 아니라 특정한 유형의 행동, 자기와 타인에 대한 특정한 이미지, 특정한 자부심, 특정한 종류의 취약성과 특정한 억제까지 발생시킨다.


지금까지 우리는 한 사람이 단 한 가지 신경증적 경향이나 종류가 비슷한 경향들의 조합만을 가진다고 가정하면서 문제를 단순화했다.
자기 삶을 동반자에게 위탁하려는 경향에는 애정에 대한 전반적인 욕구와 삶을 좁은 영역으로 국한하려는 경향이 결합하는 경우가 많다. 권력을 갈망할 때는 명성을 갈망하는 욕구가 빈번하게 동반되어 각각의 경향이 같은 경향의 두 가지 측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완전한 독립과 자족을 고집하는 경향은 이성과 선견지명을 통해 삶을 제어할 수 있다는 믿음과 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 예시에서처럼 다양한 경향이 공존한다고 해서 그림이 복잡해지는 것은 아니다. 존경 받고자 하는 욕망이 지배하려는 욕망과 충돌하듯이 서로 다른 경향이 때로는 상충하기도 하지만 두 경향의 목적이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갈등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신경증적 경향은 저마다 그 자체로 갈등의 싹을 품고 있다. 비슷한 종류의 경향들이라면 개인의 막대한 희생을 치러야 하지만 억압과 회피 같은 방식들로 갈등을 처리할 수 있다. 만약 한 사람에게 조화되지 않는 성격을 띠는 여러 가지 신경증적 경향들이 발달했다면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그 사람은 두 명의 주인을 섬기는 하인과 비슷한 입장이 된다. 두 주인은 모순되는 명령을 내리면서 둘 다 맹목적인 복종을 기대한다. 순응하려는 욕구가 완전한 독립의 욕구와 똑같이 강박적이라면 그는 어떤 제한이나 한계가 없는 해결책도 허용되지 않는 갈등에 갇힌 기분일 것이다. 그는 절충한 해결책을 모색하겠지만 충돌은 불가피하다.
한 가지 욕구는 대립하는 다른 욕구를 끊임없이 훼방하기 마련이다. 독재적인 방식으로 타인을 지배하려는 강박적 욕구가 타인에게 기대어 의존하려는 욕구와 만날 때도 똑같은 교착 상태가 발생한다. 또한 타인을 이용하려는 욕구는 그 사람의 생산성을 막고 해치는데, 이런 욕구가 우월하고 방어적인 천재성으로 찬양 받고자 하는 욕구와 같은 강도로 공존할 때도 같은 상황이 된다. 사실상 모순되는 경향들이 함께 존재하면 언제나 이런 일이 일어난다.


공포증과 우울증, 알코올중독과 같은 신경증적 '증상'은 궁극적으로 이러한 갈등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사실을 더 철저히 인식할수록 증상을 직접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를 덜 하게 될 것이다. 여러 경향이 갈등하면서 비롯된 결과가 증상이라면 먼저 근본적인 구조를 파악하지 않고 증상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쓸모없는 일이 된다.


신경증적 경향이 당사자에게 더 불가피하고, 실질적 가치가 더 의심스러워질수록 그는 더욱더 격렬하고 완고하게 경향들을 방어하고 정당화한다. 마치 정부가 자기 활동을 방어하고 정당화해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논란의 여지가 많은 정부일수록 비판을 견디기 어려워하고 자기 권리를 더 강하게 내세울 수밖에 없다. 나는 이런 자기 정당화를 '이차적 방어'라고 일컫는다. 자기 정당화의 목적은 이런저런 의심스러운 요인을 방어하는 것뿐만 아니라 신경증적 구조 전체가 유지되도록 보호하는 것이다. 마치 신경증을 보호하기 위해 주변에 지뢰를 설치한 것과 같다. 세부적으로는 다르게 보이지만 자기 정당화의 공통분모는 본질적으로 모든 것이 옳고, 선하고, 바꿀 수 없다는 신념이다.


독선의 갑옷으로 자신을 감싸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권력욕이 옳고 합리적이며 정당하다고 옹호할 뿐만 아니라 사소한 것이라도 자신이 하는 어떤 행동도 잘못되거나 의심스럽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이제 정신적 장애의 중심에는 신경증적 경향이 있다는 처음 주장으로 돌아가야겠다. 물론 이 진술은 개인이 가장 예민하게 느끼는 장애가 신경증적인 경향이라는 뜻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개는 신경증적 경향이 자기 삶에 원동력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다. 또 신경증적 경향이 모든 정신적 문제의 궁극적인 발원지라는 뜻도 아니다. 그 경향 자체는 이전에 발생한 장애, 즉 인간관계에서 일어난 갈등의 산물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경증적은 구조 전체의 초점이 내가 신경증적인 경향이라 칭한 것에 맞춰져 있다는 뜻이다. 신경증적 경향은 자신과 타인에 대한 관계에 장애가 있어도 삶을 감당할 수 있다고 약속하면서, 초기의 재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공한다. 하지만 세상과 자기에 대한 착각, 취약성, 억제, 갈등과 같은 다양한 종류의 장애를 새롭게 만들어 내기도 한다. 즉 신경증적 경향은 초기의 갈등을 해결할 방법인 동시에 이후의 방해를 만들어내는 원천이기도 하다.


정신분석적 이해의 단계:
1) 신경증적 경향을 인식하는 단계,
2) 어떻게 원인이 발현되고, 겨로가로 이어졌는지 발견하는 단계,
3) 다른 성격과의 상호 관계, 특히 다른 신경증적 경향과의 상호 관계를 발견하는 단계,
이렇게 세 단계가 각각의 신경증적 경향을 파악할 때 실행되어야 한다. 한 단계를 진행할 때마다 구조 일부가 분명해지다가 마침내 전체가 명백하게 드러난다. 항상 나열된 순서대로 단계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경향 자체가 제대로 인식되기 전부터 경향의 발현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환자가 직면한 과제는 크게 세 가지다. 당연하게도 첫 번째 과제는 가능한 한 전적으로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신의 무의식적인 힘과 그것이 삶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자신과의 관계, 주변 세계와의 관계를 방해하는 태도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다.

  • 첫 번째 과제인 완전한 자기표현은 자유로운 연상을 통해 이루어진다. 자유롭게 연상한다는 것은 환자가 거리낌 없이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을 의미한다. 사소하거나, 핵심에서 벗어나 있거나, 일관성이 없거나, 비이성적이거나, 무분별하거나, 서투르거나, 당황스럽거나, 굴욕적으로 보이더라도 마음속에 떠오르는 순서대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여기서 '모든 것'은 글자 그대로 전부를 의미한다는 점을 덧붙여야 겠다.
  • 두 번쩨 과제는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는 것이다. 즉 지금까지 무의식적이었던 요소들을 인식함으로써 문제에 대한 통찰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인식'이라는 단어가 시사하는 것처럼 단순한 지적 과정에 그치지 않는다. 인식은 지적인 경험인 동시에 감정적인 경험이다. 속된 표현을 쓰지만 인식은 '뼛속 깊이까지' 자신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다.
  • 세 번째 과제는 최상의 발달을 방해하는 내면의 요인들을 바꾸어 놓는 것이다. 이는 공연, 창의적 작업 협력, 성적 행위를 하는 능력을 얻거나 되찾는 것, 혹은 공포증이나 우울증 성향을 버리는 것처럼 행위나 행동의 큰 변화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분석에 성공하면 이러한 변화는 저절로 일어난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성격 변화에서 비롯되기에 주요한 변화로 취급되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를테면 자기 강화와 자기 비하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대신 자신에게 더 현실적인 태도를 갖는 것, 무기력과 두려움 대신 활동성과 주장과 용기를 얻는 것, 목적 없이 표류하는 대신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는 것, 과도한 기대와 과도한 비난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매달리는 대신 자신 안의 무게 중시을 찾는 것, 광범위하게 방어적으로 적대감을 품는 대신 사람들에 대한 폭넓은 친근감과 이해를 얻는 것 같은 변화들이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면 공공연한 활동이나 증상 같은 외부적 변화도 그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분석가의 일반적인 임무는 환자가 자기 자신을 인식하도록 돕고, 환자 자신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한에서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추구할 대 분석가가 하는 일에 대해 구체적인 인상을 전달하기 위해서, 분석가의 일은 대략 관찰, 이해, 해석, 저항에 대한 도움과 일반적인 인간적 도움 등 다섯 가지 주요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분석가는 성격의 전체 구조를 이해하고자 해야 하며, 부분들의 연관성과 그 정도를 바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요소에 주의를 기울이고 흡수해야 한다.


꿈은 감정이나 의견에 대한 사실적이고 정적인 그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주로 경향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꿈이 깨어 있을 때보다 더 분명하게 우리의 진실한 감정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른 부분에서 억압된 사랑, 증오, 의심 또는 슬픔을 꿈에서는 제약 없이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말했듯 꿈의 더 중요한 특징은 희망적인 사고에 의해 지배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꿈이 반드시 의식적인 소망을 나타내거나 우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상징한다는 뜻은 아니다.
'희망적 사고'는 명확한 내용을 제시하기보다 의도일 가능성이 크다. 즉 꿈은 우리의 노력과 욕구에 목소리를 내주고, 우리를 괴롭히는 그 순간의 갈등을 해결하려는 시도를 표현하곤 한다. 꿈은 사실의 진술이기보다는 감정적인 힘의 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모순되는 관계를 만드는 강력한 노력 두 가지가 충돌하면 '불안한 꿈'anxiety dream을 꿀 수도 있다. 의식적으로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사람이 꿈에서는 반항적이거나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나온다면, 꿈이 그 사람에 대한 우리의 숨겨진 의견을 드러낸다고 속단하기보다는 그 사람을 꺾으려는 우리의 욕구가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어떤 환자가 꿈에서 자신을 수리하지 못할 폐허가 된 집으로 나타낸다면 분명 절망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표현하여 그가 어떤 이익을 얻으려는지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


꿈은 그런 꿈을 꾸도록 만든 현실의 자극과 연결짓기 전까지는 이해되지 않는다. 가령 꿈에서 일반적인 경멸의 감정이나 보복하려는 충동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꿈은 자극에 대한 반응이므로 그 반응을 일으킨 자극에 대해서 항상 의문을 가져야 한다. 만약 이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에게 위협이나 모욕을 나타내는 경험의 정확한 유형과 그것이 불러오는 무의식적인 반응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연상을 글로 적는 데는 여지 없는 확실한 이점이 있다. 모든 연상을 짧은 쪽지나 중요 항목으로 적는다는 규칙을 세우면 생각이 쉽게 옆길로 세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요점에서 벗어나는 것은 더 빨리 알아차릴 것이다. 종이에 모든 이야기를 적다 보면 무관하다고 여겨지는 생각이나 감정을 건너뛰려는 유혹도 줄어들 수 있다. 글쓰기의 가장 큰 장점은 나중에 기록을 다시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첫눈에 보았을 때는 연상의 연관성이 지닌 중요한 의미를 놓치기 쉽지만 나중에 기록을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알아차릴 수 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발견이나 대답을 얻지 못한 질문들은 금방 잊어버리지만 다시 기록을 들추다보면 생각이 되살아날 수 있다. 또는 오래된 발견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도 있다. 아니면 자신이 눈에 띄는 진전을 이루지 못했고, 여전히 몇 달 전과 같은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마지막 두 가지 경우는 설령 기록과정 없이 어떤 발견에 이르렀다고 해도, 발견한 것과 그 발견으로 이어지는 주요 과정을 적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근거들이다. 생각이 펜보다 빠르다는 사실은 글쓰기에서 주요한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이럴 때는 중요 내용만을 적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분석 작업 대부분을 글쓰기로 수행한다면 일기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자세하게 비교해보면 분석 작업의 특성을 살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일기가 사실적인 사건에 대한 단순한 보고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적 경험과 동기를 진실하게 기록하려는 의도를 가졌을 때 글쓰기와의 유사성이 자명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분명 차이점도 있다. 잘 쓰여진 일기는 의식적인 감정과 생각, 동기를 정직하게 기록한 것이다. 일기의 특성이 흥미로운 사실을 드러내느 것이라면, 이는 작성자 자신에게 알려지지 않은 경험이기보다는 외부 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감정적인 경험을 나열했다는 것이다.
루소가 <고백록>에서 자신의 마조히즘적 경험을 털어놓으며 정직성을 자랑했을 때 그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어떤 사실도 밝혀내지 못했다. 그는 단지 비밀로 간직하던 것을 알렸을 뿐이다. 설령 일기에 동기를 찾으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해도 이런저런 느슨한 추측 이상의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일기를 쓸 때 대개 의식 수준 아래로 파고들려는 시도는 일어나지 않는다. 일기나 자서전에 대해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일기와 자서전은 나름대로 가치가 있지만 매체 본질상 자아를 탐구하는 것과는 다르다. 아무도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면서 마음이 자유로운 연상으로 흘러가도록 할 수는 없다.

일기는 종종 미래의 독자를 염두에 둔다. 독자는 일기를 쓴 사람일 수도 있고, 광범위로 분포된 사람들일 수도 있다. 후세를 의식한 곁눈질은 필연적으로 정직성이 지닌 순수한 가치를 훼손한다. 독자를 의식하면 의도적이든 아니든 작가는 어느 정도 수정을 하게 되어 있다. 특정한 요소들은 완전히 생략하고, 자신의 단점을 축소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돌리거나 다른 사람들이 드러나지 않도록 보호할 것이다. 자유 연상을 기록할 때도 마찬가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조금이라도 감탄하는 청중이나 독특한 가치를 가진 걸작을 창조하려는 생각에 기웃거린다면 같은 결과가 벌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유 연상의 가치를 훼손하는 온갖 죄악을 저지르게 될 것이다. 종이에 무엇을 적든 자기 인식이라는, 오직 한 가지 목적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분석은 자아 안에 상반된 관심사를 가진 두 집단의 요인들 사이에 힘이 작용하도록 촉발하거나 이 작용을 강화한다. 한 집단의 관심은 신경증적인 구조가 제공하는 환상과 안전을 변함없이 유지하는 것이고, 다른 집단의 관심은 신경증적인 구조를 뒤집어엎음으로써 내면의 자유와 힘을 얻는 것이다. 이미 충분히 강조했듯이 이러한 이유에서 기본적으로 분석은 고립된 지적 연구의 과정이 아니다. 지성은 그 순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어떤 관심사를 위해 봉사하는 기회주의자에 불과하다.
해방에 반대하고 현상 유지를 위해 노력하는 힘은 신경증적 구조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모든 통찰에 도전을 받고, 도전에 대항해 어떻게든 진전을 막으려 한다. 이는 분석 작업에 대한 '저항'resistaances으로 나타난다.
저항은 결코 분석적 상황에서만 생성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예외적인 조건에서 살지 않는 한 삶 자체는 분석가의 존재만큼이나 신경증적은 구조에 대한 큰 도전이다. 삶에 대한 은밀한 주장들은 절대적이고 경직된 성격을 띠고 있는 탓에 번번이 좌절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자신에 대해 품고 있는 환상을 공유하지 않고, 의심하거나 무시함으로써 상처를 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세워둔 치밀하고도 위태로운 수단에 대한 침입을 막을 수 없다. 이러한 도전들이 건설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만 분석에서처럼 처음에는 불안과 분노로, 그다음에는 신경증적 경향을 강화하면서 도전에 반응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경우에 따라서 더 내성적이거나 지배적이거나 의존적이 될 수 있다.


전문적인 분석에서 저항의 표현 방법은 대략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첫 번째는 자극을 일으키는 문제에 대한 공개적인 싸움, 두 번째는 방어적인 감정 반응, 세 번째는 방어적인 억제 또는 회피적인 전술이다.


우리는 마치 저항이 성마른 어리석음이나 고집을 나타내는 것처럼 저항하는 우리 자신에게 쉽게 짜증을 내고 싶어진다. 그러한 태도는 이해할 만하다. 최선의 이익을 위해서 원하는 목표에 향하던 중 스스로가 만든 장애물에 부딪히면 짜증이 나거나 심지어 화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이 자신의 저항에 대해 스스로 책망하는 것은 정당성도 없고 심지어 어떤 의미도 없다. 그는 저항 뒤에 있는 힘의 발달에 책임이 없으며, 게다가 저항이 보호하려고 하는 신경증적 경향은 다른 모든 수단이 실패했을 때 그에게 삶을 살아가는 수단을 주었다. 반대하는 힘을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요소로 간주하는 편이 더 현명하다. 나는 그 힘들을 자신의 일부로서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저항의 힘을 존중한다고 해서 이를 승인하고 멋대로 할 수 있도록 둔다는 의미가 아니다. 유기적인 발달로 인정한다는 의미다. 그러한 태도는 자신에게 더 공정할 뿐만 아니라 저항에 대처하기 위한 훨씬 더 나은 근거를 제공할 것이다. 만약 그 힘들을 짓밟겠다는 적대적인 결의로 접근한다면 그것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인내심과 의지를 갖지 못할 것이다.
저항이 건설적인 의지보다 강하지 않은 한 저항에 대한 대처가 제시된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저항이 이해되고 극복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완전한 분석은 없다. 확실히 분석이 더 명료해질수록, 우리는 더 자유로워 질 있고, 자유를 더 많이 얻을수록 우리에게 더 유익하다. 그러나 완성된 인간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은 주제넘을 뿐 아니라 심지어 강하게 마음을 끄는 매력도 없다. 삶은 투쟁이고 노력이며 발전이자 성장이다. 분석은 그 과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다. 긍정적인 성취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력하는 것 자체에도 가치가 있다.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말했듯이 "언제나 갈망하며 애쓰는 자, 그를 우리는 구원할 수 있다."



신경증적 경향
 

  • 애정과 인정에 대한 신경증적 욕구
    •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다른 사람들이 좋아해주고,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무차별적인 욕구
    • 반사적으로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추는 삶
    • 무게 중심이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있으며, 그들의 소망과 의견만을 중요하게 여김
    • 자기주장에 대한 두려움
    • 다른 사람들의 적의나 자기 내면의 적대감에 대한 두려움
  • 삶을 책임져줄 '동반자'에 대한 신경증적 욕구
    • 무게 중심이 전적으로 '동반자'에게 있음. 동반자는 삶의 모든 기대를 완수해주거나 선과 악을 책임지며, 그의 성공적인 조종이 지배적인 임무가 됨
    • '사랑'을 과대평가하고 사랑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여김
    • 버려질 것에 대한 두려움
    •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 협소한 경계 안에서 삶을 제한하려는 신경증적 욕구
    • 요구하지 않고 작은 것들에 만족하며 물질적인 것에 대한 야망이나 소망을 제한해야 할 필요성
    • 눈에 띄지 않게 지내고 두 번째 자리로 가야 할 필요성
    • 기존의 능력과 잠재력을 과소평하고, 겸손을 최고의 가치로 여김
    • 소비하기보다는 절약하려는 욕구
    • 무엇이든 요구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 좋은 상태나 높은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소망을 품거나 주장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 권력에 대한 신경증적 욕구
    • 지배에 대한 갈망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을 지배함
    • 대의명분이나 의무, 책임에 대한 헌신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하긴 하지만 원동력은 아님
    • 다른 사람들, 그들의 개성, 존엄성, 감정에 대해 근본적으로 무시함. 유일한 관심사는 그들의 복족임
    • 이 욕구와 관련된 파괴적인 요소들은 그 정도에서 큰 차이를 보임
    • 힘에 대한 무분별한 숭배와 약함에 대한 경멸
    •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
    • 무력함에 대한 두려움
  • 이성과 선견지명을 통해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려는 신경증적 욕구(권력을 직접적이고 공공연하게 행사하기에는 너무 억눌려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 나타난다.)
    • 지성과 이성의 전능함에 대한 믿음
    • 감정에 영향을 받는 것을 부정하고 경멸함
    • 선견지명과 예견에 극단적인 가치를 부여
    •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선경지명이 있다고 느낌
    • 자기 안에 세워 놓은 지적이고 우월한 이미지보다 뒤처지는 것은 모두 경멸함
    • 이성의 힘에 객관적 한계가 있다고 인정하기를 두려워함
    • '어리석음'과 서투른 판단에 대한 두려움
  • 의지의 전능함을 믿으려는 신경증적 욕구(직접 권력을 행사하는 행위를 다른 사람과의 과도한 접촉으로 여기는 매우 고립된 사람들에게 나타난다.)
    • (소원 반지를 소유한 양) 마법 같은 의지를 믿으며 불굴의 힘이 솟아남
    • 소망이 좌절되면 비참해짐
    •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소망을 포기하거나 제한하고, 관심을 철회하려는 경향
    • 순수한 의지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이용하여 그들을 능가하려는 신경증적 욕구
    •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 혹은 쓸모가 있는지를 주로 고려함
      아이디어, 성생활, 가정, 돈(흥정은 열정과 마찬가지다) 등 착취 대상은 다양함
    • 착취하는 기술을 가진 것에 자부심을 느낌
    • 이용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이용당하여 '어리석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 사회적 인정이나 명망에 대한 신경증적 욕구(권력에 대한 갈마과 결합할 수도 있고, 결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 무생물, 돈, 사람, 자신의 고유한 자질, 활동, 감정 등 모든 것이 오직 위신과 관련된 가치로 평가됨
    • 자기 평가는 전적으로 대중의 인정에 달려 있음
    • 질투나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전통적인 방식이나 저항적인 방식의 사용에 차이가 있음
    • 외부적 환경 때문이든 내부적 요인 때문이든, 사회적 지위를 잃는 것('굴욕')에 대한 두려움
  • 개인적 존경에 대한 신경증적 욕구
    • 자기에 대한 과장된 이미지(나르시시즘)
    • 자신이 가진 것이나 대중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상상 속 자신이 존경 받고자 하는 욕구
    • 자기 평가는 이 과장된 이미지에 맞추어 사는 것과 이미지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존경에 달렸음
    • 존경을 잃는 것('굴욕')에 대한 두려움
  • 개인적 성취에 대한 신경증적 욕구
    • 자신의 존재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활동을 통해 다른 사람을 능가하려는 욕구
    • 자기 평가는 최고가 되는 것에 달려 있음. 특히 자기 생각에 최고의 연인이나 최고의 운동선수, 최고의 작가, 최고의 직원이 되어야 하지만 타인의 인정이 필수적이며 인정받지 못하면 분노함
    • (다른 사람을 물리치고자 하는) 파괴적인 성향들은 빠지는 법이 없지만 강도는 다양함
    • 끊이지 않는 불안감, 더 큰 성취를 위해 한계 없이 자기를 몰아붙임
    • 실패('굴욕')에 대한 두려움
  • 자족과 독립에 대한 신경증적 욕구
    • 절대로 아무도 필요로 하지 말아야 하거나 어떤 영향에도 굴복하지 않아야 할 필요성. 혹은 어떤 것에도 속박되지 않아야 하고, 노예화할 위험이 있는 어떤 친밀함에도 얽매이지 않아야 할 필요성
    • 거리 두기와 분리는 안전 보장의 유일한 원천임
    • 타인을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유대감, 친근감, 사랑에 대한 두려움
  • 완벽함과 철저함에 대한 신경증적 욕구
    • 끈질기게 완벽함을 추구하려고 함
    • 발생할 수 있는 결점에 관해 반추하고 스스로를 질책함
    • 완벽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우월감을 가짐
    • 자기 안에서 결점을 발견하거나 실수를 저지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
    • 비판이나 책망에 대한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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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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