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신입생 시절 MT대신 답사여행을 떠나는 친구가 알려줬던 유홍준 교수의 나의문화 유산 답사기 1권 '남도답사 일번지', 20여년이 흐르고 국내편에 이어 일본편, 중국편 등 우리 문화와 연관이 있는 주변 국가들까지 확장판이 나왔다.
어딘가 여행을 떠날 때, 유홍준 교수의 나의문화유산 답사기에 포함된 지역이라면 가기전에 읽고, 가서 읽고, 갔다와서 읽어보길 권한다.
[본문발췌]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 나는 옛 시인이 '인간도처유청산'이라고 한 것을 살짝 바꾸어 생각지도 못했던 상수를 만나거나 신기한 것만 보면 '인생도처재상수'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날 지곡서당에서 바둑 두는 것을 구경하다가 신입생이 재학생을 불계로 이기는 것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인생도처재상수'라고 말했더니 돌아가신 청명 임창순 선생님께서 빙긋이 웃으시면서 "자네는 한문공부를 좀더 해야겠어"라며 '재(在)'는 be동사이고 '유(有)'는 have 동사이니 제대로 말하려면 '인생도처유상수'라고 하라고 하셨다.
'누각을 일으켜 새로 세우는 것은 나라를 경륜함과 비슷함이 있으니 기운 것은 바르게 하고 위태로운 것은 편안하게 하고 ... 흙은 쌓되 단단히하고 땅을 깊이 파서 습기를 없애는 것은 그 큰 기업을 튼튼히하는 것입니다. 들보와 마룻대와 기둥과 주춧돌을 웅장하게함은 무것운 것을 지탱하는 것이 약해서는 안되는 까닭이요, 대공과 지도리와 문설주가 모두 제각기 갖춤이 있는 것은 작은 제목은 큰 소임을 맡을 수 없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추녀 끝을 시원하게 트이게 함은 사방으로 보고 들어 총명하자는 것이요, 밑을 내려다보면 반드시 두려우니 이는 경외를 갖자는 것이요, 멀리 보아 빠뜨리지 않으니 그것은 포용함을 숭상하는 것입니다. 제비들이 와서 서로를 하례함은 인민들이 기뻐함이요, 파리가 붙지 못함은 간사하고 참소하는 무리가 물러감이요, 그림이 사치스럽지 않음은 제도문물이 중도를 얻음입니다. 이때를 맞추어 여기에서 노는 것은 문무의 긴장에 이완이 알맞게 따른 것이니 오르고 내릴 때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정치를 행한다면 이 누각의 유익함은 진실로 적지 않을 것입니다.' - 하륜, 경회루 기문.
배를 건조하고 싶으면 사람들에게 나무를 모아오고 연장을 준비하라고 하는 대신 그들에게 끝없는 바다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켜라. - 쌩떽쥐뻬리
모든 나라의 왕궁 앞에는 그 나라를 상징하는 광장이 있다. 광장은 근대 시민사회의 상징적 공간이며 왕궁 앞 광장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역사적 공간이라는 상징성을 갖는다. 왕조의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에서 그것은 고궁 앞 광장이거나 유서깊은 거리다. 중국 베이징의 톈안먼과장, 프랑스 파리의 콩코르드광장과 샹젤리제거리, 영국 런던의 버킹엄궁과 트라팔가광장, 독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문이 있는 보리수 아랫길에 다녀오지 않고 중국, 프랑스, 영국, 독일에 갔다 왔다고 말할 수 없다. 광장은 도시의 심장이고, 거리는 동맥이며, 골목길은 실핏줄이다. 이것이 살아숨쉬는 도시공간의 구조다.
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고, 나쁜 길은 넓을수록 좋다. - 김수근 선생의 건축수상집
선암사는 1년 365일 꽃이 없는 날이 없다. 춘삼월 생강나무, 산수유의 노란 꽃이 새봄을 알리기 시작하면 매화 살구 개나리 진달래 복숭아 자두 배 사과 영산홍 자산홍 철쭉이 시차를 두고 연이어 피어난다. 그것도 여느 곳에서는 볼수 없는 늠름한 고목에서 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감히 예쁘다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 그때가 되면 선암사는 열흘마다 몸단장을 달리한 것처럼 우리를 새롭게 맞이한다. 봄의 빛깔이란 어제와 오늘은 비슷해도 열흘을 두고 보면 확인히 다르다.
옛사람들은 화무십일홍이라고 했지만, 선암사는 열흘마다 다른 꽃을 선보이며 꽃이 지지 않는 절이 되었다. 신록의 계절에는 온 산이 파스텔톤의 연둣빛으로 물드는 것이 꽃보다 아름다운데, 백당나무, 불두화는 주먹만한 하얀 꽃을 불쑥 내민다. 이때 계곡 한쪽에서는 산딸나무 층층나무의 새하얀 꽃이 청순한 자태를 조용히 드러낸다. 절마당에서는 태산목이 연꽃봉오리 같은 탐스러운 하얀 꽃을 오늘은 이 가지, 내일은 저 가지에서 한달 내내 피웠다 떨어뜨린다. 이처럼 신록의 계절에는 나무꽃이 하얗게 피어난다.
그러다 여름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오동나무는 보랏빛 꽃대를 높이 세우고, 자귀나무 빨간 꽃은 뼘을 재듯 가지마다 옆에서 뻗어나온다. 여름이 깊어지면 배롱나무꽃이 피기 시작해 장장 석달 열흘을 위부터 아래까지 온몸을 붉게 물들인다. 그때가 되면 선암사 한쪽 구석에는 모감주나무의 노란 꽃, 치자나무의 하얀 꽃, 석류나무의 빨간 꽃이 부끄럼을 빛내며 우리에게 눈길을 보낸다. 봄이 나무꽃의 계절이라면 여름은 풀꽃의 세상이다. 선암사 뒤안길 돌담 밑에는 봉숭아 채송화 달리아가 돌보는 이 없이도 해마다 그 자리에서 그 모습으로도 잘도 피고 진다. 그러자 절집의 꽃으로는 역시 가녀린 꽃대에 분홍빛으로 청순하게 피어나는 상사화가 제격이고, 여름이 짙어가면 삼인당 섬동산 빨간 꽃술의 꽃무릇으로 환상적으로 뒤덮인다.
가을은 은행잎이 떨어져 절마당을 노란 카펫으로 장식하고 청단풍이 새빨갛게 물들어갈 때가 절정이다. 가을이 깊어가면 밤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가 온 산을 마치 캔버스에 바탕색 칠하듯 차분한 갈색을 뒤덮으며 들국화 구절초 쑥부쟁이 코스모스 감국이 여름꽃의 바통을 이어받아 선암사 화단을 장식하며서 호젓하고 스산한 정취를 자아낸다. 가을을 심하게 타는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 계절 선암사에 오면 누구나 여린 감상에 물들게 된다. 사람들은 곧잘 겨울은 삭막하다고 말한다. 겨울나무는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아 있다며 꽃 피고 잎 돋던 그때와 비교하며 깊은 정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선암사의 겨울은 그렇지 않다. 소나무 전나무 같은 늘푸른바늘잎나무야 우리 산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선암사는 한반도의 남쪽 끝자락 남해바다 가까이 있어 늘푸른넓은잎나무의 난대성 식물이 잘 자란다. 동백나무 후박나무 녹나무 태산목 팔손나무 붉가시나무 종가시나무 호랑가시나무가 여전히 절마당 곳곳에서 초록을 빛내고 있다. 남들이 요란을 떨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화려한 단풍으로 자태를 뽐낼 때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묵묵히 자기를 키워온 이들 늘푸른 넓은잎 나무가 윤기나고 두터운 사철 푸른 잎을 자랑하며 나무 전체가 꽃이라는듯 우리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아직도 남아 있는 산수유나무 마가목 먼나무 호랑가시나무의 빨갛고 탐스러운 열매가 빛바랜 계절의 꽃어럼 행세하고 있을 때 벌써 한 송이 두 송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빠알간 동백꽃이 겨울은 결코 무채색의 계절만이 아님을 말해준다. 이때 풀꽃이 사라진 쓸쓸한 화단 곳곳에서는 키작은 남천의 빨간 잎, 빨간 열매가 빛의 조건에 따라 짙고 옅음을 달리하며 가녀린 맵시를 다소곳이 내보인다. 남쪽이어서 눈이 드물 것 같지만 선암사에는 눈도 많이 내린다. 눈 덮인 선암사 진입로 산자락을 뒤덮은 산죽밭의 모습은 환상의 겨울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초록과 흰색의 향연이다.
어느 나라 건축인들 자연과 건축이 교감하지 않으리오만 우리 전통건축에서 자연과 인공이 어울리는 방식은 아주 특별하다. 같은 문화권이지만 중국과 일본의 저택들은 모두 울타리 안에서만 건축이 이루어진다. 그런 가운데 일본은 섬세하고 치밀한 인공의 손길이 강조되고, 중국은 높은 담장 속에 장대한 공간을 연출하는 데 힘쓴다. 비록 중국 전통건축에도 차경이라는 개념이 있어 자연풍광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우리처럼 자연과 인공이 혼연일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전통건축물은 단순한 건축이 아니라 그 자체가 자연이고 또 하나의 풍경이다. 중국의 건축물은 장대하지만 마치 벽처럼 느껴지고, 일본의 전통건축물은 정교하지만 나약해 보여 건축물이 아닌 가구 같다는 인상을 준다. 이에 비해 한국의 건축은 주변 경관을 깍고 다져서 인위적으로 세운 것이 아니라 자연 위에 그냥 얹혀 있는 느낌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전통건축은 미학적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한다. - 프랑스 건축하협회장 로랑 쌀로몽
전국 돌담길. 고성 학동마을, 제주 하가리마을, 담양 삼지천마을, 강진 병영성마을, 산청 남사마을, 영암 죽정마을, 여수 추도마을, 대구 옻골마을, 예천 금당실, 부여 반교마을
나물은 기본적으로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음나무순 두릅나무순 같은 나무의 새순이다. 음나무순은 두릅나무보다 맛이 더 싱그러운데 이름은 개두릅이다. 이외에도 오갈피나무 가죽나무 고추순나무 빛새나무 노린재나무 산초나무 왕초피나무 삿갓나무 참빗살나무(화살나무) 우산대나무 다래넝쿨의 새순은 다 나물이 된다. 또 하나는 다년초, 즉 풀의 새잎이다. 쑥을 비롯해 달래 냉이 씀바귀는 나물의 고전이고, '취'는 나물의 대종으로 취자가 붙은 풀은 다 나물로 먹는다. 곰취 참취 미역취 단풍취 바위취(범의 귀) 전대취 각시취 분취 수리취. 이외에도 많다. 고사리 고비 개발자국 백지 장녹(자리공)순 미남지싹 얼레지 비비추 엉겅퀴 민들레 쇠비름 콩고투리 청침 부지깽이나물 꿩나물 복주머니나물 벌통나물 기름나물 비름나물 멸구나물 산마늘 는쟁이나물(명아주) 으아리(위령선). 당귀 잔대 창출 머위 둥굴레 돌나물, 참나물 곤드레 고들빼기 돌나물....
하늘은 이불, 땅은 요, 산은 베개
달은 촛불, 구름은 병풍, 바다는 술독
크게 취해 거연히 춤을 추고 싶어지는데
장삼자락이 곤륜산(히말라야)에 걸릴까 걱정이 되네.
- 진묵대사의 무량사 우화궁 건물 주련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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