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나와 다름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 변화가 필요할 때, 목적과 방향을 잃었을 때.... 여행을 떠나야 할 때다.

 

 

[본문발췌]

 

 

사르트르가 말했듯이 '인간은 마음먹기에 따라 스스로를 재창조할 수 있는 존재'라 믿으며 길 위에서 '잃어가는 나'와 '잃어버린 너'를 되찾고 싶었다. 그 강렬한 그리움이 나를 살아남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의 소득은 전혀 알거나 보지 못했던 것을 처음으로 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다고 여겼던 것에 대해 경이로움을 느끼고 새로 고쳐보는 데 있다. '어디로 가느냐'는 물음은 '어디에서 왔느냐'는 물음과도 통한다. 과거에 대한 배려는 미래에 대한 배려에서 비롯된다. 나그넷길에서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인생에 있어서도 자유인이다. 인생 그 자체가 자유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목숨은 물질영역에 있어서는 '물질의 법칙'에 지배되지만 정신영역에 있어서는 '마음의 법칙'에 의해 다스려진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부유浮遊하다가 생체의 '조화'를 되찾게 되었다고, 그렇게 죽음을 삶으로 바꾸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 중에서 웃는 것은 인간뿐'이라고 했고, 앙리 베르그송은 그 논거를 뒷받침하는 예화를 들면서 "고유한 의미에서 인간적이라는 것을 생략하면 재미있는 것은 없다."면서, 웃음을 인간 고유의 고급스럽고 중요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고해苦海와도 같은 세상사에서 웃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마크 트웨인은 다음과 같은 말로 역설했다. "나는 천국에 가고 싶지 않다. 천국에는 지루함이나 괴로움이 없어 그 탈출구인 여행이나 웃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려운 삶을 딛고 다시 웃음을 회복해야 한다.

 

 

여행을 통해 나 자신을 기쁘게 하면서, 명승고적뿐 아니라 오지도 마다 않고 넓은 세상을 만나면 문득문득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게 되었다. 발끝부터 머리카락 한 올까지 내 몸 곳곳에 말을 걸고 격려해주며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사랑은 나르시즘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말하는 나르시즘은 자기만을 사랑하는 자기 본위의 사랑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긍정에서 출발하되 자기 과신이 아닌 겸허와 겸손으로 끝나야 한다. 나 역시 나를 객관화해 바라볼 수 있게 되자 남에게도 부드럽고 열린 시선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不言以無愁 - 말을 안 하면 근심이 없다. - 석주 대선사

 

 

베르테르는 '몸이란 영혼을 가두는 감옥'이라 여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지만, 나는 영혼과 육체가 하나임을 믿는다. 몸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마음의 그릇'이다.

 

 

고독은 우리 마음의 고향이다. 정신분석학자 칼 융은 "자기 주변에 사람이 없기 때문에 고독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을 남에게 전할 수 없을 때, 또는 남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어떤 관점을 지니고 있을 때 고독해진다."고 했다. "이럴 때면 익숙했던 곳을 떠나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고독감이란 자기 사고방식이 주변 사람들과 다를 때, 남의 사고방식이 납득되지 않을 때 느끼는 감정이며, 그런 때는 그런 주변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 좌절을 모르고 넉넉하게만 살아온 사람, 한곳에만 죽치고 앉아 자기 나름의 왕국을 마련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 본위의 냉혈인간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 이따금 훨훨 털어버리고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면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활력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얻을 수 있다. ... 많이 괴로워하다가 길을 나선 나그네가 어느샌가 여느 사람의 슬픔이나 괴로움을 함께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사랑과 죽음, 그리고 여행을 통해서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실감한다. ... 인생은 고통과 죽음의 바다이지만 사랑과 여행으로 이를 메울 수 있다. 그런 사랑, 그런 여행은 죽을 것만 같은 시련 끝에 온다. 그리고 혼자만의 외로움을 통과해 새로운 눈을 갖게 되어야만 여행은 비로소 마침표를 찍는다. ... 사랑, 죽음, 여행, 이 세 가지는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어쩌지 못하는 것임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한 번뿐인 삶을 위해서.

 

 

여행이란 스스로를 안전한 일상생활에서 긴장감이 흐르는 이질적인 세계로, 편리한 환경에서 불편한 환경으로, 호사스럽거나 넉넉한 생활에서 가난하고 모자라는 생활로 끌어내는, 끌어내리는 일이다. ... 여행이란 자유분방한 것이다. 어쩌면 여행은 '고독한 인간'의 멍에를 벗고 인간성의 회복을 위해 나서는 길이어야 한다. ... 혼자 긴 여행길에 나선다는 것은 '나 아닌 또 하나의 나를 찾는 길'이다. ... 그렇게 여행은 나를 향한 회귀, 또 다른 인생에게는 향수가 되리라.

 

 

여행이란, 정착사회의 번거로움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켜보려는 욕구의 발로다. 여행이란, 안전한 일상생활과 다른 이질적인 세계로, 긴장을 내내 수반한다. 예컨대 편리한 환경에서 불편한 환경으로, 넉넉한 생활에서 모자라는 삶으로 스스로를 옮겨보는 과정인 것이다. 여행이란, 안전할 수도 있고 호사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여행자는 늘 자유분방해야 하며, 고독한 인간성의 회복을 위해 나서야만 한다. 여행이란, 여행자에게 있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다. 자기 안의 '고독한 인간'을 만나는 즐거움이다. 스스로의 인생뿐 아니라 인류의 오랜 역사를 새삼스럽게 발견하는 놀라운 체험이다.

 

 

누구나, 심지어 불규칙한 삶을 사는 것 같아 보이는 이조차 일정한 생활 리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가끔 여행을 통해 이 리듬을 흐트러뜨릴 필요가 있다. 인간이라는 살아 있는 동물에게는 엉성한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구석구석 철저히 계산된, 조금의 혼란도 없는 존재가 결코 아니다. 인생도 그렇다. 살다보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 불쑥 일어나곤 한다. 자연도 그렇다. 사계절의 변화에는 일정한 리듬이 있지만, 서늘한 여름도, 따뜻한 겨울도 있다. 살아 있는 존재에게 '흐트러짐'이란 필수불가결한 것임을 여행은 가르쳐준다.

 

 

우리가 여가를 즐기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는 단순한 행위와 사실, 그것을 삶의 가장 필요하고 만족스러운 일로 즐기고 이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여행 중에 느끼는 특별한 느낌들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먹고, 자고, 사랑하는 것이 그렇듯이, 여행도 우리 삶에 꼭 필요하다고 여기고 여행해야 한다. 그냥 예사롭게 돌아다니기만 해도 마음의 감각들이 되살아난다. 하지만 새롭고 값진 것을 찾기 위해, 좀더 넉넉한 기쁨을 맛보기 위해, 또는 예기치 못한 아이디어나 느낌을 떠올리고 생각을 가다듬기 위해 여행을 하다보면 스스로도 놀랄 만한 새로운 발견과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낯선 하나는 익숙한 여럿을 일깨워준다.

 

 

여행이란 자신을 되찾게 하고 오래되고 선천적인 고정관념을 바꾸게 하는, 깨어 있는 의식의 변종. - 토니 히스, <깊은 여행>

 

 

여행이 주는 색다른 느낌을 가까이하게 되면 예사로운 것에서도 새로운 맛을 느끼게 되고, 나아가 삶을 송두리째 바꾸게 되기도 한다. ... 프로이트가 말했듯이 우리는 꿈을 통해 자신의 재능과 상상의 힘을 발견하고 놀라는 때가 많다. 꿈은 우리가 세상에 대해 품고 있는 생각들을, 그리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고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또 어떻게 돌아갈 것인지에 대한 우리의 가정들을 부풀려서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의 눈을 새로이 뜨게 한다. 실제의 꿈이 아닌 자각몽일 경우에는 불현듯이, 그리고 아무런 위협이나 위험도 없이 그런 가정들에 도전할 기회를 갖게 된다. 능숙한 여행자가 그러하듯이. 꿈과 여행은 닮아 있다. 익숙한 것들이 낯설어진다는 것도, 귀 기울여 들을 만한 이야깃거리가 많다는 것도 비슷하다. 여행의 도정에서 얻은 예기치 않은 발견들을 하나둘 자기 것으로 만들다보면, 어쩌면 꿈은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파랑새가 꼭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 희망도, 꿈도, 사랑도, 행복도, 모두 찾아 나서지 않으면 결코 발견할 수 없다. 감나무 밑에서 홍시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 감을 따야 하듯이 행복도 즐거움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여행은 '파랑새'를 찾기위한 하나의 과정이요 수단이다. 여행은 여행지에서 돌아와 일상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어떤 장소에 갔다 오는 데 그치지 않고, 그곳에서 느꼈던 새로움을 다시 감각해야 한다. 그런 순간에 치르치르와 미치르처럼 새로운 눈을 갖게 된다. ...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 존재 전체에서 일어나는 모자람도 남음도 없는 떨림, 전율, 절묘한 환희. 이것이 여행의 마음, 여심旅心이다.

 

 

이 세상은 한낱 관찰의 대상이 아니고, 새로운 것을 끌어들이는 과정. - 보들레르, <이국향기>

 

 

여행은 새로운 생각의 산파다. 새로운 생각은 색다르고, 새로운 장소에서 난다. 여행은 깨우침의 미학이다. 단테의 <신곡>처럼....

 

 

여행한다는 것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이고, 관습에서 탈피하는 일이며,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는 일이다. 굳이 해방을 꾀하는 여행이 아니더라도 여행을 하다보면 누구나 자유로워진다. ... 여행은 끊임없는 과정이다. ... 여행, 사랑, 죽음은 모두 벗어나야만 가능한 일이다.

 

 

죽음을 확실히 의식한다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듯 무한한 수명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생은 흥미로운 것이다. 이런 생각도 내가 여행에서 얻은 소득 중 하나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우리 인간은 평소 너무나도 대수롭지 않게 사물을 보아 넘기며 살아간다. 물리적인 시간은 일정하지만 시간을 대하는 각자의 방식에 따라 그것은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는 것 역시 여행을 통해 배웠다. 한순간이 영원이 될 수도 있고 하루가 일 년이 될 수도 있다. 여행 중에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을 음미할 때마다 그것을 실감하곤 한다.  여행을 하면서, 그리고 돌아온 후 이를 반추하면서, 나는 나의 남은 시간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흐름에 맡기기로 했다. '세상은 내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마음먹고 나자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자연을 '따른다' 또는 자연에 '맡긴다'는 것에 엄청난 힘이 숨어 있다는 것도 노경老境에 접어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이제야 또 하루가 다가오면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를 가져본다. ...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하는 것임을 짐짓 알면서도 막상 결심하고 첫발을 내딛기가 어렵다. 그러나 결심을 해야 한다. 어디로 떠나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가장 여행다운 여행을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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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플레이와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않으면 불편하고 불안해하는 세상이다.

좀 더 인간적이고 충만한 삶을 위해 연결을 잠깐 멈추어 생각하고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No Screen, No Network Time!

 

 

[본문발췌]

 

 

stop! breathe! think!

 

 

인간은 외부와 연결되고자 하는 욕망 혹은 군중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하는 욕망과 함께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추구하는 정반대의 욕망을 '동시'에 갖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 욕망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다.

 

 

스크린은 개인과 기업을 비롯한 다양한 조직에 필요한 업무를 손쉽게 해결해주었다. 편리함과 즐거움을 제공할 뿐 아니라 세상을 한 걸음 더 가깝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스크린을 통한 네트워크가 촘촘해질수록 우리의 일상은 정신없이 바빠졌다. 그로 인해 우리는 매우 중요한 것을 잃고 말았다. 바로 시간을 두고 천천히 느끼고 생각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이를 두고 '깊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사고와 감정의 깊이, 인간관계의 깊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깊이가 사라지고 있다. 충만하고 의미 있는 삶의 핵심인 깊이가 사라져간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스크린을 통해서도 가치 있는 경험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유는 반드시 필요하다. 아마 빛을 받지 못하고 이미 지나가버린 기회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이건 내가 바라던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지나가버린 그 기회가 그리워질 것이다. 얻지 못했던 깨달음, 통찰력, 기쁨, 마음이 결코 떠나지 못했던 여행이 그리워질 것이다.

 

 

디지털 기술을 대하는 지금의 사고방식, 즉 네트워크는 절대 끊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근거 없는 믿음은 시간의 공백이 가진 중요성을 완전히 간과하고 있다.... 시간의 공백은 디지털 도구를 실용적인 도구에서 창조성, 깊이, 초월성의 도구로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시간의 공백은 사람들을 줄 서게 만든 마법의 핵심이다. 시간의 공백 덕분에 나는 지극히 평범한 경험을 통해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디지털 도구를 사용하는 모든 일이 마찬가지다. 시간의 공백이 없다면 가치 있는 경험도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공백을 만들기는커녕 점점 더 없애고 있다.

 

 

20세기의 철학자 폴 틸리히는 '외로움loneliness'은 '홀로 있는 괴로움'을 표현하기 위한 단어인 반면 '고독solitude'은 '홀로 있는 영광'을 표현하기 위한 단어라고 말했다. 나는 대학 시절 두 가지 상태를 모두 경험했지만 기억에 남는 대부분의 기억은 고독에 관한 것이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실감하게 되었다. 사회는 군중이 없는 개인은 무가치하며 모든 것이 군중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세뇌시킨다. 그리고 개인과 군중 사이의 장애물을 끊임없이 제거하고 있다.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나라의 시민들은 그러한 은밀한 메시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유에 따르는 책임은 무거운 법이며 책임이 무거울수록 순응에 대한 매력도 커진다. 이를 알아챈 광고업자들은 군중 속의 개인들이 가진 개인주의적 감정을 일깨워 제품을 파는 방법을 익혀 왔다. 그들은 콜라부터 자동차까지 모든 제품이 자기표현과 자유를 위한 수단이라고 홍보한다. 물론 현실은 그 반대다. 반항하라! 모두가 신고 있는 이 신발을 신고!

 

 

군중이 일제히 하나의 관점만 받아들이면 비판적 사고의 기능은 사실상 멈추고 만다. 특히 디지털 맥시멀리스트들의 생각은 바뀌기가 어렵다. 그들은 군중과 함께하는 것이 전부이며 스스로 그러한 목표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중독의 문제는 3가지 측면에서 발생했다. 첫째, 개인의 내적인 삶이다. 전문가들은 내가 경험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정신적, 정서적 장애가 확산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둘째, 가족을 비롯한 개인적인 인간관계이다. 스크린을 사용하는 시간이 얼굴을 맛대는 시간을 대신하고 있다. 셋째, 기업을 비롯한 조직적인 측면이다. 어느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는 직원들로 인해 생산성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노모포비아nomophobia, 휴대전화가 없는 상태를 두려워하는 증상

 

 

가난한 자는 적게 가진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이 원하는 사람이다. - 세네카

 

 

몰입flow은 한 가지 활동에 몹시 빠져들어 주변 세상이 멀리 사라지는 것처럼 느끼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칙센트 미하이가 말하는 '일상생활에 대한 불안이나 걱정 없이 특정 활동에 수월하게 깊이 몰입한 상태'를 가능하게만 한다면 그 활동은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단순한 활동일 수도 있고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처럼 복잡한 활동일 수도 있다. 이 상태에서는 집중을 방해하는 것이나 시간에 대한 감각이 사라지고 그 순간에 완전히 몰입하게 된다. 칙센트 미하이에 따르면 인간은 '내적 경험을 통제'하고 '의식의 질서'를 발견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이 행복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몰입 상태를 가능하게 하는 활동에는 일종의 한계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완수할 가능성이 있는 목표 지향적인 활동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맞지도 않는 퍼즐을 맞추거나 링도 없이 칠판을 향해 농구공을 던지는 활동으로는 결코 몰입 상태에 도달할 수 없다.

 

 

분주하고 복잡한 세상에서 조금 덜하는 것이 더 얻는 길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또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보람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더 좋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인간과 기술의 상호작용에 대한 한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물리적 실체가 있는 대상과의 상호작용을 더 선호한다. 물리적 실체가 있는 3차원적 도구는 몇 가지 중요한 점에서 인간의 마음에 더 쉽게 작용한다. 3차원적 도구는 직관을 일깨운다. ... 속도가 곧 미덕인 오늘날 종이 수첩의 또 다른 장점은 바로 디지털 세상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단순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보의 속도를 늦추고 마음을 여유롭게 한다. 스크린 안의 활동은 늘 변화하며 덧없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매우 가볍다. 하지만 가끔은 무겁게 가라앉을 필요도 있다.

 

 

인간의 맥시멀리즘적 성향을 일깨우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역사 속에서 되풀이되어 왔다. 그와 동시에 인간은 조용히 그리고 끈질기게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을 똑바로 차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새로운 기술이 선사하는 미래로 건너갈 수 있게 해주는 다리가 아닐까. 스티븐 그린블랫에 따르면 <햄릿>의 가장 위대한 성과 중 하나는 바로 '자기 성찰의 충실한 묘사'다. 셰익스피어는 개인이 어떤 문제와 씨름하고 있을 때 그의 마음속에서 역동하는 진짜 생각을 붙잡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했다. 햄릿의 자기 성찰이 바로 <햄릿>의 핵심이며 그는 테이블을 통해 자신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고자 했다.

 

 

기술에 대한 배움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새로운 도구의 등장은 늘 3가지 범주의 문제를 야기 한다. 첫째, 기능적 측면이다. 이 도구가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둘째, 행동적 측면이다. 이 도구를 사용하기 위해 바꿔야 할 오래된 습관이나 습득해야 할 새로운 습관이 있는가? 마지막 세 번째 측면은 새로운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하는 초기 단계에서 종종 경시되는 문제기도 하다. 바로 내적 혹은 '인간적' 측면이다. 이 도구가 나와 내 경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이 도구가 내 사고방식을 바꿀 것인가? 이 도구가 하루의 리듬을 바꿀 것인가? 이 도구를 사용하면 삶이 더 빨라질 (혹은 느려질) 것인가? 이 도구가 내가 하는 일에 영향을 끼칠 것인가? 가정생활에는? 만약 그렇다면 좋은 영향일까 나쁜 영향일까? 이 세 번째 측면의 문제가 결국 가장 중요한 문제이며 이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나서야 우리는 그때까지의 기술 사용법에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접근법을 찾기 시작한다. 거대 기업들은 디지털 홍수가 기업의 이윤을 감소시킨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이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 기업의 생산성에 문제를 일으키는 측면도 바로 이 인간적인 측면이다. 직원들의 '마음 상태'가 나쁘기 때문에 생산성이 감소한 것이다. 이 세 번째 측면을 무시하는 것은 바로 문제를 자초하는 것이기도 하다.

 

 

변화를 추진하는 제도의 힘은 '제도를 따르는 사람'에게 그 제도가 어떤 의미인가에 달려 있다. 제도를 통해 뿌리 깊은 행동 양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마음속에 반드시 변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바꿀 수 있는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바꿔야만 하는 '이유'에 관한 문제다. 내적 변화는 내적 확신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자신을 들여다보며 나쁜 습관을 없애고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줄 좋은 성품이 무엇일지 생각해보고 3가지 덕목과 이를 갖추기 위해 필요한 행동 지침을 적었다. 프랭클린은 이 규범을 '도덕적 완전함에 이르기 위한 담대하고 험난한 계획'이라고 불렀다.

  • 절제 - 배부르도록 먹지 마라. 취하도록 마시지 마라.
  • 침묵 - 자신이나 타인에게 유익한 말만 하라. 쓸데없는 대화를 피하라.
  • 규율 - 모든 물건은 제자리에 두어라. 모든 일은 제때에 하라.
  • 결단 - 해야 할 일은 실천할 것을 결심하고 결심한 일은 반드시 실행하라.
  • 검약 - 자신이나 남에게 이로운 일에만 돈을 써라. 쓸데없이 낭비하지 마라.
  • 근면 -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언제나 유익한 일을 하라. 불필요한 행동을 삼가라.
  • 성실 - 타인을 속여 상처를 주지 마라. 결백하고 공정하게 생각하라. 말할 때도 그렇게 하라.
  • 정의 - 타인을 모욕하거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타인의 이익을 해치지 마라.
  • 중용 - 극단을 피하고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도 화를 자제하라.
  • 청결 - 신체, 의복, 주택을 불결하게 하지 마라.
  • 평온 - 사소한 일이나 피할 수 없는 사고에 흥분하지 마라.
  • 순결 - 성관계는 건강과 자손을 위해서만 하라. 그로 인해 심신이 둔해지거나 약해지지 않도록 하고 자신이나 타인의 평화 혹은 명성에 해가 되지 않도록 하라.
  • 겸양 - 예수와 소크라테스를 본받아라.

 

 

나는 숲으로 갔다. 천천히 살며 오직 삶의 본질만 마주하고 삶이 내게 가르쳐준 것 중에서 배우지 못한 것은 없는지 살펴보기 위해서, 마침내 죽게 되었을 때에야 제대로 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지 않기 위해서 나는 숲으로 갔다. ... 나는 삶의 정수를 빨아들이며 깊이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내 오두막에는 3개의 의자가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해, 다른 하나는 우정을 위해, 또 다른 하나는 세상을 위해서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당신은 내가 인류에게서 멀어짐으로써 내 자신을 빈곤하게 만든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고독 속에서 나만을 위한 실을 지어 번데기를 만들고, 그 번데기에서 빠져나와 더 나은 사회에 알맞은 더 완벽한 창조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중요한 것은 메시지와 내용 자체이지 이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다. - 마샬 맥루한

 

 

데이비드 리스먼은 그의 책 <고독한 군중>에서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따르는 '내부 지향형inner-directed' 인간이 줄어들고 사회의 가치와 신념을 따르는 '타인 지향형other-directed' 인간이 늘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책에서 리스먼은 객관적 존재가 자기 성찰을 대신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는 인간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지만 통제하는 측은 바로 '우리'여야 한다. 맥루한은 매스미디어 사회에 살면서 느낄 수 있는 몇 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밝혔다. 누구나 가끔 뇌가 몸을 떠나 외부 세계까지 확장되어 있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런 느낌이 들 때 다시 내면을 들여다보거나 혼자만의 사고를 하는 것은 몹시 어렵다. 깊이는 인간의 의식이 바깥에서 안으로 가져온 많은 정보를 정리하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 데서 얻어지는 것이다. 외적인 것을 자기만의 것으로 만들 때 깊이가 가능하다. 내적으로 행복한 삶을 이루는 유일한 방법은 내면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며 끊임없이 바깥세상에 한눈을 팔고 있다면 결코 불가능하다. 주의력 결핍이나 인터넷 중독을 비롯해 기술과 관련된 다른 모든 병폐는 전부 바깥을 향해 고정된 시선을 거두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문제는 균형의 상실, 다른 것을 포기하는 것, 스크린을 향한 충동이 야기하는 마음 상태다. 우리는 가족과 함께 가족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스크린과 함께, 스크린을 위해, 스크린 안에서 살고 있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군중 안에 존재하는 작은 단위인 가족에게도 가족만의 내적 삶이 있다. 이 내적 삶을 충만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스크린에서 떨어져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과 가족은 군중에게 의지하게 되고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저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따라 스스로를 정의하게 된다. 소로는 강박적으로 우체국을 찾는 남자는 자신으로부터 오랫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을 거라고 말했다. 가족 구성원이 무엇을 위해서든 스크린을 더 많이 찾을수록 진심을 나눌 시간은 줄어들고 가족의 내적 삶은 성장하지 못한다.

 

 

디지털 문화는 한 시간도 네트워크에서 달아나지 말라고 우리를 붙잡으며, 달아나면 뒤쳐진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조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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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역학 제1법칙인 '에너지 보존 법칙', 에너지는 형태가 변할 수 있을 뿐 새로 만들어지거나 없어질 수 없다.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게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삶 가운데 시간도, 사랑도, 삶의 가치를 찾는 관심과 노력도 총량이 정해져 있을 수 있다. 뭔가를 얻으려면 뭔가를 포기하거나 버려야 하는 것처럼....

 

 

[본문발췌]

 

 

내가 생각하는 미니멀리스트Minimalist란 삶에서 불필요한 것을 버리고 자신의 인생에서 더욱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다. 미니멀리스트에게 물건의 많고 적음은 그저 피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가치를 소유한 물건이나 타인의 인정 등 외부적인 것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찾는 삶, 자신이 진실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찾아 그것을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삶이 바로 최소한주의, 미니멀리즘Minimalism인 것이다.

 

 

주변 사람들 눈에는 이상하게 보여도 자신의 인생에 가장 소중한 것에 가치를 두고 온 열정을 쏟는 삶. 바로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미니멀리즘이자 꿈꾸던 삶의 자세. 자신의 삶에서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더욱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삶.

 

 

여유롭고 단순한 삶을 살려면 가장 먼저 소유한 물건부터 버리고 마음도 비워야 한다. 우리는 뭔가를 추구하다 보면 비우기보다 채워 넣는 쪽으로 몰입하기 쉽다. ... 하나를 손에 넣으려면 그 전에 먼저 하나를 버려야 한다. 하나가 내 안에 들어오면 다른 하나를 내려놓고 수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소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자세가 중요하다. 다시 말해 지금 이 순간에 쓰지 않는 것은 버리고, 나아가 지금 이 순간에 필요한 생각 외에는 버리는 것이다.

 

 

조금만 소유하고 의미 있는 것에 집중하는 삶, 외면의 욕망이 아닌 내면의 욕망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본질에 충실한 삶. 이것이 바로 미니멀리스트에게 주어지는 가장 좋은 선물이 아닐까.

 

 

물건이 넘치면 사람이 사라진다.

 

 

버리고 비우기의 최고 경지는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비워야 할 것은 물건만이 아닌 것 같다. 미래에 대한 걱정, 욕심, 집착, 이것들을 모두 버리고 소중한 것만 지니고 살아가고 싶다. 바로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순간순간, 내 앞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말이다.

 

 

물건은 하나밖에 없으면 마지막까지 소중히 쓰고 다루지만, 많이 가지고 있으면 아까운 줄 모르고 막 쓰게 된다. 적게 소유하고 살면 아이들도 그만큼 물건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기를 수 있다.

 

 

인생은 도전과 실패의 반복. 성공보다 한걸음 내딛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아이에게는 '0보다 1을 목표로' 삼으라고 가르친다. 해보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도전하고, 실패해도 "괜챃아, 멋진 도전이었어!"라고 스스로를 칭찬해주며 다음 기회를 위한 발판으로 삼으면 된다고 조언한다. 그러면 인생에 대한 두려움과 도전에 대한 망설임도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 라인홀드 니버, <평온을 비는 기도> 중.

 

 

좁았던 것은 집이 아니라 버리고 내려놓지 못한 마음, 이제 갖고 싶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니까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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