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가지면 더 행복해진다고 생각하지만 물질도 걱정과 불안도 비워야 행복이 더해진다.
[본문발췌]
'인생의 시간과 공간을 내 의지대로 디자인할 수 있는 삶'
전대미문의 사건을 맞아 고독하고 가슴 아픈 시간을 보내며 나는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 인간은 절대 혼자 살 수 없는 동물이다. 타인과 교류하고 다른 인간이나 생명체와 연결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둘째, 우리 영혼의 충만감과 평화로움을 위해 자연만큼 훌륭한 위로를 줄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셋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거나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은 행복의 필수조건이다. 무엇을 가지고 있든 얼마나 세속적인 성공을 이루었든 간체, 세상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거나 원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불행한 삶이란 없으며 반대로 무언가 부족해도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을 때 인간은 최고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믿는다.
순례길을 걸으며 알게 되었다. 혹시나 해서 가방에 넣었던 물건들 중에 실제로 필요한 건 별로 없다는 것을,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게를 좀 덜어내도 아무 문제 없다. 덜어낼수록 오히려 행복의 크기는 커질 수 있다.
도시인들은 빗방울 몇 개만 후드득 떨어져도 지붕 있는 곳으로 달아나거나 우산을 펴 드는 일에 익숙하다. 반면 순례자에겐 비를 맞으며 걷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란 없다. 비가 내리면 빗속을 걷고, 태양이 뜨면 햇살을 맞고, 바람이 불면 온몸으로 막아내야 한다. 전진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무엇이든 그저 버텨내야만 하는 것이다. 또 미끄러운 길에선 몸을 낮추고, 개울이 있으면 물에 빠질 각오로 건너는 수밖에 없다. 그저 내게 주어지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순응해야만 한다. 상황 탓, 컨디션 탓 하다 보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불가능하고, 자연의 아름다움도 즐길 수 없다. 실패나 좌절이 두려워 멈추어 선다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우리의 삶처럼 말이다.
처음엔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빗속을 걷는 일에 적응하는 것은 의외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비를 맞으면 옷이 젖을 것이고 결국 춥고 불편해질 거라는 생각에 몰입되지 않도록 시야를 넓히고 '지금'에 집중하니 금세 모든 것이 달리 보였다. '비가 내리면 맞으면 되는데, 뭐가 그리 두려웠었지? 빗물에 젖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고, 복구 불가능한 일도 아니잖아? 비가 그친 다음 해가 나서 젖은 것들이 마르면 자연스레 해결되는 일이니 말이야. 그저 태양이 다시 뜨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거였어. 그런 거였네.'
나는 순례자들이 그 길 위에서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얻어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걷는 이들도 자기의 인생 이야기를, 그 안에서 무르익는 생각을, 수많은 사연과 감정, 에너지를 그 길 위에 내려놓는다. 그것은 일종의 '작은 씨앗을 심는 과정'이며 길과 나누는 속 깊은 대화이다. 산티아고 길, 그곳에서 무엇을 얻을지도 중요하지만 내가 지나간 자리엔 무엇이 남겨질까 하는 것도 반드시 생각해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순례길은 세 단계로 나뉜다. 처음은 육체의 한계를 시험하는 시간이고, 다음은 정신과의 싸움이며 앞의 두 과정을 잘 거치고 나면 마지막에 심장이 열리는 경험을 선물받게 된다는 것이다.
"나에게 벌어져야 할 일은 나를 지나치지 않을 거라는 거야. 내가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결국은 벌어지게 되어 있다는 거지. 과거는 이미 내가 알지만 바꿀 수 없고 미래는 알 길이 없으니 현재를 살아야 해. 그저 현재에 집중해 살면서 받아들이는 것, 그게 인생인 것 같아."
카미노는 네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다, 대신 네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을 줄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뭘 원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몰라. 네가 뭘 원하는지를 생각하기보다는 그냥 이 길이 어떤 것을 줄지 마음 편안하게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즐기는 것도 좋을 거야.
Despues de tanto tiempo, el sol nunca le ha dicho a al tierra, 'Estas en deuda conmigo'. Imagina lo que puede hacer un amor asi. 태양은 그토록 많은 따뜻함과 빛을 뿌려 준 후에도 땅에게 '넌 나에게 빚졌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사랑을 그런 식으로 나눈다면 얼마나 대단한 일들이 벌어질지 상상해 볼지어다.
산에 올라오면 이렇게 잠깐 서서 풍경을 감상할 여유를 갖곤 하잖아. 근데 인생을 살 때는 자기가 높이 오른 줄 모르는 것 같아. 계속 올라가려 하기만 하고 즐기지 못해. 이만하면 됐다 하고 멈추어서 자기가 있는 자리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지.
인생이란 결국 그런 건가 보다. 누구나 가슴에 응어리 하나 정도 얹어 놓고 살아가는 것. 각자의 짐을 들고 걸어가는 것. 이제서야 조금 알 것도 같다. 카미노란 것이 그냥 발을 움직여 걷는 게 아니라는 것을, 카미노는 마음으로 걷는 것이다. 두 발이 아닌 하나의 마음으로.
인생에서든 순례길에서든 각자가 자기 선택에 책임을 지고 앞에 놓인 길을 즐겨야 한다. 가지 않은 길이 궁금하더라도 내 앞에 놓인 길에 집중하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다.
"인생은 당장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현재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기다리거나 미루지 말고요."
"운명이랄까, 뭐 그런 것이 우리 삶을 궁지로 몰며 힘들게 만들 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여러 가지예요. 가장 쉬운 길은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나 이제 다 그만둘래, 희망이 없어, 라고 불평하며 힘들어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건 병이 만드는 한계 속에 스스로 갇히는 거죠. 내가 선택한 길은 병이 닥쳤어도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하면서 인생이 주는 선물을 계속 즐기는 거였어요. 물론 그런다고 병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중요한 건 갑자기 닥친 불행이 내 삶을 지배하게 두지 않는 거예요. 내 인생은 나의 결정과 선택으로 내가 주도해야 하는 거니까요. 그 두 가지 길에는 큰 차이가 있어요."
종착지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든 생각은 '인생은 버텨내는 거구나.' 하는 것이다. 고난의 순간들이 있을 때 피하는 대신 버티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고통을 이겨내는 순간이 온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데에는 걸으면서 만나는 좋은 풍경이나 앞뒤에서 나처럼 힘든 것을 참고 걷는 사람들, 내 마음속에 피어나던 수많은 생각들이 도움이 되었다.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육체적인 고통이나 현실적인 문제에서 비롯되는 괴로움은 극복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얻었다. 어려움을 초월하는 큰 기쁨이나 목표가 있고 마음이 열릴 수 있으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것들이다. 이 순례의 과정도 아픈 발만 생각하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시야를 넓혀 주변을 보니 버틸 만했던 것처럼 말이다. 700km를 걸었는데도 상태가 너무 좋아서 내가 정말 그렇게 오랜 시간 걸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이다. 매일 걷다 보니 체력도 좋아졌지만 세상을 보는 관점과 마음가짐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똑같은 일도 내가 어떤 태도와 시각으로 바라볼 것인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로 빚어질 수 있다는 진리를 산티아고 길 위에서 배웠다. 힘든 상황을 견디고 버텨내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기억할 것이다.
실수하고 방황하고 실패하고 좌절하는 것은 곧 '인간'으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상처받거나 슬픔을 느끼고,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거나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 역시 삶의 일부다. 우리 인생은 필연적으로 어두운 그림자를 포함하고 있기에 그것을 직시하든 외면하든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원하지 않는 혹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일들이 벌어졌을 때 끝없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대신 그런 일이 우리 삶에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슬픔을 그저 짙은 슬픔으로만 묻어두는 대신 다른 빛깔의 옷을 입혀 간직하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드리워지는 인생의 그림자를 고통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삶을 성숙하게 하는 고마운 경험으로 끌어안을 수 있기를, 그러한 나를 이 길의 끝에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40일을 걸었다.
카미노가 주는 선물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800km를 걷고 나서 내가 알게 된 것은 결국 모든 것이 내 안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질문, 해답, 위로, 그리고 사랑. 모든 것이 이미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 산티아고 길을 걸어야 했고, 그 길을 걸었기에 이 소중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행복하다는 느낌과는 또 다른 충만감, 모든 것을 다시 얻은 듯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이것을 일종의 자신감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을 하든 별로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함으로 온몸과 마음이 꽉 차올랐다.
'4.읽고쓰기(reading & ess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시대의 영웅 - 미하일 레르몬토 (0) | 2023.07.15 |
---|---|
역설계 - 론 프리드먼 (0) | 2023.06.17 |
위대한 설계 - 스티브 호킹 (0) | 2023.05.27 |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 - 스티븐 호킹, 레오나르도 믈로디노프 (0) | 2023.05.20 |
더블린 사람들 - 제임스 조이스 (0) | 2023.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