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gh Risk, High Return!
주식, 코인 등 위험 자산에 투자하며, 선택의 이유 또는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외치는 구호가 아닐까?
위험(Risk)과 수익(Return)은 비례하지만 위험이 커질수록 수익의 변동폭도 같이 커진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투자하는 상품에 따라 위험, (기대)수익의 크기와 변동폭, 범위도 다양하므로 내 자산을  유지하고 키우기 위해 수익과 위험 사이의 최적화된 관계를 달성하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관리해야 한다. 불확실성을 최대한 제거한 상태에서 변동성을 낮추며 안정적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하워드 막스의 Memo를 통해 힌트를 얻어보자.


[본문발췌]

The essential decision in investing is how much emphasis one should put on preserving capital and how much on growing it. These two things are mostly mutually exclusive: Insistence on preserving capital – or, secondarily, on limiting the portfolio’s volatility – calls for an emphasis on defense, which precludes pursuing maximum growth. Correspondingly, a decision to strive to maximize growth requires an emphasis on offense, meaning preservation of capital and steadiness must be sacrificed to some degree.
투자에서 필수적인 결정은 자본 보존에 얼마나 중점을 두고, 자본 성장에 얼마나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입니다. 이 두 가지는 대부분 상호 배타적입니다. 자본 보존에 대한 고집(또는 두 번째로 포트폴리오의 변동성을 제한하는 것)은 방어에 중점을 두어야 하며, 이는 최대 성장을 추구하는 것을 배제합니다. 그에 따라 성장을 극대화하려는 결정은 공격에 중점을 두어야 하며, 이는 자본 보존과 안정성을 어느 정도 희생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You can’t simultaneously emphasize both preservation of capital and maximization of growth, or defense and offense. This is the fundamental, inescapable truth in investing. 
If you think about portfolio construction in this sense – looking for the right balance between offense and defense – it becomes clear that the goal should be optimization, not maximization. To my mind, it shouldn’t be “wealth,” but “wealth pursued in an appropriate way, taking into account the investor’s wants and needs.”
자본 보존과 성장 극대화, 또는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강조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투자에서 피할 수 없는 근본적 진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포트폴리오 구성을 생각해보면(공격과 방어 간의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 목표는 극대화가 아닌 최적화여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제 생각에는 "부"가 아니라 "투자자의 욕구와 필요를 고려하여 적절한 방식으로 추구하는 부"여야 합니다.

The absolute level of risk in a portfolio shouldn’t be an unwitting consequence of the asset allocation process described above, or of the search for superior risk-adjusted returns. The absolute risk level must be consciously targeted. In fact, in my view, it’s the most important thing. For an investment program to be successful, the level of risk in the portfolio must be well compensated and fall within the desired range . . . neither too much nor too little.
포트폴리오의 절대적 위험 수준은 위에서 설명한 자산 배분 프로세스나 우수한 위험 조정 수익에 대한 탐색의 무의식적인 결과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절대적 위험 수준은 의식적으로 타겟팅되어야 합니다. 사실, 제 생각에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투자 프로그램이 성공하려면 포트폴리오의 위험 수준이 잘 보상되어야 하고 원하는 범위 내에 있어야 합니다...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아야 합니다.


Which of the two is “better,” ownership or debt? We can’t say. In a market with any degree of efficiency – that is, rationality – it’s just a tradeoff. A higher expected return with further upside potential, at the cost of greater uncertainty, volatility, and downside risk? Or a more dependable but lower expected return, entailing less upside and less downside? The choice between the two is subjective, largely a function of the investor’s circumstances and attitude toward bearing risk. That means the answer will be different for different investors.
우리는 소유권과 부채,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효율성, 즉 합리성이 어느 정도 있는 시장에서는 그것은 단지 트레이드오프 관계일 뿐입니다. 더 큰 불확실성, 변동성, 하락 위험을 감수하고 더 높은 기대 수익률과 더 큰 상승 잠재력을 얻을 것인지 아니면 더 신뢰할 수 있지만 기대 수익률이 낮아 상승과 하락이 적은 것을 얻을지, 두 가지 중에서 선택하는 것은 주관적이며, 주로 투자자의 상황과 위험 감수에 대한 태도에 따라 달라집니다. 즉, 답은 투자자마다 다를 것입니다.


I’ve previously expressed my view that, as a starting point, every investor or their investment manager should identify their appropriate normal risk posture or offense/defense balance. For each individual or institution, this decision should be informed by the investor’s investment horizon, financial condition, income, needs, aspirations, responsibilities, and, crucially, intestinal fortitude, or their ability to stomach ups and downs.
저는 이전에 모든 투자자 또는 투자 관리자가 시작점으로서 적절한 정상적인 위험 자세 또는 공격/방어 균형을 파악해야 한다는 제 의견을 표명했습니다. 각 개인 또는 기관의 경우, 이 결정은 투자자의 투자 기간, 재정 상태, 소득, 필요, 열망, 책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심리적인 요소, 시장의 위아래로 움직이는 변동성을 견뎌낼 수 있는 능력에 따라 이루어져야 합니다.

Now, we see that as the thing called “risk” increases, not only does the expected return increase, but the range of possible outcomes becomes wider and the bad outcomes become worse. That’s risk!
이제 우리는 "위험"이라는 것이 증가함에 따라 기대 수익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가능한 결과의 범위가 더 넓어지고 나쁜 결과가 더 나빠진다는 것을 봅니다. 그것이 위험입니다!

 


Now it’s time for me to assert strenuously that, in reality, markets are not efficient in the academic sense of always being “right.” Markets may do an efficient job of (a) rapidly incorporating new information and (b) accurately reflecting the resulting consensus opinion concerning the right price for each asset given the totality of information, but that opinion can be far from correct. For that reason, gains can be achieved by choosing skillfully among the options:
some assets, markets or strategies can offer a better risk/return bargain than others, and some managers can operate within a market or strategy to produce superior risk-adjusted returns.
이제 저는 현실적으로 시장이 항상 "옳다"는 학문적 의미에서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할 때입니다. 시장은 (a) 새로운 정보를 빠르게 통합하고 (b) 정보의 총체를 감안할 때 각 자산의 적정 가격에 대한 합의 의견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효율적인 작업을 수행할 수 있지만, 그 의견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옵션 중에서 능숙하게 선택하면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일부 자산, 시장 또는 전략은 다른 자산, 시장 또는 전략보다 더 나은 위험/수익 거래를 제공할 수 있으며, 일부 관리자는 시장 또는 전략 내에서 운영하여 우수한 위험 조정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구글번역 활용)


[요약]

자산 배분을 ‘소유’와 ‘부채’ 두가지로 본다면 주식은 ‘소유’고 채권은 ‘부채’다. 이 둘의 성장 수익과 실패 손실을 ‘공유’ 할 것이냐, 고정 수입을 얻을 것이냐의 차이를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자본을 보존하는 것과 키우는 것은 상호 배타적이므로 균형을 찾아야 하는데, 이 균형은 ‘극대화’가 아니라 ‘최적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며 수익과 위험 사이의 최상의 관계를 달성하는 것이 목표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목표 위험 수준은 최종 결과값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위험 수준을 설정하고 그에 맞는 운용을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설계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소유 자산(주식)은 일반적으로 공격(수익) 관점에서 작동하고 부채(채권)은 방어관점에서 잘 작동하므로 공격/수비 비율은 투자자가 처한 환경과 시장의 변동성에 버틸 수 있는 심리적 능력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
또한 위험(Risk)과 수익(Return)은 비례하지만 선형은 아니며 위험이 커질수록 수익의 변동폭도 같이 커진다는 것을 알고 포트폴리오 비중을 결정해야 한다.

시장 참여자들은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려고 노력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기에 더 나은 선택과 운용을 통해 초과 이익이 가능하다. 

최근과 같이 비투자등급 신용 수익율이 유리한 구간에서는 불확실성을 제거한 상태에서 변동성을 낮추며 고정 수익률을 안정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https://www.oaktreecapital.com/insights/memo/ruminating-on-asset-allo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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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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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를 보면 경제적 자유는 “인권의 자유권 중 하나로 사람의 경제 활동을 인권으로 보장하는 것이 목적이다.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기업이나 부유층에서 말하는 경제적 자유와 경제 생활에 있어 독립되어 의지에 반하는 행위를 하지 않을 경제적 자유로 나뉜다.”고 기술한다. 

직장인들사이 이야기되는 파이어족은 '경제적 자립(Financial Independence)'을 토대로 자발적 '조기 은퇴(Retire Early)'를 추진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로, 파이어족이 추구하는 것도 경제적 자유다.

결국 돈 걱정 없이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의미로 쓰는 경제적 자유는 ‘의지에 반하는 행위를 하지 않을 경제적 자유’에 가깝다. 그렇다면 돈 걱정, 의지에 반하는 행위를 하지 않을 경제적 자유의 기준은 무엇일까? 

명확한 기준이 있다면 좋겠지만 사람마다의 처한 환경, 가족 구성, 라이프스타일 등에 따라 경제적 자유를 위한 필요 자원의 규모가 다르고 소유와 소비에 대한 성향에 따라 기준점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경제적 자유는 행복과 비슷하게 상대적 기준점이 작용한다. 행복을 기대수준 대비 만족도라고 하면 개인에 따른 기대수준의 높낮이, 만족을 느끼는 수용도에 따라 행복의 기준점이 달라질 수 있듯이 경제적 자유도 기대하는 보유 자산과 생활에 필요한 자금의 수준에 따라 경제적 자유를 위한 기준점이 달라질 것이다.

여하튼 뭔가 기준이 있어야 경제적 자유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의 고민이 시작된다.

앞에서 말한 ‘경제 생활에 있어 독립되어 의지에 반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생활에 필요한 적정 수준의 돈이라는 것에서 생각을 시작해보자.
그럼 적정 수준은 얼마일까? 이것도 생각하기 나름이고 기준을 잡기 어렵기 때문에 현재 수준에서 내가 일년 생활하는 데 사용한 돈이나 나의 1년 연봉, 또는 현실적인 나의 1년 수입을 시작점으로 1년 동안 생활에 필요한 돈의 규모가 기준점이 될 수 있다. 여기에는 내가 처한 환경, 가족 구성, 소비 수준과 성향, 라이프스타일 등이 어느정도 반영되었다고 가정한다.
예를 들어 “1년에 평균 5천만원을 쓸 수 있다면 돈 걱정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다” 라고 기준을 잡았다면 나에게 경제적 자유란, 독립되어 의지에 반하는 행위를 하지 않으며 매년 5천만원 정도 현금흐름이 발생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드는 것이다. 단, 여기에 물가인상 등 다른 부차적인 문제도 나중에 고려할 부분이다.

상황에 따라 목표 수준이 변경될 수 있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목표 초기값이 있어야 발을 뗄 수 있으니 개인의 환경을 고려해 경제적 자유를 위한 목표 수준을 정해보자.





01. 경제적 자유란?
02. 경제적 자유를 위한 안정적 현금흐름 구성하기
03. 물건도, 투자도 싸게 사야 수익을 낸다 
04. 배당 재투자로 자산 불리기
05. 기하평균, 복리의 마법
06. 시간에 투자하기
07. 나는 경제적 자유를 이루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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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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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일상은 삶을 권태롭게 한다.
잠시 멈춰 과거와 현재를 음미해보는 것, 반성하고 의심하고 꿈과 열정을 갖는 것, 일상을 바꿔 새로운 길과 새로운 일들을 시도해 보는 것이 삶의 의미와 풍성함, 행복을 느끼는 방법일 수 있다.
 

[본문발췌]
 
연필의 다섯 가지 특징, 그걸 네 것으로 할 수 있다면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게야

  • 네가 장차 커서 큰일을 하게 될 수도 있겠지? 그때 연필을 이끄는 손과 같은 존재가 네게 있음을 알려줄거다. 명심하렴. 우리는 그 존재를 신이라고 부르지. 그분은 언제나 너를 당신 뜻대로 인도하신단다.
  • 가끔은 쓰던 걸 멈추고 연필을 깍아야 할 때도 있다는 사실이야. 당장은 좀 아파도 심을 더 예리하게 쓸 수 있지. 너도 그렇게 고통과 슬픔을 견뎌내는 법을 배워야 해. 그래야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게야.
  • 실수를 지울 수 있도록 지우개가 달려 있다는 점이란다. 잘못된 걸 바로잡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오히려 우리가 옳은 길을 걷도록 이끌어주지.
  • 연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외피를 감싼 나무가 아니라 그 안에 든 심이라는 거야. 그러니 늘 네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렴.
  • 연필이 항상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이야. 마찬가지로 네가 살면서 행하는 모든 일 역시 흔적을 남긴다는 걸 명심하려. 우리는 스스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늘 의식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란다.

 

먼 훗날 어딘선가
나는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겁니다.
숲속엔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 "로버트 프로스트"
 
 
뭔가를 원한다면, 먼저 상대와 눈을 맞추십시오. 세상의 어떤 소통 방식도 눈을 맞추는 것보다 나은 것은 없습니다.
 
 
새로운 긴 하루가 시작된다. 신문, TV 뉴스, 정원일, 점심, 짧은 취침.... 원하면 뭐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아무런 의욕이 없음을 돌연 깨닫는다. 마누엘은 자유롭지만 우울증에 걸리기 직전이다. 삶의 의미를 곱씹기에는 늘 너무 바쁜 나날들을 보냈고, 그저 세월이 다리 아래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었다. 한 시인의 말이 떠오른다. "그의 삶은 흘러갔네 / 그는 삶을 살지 않았다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변화를 추구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생각을 딴 데로 돌리는 게 최선이다. 그렇게 힘겹게 얻은 자유 속에서 그는 가면을 쓴 채 떠돈다.
 
 
'그는 살아서 죽었다', 말장난이나 모순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나는 일하고 먹고, 열심히 일상을 꾸려나가면서도 살아 있지 못한 사람들을 많이 봐왔어요. 그들은 하루하루 펼쳐지는 삶의 기적에 대해 되새겨보기 위해 잠시 멈추지도 않고, 다가오는 시간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채 기계적으로 살고 있지요.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가장 중요한 일 : 귀 기울여야 했던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
   일어나지도 않은 일 때문에 미리 걱정하는 친구들,
   터무니없어 보이는 일로 인생을 낭비하는 지인들,
   의미 없는 대화들,
   핵심이 없는 길고 지루한 전화 통화들,
   자릿값을 하느라 일거리를 만들어내는 상사들,
   하루라도 중요한 업무를 맡지 못하면 책상이 없어질까 초조해하는 직장인들,
   저녁에 아이들을 내보내고 전전긍긍하는 어머니들,
   공부와 시험에 시달리는 학생들....
 
 
성스러운 순간 (기도문)
   주여, 우리의 의심을 지켜주소서. 의심 또한 기도하는 한 방법입니다. 의심은 우리를 성장하게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의 문제에 대한 많은 답들과 두려움 없이 마주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주여, 우리의 결정을 지켜주소서. 결정 또한 기도하는 한 방법입니다. 우리의 의심을 이기고, 이 길과 저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용기와 능력을 주소서. 우리의 긍정이 늘 긍정이도록, 우리의 부정이 늘 부정이도록 하소서. 한번 결정한 길은 뒤돌아보지 않도록, 후회가 우리의 영혼을 잠식하지 않도록 하소서. 그러기 위하여....
   주여, 우리의 행동을 지켜주소서. 행동 또한 기도하는 한 방법입니다.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우리가 맺는 가장 좋은 열매가 되게 하소서. 노동과 행동을 통해 우리가 받을 사랑을 나누게 하소서. 그러기 위하여...
   주여, 우리의 꿈을 지켜주소서. 꿈 또한 기도하는 한 방법입니다. 나이와 외적 조건에 상관없이 가슴속에 성스러운 희망과 인내의 불씨를 품게 하소서. 그러기 위하여....
   주여, 우리에게 열정을 주소서. 열정 또한 기도하는 한 방법입니다. 우리를 하늘과 땅, 어른이나 어린아이들과 결합케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니. 열정은 우리의 욕구가 중요함을 일깨워주고 최선을 다하도록 북돋워줍니다. 우리가 하는 일과 혼연일체가 되어 있는 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열정은 재삼 확인해줍니다. 그러기 위하여....
   주여, 우리를 지켜주소서. 생명은 우리가 당신의 기적을 다시 펼쳐 보일 유일한 길입니다. 이제까지 그랬듯 땅이 씨앗을 낟알로 여물게 하시고, 밀알을 빵으로 만들게 하소서.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사랑이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그러니, 우리를 외롭게 하지 마소서. 언제나 우리 곁에 머물러 계시며, 의심하고 행동하고 꿈과 열정을 품은 사람들, 매일매일 당신께 영광 돌리는 삶을 이들과 더불어 함께하게 하소서. 아멘
 
 
가난한 마음은 행복하다. "받은 게 있으면, 베풀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죠."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사는 동안 쓸데없는 일들을 걱정하고, 일을 미루고, 중요한 순간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스쳐지나간다.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고, 늘 푸념하면서도 막상 행동하기는 두려워한다. 모든 것이 달라지길 바라면서도 스스로는 변화하려들지 않는다.
죽음에 대해 조금만 더 생각한다면, 오랫동안 미뤄온 전화 통화를 더는 미루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 삶은 지금보다는 좀더 활기를 띠게 될 것이고, 육신의 종말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어차피 일어날 일을 두려워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인디언들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을 떠나기에 특별히 좋은 날은 없다.'
한 현자는 이렇게 말했다. '죽음은 언제나 당신 곁에 있다. 그리고 당신이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할 때 필요한 힘과 용기를 주는 것은 바로 그 죽음이다.'
나는 그 경지에 이르기를 바란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어리석다. 우리 모두 이르든 늦든 언젠가 죽는다. 그리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자만이 삶 앞에 준비된 자이다.
 
 
왜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행동해보려고 하지 않는 걸까?
 
 
모든 사람에게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행복'이란 나 자신이 충만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지, 꼭 타인이 만족을 느끼게 하는 것일 필요는 없다.
 
 
현재의 모든 행동과 사건은 '결과'라는 형태로 미래에 영향을 미치며, '반성' 이라는 형태로 과거에 영향을 미친다.
 
 
그럼 이렇게 말해주세요. 사막보다 수명이 훨씬 짧은 인간들도 자신이 쓸모없다고 생각하면서 긴 세월을 허비한다고요. 인간은 자신의 진정한 운명을 발견하는 경우가 드물고, 신이 불공평하다고 느낀다고요. 어렵사리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발견한다 해도 어차피 늦었다며 삶을 바꾸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고요. 사람도 사막처럼 괴로워하며 헛되이 보낸 세월을 원망하는 편을 택하곤 하죠.
 
 
우리 어른들이 갖고 있는 우주에 대한 이해를 어린이들에게 강요하는 대신, 우리는 우리가 어린 시절에 갖고 있던, 아직 대답을 듣지 못한 질문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죽으면 어디로 가나요?
   화성인과 외계인은 존재하나요?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도 사고를 당하는 이유는 뭔가요?
   신은 어떤 존재인가요?
   우리가 결국 죽을 거라면 왜 태어나야 하나요?
   하늘의 별은 몇 개나 되나요?
   누가 전쟁과 행복을 만들어냈나요?
   왜 가난하거나 병든 사람들이 존재하나요?
   왜 하느님은 모기나 파리를 만들었나요?.....
 
 
 
누구나 살면서 피해갈 수 없는 비극과 맞닥뜨리는 때가 있다. 살고 있는 도시가 파괴되거나, 아이가 먼저 세상을 떠나거나, 근거 없는 비난을 받으며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갑자기 불치의 병에 걸리기도 한다. 삶은 위기의 연속이며, 이 사실을 망각한 사람은 운명이 준비한 도전에 무방비상태로 맞서게 된다. 고통에 직면할 때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일어난 사건의 의미를 묻고 두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하는 것뿐이다.
고통과 위기가 닥치면, 우선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감정을 우리와는 아무 상관 없는 것처럼 대해서도 안되고, 매사 자책하던 것처럼 벌을 받는 거라고 여겨서도 안된다.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심리적인 것이든, 거대한 상실과 마주할 때, 우리는 현자의 가르침을 기억해야 한다. 인내, 그리고 삶의 모든 것은 한시적이라는 깨달음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삶의 가치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세상이 다시 안전한 곳이 되지 못한다면, 적어도 수년안에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이 변화를 늘 하고 싶었지만 용기를 내지 못했던 일을 할 기회로 삼지 못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인간 존재의 흥미로움
   한 남자가 내 친구 제이미 코언에게 물었다;
   "사람의 가장 우스운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코언이 대답했다.
   "모순이죠. 어렸을 땐 어른이 되고 싶어 안달하다가도, 막상 어른이 되어서는 잃어버린 유년을 그리워해요. 돈을 버느라 건강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가도, 훗날 건강을 되찾는 데 전 재산을 투자합니다. 미래에 골몰하느라 현재를 소홀히 하다가, 결국에는 현재도 미래도 놓쳐버리고요. 영원히 죽지 않을 듯 살다가 살아보지도 못한 것처럼 죽어가죠."
 
 
실수하라, 즐겁게
   "신은 위대한 예술가다. 그는 기린과 코끼리, 개미를 창조했다. 그는 그 어떤 양식도 따르려 한 적이 없다. 그저 그가 느끼는 대로 했을 뿐이다." - 파블로 피카소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면 매순간 당신의 의견을 바꾸어보라. 부디 자기모순에 빠지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그것은 우리의 권리이다. 다른 이들이 어떻게 여기건 상관하지 마라.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든 간에 그들은 그들 방식으로 생각하게 될 테니까.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려고 마음먹으면 정도를 넘어서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오믈렛을 만들기 위해선 달걀부터 깨뜨려야 한다'는 오래된 속담처럼. 예상치 못한 갈등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갈등으로부터 상처가 생기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흉터는 남겠지만 아픔은 지나가게 마련이다.
   자신의 실패를 실수로 여기지 않고, 진정한 자아를 만나는 길로 이끄는 발걸음으로 여긴다.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입에서 나오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남을 돕는 것.
 
 
긴장해야 할 때는, 오직 그것을 필요로 하는 곳에만 초점을 맞춰라. 힘을 아끼고, 활과 더불어 배우라. 과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동작보다는 목표에 집중하는 것이 더 유용하다는 사실을...
활을 쏘는 순간은 본능적으로 감지된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활과 화살, 과녁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삶의 도전에 응할 때도, 완벽하게 움직이는 데도 직관은 필요하다. 완벽히 습득한 후에야 우리는 테크닉을 완전히 잊을 수 있는 것이다.
 
 
참 부끄러운 일이에요. 사람들이 서로를 가르는 차이점만을 본다는 건 말이죠. 좀더 애정을 가지면, 우리가 가진 공통점들이 먼저 보일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이 세상의 문제가 반은 풀릴 거고요.
 
 
'시간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의지의 힘도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변화를 가능케 하는 것은 오직 사랑이다.' - 헨리 드루먼드
 
 
"오늘 길을 가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다행히 우산과 외투가 있긴 했지만 문제는 그게 멀찌감치 주차한 차 트렁크 안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차를 향해 달리며 나는 생각했습니다. 지금 신께서 내게 기묘한 메시지를 보내고 계신 건 아닐까? 우리는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만나는 폭풍에 대비해 필요한 것을 늘 챙겨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대개 우리 가슴 깊숙이 갇혀 있어 막상 필요할 때 찾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되지요. 그리고 그것을 찾는 건 이미 역경에 패한 뒤입니다."  항상 준비하자.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기회를 놓치거나 싸움에 지게 된다.
 
 
폭풍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여느 폭풍처럼, 이것 역시 재해를 몰고 올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폭풍은 들판을 적셔주고 하늘의 지혜를 알려준다. 그리고 여느 폭풍처럼, 그것은 곧 지나갈 것이다. 사나울수록 폭풍은 빨리 지나간다.
 
 
 
마지막 기도문

의미 없는 천 마디의 말보다 마음에 평화를 부르는 한 마디 말이기를,
현란한 천 편의 시보다 영혼의 잠을 깨우는 단 한 줄의 시이기를,
귓가를 스쳐가는 천 곡의 노래보다 심금을 울리는 한 곡의 노래이기를. - (법구경)
  

저 밖에, 옳고 그름 너머 광대한 들판이 존재하느니.
우리는 거기서 만나리라. -  (메블라나 잘랄루딘 루미)
  

오 알라여, 당신은 모든 것을 아시고 숨겨진 것도 아시나니 제게 가르쳐주소서.
지금 제가 행하는 일이 지금과 미래의 저 자신과 제 믿음과 제 사람에 유용한 것이라면, 이 일을 수월하게 하시고 축복하소서.
지금 제가 행하는 일이 지금고 미래의 저 자신과 제 믿음과 제 사람에 해로운 것이라면, 제게서 이 일을 거두소서. - (선지자 무함마드)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 구하는 이마다 구할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 (나사렛 예수, 마태복음 7장 7~8절)
  
   
주의 길을 좇아 우리도 주의 산으로 올라가자. 우리의 칼을 쟁기로 바꾸고, 우리의 창을 낫으로 바꾸자. 민족이 민족에게 칼을 휘두르지 않고, 더는 전쟁에 대해 배우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이것은 주께서 주신 말씀이니. - (평화를 위한 유대인의 기도)
  
 
세상에 평화가 오려면 백성이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
백성들이 평화롭게 살려면 부족들 간에 싸움이 없어야 한다.
부족들 간에 싸움이 그치려면, 이웃 간에 분란이 없어야 한다.
이웃 간에 분란이 없으려면, 가정이 화목해야 한다.
가정이 화목하려면, 각자의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  (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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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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