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등 금융상품 시장은 종목에 대한 분석과 이해를 통한 이성적 판단에 의해서만 돌아가지 않는다.

사람사이의 거래 관계이기에 심리적 요인이 많이 작용하고, 여유와 기다림 없이 서두르면 실패할 수 밖에 없다.

 

 

[본문발췌]

 

 

성공적인 투자는 위험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관리하는 것이다. - 제이슨 츠바이크

 

 

단기적으로 우매한 대중 행동의 장기적 합은 합리적이다. 대중은 우매하다. 그런데 이런 행동의 장기적 합은 매우 현명하다. 우리나라 전체 상장 기업이 장기적인 흐름을 분석해 보면 놀랍게도 주가는 순자산의 증가 속도와 비슷하게 간다. 시점과 종점을 언제로 잡느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전체적인 경향은 일치한다. 이는 미국의 연구 결과와도 비슷하다. ... 주식 시장의 장기적 합리성은 대중의 이런 단기적 비합리적 행동들이 중첩된 결과로 나온다. 이런 면에서 주식 시장은 '창발적'이다. 창발성이란, 하위의 구성 요소들로 이루어지는 상위의 산출물에 하위 요소들을 가지고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특성이 생기는 현상을 총칭한다. 또한 창발성은 '복잡계'를 대표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나는 개인 투자자들을 '개미'라고 처음 부른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 그야말로 멋진 은유적 표현이다. 개미들은 자신들이 모인 집단의 합리성을 알지 못한다. 주식 시장에서 나타나는 장기적 합리성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지능이나 안정성에 관해서는 전혀 생각이 없는 개미들의 집합이 놀라운 지능적 특성을 보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주식 시장의 단기적 움직임은 예측하기가 힘든 반면, 장기적 움직임은 예측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장기적 움직임을 예측하는 데도 데이터가 너무 방대하고 노이즈가 산재해 있어 이를 극복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데이터 처리 능력이 제한된 개인이 이런 일을 하려면 인자의 수를 대폭 줄이고 모델을 최대한 간명하게 하면 장기적으로 유의미한 모델을 만들 수 있다. 간단한 예는 PBR이 1 미만이고, PER 7 미만인 주식을 20개 사서 1년을 기다린다는 식의 모델이다.

 

 

수치적 실험을 해 보면 주식 시장이 얼마나 불합리한 상태에 놓였던 적이 많았는지, 얼마나 수익의 기회가 많았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수치적 조사 결과 하나하나가 반드시 투자에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이런 작은 빌딩 블록이 모여 하나의 추상화된 산출물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 추상화된 산출물들은 다시 모여 더 높은 추상적 산출물을 만든다. 마치 우리의 사고 과정이 겹겹의 추상화 레벨을 누적시켜 가듯이 투자 알고리즘도 그렇게 진화한다. 앞으로의 시장은 알고리즘들의 전쟁터가 될 것이다. 일반 투자자들이 이러한 알고리즘을 만들 수는 없지만 이런 조그만 빌딩 블록들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뿐 아니라 자신의 투자 운명을 좌우할 '장기적' 미래가 확률에 따라 움직인다는 평범한 진리를 알고 시장에서 느긋하게 행동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데카르트-뉴튼 방식의 사고에 젖은 현대인들은 사물을 쪼개고 쪼개서 들어가면 결국 문제의 본질을 볼 수 있을 거라 상상하곤 한다. 모든 현상에 대해 '결정론적인'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뉴런의 화학적 교신을 분석해서 사람의 생각을 알아낼 수 있다는 낭만적인 생각을 하는 인지물리학자들도 있다. 그 위에 열 겹도 더 되는 추상화의 단계를 거쳐야 실체가 드러날 사고 작용의 비밀을 말단의 분자 레벨에서 기대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이며 유명한 수학 프로그램 매스매티카를 만든 천재 스티븐 울프람은 '문지기의 꿈Janitor's Dream'이라는 표현을 썼다. 좀 거칠게 표현하면 '무식한 낭만' 정도가 된다. 주식 시장은 이런 낭만을 기대하는 문지기의 꿈들로 가득하다. 모든 것을 다 아는 투자의 신이 있다고 기대한다. 그래서 시중에는 백발백중 모드의 사이비 투자 교주들이 먹고살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다. 시장에 대해서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하고, 어떤 성공적인 투자든 그 과정에는 상당한 실패가 혼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투자는 확률 게임이고, 수리적 게임이다. 내가 생각하는 투자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 키워드는 수리적 능력, 데이터 처리, 최적화 기법이다. 일반 투자자들이 본격적인 최적화 기법을 구사할 수는 없겠지만, 공부를 통해 수리적 마인드를 가질 수는 있다. 경우에 따라 조그만 규모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작업 정도는 할 수 있다. 

 

 

주식 시장에서 평균적인 행동이 가장 비합리적인 집단은 개인 투자자들이다. 그들은 지식과 경험이라는 면에서 가장 덜 갖추어진 집단이다. 그래서 대부분 그들의 수익률은 시장 수익률보다 많이 밑돈다. 그렇지만 이들은 시장에 아주 생산적인 기여를 한다. 이들의 비합리적인 행동은 시장에 노이즈를 제공한다. 잦은 거래로 국가에는 세금을, 증권사에는 수수료를 선물한다. 시장에 유동성을 제공하는 중요한 참가자들이다. 이들은 시장이 역동성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시장의 관점에서 보면 순수하게 공익적인 목적으로만 존재하는 투자자, 즉 공익 투자자가 되는 것이다. 시중의 용어로는 봉이 되는 것이고. 물론, 공익을 목적으로 투자를 시작하는 개인은 없다. 그렇지만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98%쯤의 개인 투자자는 공익 투자자로 자신의 투자 경력을 마무리한다.

 

 

주가는 장기적으로 합리적이다. 주가와 장부 가치(순자산, 자본총계)의 동행한다. 주식 시장이라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노이즈와 군중 심리, 돌발 사건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어떻게 움직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장부 가치의 증가를 따를 수밖에 없다. 

 

 

찰리와 나는 기복 없이 매끄럽게 연간 12%의 수익을 올리는 것보다 들쑥날쑥하더라도 연 15% 수익 쪽을 택하겠다. 수익률은 하루나 1주일 단위로는 크게 진동한다. 지구의 공전 궤도와 같은 수준의 매끄러움이 왜 필요하단 말인가? - 워런 버핏

 

 

머튼과 숄즈가 주도한 LTCM에 대해 에드워드 소프는 "두 사람은 극단적 위험과 굵은 꼬리 분포에 노출되는 상황을 켈리 시스템이 어떻게 통제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수익률 분포의 양쪽 끝 영역에서는 전혀 정규분포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운용 전략에서는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이런 위험을 줄이는 장치가 여러 겹 포함되어 있어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한 종목을 사는 것보다 여러 종목을 사는 것이 변동성이 작아 산술 평균은 동일하지만 기하 수익이 더 커진다고 했다. 이것이 분산 투자를 해야 하는 이유다. 이를 '횡적' 분산 투자라 하자. 반면에 '종적' 분산 투자도 있는데, 시간에 따라 나누어 사는 것을 말한다. 한 종목을 사더라도 하루에 다 사는 것보다 여러 날에 걸쳐서 사는 것이 변동성이 작다. 이동 평균선을 상상해 보라. 매일 매일의 주가보다 이동 평균선이 훨씬 부드럽다. 이것은 한 번에 주식을 사는 것보다 여러 날에 나누어서 사는 것이 변동성이 작다는 것을 시사한다. ... 이것은 주식을 사는 또 한 가지의 핵심적인 요령을 말해 준다. 여러 주식에 분산 투자하고 아울러 여러날에 분산 투자하면 두 단계로 변동성을 줄여 두 단계로 수익률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이런 전략으로 몇 달 만에 결실을 보려하면 별로 기쁜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여러 해를 시행해 보면 확실히 차이가 난다. 이런 관리 기술이 수익률을 조금씩 더 높여 주는 것이다.

 

 

시장은 예측의 영역이 아니라 대응의 영역이다. 주식을 사고파는 최적의 타이밍을 맞출 수는 없고, 그런 시도를 하다 보면 결정적인 수익의 기회를 놓칠 가능성이 높다. 2-3년의 윈도우로 시장을 보면 6개월이나 1년 정도의 하락은 충분히 견딜 만합니다. 다만 수익을 최대화하고 손실을 최소화하는 데 유리한 특징을 가진 종목의 집합으로 바꾸어 가면서 현명한 운용 전략과 함께 견디는 겁니다. 우리는 항상 시장에 있습니다.

 

 

단기 실적만을 판단 기준으로 삼으려 할 때마다 이 점을 생각하라. 눈에 보이는 그 실적의 대부분이 능력이 아니라 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 커티스 페이스

 

 

느긋한 호흡과 문화가 필요하다. 대다수 주식 투자자의 호흡은 너무 가쁘다. 내가 생각한는 건강한 투자자의 제 1 덕목은 주식을 사놓고 편한 잠을 청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신문에서 지난 일주일간, 1개월간 어떤 펀드가 선방했느니 하는 기사는 투자 문화를 조급하게 만든다. 적어도 몇 년간의 결과를 놓고 실력을 말해야 한다. 수익에 대해서 긴 호흡으로 보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그래야 투자 시장의 정서가 점잖아지고 호흡이 편안해진다.

 

 

토마스 쿤이 그의 역작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제기한 핵심 주제는 패러다임의 전환에 관한 것이다. 패러다임은 어떤 과학 공동체에서 통용되는 이론 체계를 말한다. 패러다임이 변한다는 것은 기득권자들에게는 매우 불편하고 위험한 일이다. 오랜 시간 그들이 전문가로서 행동해 온 기반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좀처럼 자신이 기반을 두고 구축해온 패러다임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과정에는 흔히 억지로 절충을 시도하는 단계를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모델들은 지저분하다. 기존의 패러다임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 대부분을 새로운 패러다임이 해결하는 상태에 이르러 자명해질 때까지 버틴다. 금융 투자에도 패러다임 변화가 지속되고 있다.... 앞선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구식 패러다임에 속한 사람들이 그랬듯 기계가 완전히 시장을 장악하고 사람에 의한 투자는 화석 같은 존재로 변해갈 무렵에야 완전히 항복하게 될 것이다.

 

 

시장은 원래 그렇게 오르고 내리고 한다. "오늘은 왜 이렇게 내리지?", "오늘은 왜 이렇게 오르지?"라는 질문은 1년을 놓고 보면 별 의미가 없다. 1년의 결과를 놓고 보면 항상 체감도가 높은 등락일이 많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체감도가 높은 등락일이 있으면 그건 원래 그런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주식이 제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삐뚤삐뚤 가고 있는 것이라고. ... 추세선에서 멀어지는 움직임들은 시작과 끝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 노이즈다. 매일 매일의 등락에 신경을 쓰지 않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좋다. 좀 긴 단위의 움직임을 보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뉴스는 잡음이다. 투자 정보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시장에 잡음을 주는 뉴스, 잡음을 주는 투자자의 비이성적 탐욕, 공포, 이런 것들이 없다면 평균을 넘는 수익을 올리는 투자는 정말로 힘들어진다. 다행히 전 세계 모든 시장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잡음투성이의 잔치판이다. 판세를 1년 이상의 관점에서 확률적으로 접근할 수 있고, 투자 결산을 3년 단위로 할 수 있는 정신적 힘만 있다면 이 시장은 거의 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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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 용감하다고 한다. 우연에서 얻은 이익을 스스로의 능력으로 오인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주변 정보에 혹해서 손실을 보는 사례가 많은데도 보려고, 기억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시장은 생물이기에 예측할 수 없다. 항상 겸손하고, 정확하고 필요한 정보를 찾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감정이 아니라 침착함과 인내가 있어야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다.

 

 

[본문발췌]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실행에 옮겼을 때 비로소 진짜 지식이 된다.

 

 

위험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데서 온다. Risk comes from not knowing what you're doing. - 워런 버핏 Warren Buffett

 

 

부자들은 1%의 승률로도 돈을 벌지만, 가난한 자는 99%의 승률에도 돈을 잃는다! 주식으로 돈을 못 버는 건 대부분 승률의 문제라기보다는 손실의 문제이다.

 

 

재무제표는 좋은 종목을 찾는 데 유리할까, 안 좋은 종목을 거르는 데 유용할까? 냉정하게 말해서 후자다. 재무제표를 분서해서 신약개발의 성공, 해외시장 신규수주 등 미래의 소위 대박을 점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당장 1년 안에 갚아야 할 부채가 얼마인지, 소송이 걸려 있거나 다른 회사에 보증을 서고 있지 않은지, 고금리의 차입금은 없는지 등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증권사보다는 은행에서 활발히 재무제표를 분서한다. 문제 있는 회사를 걸러내기 위해 재무제표가 유용하기 때문이다. ... 투자의 관심은 좋은 기업이겠지만, 투자자가 알아야 할 것은 '나쁜 기업을 피하는 방법'이다.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좋은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기업을 싸게 사는 것'이다.

 

 

가치평가를 할 수 없다면 싸게 살 수도, 비싸게 팔 수도 없다. 투자를 '가치투자'와 '성장주 투자' 등으로 구분하는 경우가 있는데, 필자의 생각에 모든 투자자는 가치투자자이다. 성장주에 투자하는 사람은 성장을 회사의 가치로 보는 것이고, 차트를 보고 투자하는 사람은 차트의 흐름에 투자자들의 가치판단이 반영되므로 역으로 이를 추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누구든 주식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팔기를 바란다. 싸거나 비싸다고 판단하는 기준이 있으면 그것이 바로 가치평가이고 그 방법이 가치투자가 될 것이다. 만약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없다면 그것은 투자가 아니라 투기로 보아야 할 것이다.

 

 

투자에서 손익과 손실은 분리할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 앙드레 코스톨라니 Andre Kostolany

 

 

이익이 확실할 때만 움직이십시오. 이건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승산을 이해해야 하고, 유리할 때만 배팅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 찰리 멍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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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통해 역사를 배우고, 현재를 해석하며 미래를 살아가는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본문발췌]

 

 

세상은 죽을 때까지도 전체를 다 볼 수 없을 만큼 크고 넓으며, 삶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축복이다. 인간은 이 세상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살러 온 존재이며, 인생에는 가치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여러 길이 있다. 그리고 어느 길에서라도 스스로 인간다움을 잘 가꾸기만 하면 기쁨과 보람과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아무리 선한 목적도 악한 수단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살인을 저지른 주인공이 겪었던 정신적 정서적 고통을 절절하게 그렸다. 또한 유형지에 따라간 소냐가 비슷한 고통을 겪는 죄수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모습을 따뜻하게 묘사했다. 그리고 마침내 유형지 작업장 통나무 더미 위에서 라스꼴리니꼬프가 소냐의 발에 몸을 던져 키스하는 장면을 통해 주인공이 죄를 인정하고 심리적 고통에서 해방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아무리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인간은 악한 수단을 사용한 데 따르는 정신적 고통을 벗어나지 못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죄를 지으면 벌을 면하지 못하는 게 삶의 이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다른 맥락에서 볼 수도 있다.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악한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 따지는 것은, 악한 수단으로 선한 목적을 이룰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나는 이 전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정당성 여부를 따지기 전에, 악한 수단으로는 선한 목적을 절대 이루지 못한다고 믿는다. 이것은 어떤 연역적, 논리적인 추론의 산물이 아니다.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건들을 보고 체험한 끝에 얻은 경험적, 직관적 판단이다.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리영희 선생은 말한다. 진실, 진리, 끝없는 성찰, 그리고 인식과 삶을 일치시키려는 신념과 지조. 진리를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용기. 지식인은 이런 것들과 더불어 산다.

 

 

사람이 어떤 문제를 인지할 수 있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거나 회피할 능력을 가진 존재임을 왜 맬서스는 인정하지 않았을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힘든 날들을 참고 견뎌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 되리니 - 푸시킨

 

 

사람은 다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고 하는 까닭은,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고 하는 것을 보면 누구나 깜짝 놀라고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되니, 이는 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기 위한 것도 아니요, 마을 사람과 친구들한테서 널리 명예를 얻기 위함도 아니며, 또한 이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싫어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이렇게 볼 때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겸손히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옮고 그름을 가리려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측은지심이 인仁의 시작이며 수오지심이 의義의 시작이며 사양지심이 예禮의 시작이며 시비지심이 지智의 시작이다. '맹자', 《공손추 상》

 

 

보수가 이념이 아니라 "연속성과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전통적인 제도와 관습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라면, 맹자는 정말 멋진 보수주의자였다고 할 수 있다. 흔히들 보수가 물질적 이익과 세속적 출세를 탐낸다고 하지만 진짜 보수주의자는 이익이 아니라 가치를 탐한다. 진짜 보수주의자는 다른 누군가와 싸우는 전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면에 정체성의 닻을 내린다. 진짜 보수주의자는 타인을 비난하기에 앞서 자신을 성찰한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누가 자기를 알아주지 않아도 실의에 빠지지 않으며 깊은 어둠속에서도 스스로 빛난다. 

 

 

정치는 위대한 사업이다. 짐승의 비천함을 감수하면서 야수적 탐욕과 싸워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한신과 유방이 빛을 좇는 불나방처럼 권력을 향한 본능에 이끌려 투쟁의 소용돌이에 뛰어들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덕德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인의仁義를 존중하려고 노력했다. 그만하면 충분하지 아니한가. 비록 성인의 반열에 오를 만한 덕성을 갖추지 못했다 할지라도, 때로 맹목적 욕망과 시기심에 휘둘렸다 할지라도, 그러한 마음과 능력을 발휘하여 결과적으로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었지 않은가.

 

 

다윈의 진화론은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그렇지만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삶의 진실을 노출시켰다. 인간은 모두 이기적인 동물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타적 행동을 하는 이기적 동물이다. 인간이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인 동물임을 과소평가하면 현실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에 빠져들 위험이 있다. 그러나 인간이 또한 이타주의와 자기희생이라는 고귀한 도덕적 재능을 진화시켜온 존재임을 망각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벌거벗은 탐욕과 아귀다툼이 판치는 살벌한 야만으로 몰고 갈 위험에 빠진다. <공산당 선언>을 읽고 가슴이 설레는 젊은이라면 반드시 다윈을 읽어야 한다. 세상이 원래 경쟁과 적자생존의 원리가 지배하는 곳인데 국가가 무엇 때문에 빈부 격차 해소나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하는냐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그 역시 다윈을 제대로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 본성을 버리지 못하지만, 동시에 이타 행동을 우러러보는 직관적 도덕률을 지닌 동물이다. 인간은 또한 밤하늘의 별을 볼 때에도 땅에 발을 디뎌야만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현실의 이해타산을 무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고결한 이상주의가 사라진다면 인간의 삶이 너무 비천할 것 같다. 누구나 다윈만큼씩만 인간에 대해 연민을 느끼고, 이타주의에 공감한다면, 이 세상은 훨씬 더 살 만한 곳이 되지 않겠는가.

 

 

똑같은 생활환경의 변화에 똑같이 노출되어 있어도 사람들의 반응은 서로 다르다. 인습적 사고와 행동 방식을 바꾸는데 민감하고 능동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둔감하고 소극적인 사람도 있다. 전자는 진보적이고 후자는 보수적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더 유연하게 인습적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을 교정하는 수고를 기꺼이 감수하는 것일까? 똑같은 생활환경의 변화에 노출되어 있다고 해도 자신에 대해,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사회제도에 대해 더 넓고 깊게 이해하고 성찰하는 지성적인 사람일수록 더 유연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두뇌 활동이 활발하고 많이 배우고 다양한 문화를 폭넓게 경험한 사람일수록 더 진보적일 수 있는 것이다. 역사는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평균적 지성과 성찰 능력도 더 높이 발전하며, 제도의 진화 역시 그만큼 빠르고 수월해진다는 것을 이미 보여주었다.

 

 

부의 평등한 분배가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그리하여 전반적으로 애국심, 덕, 지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정부가 민주화될수록 사회도 개선된다. 그러나 부의 분배가 매우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정부가 민주화될수록 사회는 오히려 더 악화된다... 부패한 민주 정부에서는 언제나 최악의 인물에게 권력이 돌아간다. 정직성이나 애국심은 압박받고 비양심이 성공을 거둔다. 최선의 인물은 바닥에 가라앉고 최악의 인물이 정상에 떠오른다. 악한 자가 나가면 더 악한 자가 들어선다. 국민성은 권력을 장악하는 자, 그리하여 결국 존경도 받게 되는 자의 특성을 점차 닮게 마련이어서 국민의 도덕성이 타락한다. 이러한 과정은 기나긴 역사의 파노라마 속에서 수없이 되풀이되면서, 자유롭던 민족이 노예 상태로 전락한다. ... 가장 미천한 지위의 인간이 부패를 통해 부와 권력에 올라서는 모습을 늘 보게 되는 곳에서는, 부패를 묵인하다가 급기야 부패를 부러워하게 된다. 부패한 민주 정부는 결국 국민을 부패시키며, 국민 부패한 나라는 되살아날 길이 없다. 생명은 죽고 송장만 남으며 나라는 운명이라는 이름의 삽에 의해 땅에 묻혀 사라지고 만다. - <진보와 빈곤>

 

 

신문사와 대기업이 지상파와 종합편성 채널 편성권을 장악하고, 대기업이 광고주의 위력으로 다른 미디어까지 간접적으로 조종하면 종국적으로 인터넷 포털까지 남김없이 그들의 통제 아래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자기네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정보를 자기네가 옳다고 여기는 방식으로 가공해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형식으로 국민에게 제공할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이 '어느 정도' 진실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는 우리들은 남의 머리가 생각한 것을 내 머리로 생각한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카타리나 블룸은 잃어버린 명예를 영원히 되찾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끝없는 대화"라는 것이다. 역사가와 그가 선택한 사실의 상호작용은 추상적이고 고립된 개인들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 현재의 사회와 지난날의 사회 사이의 대화다.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의 말을 빌린다면, "역사란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일들에 관한 기록"인 것이다. 과거는 현재로 비추어 보아야 이해할 수 있으며, 현재 역시 과거의 조명을 받아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성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의 본질은 과거 여러 세대의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자기의 잠재 능력을 발전시켜나가는 데 있다. 현대인도 5000년 전의 조상보다 더 큰 두뇌를 가진 것이 아니며 더 뛰어난 선천적 사고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현대인은 여러 세대의 경험에서 배우고 그것을 자기의 경험과 결부시킴으로써 사고의 효율성을 몇 배로 확대하였다. 생물학자들이 부정하는 획득형질의 유전이야말로 사회 진보의 토대인 것이다. 역사는 획득된 기술이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됨으로써 이루어지는 진보다. 

역사와 사회의 진보에 대한 믿음은 어떤 자동적인 또는 불가피한 진행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인간 능력의 계속적 발전에 대한 믿음이다. 진보는 추상적인 말이다. 인류가 추구하는 구체적 목표는 역사의 흐름에서 때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지 역사 밖에 있는 어떤 원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 <역사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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