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권력, 반자본주의 통제에서 벗어나 단독으로 행동하며, 자급자족의 슬로라이프를 추구하는 삶!

 

일본과 한국에서 각각 원작을 기반으로 만든 영화가 있는데, 일본에서 만든 영화는 원작에 충실하고 한국에서 만든 영화는 드라마적 재미와 연기가 더 낫다는 개인적 평가.

 

 


[본문발췌]


이 나라에 태어나면 무조건 선택의 여지도 없이 국민으로서의 의무와 권리가 생기다니, 그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소? 뭔가를 억지로 해야 한다는 건 지배를 받는다는 것과 같은 뜻이야. 사람은 지배당하기 위해 태어나는 것이오?


내 이상향은 자급자족의 생활이야. 어느 누구에게도 착취당하지 않고 우리 가족의 힘만으로 살아가는 거야.


학교에서 너희 머릿속에 주입하는건 체제에 적당히 써먹을 인간을 양성하기 위한 최면술 같은 것이야. 어떤 시대에나 학교는 일종의 교정 시설이었어. 예전에는 나라를 위해 죽어서 돌아오라고 가르쳤지. 요즘은 일을 많이 해서 세금을 많이 내라고 가르쳐.


인류의 불행은, 충분히 가졌음에도 더 많은 것을 원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어.


혁명은 운동으로는 안 일어나.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속으로 일으키는 것이라고!


인간이 남에게 친절을 베푸는 건 자신이 안전할 때뿐이다.


상식에서 벗어난다는 건 어딘가 유쾌한 일이었다.


이별은 쓸쓸한 것이 아니다. 서로 만나 함께 어울리다가 와 닿게 된 결승점이다.


인간이란 모두 전설을 원하지. 그런 전설을 믿으며 꿈을 꿔보는 거야.


학교는 국가가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정은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방해도 하지 않는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표 나지 않게 처리해나가는 건 인간관계의 지혜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땀을 흘리며 일하는 게 인간의 본질인가 봐.


지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노예제도나 공민권운동 같은 게 그렇지. 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낸 것이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중 한 사람이다. 알겠냐? 하지만 너는 아버지 따라할 거 없어. 그냥 네 생각대로 살아가면 돼. 아버지 뱃속에는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벌레가 있어서 그게 날뛰기 시작하면 비위짱이 틀어져서 내가 나가 아니게 돼. 한마디로 바보야, 바보.


어느 누구에게도 지배받으려 하지 않고 혼자 국가에서 튀어나와 살아가겠다니, 그건 너무 자기 멋대로인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국가가 정의라고도 할 수 없었다. 튀어나갈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배자의 생각이었다.


경찰과 기업에 창끝을 들이댄 사람을 통쾌하다며 재미있어 하면서도, 그것을 막상 내 일처럼 생각해줄 사람은 없다. 텔레비전을 지켜본 어른들은 단 한 번도 싸운 일이 없고 앞으로도 싸울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다. 대항하고 투쟁하는 사람을 안전한 장소에서 구경하고 그럴싸한 얼굴로 논평할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냉소를 던지리라. 그것이 바로 아버지를 제외한 대다수의 어른들이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주 작고 작아. 이 사회는 새로운 역사도 만들지 않고 사람을 구원해주지도 않아. 정의도 아니고 기준도 아니야. 사회란 건 싸우지 않는 사람들을 위안해줄 뿐이야.


지로, 전에도 말했지만 아버지를 따라하지 마라. 아버지는 약간 극단적이거든. 하지만 비겁한 어른은 되지 마. 제 이익으로만 살아가는 그런 사람은 되지 말라고.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철저히 싸워. 져도 좋으니까 싸워. 남하고 달라도 괜찮아.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해해주는 사람은 반드시 있어.


아마도 자기만 이익을 보려고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다들 친절한 것 같아.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법률도 무기도 필요 없다고 생각해. 이것은 유치한 이상론인지도 모르지만, 여기 섬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그런 감이 들어. 만일 지구상에 이런 섬만 있다면 전쟁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아버지는 다시 밭을 갈고 있을까. 바다에서 고기를 잡을까. 건장한 몸집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런 생활이 더 어울린다. 인류는 돈을 지닌 시대보다 지니지 못했던 시대가 훨씬 더 길었다. 그러한 인류 끄트머리의 기억이 아버지에게만 진하게 남은 것이다.
아버지 좋을 대로 해도 괜찮아. 지로는 바다를 향해 중얼거렸다. 함께 사는 것만이 가족이 아니니까.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496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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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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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중반을 넘어 여름으로 넘어가기 전, 서해안 갯벌에는 동죽 조개가 한창으로 동죽 뿐 아니라 백합, 바지락 등 조개류가 제대로 살이 올라 실한 계절이다.

고창 심원면 갯벌에서 캔 동죽을 사다 깨끗이 씻고 같이 길어온 바닷물로 하루에 걸쳐 2~3번 해감을 해야 깨끗한 식재료가 완성된다.

동죽을 삶아, 밭에서 캔 돌미나리를 넣고 동죽돌미나리무침은 그대로 먹어도 좋고, 밥에 비벼 동죽무침비빔밥으로도 그만이다.

동죽과 부추를 넣고 부쳐낸 동죽 부침개는 막걸리 안주로, 부추를 송송 썰어넣은 동죽탕은 시원하게 해장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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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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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 연휴를 시골에서 지내다 일요일 아침 일찍 출발했지만 고속도로 길막힘이 심해 국도로 우회하던 중 진천을 지나게 되었다. 점심 시간이라 진천 맛집이라는 막국수집을 검색해 들른 진천읍내!

'96년 인터넷 겨울캠프 강사 아르바이트를 하며 2개월여를 지내고, 22년만에 들른 진천, 흘러간 시절만큼 곳곳에 아파트도 들어서고 동네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인터넷이 한창 보급되던 시절, 초중고부터 대학생, 일반인 기수까지 2박3일 합숙 캠프에 참여해 인터넷 사용과 활용법을 배우던 시절이 까마득하다.

5G 스마트폰을 통해 빠르고 쉽게 인터넷에 접속해 정보를 얻고 일처리를 바로 할 수 있고, 블록체인과 메타버스를 경험하는 시대를 살며 인터넷 브라우저를 통해 자료를 검색하고, 듣고 싶은 음악을 찾아 들어보는 등 인터넷이라는 신문물을 배우기 위해 합숙캠프까지 열었다는 오래된 이야기, 추억과 함께 진천을 스쳐간다.

강의면접까지 거쳐 선발된 대부분 대학생, 대학원생들로 이루어진 강사들은 캠프에서 2달여 동안 함께 숙식하며 지냈는데, 중간에 잠깐씩 휴식시간에 청주시내로 같이 놀러도 다니고 저녁에는 눈속에 파 묻어 놓은 맥주를 마시며 동고동락 했었는데, 지금은 이름 기억나지 않고 얼굴도 가물가물하다.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19961204/72126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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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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