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이든 의식중이든 우리 일상에 흔한 생각의 오류, 유전자로 내려온 선조들의 흔적일지도! 

 

 

[본문발췌]

 

 

매몰 비용의 오류(Sunk cost fallacy),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 이미 지불한 비용이 아까워서 다른 합리적인 선택에 제약을 받는 것.
  •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문제가 발생한 즉시 계속 추진하는 것이 이득인지, 그만두는 것이 이득인지 충분히 고려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이미 많은 시간과 돈, 에너지, 애정 등을 투자했다면 합리적 판단을 내리기 전에 매몰 비용의 오류가 우리를 덥석 낚아챈다. 그럴 때는 객관적으로 분석하면 의미가 없는 게 분명한데도 계속해서 시간이나 돈, 애정 등을 투자할 수밖에 없는 지리멸렬한 이유가 생기고 만다. 그리고 더 많이 투자할수록, 다시 말해 매몰 비용이 커질수록 그 프로젝트를 계속해야 한다는 압박은 더욱 강해진다.
  • 돈과 시간을 쏟아부을수록 사람들은 그 계획이 성공하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한다.
  • 주식투자를 결정하는 데 매입 가격이 주된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주가 변동에 대한 전망이다. 미래에 대한 예측은 누구나 틀릴 수 있다. 어떤 주식 때문에 잃은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주식을 더욱 집요하게 붙들고 있게 된다. 끈기 있게 버팀으로서 스스로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려고 한다. 자신의 선택에 모순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 장기 프로젝트를 끝까지 마무리하려면 투자를 계속해야 할 정당한 이유들이 많이 있어야 한다. 이미 투자한 것 때문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는 안 된다. 그리고 합리적으로 결정하려면 이미 지출된 비용을 무시해야 한다. 지금까지 무엇을 얼마나 투자했든 상관없이, 현재의 상황과 미래에 대한 객관적인 전망 속에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희소성의 오류, 한정판 제품이 더 잘 팔리는 이유

  • 희소한 것에 대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반응은 '특별하다'는 것이다. 희소성은 우리로 하여금 객관적인 평가 기준을 상실하게 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안을 볼 때는 오직 비용과 유용성만으로 판단하라. 어떤 재화가 희소한지 아닌지, '런던에서 온 의사'가 그 물건을 원하는지 아닌지 따위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

 

 

기적, 신의 계시를 받은 열다섯 명의 성가대원

  • 도저희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우연의 일치라 해도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확률보다 일어날 확률이 더 높다.

 

 

소유 효과(Endowment effect), 왜 비싸게 판 사람은 없고 비싸게 산 사람만 있을까?

  • 우리는 소유하고 있는 것을 소유하지 않을 때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느낀다. 달리 표현하자면, 자신의 소유물을 팔 때 스스로가 그것에 대해 지불할 용의가 있는 가격보다 더 많은 돈을 요구한다.
  • 무엇을 버리는 일은 무엇을 쌓아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그것은 우리가 왜 집안을 허섭스레기들로 채우곤 하는가를 설명해줄뿐더러, 예술품 애호가들이 왜 쉽게 물건을 바꾸거나 팔지 않는지도 이애할 수 있게 해준다.
  • 사물들에 얽매이지 말라, 당신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대자연에게 잠시 빌렸다고 생각하라, 언제든 다시 빼앗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확증 편향1(Confirmation bias),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우리

  • '확증 편향'이란 새로운 정보들이 우리가 갖고 있는 기존의 이론이나 세계과, 그리고 확신하고 있는 정보들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보는 경향이다. 이것은 모든 생각의 오류들의 아버지다. 다시 말해 확증 편향에 빠지면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지식과 모순되는 새로운 정보들(일명 '확인되지 않은 증거'라고 부른다)은 받아들이지 않고 걸러내게 된다.
  • 작가 올더스 헉슬리는 "기존의 사실들을 무시한다고 해서 그것들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워런 버핏도 "사람들이 가장 잘하는 것은 기존의 견해들이 온전하게 유지되도록 새로운 정보를 걸러내는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워런 버핏이 그처럼 성공적으로 투자할 수 있었던 것은 확증 편향의 위험을 의식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혁신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 확증 편향을 견제하기 위해서 '특수한 경우'라는 말이 나올 때 좀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일어날 확률이 적다고 여겨지는 특수한 경우에는 종종 확인되지 않은 증거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 확증 편향에 빠지는 것은 지적인 사람들이 저지르는 경범죄다. 알고 있는 지식이 많을수록, 성공의 경험이 풍부할수록 자신의 생각을 거스르기는 더 어려워진다.

 

 

확증 편향2, 믿기 위한 증거와 믿을 수 있는 증거를 구분하라

  • 우리 모두는 이 세계와 삶, 경제, 투자, 경력 등에 대해서 이론을 세워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뭔가 가정을 세우지 않고는 일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애매모호한 이론일수록 확증 편향의 위력은 더욱 강해진다.
  • 종교적 확신과 철학적 확신들은 그것들이 지닌 애매모호함 때문에 확증 편향이 자라기에 아주 적절한 토양이 된다. 
  •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에 허점이 생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먼저 이론을 세우고 '마음에 드는 증거'를 찾아 덧붙인다. 마치 자신이 확신하고 있는 신념 앞에 소음 장치를 한 보호막을 세워놓고 있는 것 같다. 의심의 총성이 울려도 웬만큼 크지 않으면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다.
  • 인터넷은 그런 보호막을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게 해주고, 유대감을 갖고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론을 확고하게 입증해주는 블로그에 방문하고, 자신의 생각 또한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특성에 맞춰 전달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의견과 반대되는 이야기는 게시판에 글을 올릴 수도 없게 차단한다. 그러면서 점점 더 같은 생각을 가진 단체 안에서만 활동하게 되고, 이런 성향이 확증 편향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준다.

 

운전사의 지식(Chauffer's knowledge), 말 잘하는 아나운서에게 속지 마라

  • 지식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진짜 지식'이다. 그것은 오랜 시간을 들여 생각하는 노동을 해온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또 하나는 일명 '운전자의 지식(Chauffeur’s Knowledge)'이다. 여기서 ‘운전사’란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 탁월한 외모와 멋진 목소리를 가진 과시형 인간들이다.
  • 워런 버핏은 '능력의 범위(Circle of competence, 자신이 완전히 이해하는 곳에만 투자하라는 뜻)' 라는 놀라운 개념을 사용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범위 안에 있는 것은 전문가만큼의 지식을 갖고 있지만, 그 범위 바깥에 있는 것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부분적으로만 이해한다. 이런 이유로 워런 버핏이 강조하는 인생의 좌우명은 다음과 같다. "능력의 범위를 파악하라. 그리고 그 안에 머물라. 그 범위가 얼마나 큰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그 범위의 경계가 정확히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찰리 멍거는 거기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당신의 재능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야 한다. 만약 당신의 능력 범위 밖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시도한다면 초라한 미래를 갖게 될 것이다. 거의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다."

 

 

대비 효과(Contrast effect), 4백만 원짜리 가죽 시트가 싸게 느껴지는 이유

  • 사람들은 한 개의 사물을 보여주고 그 가치에 대해 말하라고 하면 명확하게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그러나 뭔가 추하고 값싸고 부족한 것을 뒤이어 보여주면 앞에 본 것이 더 아름답거나 더 값지다거나 더 크다는 식으로 판단한다. 절대적인 기준을 갖고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것이다. 
  • 얼음물에 손을 담갔다가 미지근한 물로 옮기면 온도가 높지 않은데도 뜨겁다고 느낀다. 50만원짜리 옷은 비싸다고 생각하지만 100만원짜리를 50만원에 팔면 싸다고 생각한다.
  • 최근에 한 투자가에게 이런 제안을 받았다. "그 주식은 쌉니다. 왜냐하면 가장 높았던 시세의 50퍼센트도 안 되니까요."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증권 시세라는 것은 낮거나 높았던 적이 전혀 없다. 시세는 그냥 시세일 뿐이며, 단지 중요한 것은 오직 그것이 과연 지금 시점부터 오를 것이냐 내릴 것이냐 하는 것뿐이다.

 

 

사회적 검증과 동조 심리, 수백만의 사람들이 옳다고 주장해도 어리석은 것이 진실이 되지는 않는다

  • 때로 '집단 충동'이라고도 불리는 '사회적 검증(Social proof)'은 다른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처럼 나도 행동하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어떤 생각에 대해 옳다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생각은 더 정확하다는 것인데, 이런 믿음은 물론 부조리하다.

 

 

사회적 태만(Social loafing), 팀이 더 게으르다

  • 사회적 태만은 흥미로운 영향을 미친다. 즉 집단 속에 있으면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후퇴시킬뿐더러 그에 따르는 책임도 후퇴시킨다. 좋지 않은 결과들에 책임을 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에 대한 사례는 어느 이사회나 팀 회의에서도 볼 수 있다. 개인은 집단이 내린 결정 뒤로 몸을 숨긴다. 이를 학문적으로는 '책임감의 분산(Diffusion of responsibility)'이라고 부른다. 같은 이유로 집단은 개인보다 더 큰 위험부담을 지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을 '모험 이행(Risky shift)'이라고 하는데, 증명된 바에 의하면 집단적인 논의는 개인이 혼자 의사결정을 낼릴 때보다 더 모험적인 결정을 내린다고 한다. 말하자면 '실패하더라도 내가 모든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위험한 것은 거대 자본을 다루는 기업 및 연금 기금 운영사들, 핵무기의 도입 여부를 결정하는 팀 등에 모험 이행이 나타나는 경우이다. 
  • 결론적으로, 사람들은 집단 내에 있으면 혼자일 때와는 다른 태도를 보인다. 모험을 주도하며 리더십을 보이기도 하고 집단의 규모를 힘의 크기라 믿고 용감해지기도 하며(그렇지 않으면 집단이라는 것은 없을 것이다). 반대로 집단의 지혜에 몸을 맡긴 채 태만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는 집단이 지닌 불리한 점을 약화시킬 수 있다. 개인의 능력을 가능하면 눈에 띄게 만드는 것이다. 오늘날 인센티브 제도가 또 다른 폐해를 낳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들이 없애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다.

 

 

틀 짓기(Framing), ‘위기는 기회다’라고 우기는 이유

  • 똑같은 사안이라도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Framing'은 '틀에 넣는다'는 뜻으로 '틀 효과'라고도 쓰이는데, 아주 똑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그것이 어떻게 묘사되느냐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다는 뜻이다.
  • 사실 우리는 틀 짓기를 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다. 개성을 표현할 수도 없으며 매력을 표현할 방법도 사라진다. 모든 일은 틀 짓기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식하라.

 

 

행동 편향,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고통을 참지 못한다

  • 행동 편향(Action bias), 비록 아무런 소용이 없더라도 행동을 보이는 것
  • 행동 편향은 특히 어떤 상황이 새롭거나 불분명할 때 자주 나타난다. 많은 투자자들은 증권거래소에서 일어나는 상황의 추세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으므로 일종의 과민 행동에 빠진다. 물론 소용은 없다. 워런 버핏은 그런 경향에 대해 이렇게 충고한다. "투자에서는 행동이 실적과는 무관하다."
  • 그러면 우리의 의지는 왜 행동 편향에 권리를 빼앗기는 것일까? 이것은 오랜 진화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사냥꾼과 채집가들이 살던 환경에서는 생각하는 것보다 행동하는 것이 훨씬 많은 보상을 받았다. 그 시절에는 번개처럼 빠른 반응이 생존하는 데 중요했다. 오히려 생각하는 것은 치명적이 될 수 있었다.
  • 사회는 의미 있게 기다리기보다는 생각 없더라도 행동하는 쪽을 더 선호한다.
  • 불분명한 상황에서 우리는 뭔가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고 나면 더 낫게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더라도 기분은 나아진다. 그러나 자기 기분만 빼면 실제 상황은 종종 더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너무 빨리, 그리고 너무 자주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인간이 행동하는 것을 선호하고 행동하는 것이 더 빨리 보상을 얻는 방법이라 해도, 상황이 분명하지 않으면 제발 아무것도 감행하지 말라. 당신이 상황을 더 낫게 평가할 수 있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뒤로 물러나 있으라. 그리고 철학자 파스칼의 말을 명심하길 바란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그들이 방안에 조용히 머물러 있지 못하는 데 있다."

 

 

부작위 편향, 80명의 목숨을 살리는 약을 못 팔게 하는 이유

  • 부작위 편향(Omission bias), 인간은 어떤 일을 함으로써 발생하는 개인적 피해보다는 어떤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사회적 피해를 비이성적으로 선호하는 특성이 있다. '부작위'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일부러 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부작위 편향은 행동을 중지하든 실행하든 피해를 불러올 수 있는 경우에 나타난다. 그럴 때 우리는 대개 중지하는 쪽을 선택하는데, 그 이유는 그렇게 해서 발생한 폐해는 왠지 덜 해로운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부작위 편향은 왜 우리가 누구에겐가 직접 해를 끼치기보다는 차라리 그 사람이 스스로 파멸하도록 내버려두는지를 설명해준다. 투자가들과 경제 애널리스트들은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지 않는 것을 잘못된 상품을 개발하는 것보다 덜 나쁘다고 느낀다. 비록 양쪽 모두 해당 회사를 파산으로 이끌어가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수년 전에 상속받은 보잘것없는 주식을 멍청하게 쌓아만 두고 있는 것을 쓸데없는 주식을 사는 것보다 덜 나쁘게 여긴다. 또한 비용이 든다는 이유로 석탄 화력발전소 내부에 폐수 시설을 건립하지 않는 것은 기존 폐수 시설을 철거하는 것보다 덜 나쁘게 여겨지며, 세무서에 수입을 신고하지 않는 것은 세금 서류를 위조하는 것보다 덜 나쁘게 느껴진다. 사실 둘 다 결과는 같은데 말이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가 자주 빠지는 행동 편향에 반하는 성향처럼 보인다. 그러나 행동 편향은 어떤 상황이 불분명하고 모순적이고 불투명할 때 작용하는 반면, 부작위 편향은 대개 통찰 가능한 상황에서 나타난다. 다시 말해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폐해는 행동을 통해서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는 것이지만, 예측할 수 있는 폐해를 예방하는 것은 우리에게 강한 동기를 부여하지는 못한다.
  • 부작위 편향은 행동 편향에 비해 인식하기가 어려운 편이다. 행동을 거부하는 것은 행동하는 것보다 눈에 덜 띄기 때문이다. 그래서 1968년 독일 베를린에서 시작된 대규모 학생운동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자극하려는 의도로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슬로건을 내세우며 싸웠다. "만약 당신이 해결의 일부가 아니면, 당신은 문제의 일부이다."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 백억 원짜리 로또에 당첨된다면 얼마 동안 기쁠까?

  • 우리는 일을 하고 출세하며 스스로 더 많은 일, 더 멋진 일들을 해내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 당신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부정적 요소들, 장거리 출퇴근, 소음, 만성 스트레스 같은 것들을 피하라.
  • 물질적인 것들, 즉 자동차, 집, 보너스, 로또 당첨, 금메달 따위가 주는 효과는 단기적임을 기억하라.
  • 오래 지속되는 긍정적 효과들은 주로 당신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와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많은 자유 시간과 자율성을 갖도록 하라.
  • 당신의 열정에 가장 잘 맞는 일을 하라. 비록 소득이 줄어들더라도.
  • 우정에 투자하라.

 

 

자기 선택적 편향(Self-selection bias), 나만 불행하다는 착각

  • 고속도로에서는 어느 시간대나 10퍼센트씩 정체가 발생한다. 은행, 우체국, 마트도 특별히 붐비는 시간대가 있다. 당신이 그 시간대에 들어갔을 뿐, 불운이 당신만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아니다.
  • 정체 상태에서는 기어가듯 계속 조금씩 움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너무 많은 시간을 정체 상태에서 보내게 된다. 게다가 만약 교통의 흐름이 원활하면 정체니 시간이니 하는 것들에 생각을 낭비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이 교통 정체에 갇히면 그 상태가 유달리 눈에 띄는 것이다.
  • 사람들은 확률을 따져보지도 않고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자신이 특별히 선택받았다고 여긴다.

 

 

기본적 귀인의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 CEO 때문에 실적이 떨어진 게 아니다

  • 기본적 귀인 오류란 타인이 행동 또는 문제 상황에 대한 이유를 환경적 요인이나 특수한 외부 요인에서 찾지 않고, 성향이나 성격 등 내적 요인에서 찾으려고 하는 경향을 말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미치는 영향을 시스템적으로 과대평가하고, 상대적으로 외부 요인과 상황적인 요인들은 과소평가한다.
  • 어떤 사업이 잘되거나 또는 잘 안 되면, 우리는 그 책임을 가장 먼저 기업의 사장에게서 찾는다. 사실상 경제적인 성공은 기업 수뇌부의 탁월한 경영 능력보다는 일반적인 경제 상황과 업종이 지닌 매력에 달린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한다. 위험에 처한 업종의 CEO들이 얼마나 자주 바뀌며, 반대로 잘나가는 업종에서는 그런 일이 얼마나 드물게 일어나는지를 살펴보면 깜짝 놀랄 정도다.
  • 인생이란 연극은 창조적이지만 무대 위의 배우는 스스로의 규정에 따라 움직이는 완전한 인물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비틀거리는 인물이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지금 막 막이 오른 연극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그 연기자들에게 주의를 기울일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배우들이 종속되어 있는 영향력이 추는 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집단 사고(Groupthink), 케네디와 가장 지적인 남성들의 어처구니없는 작전

  • 지적인 사람들이 모인 우수한 집단조차도 어리석은 결정을 내릴 때가 있다. 각각의 사람들이 잘못된 의견 일치에 자신의 생각을 맞추기 때문이다.

 

 

기저율의 무시(Neglect of base rate), 가장 높은 확률에 따르기

  • 우리는 종종 추가된 특정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하고 기저율을 무시하기 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된다.
  • 그 어떤 정보도 지식도 없는 문제의 정답을 맞춰야 할 때 당신이 선택해야 할 유일한 답은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이다.

 

 

가용성 편향(Availability bias), 비행기 사고가 날지 모르니까 자동차가 낫겠어

  • '가용성 편향'은 자신의 경험 혹은 자주 들어서 익숙하고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세계에 대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머릿속에 더 잘 떠오른다고 해서 현실에서도 보편적인 일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구경거리가 되고 현란하거나 떠들썩한 모든 것에 대해서 훨씬 높은 개연성을 부여하고, 조용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너무 낮은 개연성을 부여한다. 구경거리가 되고 현란하거나 떠들썩한 것이 뇌리에서 더 효과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뇌는 양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극적으로 생각한다.
  • 자주 되풀이되는 일이 있다면 뇌는 그것을 '중요한 것'으로 기억하고 언제든 쉽게 다시 불러낸다. 그것이 진실이냐 거짓이냐는 별개의 문제다.
  • 블랙숄즈 모형이 파생 금융 상품들의 가격 계산에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변동성지수가 금융 상품 위험의 척도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계산법이 없어서 전혀 아무것도 이용하지 않기보다는 틀렸더라도 어떤 공식을 사용하는 쪽을 선택한다.
  •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해서 틀린 방법을 그대로 이용하는 것은 결과가 잘못될 줄 알면서도 전력 질주를 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가용성 편향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 전혀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라.

 

 

이야기 편향(Story bias), 중요하지 않은 기사가 신문 1면을 차지하는 이유

  • 인간은 이 세계에 대해 학문적으로 생각하기 이전에 먼저 이야기의 형식으로 설명을 들어왔다. 신화는 철학보다 더 오래되었다.
  • '이야기 편향'은 이야기들을 왜곡해서 현실을 단순화하는 것이다. 원래는 제대로 들어맞지 않는 모든 현상을 억지로 쑤셔 넣어 인과관계를 짜 맞춘다. 특히 매스컴에서는 이야기 편향이 역병처럼 창궐하고 있다.
  • 온갖 중요한 물음들은 그 대답을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해서 설명할 수 없다는 맹점이 있다. 사람들은 추상적인 사실들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느끼지만, 이야기에는 본능적으로 끌리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저주다. 그리하여 중요하지 않은 관점들에 밀려서 중요한 관점들이 저평가되는 왜곡이 생긴다.
  • 뇌는 이야기를 원한다. 짧고 단순하지만 연관성 없는 정보보다는 조금 길더라도 인과관계로 묶인 이야기를 더욱 잘 기억한다.

 

 

사후 확신 편향(Hindsight bias), 나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 사후 확신 편향은 가장 완고한 생각의 오류 중 하나다. 좀 더 쉽게 표현하면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사건이 터진 후에 돌이켜보면 모두가 마치 분명한 개연성에 따라 일어난 일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사후 확신 편향은 왜 위험할까? 그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훌륭한 예언가라고 믿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를 오만하게 만들고 그릇된 판단을 내리도록 인도한다. 사람들은 제각각 자신만의 가설을 세우고 이미 일어난 결과에 그럴듯하게 끼워 맞춘 후,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을 근거로 잘못된 결론을 내린다.

 

 

통제의 환상(Illusion of control), 로또 번호를 직접 선택한다고 당첨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 통제의 환상이란 현실적으로 권한이 없는 뭔가에 대해 통제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을 말한다.
  • 사람들은 자신이 좋은 생각을 발산시키면 운명은 물론 세계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 사실 자신의 삶이라고 해도 모든 것을 계획한 대로 이루고 통제할 수는 없다. 확실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몇 안 되는 부분에 집중하라. 나아가 그것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들에만 시종일관 집중하라. 그리고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은 그냥 일어나도록 놔두어라.

 

 

중간으로의 역행(Regression toward the mean), 병원에 갔든 안 갔든 감기는 나았을 것이다

  •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의 주장에 맞게 만드는 것.
  • 내리막의 끝에는 반드시 오르막이 있듯 극단적인 상황들은 시간이 지나면 덜 극단적인 쪽으로 바뀌어간다. 지난 3년 동안 가장 실적이 좋았던 주식이 다음 3년 동안에도 가장 실적이 좋은 주식으로 머무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도박꾼의 오류(Gambler's fallacy), 주사위는 순서대로 나오지 않는다

  • 사람들은 균형을 맞춰주는 운명의 힘을 믿는다. 이것이 바로 도박꾼의 오류이다. 그러나 독립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의 균형을 잡아주는 초월적인 힘은 없다.
  • 인간의 몸이나 날씨처럼 복잡한 피드백을 주고받는 수치들은 다시 균형을 맞추려는 성향이 있다. 그런데 다른 경우들에서 극단적인 것들은 더욱 강화된다. 예컨대 부자들은 점점 더 부유해지는 경향이 있다. 어떤 주식의 주가가 치솟으면, 그것은 어느 지점까지는 자체적으로 수요를 만들어낸다. 왜냐하면 단순히 그것이 매우 뚜렷하게 눈에 띄기 때문이다. 일종의 역균형 효과이다.
  • 결론적으로 당신은 눈앞에 독립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니면 독립적이지 않은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자세히 바라보아야 한다. 독립적인 사건들은 카지노나 로또, 그리고 이론 서적들 안에만 있다. 정상적인 삶에서 사건들은 대개 서로 의존해서 일어난다. 다시 말해 이미 일어난 일은 미래에 일어날 일에 영향을 미친다.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 무료 공공 화장실이 더러운 이유

  • 공유 재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두 가지 방법 밖에 없다. 그 재산을 사유화하거나 아예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것이다.
  • 현대 과학이 발달하고 세계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또 다른 형태의 공유지의 비극이 생겨나고 있다. 그 누구도 소유할 수는 없지만 공동체가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것들, 이를 테면 이산화탄소, 벌목, 물의 오염, 라디오 주파수의 과잉 사용, 공공 화장실, 우주 폐기물, 파산시킬 수도 인수할 수도 없는 거대 은행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우리는 아직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결과 편향(Outcome bias), ‘결과만 좋으면 됐지’의 위험

  • 우리는 자주 과정의 질이 아니라 결과를 보고서 어떤 결정을 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것은 역사가들의 오류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 앞으로 당신은 어떤 결과만을 근거로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길 바란다. 결과가 나쁘다고 해서 무조건 의사결정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당신은 어떤 결정이 결과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증명됐다고 해도 불만스러워하지 말라. 혹시 성공을 거두었다면 그렇게 결정한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대신에, 왜 그렇게 결정했었는지를 다시 한 번 주목해봐야 할 것이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이성적이고 스스로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서 내린 결정이라면, 다음번에 그와 똑같이 행동해도 좋다. 비록 당신이 그 때문에 지난번에 운이 없었더라도.

 

 

선택의 역설(Paradox of choice), 너무 많은 것보다 차라리 하나뿐인 게 나은 이유

  • 선택의 폭은 발전의 기준을 재는 척도가 되고 있다. 우리를 계획경제나 석기시대로부터 구분 지어주기도 한다. 물론 품질 좋은 다양한 물건들 사이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일은 행복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선택에도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넘어서서 계속 선택하기를 요구하면 오히려 삶의 질을 망치는 경우가 있다.
  • 미국의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는 자신의 저서 <선택의 심리학>에서 왜 선택의 행복이 불행으로 바뀌는 모순이 생기는지 설명했다. 거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 첫 번째 이유는 선택의 여지가 크면 내면적인 무감각으로 이끌려가기 때문이다. 선택할 것이 너무 많으면 사람들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오히려 구입하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 두 번째 이유는 선택의 폭이 커지면 좋지 않은 의사결정을 내리게 되기 때문이다.
    • 세 번째 이유는 선택의 폭이 커지면 결과적으로 불만족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선택의 폭이 크면 클수록 당신은 더욱 불확실해지며, 따라서 선택을 한 후에는 더욱 불만족하게 되는 것이다.
  •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일단 택하도록 주어진 것들을 살펴보기 전에,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생각해보라. 당신의 판단 기준을 기록하고 무조건 그것을 지켜라. 그리고 후회없는 완벽한 선택은 없다고 인정하라. 홍수처럼 밀려오는 가능성들 앞에서 최고의 선택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그치는 것은 비합리적인 완벽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은 그냥 일이 잘 해결된 것으로 만족하라. 인생의 파트너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그렇다.
  • 선택의 폭이 무제한적인 시대에는 오히려 그 반대로 하는 것이 현명하다. 즉 '최고'가 아니라 '최선'이 가장 좋은 것이다.

 

 

확률의 무시(Neglect of probability), 가능성이 희박해도 당첨 상금이 높은 것에 도전하는 이유

  • 사람들이 어떤 사건의 예상된 정도(도박 상금의 크기, 또는 전압의 강도 따위)에는 분명하게 반응하지만, 그 사건이 일어날 확률에는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달리 표현하면, 우리에게는 확률에 대한 직관적인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 사람들은 종종 가능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무시한다. 이것을 '확률의 무시'라고 부른다. 이런 경향은 결과적으로 의사결정의 오류를 낳게 된다.
  • 초보 투자자들은 20퍼센트의 수익을 내는 구글 주식이 10퍼센트의 수익을 내는 부동산 투자보다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잃게 될 가능성은 계산하지 않는다.
  • 우리는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위험성들에 대해서 제로 상태냐 아니냐 두 종류를 제외하고는 잘 구별하지 못한다. 위험성을 직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확률을 계산해야 한다는 생각도 즉각적으로 하지 못한다. 로또의 경우라면 확률에 민감할 것이다. 그러나 일상적인 삶에서는 위험성을 측정하는 일에 여전히 게으르다. 하지만 위험을 비껴갈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다.

 

 

제로 리스크 편향(Zero-risk bias), 모든 위험을 완벽하게 제거할 수 있다는 환상

  • 우리는 위험이 '크다'고 하면 불안해 한다. 위험이 '적다'고 해도 여전히 불안해한다. 오직 위험이 '없다'라는 말에만 안심한다.
  • 그래서 우리는 아주 사소한 나머지의 위험성마저 완전히 제거하려고 종종 엄청나게 많은 돈을 투자할 마음까지 먹는다.
  •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안전한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제로 리스크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는 환상에서 벗어나라. 저축예금도, 건강도, 결혼 생활도, 우정도, 부동산도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없다. 세상에서 단 한 가지만 우리의 뜻대로 확고하다 말할 수 있다. 바로 우리 자신의 행복감이다.

 

 

인센티브에 특별 반응을 보이는 경향(일명 자극에 민감한 감수성), 쥐를 사육한 사람들

  •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한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놀라운 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부차적인 양상이다. 첫째, 자극적인 것들이 함께 포함되거나 그 자극이 바뀌게 되면 사람들은 너무도 빨리 그들의 태도를 바꾼다. 둘째, 사람들은 자극적인 것에는 반응하지만 그 자극의 배후에 숨겨진 의도에 대해서는 반응하지 않는다.
  • 좋은 자극 시스템은 의도와 자극을 함께 커버해준다. 한 가지 예를 보자. 고대 로마에서는 다리를 건설하는 기술자에게 그 다리가 개통될 때 다리 밑에 서 있게 했다. 그것은 다리를 튼튼하게 짓도록 주문하는 상당히 좋은 자극제였다. 반대로 나쁜 자극 시스템은 본래의 의도를 지나쳐 가거나, 심지어 그것을 왜곡시킨다. 예를 들어, 쥐를 잡을 때마다 돈을 주면 쥐를 사육하고 대출 계약이 체결될 때마다 인센티브를 주면 상환 능력을 따지지 않고 돈부터 빌려 준다.
  • 변호사, 건축가, 기업의 고문, 경제 분석가, 또는 운전 강사에게 그들이 노력한 대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런 사람들은 가능하면 많은 소요 비용을 발생시키려는 충동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당신은 마음속에 지불할 수 있는 고정된 비용을 책정하고 그들을 만나라. 인센티브를 받으려고 하는 의사라면 되도록 포괄적으로 진찰하고 수술하는 데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을 때조차 말이다. 또 투자 고문이라면 자신이 판매 커미션을 챙길 수 있는 금융 상품을 추천할 것이다. 기업가나 투자은행가들이 제시하는 사업 계획도 가치가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거래에 직접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독일 속담이 있는 것 같다. "미용사에게는 머리를 잘라야 할지, 그냥 길러야 할지 결코 물어보지 말라."
  • 투자가인 찰리 멍거는 낚시 도구를 파는 한 상점에 간 적이 있었다. 그는 진열대 앞에 멈춰 서서 눈에 띄게 반짝거리는 플라스틱 미끼를 집어 들고 가게 주인에게 물어보았다. "솔직히 말해봐요, 정말로 물고기들이 이런 것을 뭅니까?" 그 주인은 미소를 지으면 대답했다. "찰리, 우리는 그 물건들을 물고기들에게 파는 게 아녜요."

 

 

정박 효(Anchoring effect)과, 깎아줄지언정 가격을 싸게 매기지 않는 이유

  • 사람들은 언제나 불확실한 무엇인가를 측정할 때(예를 들어 라인 강의 길이라든가, 러시아의 인구밀도, 또는 프랑스에 있는 핵발전소의 수 등) 닻을 이용한다. 알고 있는 사실을 선택한 다음, 그것에 기대어 알지 못하는 것을 향해 모험의 항해를 해나간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측정해야 하겠는가? 그냥 단순하게 하늘에서 숫자를 하나 따오면 될까? 그것은 비효율적인 일일 것이다.
  • 부동산, 회사, 예술 작품 등 가치가 정해져 있지 않은 대상일수록 전문가들조차 닻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진다.

 

 

손실 회피(Loss aversion), 상대를 설득하는 가장 강력한 기술

  • 우리는 얻는 것의 가치보다 잃어버린 것의 가치를 더 크게 평가하는데, 이는 이상할 것이 없다. 당신이 1만 원을 잃어버렸을 때 느끼는 상실감은 1만 원을 선물받았을 때 느끼는 행복감보다 더 크다. 경험적으로 증명된 바에 따르면, 잃어버린 것의 무게는 같은 크기로 얻은 것보다 정서적으로 약 두 배나 더 무겁다는 것이다.
  • 당신이 누군가에게 확신을 주고 싶다면, 그 때문에 얻을 가능성 있는 수익을 내세워 설득하지 말고, 가능한 한 손실을 피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설득하라.
  • 뭔가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불안은 똑같은 가치의 뭔가를 얻는다는 생각보다 사람들에게 더 강한 동기를 부여한다.
  • 투자자들은 손실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여전히 기다리면서 주가가 다시 회복될거라고 바라는 경향이 있다. 현실화되지 않은 손실은 아직 손실이 아닌 것이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비록 회복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하고 주가가 계쏙해서 떨어질 개연성이 크더라도 결코 주식을 팔지 않는다. 

 

 

그릇된 인과 관계, 소방관이 많으면 화재 피해가 크다?

  •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무조건 인과로 묶이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영향을 주는 화살은 반대 방향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어떤 경우는 영향을 주는 화살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

 

 

생존 편향(Suvivorship bias), 평범한 99퍼센트가 아니라 성공한 1퍼센트에 속한다는 착각

  • 성공은 일상에서 실패보다 더 크게 눈에 띄게 되므로, 우리는 시스템적으로 성공에 대한 전망을 과대평가한다.
  • 그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한때 많은 것을 약속했으나 실패하고 만 프로젝트, 투자, 경력들이 묻힌 마음속 묘지를 자주 방문해보라. 서글프지만 유익한 산책이 될 것이다.

 

 

 예지의 환상, 금융위기를 정확하게 예견한 경제학자는 0.001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 "미래에 대해서 예측하는 사람들은 두 종류가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과,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 어떤 시스템이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그리고 시간의 지평이 길면 길수록 미래에 대한 전망은 더욱 불투명해진다. 기후 온난화, 원유 가격, 환율 변동 등은 미리 예측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발명품 또한 예측할 수가 없다. 만약 훗날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기술에 대해 미리 안다면 지금 이 순간 벌써 발명되어 있을 테니까.

 

 

결합 오류(Conjunction fallacy), 직관의 함정

  • 왜 우리는 결합 오류에 빠질까? 조화로운 이야기나 그럴듯한 이야기들을 훨씬 잘,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 직관적인 생각은 그럴듯한 이야기에 취약하다. 그러니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되도록 드라마처럼 앞뒤가 딱 맞는 그럴듯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도록 노력하길 바란다.

 

 

연상 편향(Association bias), 징크스의 탄생

  • 기업의 CEO나 투자가들은 그런 달갑지 않은 피해를 가져오는 사람들을 무의식적으로 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결과는 이렇다. 즉 양탄자가 깔린 계단 위로는 오로지 좋은 소식들만 도착한다. 그렇게 해서 왜곡된 이미지가 생겨나는 것이다. 워런 버핏은 그 점을 매우 잘 의식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소유한 회사들의 CEO들에게 지시하기를, 좋은 소식은 전혀 전하지 말고 오직 나쁜 소식을 (그것도 주저하지 말고) 즉각 전하도록 했다.
  • "우리는 어떤 경험으로부터 그 안에 들어 있는 만큼만의 지혜를 추출하고 그 이상은 추출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뜨거운 부뚜막 위에 앉았던 고양이처럼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뜨거운 부뚜막 위에 앉았던 고양이는 다시는 그 위에 앉지 않았다. 그것은 잘한 일이다. 하지만 그 고양이는 자가운 부뚜막 위에도 다시는 앉지 않았다." - 마크 트웨인

 

 

초심자의 행운(Beginner's luck), 처음에 모든 일이 잘 풀리면 의심할 것

  • 앞서 거둔 성공들에 나중의 결과를 그릇되게 연관시키는 경향
  • 처음 해본 도박에서 돈을 따는 사람들은 자신이 보통 이상의 능력과 행운을 갖고 있다고 확신하고 판돈을 키운다. 그러면 그는 여지없이 운 나쁜 사람이 되고 만다.

 

 

과신 효과(Overconfidence effect), 예언가들이 옳았다면 지구는 백 번도 더 망했다

  • 우리는 시스템적으로 자신의 지식과 예측하는 능력을 과신한다. 과신 효과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개개의 예측이 과연 맞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아니다. 과신 효과에서는 실제 알고 있는 것과 안다고 생각하는 것의 차이가 드러난다. 정말로 놀라운 것은 전문가들이 비전문가들보다 더 심하게 과신 효과에 빠진다는 것이다. 
  • 과신 효과는 자신을 소개하거나 능력들을 드러내고 싶을 때도 일어난다. 사업가들의 과신 효과는 더 심각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사업의 성공을 과신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업은 3년 안에 문을 닫거나 만성적 적자 상태에 놓이게 된다.
  • 과신 효과에 대해 자세히 보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항을 발견할 수 있다. A) 과신(즉 과대 평가)의 반대인 '과소평가 효과'라는 것은 없다. B) 여성보다 남성에게 과신 효과가 더 뚜렷이 나타난다. 즉 여성들은 자신들을 과신하는 일이 남성에 비해 적다. C) 낙관주의자들만 과신 효과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비관주의자라고 천명하는 사람들조차 좀 덜하기는 하지만 자신을 과신하는 경우가 많다.
  • 과신 효과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모든 예언에 대해 의심을 해보는 것이다. 특히 이른바 전문가라고 불리는 이들에게서 나온 예언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어떤 계획을 세우든 언제나 비관적인 시나리오에서 출발하라. 그렇게 하면 상황을 어느정도 현실적으로 판단할 진정한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권위자 편향(Authority bias), 권위자에게 무례해야 하는 이유

  • 오늘날의 작은 권위자들도 우리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 작은 권위자들은 바로 정치가, 학자, 의사, CEO, 자본가, 행정가, 기업의 고문, 그리고 증권 투자의 대가들이다. 그러나 권위자들은 완벽하지 않다.
  • 우리는 권위자가 앞에 서 있으면 스스로 옳다고 생각했던 것조차 이야기하지 못한다. 신빙성 있는 증거나 다른 경험 많은 사람들의 의견보다 전문가로 불리는 사람들의 주장 앞에서 우리는 주관을 잃고 부주의해진다. 그리고 심지어 이치에 맞지 않고 도덕적으로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해도 전문가의 말이라면 귀를 기울인다.
  • 어느 시대든 그때마다 여러 종류의 권위자들이 있었다. 한때는 사제가 권위자였고, 때로는 왕, 전사, 교황, 철학자, 시인, 록스타, 언론사 기자, 닷컴 회사 설립자, 헤지 펀드 매니저, 중앙은행 총재들이 권위자였다. 이렇게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권위자들이 있고, 사회는 그 유행에 따라 권위자들을 바꿔가며 의지한다. 그러나 그 어떤 권위자들도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하고 늘 옳은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 권위자들에 대해 비판적일수록 오히려 더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그만큼 더 당신은 자신을 신뢰해도 되는 것이다.

 

 

인지적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이따금 위로가 필요할 때는 쓰라

  • 이솝 우화의 '여우와 신포도'는 사람들에게 자주 일어나는 생각의 오류를 묘사하고 있다. 여우의 행동과 그 결과로 나타난 일은 서로 모순된다. 여우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식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스스로 그 모순의 첨예함을 둔화시킬 수 있다. A) 여우는 어떤 식으로든 포도를 가져온다. B) 여우는 자신의 능력이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다. C) 여우는 뒤에 가서 스스로 뭔가 해석을 달리한다. 마지막의 경우를 '인지적 부조화' 내지는 그 부조화의 해소라고 부른다.

 

 

과도한 가치폄하(Hyper-bolic discounting), 오늘을 즐겨라, 그러나 일요일에만

  • 우리가 내리는 결정이 현재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감정적인 이율(利律)'은 상승한다.
  • 우리가 주관적으로 서로 다른 이율을 계산한다는 것을 파악한 경제학자들은 거의 없다. 그들이 적용하는 모델들은 시종일관 일정한 이율에 기초하고 있으며, 따라서 사용 불가능하다.
  • 과도한 가치 폄하, 즉 우리가 직접성의 궤도 안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동물적으로 살던 과거의 잔재이다. 동물들은 미래에 더 많은 보상을 얻기 위해서 오늘의 보상을 거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 충동을 억제할 수 있는 힘을 얻을수록 우리는 생각의 오류를 성공적으로 피할 수 있다.

 

 

에필로그

  • '공동체 안에서 살 때는 낯선 관념들 속에서 사는 것이 쉽다. 혼자 살 때는 자기 자신의 관념 속에서 사는 것이 쉽다. 그러나 공동체 안에서도 독립성을 유지하는 자만이 주목할 만하다.' - 랄프 왈도 에머슨
  • 지난 만 년 동안 우리는 우리가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를 창조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그러나 또 더욱 복잡하고 서로 의존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물질적으로는 더욱 놀라운 번영을 이룩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와 더불어 문명의 폐단과 생각의 오류도 생겨났다. 복잡성이 계속해서 증가하면서 이런 생각의 오류들은 더욱 자주, 그리고 더욱 심각하게 일어나게 될 것이다.
  • 생각의 오류를 피하려고 하는 것은 소모적인 일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규칙을 젛했다. (중요한 개인적 결정이나 사업상의 결정처럼) 그 결과가 미치는 영향이 너무 커질 수 있는 상황에서는 가능하면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해 결정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내가 수집한 생각의 오류 목록을 꺼내서, 마치 파일럿이 체크리스트를 보듯이 그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 나간다. 
  • 결과가 미치는 영향이 별로 크지 않은 상황일 때는 (예를 들어 BMW를 살지, 폭스바겐을 살지 결정하는 경우) 최적의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거부하고 직관이 작동하도록 내버려둔다. 머리로 분명하게 생각하는 것은 소모적인 일이다. 그러므로 만약에 피해 가능성이 작다면 그런 일에 머리를 싸매지 말고 오류가 생기더라도 그냥 두어라. 당신은 그렇게 함으로써 더 나은 삶을 살게 된다. 자연은 우리가 어느 정도 안전하게 우리의 인생을 헤쳐 나가는 한 그리고 중요한 결정일 때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는 한 우리가 내리는 결정들이 완벽한지 그렇지 않은지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952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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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지금 해~~


[본문발췌]


깊이 사귀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 하지만 지금은 사회가 점점 커지는 시대니까 뭐든 받아들이는 넓은 마음도 필요할 것 같아....


폭풍우가 휘몰아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고름을 짜내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설마하니 서른여섯이나 먹은 사람이 이런 일에 가슴이 뛸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다시 열여덟 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다. 아무 책임도 없고 미래에 대한 불안도 없던 그 시절로.


벽 하나를 다시 뛰어넘은 기분이 들었다. 자유라는 건 분명 자기 손으로 붙잡는 것이다.


인생, 길지 않다. 지금 당장 내뱉어야 할 걸 쏟아내지 못하면....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은 자기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질 않아. 그러니까 일단 톱니바퀴가 어긋나기 시작하면 고치기가 어렵지.


소설, 그거 어떻게 쓰면 돼?
생각한 걸 솔직하게. 단 객관적으로.
줄거리는 어떤 식으로 구상하고?
그보다는 묘사. 중요한 건 인간을 어떻게 묘사하느냐에 달렸어요.


인간에겐 변화가 필요해.


무너져버릴 것 같은 순간은 앞으로도 여러 번 겪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주위 사람이나 사물로부터 용기를 얻으면 된다. 모두들 그렇게 힘을 내고 살아간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런저런 심각한 일들에 비하면 작가의 고민 따위는 모래알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사라진대도 상관없다. 바람에 날려가도 괜찮다. 그때그때 한순간만이라도 반짝일 수만 있다면.


인간의 보물은 말이다. 한순간에 사람을 다시 일으켜주는 게 말이다. 그런 말을 다루는 일을 하는 자신이 자랑스럽다. 신에게 감사하자.


인간의 삶에는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이 서로 경계를 알 수 없게 버무려져 있다. 그리고 사람마다 가벼움과 무거움의 정도는 다르다. 한마디로 상대적이다. 인간의 삶은 또한 겉과 속이 다르게 되어 있다. 완벽주의자는 있지만 완벽한 사람은 없듯이, 겉으로는 그렇게 보여도 속까지 그런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이 역시 상대적이다.
더러는 가벼워 보이던 것, 하찮던 것, 사소한 성격적 결함이 정신적 질환으로 이어지는 수가 있다. 그렇게 되는 계기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대다수의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알 수 없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만들어 쓰고 있는 가면이 어떤 방패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쿠다 히데오의 이 소설을 읽다 보면 가면 뒤에 있는 자신의 참모습을 들킨 것처럼 뜨끔한 경우가 있다. 인간에 대한 일반론까지 갈 것도 없이 여기 등장하는 사람들 모두가 결정적인 순간에 직면하여 가벼움과 무거움, 겉과 속의 경계선을 남김없이 드러내고 그것이 독자의 내면으로까지 파고들기 때문이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331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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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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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가?
그 일에 어느 정도 애정을 갖고 있는가?
일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하는가?

나는 내 삶에 무엇을 기대했나?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해본다.



[본문발췌]

그대 내게서 계절을 보리.
추위에 떠는 나뭇가지에
노란 이파리들이 몇 잎 또는 하나도 없는 계절
얼마 전 예쁜 새들이 노래했으나 살풍경한 폐허가 된 성가대석을
내게서 그대 그 날의 황혼을 보리.
석양이 서쪽에서 희미해졌을 때처럼
머지않아 암흑의 밤이 가져갈 황혼
모든 것을 안식에 봉인하는 죽음의 두 번째 자아
그 암흑의 밤이 닥쳐올 황혼을.
내게서 그대 그렇게 타는 불꽃의 빛을 보리.
양분이 되었던 것과 함께 소진되어
반드시 목숨을 다해야 할 죽음의 침상처럼
젊음이 타고 남은 재 위에 놓인 불꽃
그대 이것을 알아차리면 그대의 사랑이 더욱 강해져
머지않아 떠나야 하는 것을 잘 사랑하리.


젊은 시절의 어색함과 서투름은 아직 남아 있는 반면, 어쩌면 우정을 쌓는 데 도움이 되었을 솔직함과 열정은 사라져버린 탓이었다.


나이 마흔셋에 윌리엄 스토너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이미 배운 것을 배웠다.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이 강의의 목표는 대략 1200년대부터 1500년대 사이의 작품들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역사상의 몇 가지 사건들이 우리에게 장애물이 될 것입니다. 철학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언어학적인 어려움, 종교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어려움, 실질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이론저인 어려움이 있을 겁니다. 사실 우리가 지금까지 받았던 교육이 모두 이런저런 방식으로 우리를 방해할 것입니다. 경험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는 우리의 습관이 우리의 기대치를 결정한 것처럼, 중세 사람들의 기대치도 습관에 의해 결정되어 있으니까요.


그 상실감, 그가 너무나 오랫동안 속에 담아두었던 그 상실감이 쏟아져 나와 그를 집어삼켰다. 그는 의지를 넘어 그 흐름에 휩쓸리는 자신을 내버려두었다. 자신을 구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는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기억을 향해 미소 짓는 것처럼, 이제 자신은 예순 살이 다 되었으므로 그런 열정이나 사랑의 힘을 초월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초월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초월하지 못할 것이다. 무감각, 무심함, 초연함 밑에 그것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강렬하고 꾸준하게, 옛날부터 항상 그곳에 있었다. 젊었을 때는 잘 생각해보지도 않고 거리낌 없이 그 열정을 주었다. 아처 슬론이 자신에게 보여준 지식의 세계에 열정을 주었다. 그게 몇 년 전이더라? 어리석고 맹목적이었던 연애시절과 신혼시절에는 이디스에게 그 열정을 주었다. 그리고 캐서린에게도 주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열정을 주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기는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 가지가 사랑의 구체적인 알맹이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詩)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 있어.


그는 온전한 순수성, 성실성을 꿈꿨다. 하지만 타협하는 방법을 찾아냈으며, 몰려드는 시시한 일들에 정신을 빼앗겼다.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는 생각했다. 또 뭐가 있지?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생각했다.



[옮긴이의 말 - 김승욱]

스토너의 삶은 누군가의 지적처럼 '실패'에 더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그는 학자로서 명성을 떨치지 못했고, 교육자로서 학생들의 인정을 받지도 못했으며, 사랑에 성공하지도 못했다. 그는 선하고 참을성 많고 성실한 성격이었으나 현명하다고 하기는 힘들었다. 불굴의 용기와 지혜로 난관을 극복하기보다는 조용히 인내하며 기다리는 편이었다. 21세기 한국의 독한 이야기들에 익숙해진 나는 종종 가슴을 쳤다. '이 사람아, 왜 당하고만 있어. 찍소리라도 내봐야지. 딸을 위해서라도, 사랑하는 캐서린을 위해서라도.' 나는 끊임없이 상상했다. 스토너가 악의 무리(이디스, 로맥스, 찰스 워커)를 놀라운 지혜와 용기로 무찌르고 사랑하는 사람들(딸 그레이스와 캐서린)을 행복의 세계로 이끄는 상상.

하지만 작가와 스토너는 끝까지 나의 기대의를 배신했다. 스토너는 계속 참기만 하는데 악의 무리는 승승장구했다. 상황을 단번에 바꿔주는 극적인 반전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몹시 아쉬워하다가 결국 깨달았다. 독한 삶이든, 화려한 삶이든, 스토너처럼 인내하는 수수수한 삶이든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똑같다는 것. 그는 죽음을 앞둔 병상에서 같은 질문을 몇 번이나 되뇐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스토너의 삶이 애잔하지만 그를 섣불리 실패자로 낙인찍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질문 때문이다. 그는 삶을 관조하는 자였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거울 앞에 선 누이처럼, 그가 자신의 실수 또는 남의 잘못으로 인해 겪는 고난은 누구나 살면서 몇 번이나 겪게 마련인 고난의 사례일 뿐이다.

여기에 작가가 인터뷰에서 했다는 말이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주었다. "나는 그가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스토너의 삶을 슬프고 불행한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의 삶은 아주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나은 삶을 살았던 것은 분명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에 어느 정도 애정을 갖고 있었고, 그 일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했으니까요."

이런 시각에서 보면 스토너의 삶은 행복하다. 우리들 중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끝까지 애정을 잃지 않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나는 과연 내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했나? 무엇을 기대하고 있나?'하고 자꾸 독하고 극악스러운 이야기에만 익숙해지고 있는 우리에게는 이런 성찰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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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책, 간접경험과 생각을 넓혀주는 도구!

 

 

[본문발췌]

 

 

"안정을 추구할수록 더욱 불안정해진다. 불안정이 삶의 근본 이치인 까닭에.

안정을 추구하지 않을 때 비로소 불안정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

삶의 불안정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기뻐할 때 성숙이 그대를 찾아올 것이다" - 틈

 

 

Less is More

"발걸음이 가벼울수록 여행도 가볍듯, 삶의 여정에서 가난함으로 필요를 줄인 사람은 더 행복하고, 부의 무게 아래 신음하지 않는다. - 미누시우스 펠릭스"

 

 

오쇼 라즈니쉬 "틈"

윌리엄 어니스트 보우먼 "럼두들 여행기"

매슈 라이언스 "불가능한 여행기"

골디언 밴더브뤼크 "자발적 가난"

김영갑 "그 섬에 내가 있었네"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 예찬"

롤프 포츠 "여행의 기술"

김하돈 "고개를 찾아서"

조세희 "침묵의 뿌리"

막스 피카르트 "침묵의 세계"

강제윤 "섬을걷다"

헨리 조지 "진보와 빈곤"

장 도르메송 "거의 모든것에 관한 거의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263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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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에서 위스키를 찾아 떠난 여행처럼 맥주, 와인을 테마로 가보고 싶은 여행지들이 있다.
맥주 순수령까지 만들며 맥주에 진심인 독일! 그리고 이태리 와인투어, 특히 토스카나의 와이너리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싶다.


[본문발췌]


아일레이 섬 - 싱글 몬트의 성지 (보리, 물, 이탄, 갯바람)
- 아드벡 (Ardbeg)
- 라거부린 (Lagavulin)
- 라프로익 (Laphroaig)
- 카리라 (Caol Ila)
- 보모어 (Bow More)
- 브루익라디 (Bruichladdich)
- 브나하벤 (Bunnahabhain)
앞의 것일 수록 흙내이다. 흙내가 물씬 풍기는 거친 위스키, 뒤로 갈수록 차츰 맛과 향이 순하고 부드러워진다.


아이리시 위스키
- 제임슨 (Jameson)
- 튤러모어 듀 (Tullamore Dew)
- 부시밀스 (Bushmills)
- 패디 (Paddy)
- 파워즈 (Power's)
- 부시밀스 몰트 (Bushmills Malt)


아일랜드 연풍
술이라는 건 그게 어떤 술이든 산지에서 마셔야 제 맛이 나는 것 같다. 그 술이 만들어진 장소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좋다. 물론 와인이나 정종도 마찬가지다. 맥주 역시 그렇다. 산지에서 멀어질수록 그 술을 구성하고 있는 무언가가 조금씩 바래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흔히 말하듯이, '좋은 술은 여행을 하지 않는 법이다'
수송이나 기후의 변화에 따라, 혹은 그 술이 지닌 일상적인 실감으로 조성되어 음용되는 환경을 상실하게 됨으로써, 거기에 들어 있는 향이 미묘하게, 어쩌면 심리적으로 변질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술은 그 산지에서 마셔야만 제 맛을 음미할 수 있다.


여행에 관한 하루키의 생각
사람의 마음속에만 남는 것, 그렇기에 더욱 귀중한 것을 여행은 우리에게 안겨 준다. 여행하는 동안에는 느끼지 못해도, 한참이 지나 깨닫게 되는 것을. 만약 그렇지 않다면, 누가 애써 여행 같은 걸 한단 말인가?
“어떤 여행이라도 많든 적든 간에 나름대로의 중심 테마 같은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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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조화, 자연과의 조화, 사람과의 조화!
조화와 균형이 건강한 삶을 이룬다.


[본문발췌]


사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 되는 대로 그냥저냥 살아가는 것, 아니면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더 나은 길을 찾아 성실히 사는 것이다. 더 나은 것을 이루며 살겠다는 생각은 자기 자신의 삶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 더 나아가 인류의 미래까지 더 나아지게 만든다. - 헉슬리, <생물학자의 생각>, 1923년


조화로운 삶을 위한 원칙 - 헬렌 & 스코트 니어링 부부

  • 우리는 먹고 사는 데 필요한 것을 절반쯤은 자급 자족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이윤 추구의 경제에서 할 수 있는 한은 벗어나기를 희망한다.
  • 우리는 돈을 벌 생각이 없다. 또한 남이 주는 월급을 받거나 무언가를 팔아 이윤을 남기기를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바람은 필요한 것들을 될 수 있는 대로 손수 생산하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먹고 사는 일을 해결하는 것이 일차 목적이다. 한 해를 살기에 충분할 만큼 노동을 하고 양식을 모았다면 그 다음 수확기까지 돈 버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 우리는 모든 일에 들어가는 비용을 우리가 가진 돈만으로 치를 것이다. 은행에서는 절대로 돈을 빌리지 않을 것이다. 땅이나 집을 담보로 넣어 융자를 얻은 뒤 이자를 갚느라 허덕이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 우리는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수확물로 해마다 봄이면 단풍 시럽을 생산할 것이다. 그리고 될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쳐 이 일을 할 것이다.
  • 우리는 능률 있게 시럽을 생산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이 땅을 판 호드 씨의 오래된 제당소를 새 건물로 바꾸고 새로운 장비도 들여 놓을 것이다.
  • 단풍 시럽과 설탕을 팔아서 번 돈으로 필요한 것을 충분히 살 수 있는 한, 우리 땅에서 아무것도 내다 팔지 않을 것이다. 밭에서 거둔 채소나 곡식이 남는다면 이웃과 친구들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 줄 것이다.
  • 우리는 집짐승을 기르지 않을 것이다. ...


건강은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다. 건강할수록 더욱 충만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누릴 수가 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생각하고, 집 짓는 계획을 세우고, 좋은 곡식을 가꾸기 위한 방법을 찾아 나간다 해도, 이 일들이 집을 짓고 농사짓는 사람의 건강에 도움이 안 된다면 아무 뜻이 없을 것이다.


장사를 해서 돈을 보는 것이 더 이로울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그렇게 위험한 일만 아니라면, 마찬가지로, 돈을 빌려 준 다음 이자를 받아 먹고 사는 것이 훨씬 이로울지도 모른다. 그게 정말 떳떳한 일이기만 하다면.. - 카토, <농업에 대하여>


적게 벌고, 그보다 더 적게 쓰라. - 스티븐슨, 크리스마스 설교


문명이란 사실 불필요한 생활 필수품을 끝없이 늘려 가는 것이다. - 마크 트웨인


가장 조화로운 삶은 이론과 실천이, 생각과 행동이 하나가 되는 삶이다.


삶을 넉넉하게 만드는 것은 소유와 축적이 아니라 희망과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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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신념, 철학.... 관점에 따라 말하는 것이 다르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 뛰어나다 비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


[본문발췌]


'사기', 「태사공자서·논육가요지」
무릇 음양가, 유가, 묵가, 명가, 법가, 도가는 모두 통치에 힘썼지만, 단지 관점에 따라 말한 것이 달랐기 때문에 살핀 것과 살피지 않는 것이 있을 따름이다.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1. 음양가는 징조를 중시하고 꺼리는 것이 많아서 사람들을 압박하여 두려운 것이 많게 했다. 그렇지만 음양가가 사계절의 커다란 순서를 규정한 것은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2. 유가의 학설은 넓지만 요점이 적고 수고스럽지만 효과는 적다. 그러므로 유가의 일은 모두 따르기가 힘들다. 그렇지만 유가가 군신과 부자의 예라고 규정하는 것, 그리고 부부와 장유의 구별을 분명히 한 것은 바뀔 수 없는 것이다.
  3. 묵가의 학설은 검약하여 따르기가 힘들다. 그러므로 묵가의 일을 모두 실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농사를 강화하고 비용을 절약하라는 묵가의 주장은 없앨 수 없는 것이다.
  4. 법가의 학설은 엄격하여 자애로움이 부족하다. 그렇지만 법가가 군신과 상하 관계의 직분을 바로잡은 것은 고처서는 안된다.
  5. 명가의 학설은 엄밀한 논리를 강조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진실함을 잃게 한다. 그렇지만 명가가 이름과 실제를 바로잡은 것은 살피지 않을 수가 없다.
  6. 도가의 학설은 사람의 정신을 전일하게 하고 보이지 않는 도에 부합하도록 행동하게 하고 만물을 풍족하게 만든다. 도가의 학술은 음양가가 말한 사계절 순서에 근거하고 유가와 묵가의 장점을 모으며 명가와 법가의 핵심을 취한다. 그래서 도가는 때와 사태에 따라 변화하여 풍속을 진작시키고 일을 시행하여, 어느 경우든 합당하지 않은 적이 없다. 도가의 학설은 간단하여 적용하기 쉽고, 일은 적지만 효과는 크다


'묵자' - 비유 하
유가들은 "군자는 옛것을 따르지 새로운 것을 만들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에 답하겠다. 옛날 예는 활을 만들었고 여는 갑옷을 만들었고 해중은 수레를 만들었으며 교수는 배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지금 가죽 공인, 갑옷 공인, 수레와 배 공인은 모두 군자이고 예, 여, 해중, 교수는 모두 소인이라는 것인가? 게다가 유가들이 따르는 것은 사람들 중 누군가 반드시 만든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유가들이 따르는 것은 모두 소인의 도가 된다.


'순자', 해폐
묵자는 실용에 사로잡혀 문화의 가치를 몰랐고, 송견은 욕망에 사로잡혀서 욕망 충족의 중요성을 몰랐고, 신도는 법에 사로잡혀 사람의 능력이 가진 중요성을 몰랐고, 신불해는 권세에 사로잡혀서 사람의 지혜를 몰랐고, 혜시는 문장에 사로잡혀서 사물의 실정을 몰랐고, 장자는 자연에 사로잡혀 인위를 알지 못했다.


'순자', 천론
신도는 사후적인 대응만을 보고 사전적인 예측을 보지 못했고 노자는 소극적인 태도만을 보았지 적극적인 태도는 보지 못했고 묵자는 평등만을 보았지 차등을 보지 못했고 송견은 욕망의 적음만을 보았지 욕망의 많음을 보지 못했다.

순자에 따르면 장자가 인위적인 노력보다는 자연적인 숙명이 가진 힘을 숙고한 철학자였다면, 반면 노자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실현하기보다는 소극적이고 겸손한 태도로 삶을 영위하려는 인생 철학자였다.


'여씨춘추', 불이
노자는 부드러움을 중시하고, 공자는 인(仁)을 중시하고, 묵적은 청렴함(廉)을 중시하고, 관윤은 맑음(淸)을 중시하고, 열자는 빔(虛)을 중시하고, 진변은 가지런함(濟)을 중시하고, 양주는 삶(生)을 중시하고, 손빈은 형세를 중시하고, 왕료는 사전적 계책(先)을 중시하고, 아량은 사후적 변통(後)을 중시한다. 이 10명의 사상가들은 모두 천하의 뛰어난 지식인들이다.


'회남자', 범론훈
돌아가며 인사하고 양보하는 것으로 예를 닦고, 두텁게 장례를 치르고 오랫동안 상례를 치름으로써 죽은 자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공자가 정립했던 것인데, 묵자는 이것을 비판했다. 서로를 차별 없이 사랑하고 능력있는 사람을 숭상하고, 귀신을 돕고 숙명론에 반대하는 것이 바로 묵자가 정립한 것인다, 양주는 이것을 비판했다. 생명을 온전하게 하고 참된 것을 보존하고, 외적인 것들로 자기 몸을 얽어매지 않는 것은 양주가 정립했던 것인데, 맹자는 이것을 비판했다.


춘추시대 사상사는 세 가지 특이점으로 구성된다. 패자를 지향했던 관중의 정치철학, 주례를 복원하려고 했던 공자의 유학, 그리고 공자의 보수성을 공격하면서 등장했던 묵자의 실천 철학이 바로 그것이다.
전국시대의 사상사는 춘추시대의 사상사보다 훨씬 더 복잡한 양상을 띤다.

  • 첫째, 유가와 묵가는 춘추시대를 넘어서 전국시대에까지 사상적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했다. 하지만 묵가는 전국시대가 끝나자 마자 마치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중국 사상계에서 사라진다.
  • 둘째, 제나라의 직하학사가 갖는 사상적 중요성이다. 직하학사는 거의 1000여 명의 사상가가 제나라의 경제적 후원을 등에 업고 자유로운 토론과 논쟁을 만끽했던 장소다. 사상가들이 모여 사상적 헤게모니를 놓고 다른 사상가들과 치열한 논쟁을 펼치게 된다. 이런 논쟁 과정을 통해 그들은 자신이 주장하는 철학의 한계와 가능성을 자각하고, 반대로 상대방의 철학이 가진 장점과 단점을 이해하게 된다. 그들이 자신이 가진 철학적 통찰력을 더 세련되고 논리적인 형시으로 체계화하게 된 것도 바로 이 논쟁의 힘이었던 셈이다. 이런 치열한 논쟁이 제자백가로 하여금 정당화의 논리나 설득의 수사학을 모색하도로고 강제했다는 점이다. 또한 직하학사에서는 사상의 자유가 철저하게 보장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양주와 송견처럼 반전 평화주의를 표방하는 아나키스트들도 직하학사에서는 속내를 거침없이 토로할 수 있었다.
  • 셋째, '사기'나 '한서'에서 도가로 분류되는 노자와 장자의 철학이 전국시대 중기 직하학사에 처음으로 모습을 보인다.
  • 넷째, 전국시대 중기부터 천하 통일 직전까지 직하학사에서 정치 철학자로 각광을 받았던 신도와 신불해의 사상이 한비자의 정치철학, 다시 말해 전제군주를 정점으로 하는 현실주의적 정치철학으로 종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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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경제, 정치체계와 플랫폼 기업의 서비스는 사람들에게 풍요와 편익을 제공하며 부지불식간에 시스템의 노예로 만든다.

 

 

[본문발췌]

 

 

내가 사랑한 것이 사랑이었는지, 아니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분별없는 끌림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의 우행(愚行)이 사랑' 이라면 결혼은 '장기간에 걸친 우행' 이라는 니체의 말을 나는 결혼 전부터 언제나 숭상했다.

 

 

서울은 이른바 문화의 드높은 '중심'이고 소비자본의 아름다운 '첨단'이나, 동시에 갈 길 모르는 망명자들의 감미로운 '피난처'이기도 했다. 나도 한때 그 분위기에 끼이고자 나의 고절한 시간들을 견딘 적이 있었다. 갈 길 모르던 망명자 시절의 이야기였다. '젊었을 때 우리는 배우고 늙었을 때 우리는 이해한다'는 잠언은 틀린 말이었다. 젊은이들이 화려한 문화의 중심에서 만 원씩 하는 커피를 마실 때, 늙은 아버지들은 첨단을 등진 변두리 어두컴컴한 작업장 뒤편에서 인스턴트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들고 있는게 우리네 풍경이었다. 문제의 잠언은 '젊을 때 소비하고 늙을 때는 밀려난다'고 바꿔야 마땅했다.

 

 

어머니는 일종의 자본가였고, 아버지는 어머니와 세 자매의 몸종이나 청지기 같은 존재에 불과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다. 금 나와라 뚝딱, 하면 어머니를 통해 금이 나왔고 은나와라 뚝딱, 하면 어머니를 통해 또 은이 나왔다. 그녀와 언니들이 자연히 어머니를 중심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머니를 사랑해서라기보다 어머니가 분배해주는 달콤한 과실에 철저히 굴종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분배해줄 것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그녀들은 어머니에게마저 그런 존경과 신뢰를 바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소금은, 모든 맛을 다 갖고 있다네. 단맛, 신만, 쓴맛, 짠맛. 단것, 신것에 소금을 치면 더 달고 더 시어져. 뿐인가. 염도가 적당할 때 거둔 소금은 부드러운 짠맛이 나지만 32도가 넘으면 쓴맛이 강해. 세상의 모든 소금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맛이 달라. 소금에 포함된 미네랄이나 아미노산 같은 것이 만들어내는 조화야. 사람들은 닷맛에서 일반적으로 위로와 사랑을 느껴. 가볍지. 그에 비해 신맛은 나에게 시비를 거는 것 같고, 짠맛은 뭐라고 할까, 옹골찬 균형이 떠올라. 내 느낌이 그렇다는 거야. 쓴맛은 그럼 뭐냐. 쓴맛은, 어둠이라 할 수 있겠지...."

 

 

"염전의 바닥을 까뒤집어 고르게 하면 증발이 잘되니까 생산량이 물론 높아지지.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일세. 내가 지금 판을 까뒤집는 건 단지 생산량 때문이 아닐세. 갯벌 아래, 그러니까 저기 눌린 어둠속에 미생물이 더 많아서 까뒤집는 거야. 그것들이 많이 포함돼야 모든 맛이 균형 있게 녹아들어 하나로 합쳐지니까. 나는 짜기만 한 소금은 싫어. 이제 세계인의 지상명령어가 돼 자네 같은 시인도 무심코 내게 들이대는 말, 그 생산량이란 말만 해도 그렇잖아. 예컨대 공업적으로 불순물을 제거한 정제염은 염화나트륨 성분이 거의 전부야. 거기엔 오로지 짠맛밖에 없어요. 생산량이란 말도 바로 그렇지. 다른 게 끼어들 틈이 없는 말이거든. 생산량의 증가를 가로막는 다른 것은 모두 불순물이라고 불러. 단연 제거해야 할 것이라고. 생산량이란 관점으로는 좋을지 모르지만 사람에게 해로울 뿐이지. 젊은 사람이 애할지는 모르겠지만, 소금은, 인생의 맛일세!"

 

 

모든 문제는 잉여 재산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그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잉여는 소비를 부르고, 소비는 더 큰 욕망과 더 큰 잉여를 부르도록 운명 지워져 있었다.

 

 

"이걸로 돈을 벌어 많이 모아야 한다면 상관이 있겠지만, 우리 가족 먹고사는 거야 그래도 충분하니까 된 거지. 생산성이란 말, 나는 증오하네. 잉여 재산을 쌓으려고 생산성 타령을 하는 것이겠지. 지구인들을 노예로 만드는 낱말이 바로 그거야, 생산성! 재물 쌓아서 뭐하겠나. 애들 물려주려고? 핏줄 배불리려고? 돈을 물려주는 것보다, 저 혼자서 굶주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기르면 되는 거지. 난 우리 애들, 생산성의 노예로 살게 할 마음 없어. 포악한 말이야." 생산성의 폭압적인 가치를 버리는 대신 자연주의적 정성의 집결체로서 사람을 살리는 소금이 토판염이라 했다. 좋은 소금은 만물을 살린다고 그는 말했다.

 

 

가출 전의 그는 빨대 하나 들고 세상의 구조에 충직하게 복무했다. 만족은 오지 않았다. 불가사리 같은 자본 중심의 체제에 기생해 그 역시 빨대를 꽂고 죽어라 빨았으나, 넷이나 되는 처자식이 그의 몸뚱이에 빨대를 또한 꽂고 있었으므로 그가 빨아올리는 꿀은 늘 턱없이 모자랐다. 모자라면 더욱 몸이 달았다. 그 체제는 그에게 약간의 꿀을 제공하는 대신, 그를 계속 노예 상태로 두고 부려먹기 위해 그의 후방에 있는 처자식을 끊임없이 부추겨 그가 빨아 오는 꿀을 더 재빨리 소모시키도록 획책했다. 회사의 매출이 10으로 늘어나면 '단맛'에 길들여진 가족들의 소비 욕구는 어느새 100이 되었다. 회사와 회사를 거느린 체제가, 그에게 10을 주고 뒷구멍에서는 그의 가족들이 100의 욕구를 갖도록 끊임없이 획책했다는 것을, 그는 가출하기 전엔 몰랐다. 그가 죽어라 빨대를 꽂아 빤 10의 꿀은 빚까지 보태 가족들에게 100으로 빨렸고, 그 100은 다시 고스란히 회사와 회사를 거느린 체제 안으로 되돌아가는 방식이었다.

체제의 입장에서는 아주 효율적인 구조였다. 그러나 그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연봉이 올라도 계속 방어 불능 상태에 남게 되는 잔인한 구조가 아닐 수 없었다. 그 구조 안에 들면 부모 자식, 부부 관계되 안전하게 영위하는 일이 불가능했다. 자식들은 커가면서 아비의 말보다 저들에게 더 다급하게 영향받는 욕마의 '괴물'로 시시각각 변해갔다. 가족끼리 둘러앉아서도 더, 더, 더라고 말하면서 소비의 단맛을 쫓아가도록 만드는 효과적인 프로그램은 얼마든 널려 있었다. 동료에게든 친구에게든, 비인간적인 빨대를 꽂아 욕망을 채우도록 유도하는 프로그램들도 다 그 범위 안에 있었다.

 

 

흐르고 머무는 것이 자연이려니와, 흐르고 머무는 것이 곧 사람이었다.

 

 

"누구나 가슴속엔 시인이 살고 있네

 시인의 친구가 살고 있네

 바람이 메말라 사막이 되더라도

 눈물이 메말라 소금밭이 되더라도

 눈빛은 서글서글 속눈썹은 반짝반짝

 나의 친구 시인은 어린 나무처럼 잠들지

 누구나 가슴속엔 시인이 살고 있네

 시인의 친구가 살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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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문화유산 답사기를 읽고 떠나는 여행! 눈으로 보기만 하는 여행에서 느끼고 내 기억속에 녹아드는 여행!

[1권 - 남도답사 일번지 본문발췌]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토박물관의 참 모습과 참된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외국을 관광하고 돌아오는 사람 중에는 "대영 박물관에 가보았더니 한국미술품이 너무 초라하더라" 는 식으로 말을 아주 쉽게 해버리는 경우를 자주 만난다. 그러나 이 말을 정확한 표현으로 고친다면 고친다면 "대영박물관의 한국미술품 컬렉션은 별볼일 없더라"라고 해야 옳다.


사람들은 생래적으로 흔한 것은 귀하게 여기지 않는 습성이 있다.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만큼 보인다.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만큼만 느끼는 법이다. 그 경험의 폭은 반드시 지적인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 경험, 삶의 체험 모두를 말한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아나니 그 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 유한준


인간의 손때보다 더 더러운 것이 없다더니 저 더러운 손길이 닿을 적마다 옛 정취도, 자연의 생태계도, 인간의 마음씀도 송두리째 바뀌어버리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농촌은 곡식을 길러내는 농사의 터전에서 돈많은 도시인의 휴양지로, 소유욕과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연지빛, 등황빛, 치자빛, 쪽빛의 정순한 색감. 남도의 봄, 그것은 우리가 영원히 간직해야 할 자연의 원색이고 우리의 원색인 것이다.


먼저 깨친 사람이 나중 사람에게 배운 것을 나누어주는 데 인색해서 안된다.


절이라는 것은 소원성취 해달라고 비는 것이 아니다. 절이란 돌덩이, 쇳덩이 앞에서도 무릎을 꿇을 수 있다는 자기의 겸손을 보여주는 것이다.


승자는 역사 속에서 정사(正史)라는 이름 아래 허구를 치장하겠지만 패자는 야사(野史) 속에서 위대한 전설을 남길 것이다. 역사 속에서 패자의 모습은 안좋다. 칼을 쥔 자, 붓을 쥔 자의 일방적 폭력은 그렇게 나타나곤 한다.


경험에 기초하지 않은 상상력은 보잘것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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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 남한강편 본문발췌]


일본인 민예학자 야나기 무네요시는 한중일 3국의 미술적 특성을 비교하면서 '중국 미술은 형태미가 강하고, 일본 미술은 색채감각이 뛰어나며, 한국 미술은 선이 아름답다'면서 중국 도자기는 권위적이고, 일본 도자기는 명량하고, 한국 도자기는 친숙감이 감도는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그래서 중국 도자기는 멀리서 감상하고 싶어지고, 일본 도자기는 곁에 놓고 사용하고 싶어지는데 한국 도자기는 손으로 어루만져보고 싶어진다고 했다. 그런 친숙감이 우리나라 정자에도 그대로 어려 있다.


사의. 산, 물, 바람, 인심이 좋다. 다산이 말한 사의란 '맑은 생각, 단정한 용모, 과묵한 말씨, 신중한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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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0권 - 서울편 본문발췌]



종묘는 봄여름보다 가을 겨울이 더 좋다. 종묘의 단풍은 울긋불긋 요란스레 화려한 것이 아니라, 참나무 느티나무의 황갈색이 주조를 이룬 가우데 노란 은행나무와 빨간 단풍나무가 점점이 어우러져 가을날의 차분한 정취가 은은히 젖어들게 한다. 그때 종묘에 가면 아마도 인생의 황혼 녘에 찾아오는 처연한 미학을 느끼게 될 것이며, 그렇게 늙을 수만 있다면 잘 산 인생이라고 말하고 싶은 그런 가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뒷산 너머에 있는 창덕궁 후원의 단풍이 '화이불치(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라고 한다면 종묘의 단풍은 '검이불루(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다)'라 할 만하다. 겨울 어느 날, 눈이 내려 정전의 지붕이 하얗게 덮일 때 종묘는 거대한 수묵 진경산수화와 같은 명장면을 연출한다. 늦가을의 토요일 오후, 눈 내린 겨울날의 토요일 오전이 제격이다.


부감법은 새가 날아가면서 내려다보는 듯한 시각 구성법으로 풍광을 일목요연하게 장악한다. 궁궐들을 부감하기 좋은 곳

  • 덕수궁은 서울시청이 개방되어 훌륭한 조망을 제공
  • 경복궁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8층에서 보면 <북궐도>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훤하게 보인다.
  • 종묘는 세운상가 옥상에서 보면 숲속의 정전이 그림처럼 드러나고
  • 창덕궁은 근래에 문을 연 '공간' 신사옥 4층의 카페에서 보면 측면관을 조망할 수 있다.
  • 창경궁은 서울대병원 암센터 6층 옥상에서 행복정원이 생겨 더 없이 훌륭한 조망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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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밖으로 나온 말은 주어담을 수 없고 말이 화의 근원이 되는 예도 많다.
반대로 말로 천냥 빚을 갑는다는 속담도 있다.

삶에서 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본문발췌]


말의 한계가 그 사람의 한계다. 어른은 어른답게 말해야 한다. 말하기에 자신이 없다면, 존중받기를 바란다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 첫째, 오락가락하지 않아야 한다. 머릿속 생각과 내뱉는 말이 따로따로이면 안 된다. 어제 한 말과 오늘 한 말이 일관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심을 말해야 한다.
  • 둘째, 배울 점이 있어야 한다. 어른의 말은 적게 말하면서 많은 것을 들려준다. 천방지축 끼어들고, 참견하고,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본보기가 되어 남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 위로와 용기와 깨우침을 준다. 얻을 게 하나도 없는 말은 '꼰대'의 잔소리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셋째, 징징대고 어리광부리지 않는다. 감정을 절제해 의젓하게 말한다.
  • 넷째, 나답게 말한다. 말이란 곧 나이기에 그렇다. 내 말이 소중하다고 믿고, 말이 거칠어지거나 투박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인다. 더불어 내 말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부지런히 공부한다.


귀로 듣는 게 잘 듣는 것일까? 혹은 시간을 내 들어주면 잘 듣는 것일까 아니다. 마음으로 들어줘야 잘 듣는 것이다. 마음으로 듣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말하는 사람의 심정과 처지에서 듣는 것이다. 듣고 나서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을 찾아 해주고, 그것을 생색내지 않는 것이다.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그렇다.


반대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 첫째, 상대 의견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해준다. "얘기 잘 들었습니다.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요"라고 말한다.
  • 둘째, 공통점을 찾는다. "이러이러한 점에서 저와 의견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기뻤습니다."라고 말한다.
  • 셋째, 내 의견을 피력하기 위한 자락을 만들어둔다. 이른바 쿠션 화법을 구사하는 것이다. 상대의 불쾌감을 덜 수 있도록 본론을 꺼내기에 앞서 '이렇게 말씀드려 죄송합니다만', '결례인 줄 압니다만', '언짢게 들리실 수도 있는데'와 같이 완충 작용을 하는 말을 먼저 덧붙이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가 마음의 준비를 하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존중받았다고 느낀다.
  • 넷째, 이제 반대 의사를 표명한다. 반대하는 이유와 근거, 대안을 포함해 말해야 한다. 그래야 반대를 위한 반대가 되지 않는다.
  • 끝으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반대하는 이유가 개인의 이해득실이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이익 때문에 반대해서는 설득력이 없다. 손해를 감수하면서 반대했을 때 명분이 생긴다. 또한, 사람이 싫어서 반대한다는 인상을 주면 안 된다. 반대하는 사안과 사람을 분리해야 한다. 그래야 앙금이 남지 않는다. 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희망이란 것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땅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사실 땅위에는 본래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곧 길이 된 것이다. - 루쉰, <고향>


의제를 설정하고 여론을 만들어가는 힘이 일부 집단에 편중되어 있는 사회, 언론과 정치와 권력기관이 말을 장악하고 있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힘있는 사람끼리 은밀히 말을 주고받으며 자기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말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공유되어야 한다. 시민이 언론과 정치권의 눈치를 보고 그들의 말을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정치권과 언론이 시민의 말을 두려워해야 한다. 시민이 균형 있는 공론의 장을 이끌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시민의 입이 열려 있어야 하고, 시민이 깨어 있어야 한다.


대화에 집중하는 몰입과 동시에 적당한 거리두기가 균형을 이룰 때 대화는 더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자기 자신과도 거리를 둬야 한다. 나를 객관화해서 보고, 내 삶을 관조하는 거리두기 말이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늘 하는 말이 과연 사실인가? 나는 언제나 진실한가? 남들은 내 말을 어떻게 평가할까? 이런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는 거리두기가 가끔은 필요하다.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만 보게 되고, 과정을 눈여겨보지 않으니 칭찬에 인색해지는 것이다. 결과는 한 번뿐이고 늘 좋을 수는 없다. 반면, 과정은 보기에 따라 무수히 많은 칭찬거리를 제공한다.


사람들은 남의 얘기에서 의미를 찾고 싶어 한다. 각각의 경험에서 배운 것, 느낀 것, 새롭게 알게 된 것, 깨달은 것을 추가해 경험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랬더니 이제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단다. 그런데 하나 더 필요한 게 있다고 한다. 지금 상태는 저자 개인의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에게 '이건 내 얘기만이 아니라 당신에게도 해당하는 얘기'라는 생각을 갖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경험을 모두의 경험으로 만드는 일반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나의 경험을 보편적인 경험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게 인용이다. 인용은 내 말의 신뢰도를 높여줄 뿐 아니라 나의 특수한 경험을 일반화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누구도 그랬고, 누구도 이렇게 말했어'라는 것이다. 경험은 가장 중요한 말하기의 밑천이다. 말문이 막히거나 말하기가 막막할 때는 경험을 얘기하면 된다. 그리고 그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고, 인용을 달아주면 된다.


말 잘하는 사람은 7가지를 맞춘다.

  • 눈을 맞추고 말해야 한다. 단순히 시선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 교감하며 말하는 것이다. 상대의 반응에 응답하고 감정을 교류하며 말한다.
  • 상황을 맞춰야 한다. 정치나 종교 얘기가 특히 그렇다. 상대의 정치적 성향이나 종교적 신념을 고려하지 않고 말하면 관계를 해치거나 시비가 붙을 수 있다.
  • 속도도 맞춰야 한다. 말하는 속도만이 아니라, 상대가 이해하는 속도에 맞춰 말해야 한다.
  • 관심사를 맞춘다.
  • 스타일을 맞춘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걸 좋아히지 않는 사람도 있다. 공격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고 수줍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스타일이 제각각이다. 상대 스타일을 파악해 맞춰줄 필요가 있다. 말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내 말수를 좀 줄여 상대가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더 주고, 수줍게 말하는 사람의 말은 적극적으로 반응해줘서 자신감을 북돋아줘야 한다.
  • 수위를 맞춰야 한다. 수위는 말의 톤에 해당한다. 따뜻하고 차가운, 부드럽고 거친 정도를 의미한다.
  • 수준을 맞춰야 한다. 사람마다 수준이 다르다. 어린아이와 나이 지극한 사람의 수준이 다르고, 많이 배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수준이 다르다.



관찰이 차이를 만든다.

  • 우리는 살면서 몇 안 되는 세계를 체험한다. 나머지는 자신이 경험한 세게를 바탕으로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편견과 오해, 선입견, 고정관념이 만들어진다. 경험하지 않은 세계를 아는 길은 관찰뿐이다.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거기에 오묘한 세계가 있다. 알면 알수록 더 궁금해지고 파면 팔수록 더 깊이가 느껴지는 또 다른 세상 말이다.
  • 말을 잘 하는 사람은 대체로 자신이 모르는 미지의 것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하다. 그래서 사람을, 사건을, 사물을 유심히 본다. 호기심이 발동해 관찰하고 본 것을 말한다. 아니 말하기 위해 열심히 관찰한다. 관찰은 나만의 느낌과 독창적인 생각을 만드는 출발점이다. 보는 것만 실재하는 세계이고, 말하기의 대상이 된다. 우리는 관찰하고, 그걸 말로 표현하는 법을 태어난 직후부터 끊임없이 배우는데 그 단계는 다음과 같다.



"대화의 요체는 말하는 수사학에 있지 않고, 말을 듣는 심리학에 있다."


말의 선명도를 낮추는 5적(賊). 명확하게 말하기 위해 피해야 할 다섯 가지

  • 첫 번째 적은 전제 조건을 다는 것이다. 하고자 하는 말 앞에 '....합니다만'이라는 단서를 붙인다. 자기 말에 자신이 없는 경우다. 빠져나갈 구멍을 미리 만들어놓는 것이다.
  • 두 번째 적은 말끝을 흐리는 것이다. 얼버무린다고도 하는데, 끝까지 말하지 않고 말줄임표로 말을 마친다. '~같다', '...인 듯하다', '~로 보여진다'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한다. '본다'라고 하면 될 것을 '보인다'도 아니고 '보여진다'고 말한다.
  • 세 번째 적은 주어를 빼고 말하는 것이다. 사돈 남 말 하듯 하는 것이다. 방송기자들이 자주 쓰는 '~라고 알려졌습니다'도 여기에 해당한다. '알려졌다'의, 주어는 사람이 아니다.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사실은 누가 말한 것인가. 확인되지 않은 풍문이나 낭설에 불과한 것인가?
  • 네 번째 적은 지시대명사의 남발이다. '그것', '저것', '이것' 등의 지시대명사를 많이 쓰면 '거시기' 화법이 될 공산이 크다.
  • 다섯 번째 적은 이중부정과 피동형이다. '꼭 그렇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등과 같이 비비 꼬아 이중부정하거나 '~라고 예측한다', '~라고 부른다' 하면 될 것을 '~로 예측된다', '~라고 불리운다'같이 피동형으로 말한다.



말은 곧 자기 생각과 마음이다. 말이 바뀌면 생각과 마음이 바뀌고, 생각과 마음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현실이 바뀐다. 모든 것이 말한 대로 된다.


우리는 상대에게 말을 건네기 전에 무슨 말을 할지, 또 그것을 어떻게 전달할지를 충분히 고민한다. 그러나 누구에게 말하는지는 간과하기 쉽다. 내 의견을 어떻게 설득할까에 대해서만 생각하지, 듣는 사람이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 그가 무엇을 기대하는지는 뒷전일 경우가 많다. 사실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말이다. 말은 내가 하는 것이니 내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말은 하지 않을 때까지만 내 것이다. 내뱉는 순간, 그 말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그때부터 말의 소유권은 들은 사람에게 옮아간다.


상관과 리더의 차이는 무엇일까? 상관은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리더는 의욕이 샘솟게 한다. 상관은 책임을 추궁하고 리더는 문제를 해결한다. 상관은 '해'라고 말하고, 리더는 '합시다'라고 말한다. 결국 상관과 리더의 가장 차이는 질책하는 순간에 나오는 말의 품격에서 드러난다.


협상을 잘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 상대를 잘 파악해야 한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고 무슨 대화가 오갈지 예상해봐야 한다. 가상 시나리오를 써보는 것이다.
  • 대화의 주도권을 잡을 필요는 없다. 주도권을 잡으려 하면 할수록 상대는 더 멀리 도망간다. 상대의 기를 꺾기보다는 체면을 세워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듣고 나중에 말하고, 많이 듣고 적게 말하는 편이 전략적으로 유리하다.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상대 생각을 알면 내가 할 말의 윤곽이 더 뚜렷해지기 때문이다.
  • 진정성으로 승부하는 게 낫다. 사람들은 다소 논리가 빈약하더라도 충정이 느껴지는 사람에게 끌리고, 논리적 설득보다는 인간적 신뢰가 협상 결과에 더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 껄끄럽고 합의하기 어려운 사안을 뒤로 미뤄두면 대부분 타협을 하고도 협상 말미에 어려움에 봉착한다. 그러나 어려운 것을 먼저 해결하면 거기에 들인 노력이 아까워서라도 쉬운 것은 서로 양보하며 결론을 내게 돼 있다. 사안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려운 과제를 뒤로 미뤄두고 싶은 심리가 발동해 쉬운 것부터 합의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 협상은 이기고 지는 승부가 아니라, 거래를 통해 서로 원하는 것을 얻는 흥정이다. 이기려 들지 말고 함께 성공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 툭 까놓고 말하는 게 낫다. 투명해야 한다. 내 카드를 보여줘야 실질적인 협상이 가능하다. '모 아니면 도가 아니라 차선책을 찾는 유연함이 있어야 한다. 독식하려 말고 교환해야 한다.



말은 듣는 사람의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생각은 자유'다. 그러나 그것이 말로 나오는 순간 이미 나의 것이 아니다. 말은 드는 사람이 주도권을 쥔다. 어떤 말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들었느냐가 중요하다. "병은 입으로 들어가고 화는 입에서 나온다."


내 평판 혹은 내 삶이 왠지 꼬이는 것 같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나의 말버릇을 되돌아보면 어떨까. 나는 '반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인가, '반이나 남았다'고 말하는 사람인가. 말 습관이 바뀌면 인상이 바뀌고 인생이 바뀐다.


누구보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나만의 콘텐츠와 이야기를 갖는 것. 달라진 시대, 긴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전략 중 하나다.


이 하루가 고맙지 않을 이유가 없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입에 달고 살아보자.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감사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게 고마울 뿐이다. 고맙다는 말은 그 말을 듣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하고, 그렇게 말하는 자신의 마음도 따뜻하게 만든다. 미움과 원망과 불평이 가져오는 해악을 생각해보면, 감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는 오늘도 이렇게 말한다. "빈손으로 태어나 무어라도 가졌으니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지금 이렇게 살아 있어 감사합니다."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책을 읽으면서, 또 읽고 나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읽으면서 메모하고, 읽고 나서 누군가에게 말해보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할 때 독서는 명실상부한 말하기 훈련이 된다. 이밖에도 독서를 하면 얻는 게 많다. 말할거리를 얻을 수 있고, 책을 읽으면서 어휘력과 스토리텔링 능력을 키울 수도 있다. 다만 말할거리를 얻기 위해서는 메모해야 하고, 어휘력과 스토리텔링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저자가 쓴 단어와 글의 구성에 주목하며 읽어야 한다. 메모하지 않거나, 내용을 파악하는 데만 몰두해서 읽으면 말하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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