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 속에 새로움이 있다.

 

 

[본문발췌]

 

 

인간의 뇌가 세상을 이야기로 인식하다 보니, 세상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특성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은 언어를 창조하고, 언어는 추상적인 의미마저 만들어내고, 결국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종이 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삶과 예술의 의미에 대한 의문의 답은 우리 뇌 속에 있을 것이다. 

 

 

자연 속 생명을 가진 개체들이 소통하고자 하는 간절한 의지는 처연하고도 경이롭다. 달밤에 개구리는 구슬프게 울어 댄다. 소리를 내면 천적에게 잡아먹힐 위험이 높아지는데도, 개구리들은 목숨을 걸고 애타게 짝을 찾으며 운다. 소통이란 생명 그 자체이고, 때로 개체의 목숨을 초월해서 관철되기도 한다.

 

 

인간은 소통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백영옥 작가가 말했듯이 제대로 소통하는 것은 기적이다. 솔직히 우리는 자신이 무얼 원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더구나 소통은 너무 적어도 안 되고 너무 많아도 안 된다. 불필요하게 상대의 주의를 빼앗는 것은 소통이 아니라 고통이다. 정보화 시대이자 소통과 연결의 시대, 오히려 우리는 더욱 외로움에 허우적거리며 소통이 얼마나 미묘한 것인지 배워 가고 있다.

 

 

유머란 어떤 일에 몰두하다가도, 여유를 갖고 주위를 넓게 둘러보며 균형을 잡는 힘이다. 한 발 물러서면 시야가 넓어진다. 그렇게 넓혀 놓은 공간에 경직된 당위를 해제하는 합리적인 의심도 들어서고, 근시안적으로 보면 엉뚱해 보일지 모를 해결책을 찾아내는 창의성도 들어선다. 여유는 세상과 더 잘 지내기 위해 개인들이 애써 확보해야 할 공간이다. 그 여유 공간 속에서 날선 감정들은 희석된다. 그리고 그 안에 유머가 채워진다.

 

 

중첩이나 관측이라는 '현상'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런 현상을 제대로 기술할 언어가 우리에게 없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언어는 세상을 기술하기에 충분치 않다.

 

 

우주는 엔트로피의 증가, 즉 죽음을 선호한다. 이런 우주에서 생명은 돌연변이이자 이단아다. 그래서 우주도 중요하지만 생명은 소중하다. 소중한 존재는 그 자체가 궁극이지만 중요한 존재는 궁극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이다. 우리는 소중한 생명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사람이 새와 함께 사는 법은 새장에 새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마당에 풀과 나무를 키우는 일이다. 모든 생명이 그러하다.

 

 

칸딘스키는 음악을 보여 주려 했다. 음악은 결맞은 파동이다. 결맞은 파동은 양자역학이 가지는 기이함의 근원이다. 양자역학에서는 파동을 보면 결이 어긋난다. 소리를 보기 위해서도 결이 어긋나야 할까? 칸딘스키가 보여 준 음악은 결이 어긋나며 의미조차 상실해 버린 건지도 모른다. 이렇게 음악은 추상을 통해 그림이 되었다.

 

 

'자연스러움'이란 '자연 그대로의 상태'라기보다는 인간이 받아들이는 관념이다. 따라서 '자연스러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인간의 보편성과 다양한 문화별, 개인별 특수성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인간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기계'에 대비해서 우리는 인간에게 '인간적'이라는 표현을 쓴다. '인간적'은 놀랍게도 '인위'보다는 '자연'에 가깝다. '다른 생물', 특히 '동물'에 대비해서는 '인간답다'라는 표현을 쓴다. '인간다움'은 '야만' 아닌 '문명적'이라는 뜻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기계에 대응해서 자연과 우주의 섭리에 순응할 때 '인간적'이라고 하고, 동물에 대응해서 자연과 본능에 저항하는 문명적 의지를 '인간답다'고 한다. '인간적'과 '인간답다'가 이렇듯 반대에 가깝게 놓이니, 인간의 관념적인 '자연스러움'도 반어, 즉 아이러니를 종종 발생시킨다.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모습은 자연스럽다. 자연스럽다는 말 자체가 자연과 같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현대과학에 따르면 생명의 모습은 진화의 결과다. 진화에는 목적이나 의도 따위는 없다. 그때그때 생존에 유리한 특성을 지닌 것들이 자연선택되어 생존에 성공한 것뿐이다. 어찌 보면 그런 결과는 무작위로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도 있다. 자연의 모습이 무작위로 선택된 것이라면 자연스럽다는 말에 어떤 심오한 의미는 없다. 물론 주어진 환경에 따라 선택된 생명체의 공통점, 그러니까 일종의 보편성은 존재할 수 있다. 지구의 온도가 내려가면 높은 온도에서만 살 수 있는 생명체는 멸종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생명체의 모습에 합법칙성까지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한 시대의 종말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다. 이렇게 죽음은 생명이 될 수도 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하지만 생명은 영원하다.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적을수록 낫다.(Less is more."는 경구로도 유명하다. 이 건물(바르셀로나 파빌리온) 안에서 나는 이 '레스(less)'의 의미를 완전히 새롭게 체득한 것 같았다. '레스'는 덜어 내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고도로 집약되어 최후까지 남은 것이었다. 바닥과 기둥과 벽과 지붕이 모두 완벽하게 정확한 위치에 있었다. 한 치도 더 덜어 낼 것 없는 그 용감한 합리성이 상쾌했따. 벽들은 바르셀로나의 태양 아래서 기분 좋은 그늘을 적재적소에 드리웠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어서 모더니즘이 가치 있다기보다는, 이성과 합리를 '제대로' 가동시킬 때 좋은 모더니즘이 나오는 것이었다.

 

 

한때 유럽인은 유색인종을 짐승으로 취급했다. 이는 시각이라는 감각에 의존하여 내린 결론으로, 단지 피부색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자 수준에서 작동하는 유전자를 분석해 보면 인종 간의 유전자 차이보다 같은 인종 내 유전자변이가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레더릭 생어가 개발한 염기서열화 방법을 이용하면 감각할 수 없는 유전자 세상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결국 어느 수준에서 보는지에 따라 상대를 인간으로 볼 수도 있고 짐승으로 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안다는 것은 본 것을 기억하는 것이며, 본다는 것은 기억하지 않고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둠을 기억하는 것이다.' 오르한 파묵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에 나오는 글이다. 이 소설은 오스만투르크제국의 세밀화가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들에게 그림이란 본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규칙대로 그려야 하는 것이다. 규칙을 어기고 새로운 시도를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 이들에게 궁극의 경지란 밤낮으로 연습하다가 눈이 멀어서 보지 않고도 그릴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다.

 

 

역사는 깊고 다채로우며, 어느 시대에든 인간 활동의 모든 측면들은 서로 연결되어 왔다. 그래서 나는 '예술과 과학의 만남'이니 '융합'이니 하는 구호들이 새삼스럽다. 제도권 교육과 분과 학문 시스템 속에서 부자연스럽게 '칸 나누기'를 당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예술과 과학은 애초에 서로 긴밀하게 스며 있다고 느낀다. 예술가의 머릿속에서 플라톤적이고 수학적인 발상의 세계는 물리적 현실 속에서 감각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조형으로 창작되어야 예술로 귀결된다. 이 '물화'의 과정은 불가피하게 물성, 힘, 운동의 원리와 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물리화' 그 자체다. 이때 표현의 팔레트에 여러 분야의 정확하게 정제된 지식들을 짜 두면, 풍부하고 대담한 조합의 생겨나기도 한다.

 

 

예술에는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가치도 있지만, 순수형식주의적이고 작가적인 가치라는 것이 있다. 세상을 보는 확장적인 방식을 제시하면서, 그것을 생생하게 체험하게 해 준다. 인식의 구속과 오류로부터 자유를 탐색하고, 왜곡되었을지 모를 구태의연한 시선에 대해 보다 나은 방식을 제안하려는 질문을 던진다. 이런 질문들은 개인의 자립감과 자존감을 높이고, 결국 공동체를 각성하게 하며 치유하는 사회적인 효과를 가진다. 인간이 세상과 더 잘 지내고자 하는 도정인 것이다.

 

 

과학의 눈으로 볼 때, 물질로 이루어진 우주에 인간이 말하는 의미나 가치는 없다. 중력에 의한 물체의 낙하 자체는 아름다운 일도 불행한 일도 아니다. 낙하하는 것이 낙엽일 때 아름답고, 유리잔일 때 불행하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의 낙엽은 불행하고, 이탈리아의 결혼 피로연에서 깨지는 유리잔은 행복하다. 가치는 인간이 임의로 부여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인간은 집단의 부분이 아니라 민주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다. 이들은 직접민주주의로 국가를 운영했고, 철학, 과학, 수학, 예술을 활짝 꽃피웠다. 이들의 과학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시각에서 나온 것이다. 인간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이들의 태도가 자연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된 것이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성별, 나이, 민족, 문화가 다른 사람들 간의 교류가 있어야만 비로소 내가 속한 체계의 고유한 구조를 새삼 인지할 수 있다고 했다. 인류의 서로 다른 다양한 구성원들이 주고받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은 낯선 체제를 통해 우리 자신을 스스로 알아 가는 기회라는 것이다.

 

 

낯선 언어는 인식을 확장시킨다. 낯선 언어는 서로 다른 것들 간의 뜻밖의 연결을 만들어 낸다. 이 연결을 자유자재로 적절히 구사하는 능력이 곧 창의력이다. 

 

 

인간이 언어로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예술로 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진짜 놀랄 일은 우리가 언어를 가지고 이 정도로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꿈은 현실의 도피처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이성으로부터 도피하고자 꿈을 그렸다. 양자물리학자들은 원자의 세계가 초현실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물은 원자로 되어 있다. 이 세상 모든 것의 근원인 원자는 초현실적으로 행동한다. 원자가 실재라면 꿈은 현실이다.

 

 

능숙한 기술을 연마하기보다는 개인의 기분과 정서를 존중함으로써 공동체의 자존감을 높이는 방식이어야 할 것 같았다. 시도하고 실행해낸 용기 자체가 칭찬받아야 한다. 잘해내지 않았더라도, 남들보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그 순간 행복한 몰입을 겪었다면 이 사실을 존중하고 격려해야 하지 않을까?

 

놀이와 장난, 무턱대고 해보는 시도는 소중하다. 해보지 않은 일에 도전을 해봐야 일상의 경험이 풍부해진다. 결과가 서툴더라도 그 과정은 소중하다. 시행착오에 겁을 먹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약간의 서투름과 실수조차 지울 수 없는 오점인 양 다그치거나 불이익을 준다면,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한 공동체 속 여러 개인들이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일의 가치는 진화론과 뇌과학이 뒷받침해준다. 환경은 변화한다. 뜻밖의 상황이 닥칠 때도 있다. 이때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본 경험이 변화에 창의적으로 대처하고 적응하는 힘이 된다.

 

특정한 기준으로부터 평균이 산출되면, 그 평균을 벗어나는 것은 오류처럼 취급된다. 이때 수치적인 기준이란 과연 중립적이고 객관적일까? 산업시대 이후 서구 중심 성인 남성의 많은 기준들이 표준이라는 이름으로 맞춰진 것은 아닐까? 이런 획일적이고 편협한 기준이 다양한 문화와 다면적인 가치관과 어린이와 노인과 여성과 약자와 소수자를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나의 경로만 정상으로 간주하면, 개인의 고유성은 소외된다. 그런 기준으로부터 상정되는 평균이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같은 것이 아닐까? 이 침대는 거의 모든 사람들을 부적격자로 만든다. 애초에 침대를 사람에게 맞춰야지, 왜 사람의 키를 침대에 맞춰 늘였다 잘랐다 고통을 주는가? 특정한 기준에서는 정의되지 않는 능력들, 경제적 가치로 환원되지 않아 사장되는 다채로운 재능들을 놓친다면 그것은 사회적인 낭비가 아닐까?

 

자신의 고유한 역량을 이해받고 발휘하고 그에 몰입해서 인정받을 때 인간은 행복을 느낀다. 모든 개인의 가치를 고루 살피고 구성원의 자존감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가치의 기준들이 다원화돼야 한다. 평균을 산출하는 단편적인 잣대로는 규정되기 어려운 잠재적인 재능들을 돌보아야 한다. 교육은, 특히 교양 미술교육은 그렇게 가야 한다.

 

누군가 너무 힘이 들고 창피해서 포기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든다면, 그것은 그 개인이 아니라 사회와 시스템의 책임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개인들을 세심히 살피면서 사회적 잣대와 기준이 정당한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모든 개인은 고유하게 존엄하다.

 

 

정규분포에서 평균은 집단을 대표한다. 평균이 집단을 대표하지 못하고, 부의 분포가 지나치게 치우치면 그 사회는 불안정해진다. 그 해답은 평균, 즉 집단지성을 이용해서 찾아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근본적으로 공간 자체에는 방향이 없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우주공간에 있다고 상상해보자. 사방 어느 방향을 봐도 똑같이 어둠이다. 일단 당신이 있는 위치는 특별하다. 다른 모든 위치가 갖지 못한 당신이라는 존재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어느 방향이나 똑같다. 특별한 방향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신 이외에 또 하나의 존재가 있어야 한다.

 

구에는 중심이 있지만 표면에서 중심을 볼 수 없다. 지구라는 구의 표면에만 사는 우리에게 세상의 중심은 없다. 중력과 전기력은 모두 구의 특성을 갖는다. 그래서 별과 행성뿐 아니라 원자도 구형이다. 인간이 사는 세상은 구형의 원자가 모여 삼라만상을 이룬다. 입체파 화가들이 깨달았듯이 모든 존재는 평등하게 원자로 되어 있다. 그 모든 것들은 구의 정신을 품고 있다. 편평해 보이는 세상의 저 깊숙한 곳에 구의 중심이 있어, 세상의 모든 곳은 평등하다는 것을 말이다.

 

 

검정은 끊임없이 흑체복사를 한다. 다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인생이 어두운 것만은 아니듯, 검정도 검지만은 않다.

 

 

다른 길을 가더라도 틀린 길을 간 것은 아니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어차피 효율의 독서가 아니다. 정보를 명쾌하게 전달하기보다는, 시의 의미가 몸에 오래 머무르며 느리고 풍부하게 경험되도록 했다.

 

 

예술의 가치를 돈으로 평가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도 있으리라. 예술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에게는 특히 그럴 것이다. 하지만 예술품이 일단 시장에 나오면 그것의 가치는 예술이 아니라 시장이 결정한다. 대한민국 아파트의 가격은 그것을 만드는 데 들어간 자재비용이나 주거 환경의 가치보다 상품으로서의 교환가치로 결정된다. 아파트 가격이 7억원이라는 것은 7억원에 사서 더 비싼 값으로 팔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워홀의 작품에 매겨진 500억원은 그것이 500억원의 절대적 가치가 있다기보다 훗날 500억원 이상의 값으로 팔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다는 의미다.

 

 

“유쾌한 사람은 농담을 적절하게 잘 활용하며, 상쾌한 사람은 농담에 웃어줄 줄 알며, 경쾌한 사람은 농담을 멋지게 받아칠 줄 알며, 통쾌한 사람은 농담의 수위를 높일 줄 안다.” 김소연 시인의 <마음사전>에 나오는 글이다. 모두가 같으면서 다른 ‘쾌(快)’다. 쾌의 온도가 점점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

 

 

자연의 복잡성은 무작위적이기만 하지는 않다. 물리적으로 유기적인 현상과 생명현상의 원리는 수많은 변수를 가진 방정식으로 기술된다. 항이 많아지고, 알고리듬은 길어진다. 디지털시대인 오늘날에는 컴퓨터가 이 복잡한 연산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런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이제 디자이너의 창의력이란 기존에 미처 지각하지 못한 변수들을 정의하고 찾아내는 데에서 새롭게 발휘된다. 디자이너들은 규칙을 디자인하고 이를 파생시킴(generate)으로써 전적으로 새로워진 자신의 역할을 규정하고 새로운 미학에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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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은 차이를 좁히고 다양한 구성요소들을 비슷비슷하게 평균화 시킨다.

차이를 만들고 싶다면 무리에서 떨어져 자신만의 시선을 갖고 이해하며 혼자만의 생각을 해 봐야 한다.

 

 

[본문발췌]

 

 

마케팅이란 '기업'과 '실제의 사람'이 만나는 공간에서만 기능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실제의 사람'들은 기업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실속의 사람들은 절대로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알고리즘이나 생산공정으로 분석하지 않는다. 현실 속의 소비자들은 비즈니스 세계를 하나의 유기체로 이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독특하고 복잡하고 모순적이고, 그리고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의 일상적인 생각과 행동들은 결코 논리적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일상 속의 생각들은 복잡하면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과 마찬가지로, 비즈니스 세계의 진실 역시 모순투성이인 길을 걸어가지 않고서는 발견할 수 없는 법이다.

 

 

치열한 경쟁이 차별화를 약화시킨다. 경쟁관계로 얽혀 있는 수많은 기업들이 서로를 모방하는, 그래서 유효한 차이점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그저 그런 제품들만을 쏟아내고 있는 현실. 오늘날의 기업들은 점점 '차별화의 대가'가 아니라 '모방의 대가'가 되어가고 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신선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무리 다양한 실천적인 방법을 제시한다고해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실천방법을 찾아 갈 수 있는 통찰력과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두 가지 유형의 여행 책

   1) 여행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담고 있는 책

   2) 여행을 통해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보는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책.

 

 

평가 시스템의 치명적 부작용,

무언가를 평가하려는 시도는 결국 그 속의 다양한 구성요소들을 비슷비슷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물리학에서도 관찰하는 행위가 관찰 대상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관찰자 효과 observer effect'라는 개념이 있다.

시장조사를 멀리한는 기업이 1등이 되는 이유, 경쟁 브랜드와 비교 평가를 통해 약점을 보완하다 보면, 결국은 차별점이 없이 비슷해지게 된다.

 

 

차별화는 곧 포기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분야를 포기해야 한다.

 

 

시장조사를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다양한 평가항목으로 소비자들에게 평가를 받고,

  1. 대다수의 접근방식 : 약점을 보완하려는 시도 (더욱 '평준화된' 모습), 취약점을 중간 정도의 수준으로 높이기 위한 일을 시작
  2. 극소수의 접근방식 : 강점을 강화하려는 시도 (더욱 '차별화된' 모습), 뛰어난 항목에 집중투자하여 평균 점수와 의 격차를 더 벌리려고 노력

 

설문조사를 실시하거나 포지셔닝 맵을 그려보는 등 다양한 형태의 시장분석 작업들은, 브랜드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순수한 시도라고 할지라도, 조직을 평범하게 만들어갈 위험을 안고 있다.

 

 

진정한 차별화, 즉 지속적으로 유지가능한 차별화는 이러한 평준화와는 정반대의 길로 나아가야만 가능하다.

즉, 차별화란 불균형의 상황을 더욱 불균형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분야들을 포기해야 한다.

 

 

무리를 따라 이동하는 철새, 자율조직 시스템 self-organizing system

자율조직 시스템의 개별 구성원이 갖추어야 할 조건

  1. 감각기관. 자신의 주위에 있는 다른 구성원들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들이 포지셔닝 맵을 만들어보는 시도가 바로 이러한 감각기관의 기능에 해당한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기업들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있다. 즉, 우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 경쟁자들과 우리 자신의 관계를 이해할 수있다.
  2. 방향을 수정하는 능력. 근처의 구성원들이 갑자기 방향을 바꿀 때, 여기에 따라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무리 속에서 움직이기 위한 기본적인 능력이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기업들은 더욱 상대방에 신경을 쓰게 된다. 다시 말해, 경쟁이 치열할수록 그리고 구성원들이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수록,

  1) 신중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기업들도 무리에 움직임에 동조를 하고,

  2) 더 많은 기업들이 무리의 움직임으로 합류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시장점유율을 놓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기업들을 살펴보면, 집단적인 움직임이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경쟁이 치열한 카테고리에 속해 있는 개별 기업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무리의 움직임을 쫓아가는 것은 아니다. 가령 교통체증에 갇혀 있을 때, 운전자들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 앞차의 꽁무니만 따라가지는 않는다. 이리저리 차선을 변경하기도 하고, 더 빨리 갈 수 있는 다른 길을 계속해서 모색한다. 무리의 시선으로 개체를 바라보는 것과, 개체의 시선으로 무리를 바라보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길이 없을 때 길이 보인다. 구성원들의 다양성과 창조성을 높이고자 하다면, 구체적인 정의가 없는 상태가 더욱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과잉성숙 hyper-maturity' : 많은 기업들이 한 카테고리 속으로 몰려드는 경우, 제품확장은 기하급수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 방식은 다분히 낭비적이고 비효율적이다. 그리고 한 카테고리가 이러한 형태로 발전해 나가면, 기존에 그 카테고리를 지배했던 원칙들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만다. 이러한 단계를 과잉성숙이라 부른다.  한 카테고리가 과잉성숙 단계로 접어들면, 초세분화, 과잉확장, 과잉경쟁이 함께 나타난다. 과잉성숙 단계에 속해 있는 기업들 대부분은 아마도 마음 편하게 장사했던 옛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남는 것은 오직 자기파괴뿐이다.

  • 과잉성숙 단계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제품확장의 흐름에 대해 논의하면서 제품이 지속적으로 진화하고(추가적 확장), 소비자 선택권이 확장되고(증식적 확장),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비자들이 얻게 되는 이익에 대해 함께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
  • 카테고리 내에서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경쟁자들보다 한 걸음 앞서 가기가 더욱 힘들어 진다.
  • 진화의 역설이란, 모두들 발전을 위해 달려가지만, 마지막에 도달하는 곳은 공동의 파멸뿐이라는 사실. 치열한 경쟁에서 남는 것은 오직 자기파괴뿐.
  • 카테고리 내 차별화가 희미해지기 시작할 때, 소비자들은 그 카테고리를 거시적인 차원에서 바라보려고 한다. 다시 말해, 그 카테고리 내 다양한 기업들의 전략들을, 개별 브랜드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의 카테고리 차원에서 이해하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브랜드에 대한 구체적인 특성은 외면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숲을 바라보게 되면서, 그 속에 있는 나무들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소비자들은 하나의 브랜드를 바라보는 것처럼 하나의 카테고리를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과잉성숙 단계로 인한 두 번째 현상이 나타난다. 소비자들의 애착은 이제 특정 브랜드가 아니라, 특정 카테고리에 대해서 나타나게 된다.
  • 카테고리가 성숙할수록 카테고리 내 기업들은 점차 집단적인 움직임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집단적인 움직임은 비교적 뚜렷하고 일관적인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예측가능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리고 그 결과, 카테고리는 '이종적 동종'의 특성을 띠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면 소비자의 선택권은 크게 확대되지만, 정작 소비자들은 제품들 간에 유효한 차이를 발견하지 못한다.

 

 

차별화

  • 고정관념 뒤엎기, 엉뚱한 가치를 선보여라.

    소비자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브랜드는 바로 만화와 같은 브랜드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소비자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기대들을 한순간에 무력화시킨다. 그리고 전혀 차원이 다른 가치를 제시함으로써, 소비자들의 기대가 마치 아무런 의미가 없는 양 만들어 버린다. 이러한 브랜드들은 현실적인 한계를 과감히 떨쳐버린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러한 브랜드들이 제안하는 새로운 가치는 기존의 경쟁자들이 내놓았던 가치들보다 좋다 혹은 나쁘다고 수직적으로 비교, 평가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들 브랜드가 제시하고 있는 것은 수직적인 비교를 벗어난, 수평적인 차별화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소비자들의 고정관념을 뒤엎는, 그리고 경쟁 무리로부터 벗어나는 진정한 차별화이다.

  • 아이디어 브랜드, 무리를 벗어나 혼자만의 길을 가라.

    새로운 집을 장만할 때, 집을 수리해서 쓸 것인지, 아니면 완전히 허물고 새로 지을 것인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전자의 방법은 집의 기본적인 골격을 유지하면서 외형적인 부분만 수정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후자는 완전히 백지상태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비용과 시간이 당연히 더 많이 들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자유롭게 원하는 대로 집을 지을 수 있다.

    차별화된 아이디어 브랜드는 시장 내에서 기존의 가치를 전면적으로재검토한다. 이들으 기존의 기업들과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전혀 다른 형태의 새로운 집을 설계하고 있는 것이다. 이 브랜드들은 무리를 벗어나 혼자만의 길을 가고 있다. 이 브랜드들은 특정 시점에서 경쟁 무리를 떠나,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전체 카테고리를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나아간다.

  • 창조적 파괴, 미래의 시장을 만들어라.

    다른 경쟁자들과 동떨어져서 혼자 차별화된 전략을 구사하기가 지극히 위험한 시대가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아이디어 브랜드들은 '창조적 파괴 creative distruptive'를 통해 모험을 실천으로 옮기고 있다. 이들은 뚜렷한 목표를 향해 반항아임을 자처하고 있다. 아이디어 브랜드들은 파괴하면서 동시에 창조한다.

 

'역포지셔닝 브랜드 reverse-positioned brand' : 구글, 젯블루, 이케아, 인앤아웃버거

아주 독특한 아이디어를 통해 소비자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가기로 결단을 내린 아이디어 브랜드. 그들은 기존 브랜드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요소들을 과감하게 삭제하기로 결정을 내린 용기 있는 브랜드다.

역 브랜드들은 그들만의 독창적인 가치를 기반으로 불리한 상황을 거꾸로 뒤집는다. 역 브랜드들은 핵심에서 벗어난 모든 부가적인 가치들을 털어내고, 혁신적인 조합을 통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 이들은 자칫 그동안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았던 가치들을 기발한 방식으로 결합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시장에서 자신들만의 고유한 입지를 마련한다.

역 브랜드는 기존 가치들을 없애 버리면서, 동시에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 많은 것들을 없애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것들을 세운다. 그리고 부가적인 가치들을 없애고, 핵심적인 가치들로만 조합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모습은 처음에는 낯설고, 때로는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역 브랜드가 진정한 차별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많이 주는 것보다 적게 주는 게 사람을 사로잡는 이유

역 브랜드들은 소비자들이 오히려 과잉만족의 상태에 빠져 있다고 생각을 한다. 즉, 역 브랜드들은 광잉성숙된 시장에서 소비자들은 그들 스스로 별로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제품과 서비스로 둘러싸여 있다고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 이처럼 역 브랜드들은 소비자들을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기존 가치들을 계속해서 확장해 나가는 대신, 넘쳐나는 가치들을 관리가능한 수준으로 낮추고 이를 창조적인 방식으로 재조합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거꾸로 가는 전략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차원에서 만족을 느낀다면, 기업들은 아마도 지금보다 훨씬 수월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케아 사례에서도 보았듯이, 소비자들의 심리는 복잡하고 아이러니한다. 즉, '더 많이'를 통해 만족을 느끼기도 하지만, '더 적게'를 통해서 더 큰 만족을 얻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많은 것들을 없앰으로써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는 역 브랜드의 성공이 가능한 것이다.

역 브랜드들의 등장은 오늘날의 모순된 소비문화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역 브랜드들은, 과잉만족의 시대에서 부수적인 가치들을 과감하게 제거함으로써 소비자들에게 독특한 만족감을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다. 이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누려 왔던 가치들을 빼앗아 가면서, 동시에 기대하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새로운 욕망을 싹트게 만들고 있다.

 

 

'더'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덜'을 원한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넘쳐 나는 풍요의 바다속에서 단순함의 자유를 다시 찾는 것이다.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로 넘쳐 나는 과잉만족의 시장에서, 소비자들은 마음의 휴식을 원하고 있다. 다시 말해, '더more'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덜less'를 요구하고 있다.

 

 

역브랜드는 원래의 순수성을 잃어버리지 않는 상태에서(차별점 유지) 소비자들의 불만을 부드럽게 처리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고 있다.

역 브랜드들은 처음부터 경쟁자들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모방 브랜드들이 일구어내지 못한 진정한 차별화의 이익을 오랫동안 누릴 수 있었다.

'차별화 differentiation' : 기존의 개념에 새로운 의미를 추가함으로써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는 시도

일탈 브랜드는 기존 카테고리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그 경계의 가장자리에 최대한 가깝게 포지셔닝한다. 그리고 기존의 경계선을 끊임없이 밀고 나간다. 이러한 차원에서 일탈 브랜드는 기존 카테고리 내부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외부에 존재하는 브랜드이다.

 

 

소비자들의 고정관념에 돌을 던져라

카테고리 평준화의 흐름은 브랜드들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몰아간다. 소비자들이 끊임없이 다양성을 요구하는 상황에서도, 평준화의 흐름에 빠진 기업들은 모두 동일한 가치만을 제안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일탈 브랜드들이 등장하여, 다양성에 목마른 소비자들의 갈증을 해소시켜 준다. 그들은 소비자들이 그동안 가져 왔던 고정관념들이 얼마나 근거 없는 것인지를 드러낸다. 그리고 이를 통해 경쟁자들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이처럼 일탈 브랜드들은 사람들이 그동안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파괴한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카테고리 개념에 정면으로 맞선다. 그리고 이러한 파괴는 새로운 창조로 이어진다.

 

 

카테고리의 경계를 무력화 시켜라.

일탈 브랜드들은 소비자들을 당황스럽게 만들면서, 동시에 그들이 새로운 시선으로 제품을 바라보도록 자극하고 있다. 일탈 브랜드들은 어울리지 않는 가치들을 창조적으로 조합함으로써 새로운 카테고리 개념을 보여 준다. 그리고 소비자들의 시선을 새롭게 변화시킨다.

 

 

마케팅이란 소비자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 - 전통적 마케팅 (Feel good)

  1) 제품 :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어야 한다.

  2) 접근성 : 합리적으로 제품의 가격을 정하고 폭넓게 유통망을 구축하여 접근성을 높임

  3) 커뮤니케이션 : 소비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브랜드의 이미지를 높임

  --> 단점은 눈 감고, 장점은 과대 포장하는 기업의 광고 전략

 

적대적인 마케터 The Hotile Marketer, 적대 브랜드의 마케팅은 안티마케팅, 반대심리학

단점을 감추려고 하기보다 오히려 이를 더욱 적극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유발한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는 진리를 적대 브랜드들은 잘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느낌을 만들어내기 위해, 심리적인 부조화를 계속해서 강화해 나가는 것이다.

적대 브랜드가 번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적인 인식이 기반 되어야 한다. 합의와 통일이 없어도 우리 사회가 잘 굴러갈 수 있다는 관용적인 문화가 사회에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한다. 다양성에 대한 이해.

치열한 경쟁의 결과는? 도토리 키재기 - 아이디어 브랜드는 경쟁에 참여하지 않는다(핵심전략)

그들은 경쟁이나 비교에 관심이 없다. 그리고 소비자들의 불만과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래의 세가지 유형의 아이디어 브랜드들은 오늘날 소비자들이 동일함과 평범함에 지쳐 있을 때, 신선한 가치 제안으로 죽어 있던 소비 감성을 살려내고 있다.

   1) 역 브랜드 : 제품의 확장을 거부한다.

   2) 일탈 브랜드 : 카테고리의 경계를 극한으로 밀고 나가면서 새로운 하위 카테고릴 창조한다.

   3) 적대 브랜드 : 손님이 왕이라는 비즈니스 세계의 절대적인 진리를 무시한다.

 

 

차별화의 두가지 종류

   1) 세상에 별로 의미 없는 차별화 : 진지한 고민없이 즉석에서 생각난 대로 행동, 창조적이지 않음.

   2)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차별화 : 소비자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킨다.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 : 항상 삶에 변화를 주는 것, 변화와 자극이 있어야만 우리의 몸과 마음은 생기를 띤다.

2%의 아이디어가 세상을 움직인다. (100%의 정답이 아니라 2%의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보여 주는 것)

   1) 비즈니스 세계를 비딱하게 보려는 노력은 오늘날 충분히 가치 있는 시도이다. 익숙한 방식이과는 다른 방식으로 비즈니스 세계를 바라보는 것

   2) 논쟁을 유발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 역시 충분히 가치 있는 시도이다.

 

 

 

기업의 마케터들은 그들의 브랜드가 분명히 차별화되어 있다고 열변을 토한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이를 인식하지 못한다. 오늘날 기업들은 분명 차별화를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다. 하지만 경쟁자들과 함께 무리를 지어 달리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여기서 차별화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

 

소스타인 배블런 Thorstein Vevlen 의 '과시적 소비 conspicuous consumption'

 

오늘날 소비는 필요성을 충족시키는 활동이라기 보다, 주변의 사람을 따라잡는 활동이 되어버렸다. 즉, 소비활동은 점차 원래의 목표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성과를 경쟁자들과 비교하는 작업에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투자함으로써 경쟁의 악순환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보편적인 흐름... 실제로 오늘날 대부분의 기업들이 경재자를 따라잡는 데 너무나 많은 시간을 낭비하면서 원래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있다. 차별화를 추구하면서, 차별화를 잃가고 있는 것이다. 공급자가 아닌 소비자의 시선에서 지금의 경쟁 환경을 다시 바라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기업들이 경쟁을 하는 목표가 동일화의 흐름 속으로 합류해 들어가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 반대로, 보편적인 흐름으로부터 빠져나와 자신만의 고유함을 드러내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차별화의 개념이다.

 

 

혁신의 세 가지 방법 (기술적 차원이 아니라 개념적 차원의 혁신), 혁신은 차별화의 출발점. 차별화란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것만은 아니다.

  1. 혁신은 '확장'이 아닌 '제거'를 통해 가능하다. 추가적인 확장이나 증식적 확장과는 차원이 다른 경쟁 무리로부터 벗어나는 고유한 가치를 드러내는 진정한 혁신. --> 역 브랜드
    부수적인 가치들을 제거하고, 핵심가치들을 창조적인 방식으로 조합함으로써 차별화를 실현
  2. 분열을 통한 혁신 --> 적대 브랜드
    모든 소비자들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떨치고 소비자 계층으로 양분함으로써 시장에서 고유한 자리를 차지함.
  3. 변형(transformation)을 통한 혁신. --> 일탈 브랜드
    제품 자체에 대한 변형 보다는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의 변형, 이를 통해 그들은 소비자들의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혁신적인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을 위해서는 내놓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토론을 벌이기에 앞서 긍정적인 차원에서 얘기해야 한다는 규칙이 필요하다.

 

 

시장을 믿지 마라.

시장조사는 그 자체로 한계가 분명한 접근방식이다. 설문조사 과정에서 소비자들은 제품에서 어떠어떠한 부분이 개선되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을 한다. 그러나 이 제품들이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얼마나 획기적인 제품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말을 해 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마케팅 활동을 지배하고 있는 '점진적 수정'의 수준을 뛰어넘고자 한다면, 시장조사를 통해 얻은 단편적인 데이터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이러한 데이터에는 객관적인 정보도 담겨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데이터들은 와전한 메시지를 전달해 주지 못한다. 이는 오직 절반의 메시지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반은 스스로 창조적으로 생각하고 독자적으로 결단을 내리는 과정에서 얻어진다.

 

 

기업의 마케터들은 객관적인 자료들을 엄밀히 분석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자료들로 부터 곧장 어떤 구체적인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는 안된다. 마케터들에게 시장조사 데이터느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통계 수치만 들여다보다가는 더욱더 중요한 통찰력을 놓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의 마케터들은 누구보다도 더 균형적인 사고방식을 유지해야 한다. 통계 데이터에만 주목하는 마케터는 누구라도 쉽게 얻을 수 있는 피상적인 정보밖에 얻지 못한다. 그리고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소중한 진리를 놓친다.

(통계적인 자료에 집착하는 접근방식은 전체 상황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인간을 이해하라.

아이디어 브랜드들은 인간을 이해하고, 그리고 인간의 관심을 자극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개발해 나가고 있다. 데이터나 논리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하는 신비로운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복잡하고 모순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일 기꺼이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인 가치를 제안한다.

 

 

차별화는 전술이 아니다. 일회적인 광고 캠페인도 아니다. 그리고 혁신적인 신제품을 출시하는 것도 아니며, 마일리지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것 또한 아니다. 진정한 차별화란, 말하자면 새로운 생각의 틀이다.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이다. 그리고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인정하는 태도이다.

정보가 흘러넘치는 상황일수록 직관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진다 - 존 나이스비트

조직 내에서 직관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마케터이다. 미래의 마케터들은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전반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하고, 그리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인간적인 방법을 기업에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

 

 

다양한 소비 패턴으로부터 마케터들은 통찰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

차별화는 전술이 아니다. 차별화는 새로운 사고의 틀이다. 그리고 보고 듣고 분석하고 흡수하고 인정하는 태도이다. 차별화는 무엇보다 소비자들의 행동과 생각을 받아들임으로써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해 나아가는 통찰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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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과 상황에 따라 생각이나 느낌은 바뀐다. 그리고 완벽한 것은 없다.

모든 일에 너무 애쓰기보다 내 뜻데로 안될 때는 잠시 비켜가거나 기다려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본문발췌]

 

 

죽는다는 것은 죽음과 맞서는 것이 아니다. 죽음에 이르기 전에 이미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기 때문에 죽음은 잠든 것처럼 어디론가 떠내려가는 것이다. 죽음은 대비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그것은 목표 없는 몽상이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 모르더라도 걱정하지 마라. 그때가 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자연이 소상하게 그리고 완별하게 일러줄 것이다. 자연이 그 일을 완벽하게 처리할 테니 그 문제로 고민하지 마라. 죽음에 대해서 걱정하지 마라.

 

 

단 한 가지 확실한 진실이 있다. 그것은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인간보다 비열하고 오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 대(大) 플리니우스

 

 

당신은 단 한 번의 사고로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이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 에우리피데스

 

 

근심 없는 사람의 인생만큼 아름다운 인생은 없다. 근심 없는 삶은 참으로 고통 없는 악이다. - 소포플레스

 

 

인생을 꽉 움켜질 수 있는 비결은 매 순간 겪는 경험에 꾸밈없이 순수하게 경탄하는 것이고, 가장 좋은 방법은 몽테뉴처럼 모든 경험을 글로 옮기는 것이다. 인생은 순식간에 흘러가버린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려고 소란을 피우지 않고 조용히 미끄러지듯 흘러간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인생이 시간을 재촉하며 흘러가고 있어도 다른 일에 몰두하고 있으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죽음이 다가왔을 때 나 자신을 죽음에게 내어주는 수 밖에 도리가 없다.

 

 

느림의 발견, 자유로워져 겉으로만 그럴싸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생각하게 되었고, 남들이 꼼짝없이 빠져드는 광적인 생각과 어리석음은 속임수를 피할 수 있었고, 자신의 생각이 이끄는 대로 그 생각을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그가 참으로 원하던 생활 방식이다.

 

 

"내가 왜 그를 사랑하는지 말하라고 내게 강요하더라도, 나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도리가 없다. 그가 있기 때문이고, 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로마 헬레니즘 철학 :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학파, 회의주의

  • 세 학파의 목표는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라고 하는 생활 방식을 성취하는 것. 에우다이모니아는 '행복', '기쁨', '인간적인 번영'
  • 에어다이모니아에 이르는 지름길은 아타락시아(ataraxia)라는 점에 의견을 같이 하였다. 아타락시아는 '침착'이나 '근심으로부터 자유로움'으로 옮길 수 있고 '평정'을 뜻하며,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려나갈 때에도 기뻐 날뛰지 않고 모든 일이 꼬일 때에도 실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냉정함을 유지하는 기술이다.
  • 세 학파의 견해가 갈라지기 시작하는 지점은 어떻게 해야 그와 같이 평정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 에피쿠로스: 가족을 떠나 공동체 전용 '정원'에서 광신도처럼 살라
    • 회의주의: 여느 사람들처럼 대중 속에서 어울리기를 좋아했으나 정신적 자세를 철저하게 바꾸라
    • 스토아: 양극의 중간
  •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르스 학파의 공통점.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이 두 가지 큰 단점에 의하여 저해된다. -->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의 부재와 주의력을 현재에 집중하는 못하는 성향

 

"모든 일이 자기 뜻대로 이우러지기를 바라지 말고, 모든 일을 현실 그대로 받아들여라. 그러면 인생이 평온할 것이다." - 에픽테토스

 

 

몽테뉴의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 주의를 다른 일로 돌리는 것이 도움이 된다.

"고통스러운 생각에 사로잡히면 그것을 억제하는 것보다 생각을 바꾸는 편이 훨씬 빠르다. 생각을 전혀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없다면 반대로 생각한다. 생각을 바꾸면 위안을 얻고, 문제가 풀리고, 번민이 없어진다. 싸워서 이길 수 없으면 피한다. 필할 때는 잽싸게 요리조리 비켜선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밖에 없다. 그런데 모른다는 사실조차 확신할 수 없다"

회의주의자는 늘 증거를 찾으려고 하고, 남들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의심하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나는 대자연이 내게 베풀어준 것을 진심으로 고맙게 받아들이고, 나 자신과 내가 하는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우리는 위대하고 전능한 수여자가 준 선물을 거절하고, 그 선물을 쓸모없게 만들고 망가뜨리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 볼테르

 

 

"우리의 삶을 옳게 즐기는 법을 아는 것이 절대적인 완벽함이자 실질적으로 신성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 삶의 용도를 모르기 때문에 다른 조건을 찾고, 우리의 내면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에게서 벗어난다. 죽마를 타고 높이 올라서도 소용없다. 죽마를 타더라도 여전히 우리의 다리로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옥좌에 올라도 우리는 여전히 자신의 엉덩이로 앉아 있을 뿐이다." - 몽테뉴

 

 

몽테뉴는 인간은 모든 존재의 요소를 공유하고 있으며 살아 있는 것은 모두 그렇다고 생각했다. '존재의 과정은 동일한 본성에 따라 진행된다.'

 

"우리는 생명과 감각을 지니고 있는 동물뿐만 아니라 나무와 식물도 존중하고 인도주의적으로 대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사람들을 정의롭게 대하고, 자비와 인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다른 피조물에도 자비와 인정을 베풀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피조물들과 우리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으며 서로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니체는 이런 인정과 공감을 '호의'라고 했다.

 

 

"풍경화에서 대자연의 장엄한 모습을 볼 때, 대자연의 얼굴에서 언제 어디서나 끊임없이 다양하게 변하는 표정을 읽고, 대자연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한 나라 전체가 아주 가는 붓으로 점 하나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깨달은 사람만이 진정으로 균형 감각을 갖추고 사물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에세'에서 발견하는 '여덟 가지 자유' 목록

   1) 자만심과 우월감에서 벗어나라.

   2) 신념, 불신, 확신, 파벌 의식에서 벗어나라.

   3) 습관에서 벗어나라.

   4) 야망과 탐욕에서 벗어나라.

   5) 가족과 주위 환경에서 벗어나라.

   6) 광산에서 벗어나라.

   7) 운명에서 벗어나라.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라.

   8) 죽음에서 벗어나라. 인생은 다른 사람의 의지에 좌우되지만, 죽음은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다.

 

 

적대적인 당파 사이에 끼어 있을 때 원만하게 대처하는 몽테뉴의 방법:

양측에 도를 넘지 않게 호의를 보여서 어느 쪽도 나를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게만 처신하면 된다. 그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마라. 그리고 그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제공하지 마라. 몽테뉴의 방침은 맡은 일을 잘하되 너무 잘하지는 말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원칙을 고수함으로써 그는 곤경에 빠지지 않고 인간다운 자세를 완벽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직무만 이행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여느 사람들과는 달리 자기 직무를 완수하였다.

 

 

몽테뉴가 늙어 간다는 사실에서 얻은 교훈:

연륜이 쌓인다고 지혜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늙은이에게는 젊은이보다 더 많은 허영심과 결점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늙으면 "어리석고 낡은 자존심에 빠지고, 따분한 수다나 떨고, 쉽게 발끈하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으로 변하고, 미신에 사로잡히고, 터무니없이 재산에 대해서 걱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방향이 틀렸다. 나이 먹음의 가치는 그러한 결점을 수정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노인이 되면 젊은이들은 찾기 어려운 방법으로 자신의 결점을 찾을 기회가 생긴다. 자신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쇠퇴의 흔적을 보면서 자신도 한계가 있는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나이를 먹는다고 슬기로워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결국 일종의 지혜를 얻는다. 결국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은 이렇게 결점을 지닌 채 살아가고 결점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 샤르트르의 명제

'철학자의 일생은 죽음을 명상하는 것' - 키케로

'죽음은 인생의 끝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인생은 그 자체의 목표이자 목적이 되어야 한다' - 몽테뉴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으니' 이미 흘러가 버린 의식의 흐름 한 줄기에 매달리자 말자. 관점과 상황에 따라 생각이나 느낌은 늘 바뀌게 마련이다. 만물이 '끊임없는 흔들림' 속에 존재하는데 인간의 생각이 한결같이 한 곳에 머무를 수 있겠는가. 

 

 

아프리카의 우화 (세계화의 혜택을 가장 누리지 못한 아프리카의 우화가 세계화를 부채질하는 구호로 사용)

   매일 아침 가젤은 깨어난다.

   가젤은 가장 빠른 사자보다 더 빨리 달리지 않으면 잡아먹힌다는 것을 안다.

   매일 아침 사자도 깨어난다.

   사자는 가장 느린 가젤보다 더 빨리 달리지 못하면 굶어 죽는다는 것을 안다.

   당신이 사자냐 가젤이냐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해가 뜨면 당신은 뛰어야 한다.

 

 

"에세" 말미에 인용한 호라티우스의 시

   레토의 아들 아폴론 신이여,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건강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해주소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하게 해주시고,

   노년에는 추한 꼴을 보이지 않고

   음악을 벗 삼아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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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 황량한 땅이지만 마음의 안정과 정신적 휴식을 줄 것 같은 곳!

영화 <세 얼간이>의 마지막 장면에 판공초 호수의 아름다움이 그려지는 곳!

 

라다크를 처음 알게 된 책.

 

풍요의 역습! 대량생산, 산업형 농업과 축산업이 지속가능한 사회의 해결책은 아니다.

 

 

[본문발췌]

 

 

진보에 대한 두 가지 방식

1) 발전, 혁신을 외치며 기술과 자본, 에너지 집약적 경제 개발을 추구한다. (세계화, 전문화, 중앙집중식 경제)

   --> 화폐경제, 도시, 재활용이 가능하지 않은 자원에 기반을 둔 인플레이션 경제

2) 하지만 더욱 인간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문화와 생태계 다양성이 필요하다. (탈중심화의 지역경제체제)

   --> 생태 친화적이고 공동체에 기반을 둔 생활 방식

 

 

라다크생태개발그룹LEDeG, www.ledeg.org/

에너지, 농업, 건강 분야에서 지속가능한 기술적 대안을 찾아 경제적인 측면은 물론 환경과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합리성 추구, 재생 가능하고 자립할 수 있는 시스템

 

 

다양성이라는 것이 생태계에 있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주는 강점이 되는 것처럼, 인류의 문화에 있어서도 다채로움과 서로의 다른 점을 수용하려는 태도는평화롭고 풍요롭고 조화로운 발전에 진정한 기초가 되는 것이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시작하고 있는 이때 우리를 위협하는 환경재난과 사회붕괴 현상을 막으려면 우리는 하나의 모습으로 통일된 지구촌을 포기하고 세계화 경제의 대안인 지역중심경제를 가슴으로 안아야 할 것이다.

 

 

서구의 문화는 장기적이고 폭넓은 시야 대신에 보다 전문적이고 즉각적인 데에만 초점을 맞추는 전문가에게 높은 의존도를 보인다. 경제개발과 자본의 힘은 사상 유례 없는 전문화와 집중화와 자본과 에너지 집약적인 생활방식쪽으로 이 세계를 몰고 간다.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세계가 너무 한쪽으로 치닫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도록 그 방향을 전환해야 하는 것이다.

 

 

ISEC (www.isec.org.uk), '대규모 위의 소규모', 글로벌 경제의 소비지향적 획일 문화에 맞선 전 세계의 지역 공동체를 지원하며 지역의 고유 문화에 기반을 둔 대안 모색.

 

ISEC 중점 사안

1) 인습적 개발 계획과 글로벌 경제의 심리적 정신적 환경적 측면의 비용

2) 소규모 농경인과 소비자 사이의 연계를 강화하는 식량 수급 및 농경 시스템

3) 문화와 생물학적 다양성, 자연치화적 사회의 수익성

4) 자급자족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경제체제 확립과 공동체 활성화

 

 

한 마리의 새가 날기 위해선 두 날개가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것처럼 지혜와 자비심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깨달음에 이르는 못한다. 여성은 지혜의 상징이고 남성은 자비심의 상징이다. 그 둘이 함께함으로써 불교의 근본이 형성된다.

- 어느 라다크 승려의 말

 

 

불교에서 깨달음의 방법에 있어 그 근간이 되는 것은 자비심이다. 티베트의 성자이자 시인인 밀라레파는 자비는 '공'의 개념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존재들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너'와 '나'는 완전하게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일체가 된다.

우주는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과 같다는 말이 있다. 그것의 전체성과 단일성은 변하지 않지만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모든 존재는 움직임 속에 존재하는 동시에 분리할 수 없이 얽혀 있다.

자아는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착각은 아마도 깨달음에 이르는 데 있어 가장 커다란 장애가 된다. 절대적이고 영원한 실체에 대한 믿음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욕망을 낳고 또 그 욕망은 고통을 가져온다. 분리된 자아와 분리된 사물에 대한 관념에 집착함으로써 우리는 끊임없이 뭔가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찾던 것을 얻는 순간 그 빛은 사라져버리고 우리는 또 다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린다. 만족스러운 순간은 거의 없고 있다 하더라도 아주 짧은 순간일 뿐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영원히 좌절하고 있는 것이다.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라다크 사람들의 시각은 비영원성에 대한 직관적 이해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로 인해 집착을 버리는 태도를 갖게 되었던 것 같다. 일이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는 대신 기쁜 마음으로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들의 모습은 정말 축복받은 듯한 느낌을 준다.

 

 

생활의 많은 부분을 불안함과 두려움으로 색칠을 하고 사는 우리들에게는 집착을 버린다는 것 그리고 우리 자신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해 일체감을 느낀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일상에서 삶의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차이는 넓고도 포괄적인 자아의식을 지니고 두려움과 자기보호의 경계선 뒤로 움츠러들지 않아야 한다.

 

 

라다크 사람들은 사회 구성원 사이의 유대관계 그리고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통해 내면의 평화로움과 기쁨이 넘치는 삶의 태도를 부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종교는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건강하고 따뜻하고 편안하고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그러나 '무지함' 속에 머물고 있는 한 그들이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 역시 종교의 가르침이었다.

 

만족이라는 것은 자신이 삶의 흐름에 있어 한 부분이 된다는 것을 느끼고 이해하면서 그것과 함께 여유롭게 흘러가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긴 여행을 떠나려는 순간 비가 쏟아진다 해도 굳이 참담한 느낌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당신이 그런 것을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라다크 사람들은 그런 경우 '굳이 불행하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지요'라는 반응을 보이리라는 것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전통경제체제에서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서로를 보살펴주고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경제체제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간격이 더욱 더 벌어지게 되어 더 이상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일 정도다. 지역 내의 상호관계는 붕괴되고 있으며 전통사회에서와 같은 절제심이나 협동심 역시 마찬가지다.

 

 

개발, 세계화라는 이름하에 강요된 서구의 표준 이미지를 추구한다는 것은 자신의 고유문화와 뿌리를 부정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에 따른 소외 현상은 적개심과 분노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 세계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폭력 사태와 근본주의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불교의 전통적 세계관은 변화의 의미를 강조한다. 그러나 그 변화라는 것은 자비심 혹은 관용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지며 세상의 모든 현상 사이의 유대관계를 전제로 한다.

예전의 문화는 자연환경의 한계에 대해 인정하는 태도를 갖는 동시에 인간의 기본적 욕구들을 반영하고 있었다. 전통적 체계 속의 관계들은 서로서로를 보강해주었고 조화와 안정감을 더 향상시켰다.

사회의 가치를 판단하는 여러 기준들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해본다면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구성원들의 행복이 그 척도가 되어야 하고 환경적인 측면에서는 유지가능성이 그 척도가 되어야 한다. 

 

 

자기 집 정원에서 기른 감자보다는 다른 지역에서 재배한 다음 가루로 만들고 얼리고 말린 밝은 색깔의 감자과자를 사먹는 게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더 좋다고 한다. 이런 식의 소비과정은 더 많은 운송량과 더 많은 화석연료와 더 많은 공해물질과 더 많은 화학첨가물과 방부제가 소요된다. 또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간격은 더욱 벌어지게 된다. 그러나 그것 역시 GNP 상승을 일으키는 것이어서 경제성장의 차원에서 권장되고 있다.

 

 

산업형 농경은 지역마다의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던 농작물의 다양한 종자들을 없애버리고 표준화된 종자를 사용한다. 다국적 기업과 대규모 석유화학 기업들은 제3세계로부터 곡물의 종자들을 탈취하고 수천 년간 지역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 그것들의 유전정보를 이용하여 합성종자를 만들어낸다. 그리고는 그 합성종자를 화학 성분의 비료나 농약과 함께 제3세계 농부들에게 되판다. 그런 합성 종자들은 자체적인 재생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그 때문에 농부들은 대기업들로부터 종자와 화학 물질들을 계속해서 구입해야 하는 순환적 종속구조에 갇혀버리게 된다.

 

 

자연이 산업화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변형될 수 있게 됨으로써 표준화와 획일화라는 결과가 나타났고 취약성은 더 증대되었다. 그 과정에서 중요시되는 것은 인류의 복지문제가 아니라 상업적 이익있었다.

이런 활동은 생명의 다양성을 침식하는 한편 생물학적 상호보완성의 연결고리를 끊고 있다. 

 

 

통합이라는 개념은 대단히 상징적인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 총체적인 조화 그리고 함께 하자라는 그것의 이상은 모든 종교계와 사상계로부터 환영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주의의 가장 높은 목표를 반영한다. '하나의 시장'은 공동체와 협력을 의미하고 '지구촌' 이라는 말에서는 관용 그리고 상호교류라는 의미를 느낄 수 있다. 그 어디에도 경제의 통합과 기술의 획일화로 인해 환경파괴와 공동체의 해체가 나타난다는 인식을 찾아볼 수 없다. 오늘날의 경제상황은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 대신 사람들을 점점 더 분열시키는 한편 빈부의 격차 역시 더욱 벌어지게 한다. 사람들은 그 막강한 정치경제권력의 중앙집중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오늘날의 자본 및 에너지 집약형의 경제개발은 자급형 사회구조를 저해할 뿐이다.

사람들의 자긍심과 자급구조를 더욱 장려함으로써 생명체 유지의 다양성을 지키는 한편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진정한 의미의 지속적 개발을 창출해야 한다.

 

 

소비지향적이고 획일적인 문화의 확산이 중단되지 않는 한 빈곤과 사회분열과 생태계 붕괴를 막을 수 있다는 희망은 없다. 기술의 획일성에 반대하는 것과 함께 지역 자원과 지식, 기술의 최대한 활용을 장려함으로써 생태와 문화적 다양성 유지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출발점이 사람과 자연에 대한 존경심이라면 그 필연적 결과물은 다양성의 복원이라 할 수 있다.

 

 

지역경제체제의 부활을 지원함으로써 우리는 문화와 생태의 다양성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부탄의 국왕은 한 사회의 복지를 가늠하는 지표는 'GNP'가 아니라 'GNH'라고 강조한 바 있다.

 

우리는 끊임없는 경제성장과 물질적인 번영에 대해 정신적, 사회적 빈곤과 심리적 불안감 그리고 문화적 활성화의 상실이라는 대가가 지불되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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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못한 외부의 충격에 대응하고 극복할 수 있는 지혜!

 

 

[본문발췌]

 

 

검은 백조 현상에 노출될 기회를 최대한 늘리면 기대 밖의 (유리한) 결과를 뜻밖에 얻는 행운도 늘어난다. '사회과학'의 상식과는 정반대로 대부분의 발견이나 발명은 의식적으로 계획하거나 설계하지 않은 상태에서 얻어진다. 따라서 탐사나 경영은 하향식 계획에 의존하는 대신 기회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최대한 이것 저것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

인간에게는 아는 것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는 장애가 있다. 나무는 보지만 숲은 보지 못하는 격이랄까?

우리는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마음의 구조에서 기인한다. 인간은 원리를 깨닫지 못하고 사실, 오직 사실만을 머리에 우겨 넣는다. 이 '메타원리'(인간은 원리를 습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원리)를 쉽게 습득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우리는 추상적인 것을 얕잡아 본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왜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것일까? 이 의문을 풀려면 상투적인 지식을 전복시켜서, 이런 지식이 복잡다기하며 회귀적인 속성이 갈수록 강해지는 현대사회의 상황에 들어맞지 않음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역사와 삼중의 불투명성

1) 이해의 망상.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꿰고 있다고 저마다 생각하지만, 세상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복잡하다(아니 무작위적이다).

2) 사후왜곡. 마치 자동차의 후면경을 들여다보듯이, 우리는 사태가 발생한 이후에야 관련 사건들을 돌아보게 된다(역사책에 기술된 역사는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보다 명료하고 체계적으로 보인다).

3) 사실 및 정보에 대한 과대평가와 권위 있고 학식 있는 사람들이 겪는 장래오 인한 것들. 특히 그들이 '범주'를 만들어 낼 때, 즉 '플라톤적 사고를 펴칠 때' 일어난다.

 

 

희귀하지만 예상할 수 있는 사건들, 만델브로 무작위.

이것은 흔히 규모가변성, 지수 법칙, 척도 불변, 레비 안정성, 파레토-지프 법칙, 율의 법칙, 파레토 안정과정, 프랙털 법칙 등으로 불리는 현상을 생성시키는 무작위성을 포괄하는 범주다.

 

 

우리가 과거로 부터 배운 것은 최선의 경우에 쓸모없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치명적인 파국을 낳는다.

1000일 동안 산 칠면조의 결말(추수감사절), 과거 때문에 아무런 준비 없이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만다.

그런데 사건이 발생하고 나면 사람들은 자신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돌발 사건이 발생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또 다른 돌발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을 예견하려고 한다. 다른 방식으로 일어날 가능성은 보지 못한다.

 

 

검은 백조를 도외시함으로써 발생하는 부수적인 문제점들

1) 보이는 것들 중에서 보고 싶은 부분에만 집중하며, 그것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일반화시킨다. --> 확인 편향의 오류

2) 인간은 명확한 패턴을 좇는 플라톤주의적 갈증에 부합되는 이야기로 스스로를 속인다. --> 이야기 짓기의 오류

3) 검은 백조가 존재하는 않는 듯이 행동한다. --> 인간은 검은 백조에 대비해 프로그램되지 않았다.

4) 우리가 보는 것이 거기에 있는 전부는 아니다. 역사는 검은 백조들을 우리 눈에서 가려 버리며, 그리하여 이러한 사건들의 확률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게 만든다. --> 이것은 말 없는 증거에 의한 왜곡이다.

5) '땅굴 파기'에 몰입한다. --> (얼른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 검은 백조들은 포기한 채) 잘 정의된 몇몇 불확실성의 원천들, 즉 지나치게 명확한 검은 백조 리스트에만 집중한다.

 

 

지식의 문제의 핵심은 '확증 증거'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칼 포퍼', '찰스 샌더스 피어스' : 피어스-포퍼 접근법, 준회의주의

체스 고수들은 자신의 수의 약점에 집중한다. 하수는 자신의 수를 부정하는 사례들보다 긍정하는 사례들을 찾는다. 조지 소로스는 투자를 할 때 끊임없이 자신이 세운 최초의 가설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사례들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이야말고 진정한 자기 확신이며, 구태여 자신의 에고를 북돋는 신호를 찾으려는 욕구에서 벗어나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능력이다.

 

 

심각한 심리적 질병들은 주변 환경에 대한 통제력-주변 환경에 대한 '이해' 능력-을 상실했다는 느낌을 동반한다. 예술과 달리 과학의 목적은 조직된 느낌을 얻거나 기분을 전환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도달하는데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식을 심리 치료 요법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전통적인 지식에는 기억이란 컴퓨터 디스켓처럼 자료를 차례차례 이어서 기록하는 장치로 여겨진다. 그러나 실제 기억은 마치 같은 종이 위에 글을 계속 쓰는 것과 같아서(혹은 처음의 글을 새로 고쳐 쓰는 것과 같아서) - 정적인 것이 아니라 - 역동적이다. 이는 그만큼 과거의 정보가 강력한 힘을 발휘해 주기 때문이다. 기억은 역동적이되 단순히 스스로 새롭게 보충해 나가는 자동기계는 아니다.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는 이 최신 사건을 기억하면서 이전의 기억에 이를 덧붙여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자기도 모르게 발휘하지 않는가? (19세기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인간의 기억을 팰림프세스트'palimpsest', 즉 이전에 쓴 글을 지우고 그 위에 새로운 글을 쓴 양피지에 비유한바 있다)

우리는 인과관계의 사슬 속에서 기억을 끄집어내고, 무의식적으로 이를 수정해 나간다. 우리는 새로 발생한 사건까지 감안하여 논리적으로 들어맞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 짓기를 되풀이한다.

 

 

검은 백조를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 하는 일은 흔히 일어난다.

'손실이 적을 사고에 대비하는 보험 선호 경향' 가능성이 적되 충격은 더 큰 사고에 대비하는 일을 포기하는 경향 - "비행기 사고로 사망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라는 질문에 사람들은 실제보다 확률을 높여 대답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비행기 사고의 확률이 매우 낮다고 생각하고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남.

추상적인 것을 꺼리는 경향 --> 사전 정보가 없을 경우(스스로 확률을 조정해 보도록 함) 확률이 희박한 사건의 발생 가능성을 실제보다 낮게 평가한다. 하지만 사전 정보가 주어지면 확률을 실제보다 높게 예측한다.

우리는 반복을 통하여 학습하기 때문에 과거에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대비하지 못하는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는 두 번 일어나지 않는 사건은 무시하다가, 일단 그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 (한동안) 이번에는 이를 과대평가한다.

 

 

시스템1(경험적 사고)

우리가 알아치리지 못하는 사이에 의식적 노력 없이 자동적으로, 빠르게, 병렬처리로 작동되며, 그 자체에는 오류가 없다. (직관이라 일컫는) - 휴리스틱이라는 지름길로 빠르고 효율적인 작동 (but 경험에 의존하는 편향)

 

시스템2(인지적 사고)

생각하기(thinking)라고 부르는 것. 느리고, 논리적이며, 생각에 생각을 잇고, 계속 발전시켜야 하며, 자기의식적이다. 경험적 사고 시스템에서 보다는 훨씬 오류가 적게 발생하며, 생각의 결과로 얻어진 것들이 어떤 과정을 밟았는지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다시 거슬러 올라가는 사고도 가능하고, 다른 방식으로 응용할 수도 있다.

 

 

세계는 비선형적이다. 비선형적 관계는 우리 삶의 모든 면에서 작용한다. 선형적 관계가 오히려 예외적이다. 선형적 관계를 주목하는 것은 학교와 교과서에서뿐이다. 그 이유는 선형적 관계가 이해하기에 쉽기 때문이다.

 

 

과학을 산출하려면 의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너무 일찍 의심에서 벗어나는 것도 피해야 한다는 점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적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심의 중요성을 알지도 못한 채로 거기서 벗어나 버리는 것이 사실이다. - 시몽 푸셰 '진리탐구비판Dissertation on the Search for Truth'

 

확인 편향 오류에 빠지면 우리는 확률 이론이 성공적으로 적용된 계임을 예로 들어 이것을 일반화시키려 한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삶에서 행운이 차지하는 역할은 일반적으로 과소평가하지만, 확률 게임에서는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한 가지 문제를 오랫동안 생각하다 보면 거기에 빠져 버린다. 여러 가지 방면으로 사고를 전개하다 보면 이것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다. 이것들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원리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아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에서 생기는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에코의 서재에서 우리 눈에 띄지 않는 부분은 무시되는 속성이 있다. 말 없는 증거 역시 같은 문제를 일으킨다. 이미 출현한 검은 백조에 대해서는 계속 근심하면서도, 과거에 일어난 일은 없지만 미래에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검은 백조 사태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미 익숙해진 잘 짜여진 도식과 지식을 선호하는 플라톤적 태도에 물든 나머지 실제 세계에 대해서는 장님이 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귀납법의 함정에 빠지는 것도, 확인 편향의 오류에 빠지는 것도 이 때문이며, 우등생이 학교 밖에서 루딕 오류를 범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는 잘 짜여진 이야기를 선호한다. 우린 인류는 아직까지 추상적인 문제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진화하지 못했으니, 우리는 언제나 전후 맥락을 들어야 이해를 할 수 있다. 무작위와 불확실성은 추상적인 영역에 속한다. 우리는 이미 발생한 것은 중요하게 여기지만, 일어날 수 있었을지 모르는 일은 무시한다. 요컨대 우리의 천성은 피상적이고 표피적일 뿐 아니라, 그러한 천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다. 이것은 심리학적 문제가 아니라 정보의 기본적 속성에서 오는 문제다.

 

동물보다 좀 더 고상한 삶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이야기 짓기의 세계를 벗어나야 한다. 텔레비젼을 끄고, 신문 읽는 시간을 줄이고, 인터넷을 무시하라. 결정을 내리는 이성적 능력을 훈련하라. 감각적인 것과 경험적인 것을 구분하도록 스스로를 훈련하라. 이렇게 함으로써 세계의 해악에서 벗어나면 보답을 얻게 될 것이니, 삶이 그만큼 풍요로워질 것이다.

 

 

우리는 지난 일을 이야기로 꾸미는 데 능숙하다. 과거의 일이 쉽게 이해되도록 새로운 이야기까지 만들어 낸다. 많은 사람들에게 지식이란 판단의 척도가 아니라 확신을 만들어 내는 능력의 원천이다. 여기서도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상자 속의 것'을 열어 보지 않고도 예견하는 플라톤적 사고, 즉(사리에 맞지 않는) 법칙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미래는 과거와 다르다" - 요기 베라

 

 

인식론적 오만의 두가지 효과

1) 알고 있는 것을 과대평가하게 한다.

2) 실현될 수 있는 불확실한 상황이 분포할 범위를 줄임으로써(즉 알지 못하는 것의 범위를 축소시킴으로써) 불확실성을 과소평가하게 만든다. 

 

실제로 아는 바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차이

 

 

방법을 아는 것(knw-how) vs 어떤 것을 아는 것(know what)

변화하지 않는 분야(전문가로 입증되는 전문가들이 있다)와 변화하는 분야(전문가로 입증되지 않는 전문가들이 있다)

변화하는 분야는 지식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면서 방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은 시야가 협소하기 때문에 예기치 못한 돌발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을 고려하지 못한다. 또한 계획 속에 있는 문제에만 골몰하기 때문에 계획 바깥의 불확실성, 즉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것,' 다시 말해 '아직 읽지 않은 책 속의 내용'은 염두에 두지 못하다.

 

헛똑똑이 효과 : 분석틀 바깥의 위험을 머릿속에서 제거해 버리거나 자신이 아는 것에만 초점을 맞출 때 일어난다. 자기틀 안에서만 세계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빗나갈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예측의 오류 (불확실성의 본성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

1) 중요한 것은 가변성이다. 정확성은 도외시한 채 예측치를 내놓은 것 자체를 중요시하는 데서 비롯된다.

    정책을 결정할 때에는 그 정책의 최종 예상 목표가 아니라 추정 가능한 결과의 폭을 더 고려해야 한다.

2) 프로젝트가 연장되면 당초 예측이 설명력을 잃어 간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는데서 생겨나는 오류

    예측의 설명력이 시간이 지나면서 떨어지는 것

3) 예측 대상이 되는 변수가 무작위적 특성을 갖는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오류

 

 

검은 백조 현상의 세가지 속성 : 예견 불가능성, 파급의 막대함, 사후 합리화

 

 

인간의 두 가지 성향

1) '땅굴 파기'와 '협소하게' 생각하기(지적 오만)

2) 예측 성적을 엄청나게 과대평가한다는 점, 즉 우리의 예견 능력을 실제보다 크게 평가

 

인간의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사회과학이나 경제 예측 따위를 진심으로 믿기 어렵다. 하지만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인간을 합리적 존재일 것이라고 가정하고 이들의 행동이 예상대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행동에 그런 일관성은 없다. 일관성이 없으면 일반화 하기 어렵고, 그러면 예측하기도 어려워 진다.

 

 

녹은 물에서 얼음의 형상을 추측하기

1) 전진 과정 : 얼음 덩어리에서 물로 변하는 과정에 대한 사고 방향 (물리학, 공학적 사고 방향)

2) 후진 과정 : 고여 있는 물을 보면서 그 이전의 얼음 덩어리를 마음의 눈으로 떠올려 보는 것(물은 어디서 왔는가), 반복과 실험이 불가능한 분야, 즉 역사적 접근에서 채택되는 사고 방향

 

 

예견에 대한 교훈

1) 적재적소에서 바보가 되다.  작은 일에 바보가 되어도 좋지만 큰 일에는 금물이다.

2) 언제나 준비되어 있을 것 (예측 보다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에 대비)

사소한 것에 대한 예측은 진통과 치료 효과 정도로 그칠 수 있다. 하지만 거창한 예측치는 판단을 마비시키니 주의해야 한다.

 

 

거듭되는 작은 실패는 오히려 삶에 도움이 된다. 실패를 장려하는 문화에서 혁신이 탄생한다.

 

 

바벨 전략 : 85~90%는 극히 안정적 대상에 투자, 10~15%는 가장 투기적인 곳에 투입(벤처케피털)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것에서 쓸모있는(획기적인) 부산물을 찾는 요령

1) 긍정적 우연과 부정적 우연의 차이를 구분

    긍정적 검은 백조의 예) 영화, 출판, 과학연구, 벤처 자본... 손실은 적되 성공의 보상은 크다

2) 지엽적 정확성을 추구하지 마라. 시야를 넓혀라

3) 기회를 놓지지 말라. 혹은 기회로 보이는 것을 놓치지 말라.

4) 정부가 내놓는 계획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라. (정부가 하는 일의 부작용에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한다)

5) 일기예보관들, 애널니스트들, 경제학자들, 사회과학자들과는 농담을 주고받을 지언정 그들의 주장과 싸우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

 

 

거대한 비대칭성  : 현재와 미래의 비대칭성

어떤 사건의 (알 수 없는) 확률을 계산하는 것보다는 (알아낼 수 있는) 그 결과에 집중함으로써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것이 불확실성에 대한 중심적인 개념이다.

인간은 역사를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다고 믿지만, 궁극적으로 역사에 의하여 규정되고 있다.

 

우리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이유

1) 인식론적 오만과 그에 따르는 미래에 대한 맹목

2) 플라톤식의 범주 관련.

3) 추론에 사용하는 허점 투성이의 도구들

 

 

만델브로 <자연의 프랙털 기하학 The Fractal Geometry of Nature>

프랙털 기하학의 핵심은 규모의 변화와 무관하게 (어느정도) 보존되는 대수적 혹은 통계적 측정값을 갖는 것이 프랙털의 속성이다. (가우스 수학과 다른 것은 비율이 동일하다는 점)

 

 

자료를 다루면서도 그 자료로 의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똑같은 죄, 즉 이야기 짓기의 오류를 다양한 형태로 범하고 있다. 정보의 불투명성과 불완전성, 세계 작동 원리의 파악 불가능성. 역사는 그 속내를 우리 앞에 내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추측만을 할 뿐이다.

 

 

로크의 미치광이 : 잘못된 전제를 바탕으로 정확하게 추론을 하겠다는 사람

철학 바깥에 있는 문제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철학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철학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 때문에 철학 유파들이 후퇴하고 있다. 진정한 철학은 언제나 철학 외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뿌리가 부패하면 철학도 죽는다. 비철학적 문제의 압력에 의하여 철학에 이끌리는 대신 철학을 '연구'하는 철학자들은 이 뿌리를 쉽게 망각한다.

 

 

놓친 기차가 아쉽게 느껴지지 않을 때

운명을 무시하라. 시간표에 맞춰 살겠다고 달음박질하지 않으려 하는 삶.

떠나는 기차를 쫓아가지 않게 되면 우아하고 미학적인 행동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고, 자기의 시간표와 시간, 자기 인생의 주인됨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 놓친 기차가 아쉬운 것은 애써 좇아가려 했기 때문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들이 생각하는 방식의 성공을 이루지 못한다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남들의 생각을 추종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택할 수만 있다면, 경쟁의 질서 바깥이 아니라 그 위에 서도록 하라.

자신이 설계한 게임에서는 쉽게 패배자가 되지 않는 법이다. 내가 하는 일을 장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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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건너는 것은 길이 없는 곳을 걷는 것이다. 

정해진 길도 없고 누구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살아가는 인생길, 사막을 건너는 지혜가 필요한 이유다.

 

 

 

[본문발췌]

 

 

인생을 산에 오르는 것에 비유하는 생각때문에 우리는 도대체 끝이 보이지 않아서, 건너편 저쪽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좌절감을 맛본다. 목표를 추구하고 성취하는 데 중점을 두고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문제점을 정의하고,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실행하는 것을 모든 문제의 해결책으로 여긴다. 이것이 바로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산악인의 정신이다.

 

하지만 목표가 애매모호하거나 또는 최종적인 결과라기보다는 일종의 과정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은 바로 사막을 건너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다.

 

 

1. 지도를 따라가지 말고 나침반을 따라가라.

방황을 통해 진정한 방향 감각을 얻을 수 있다. 내면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알 수 있다면, 길을 잃었을 때에도, 지도가 없는 곳에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지도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자체가 이미 우리에게는 여행의 출발이 된다.

우리가 인생이라는 사막을 건널 때 혹은 변화의 사막을 건널 때, 나침반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역할을 한다.

 1)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찾아 준다.

 2) 우리를 더 깊은 사막으로 이끌어 준다.

 3) 우리가 목적지보다 여정 자체에 중점을 둘 수 있게 해준다.

 

 

산을 타는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상에 다다르기 직전 마지막 날 또는 그 마지막 시간이다. 목표 달성에만 매달려 인생을 살아간다면 도착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되어 버린다. 우리 안에 있는 나침반은 우리가 여행을 하는 매순간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도록 이끌어 준다.

 

 

우리가 가야 하는 방향은 '그저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과 같이 단순한 것일 수도 있다. 어린아이였을 때 나침반 바늘은 대개 깨어 있는 시간을 가리켰을 것이다. 이 시간은 의식적으로 선택된 것이 아니라 그냥 적절하고 당연한 방향으로 떠오르는 것 같았다. 바로 지금 여러분이 따라야 할 방향이 바로 이쪽이 아닐까?

이러한 방향 지침에는 '하라' 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에게 진실하라, 인내하라, 그 순간에 몰입하라, 사랑하는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가져라, 긍정적인 마음 자세를 가져라, 하느님을 믿어라 등과 같이 말이다. 이러한 표현들은 단순하지만 강력한 방향 지침으로서 인생과 변화의 사막에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안내 해 준다.

 

 

내면의 나침반을 분명하게 볼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기법

 

1) 목적지에서 해방되는 것(목적지는 저 멀리 흘려 버려라)

  • 인생의 사막에서도 목표는 존재한다. 사막에도 산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산은 우리가 올바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 주는 이정표나 길잡이가 되어 주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방향 감각이다. 먼저 자신을 안내해 줄 내부의 나침반부터 찾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분명하게 보일 때까지는 목표나 도착지는 염두해 두지 않아야 할 것이다.
  • 산의 정상에 너무 중점을 두다 보면 산 자체를 놓칠 수 있다. 인생의 사막에서도 놓칠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 여행 그 자체처럼.
  • 바로 지금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기 위해 누군가 죽는 그런 일이 닥칠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2) 눈높이 낮추기

  • 일단 목적지를 접어두고 나면, 바로 눈앞에 있는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다. 나침반 바늘은 우리가 여행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 준다. 그리고 여행에 집중하면 우리 안의 나침반도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 방황을 통해 진정한 방향 감각을 얻을 수 있다면 사막에서는 방황이 효과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문화에서는 방황이 일종의 성년 의례로, 젊은이는 혼자서 사막을 헤매고 다니며 자기 자신의 고유한 성격과 장점을 깨닫는 과정을 거친다. 이것은 자기 인생에서 나침반 바늘이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 우리는 방황하다가 길을 잃기도 하고 신기루를 좇기도 한다. 목적지를 접어두면 길을 잃은 느김을 받게 마련이다. 애매모호한 것을 잘 참지 못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목적지를 찾아 나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막에 어떤 구조와 계획, 목표를 강요하고자 하는 충동을 억제해야 한다. 불확실성을 참아낼 수만 있다면 방향 감각이라고 하는 선물을 받게 될 것이다. 목적 의식을 가지고 방황하는 법을 배우게 되면 불확실성의 개운치 않은 느낌을 잘 다룰 수 있다.

 

 

사람들이 방황하면서 저지르기 쉬운 실수

  • 목적지에 중점을 두는 것. 목적 의식을 가지고 방황한다는 것은 우리를 이끌어 줄 방향을 추구하고 걸어갈 길을 찾는 것이지 문제를 그 자리에서 해결해 줄 마술과 같은 치료약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 사막 가장자리를 배회하고 본격적인 여행길에 오르는 것을 회피하는 것
  • 무의식적으로 배회하는 것. 즉, 가고 있는 방향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행로에서 벗어나 헤매는 것

 

 

2. 오아시스를 만날 때마다 쉬어가라.

이 일을 마치면, 이 프로젝트를 끝내고 나면, 시간이 날 거라고 생각하며 오아시스를 지나친다. 그러나 사막은 한없이 계속된다.

 

 

오아시스에 멈추어 쉬어야 할 이유

  • 쉬면서 기력을 회복, 멈추어 쉬고 활력을 되찾으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더 많이 쉴수록 더 멀리 갈 수 있다.
  • 여정을 되돌아보고 정정해야 할 것은 정정(생각할 시간),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
  • 오아시스에서는 같은 여행길에 오른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다른 여행자들과 교류)

 

인생에서 가장 달콤한 오아시스는 표시가 되어 있지 않고, 기대하지 않은 순간에 발견된다. 우연히 오아시스를 마주쳤을 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오아시스라는 것을 알아보는 것이다. 인생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계획하고 일정을 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우연히 찾아오는 원기 회복, 사색 혹은 교감의 기회를 놓쳐서도 안 될 것이다.

 

 

3. 모래에 갇히면 타이어에서 바람을 빼라. 

지나친 자의식 때문에 춤추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누구도 어리숙해 보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림 수업, 시 쓰기, 외국어 배우기, 노래 배우기... 자아에서 공기를 조금만 빼면 수많은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인생의 사막에서는 어느 순간 미래를 향해 쭉 뻗은 일차선 고속도로(포장도로)가 끊기고 변화의 모래에 휩싸이는 순간이 있다. 변화의 모래에 갇히는 것은 변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자 인생의 깊은 부분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한 번도 갇혀 본 경험이 없다면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깨닫지 못한다. 갇히게 되면 여러가지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막히게 되었을 때 그 사실을 잘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해보고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뭔가를 시도해 보고 싶지만 두려움이나 실리적인 생각 때문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다. 정체 상태에 빠지면 좌절감을 느끼거나 화가 난다.

 

 

사막을 건너기 위해서는 여행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새로운 운송 수단을 찾기 전에 우선 옛날 방식부터 버려야 한다.

밀어붙이기를 멈추고 더 이상 머리를 벽에 부딪치지 않는다면 그 정체된 장소에서 서성거려야 한다.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서는 처음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대안에 선뜻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 그냥 그 정체된 상태에서 한동안 머문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불편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 같은 첫 번째 아이디어를 좇게 된어 있다. 하지만 이 불편한 상황은 아주 새로운 곳이며 중간적인 공간이다. 상황이 꼬인 원인에 대해서 찬찬히 파악하면서, 아직 헤어나올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지 못한 그 공간에서 한동안 멈춰서 숨을 고를 필요가 있다.

 

 

성공으로 가는 길은 성공으로 덮여 있지 않다. 때로는 전혀 포장되어 있지 않은 도로도 달려야 한다. 성공적인 삶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사막에 잡힌 발목을 풀기 위해서는 자아가 한 번쯤은 패배를 겪도록 놓아 둘 필요가 있다. 그것은 내가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일 수도 있고, 상실을 받아들이는 것일 수도 있으며, 사과를 하거나 용서를 하고, 도움을 요청하고 또는 약점을 인정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공기를 빼고 나면 자아는 패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리더로서의 책임을 맡기 전에 먼저 겸허해져야 한다. 겸허해 진다는 것은 자존심을 무너뜨린다거나, 스스로에게 엄해진다거나, 완전한 패자가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겸험해진다 함음 그저 자기가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 그리고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는 작은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약점까지 포함하여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겸허함이며 이를 통해 더 높이 일어설 수 있다. 우리가 사막에서 겪는 변화는 종종 우리 자체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이 바뀌는 것이다.

 

 

4. 혼자서, 함께 여행하기.

인생의 사막을 건너는 것은 고독과 외로움,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 사이에서 춤을 추는 것과 같다.

 

 

우리 스스로 방향을 찾아야 하고 전진하고, 스스로를 돌보고, 자아와 싸워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항상 혼자일 수는 없다. 우리는 정신적인 지원, 친구들, 길잡이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는 도중에 어느 순간이든 다른 사람의 어깨가 필요할 때가 있고, 혼자 헤쳐 나가야 하는 순간도 있다. 또는 이 두가지가 동시에 필요할 수도 있다. 우리가 개발해야 할 기술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언제 필요한지를 뚜렷하게 인식하는 능력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가끔 혼자가 되어 볼 필요가 있다. 혼자가 되는 동안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무슨 일인가 발생하고 무언가가 변해서 방향을 찾거나 활력을 되찾고, 또는 무엇인가를 받아들이거나 놓아 줄 수 있게 된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현실로 돌아온다.

 

 

 

5. 캠프파이어에서 한 걸음 멀어지기.

안전하고 따뜻한 캠프파이어가 비추는 것은 진짜 세상의 일부분에 불과하며, 때로 정말 중요한 것을 알기 위해 사막의 깜깜한 어둠 속으로 나아가야 한다.

 

캠프파이어 : 가족, 친구, 집, 그리고 직장. 가치관, 일상, 인간 관계 그리고 의식처럼, 우리가 믿고 있는 것들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 바로 캠프파이어이다.

 

 

캠프파이어 곁을 떠나려는 우리에게 필요한 신조는 '항상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지내기' 이다. 인생의 사막에서 대비해서 완벽하게 준비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

 

캠프파이어에서 멀어지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

1) 캠프파이어의 정체를 밝힌다. 내가 손을 놓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2) 변화라고 하는 사막의 어두운 밤으로 가기 전에 준비하고 싶은 모든 것과 계획을 써본다.

3) 현실적으로 그러한 계획을 모두 실행하는 것이 가능한가를 자문해 본다.

4) 2단계의 준비를 마치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갈 수 있을지 자문해 본다.

세번째, 네 번째 질문에 대해서 '아니'라고 답을 했다면 준비하지 않기라고 하는 개념을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그러면 지도도 없이 아무 보장도 없이 모험을 할 준비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6. 허상의 국경에서 멈추지 말라. 

사막은 끝이 없지만, 종종 진정한 휴식을 안겨주는 경계선이 있다. 남편을 잃은 여인이 일 년 만에 처음으로 웃었을 때, 새 직업에 적응하고 비로소 휴가를 가게 되었을 때,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때, 집을 떠나 독립할 때, 진정한 경계선을 건너고 나면 또 다시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다.

 

 

마음속 보초가 당신은 열정을 따라 하고 싶은대로 하면 살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허상의 국경선에 멈춰 버리면 열정도 죽는다.

허상의 국경선은 항상 두려움을 낳는다. 이 두려움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믿음과 연관되어 있고, 이 잘못된 믿음은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그에 저항할 용기나 통찰력이 없다면, 그 둘이 합세하여 우리를 사막 한가운데에 가두어 버릴 수도 있다.

허상의 국경선은 허상처럼 보이지 않고, 진짜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그 국경선을 건너면 뭔가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그 국경선을 넘지 않으면 끔찍한 일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너무 나이가 많은 것이 아닌가 걱정한다. 사실은 '꿈을 버리기에는 너무 젊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변화의 시점에 현재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에 이곳에 머물면 내가 나를 버리는 것이다' 라는 진짜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다.

 

 

인생이라고 하는 이 여행이 종국에는 끝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의 인생은 더욱 활기를 띠게 된다.

 

 

여행을 할 때는 도착했음을 느낄 줄도 알아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면서 그것이 다음 도착지를 향해 내딛는 것임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안에는 여행과 목적지가 공존한다.

 

 

인생은 우리가 예측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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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경제적 가치, 시장논리로 세상이 모두 설명되거나 작동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남들이 규정해 놓은 가치와 꿈을 쫒아 사회가 만들어 놓은 매트릭스에 갖혀 개인의 삶의 가치와 꿈을 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이는 가난, 질병, 그리고 환경적 이유 탓에 삶의 가치와 꿈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어떤 이는 세상의 중심에 서 있다는 착각에 포장된 삶의 가치와 꿈으로 위안을 삼기도 한다.

 

무엇이 삶의 가치를 결정하는가?
내 인생에 어떤 삶의 가치를 부여할 것인가?

 

 

[본문발췌]

 

 

시장논리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공공생활에서 도덕적 논쟁을 결여시킨다.

시장이 지닌 매력 중 하나는 스스로 만족하는 선택에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장을 포용하면서 도덕적/정신적 논쟁을 꺼리는 태도 때문에 우리는 무거운 대가를 치르고 있다.

 

 

Gary Becker "인간행동의 경제학적 접근, The Economic Approach to Human Behavior"에서 경제학이 물적 재화의 분배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구식 개념을 거부하고, 인간행동에 경제학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의 핵심으로 "사람들은 어떤 활동을 하든지 자기 행복을 극대화할 목적으로 행동한다"는 경제학이 단순히 물적 재화의 생산과 소비를 파악하는 통찰력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인간행동을 설명하는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벌금과 요금의 차이는 무엇일까?

벌금은 도덕적으로 승인 받지 못하는 행동에 대한 비용이고 요금은 도덕적 판단이 배제된 단순한 가격이다.

벌금과 요금, 기타 금전적 인센티브가 규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확실하게 예측할 수 없고 상황마다 다르다. 요점은 시장이 특정 규범, 즉 거래 재화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을 반영하고 조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재화를 상품화할지 말지 결정할 때는 효율성과 분배 정의 이상의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또한 시장 규범이 비시장 규범을 밀어낼 것인지 물어봐야 하고, 만약 그러하다면 그것이 우려할 만한 상실인지도 판단해야 한다.

시장과 시장지향적 사고가 건강, 교육, 출산, 난민정책, 환경보호 등 전통적으로 비시장 규범의 지배를 받았던 삶의 영역으로 영향력을 뻗어가면서 이러한 딜레마가 더욱 자주 발생한다.

 

 

도덕적 논리가 없이는 시장논리도 불완전하다.

 

 

시장논리가 물질 재화의 영역을 넘어서는 경우에, 사람들의 선호에 담긴 도덕적 가치에 대해 고려하지 않은 채, 사회적 효용을 맹목적으로 극대화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도덕적으로 거래'해야 한다.

시장의 팽창으로 시장논리와 도덕논리, 세상을 설명하는 논리와 세상을 향상시키는 논리를 구별하기가 복잡해지는 이유는 또 있다. 경제학의 중심 원리 중 하나는 가격 효과다. 가격이 올라가면 사람들은 재화의 구입량을 줄이고, 가격이 내려가면 재화 구입량을 늘린다. 이러한 원칙은 일반적인 상품 시장에 대해 논할 때에는 신뢰할 만하다. 하지만 어린이집에 맡겨놓은 아이를 제시간에 데리러 오는 사례처럼 비시장 규범의 지배를 받는 사회적 관행에 가격 효과 원칙이 적용될 때에는 신뢰성이 떨어진다. 벌금이 없다가 아이를 늦게 찾으러 올 때의 가격이 올라가자, 오히려 어린이집에 늦게 도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러한 결과는 일반적인 가격 효과를 거스른다. 하지만 재화를 상품화하면 그 의미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이해할 만하다. 아이를 늦게 찾으러 오는 행위에 가격을 부과하니 규범이 바뀌었다. 제 시간에 어린이집에 도착하는 것이 교사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기 위한 도덕적 의무로 여겨졌지만, 이제 부모들은 이를 시장논리로 이해해서 어린이집에 늦게 도착해도 아이를 좀 오랫동안 맡길 수 있는 서비스에 대한 비용을 교사에게 지불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센티브의 의도가 역풍을 맞은 것이다.

 

 

시장논리를 출산, 육아, 교육, 건강, 범죄처벌, 이민정책, 환경보호 같은 문제에 적용하면, 모든 사람의 선호가 똑같이 가치 있다고 추측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처럼 도덕적 책임이 따르는 영역에서는 재화의 가치를 평가하는 어떤 방식이 다른 방식보다 더 수준 높고 더 적절할 수 있다.

 

 

상품화 효과(commercialization effect), 시장의 비시장 규범에 대한 잠식효과를 강조 (프레드 허시)

상품화 효과는 비공식적 교환, 상호 의무, 이타주의나 사랑, 봉사정신이나 의무감 같은 기준보다는 대부분 상업적 조건에만 의존해서 제품의 성질이나 제품의 공급활동에 미치는 영향이다. 시장 인센티브와 메커니즘을 도입하면 사람들의 태도를 바꾸고 비시장가치가 밀려날 가능성이 있다.

 

 

어떤 일을 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으면, 특히 요청 받은 일이 좋은 일일 경우에는, 차라리 무료로 해달라고 요청받을 때보다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있다. -   행동주의 경제학자 댄 에리얼리(Dan Ariely)

 

 

"우리는 정당하게 행동함으로써 정당해지고, 절제함으로써 절제하는 사람이 되고, 용감하게 행동함으로써 용감해 진다" - 아리스토텔레스

 

이타주의, 관용, 결속, 시민 정신은 사용할수록 고갈되는 상품이 아니다. 오히려 운동하면 발달하고 더욱 강해지는 근육에 가깝다.

 

시장 지향 사회의 결함 중 하나는 이러한 미덕이 쇠약해지게 방치하는 것이다. 우리의 공공 삶을 회복하려면 좀 더 부지런히 미덕을 행사해야 한다.

 

 

학교에 범람하는 상업화는 두 가지 면에서 부패했다. 

1) 기업의 후원으로 제작된 교육 자료는 편견과 왜곡, 피상적인 내용으로 가득하다. 

2) 기업이 객과적인 자료를 제공한다 해도 상업적 광고는 학교의 목적에 어긋나기 때문에 여전히 유해하다.

 

광고는 사람들에 무언가를 원하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라고 부추긴다. 하지만 교육은 자신의 욕구를 비판적으로 돌아본 후에 욕구를 자제하거나 향상시키라고 가르친다. 광고의 목적은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것인 반면. 공립학교의 목적은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다.

 

 

가정생활, 우정, 성, 출산 , 건강, 교육, 자연, 예술, 시민정신, 스포츠 등 시장이 침입해온 많은 영역에 어떤 규범이 합당한지를 놓고 서로 의견이 다르다. 그러나 시장과 상업이 재화의 성질을 바꾸는 상황을 목격했다면 시장에 속한 영역은 무엇이고 시장에 속하지 않은 영역은 무엇인지 의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화의 의미와 목적, 재화를 지배해야 하는 가치를 놓고 깊이 사고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그러다 보면 불가피하게 좋은 삶에 상충되는 개념에 관해 깊이 생각하기 마련이다. 이는 우리가 가끔은 발을 들여놓기를 두려워하는 영역이다. 우리는 반대에 부딪힐까봐 두려워서 자신의 도덕적, 정신적 확신을 공공의 장에 내보이기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에 맞서지 않고 뒷걸음질 친다고 해서 문제가 미해결 상태로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시장이 우리 대신 결정을 내리도록 허용하게 되는 셈이다. 시장지상주의 시대는 공공 담론에 도덕적, 정신적 실체가 상당히 부족했던 시대와 일치한다. 시장을 제자리에 놓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 관행과 재화의 의미에 관해 솔직하게 공개적으로 숙고하는 것이다.

 

 

 

<해제>, 김선욱

 

샌델 사상의 철학적 배경 : 정의 중심의 정치철학과 행복 중심의 정치철학의 종합

 

행복 중심의 정치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 - 헤겔 -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 찰스 테일러'로 이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인간이 행복을 추구한다고 생각했고, 행복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가 윤리와 정치의 목표라고 주장. 이때 말하는 행복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심리적 만족감과는 다르다. 그리스어 '유다이모니아(eudamonia)'는 인간의 삶이 가진 내적인 목표를 충실히 실현한 경지로 행복이란 만개한 꽃과 같이 충실하고 온전한 삶의 모습을 일컫는 객관적 성격의 개념이다.

행복한 삶이란 각자가 가진 탁월성을 이룰 때 가능해진다. 개인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숙고는 그의 개인적 역량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각각의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적절하고 올바른 판단, 그리고 그가 속하게 되는 공동체의 가치관 등과 밀접히 ㅇ녀결된다. 이 모든 것은 덕을 행하는 인격 형성의 문제로 나아간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구조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개념이 '좋음(the good)'이라는 개념이다. 무엇이 좋은 것인가, 개인과 공동체에 좋은 것이 무엇인가가 마땅히 행해야 할 바의  내용을 가름하는 잣대가 된다.

 

헤겔은 개인과 공동체가 가진 특수성이 보편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정신의 변증법적 자기 전개'의 철학을 통해 다소 형이상학적 방식으로 설명한다. 발전과 진보를 숭상했던 시대정신에 부합하여 헤겔은 변증법이라는 방법을 통해 진보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주었는데, 그 진보의 출발점은 가장 구체적인 것이고 최종점은 가장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것이었다.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의 해석학을 통해 헤겔의 철학은 언어철학적인 옷을 입었고 찰스 테일러는 이들의 철학적 영향력 하에서 문화들 간의 대화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내었다.

 

이들 모두는 구체적인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서로가 인정할 수 있는 보편성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연구해온 학자들.

 

한편 정의에 대한 고민은 좋음의 문제가 아니라 옳음(the right)의 문제에서 출발한다. 좋지만 옳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칸트의 도덕철학은 옳음을 통해서만 보편적인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한다. 칸트에 따르면 옳음의 근거는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앎으로 확인되는 것이 아니며, 이성을 근거로 옳다고 승인될 수 있는 원리를 발견함으로써 확인된다. 그리고 그 원리는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데 기반을 두고 있다. 흔히 정언명법으로 알려진 "네 의지의 준칙이 항상 보편적 입법에 타당하도록 행동하라"라는 것이 그 기준이 된다. 준칙이라는 말은 어떤 상황에서 하는 특정 행위를 일반화한 원리를 말한다.

 

롤스는 칸트의 의무론적 도덕철학의 정신을 정의론으로 확대한다. 모든 개별적인 원칙들을 적용하여 정의로운지의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정의의 원리를 발견하려고 한다. 그의 정의론의 기본적인 통찰력은 파이를 공정하게 나누는 방법과 같은 것이다. 배고픈 두 사람이 서로 많은 양의 파이를 먹고 싶어 하는데, 이들이 모두 만족할 만한 공정한 분배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 한 사람이 파이를 나눈 뒤 다른 사람이 선택하게 한다면, 나눈 사람은 자신에게 손해가 가지 않게 최선을 다해 공정히 나눌 것이고 결국 다른 사람이 남은 것을 취하더라도 손해 볼 것이 없게 될 것이다. 이런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사람이 자기에게 유리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는 상황을 가정하고 그 상태에서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정의의 원칙들을 발견하려 한다고 가정해보자고 롤스는 제안한다.

롤스의 두개 정의의 원칙, 1) 자유와 관련한 원칙으로 자유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평등한 자유의 원칙, 2) 불평등이 인정될 수 있는 조건과 관련한 원칙으로, 일단 공정한 기회가 모두에게 균등하게 주어져야 하며 사회에서 최하층에 위치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의 편익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샌델의 입장은 개인과 공동체의 특수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좋음을 강조하는 전통을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와 인권의 보편성을 인정하고 공동체적 가치가 개인의 동의와 무관하게 강요될 수 있으며 개인적 자유의 가치를 존중한다는 점에서 옳음을 강조하는 전통에 닿아 있다. 달리 말하면 샌델은 자유주의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동의하지만 자유주의자들, 특히 롤스가 말하는 가치 추구 방식에는 의문을 갖는다. 그들 방식으로 가치를 추구할 경우 과연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파이의 예에서, 대상이 엄마와 아들의 경우 모성애로 한쪽을 더 크게 자를 수 있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이는 자신이 구체적으로 어떤 입장에 있고 어떤 존재인가에 따라 공정성의 원칙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은가 라는 질문이 생긴다. 이처럼 개인의 처지와 상대와의 관계,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가치 있게 여겨온 원칙들, 종교적 신념에 따른 가치 등에 비추어 공정성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면 우리는 단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원리에 따라 공정성이 실현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더 이상 견지할 수 없게 된다. 나아가 공저성을 실현하려면 적절한 방식으로 개인과 공동체가 추구해온 가치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센델의 입장은 한마디로 '옳음에 대한 좋음의 우선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말은 정의를 지향하는 옳음의 관점을 무시하고 좋음의 관점에서만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옳음의 이념을 완성하려면 좋음의 관점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정의를 추구할 때 행복을 도외시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도 품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말로 옮겨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행복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의미한 자기본성, 덕의 실현에 따른 것이며 단순한 만족감 같은 의미에서의 행복은 아니다.

 

 

"특정 재화가 시장의 대상이 되면 그 재화 속에 내재된 본래적 선이 변질된다"

돈과 시장이 개입되면 발생하는 가치 변동. 각각의 좋은 것들이 지닌 선합이 돈때문에 변질되는 현상.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돈으로 사려 해서는 안 되는 것들', '돈으로 사게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묻는다. 돈 때문에 우리의 무엇이 변했고 또 지금 변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돈으로 사서는 안되는 것들에는 변하지 말아야 하는 본래적 선이 내재해 있다. 그 과정에 사람이 개입되면 본질적인 윤리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샌델은 우리가 시장의 무한한 확장에 속절없이 당할 것이 아니라 이런 사안들이 공적 담론과 토론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우리가 그것을 허용할 것인지를 공적 검토를 통해 깊이 고민하고 서로 대화하고 합의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이것은 곧 정치의 문제다. 참된 정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적 삶의 구조를 다루는 것이며, 경제는 그러한 구조를 이루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는 경제를 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매개체는 윤리다. 이 책은 경제에 윤리적 관점이 본래적으로 개입되어 있음을 분석해 보고, 시장이 개입함으로써 변질시키는 인간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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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유물론적 세계관이 삶을 지배하고 있다.

노자의 <도덕경> 속에서 자연친화적이고 지속가능한, 정신과 물질 그리고 조화로운 삶을 배워보자.

 

 

[본문발췌]

 

 

있음과 없음이 서로를 낳고 있음이 이로움이 되는 것은 없음이 쓰임이 되기 때문이다. 없음은 있음을 낳을수 있다. 有는 無 속에 감춰져 있는 것이다.

 

 

누가 탁한 곳에 처해도 고요히 해서 차츰차츰 맑게 할 수 있으며, 누가 편안한 곳에 처해도 움직여서 서서히 살아나게 할 수 있겠는가.

致虛極(치허극), 守靜篤(수정독) : 완전히 비우고, 고요함을 돈독히 지켜라. 비움과 고요함

 

 

긴 호흡으로 멀리 볼 수 있는 인생.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나니, 그래야 오래갈 수 있다.

知足常樂 만족할 줄 알면 언제나 즐겁다

 

 

성공으로 가는 인생의 세 가지 요소 : 타고난 재주, 스스로의 노력, 주어진 命(운명) 

 

 

無爲而無不爲(함이 없지만, 하지 못함이 없다), 무위는 자연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무위는 사물의 내재 법칙을 따르고, 객관적 조건에 근거해서, 상황에 적합한 행동을 하는것

 

 

去甚(심함을 버리고), 去奢(사치스러움을 버리고), 去泰(지나침을 버린다)

知足者富(만족할 줄 아는 자가 부자다), 知人者智(남을 아는 자는 지혜롭고), 自知者明(자신을 아는 자는 명철하다) 

 

 

하늘의 도는 활줄을 당기는 것과 같다. 높으면 억누르고, 낮으면 들어 올리며, 남으면 덜고, 부족하면 보태어 준다. 하늘의 도는 남는 것을 덜어서 부족한 데 보태주나, 사람의 도는 그렇지 않아서, 부족한 데서 덜어다가 남는 쪽에 바친다. 남는 것으로써 천하를 봉양할자 누구인가? 오직 도를 가진 자뿐이다.

 

 

장자 "열어구"

  군자는 먼곳에 보내서 그 충성됨을 보고,

  가까이 두고 쓰며 그 공경함을 보며,

  뜻밖의 물음으로 그 기지를 보며,

  급하게 약속해서 그 신용을 보고,

  재물을 맡겨 그 어짊을 보며,

  위급한 일을 알려 그 절개를 보고,

  술에 취하게 해서 그 절도를 보며,

  남녀가 섞여 있게 해서 그 색(정조)를 본다.

  아홉 가지 징험이 드러나면 나쁜 사람을 알 수 있다.

 

 

베푸는 것이 받는 것보다 훨씬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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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행동과 연결되는 시스템!

마술사, 마케터, 언론, 정치가들.... 이 구조를 잘 이해하고 활용 또는 악용하는 사람들 아닐까?

 

 

[본문발췌]

 

 

생각의 연상 작용 원칙은 유사함, 시간과 공간의 인접성, 인과관계 - 데이비드 흄

 

 

생각의 시스템

  • 시스템1 : 거의 혹은 전혀 힘들이지 않고 자발적인 통제에 대한 감각없이 자동적으로 빠르게 작동한다. 시스템2를 위해서 인상, 직관, 의도, 느낌 등을 지속적으로 제안. 특정 상황에서 발생하는 '편향' 오류를 갖음.

  • 시스템2 : 복잡한 계산을 포함해서 관심이 요구되는 노력이 필요한 정신 활동에 관심을 할당한다. 활동 주체, 선택, 집중에 대한 주관적인 경험과 연관되어 작용하는 경우도 잦다. 선택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할 소재를 결정하는, 의식적이고 추론하는 자아.

 

게으른 시스템2,

시스템2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시스템 1이 '제안한' 생각과 행동을 주시하고 통제하면서 일부는 행위를 통해 직접적으로 표현되게 하고, 또 일부는 억누르거나 수정하는 것이다. 시스템1이 개입되면 결론이 먼저 도출되고 주장은 이후에 나온다.

 

 

점화효과(Priming effect) : 시각적으로 먼저 제시된 단어가 나중에 제시된 단어의 처리에 영향을 주는 현상

 

 

존재하는 것만 보인다 (WYSIATI : What You See Is All There Is, 당신에게 보이는 것이 세상의 전부이다)

정합성을 모색하는 시스템1, WYSIATI는 정합성뿐 아니라 우리가 어떤 진술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인지적 편안함을 쉽게 얻을 수 있도록 한다.

 

 

시스템1의 주요 특징들

  • 인상, 느낌, 성향을 만든다. 시스템2의 승인을 받으면 이들으 믿음, 태도, 의도로 변한다.

  • 거의 혹은 전혀 노력하지 않으며 자발적 통제 없이 자동적으로 신속히 작동한다.

  • 시스템2에 의해 특정 패턴이 감지(검색)되며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게 프로그래밍 된다.

  • 적절한 훈련을 받으면 숙련된 대답을 하고 숙련된 직관을 발휘한다.

  • 연상 기억 속에서 활성화된 생각들에 대해 정합적 패턴을 창조한다.

  • 인지적 편안함의 느낌을 진실의 착각, 즐거운 기분, 경계감 완화와 연결시킨다.

  • 놀라운 것과 평범한 것을 구분한다.

  • 이유와 의도를 추론하고 생성한다.

  • 모호함을 무시하고 의심을 억제한다.

  • 믿고 확인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확증편향 - conformation bias,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수용,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

  • 정적 정합성을 과장한다. (후광효과 - halo effect)

  • 기존의 증거에 집중하고 없는 증거는 무시한다(WYSIATI)

  • 제한적인 기본적 평가만 수행한다.

  • 기준과 원형에 의해 집단을 반영하고 통합하지 못한다.

  • 여러 범위를 망라해 강도를 맞춘다(규모의 크기에서부터 소리의 크기까지)

  • 의도한 것 이상으로 계산한다(정신적 산탄총)

  • 가끔 어려운 문제를 쉬운 문제로 대체한다(휴리스틱)

  • 정적인 상태보다 변화에 더 민감하다(전망이론 - Prospect theory)

  • 낮은 개연성에 과도한 무게를 둔다.

  • 양에 덜 만감하다(정신 물리학)

  • 득보다 실에 더 강력히 반응한다(상실기피)

  • 결정 문제들을 서로 별개로 떼어놓으며 문제를 보는 프레임을 좁게 가져간다.

 

 

Heuristics and Biases(휴리스틱과 편향)

  • 인간은 자신이 보는 것의 지속성과 정합성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서둘러 결론 내리기를 좋아하고, 어려운 질문을 받으면 마음대로 쉬운 질문으로 바꾸어 이해하려 한다. 의심을 지속하기 어려워하고 과장된 믿음을 발휘한다.

  • 적은 숫자 법칙에 대한 믿음(Belief in the law of small numbers), 적은 표본에 대한 연구원들의 과장된 믿음은 후광효과, 즉 우리가 사실상 전혀 모르는 사람을 잘 알고 이해한다는 느낌과 밀접하게 관되어 있다. 시스템1은 여러 증거 조각들에 기초해 풍부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사실보다 앞서간다. 서둘러 결론 내리려는 기계는 적은 숫자 법칙을 쉽게 빋으려 할 것이다. 더 일반적으로 보면 그것은 과도한 의미를 갖는 현실의 반영을 생산해낸다.

  • 닻 내림 효과(anchoring effect), 입력된 정보가 정신적인 닻으로 작용해 이후 판단에 계속 영향을 미침

  • 적은 게 더 가치 있다(less is more), 단독평가와 공동평가. 평균이 평가를 지배하면 적은 것이 더 고평가 (깨진 접시가 포함된 집합의 평균적인 평가 절하)

 

 

Overconfidence(과신)

  • 세상의 그 어떤 이야기도 다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 수많은 사건을 전부 설명할 수 없다. 인간의 머리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다루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기술을 과대평가하고 행운을 과소평가한다.

  • 외부관점 / 내부관점, 외부관점을 수용한다는 것은 예측 대상과 유사한 다른 프로젝트로부터 확산 가능한 정보를 얻는 것. 또한 계획 오류를 고치는 치료법이기도 하다.

  • 우리는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투자를 늘리는 중이다. 이것은 매몰원가(sunk cost:의사결정을 마치고 실행한 이후에 발생하는 회수 불가능 비용)의 사례이다.

 

 

Choices(선택)

  • 어떤 사건에 대해 생생한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다면,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확률도 덩달아 생생하게 그려지고 과도한 가중치가 부과된다.

  • 전망 이론의 중심에는 세 가지 인지적 특징이 존재함 : 기준점, 민감도 체감성, 손실회피

  • 취향은 고정되지 않고 기준점과 함께 변한다. 변화의 단점이 장점보다 커 보이기 때문에 현상태를 선호하는 편향이 만들어진다. 손실 회피는 선택들이 기준 상황을 선호하는 쪽으로 강력히 쏠려 있다. 그리고 큰 변화보다는 작은 변화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 소유효과(endowment effect), 소유효과는 '거래'를 목적으로 갖고 있는 경우에는 나타나지 않고, '사용' 즉 소비되거나 즐길 목적으로 보유되는 재화에 존재한다.

 

Two Selves(두 자아)

  • 우리는 기억 자아는 소중히 대하면서 정작 경험 자아에는 무관심하다. 즐거운 경험을 위해 여행을 떠났는데, 정작 사진만 잔뜩 찍고 돌아온 경험은 없는가? 인간은 기억 자아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 "자연은 인류를 고통과 쾌락이라는 두 주인에게 지배받게 만들었다. 우리가 무엇을 할까 결정하는 일은 물론이요, 무엇을 행해야 할까 짚어내는 일은 오로지 이 두 주인을 위한 것이다" - 제레미 벤담,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설>

  • 경험과 기억 : 경험 중심의 효용(경험효용) 평가는 지속시간과 총량이 중요, 기억 중심의 효용(결정효용) 평가는 절정과 종결 법칙(peak-end rule), 지속시간 무시(duration neglect) 경향이 있음

  • 시스템1은 총합이 아니라 평균, 기준, 전형에 따라서 집합을 대표한다.

  • '적은게 더 가치 있다', 평균(전형)이 전체를 대체하는 효과

  • 전체 인생에 대한 직관적 평가에서 절정과 종결 법칙은 중요하지만 지속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 사람들은 옳든 그르든 간에 어떤 경험을 되풀이하고 싶은지 여부를 결정할 때 '기억에 의한 선택choose by memory'을 한다.

  • 칙센트미하이 '몰입flow', 행위에 깊게 빠져들어 시간의 흐름이나 공간, 더 나아가서는 자신에 대한 생각까지도 잊어 버릴때, 중단하기보다는 계속하고 싶은 활동들을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을 때 행복을 느낀다.

  • 행복의 두가지 측면, '사람들이 살면서 경험하는 행복'과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평가할 때 하는 판단'

  • 가난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며, 부유함은 인생 만족도를 높여줄 수 있지만 (평균적으로) 행복 경험을 개선해주진 못한다.

  • 소득의 만족 수준을 넘어서면 돈을 주고 더 즐거운 경험을 살 수 는 있을지 몰라도, 덜 비싼 경험들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은 일부 잃어버리고 만다. (인생의 자잘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이 줄어듬)

  • 행복감을 높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시간 사용을 통제하는 것이다. 즐기는 일을 할 시간을 더 많이 갖는것!

  • "인생의 그 무엇도 그것에 대해 생각할 때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다."

  • 우리는 우리가 더 잘 모르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자주 있다.

  • 시스템1은 신속/자동적인 직관적 판단에 따른 선택의 오류도 있지만, 옳은 일을 대부분 한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정기적으로 시스템1의 인도를 받으며, 이들은 일반적으로 적절하고 합리적이다.

  • 시스템1의 놀라운 업적 중 하나는 연상 기억 속에 유지되는 우리 세계의 풍부하면서도 자세한 모델이다. 이 모델은 눈 깜짝할 사이에 놀라운 사건과 평범한 사건을 구분해주고, 놀라운 일 대신 원래 기대했던 생각을 곧바로 갖게 해주며, 놀라운 사건들이 일어날 때 그들의 인과관계적 설명을 자동 탐색한다.

  • 기억은 우리가 평생 연습하는 동안에 얻었던 기술들의 광대한 레퍼토리를 유지해준다. 이 기술을 통해 여러 도전이 발생할 때 그에 적절한 해결책을 자동으로 생성해 준다. 이 기술들을 습득하려면 규칙적 환경, 적절한 연습기회, 사고와 행동의 적절성에 대한 신속하고 분명한 피드백이 필요하다. 이러한 여건들이 충족되면 궁극적으로 기술이 개발되며, 머릿속에 빠르게 들어오는 직관적 판단과 선택은 대부분 정확해진다. (이 일들은 모두 시스템1이 한다.)

  • 시스템1은 정보 처리에 도움이 되는 인지적 편안함을 만들어주지만 신뢰할 수 없는 정보일 때 경고 신호를 보내주지는 않는다. 직관적 대답은 기술이나 휴리스틱 중 무엇에서 유래했는지 상관없이 머릿속에 빠르고 믿을 만하게 떠오른다. 이럴때 시스템2가 속도를 낮추고 단독으로 대답을 만들려는 시도를 한다. 하지만 시스템2는 게으르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기를 주저한다. 이럴 경우 시스템1이 내놓은 많은 제안은 최소한의 확인만 거친 후 무조건 승인된다. 시스템1이 오류와 편향의 원인이라는 나쁜 평판을 듣는 이유가 바로 이때문이다. 무엇보다 WYSIATI, 강도 짝짓기, 연상적 정합성을 포함한 세스팀1의 기능정 특징은 닻 내리기, 비퇴행적 예상, 과신을 비롯한 수많은 다른 예상 가능한 편향과 인지적 착각을 야기한다.

  • 시스템1에서 기원하는 오류들을 막는 방법은 당신이 인지적 지뢰밭에 있다는 신호를 인식하고, 속도를 줄이고, 시스템2에게 더 많은 도움을 요구하는 것이다. 개인보다 조직이 더 오류를 잘 피할 수 있다. 조직은 개인보다 천천히 생각하고, 질서정연한 절차를 부과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조직은 더 정교한 훈련뿐 아니라 유용한 점검표들의 적용을 도입하고 집행할 수 있다. 적어도 조직은 독특한 언어를 제공함으로써 사람드이 지뢰밭에 접근할 때 상호 경계를 봐주는 문화를 장려할 수 있다.

  • 의사결정 생산의 경우 이에 대응하는 단계들은 해결되는 문제의 프레이밍, 결정으로 이어지는 적절한 정보의 수집, 그리고 심사숙고와 검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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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틀에 묶여서는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없다.

창의적 생각에는 다양성, 유연성, 융통성, 강한 호기심, 그리고 용기가 필요하다.

 

 

[본문발췌]

 

 

창조성은 무엇인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창조라 한다. 하지만 무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정의할 수 없는 문제로 남는다" - 이와타 요시하루

 

 

"우리 회사에서 창조적 혁신이란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는 것, 그리고 그 실패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 - 마이클 델

 

 

우수한 인재일수록 비판적 사고의 기능이 증대되어 있으므로 새로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약간의 논리적 결함이라도 발견될 경우 그것을 재빨리 파악하고 치밀한 논리와 어법을 동원하여 공격을 거듭한다. 그리고 자신의 공격을 마치 대단한 능력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이른바 네거티브 체크 능력이 뛰어나다. 언제나 모든 과목에 우수했던 모범생들은 창조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선생이나 교수가 정해놓은 기존의 가치 틀에 순종하는 사람일 경우가 많다.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 정진홍이 말하는 창의적 인간의 10가지 복합적인 성격

  1) 대단한 활력을 발휘하는 한편 조용히 휴식을 취한다.

  2) 명석하면서도 천진난만한 구석이 있다.

  3) 장난기와 극기 또는 책임감과 무책임이 혼합된 모순적인 성향을 가진다.

  4) 상상과 공상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현실에 뿌리박은 의식 사이를 오간다.

  5) 외향성과 내향성이라는 상반된 성향을 함께 가진다.

  6) 매우 겸손한 동시에 자존심이 강하다.

  7) 어느 정도 전형적인 성 역할에서 벗어나 있다.

  8) 반항적이고 개혁적인 동시에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성향을 가진다.

  9) 자신의 일에 매우 열정적인 동시에 극히 객관적이 될 수 있다.

  10) 개방적이며 감성적인 성향으로 인해 종종 즐거움뿐만 아니라 고통과 역경을 겪는다.

 

 

다카하시 마코토, "창조적 인격"의 특징을 '성격의 방향성'으로 설명

  1) 자주성이 강하다. 스스로 행하는 경향이 있다.

  2) 충동적이다. 심적 에너지의 강도가 강한 상태이며 업무에 대한 긴장도가 높다.

  3) 고집이 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정신적인 끈질김이 보인다.

  4) 호기심이 강하다. 새로운 경험에 대한 욕구와 성취에 대한 욕구가 강하게 나타난다. 야심과 공격성이 혼재하는 경향을 보인다.

  5) 개방적이다. 유연성과 융통성이 뛰어나다.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우수하다. 애매한 것에 대한 관용적 태도를 보인다. 관심 분야가 놃고 실패나 실수를 통해 배우는 특징이 있다.

  6) 내성적 경향이 강하다. 또한 주의 집중력이 강하다. 이러한 내성적인 성격은 개방성과 맞물리면서 직관적 사고를 가능케 한다.

  7) 자기 통제를 잘한다. 특유의 충동적인 성격과 자신만의 고집을 스스로 규제하면서 자신과 현실을 받아들이는 자제력이 있다.

  8) 순수한 마음, 혹은 무심하거나 청정한 마음을 가졌다.

 

 

"창조적 인재의 다섯가지 얼굴" - 안네트 모저 웰만

  1) 선지자의 얼굴 : 이미지를 보는 능력을 가진 사람

  2) 관찰자의 얼굴 : 세부적인 사항을 알아차리는 힘을 가진 사람

  3) 연금술사의 얼굴 : 영역을 넘나들며 연결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

  4) 바보의 얼굴 : 약점을 환영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

  5) 현인의 얼굴 : 단순함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

 

 

창조성이란 구체적으로 '사물의 본질을 간파해내는 능력이며, 사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신속하게 파악하는 능력'을 말한다. 창조성은 높은 IQ와 동의어가 아니다.

 

 

'다양한 문화가 교차하는 곳, 여러가지 생활방식과 지식이 융합되는 곳,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고를 수용할 수 있을 만한 여건을 조성해주는 곳'에서 창의성이 생산된다 - 칙센트미하이

 

 

조직의 창의성을 위해서는 "사람들을 뒤섞어라" - 로날드 카디시

 

 

직원들의 몰입 경험을 방해하는 요소

  1) 맡겨진 업무의 난이도가 동일한 수준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따분한 업무 환경

  2) 경영자 혹은 관리자들이 직원들에게 적극적인 피드백을 주지 않는 것

    (새롭고 조금은 어렵지만 도전해볼 만한 업무를 다시 맡기는 것, 칭찬과 격려의 말과 함께)

  3) '소외감의 증대' - 자신이 수행하고 업무의 목적/최종결과와 관계, 적절한 수준의 의사결정권 위임 필요

 

내부적 동기에 의해 창조성이 고양되는 몰입의 상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이 일을 내가 스스로 한다'는 느낌과 '내가 이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자부심이 필요. '느낌'과 '자부심'을 증대시키는 방법

  1) 평가의 문제 : 수행하고 있는 업무에 대해 공개적이고 예상된 평가는 창조성을 저해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 구태의연한 평가나 비교를 삼가라.

  2) 감시 혹은 관찰의 문제 : 업무를 수행하고 있을 때, 상위 직급의 사람이 감시하거나 관찰하고 있으면 창조성은 떨어진다. --> 내버려두라. 멀리서 관찰하라. 그리고 인내심을 가져라.

  3) 보상의 문제 : 계약서에 의존한 금전적 보상은 오히려 창조성을 저해한다. 대신 수행한 업무에 대한 갑작스런 보너스로 주어지는, 기대하지 않았던 보상은 창조성을 증대시킨다. --> 돈으로 창조성을 사지 말라. 창조적인 인재를 돈이나 승진으로 보상하는 것은 마라톤 선수에게 두꺼운 갑옷을 힙혀주면서 더 뛰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4) 경쟁의 문제 : 승리감과 보상 자체를 위한 경쟁 상태는 창조성을 훼손시킨다. --> 정상을 향한 경쟁만이 진정한 창조성을 위한 경쟁이다.

  5) 업무 수행을 위한 방법 선택의 제한 문제 : 맡겨진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한하면 창조성은 위축된다. -->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경부 고속도로를 타든, 중부 고속도로를 타든, 아니면 기차나 비행기를 이용하든, 그 이동경로의 선택은 자율에 맡기라.

  6) 외부적 동기 유발 : 외부적 동기 유발을 통해서만 창조성을 진작시키려 한다면 오히려 창조성을 감소시키게 된다. --> 그 유명한 아마빌레 교수도 논리를 반복하고 있다. 이 여섯 번째 조언은 앞에 있는 다섯가지 조언의 요약 반복일 뿐이다.

 

 

몰입을 유도하는 할리우드식 영화제작 : 프로젝트식 경영기법

1) 프로젝트 팀 구성시 유의해야 할 점 : 탁월한 팀원들로 태스크포스를 구성 (팀원 구성을 위한 질문)

    - 이성을 잃을 정도로 흥분한 적이 있는가?

    - 만약 그런 경험이 있다면, 어떤 식으로 행동했는가?

    - 다른 사람의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자기 언행을 조심하는 편인가?

    - 수행 불가능한 업무가 주어졌을 때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가?

    - 팀원과 갈등이 일어났을 때 어떤 식으로 처리했는가?

    - 유쾌한 농담을 잘 하는가?

    - 시간이나 예산 압박을 받을 때, 업무를 엉망으로 만들지 안았는가?

    - 다른 사람의 관점이나 주장에 관심을 가지는 편인가?

팀 구성이 되면 빨리 함께 일할 팀원과 서로 호흡을 맞출 수 있도록 열린 분위기 만들고, 추진할 과제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를 하는 것. --> 워크샵(합숙 형태가 좋음)

마지막 주말에 가족을 초대하여 식사 --> 본격적으로 프로젝트 진행하면서 발생하게 될 야근이나 밤샘 등의 극단적인 업무 환경에 대해 배우자들의 이해를 사전에 구하는 과정

 

2) 동기 부여를 통한 창조적 몰입의 유도

  - 프로젝트 전반에 대한 정확한 분석, 그리고 보스 개인의 탁월한 역량을 적절하게 보여줌으로써 창의적인 일에 참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심어주는것이 최적의 동기부여

각 일정과 추진 일자에 대한 정확한 업무 분량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각자 수행해야 할 업무지표)

효과적인 동기부여를 위한 칭찬과 격려 (부정적인 피드백을 삼가, 미흡한 업무 결과에 대해서도 존중하는 태도 유지)

 

3) 경청의 시기와 단호한 결정의 순간을 구별하는 리더십

  -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과정 --> 경청

  - 마케팅 방법과 같은 의사결정을 내려할 할때(결정의 순간)

 

4) 스트레스 조절과 스태프 간의 갈등 조정 능력

  - 진심에서 우러난 친절한 표현이나 격무에 시달려 지친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는 행동

  - 반복적인 잔무를 돌봐줄 사람 배치

 

 

충분한 시간 안배와 여유 있는 환경 조성이 창의성 진작에 더 좋다. 불가피하게 어떤 일을 빨리 처리해야 하거나 갑자기 데드라인을 앞당길 때는 마감시간에 몰린 직원에게 '몰입'할 수 있도록 한두 가지 업무를 집중적으로 할당하고, 독립된 공간을 제공하여 주변 사람 혹은 환경에 의해 방해받지 않도록 하며, 맡겨진 임무가 문제 해결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는 의식을 심어주어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창조성과 보상의 상관관계

  - 외적 동기 : 금전적 보상, 승진, 독립된 사무실 배정 등

  - 내부적 동기 : 일 자체에 흥미를 느끼는 것, 독립적으로 일을 처리하면서 느끼는 만족감,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 자신의 독자적인 가치를 드러내는 일

 

업무의 난이도와 직원의 사고패턴(혁신적/적응적)에 따라 보상의 상관관계가 다르다.

창조성을 저해하는 요소들 중 감정적인 요소(욕망, 무관심, 자신감 부족 등)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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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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