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예측’은 신, 자연의 영역이었다. 샤먼에 의해 신탁, 복점, 예언을 받거나 자연과 사회의 이치를 헤아려 해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해 보는 것이다.

 

빅 데이터의 시대, 초고속, 초고용량, 초저지연성과 초연결성을 앞세운 5G 시대에 “예측”은 과학기술의 영역이 되었고, 기술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超’ 시대가 도래했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 그리고 생각 너머 자연과 우주의 한계는 아직 그 끝을 모르고, 모호하고 명확하지 않은 목표에 대해서는 사람의 의사결정을 필요로 하고 때로는 신이나 자연의 섭리에 맡기기도 한다.

 

우리는 괴테가 파우스트의 입을 빌어 했던 말, “사람들이 흔히 똑똑하다고 불리는 것은 옹졸함이나 허영심인 경우가 많답니다. 겸손과 겸양은 자애롭게 베푸는 자연의 최고의 선물...”에 담긴 겸손함으로 세상의 이치를 탐구하고 해석하고 이해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다른 사람이 소유한 것을 가지려고 합니다. 누군가가 자기 앞에 서면 뭐가 되었든 그 사람보다 앞서고 싶어하지요. 그런 식으로 전진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살다가, 어느 날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 사이에도 저 꼭대기에 있는 사람은 늘 군림하며 내가 처한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는 현실을 깨닫고 좌절하게 됩니다.” - 다니엘 코엔, <기술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가>

 

“명확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로봇이나 컴퓨터가 우리 인간보다 훨씬 효과적일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승리할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일하는 이유는 단순히 특정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 자체로 최종 완제품입니다. 그래서 목표가 명확하지 않고 모호할 때는 인간이 필요합니다.” - 다니엘 코엔, <기술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가>

 

“미국의 엘리트들은 사회 불평등에 관심을 갖는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나, 정작 계급에 대한 이해는 낮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출발점이 다르다는 점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자신들이 전문직이나 관리직에 있는 이유는 본인이 똑똑하기 때문이라고 믿거든요. 하지만 사실은 다릅니다. 그들이 진정 계급 문제를 이해하려면, 본인이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3루에 서 있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신이 3루타를 쳐서 3루까지 달린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고, 따라서 날 때부터 타석에 서보지도 못한 사람에 비하면 홈베이스를 밟을 확률이 훨씬 높다는 사실을 말이죠.” - 조앤 윌리엄스, <무엇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가>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518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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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정상에 이르는 등산로 중 가장 많이 찾는 성판악 코스, 정상으로 가는 길 진달래 대피소 바로 전에 사라 오름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아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그곳, 사라 오름! 백록담 정상과 사라오름 둘 중 한 군데를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사라오름을 선택한다.

 

붉은색 바닥에 맑은 산정 호수, 흐린날은 운무에 살짝 가린 모습으로 신비감을 더한다.

 

산정 호수 옆길을 따라 작은 언덕을 넘어가면 탁트인 서귀포 방향 멀리 섬들과 바다, 한라산 정상을 조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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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둘레길, 세 번째 코스는 돌오름길!

 

서귀포 자연휴양림을 기준으로 동쪽 방향 동백길, 서쪽 방향 돌오름길로 나뉘고 한라산 둘레길 코스 중 가장 짧은 구간으로 1100도로를 오가는 버스를 이용할 수 있어 다른 둘레길 코스에 비해 대중교통 접근성도 조금 나은 편이다.

 

돌오름길의 제멋대로 뻗은 커다란 나무들과 그 나무를 휘감고 있는 덩쿨들, 마른 내천 바위에 이끼, 짧지만 하늘을 덮은 검은 숲길 등등 한라산의 원시성을 느낄 수 있어 걸었던 세 군데 둘레길 코스 중 가장 좋아하는 산책길이다.

 

중간에 돌오름 올라가는 길은 조릿대가 허리 높이로 덮고 있는 곳들이 많고 다듬어지지 않아서 헤멜 수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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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기술의 발전과 산업화로 과거 어느 시대보다 편리함과 풍요의 세계에 살고 정보통신 기술의 혜택으로 손가락 하나로 원하는 지식을 얻는다과거에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하고 얻어야 했다면, 현재는 많은 것들이 전문화, 분업화 되면서 서로서로 의존하는 관계를 맺고 있다그러면서 삶의 가치와 모습도 돈과 권력을 얻기 위한 삶의 모델을 닮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지는 않은지?

 

각자 스스로 삶의 가치와 방향, 삶의 모습을 정하고 주체적 다양성을 추구하는 삶을 위해서 생각이 필요하다.

많은 것들을 외부에 의존하더라도 생각마저 외부에 아웃소싱 해서는 안 된다. 저자는 생각하는 삶을 위해 생각의 은유, 원리, 문장, , 그리고 수사라는 생각의 도구가 무엇이고 어떻게 사용되어왔고,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아이를 기르는 부모들이 읽어보면 좋을 만한 책이다.

 

 

본문의 내용 중 와 닿는 글 귀들을 발췌해 옮겨 적는다.

 

모든 생물은 범주화해야 한다. 심지어 아메바도 자기와 마주치는 것들을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으로, 또는 다가가야 할 대상과 멀리 떨어져야 할 대상으로 범주화한다. 아메바는 범주화의 여부를 선택할 수 없으며 단지 범주화할 뿐이다. 이것이 동물계의 모든 층위에 적용된다. 동물들은 음식, 약탈자, 가능한 짝, 자신들에 소속된 동물 등을 범주화한다. 동물들이 범주화하는 방식은 자신들의 감각기관과 이동능력 및 대상 조작능력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범주화는 우리가 신체화되어 있는 방식의 한 결과다. 우리는 범주화하도록 진화되어왔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 - 조지 레이코프, 마크 존슨, <몸의 철학>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의 저자인 질 포코니에와 마크 터너 같은 인지과학자들에 의하면, 우리가 컴퓨터에게 지각적 범주화를 하게 하는 일(컴퓨터공학자들은 이 작업을 패턴인식이라고 한다)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1세 남짓한 아이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컴퓨터로는 하기 어렵다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컴퓨터는 범주화의 기준을 유사성similarity이 아니라 동일성sameness으로 삼기 때문이다.

 

창의성은 오늘날 이미 우리의 경제와 사회를 움직이는 거대한 능력으로 부각되고 있고, 앞으로 점점 더 막강한 권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교육에서 창의성이 중요시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서로 다른 사물이나 사건들의 유사성(동일성이 아니다!)을 재빨리 간파하는 능력이 창의성을 기르는 데 다른 무엇보다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 따라서 학습을 통해 은유라는 생각의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도록 하는 일은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누구에게나 매우 중요하다.

 

아이들이 만드는 은유는 때로는 천재적이고 또 때로는 부적절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정말이지 쉴 새 없이 개념들을 연결하고 섞어 은유를 만들어 말하거나 논다. ... 그러다 6세 이후부터 학교에 다니면서 점차 부적절하거나 불합리한 은유를 순화해가는데, 그러면서 은유의 사용도 함께 줄어든다. 왜 그럴까? 그 주된 이유는 나이가 들면서 은유능력이 점차 떨어진다는 데 있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유사성이 아니라 동일성을 기반으로 하는 교육에 의해 아이들이 점차 길들여지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지 않고 단지 검색엔진을 돌려 찾아낸 정보와 지식에 의존해 살지 않을까 우려한다. '그게 어때서?'라고 물을 수 있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정보와 지식은 어디서든 전송 받을 수 있지만, 진실과 지혜는 아무 데서도 전송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개별적이고 미시적이며 합목적적인 정보와 지식은 검색할 수 있지만, 보편적이고 거시적이며 합리적인 전망과 판단은 검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삶에 진정 필요한 것은 매 순간, 현장에서, 오직 자기 자신에 의해 드러나는 진실과 지혜이고, 우리 사회에 필히 요구되는 것은 보편적이고 거시적이며 합리적인 전망과 판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우리의 손에 든 뇌가 아니라, 오직 머리 안에 든 뇌에서만 생성되기 때문이다.

 

우리와 우리의 아이들은 이제, 학자, 전문가, 지도자들이 만들어서 도서관, 강의실, 영화관, 음악당에 쌓아놓은 정보와 지식들을 손에 든 뇌 안에 넣어가지고 다니면 된다. 그리고 머릿속에 든 뇌에는 그것들을 꺼내어 새로운 전망과 판단, 그리고 이에 합당한 지식을 만들어낼 생각의 도구들을 넣어가지고 다니면 된다. 본문에서 살펴본 은유, 원리, 문장, , 그리고 수사를 말이다. 이것들은 부드럽고 유연하고 포용적이고 설득적이다. 또 유능하고 창조적이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8063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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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텃밭은 하루 먹을 양식을 모두 내줍니다.

단호박, 고구마, 옥수수 찌고 풋사과, 토마토, 수박, 블루베리로 아침을...

호박잎쌈, 고추잎나물, 깻잎김치, 고구마순 김치, 토마토 피클에 저녁 식사까지...

하루 먹거리를 책임지는 여름 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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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피쉬세일에 수요특가로 샤브샤브용 갯장어와 민어회가 올라왔길래 바로 주문,
주문한 목포의 어가에서 배송날자 지정 가능하다고 해서 부모님들과 같이 먹기위해 금요일 배송으로 신청합니다.

날이 더워 살짝 걱정 했지만 대한민국 배송 시스템은 정말 위대합니다.

샤브샤브용 갯장어는 손질이 완벽히 되 있고 육수용 뼈까지 잘 챙겨 주셨고 민어는 껍질 포함 부위와 부레까지 넣어 주셨네요.

얼마전 대형 마트에서 사 먹은 민어와는 쫄깃함과 찰진 맛이 확실히 다릅니다.

갯장어 샤브 국물이 우러날동안 민어를 먼저 먹었더니 배가 차는 느낌에 갯장어 샤브샤브 맛은 제대로 느낄까? 순간의 고민.

이런, 나의 기우였습니다. 갯장어 뼈와 파, 마늘로만 우린 육수에 3~4초 살짝 담궈 간장 장에 찍어먹는 갯장어 샤브샤브. 입에 들어가자마자 스르르 녹아버리네요.
부추를 같이 곁들어 먹으면 더 맛있습다.

오늘 민어 vs 갯장어 샤브샤브는 갯장어 샤브샤브 승!

피쉬세일 등에서 산지배송으로 먹는 제철 해산물, 식당보다 절반이하 가격으로 집에서 즐길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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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둘레길, 동백길은 동백나무 군락지와 편백나무 숲, 중간에 시오름을 올라갔다 올 수 있는 코스로 무오법정사에서 시작해 돈내코 탐방로 방향으로 내려올 수 있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한다면 서귀포 자연휴양림에서 시작해 무오법정사~돈내코 탐방로로 내려와 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는데, 돈내코 탐방로에서 나오는 버스가 하루에 몇 대 없어서 시간을 잘 맞추어야 한다.

 

제주도 사람들이 이 길을 이용하는 방법 중에 일행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각 그룹이 차로 이동해 양쪽 끝머리에 주차를 해 놓고, 동백길 중간에 만나 차키를 서로 교환해 이동하는 분들도 계시다.

 

사려니 숲길이 대체로 평탄한 산책로라면 동백길은 숲속으로 난 돌길과 흙길이 중간중간 있고, 가끔 노루가 튀어나오기도 하는 산중 숲길이다. 바람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걷다보면 물이 고여 있는 내천을 만나고, 중간에 옆으로 나와 시오름에 올라 한라산을 조망해 보는 것도 좋다.

 

코스의 마지막 쯤에 편백 숲의 향기와 신선한 공기로 샤워를 하고 돈내코 탐방로 근처로 내려오면 탁 트인 전망의 서귀포 방향 섬과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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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거창한 게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 소박하게 먹고, 부지런히 움직이고 삶의 목적을 알고, 가족 이웃들과 교감하며 사는 것작고, 단순한 삶. 유연하고 여유 있게 삶 자체를 즐기는 것.

 

발리 우붓 시장을 지나다가 본 장식품에 적힌 “Karma”가 무엇인지에 대한 글을 실천하며 사는 것.

 

Karma!

Think good thoughts,

Say nice things,

Do good for others,

Everything comes back.

 

 

 

본문의 내용 중 와 닿는 글 귀들을 발췌해 옮겨 적는다.

 

감수성이 필요한 시대라고 여기저기 말한다. 그렇다. 나를 깨우고 사회를 사랑으로 연결하는 힘의 원천이 바로 감수성이다. 자연에 대한 아름다움과 사람에 대한 사랑, 고통, 선함, 사랑, 이 모든 것들에게 편견 없는 공감이 필요한 시대이다. 감수성을 회복하고 키우기 위해서는 우리의 감각을 가로막고 있는 것들에 대한 성찰과 확인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감각의 기를 살려 놓아야 한다. 감각의 회복은 일상에서 잘못된 습관을 바꾸는 일에서 시작한다. 사색의 시대는 가고 검색의 시대가 왔다고 걱정한다. 그만큼 우리의 눈은 많은 시간을 컴퓨터와 스마트폰 화면에 집중하고 있으며 손은 키보드를 두드리느라 바쁘다. 하늘, 구름, , , , 물소리, 바람소리, 흙을 멀리한 채 텔레비전과 인터넷, 스마트폰에 오감을 맡기고 있다. 이것들은 표정과 온기가 없다. 표정과 온기 없는 것들을 대하는 우리의 감각은 지극히 건조하다. 소통과 교감이 일어날 수 없다.

 

진정한 힐링은 나를 내 삶의 주체로 세우고 독창적으로 살아갈 때 가능하다. 이를 통해 자유와 행복은 성취된다.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암 진단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과 당신의 직관이 내는 소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진짜 하고 싶은 것을 이미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청춘들은 오로지 성공하고 출세하기 위해 '' ''만을 바라볼 뿐, 우정과 사랑과 진리를 나누기 위하여 '' ''를 보지 않는다. 학생들의 봉사활동도 사람에 봉사하는 삶의 실천이 아니다. 봉사조차도 입시와 취업을 위한 경력 쌓기의 수단이 되었다. 전제와 원칙, 방향과 과정이 바로 서지 못한 교육의 현실은 인간을 자본의 그물망에 희생시킨다. 또 자본의 대열에 끼어들기 위해 몸을 혹사시키고 감정을 빼앗아 버린다. 우리 시대 청춘들이 공부하고 일하는 목적이 오직 좋은 정규직을 얻기 위한 것이어야 하는가. 만약 평생 사람의 꿈을 직업의 이름에 묶어 두려 한다면, 그리고 명사로만 꿈을 묶어 버리는 자본의 음모에 대한 비판 없이 살게 되다면 상생하는 행복의 활로는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꿈은 끊임없이 꾸는 것이다. 꾼다고 하는 것은 동사이고 형용사이고 부사이다. 그러므로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우리의 공부와 일과 삶에 아름답고 굳세고 지혜로운 형용사와 부사를 달아 주자. 그래서 우리 삶에서 꿈이 형용사와 부사의 날개를 달고 인간의 성취에 다다를 수 있어야 한다.

 

생명은 살아 있는 유기체이다. 생명은 그 자체로 주체이다. 주체적인 생명은 남의 삶을 엿보거나 자기 삶을 헛되게 소비하지 않는다. 가치 있는 것, 의미 있는 것을 찾아 자기만의 느낌과 감동으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생명이다.

 

우리 모두는 행복을 꿈꾸고 있다.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아무것도 없으며,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이라는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행복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접하는 행복의 담론은 거의 모두가 성공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성공의 척도는 '부자가 되는 것'이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대학을 졸업해야 하고 고액 연봉을 주는 직장에 취업해야 한다. 할아버지의 재력과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아이의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명문 대학에 입학할 수 있고 그 바탕으로 '가문의 영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현실이다. 국가는 늘 경제대국을 외치며 경제 발전을 국정의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깃발 아래 무한경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매진하라고 독려하고 있다. 높은 지위, 많은 돈, 좋은 직장, 드높은 명예 등 이른바 성공의 조건이라는 것이 과연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고 있을까. 답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이다. 왜 그런가. 행복하다는 것은, '지금' '여기서'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진실로 행복하다면 이런 것들이 결코 불행의 재료가 될 수 없으며, 거부의 대상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또 이렇게 생각해 보자. 이런 것들이 충족되어 있어도 내가 진실로 행복하지 않다면, 이런 것들은 결코 나를 행복하게 하는 절대적 조건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인도 뱅갈의 성자 라마크리슈나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집과 돈과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당신이 이미 행복하다면 그것들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렇듯 행복은 객관적 환경과 조건에 의해 규정되는 '절대적 실체'가 아니다. 따라서 행복은 지금, 여기서, 내가, 마음으로, 의미로 구성하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달리 말해서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면 나는 행복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상을 꿈꾸어야 하고 그 이상을 실현해야 한다. 그 이상은 개인과 사회가 삶의 방향을 바꾸는 데서 시작된다. 행복의 내용을 바꾸어야 한다. 과욕에서 소욕지족으로, 경쟁과 상극에서 협동과 상생으로, 획일과 차별에서 평등과 개성으로, 목표와 욕망에서 의미와 나눔으로, 그리하여 동상이몽이 아닌 동몽이상의 화엄세계를 꿈꾸고 실현해야 한다. 이처럼 모두가 긴장과 강박에 시달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삶의 방향 전환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현실'이다.

 

모든 것은 그것 하나로 서 있지 않다. 나무가 산에 의지하여 있고, 산은 나무에 의지하여 있다. 산과 나무는 바람과 햇볕, 물과 미생물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오로지 그것 하나만 살고자 하면 하나도 온전하게 살 수 없다. 내 곁의 것들이 건강하게 살아야 내가 살 수 있다. 자연의 생태계가 그러하듯이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생태계 또한 그러하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회 생태계의 그물망이 서로 건강해야 인간 개개인의 마음이 청정하고 평화로울 수 있다.

 

행복하다는 것은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송이 꽃과 바람소리, 물소리에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 이웃의 슬픔과 고통에 절로 가슴 아파하는 사람, 소박한 음식 앞에서 맛을 느끼는 사람이 바로 행복한 사람이다..... 산과 빌딩, 자동차와 새 소리, 사람 소리와 물소리, 산바람과 매연, 한적함과 번잡함에 대해 차별하지 않고 오히려 연민과 사랑을 갖겠노라 다짐한다.... 무엇이 있어도 있는 경우가 있고, 무엇이 있어도 없는 경우가 있다. 마음을 열고 눈을 열고 귀를 열면 바로 그 앞에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눈앞에 있어도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길을 선택하여 살아가는 까닭은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무의미하고 불행하기 위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것들을 온전히 '느끼며' 사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크고 비싼 집과 재물을 갖고 있고, 권력과 명예를 갖고 살아간다 해도 가치 있고 의미 있는 느낌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아니다. 행복하다는 것은 느낄 수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한 송이 꽃과 바람소리, 물소리에 아름다움에 느낄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이웃의 슬픔과 고통에 절로 내 가슴에 아픔이 느껴지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소박한 음식 앞에서 맛을 느끼는 사람이 먹을 줄 아는 사람이다. 서로 만나 웃고 이야기 하며 사랑과 우정의 느낌을 함께하는 사람, 그러한 사람이 바로 행복한 사람이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8831104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법인 스님이 들려주는 사(思)생활!우리는 온갖 미디어를 통해 엄청나게 많은 생각들을 마주하고, 그들은 무의식중에 우리의 가치관과 방향, 태도들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지금 내 머릿속에 가득한 생각은 내 삶의 방향을 올바르게 가리키고 있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진정한 행복과 성숙의 삶으로 이끄는 ‘진짜 생각’의 길을 잃어버린 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다독가, 따뜻한 직설가, 공부하는 스님으로 통하는 법인 스님은 이 책 『검색의 시대, 사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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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익숙한 제주 올레길, 최근에는 한라산 둘레길을 찾는 사람들도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다.

한라산 둘레길은 해발 600~800미터의 국유림 일대를 둘러싸고 있는 일제강점기 병참로와 임도, 표고버섯 재배지 운동로 등을 활용하여 연결한 숲길로 사려니 숲길, 동백길, 돌오름길, 수악길, 천아숲길 등의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사려니 숲길은 절물오름 남쪽 비자림로에서 물찻오름을 지나 사려니오름까지 이어지는 15km의 숲길이다. 오래전부터 5.16도로에서 교래리로 넘어가는 비자림로 들머리에 절물휴양림 뒷길과 마주보는 사려니 숲길 들머리는 비자림로 도로 양 옆으로 쭉 뻗은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찾던 곳이다.

 

동백길이나 돌오름길에 비해 평탄하고 공원길을 걷는 느낌으로 나이든 어르신부터 아이까지 가족 모두가 함께 산책겸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지 않아 여행 동선과 숲길 들머리 중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하고 출발지로 되돌아오는 코스를 선택하거나 시외버스터미널이나 시청 앞에서 교래리행 버스를 타고 사려니숲길 입구에 내리거나 5.16도로 교래삼거리에 내려서 찾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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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는 360여개 오름이 있다고 하는데, 갯수도 많지만 각각의 오름의 특징이 각양각색이다.

오름에 대해 잘 아는 친구에게 추천을 받은 곳은 몇 군데 중 이번에는 앞오름과 용눈이 오름을 갑니다.

 

용눈이 오름은 2~3번 가 본 곳이지만 앞오름은 처음 갔는데, 오름 분화구 안에 나무들 모양이 특이하고, 주변의 경치도 빼어난 곳입니다.

용눈이 오름도 날씨 좋은 날은 한라산 방향으로 솟아 있는 백악이/동검은이/좌보/높은 오름들, 바로 옆에 마주복 있는 다랑쉬 오름, 바다쪽으로 멀리 성산일출봉 등을 볼 수 있는 전망이 좋은 오름이다.

 

오름은 대부분 높이도 낮지만, 오르는 길도 완만하고 올라가면 바람이 넘실넘실 불어 약간의 땀도 식히며 주변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앞오름, https://goo.gl/maps/eLkSrQoLRxcubkoDA

용눈이오름, https://goo.gl/maps/KaVreZtDE8od86DZ6

제주의 화산 오름,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627585&cid=51955&categoryId=55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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