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동서남북의 바다는 각기 다른 느낌과 모양을 가지고 있고, 장소에 어울리는 시간들이 있다.
제주시에서 성산방향 동일주도로 따라 파란 하늘 가운데 하얀 구름, 하늘과 연결된 바다, 파도 그리고 백사장 옆으로 난 길을 걷거나 드라이브할 수 있는 구좌/김녕의 하도-세화-평대-월정리 해안도로를 만난다. 여기 저기 카페도 많이 들어서고 점심/저녁 정해진 시간 음식과 와인, 음료를 파는 조그만 비스트로나 트렌디한 인테리어를 더한 분식집과 디저트 가게들과 사람들로 넘쳐나는 곳! 10여년 전 월정리 바닷가 아일랜드 조르바의 커피 한잔과 즐기던 여유가 그리워지는 해변 산책길, 아침 새벽이나 오전 날씨 좋은 날 이곳은 남국의 휴양지 부럽지 않은 하늘과 바다 색감을 보여준다.
반대편 서일주도로 해변 중에는 애월의 한담해안로와 곽지과물해변으로 오후 산책과 노을지는 바다, 일몰을 감상하기 좋다.
우리의 기억은 생물학적 뇌만 활용하던 세상에서 인터넷 접속을 통해 클라우드 저장공간(Cloud Brain)에 기억을 저장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지식까지 활용할 수 있다. 한 발작 더 나아가 인공지능 뇌(Artificial Brain)을 활용해 방대한 기억과 지식을 처리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키울수도 있다.
우리 삶 속에는 이분법적인 기계적 판단뿐 아니라 애매모호한 회색지대에 대한 판단 또는 보류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분법적 판단과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도 도덕적, 정치적, 사회적 문제의 경우 시간을 가지고 좀 더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점점 생각을 멀리한다. 쉽게 검색한 지식과 경험에 의존해 빠른 판단을 선호한다. 스스로의 생각과 해석이 가미된 의견이 아니라 복사와 붙여넣기가 난무하고 앵무새처럼 같은 말,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미디어는 말할 것도 없다.
생각하고 말하며, 생각하며 행동하자!
[이하 본문 발췌]
기억을 디지털 기술에 아웃소싱하면서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진단과 통찰'
책 속의 단어들은 추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만 강화시킨 것이 아니라 책 밖에 있는 물리적 세상에 대한 경험을 풍부하게 했다. 화가나 작곡가와 마찬가지로 작가들은 외부 자극을 차단하기보다는 오히려 풍부하게 해주는 방식으로, 인간의 다양한 경험에 대한 공감을 축소하기보다는 확장시키는 방식으로 의식을 변화시킨다.
웹 페이지를 훑어보는 데 시간을 보내느라 책 읽을 시간이 사라졌듯이, 작은 글자로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시간 때문에 문장과 절을 지어내는 데 투자하는 시간이 사라졌듯이, 링크들 사이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느라 보내는 시간이 조용한 명상과 사색의 시간을 몰아냈듯이 오래된 지적 기능과 활동에 사용되던 회로들은 약해지고 해체되기 시작했다. 뇌는 사용하지 않는 뉴런과 시냅스를 더욱 긴급한 업무 수행을 위해 재활용한다. 우리는 새로운 기술과 시각을 얻지만 오래된 것은 잃어버린다.
온라인상에서 끊임없이 주의력을 분산시키는 것은 우리 뇌를 멀티태스킹에 맞도록 더욱 민첩하게 만들지만 멀티태스킹을 가능케하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깊이,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사실상 저해하고 있다. 멀티태스킹을 더 많이 할수록 덜 신중해지고, 문제에 대해 덜 생각하고, 덜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독창적인 사고로 도전하기보다는 관습적인 생각과 해결책에 의존할 가능성이 더 크다.
"모든 곳에 있는 것은 아무 곳에도 없는 것이다" - 세네카
인터넷은 우리를 시공간적 능력(지능)에 대한 광범위하고 섬세한 발달로 이어졌다. 하지만, 의식적 지식습득, 귀납적 분석, 비판적 사고, 상상, 심사숙고를 뒷받침하는 진중한 처리 과정에 대한 능력은 약화시킨다. 훑어보고, 건너뛰고, 멀티태스킹을 하는 데 사용되는 신경 회로는 확장되고 강해지는 반면 깊고 지속적인 집중력을 가지고 읽고 사고하는 데 사용되는 부분은 약화되거나 또는 사라지고 있다.
균형잡힌 사고의 발달은 광범위한 정보를 찾고 재빨리 분석하는 능력과 함께 폭넓은 성찰의 능력도 요구한다.
기계에 기억을 아웃소싱할 때 우리는 지성이나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 역시 아웃소싱하는 것이다.
기억을 아웃소싱하면 문화는 시들어간다.
언제 먹고, 일하고, 자고, 일어날지를 정하는데 있어 우리는 우리의 감각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시계에 복종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더 과학적이 되었지만 더 기계적이 되기도 했다.
소프트웨어는 결국 가장 사적이고 개인적인 인간의 행동을 각각의 단계가 웹 페이지의 논리에 따라 암호화 되어 있는 생각없는 의식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우리의 지식과 직관에 따라 행동하기보다 기계의 작동 신호를 따라 움직일 뿐이다. - 토머스 로드
조용한 시골에서 자연과 가까이 하며 일정 시간을 보낸 후 사람들은 더 높은 집중력과 강력한 기억력, 그리고 보편적으로 향상된 인식을 보인다. 외부적인 자극의 폭격을 받고 있지 않을 때 뇌가 실제로 휴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사색은 그들의 사고를 통제하는 능력을 강화시킨다. 자연과의 단순하고 짧은 교류만으로도 인지 통제에 대한 눈에 띄는 진저을 가져올 수 있다.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효과적인 인지 기능에 있어 필수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뇌가 신체의 직접적인 연관을 뛰어넘어 심리학적 도덕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느끼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 더욱 산만해질수록 인간의 가장 섬세하고 고유한 특성인 공감, 열정 등과 같은 감정의 경험은 더욱 줄어든다. 특정 사고에 있어서, 특히 다른 사람들의 사회적, 심리적 상황에 대한 도덕적인 결정에 있어 우리는 적절한 시간과 심사숙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이 너무 빨리 일어난다면 타인의 심리적인 감정을 완전하게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 인터넷이 우리의 살아 있는 통로의 경로를 바꾸고 사색 능력을 감소시키고, 우리의 생각뿐 아니라 감정의 깊이도 바꿔놓는다.
소프트웨어는 규칙을 따를 뿐이다. 소프트웨어는 판단하지 않는다. 주관성 대신 공식을 제공한다. 따라서, 소프트웨어를 통해 관습을 깨는, 창의적 사고를 판단할 수 없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높게 흘러가고 저녁 노을 색깔도 더 붉고 화려해지는 것이 계절이 바뀌는 것을 재촉하네요.
여름 내 붉게 익던 고추는 끝물이 되니 병이 와 사라지고 사람 키만한 깻대가 무성한 밭, 얼마전 심어놓은 겨울 김장 배추에 정성스레 물 주고, 오후 느즈막히 강아지 산책길에는 주황색 능소화가 반겨줍니다. 알맞은 크기로 자란 박을 털어 바가지로 말리다 보니, 텃밭에 하얗게 핀 부추꽃을 차지하기 위해 호랑나비와 잠자리가 다투고 있고, 청개구리는 주방을 넘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선선한 오후, 옥상에 올라가 맥주 한잔하며 서쪽하늘 붉게 물든 노을을 보내고 내려와 저녁에는 태임씨가 담근 막걸리에 3종 안주세트로 하루를 마무리 합니다.
우리가 태어난 시점에는 사람 자체만으로 큰 차이는 없지만 살아가는 과정과 마무리는 천차만별이다.
젊은날 우리는 사랑과 무언가에 대한 열정에 목을 맨다. 시간이 지나면서 누군가는 탐욕이 그 자리를 채우고 회한과 함께 마무리한다. 다른 누군가는 순간순간을 만족하고 의도하지 않지만 자신과 다른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며 살아간다. 또 누군가는 아무것도 아닌 그냥 존재했다가 사라진다.
당신의 현재는 어떤가요? 그리고 어떤 마무리를 원하나요?
만일 누군가 나에게 이 소설을 단 한 줄로 요약해달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표적을 빗나간 화살들이 끝내 명중한 자리들" 이라고. 개츠비에게는 데이지라는 목표가 있었고, 데이지에게는 낭만적 사랑이라는 지향이 있었다. 지친 윌슨은 엉뚱한 사람에게 복수를 하고, 몸이 뜨거운 아내는 달려오는 자동차를 잘못 보고 제 몸을 던진다. 작가인 피츠제럴드마저도 당대의 성공과 즉각적인 열광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 표적들을 향해 쏘아올린 화살들은 모두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꽂혔다. 난데없는 곳으로 날아가 비로소 제대로 꽂히는 것, 그것이 바로 문학이다...... (역자 해설 중, 김영하)
서른 살, 외로운 십 년을 예고하는 나이. 알고 지내는 독신남이 줄어들고 열정을 담은 서류가방이 얇아지고 머리숱도 줄어드는..... (닉 캐러웨이가 서른살 생일에 넋두리..)
냄새 때문에 양념맛이 강하고 야채를 같이 볶는 돼지곱창이나 한 동안 인기를 끌던 막창도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곱창하면 고소한 소곱창이다.
동네마다 맛집이라고 추천하는 곱창집이 하나씩은 있는 것 같은데, 강북/도봉구에 자주가는 곱창집 4군데가 오늘의 메뉴!
거북곱창이나 서래양곱창처럼 유명한 곱창집 이름은 **곱창이다. 오늘 이야기하는 강북, 도봉의 유명한 곱창집들은 대부분 **집을 이름으로 한다.
먼저 진주집과 황주집은 수유역에서 수유우체국 방향으로 가까이 두 집이 같이 있다. 예전에는 진주집 갔다가 자리 없으면 황주집으로 가곤 했는데, 요즘은 반대가 된 듯하다. 아마 황주집이 주중에 주던 간천엽 서비스 때문에 입소문이 더 나서 그런건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내 입맛에 두 집은 거의 차이가 없다.
(진주집이 한동안 문을 닫았었는데, 최근 가보니 아예 가게를 철거하고 공사를 하고 있다. 아예 문을 닫은 것인지? 이제 진주집/황주집을 고를 수 없고 그냥 황주집이라는 선택지만 남았다)
인테리어도 입구에는 오래전 목욕탕 타일처럼 타일로 고정된 테이블이 있고, 가능한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좌식 방 테이블이 있는 것도 비슷하다.
2인분 한판 기준으로 가격이 책정되어 있고 가성비도 좋은 편이다. 곱창과 양, 염통 등이 섞인 혼합과 곱창 또는 양을 위주로 한 메뉴를 선택할 수 있고 곱창을 먹고 볶아먹는 밥에도 소주 한병 거뜬히 할 수 있는 곳이다.
삼오집은 도봉역 큰길건너 골목 입구에 있는데, 도봉산 등산이나 둘레길 산책 갔다가 들르는 곳이다. 이곳의 장점은 곱창구이 뿐 아니라 괜찮은 곱창전골 맛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곱창전골 포장도 가능하다.
방학 황소곱창은 집에서 가장 가까워 가끔 가는 곳으로 방학 홈플러스 맞은편 골목에 있다. 이곳도 곱창 구이, 전골이 둘다 가능하고 얼마전까지는 염통을 별도로 한접시 주문 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가격이 너무 올라 재료준비를 못하신다고 한다. 이곳의 단점은 어르신 두 분이 장사하시다 보니 빈 테이블이 있어도 어르신들 힘드시면 다음에 오라고 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PS. 강북에 가볼만한 다른 곱창집....
삼각지 차돌, 사태구이, 곱창의 3총사 평양집 그리고 그 옆 봉산집
예전 합정역에 있다가 망원동으로 이전한 합정동 황소곱창구이전문
서울역 근처 직장인들의 아지트 YTN 옆 골목의 마포곱창, 그리고 곱창전골이 맛있는 서소문 한성식당
앞선 사람들의 지혜가 담긴 한 문장이 위로가 되기도 하고, 애매모호하고 흐릿한 내일의 등대가 되기도 합니다.
[본문 발췌]
좋아하는 일을 하라 (존 D. 록펠러 3세)
행복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 원칙 위에 놓여 있다. 내가 좋아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은 다음, 거기에 온 힘을 다하는 것이다. 내가 가진 에너지, 야망, 그리고 타고는 재주 등을 하나도 남김없이.
The road to happiness lies in tow simple principles: Find what interest you and that you can do well, and put your whole soul into it-every bit of energy and ambition and natural ability that you have.
돈은 만족하지 않는다 (벤자민 플랭클린)
부자란 어떤 사람인가? 만족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누군가? 아무도 없다.
Who is rich? He that is content. Who is that? Nobody.
지금 하고 있는 일 (화자 미상)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다.
The most important thing in our lives is what we are doing now.
어제의 짐은 내려놓자 (존 뉴턴)
그날 하루 분량의 짐만 져야 한다면 관리하기가 무척 수월하다. 하지만 어제의 짐을 오늘까지 지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일 몫의 짐까지 그 위에 얹는다면 그 짐은 너무나 무거워질 것이다.
자신을 믿어라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자기 자신을 믿는 순간, 어떻게 살지 알게 될 것이다.
As soon as you trust yourself, you will know how to live.
물질과 마음의 빈곤은 삶의 여유를 가질 수 없게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도 장애물이 된다. 그러한 어려움 속에도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가슴 뛰게 하는 일을 찾아 그 일을 실행하는 그 순간이 즐거움이고 행복이다.
[본문 발췌]
당신이 이 생에 태어난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슴 뛰는 삶을 살기 위한 것입니다. 당신은 그 일을 발견해야만 하고, 또 그것만이 당신에게 참다운 존재 이유를 깨닫게 해줍니다. 그것이 가장 큰 행복이며 진리의 길입니다. 가슴 뛰는 일을 하라는 것이 당신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그때 비로소 당신은 자신이 갖고 있는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먼저 당신이 할 일은 이것입니다. 자신에게 물어 보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면 나는 가슴이 뛰는가. 무엇을 하면 나는 가장 행복한가. 그 일을 당신은 찾아나서야만 합니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할 때 가슴이 뛴다면 이미 그 일을 할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또 어떤 것을 가슴 두근거리며 상상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을 가질 만한 충분한 가치가 당신에게는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일을 할 때 가슴이 뛴다면 그것은 다음의 세 가지를 당신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하나는 그것이 당신을 위한 길이라는 것이고, 두번째는 당신이 그 일을 하면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이고, 세번째는 그 일을 하면 당신의 삶이 매우 풍요로워진다는 것입니다.
풍요로움의 정의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필요가 있을 때 하는 것'
확실한 기회가 왔는데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니까 자신은 늘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분명하게 보일때는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십시오.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그것이 옳은 길인가 아닌가를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행동으로 빨리 옮길수록 더 빨리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결과를 확실히 알게 될 때까지 기다리려면 아주 오래 기다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삶을 기다림만으로 채우지 마십시오. 선택함으로써 어느 것이 자신의 길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너무 앞만 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너무 앞만 보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코끝에 매달려 있는 것을 전혀 보려고 하지 않는다.' - 헨리 밀러, 북회귀선
자연은 생존과 번영을 위해 평균을 중심으로 모이고 편향의 극단에서 변혁과 진화가 일어난다. 평균과 편향의 원리가 작동하며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사회도 다양성과 다면성 유지를 위한 편향과 균형의 중도가 공존해야 건강해 진다지만, 작금의 상황은 경제, 정치, 사회 모든 분야에서 극단의 편향성을 넘어 거짓과 왜곡 투성이 미디어가 판을 치고 대중은 거기에 부화뇌동하지 않는지 우려된다.
오로지 깨어있는 시민의 판단과 시간에 맡길뿐!
편향 (偏向), 한쪽으로 치우침.
(네이버 영어사전) [명사] bias, [동사] be biased, be prejudiced, be lopsided
편향된 시각으로 바라보다, look at sth from a biased point of view
그들은 편향된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다, They have biased historical awareness.
그 신문의 보도는 편향된 측면이 있다, The newspaper's report is biased in some aspects.
(wikipedia) Bias is disproportionate weight in favor of or against an idea or thing, usually in a way that is closed-minded, prejudicial, or unfair. Biases can be innate or learned. People may develop biases for or against an individual, a group, or a belief.[1] In science and engineering, a bias is a systematic error. Statistical biasresults from an unfair sampling of a population, or from an estimation process that does not give accurate results on average.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선택 편향의 한 종류.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 쉬운 한마디로 말하면 답정너. 사람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현상유지 편향(status quo bias), 현상유지를 선호하는 의사결정에서 나타나는 지각적 편향이다. 사람들은 현재의 성립된 행동을 특별한 이득이 주어지지 않는 이상 바꾸지 않으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유사한 다른 개념들로 부작위 편향(omission bias), 손실 회피 편향(loss aversion bias)이 있다. 부작위 편향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 는 태도로 복지부동하며 최소한의 행동만 하려는 편향을 말하며, 손실 회피 편향은 같은 양이라도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쓰디쓰게 느껴지게 되는 편향을 말한다.
선택편향(Selection bias), 표본을 사전 또는 사후 선택함에 따라 통계 분석을 왜곡하는 오류다. 일반적으로 이것은 통계적 유의성의 척도를 실제보다 더 크게 나타나도록 만든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허구적인 결과를 낼 수도 있다. 선택 편향은 자료를 직접 조작하는 과학적 사기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무의식적인 조작이나 관찰 도구의 편향에 따른 것이다. 예컨대 천문학적 관찰에서 파란 은하가 빨간 은하보다 더 잘 발견되는데, 대부분의 관찰 도구가 파란색에 더 민감하기 때문이다.
후원편향(funding bias), 어떤 연구가 그 연구에 비용을 대 주는 후원자 집단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결과가 나오는 경향. 갈수록 많아진다. 기업 친화적인 언론기사, 일본의 지원을 받은 역사왜곡 학술 논문과 서적 등등
[글과 책 속에 쓰인 '편향'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
알랭 드 보통, <뉴스의 시대>
사실의 정반대에 있는 것은 편향이다. 진지한 저널리즘의 영역에서 편향은 무척 악명이 높다. 그것은 악의적인 의제, 거짓말, 대중의 자유로운 의사 결정권을 부정하는 권위주의적 시도와 동의어다.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편향에 대해 좀더 관대해져야 할지도 모른다. 순수한 의미에서 편향은 사건을 평가하는 방법을 뜻할 뿐이다. 그리고 이는 인간의 기능과 활동에 관한 일관되면서도 근본적인 논지에 의해 인도된다. 편향은 현실 위를 미끄러져들어감으로써 더 명확하게 사건을 들여다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한 쌍의 렌즈다. 편향은 사건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려 분투하고 개념이나 사건을 판단할 수 있는 가치의 척도를 제시한다. 편향을 벗어나려는 행동은 그 자체로 지나친 시도로 보인다. 오히려 우리의 임무는 편향된 시각이 생산한 더 믿을 만하고 유익한 뉴스에 올라타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언론이 칭찬받을 만한 지점은, 사실을 모으는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그 사실들의 타당성을 알아내는 (지적 편향을 통해 갈고닦은) 기술이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안티 프래질>
어떤 사람은 체계가 잡힌 곳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욱 지적일 수 있다. 실제로 학교는 체계가 잡히지 않은 곳에서의 능력을 무시하면서 체계가 잡힌 곳에서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을 선호하는 선택 편향을 갖는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행운에 속지마라)
결과가 비대칭인 경우 평균값과 중앙값은 전혀 관계가 없다. 현실은 비대칭적인 경우가 많다. 이것이 편향이다. ... 희귀사건이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저평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유는 심리적 편향 때문이다.
"편향에 대한 베팅", 비대칭적 베팅을 통해 희귀 사건으로 부터 이익을 추구하는 것
캐시 오닐, <대량살상 수학무기>
빅데이터 경제의 원동력인 수학 모형 프로그램들은 실수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선택에 기반을 둔다. 분명 이런 선택 중 일부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모형은 인간의 편견, 오해, 편향성을 코드화했다. 그리고 이 코드들은 점점 더 우리 삶을 깊이 지배하는 시스템에 그대로 주입됐다. 수학 모형은 여러 가지 면에서 신을 닮았다. 신처럼 불투명해서 이해하기 힘드다. 각 영역의 최고 사제들, 즉 수학자와 컴퓨터 과학자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내부의 작동 방식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신의 평결처럼, 잘못되거나 유해한 결정을 내릴지라도 반박하거나 수정해달라고 요구할 수 없다.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차별하고 부자는 더욱더 부자로 만들어주는 경향이 있다.
인종차별 모형은 무계획적인 데이터 수집과 허위상관spurious correlation에 의해 작동하고, 제도적 불공평institutional inequity에 의해 강화되며,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에 의해 오염된다.
니콜라스 카, <유리감옥>
사람들이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서 문제를 해결할 때면 가끔 안심complacency과 편향bias이라는 두 가지 인지적 질환에 걸리곤 한다. 안심은 잠재적인 위험이나 결함을 모르고 지나치게 자동화된 시스템에 의존하는 경향을 말하고, 편향은 자동화를 맹신하는 경향을 뜻한다. 이 두 질환은 우리가 화이트헤드처럼 고민해보지 않고 중요한 일들을 처리할 때 걸릴 수 있는 덫이다. 컴퓨터가 그릇된 안정감을 줄 때 우리는 안심한다. 우리는 기계가 앞으로 생길지도 모를 어떠한 도전도 해결해주리라고 확신하고 일에 관심을 쏟지 않게 된다. 우리는 맡은 일 전부 아니면 소프트웨어가 처리해주는 일의 일부에 무관심해진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뭔가가 잘못됐다는 신호들을 놓칠 수 있다. 우리는 대부분 컴퓨터 앞에 앉아서 그렇게 안심했다. 이메일이나 문서 편집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때 맞춤법 검사 프로그램이 켜져 있으면 써놓은 글을 꼼꼼하게 교정 보지 않는다.
자동화에 대한 안심과 편향 모두 우리의 제한적 집중력 때문에 생기는 것 같다. 안심하려는 경향은 우리가 우리 주변과 꾸준히 상호작용하지 않아도 될 때 집중력과 자각력이 얼마나 쉽게 떨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편향적으로 정보를 평가하고 무게를 재려는 성향은, 우리가 선별적으로 집중하고, 잘못된 믿음이나 심지어 유용할 것 같은 프롬프트의 등장만으로도 쉽게 왜곡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안심과 편향은 자동화된 시스템의 질과 신뢰성이 높아질수록 더욱 심각해진다. 여러 실험 결과 들을 보면, 우리는 빈번하게 오류를 일으키는 시스템에 대해 경계심을 갖는다. 우리는 주변 환경을 계속 의식하고, 다양한 출처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를 예의주시한다. 하지만 시스템이 어쩌다가 한번 고장이 나거나 오류를 일으키는 정도로 높은 신뢰성을 보일 때 우리는 게을러진다. 그럴 경우 우리는 시스템이 결코 틀리지 않는다고 가정하기 시작한다.
자동화로 인한 안심과 편향에 쉽게 빠져드는 현상은 자동화만 믿던 우리가 어떻게 해서 과실과 태만이라는 그릇된 행동을 저지를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우리는 부정확하거나 불완전한 정보를 수용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또는 예의주시했어야 하는 것들을 놓쳐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컴퓨터에 대한 의존이 자각력과 주의력을 약화시킨다는 사실은 또 다른 문제로도 이어진다. 자동화는 우리를 행위자에서 관찰자로 전락시키는 경향이 있다. 조종사가 조종간을 조작하지 않고 스크린만을 응시하게 되는 식이다. 그런 변화로 우리는 전보다 더 편하게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전문지식을 배우고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은 손상될 수도 있다. 우리의 일 처리 능력을 높여주는지 낮추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자동화는 장기적으로 우리가 기존에 갖고 있던 기술력을 약화시키거나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지 못하게 방해할지 모른다.
네이트 실버, <신호와 소음>
기상 예측 민간 기업들은 대부분 편향을 가지고 있다. 의도적으로 설정된 편향이다. 특히 그들은 실제보다 눈이나 비가 더 많이 내릴 거라 예측하는 경향을 보인다. 기상 전문가들은 이를 '축축한 편향wet bias'이라 부른다. 이 편향은 정부기관이 발표한 원자료에서 더 멀리 벗어날수록, 그리고 소비자에게 더 밀착하는 예측을 할수록, 점점 심해진다. 예측은 이처럼 정확성을 축소함으로써 '가치 창출'을 늘린다.
정재승, <열두 발자국>
우리 모두에게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저 사람이 저걸 믿는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지 않을까?'라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나와 다른 의견과 미적 취향에 너그러워야 합니다. 다양성을 존중해야 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한 확신을 재고하고 늘 회의하고 의심해보는 사람, 그래서 결국 자기객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들을 끊임없이 포용하고 들어보려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많아져야 합니다. 여러분의 소셜미디어 친구에는 나와 다른 생각의 사람도 포함돼 있어야 합니다. 나의 트위터 팔로잉을 들여다봤을 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단번에 알 수 있다는 건, 나는 듣고 싶은 얘기만 듣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여러분의 트위터 타임라인은 여러분이 디자인한 세상, 조작한 세상이거든요. 여러분이 조작한 그 세상이 편향된 세상이 되지 않도록, 반대 의견까지도 듣는 태도를 만들어갑시다.
유리 브람, <통계적으로 생각하기>
선택 편향은 어디에나 있고, 우리가 비무작위 표본을 무작위 표본처럼 대할 때 발생하게 됩니다. 어떤 데이터의 경우에는 당신의 표본에 들어 있는 특정 데이터가 다른 데이터값에 의존하여 그 스스로를 편향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로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의 재선에 대한 유선 여론조사가 실제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예측하게 되었고, 미국 통계청의 인구조사가 방해받기도 합니다. 선택 편향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역시 상사들이 부하 직원들로부터 올바른 피드백을 받는 것을 방해하기도 하고, 우리가 매우 인상적인 사람들이라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잘 기억한다고 생각하게 만들기도 하죠. 또한 모든 자유 공연 참가자들은 자신이 가장 좋은 연주를 했다고 착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좋은 통계적 추론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했다면, 21세기 현재에는 너무도 많은 정보로 인해 어떻게 정보를 정리해야 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고민으로 바뀌었죠. 특히나 빠른 인터넷의 보급과 발전으로 우리들은 우리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과학, 의학, 경제, 정치 분야에서 많은 통계적 데이터들과 이론들을 접해왔고, 의식하지 못했더라도 일상생활에서 통계학을 사용해왔습니다 이 중 많은 정보들은 그 목적에 알맞게 올바른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많은 정보들이 과장, 왜곡, 편향되어 사용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새뮤얼 아브스만, <지식의 반감기>
우리가 자신의 뇌, 심리 등의 이상한 점을 안다면 인간은 스스로 내린 결정과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세상을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중요한 점은 인간이 새로운 지식과 사실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쓰는 방법이 완전히 합리적인 방법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이러한 편향 속에서 규칙성을 찾을 수 있고 어떤 예측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왜 잘못되고 낡은 사실을 믿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캐서린 슐츠Kathryn Schulz는 <오류의 인문학Being Wrong>에서 우리가 오류를 저지르는 이유를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그에 따르면, 어떤 형태의 진실을 믿고 싶어 하는 인간의 마음이 가끔 이유가 되기도 하고, 반대되는 견해 때문이기도 하다(책에서 슐츠는 어떤 관점에 집착하는 확실한 방법을 제시한다. 가까운 사람에게 반대되는 입장을 주장하라고 해보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저 내가 '지식의 관성'이라고 명명한 현상이 어느 정도 일어나기 때문이다. 지식의 관성이란 어떤 지식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진 다음에도 이 낡은 지식에 매달리는 경향을 말한다. 지식의 관성은 여러 가지 형태로 드러나는데,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진화심리학으로 이들을 설명할 수 있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이런저런 편향을 감추기는커녕 이들을 포용하고, 심지어 과거에는 결함으로 비치던 것들의 진화적 이익을 찾아내려 한다.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정치적 목적.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말은 가장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동기는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한다. 다시 말하지만,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1936년부터 내가 쓴 심각한 작품은 어느 한 줄이든 직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맞서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들이다. 우리 시대 같은 때에 그런 주제를 피해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내가 보기엔 난센스다. 누구든 어떤 식으로든 그런 주제에 대해 쓰고 있는 것이다. 그저 어느 쪽을 편들고 어떤 접근법을 따르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편향을 의식하면 할수록, 자신의 미학적 지적 진정성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정치적으로 행동할 기회가 많아지게 된다.
구본권, <로봇의 시대 인간의 일>
의식 현상에 대해 연구해온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최근 다양한 관측 도구와 실험 결과를 통해 의식의 핵심이 감정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인간의 의식은 오랜 진화 기간을 거치면서 많은 비정상적 요인에 영향을 받았고 이는 다양한 형태의 편향성을 형성했다. 인공지능은 사람의 의식처럼 비합리적 편향을 내재할 이유가 없으며, 감정에 휩싸여 비이성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판단을 하지도 않는다. 사람이 감정적 존재라는 것은 인간이 어떠한 상황에서든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것은 분노와 모욕을 참지 못한 충동적 살인일 수도 있고 목숨을 내던지는 살신성인의 결단일 수도 있다. 결함투성이이자 통제가 어려운 인간의 감정은 인간을 예측 불가능한 존재로 만드는 핵심적 특징이다.
에드워드 윌슨, <통섭>
자연과학은 지난 몇십 년 동안 자신의 연구 주제를 발빠르게 확장하여 사회과학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그 결과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간격을 잇는 4개의 교량이 생겼다. 첫 번째는 인지심리학적 요소들을 가지고 있는 인지뇌과학 또는 뇌과학으로서 이 분야의 종사자들은 정신 활동의 물리적 기초를 분석하고 의식적 사고의 신비를 해결하고자 한다. 두 번째는 인간행동유전학인데 이 분야는 아직 걸음마 단계이기는 하지만 인간 행동의 유전적 기초 - 예컨대, 유전자가 정신 발달에 어떤 편향적인 영향을 주는지? - 를 밝히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세 번째 교량은 진화생물학이다. 사회생물학은 진화생물학의 잡종 자손으로서 사회 행동의 유전적 기원을 설명하는 일을 목표로 하고 있다. 네 번째는 환경과학이다. 이 분야와 사회 이론과의 관계는 일견 희박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자연환경은 인간이라는 종이 진화해 온 극장이다. 또한 인간의 생리와 행동은 그 환경에 정교하게 적응되어 있다. 인간 생물학이나 사회과학도 이러한 틀을 고려하지 않는 한 완전한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스티븐 핑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하나의 사건을 공격자, 피해자, 중립적 제삼자의 눈으로 보았을 때 각각 서사가 달라지는 현상은 폭력의 삼각형에서 겹쳐진 심리적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도덕화 간극(Mralization Gap)이라고 부르자. 도덕화 간극은 자기 위주 편향(self-serving bias)이라는 더 큰 현상의 일부이다. 우리는 누구나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노력한다. '좋다'는 것은 효율적이고 능력 있고 가치 있고 유능하다는 뜻일 수도 있고, 착하고 정직하고 너그럽고 이타적이라는 뜻일 수 도 있다. 인간에게 자신을 긍정적으로 내보이려는 동기가 있다는 것은 20세기 사회 심리학의 중요한 발견이었다. ... 자기 위주 편향의 대표적인 현상은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이다. 사람들이 자신이 한 일에 대한 평가를 조작함으로써 자신이 스스로의 행동을 잘 통제한다는 인상을 지키려고 애쓰는 성향이다. 레이크 워비건 효과(Lake Wobegon Effect)도 있다. (작가 개리슨 케일러가 창조한 가상의 마을 이름으로, 그곳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평균이상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갖가지 바람직한 재능과 특징에 있어서 자신을 평균 이상으로 평가하는 성향을 말한다. 자기 위주 편향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치르는 진화의 대가이다. 우리가 집단을 형성하는 것은 서로 자석처럼 끌리는 로봇이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에게 사회적, 도덕적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온기와 공감을, 감사와 신뢰를, 외로움과 죄책감을, 질투와 분노를 느낀다. 이런 감정들이 내면의 규제자로 작용하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 생활의 대가로 고통 받지 않으면서도, 즉 사기꾼이나 무임승차자에게 착취당하지 않으면서도 사회 생활의 이득을 - 상호 교환과 협동을 - 누릴 수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협동할 것 같은 사람에게 공감, 신뢰, 감사를 느끼고, 우리도 그에게 협동으로 보답한다. 반면 우리를 속일 것 같은 사람에게는 화내고, 배척하고, 협동을 무르고, 처벌한다. 개인의 선행 수준을 결정하는 저울의 양쪽에는 협동자라는 평판에 따르는 존경, 그리고 은밀한 속임수로 얻은 부정한 이득이 놓여 있다. 사회 집단은 다양한 수준의 너그러움과 신뢰도를 지닌 협력자들의 시장이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들통 나지 않을 정도로만 자신의 너그러움과 신뢰도를 실제보다 높게 선전한다. 이런 도덕화 간극 때문에, 피해자와 가해자는 보상 협상에서 서로 상보적인 전략을 펼친다. 불법 행위를 두고 법적에서 맞붙은 변호사들처럼, 사회적 원고는 피고의 행동이 고의였음을 강조한다. 적어도 불량할 정도로 무심한 태도였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원고의 고통과 괴로움을 강조한다. 대조적으로, 사회적 피고는 자기 행동의 합리성과 불가피성을 강조하고, 원고의 고통과 괴로움을 최소화한다. 이렇게 경쟁하는 관점들이 보상 협상을 결정지으며, 구경꾼들의 공감과 믿음직한 상호 교환자로서의 평판을 더 많이 얻으려는 경쟁을 펼친다. 우리가 자신의 행동과 남들의 행동을 다르게 평가하는 것은 자기 위주 편향의 교과서적 사례이다.
권오상, <돈은 어떻게 자라나는가>
선택의 순간, 인간의 비합리성이 고개를 든다. 비합리적인 심리적 편향들...
권용진, <인공지능 투자가 퀀트>
심리적 편향과 오류는 지능이나 교육 수준과 관계없이 비슷하게 일어난다. 제임스메디슨대학의 리처드 웨스트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논리적이고 똑똑한 사람일수록 심리적 편향에 빠지기 쉽다고 한다. 아무리 객관적이고 침착한 투자가라 해도 인간인 이상 심리적 편향에 노출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봤을 때 패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투자 편향을 배제하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거래하고 위험 관리하는 알고리즘을 만든 다음 그대로 따른다면 일반인도 충분히 퀀트 투자로 수익을 낼 수 있다.
로버트 해그스트롬, <현명한 투자자의 인문학>
우리 문화에는 변이를 등한시하거나 무시하는 강한 편향이 존재한다. 대신 우리는 중심값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여러 현실 문제에서 끔찍한 실수를 저지른다. – 스티븐 제이 굴드
보통 사람들처럼 전문가들도 사고과정의 결함을 고스란히 가진 것처럼 보였다. 특히 전문가들은 과신하고, 사후확신 편향을 갖고, 자기가 가진 신념체계를 방어하고, 베이즈 추론과정이 결여된 상태였다. 이런 심리적 편견들로 인해 시스템1 사고가 문제를 일으킨다. 사람들은 타고난 편견과 휴리스틱 때문에 사고과정에 오류가 생긴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성급하고 직관적으로 의사결정한다. 하지만 시스템2 사고를 통해서만 판단을 잘못 내렸는지 점검할 수 있다.
문요한, <여행하는 인간>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자기중심적인 존재다. 자신의 감수성과 안목, 취향을 좋게 평가하고 상대방의 그것은 좋지 않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편향성을 직시하고 서로의 취향을 좀더 존중하는 데 이르면 우리의 취향은 더욱 발달하고 서로의 관계는 보다 깊어질 수 있다. 다음은 이명옥의 <인생, 그림 앞에 서다>에서 읽은 일본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취향에 관한 철학이다. '자신의 취향은 동일한 취향과 접촉하기 때문에 함양하는 것이고, 또한 이질적인 취향과 만나서 계발되는 것이며, 높은 취향에 매료되기 때문에 향상심이 생기는 것이다. 세상 운명의 7할 이상은 이 취향의 발달로 인한 것이므로, 취향이 고립돼 말라죽게 된다면 세계의 진보는 멈추게 될 것이다.'
임웅, <새롭지 않은 새로움에게 새로움의 길을 묻다>
다니엘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는 인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판단과 결정은 엄밀한 논리적 규칙에 근거하는 대신에, 상황이나 맥락에 좌우되어 어림잡아 혹은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는 다분히 실용적인 사고에 기반을 둔다는 것이다. 카너먼과 트버스키는 인간의 이러한 사고과정을 휴리스틱스heuristics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 이들이 제시하는 휴리스틱스의 유형들, 즉 대표성 유리스틱스representative heuristics나 가용성 휴리스틱스availibility heuristics 등은 인간의 의사결정이 우리의 기대만큼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 대표성 휴리스틱스는 판단하고자 하는 대상이 특정한 모집단의 원형을 닮아 있으면 모집단의 특성만을 판단의 단서로 사용하는 경향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표성을 갖는 모집단의 특성 이외에 다른 중요한 판단의 근거들은 무시되는 경향이 발생한다. ... 가용성 휴리스틱스란 접근 빈도가 높은 범주에 대한 인지 편향성을 의미한다.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시스템1은 정보 처리에 도움이 되는 인지적 편안함을 만들어주지만 신뢰할 수 없는 정보일 때 경고 신호를 보내주지는 않는다. 직관적 대답은 기술이나 휴리스틱 중 무엇에서 유래했는지 상관없이 머릿속에 빠르고 믿을 만하게 떠오른다. 이럴때 시스템2가 속도를 낮추고 단독으로 대답을 만들려는 시도를 한다. 하지만 시스템2는 게으르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기를 주저한다.
이럴 경우 시스템1이 내놓은 많은 제안은 최소한의 확인만 거친 후 무조건 승인된다. 시스템1이 오류와 편향의 원인이라는 나쁜 평판을 듣는 이유가 바로 이때문이다. 무엇보다 WYSIATI, 강도 짝짓기, 연상적 정합성을 포함한 세스팀1의 기능정 특징은 닻 내리기, 비퇴행적 예상, 과신을 비롯한 수많은 다른 예상 가능한 편향과 인지적 착각을 야기한다.
(WYSIATI : What You See Is All There Is, 당신에게 보이는 것이 세상의 전부이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블랙스완>
확인 편향 오류에 빠지면, 우리는 확률 이론이 성공적으로 적용된 계임을 예로 들어 이것을 일반화시키려 한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삶에서 행운이 차지하는 역할은 일반적으로 과소평가하지만, 확률 게임에서는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도정일,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요즘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원칙과 방향에 대한 질문'은 없다고 한다. 그들의 머리에는 한 달에 얼마 벌고 얼마를 쓰느냐, 어디 부동산을 언제 어떻게 살 것이냐는 생각만 꽉 차 있고 손익의 대차대조표만 중요할 뿐 삶을 이끌 원칙과 가치의 화살표 같은 것은 아예 없다고 한다. 나는 이런 소문들을 믿지 않는다. 나는 우리의 젊은 세대가 자기 혼자만 생각하는 좁잡한 울타리, 개구리 우물, 작은 세계의 수인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과거의 어떤 세대와도 다른, 어쩌면 단군 이래 최고의 개인주의적 편향을 가진 세대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개인주의가 공동체와 정의, 공존과 연민의 윤리를 완벽하게 시궁창으로 내던진 몰가치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려운 선택의 시대 속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우리는 도대체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질문,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인가"라는 질문을 그들의 모든 중요한 선택과 행위의 배경에 깔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크리스토퍼 시, <결정적 순간에 써먹는 선택의 기술>
현상유지 편향(status quo bias), 손실을 피하려고 현재 상황에 만족
사람들은 보통 현재 상황을 변화시킴으로써 발생하는 손실을 회피하기 위해 현재 상황에 만족해 버린다.
올해 4월 천사대교가 개통되어 신안의 암태, 자은, 팔금, 안좌도가 육지와 연결되면서 접근성이 많이 좋아졌는데, 2010년에 먼저 다리가 개통 된 증도도 넓다란 소금밭 전망대, 우전 해수욕장의 솔밭 산책, 이국적 파라솔 배경의 해변을 가지고 있어 전남권에서 당일치기 여행이나 엘도라도 리조트 등을 활용한 1박2일 여행코스로 가 볼 만한 곳이다.
증도 가는 길, 영광 백수해안도로를 가는 길에 포함시켜 보길 권한다. 동해안에는 7번 국도 해안길이 있다면 서해안에는 백수해안도로 드라이브 길이 있다. 신안군 지도에서 사옥대교, 증도대교를 건너 소금밭 전망대에 올라 김제/나주 평야의 논처럼 넓게 펼쳐진 염전과 섬, 바다의 어우러짐을 조망하고 우전해수욕장 솔밭 산책길과 해변을 거닐며 낙조 감상으로 마무리....
증도의 대표적 먹거리는 짱뚱어탕과 낙지요리다. 오고 가는길 함평에 들러 육회비빔밥이나 곱창국밥도 먹어 보시길....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이라는 표현을 썼다. 인생 자체가 '방황'이고 시간의 '여행'이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심지어 "더 이상 사랑하지도 않고, 방황도 하지 않는 자는 살아있을 가치가 없다."라는 말도 한다.
'방황'하는 청춘이여, 불안과 두려워하지 말라. '방황'은 시간 낭비나 불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나날은 방황과 실패의 연속이지만, 시간이 쌓이면 성과와 성공이 찾아온다."라는 괴테 선생님의 말처럼 삶의 과정이다.
[본문 발췌]
"수준 높은 것을 받아들일 만한 소양을 갖춘 사람은 매우 드물다. 수준 높은 것들은 자신을 위해 감춰두고, 타인에게는 이익이 될 수 있을 때만 꺼내 보이는 편이 좋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것만을 듣기 때문이다."
"우리는 야만적 시대에 살고 있다. 야만이란, 뛰어난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자신보다 뛰어난 것들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보다 뛰어난 것들에 경의를 표함으로써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여행은, 때로는 잠시 고민을 잊게 해주고, 때로는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돌아오게 해준다."
"입법가든 혁명가든, 평등과 자유를 동시에 약속하는 자는 공상가 아니면 사기꾼이다."
"우수한 인물 중에는 무슨 일이든 바로 완수하거나 적당히 하는 게 안 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각각의 대상을 깊이 있게 추구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질을 가졌다." 우리는 종종 그들의 이러한 태도를 답답하게 여긴다. "하지만 이런 방법이 최고의 것을 만들어 낸다." 효율을 우선시하는 시대에는 천재가 탄생하지 않는다.
"우리들의 나날은 방황과 실패의 연속이지만, 시간이 쌓이면 성과와 성공이 찾아온다." 현자는 눈앞의 혼돈과 실패에 얽매이지 않는다. 시간의 효능을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