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부귀 권세를 쥔 자들이 어리석어 보이는 행동과 말로 웃음을 주는 광대보다 나은게 무엇인가?
 
그들은 사익만 추구하며 쾌락의 노예가 되어 있고, 자유와 진리를 미워하고, 모든 것을 자기 욕망과 이익에 비추어 판단하는 자들이 많다.



[본문발췌]

우신의 시종들. 여기 눈썹을 치켜뜬 자는 분명 '필라우티아'(자아도취)입니다. 저기 눈웃음을 지으며 박수 치고 있는 자는 '콜라키아'(아부)입니다. 반쯤 졸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자는 '레테'(망각)입니다. 팔로 머리를 괴고 비스듬히 누워 있는 자는 '미소포니아'(태만)입니다. 장미꽃을 엮어 두르고 온몸에 향수를 짙게 바른 자는 '헤도네'(쾌락)입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자는 '아노이아'(경솔)이고, 피부에 윤기가 흐르고 혈색이 좋으며 살이 통통하게 오른 자는 '트리페'(방탕)입니다. 시종들 사이에는 남신 두 명이 서 있는데, 한 명은 '코모스'(광란)이고, 다른 한 명은 '네그레토스 휘프노스'(깊은 잠)라고 합니다. 이들은 나의 충직한 가솔들이고, 나는 들의 도움을 받아 온 세상을 지배하며 위대한 통치자들조차 내 명령에 복종하게 만듭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다." - 소포클레스, <아이아스>


사실 노인은 주름이 많고 생일이 더 많이 지냈다는 것 말고는 어린아이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노인이나 어린아이나 머리색이 옅고, 치아가 다 있지 않고, 체구가 작고, 젖 먹는 것을 좋아하고, 말을 더듬고, 자꾸 이야기하고, 엉뚱한 소리를 하고, 곧잘 잊어버리며, 생각이 부족합니다. 거의 모든 점에서 비슷하지요. 사람은 늙을수록 점점 더 어린아이에 가까워집니다. 그래서 삶의 고단함을 느끼지 않고 죽음을 의식하지 않으면서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과 싸우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화합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겠습니까? 
내 생각에는 우신인 나보다 더 어리석지 않다면, 그러니까 진정으로 어리석지 않다면 아무도 그렇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를 배제해보십시오. 그러면 사람들은 서로에게 악취를 풍기는 자로 느껴지고, 주변의 모든 사람이 협오스럽고 가증하게 보여 아무도 받아들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된 이유는 여러 면에서 생모라기보다 계모라고 할 수 있는 자연이 사람들의 본성, 특히 좀 더 현명하다고 하는 사람들의 본성 속에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남에게 주어진 것을 시기하는 악덕을 심어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인생을 우아하고 아름답게 해주는 자연의 선물마저 결국에는 모두 훼손되고 맙니다.


분별력이란 많은 경험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현자들은 염치나 소심한 성격 때문에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반면에, 어리석은 자들은 애초에 염치가 없는 데다가 위험에 구애받지 않기에 무슨 일이든지 거침없이 달려들어 해냅니다. 그렇다면 둘 중 어느 쪽이 분별력이라는 영예로운 이름에 더 어울리겠습니까? 
현자들은 케케묵은 옛날 책 속으로 도피해 거기에서 세상 물정 모르는 옛날 사람들이 말로만 그럴 듯하게 늘어놓은 궤변을 배웁니다. 반면에 어리석은 자들은 모든 일에 직접 뛰어들어 무엇이 맞고 틀린지 체험함으로써, 내 말이 틀리지 안았다면, 진정한 분별력을 얻습니다. 
호메로스는 비록 눈이 멀기는 했지만, "어리석은 자는 일이 터지고 겪은 후에야 깨닫는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이런 사실을 볼 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경험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을 방해하는 두 가지 주된 장애물이 있습니다. 하나는 생각에 뿌연 연무를 드리워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게 하는 염치이고, 다른 하나는 위험해 보이는 일은 시도하지 말라고 말리는 두려움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음은 사람들을 이런 것들로부터 놀라울 정도로 해방시킵니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무슨 일이든 거침없이 하는 것이 삶에 얼마나 많은 유익을 가져다주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이렇게 어리석음과 좀 더 가깝고 친한 학문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에, 모든 학문과 일체의 접촉을 끊고 오직 자연이 이끄는대로 살아가는 자들이 가장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인간이 자기 분수를 뛰어넘는 생각만 하지 않는다면 자연은 인간의 안내자 역할을 하는 데 조금도 부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연은 꾸미는 것을 싫어하고, 어떤 것이든 인위적인 학문으로 훼손되지 않았을 때 훨씬 더 큰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다른 모든 동물은 자연이 정해준 한계 안에서 만족하고 살아가는 반면에 인간만이 운명의 한계를 벗어나려고 애쓰기 때문에 인간보다 더 불행한 동물은 없다.


진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일수록 더 진실이라 믿고, 귀를 살살 간지럽히는 쾌감을 더 크게 느낍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데 기막히게 좋을 뿐만 아니라, 특히 사제와 설교자에게는 돈벌이도 됩니다.


사람들은 속는 것이 불행한 일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속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불행한 일입니다. 인간의 행복이 진실을 아는 데 있다고 생각하면 엄청난 착각입니다. 행복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인간사는 아주 모호하고 천차만별인지라 철학자들 중에 가장 덜 오만한 우리 아카데미아 학파 사람들이 올바르게 말했듯이,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설령 알 수 있다 해도 그로 인해 인생의 즐거움을 방해받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인간은 진실보다 거짓에 훨씬 더 쉽게 사로잡히지요. 거짓을 통해 행복을 얻는 데는 비용이 그리 들지 않습니다. 진실을 알기란 대단히 힘든 일이므로 문법처럼 별것 아닌 문제조차 진실을 알아내려면 몇 배는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반면에 거짓을 바탕으로 자기에게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란 아주 쉽고, 그런 생각은 곧바로 행복으로 이어지며, 생각이 거짓될수록 행복은 더욱 커집니다. 행복하다면 그것이 거짓으로 말미암은 것이든 진실로 말미암은 것이든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차이가 있다 해도 어리석은 자들이 누리는 행복이 더 낫습니다. 그들의 행복은 그저 그렇다고 믿기만 하면 되는 까닭에 돈이 거의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렇게 얻은 행복은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이 이 모든 것을 수학 공식처럼 정해진 규율에 따라 정확히 행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죄라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신발 끈의 매듭은 몇 개여야 하고, 허리띠는 무슨 색이어야 하며, 서로 형태가 다른 몇 벌의 수도복을 갖추어야 하고, 허리띠는 어떤 재질로 만들고 그 너비는 어떠해야 하며, 고깔은 어떤 모양과 크기여야 하며, 삭발은 손가락 몇 마디 길이까지 해야 하고, 잠은 몇 시간을 자야 하는지 다 규율로 정해놓습니다. 신체와 성격이 천차만별인 사람들에게 규율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겉보기에는 평등해도 실제로는 불평등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데도 이 쓸모없는 자들은 하찮고 자질구레한 규율에 집착하며 자신들이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 할 뿐 아니라 우월감에 젖어 남들을 멸시합니다. 사도들의 사랑을 실천한다고 큰소리 치는 자들이 규율에서 정한 것과 다르거나 조금이라도 진한 색깔의 수도복을 입은 수도사를 보면 놀라 자빠질 만한 비극을 연출합니다. 돈을 치명적인 독으로 여기며 손도 안 대려 하면서 술이나 여자에 대해서는 별로 절제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 모두는 놀라운 열정으로 서로 다른 생활 규칙을 따릅니다. 그러나 그들의 욕망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남다르다는 것을 과시하는 데 있습니다.


군주들은 끊임없이 사냥하고, 명마를 기르고, 행정과 군대의 요직을 팔아 이익을 얻고, 신민들의 재산을 털어 자신의 금고를 채울 새로운 방법을 날마다 생각해냅니다. 아무리 부당한 일도 그럴 듯한 명분을 붙여 공정한 처사로 보이게 만듭니다. 그래야 군주의 모든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백성의 마음을 자기편에 붙들어두기 위해 어느 정도 잘 보이려고도 합니다. 오늘날 군주가 어떤 사람들인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은 법률에 무지하고, 사익만 추구하느라 공익은 거의 적대시하고, 쾌락의 노예가 되어 있고, 학문과 자유와 진리를 미워하고, 국가의 안녕은 전혀 생각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자기 욕망과 이익에 비추어 판단하는 자들입니다.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지도자들은 지나치게 똑똑한 사람들을 의심하고 질투하는 반면에 다소 우둔하고 단순한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이 대목에서 플라톤이 말한 동굴의 비유가 떠오르는군요. 동굴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 사물의 그림자밖에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동굴 밖으로 나왔다가 돌아간 한 사람이 사물의 실체를 보았다며, 저 하찮은 그림자 외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려주었을 때 일어난 일이 일반 사람들과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은 동굴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거짓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만, 정작 그들은 그를 미쳤다고 조롱하며 쫓아냅니다.


마찬가지로 일반 사람들은 물질적인 것을 가장 숭배하고 물질적인 것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기독교인들은 물질적인 것에 가까운 것일수록 무시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일에 몰두합니다. 일반 사람들은 재물을 가장 중요히 여기고, 육체의 안락을 두 번째로 생각하며, 영혼을 마지막에 둡니다. 이들 대부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기독교인들은 만물 중에 가장 순전한 존재인 하나님을 최우선에 두고, 다음으로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영혼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육체에는 관심이 없고, 돈은 조개껍데기 보듯이 하찮게 여기고 배척합니다. 어쩔 수 없이 돈을 다루어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몹시 불쾌해하며 마지못해 다루지요. 돈이 있어도 없는 것처럼, 재산을 소유하고 있어도 소유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합니다.

여기에서 나는 이런 것들을 하나의 예로 제시했지만,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삶 전체에서 육체와 관련된 것들을 멀리하고, 영원한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영적인 것을 추구합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과 일반 사람들 사이에는 서로 미쳤다고 생각하게 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모든 면에서 서로가 아주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판단하기에 일반 사람들보다는 기독교인들이 더 미쳤다고 보는 편이 더 맞습니다.


앞서 약속한 대로 기독교인들이 받을 최고의 상이 광기임을 간단히 증명해 보인다면, 이 점은 더욱 분명해질 것입니다. 먼저, 플라톤이 무슨 생각으로 사랑의 광기야말로 최고의 행복이라고 말했을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는 분명 나와 같은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을 것입니다. 열렬한 사랑에 빠진 사람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살아갑니다. 자신에게서 벗어나 사랑하는 대상 속으로 들어갈수록 행복과 기쁨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혼이 육체에서 벗어나려 하고 자신의 신체 기관을 적절히 사용하려 하지 않는 상태란 의심할 여지없이 미친 것이고 광기이며, 또한 그렇게 부르는 것이 맞습니다. "제정신이 아니다", "정신 차려라",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등 흔히 쓰이는 이런 표현들이 그런 의미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사랑이 절대적일수록 광기는 커지고 행복도 함께 커집니다.


<우신예찬>은 어리석음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포괄하여 인간의 모든 행복이 어리석음에 달려 있음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 에라스무스가 마르턴 판 도르프에게 보낸 편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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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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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cao 섬에서 다이빙과 휴식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숙소가 Ticao Island Resort다.
 
가고 오는 길이 복잡하고 험난하지만, 일단 리조트에 들어가면 다이빙, 카누, 패들보트, 말타기, 근처 어부와 함께하는 낚시 체험 등 휴식과 다양한 즐길거리가 있다.
 
그리고 주변에 식당이 없기에, 삼시세끼는 리조트 식당에서 해결할 수 밖에 없는데 숙박 예약시 Full board meals로 신청할 수 있다.
 
이곳의 장점이며 단점, 모바일통신 서비스불가. 오로지 리조트 레스토랑 한 곳에서만 wifi 연결 가능하다.
 
숙소 내에는 댕댕이들이 리조트를 지키고, 가끔 잔디 정원에 말들이 침범하기도 하는데, 개들의 영역을 침범한 용감한 말의 최후는..... 줄행랑이다.

바람소리, 별, 초록 정원과 하얀 구름, 파란 하늘이 선명하게 보이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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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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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카오섬에서의 다이빙은 섬 북쪽과 남쪽, 또는 리조트 근처 reef, 작은 바다 생물들을 찾는 macro diving과 티카오 해협 중간의 manta bowl에서 manta와 whale shark을 찾는 다이빙 등이 있다.


리조트 다이빙샵은 기본 하루 3회 다이빙을 기본으로 진행한다.

나는 solo diver라 다른 diver를 포함한 리조트 일정에 맞춰 총 9회 다이빙을 하기로 했는데, 체력의 한계도 있고 manta bowl 중심으로 다이빙 하고 싶은 생각도 있어 중간에 하루 휴식도 취하며 체크 다이빙 1회를 제외하고 총 8회 manta bowl에서 다이빙을 했다.


첫날과 둘째 날은 영국에서 온 wild life documentary camera man robin, 중국&말레이시아 커플인  andy와 carol과 빈의 가이드로 함께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은 프랑스에서 온 elliot과 단 둘이 제론의 가이드로 manta bowl 3회 입수.


결과적으로 manta bowl 8회의 다이빙 중 만타는 만나지 못했고 잠깐 지나가는 고래상어와 한 번의 만남, 그리고 만타볼 근처 white tip shark와 잭피쉬 떼를 본 게 다였다.


만타볼 근처는  해협 중간이라 바다 위고 아래고 조류가 심하다.

그동안 대부분의 다이빙이 목적과 성공률이 50%이상의 예측 가능했다면, 만타볼 다이빙은 전혀 예측 불가능한 야생의 사냥 느낌이다.

입수하자마자 조류타고 drift, 만타 클리닝 포인트에 도착해서 바닥에 조류 걸이 걸어놓고 사냥감을 찾듯 만타가 나타니기만 기다리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해 반복적인 찾기와 기다림이다.

만타를 만나지 못했지만 과정은 재미있었다. 조류를 온몸으로 맞으며 기다림과 허탈함만 남았지만  때와 상황이 도와야 원하는 것을 얻듯이 바람, 소나기, 강한 조류, 8번의 시도에 티카오 해협 만타는 다음 기회를 기약한다.

첫날 만타볼에서 그 동안 허접한 영상이지만 많은 기록을 남겨준 나의 액션캠이 사망해, 남은 다이빙은 오롯이 눈과 기억으로만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좋았다.


첫 이틀 다이빙을 함께한 robin, andy&amp;amp;carol, 그리고 dive master bin


만타볼은 공기와 무감압잔여 시간에 따른 기다림의 게임


만타는 못보고 리조트 돌아가는 길 만난 돌고래떼
직업의식이 발동한 robin은 스노클로 돌고래 찍겠다고 쫓아간다.
이미 멀리간 돌고래떼, 헤매는 robin을 놀리는 bin


사망한 나의 액션캠, 그러나 carol의 영상을 받았다. 넓디 넓은 티카오 해협에서 입수 전 내 장비가 이상해 잠깐 정비하고, 입수 후 andy의 마스크를 다시 받느라 지체하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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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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